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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리즘, 미술이 미래를 보여줄 수 있을까? 9/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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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8,515회 작성일 10-09-2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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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7th hour: Can Art Show Future? Futurism 미래주의



Founder of the Futurist movement 1912


Filippo Tommaso Marinetti (centre) with the artists (left to right) Luigi Russolo, Carlo Carrà, Umberto Boccioni, and Gino Severini on Jan. 1912  마리네티는 이태리의 미래파 Futurism의 선언문을 쓴 시인이며 미래파는 문학운동에서 출발하여 나중에 화가가 동참하여 예술운동으로 되었다.

Marinetti, Le Futurisme, Le Figaro Paper  Feb.20 1909  
    
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예술 사회 운동으로 과거의 전통을 부정하고 근대 문명이 낳은 속도와 기계를 찬미하는 것을 본령으로 삼았다. 선언문은 새 세상을 위해서 과거의 모든 것이 없어져야 하며 전통적 사고방식과 고리타분한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는 미술관, 학교, 도서관을 부셔야 한다는 내용으로 일반 대중에게 자극을 주고 자신들의 운동에 대중의 동참을 바랐기에 파리의 피가로 신문에 선언문을 실었다.

George Braque, Fruit Dish Glass 1912      Picasso, Guitar Sheet Music and Wine Glass 1912

            

하지만 피카소는 신문에 회의적이었다. 카페에 앉아 이야기 하는 것도 소용 없으며 백날 얘기만 하다 끝났다. 피카소는 신문에서 전달하는 fact 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중의 태도가 맘에 안들었다.

미래파는 이제 신문의 기능을 바꾸자 라고 주장했다. 피카소의 빠삐에꼴레 작품을 보러 사람들이 박물관을 가지 않으며 가서 봐도 너무 어렵다. 피카소가 대중을 target 으로 그런 작품을 했지만 대중에게 그 작품의 의미가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신문에 실어서 사람들을 흔들어야 한다는 것이 퓨처리즘의 주장이다. 피가로지에 선언문을 싣고 아폴리네르가 시를 쓴다.

Words in Freedom 1912
 
시가 과격하다. 장화모양의 이태리 단도가 화살표가 되어 오스트리아를 공격한다. 왜 하필 유럽국가 중에서 이태리에서 이렇게 과격한 Futurism 이 생겼을까?  이태리는 근대국가의 후반주자로서 1860년대 후반에 뒤늦게 국가를 형성한다.  예전에 문화를 꽃피운 르네상스  미술운동은 베니스, 플로렌스의 도시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 이었으므로 이태리 국가의 미술이라고 보기가 힘들다. 이태리는 1870, 1871년에 통일이 시작되어 근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는데 주변 유럽 국가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철의 정책을 펴는 가운데 ‘우리가 불란서와 전쟁을 할건데 너희가 우리와 손 잡으면 오헝제국의 영토를 나누어 주곘다’고  이탈리아와 손을 잡을 것을 제의한다. 1870년의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는 패배하고 독일이 베르사이유 궁전까지 들어와 독일제국을 선포한다. 독일, 이태리, 오헝제국은 손을 잡고 이탈리아는 발칸 전쟁을 통해 북아프리카 땅 리비아를 얻는다.

이탈리아는 prime minister 가 들어섰지만 프랑스식 민주주의가 아닌 socialist 국가가 탄생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공산주의는 2차 대전 후에 생긴 스탈린의 공산주의 개념이다. 1차 대전 전에 이태리에서 성립된 socialism 국가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이태리의 일차 대전 참여를 적극 지지한 당은 Socialist 가 아닌 국수주의자 Nationalist 들이었고 Futurist 들이었다. Socialist 는 오히려 전쟁 참여를 반대하였다. 런던 pact 에 의해 영국과 손을 잡고 이태리의 nationalist, futurist 들의 지지를 얻어 1915년에 이태리는 전쟁에 참전한다. Words in Freedom 같은 시에서 화살표가 오스트리아를 쳐들어가자는 의미로 쭉쭉 뻗어있다.

일차 대전을 전후하여 볼 때 이태리는 아직 산업이 발전한 나라가 아니었기에 Futurist 는 기계 문명 machine 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beauty of speed 를 예찬했다. 기계로 인해 인간이 살아가는 속도가 달라지며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speed 의 limit 을 넘어간다.  도서관을 부시고 나면 기계가 그 자리를 채우고 산업이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Umberto Boccioni, The City Rises 1910
 

소가 달려오고 사람이 놀래며 city 의 움직임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화면분활은 큐비즘과 비슷하지만 speed 와 movement 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 있다. 뒤샹의 chrono-photography 처럼 움직임을 화폭에 담아낸다. 그림은 이차원 화폭의 정지, 멈춤인 줄 알았는데 미래파 작가들은 연속동작을 통해 그림 안에서 시간을 표현한다. 피카소는 한번도 움직임을 그림에 시도한 적이 없지만 미래파들은 큐비즘 테크닉이 movement 를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 

Gino Severini, Spherical Expansion of Light 1913-14 
                                                   
                  

Giacomo Balla, Street Light 1909



Umberto Boccioni, States of Mind I, The Farewells 1911
    

초상화와 정물만을 그린 피카소와는 달리 미래파는 주제면에서 전환을 가져온다. 기차와 번호판, 기차연기와 증기가 화면을 혼란하게 한다. 마음의 상태1 역에서 작별할 때의 분주함을 표현한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한번도 주제로 삼지 않았던 사람의 혼동스런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다. 미래파는 앞으로 나가게 하는 시간의 흐름을 그림에 표현해서 기존의 그림을 쳐부수고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가져 오려했다.

르네상스 문명이 꽃핀 이태리의 그림의 역사는 유구하다. 하지만 미래파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도 다빈치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산업 발달도 지연되고 요모양 요꼴이다 라고 생각했다. 플로렌스에 늘어서 있는 조각상 박물관을 불태우자. 르네상스 문명의 정수인 재현을 부수어내는 방법은 기차가 막 달려가는 이런 스타일의 그림 밖에 없다 라고 생각했다. 과격한 미래파가 이태리를 흔들어 놓는다.
 
Umberto Boccioni, States of Mind II, Those Who Go 1911


Umberto Boccioni, States of Mind III, Those Who Stay 1911

                 
마음의 상태 II 와 III 는 기차역에서 이별한 후 가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이다. 그림은 큐비즘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은 마음의 상태인 감정이 들어있다. 피카소는 표현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래파는 새로운 형태와 새로운 subject matter 를 그림에 들고 들어 왔다.  추상적인 그림이지만 사람의 심정인 형이상학을 담고 있다.           

Giacomo Balla, Dynamism of a Dog on a Leash 1912
 
사람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는데 다리가 쫑쫑 걸어가는 느낌이 난다. 만화에서 보는 듯한 이미지이다. 화면 분활을 통해 movement 와 시간이 담긴다.  Painting 은 영화같은 도구가 안되는 줄 알았는데 futurist 에게는 움직임의 도구가 된다. 한 순간의 snap shot 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큐비즘을 시간과 공간 개념으로 이해하여 움직임을 모아서 dynamic 역동성을 표현한다. 피카소는 still life 만 그렸는데 유럽의 큐비스트들은 피카소를 보고 movement idea 를 얻었다. 피카소를 잘못 이해하고 다르게 해석해서 나름대로의 작품을 내놓았다.

Gino Severini, Dynamic Hieroglyphic of the Bal Tabarin 1912
 
캬바레의 사람들의 정신없는 움직임을 분석적 큐비즘과 파삐에 꼴레를 융합해서 표현했다. 그림에 반짝이 sequin 을 붙였다. 소리도 그림 안에 담아 내고 싶어 글자 polka 를 그림 안에 넣었다. Futurist 는 지적 탐구가 아니라 역동성을 보여주기 위해 글자와 천 등을 종합시켰다.

Gino Severini, Red Cross Train Passing a Village, 1915
 
미래파 작가로서 전쟁을 옹호하고 그림을 통해서 민중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싶었다. 마을을 지나가는 적십자 구호 기차이다. Futurist, Nationalist 가 위험한 이유는 전쟁을 열렬히 지지한다는 점에 있었다. 프랑스가 1914년에 일차 대전에 참여하고 이태리는 1915년에 참여한다. 우리가 기차를 이용하여 전쟁 구호 물자를 잘 실어나르니 전쟁에 더 많이 참여하라는 message 전달이 목적이다.
 
일차 대전 후 이태리는1922년 Mussolini 가 정권을 잡고 fascist 국가가 된다. 일차 대전보다 더 큰 비극인 이차 대전의 중심에 이탈리아가 있었고, 거슬러 올라가 보니까 Futurist 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Futurist 는 그림이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서양 미술사에서 이야기 안 하고 싶었고 묻혀 있었다.

Gino Severini, Armored Train 1915
 
‘전쟁장면이 아름답다.’ 미래파는 기계에 대한 fantasy 가 있었는데 기차 그림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대포를 아름답게 그렸다. 기계문명의 첨단 발달은 전쟁에서 비롯된다. 일차 대전 당시 독일은 기계 문명이 발달한 나라였지만 이태리는 잘 사는 나라도 아니었고 기계문명이 발달된 나라도 아니었다. 미래파는 전쟁에서 기계, 대포, 총을 보고 machine 이 극도로 진일보됨을 보았고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전쟁이 터져 모든 것이 초토화되고 새 세상이 온다고 믿었기에 전쟁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청기사파 칸딘스키는 일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대홍수, 대기근, plague 를 통해 세상이 한번 근절이 되면  utopia 가 온다는 영적인 사고를 그림을 통해 표현했다. 미래파는 전쟁을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위험한 사고를 했으며 이들이 꿈꾸는 nation 은 fantasy 일 뿐 사람이 죽어가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Carlo Carrà , Patriotic Celebration on Free Word Painting 1914
 
신문글자를 오려서 이태리 국기를 나타내며 의성어 (다다다, 꽝꽝) 를 오려 붙인 빠빠에꼴레이다. 사람이 '다다다' 하고  읽으면 그림 안에 sound effect 가 있는 것 같다. 이태리의 일차 대전 참여를 열렬히 지지하며 이런 세상을 축하하는 확성기 선전같은 propaganda 이다. 큐비즘과 꼴라쥬를 종합하여 증폭시킨 종합 예술을 국가 선전 도구로 사용해 애국심에 호소한다. ‘국가 위해서 참전하세요.’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그림과 글자를 오려 넣은 피카소와 대조가 된다.

오피즘은 그림 안에 빛의 소리와 여러가지 감각을 담았고 미래파는 movement 와 sound 를 담아내어 2차원 캔버스의 한계를 부셔냈다. 전쟁을 찬성하는 위험한 생각만 제외하면 형식적으로 재미있는 예술양식일 수도 있다.

Umberto Boccioni, Development of a Bottle in Space, 1912
 
병을 여러 각도로 돌려보면서 공간을 분활시켜서 사물 안에 공간을 침투시키는 아이디어이다. 보치오니는 그림을 통한 형식적 탐구를 하다가 조각에 발전 시켰는데 피카소의 아샹블라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피카소는 조각의 영역을 벋어났지만 보치아니는 조각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다. 조각처럼 보이게 하려고 브론즈로 받침대 pedestal 를 붙였다.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면의 분활 아이디어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지 장르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보치오니의 그림 States of Mind 도 그림의 장르 안에 머물면서 영역을 넓히는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보치오니는 그림과 조각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았으며 그림 안에 소리를 담아내고 조각 안에 공간을 담아내고 싶었다. 피카소는 그림과 조각의 틀 안에 머무르지 않고 장르를 부시고 넘어서 지적인 탐구를 하였다.

피카소와 보치오니는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생각 같지만 의미는 굉장히 다르다. 보치오니는 여전히 elite 적이고 급진적인 아이디어로 너희는 나를 따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피카소는 elite 적인 입장의 leader 가 아니고 ‘여러분도 벽지 사서 한번 해 보세요. 이제 예술가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랍니다.’ 라고 말한다. 

레제, 후안그리스, 글레이즈, 미래파 그 누구도 피카소의 이런 의도를 간파하고 읽어낸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미래파는 레오나도 다빈치를 부시고 싶었는데 그들이 레오나도 다빈치, 신이 도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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