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당시대의 큐비스트들 9/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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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6,851회 작성일 10-09-2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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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6th hour: 피카소와 당시대의 큐비스트들
1. 꼴라쥬 collage 라는 말은 불어의 ‘Coller'(풀로 붙이다)에서 유래된 말로서 일상의 비예술적인 소재, 즉 종이나 헝겊을 잘라내어 붙이는 기법을 총칭한다. 1912년 큐비즘에 의해 시도된 꼴라쥬의 기법이 꼴라쥬 최초의 발생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가운데서 특별히 종이 조각을 사용하는 경우를 들어 빠삐에꼴레 Papier colle 라고 불렀다. 아상블라쥬 Assemblage 란 프랑스어로 집합을 의미 하며, 특히 3차원적 입체작품의 형태를 조형하는 방법을 말한다. 콜라쥬가 평면적인 데 대하여 아상블라쥬는 3차원적이다.
George Braque, Fruit Dish Glass 1912 Picasso, Guitar Sheet Music and Wine Glass 1912
종이와 벽지를 오려 붙인 최초의 꼴라쥬이며 빠삐에꼴레라고도 한다.
Pablo Picasso, Glass of Absinthe 1914, Assemblage
In ‘Assemblage Art,’ several different ‘found objects,’ such as paper, wood, fabric, leaves, or plastic, are organized in a three-dimensional plane.
압셍트는 아주 쓴 초록색의 술로서 숟가락 위에 슈가를 녹이면서 마신다. 보헤미안들이 많이 마셨고 렝보, 뚤루즈도 즐겨 마셨다. 보헤미안들이 알콜중독이 많고 괴이한 행동을 많이 하였기에 압셍트는 1914-15년에 금지가 된다. 피카소는 화면을 분활한 형태로 술잔을 만들고 그 위에 점을 그렸다. 잔 위에 숟가락을 올려 놓았는데 이 숟가락은 피카소가 만든 것이 아니므로 이 작품을 조각이라고 할 수 없고 아샹블라쥬라고 불렀다. 조각이란 작가가 직접 깍고 저미고 해야 하는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피카소의 Glass of Absinthe 가 이해하기가 어렵고 약간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피카소의 큐비즘이 1910년대 당시대 유럽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피카소는 1910년을 기점으로 해서 analytic cubism 을 끝내고 synthetic cubism 으로 넘어가지만 유럽의 화가들은 1910-20년, 1차 대전 이후까지 피카소의 analytic cubism 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나타냈고 각자 나름의 해석을 내어 놓는다.
2. Robert Delaunay, Eiffel Tower in Trees 1910
브라크와 피카소의 화면 분활과 비슷해보인다.
Robert Delaunay, Simultaneous Contrast Sun and Moon 1913
위의 작품은 오피즘 Orphism 으로서 우주의 진리를 담아내는 영적인 영역과 빛 light 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시인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는 그림 안에 voice of light 를 담아 낸다고 했으며 오피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 리라를 잘 타는 오르페우스 Orpheus 는 에우리디케라는 예쁜 아내가 있었는데 뱀에 물려 죽는다.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신 하데스를 만나러 지하 세계로 가는데 그의 천재적인 리라 연주를 듣고 마음이 움직인 하데스는 네 아내를 데려가되 저승문을 지나갈 때 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의심이 들어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고 에우리디케는 저승으로 돌아간다.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리라만 연주하고 지낸다. 림프들은 미남인 오르피스를 짝사랑 하지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그에게 화가 나서 오르페우스를 찢어 죽인다. 오피즘이란 용어는 시와 음악, 예술의 신으로 알려져 있는 오르페우스에서 유래한다. 19세기 말 유럽의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기존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불신이 퍼지는 가운데 이단 종교 오피즘에 대한 관심이 팽배한다. 오피즘은 기원전 5 세기부터 시작되었고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Frantisek Kupka, Disks of Newton, Study of Fugue in Two Colors 1911-12
칸딘스키는 예술의 영역에서 음악이 최고의 장르라고 하였는데 위의 제목에서 음악용어 Fugue 가 보인다. 오피즘은 달과 태양의 우주진리를 그림에 담아내며 사물을 달라 보이게 하고 교란시키기도 하는 빛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화면 분활까지는 큐비즘과 비슷하지만 델루네와 쿱카는 색채를 쓰며 정신적 영적 세계에 대한 표현을 정적인 분위기로 나타낸다. Orphism 작가들은 큐비즘의 dry 한 지적 탐구에 청기사파와 포비즘의 감정, 정신, 영적 세계를 혼합하였다.
3. Albert Gleizes, Harvest and Threshing 1912
Juan Gris, The Table 1914
후안 그리스는 스페인 사람으로 피카소와 고향 친구이며 스튜디오를 같이 쓰면서 피카소와 브라크에게 배우는데 그림의 어두운 tone 이 비슷하다. 알버트 글레이즈는 큐비즘을 이론적으로 풀어내는 책을 집필하며 큐비즘을 알리는 표교 역활을 한다. Harvest and Threshing 은 가을에 넓은 들에서 곡식을 추수하는 사람들의 풍경의 움직임을 분활하여 표현했다. 하지만 피카소는 움직임에는 관심이 없었고 정물과 초상만을 큐비즘으로 표현했으며 landscape 은 그리지 않았다. 피카소는 1910년대 중반, 1920년대에 다른 작가들이 큐비즘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으며 이 시기에 피카소는 이미 꼴라쥬, 아상블라쥬를 하고 있었다.
4. Fernand Leger, Three Nudes in the Forest 1909-10
Fernand Leger, Contrast of Forms 1913
형태가 동글동글하다. 화면분활이라기 보다는 원통, 원뿔, 나무조각의 형태이다. 레제는 후기에는 파란색, 노란색, 빨강색의 원색을 쓰며 tube form 으로 그린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dealer 인 칸바일로는 후안 그리스와 레제의 작품 역시 독점 구매를 한다. 레제는 피카소에게 배운 것과 세잔의 화면 분활을 혼합하였다. 세잔은 모든 형태의 base 는 원기둥, 원뿔, 구로 소급될 수 있다고 했는데 추상으로 가는 화가는 기본 form 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레제는 선배들의 아이디어를 혼합하여 작품을 내 놓았다.
5. 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
기용 아폴리네르는 큐비즘 예술 형태의 평론가이며 이태리 태생으로 파리에 이주하여 살았고 피카소처럼 파리에서는 이방인이었다. 피카소와 같이 조각 작품을 훔쳤다는 절도죄의 혐의를 받는데 내가 이방인이기에 당하는 대접이다 라고 하였다. 시 자체를 이미지화 하는 typography 상징주의 스타일의 시를 썼다.
6. Marcel Duchamp, Portrait of Chess Player 1911
Marcel Duchamp, Nude Descending a Staircase 1912
마르셀 뒤샹 역시 큐비즘에 관심이 있었던 작가였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분석적 큐비즘처럼 화면 분활과 어두운 색깔을 쓴다. 뒤샹은4th dimension 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오피즘처럼 영적 종교적 분야의 측면에서 다루어졌다. 말이 달릴 때 다리가 공중에 뜨는 것 처럼 보였는데 사람의 눈으로 확인을 못 하던 것을 연속 사진술 chrono-photography 이 나와서 확인을 해 주었다. Technology 덕택으로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할 수가 있었다. 뒤샹은 화면 분활을 이해할 때 피카소에 대한 공부라기 보다는 chrono-photography 를 보고 착안해서 그린 것이다. 이에 대해 피카소는 뒤샹이 엉망으로 이해한다고 하였다. 피카소는 정물과 초상만을 화면 분활했으며 결코 움직임을 나타낸 적은 없다.
1910-20년 대에는 피카소의 큐비즘의 영향이 유럽의 작가들에게 퍼져 나름대로 큐비스트 작품들을 다양하게 내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카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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