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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한과 회화 9/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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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8,830회 작성일 10-09-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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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회화사 7th hour : At the Source of the Spirit  아라한과 회화



1. 당수나라 지도

              

수나라 당나라시대를 현재의 중국이라는 국가 개념으로 보면 잘못된 역사관이다. 이때는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을 때이다. 당이 망하고 수도 시안에서 내려와 루양(낙양) 이 중요해지고 루양 밑의 지역인 카이펑이 중요한 지역이 된다. 권력을 뺏으려던 왕조들이 싸우던 접정지역이다. 망하는 당나라 이야기이다.

2. Huaqingchi Park 화청지, Xian 시안
           
          



당현종과 양귀비의 전용 온천에 세운 양귀비 동상이며 현종이 양귀비 머리를 말리라고 지어준 누각이다.

907 년 안사의 난 이후 당나라는 망하기 전까지 150년 동안 쇄락의 길을 간다. 중국의 넓은 땅 덩어리를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변방 지역은 중국 본토인과 말이 안 통한다. 그래서 지방의 사람을 뽑아서 그 지역 관리를 시키고 왕의 사람을 만든다. 안록산은 한족이 아니고 변방지역의 거간족의 장군이었는데 왕이 카리스마를 잃으니까 내가 왕보다 못한 게 뭐있어? 라는 생각이 든다. 현종과 그 며느리 양귀비의 나쁜 얘기와 더불어 환관, 양국충이 정치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는 가운데 변방을 지키는 장군들, 절도사가 그들의 세력을 키우고자 해서 당의 골치거리가 되었다. 절도사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외척으로 문제를 일으킬 염려가 없는 환관의 등용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생식기능이 없는 환관들은 그런대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환관의 세력이 안사의 난 이후에 왕을 갈아치우고 독살할 정도로 까지 득세를 하게 된다.

절도사 세력인 안사의 난은 돈없고 권세가 없는 평민들의 지지를 받았는데 150년 후에 일어난 황소의 난 역시 농민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안사의 난 이후 쇠퇴의 길을 가던 당나라가 황소의 난을 격고 초토화가 된다. 황제가 꼭뚝각시가 되고 이 즈음에 난세의 영웅 주전충이 나타나 양나라 후양을 세운다.

3. 백거이 Bai Juyi 772-846
                                  
백거이는 두보, 이백 이후 새대의 시인으로 안사의 난 이후 당말기의 시인이다. 리강의 강변을 끼고 용문석굴이 길게 펼쳐져 있고 백거이의 묘가 그 옆에 있다. 이백 두보의 시보다 더 슬프고 처량하게 세상을 한탄하는 시를 지었다. 백거이는 32살에 관료가 되자 마자 장한가를 지었다. 804년에 지은 이 시는 쓰러져 가는 당왕조를 막아보고 현종과 양귀비에 대한 대중의 비난을 끊어보려는 의도에서 지었지만 백거이의 의도와는 달리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미화하려는 시로  밖에는 안 들렸고 기생과 사람들이 읖조리는 시가 되었다.
 
3. 장한가 The Song of Everlasting Sorrow


장한가는 백거이가 지은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린 시이다. 백거이는 시를 몇천 수 지었는데 다른 시는 잘 알려지지 않고 관료가 되어 세상을 아직 잘 모를 때 지은 장한가가 현재 관광상품이 되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당현종이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양귀비를 데리고 사천성으로 피난을 가지만 양귀비를 죽이라는 요구에 양귀비는 나무에 부딪쳐 자살을 한다. 그 후 환궁을 하지만 황제는 양귀비만을 생각한다.

장한가(長恨歌)-백거이(白居易)

漢皇重色思傾國(한황중색사경국) : 황제 미색을 귀히 여겨 미인을 생각했으나
御宇多年求不得(어우다년구부득) : 천하를 다스린 지 몇 년 지나도 찾지 못했다.
楊家有女初長成(양가유녀초장성) : 양씨 집안에 딸이 있어, 이제 막 성숙하여
養在深閨人未識(양재심규인미식) : 깊숙한 안방에 있어 사람들은 알지도못했다.
天生麗質難自棄(천생려질난자기) : 타고난 아름다운 본능을 스스로 어쩌지못해
一朝選在君王側(일조선재군왕측) : 하루아침에 뽑히어 임금 곁에 있게 되었다.
回眸一笑百媚生(회모일소백미생) : 눈동자 굴리며 한번 웃으면 온갖 교태 생겨
六宮粉黛無顔色(육궁분대무안색) : 육궁의 화장한 미녀들이 얼굴빛을 잃었다.
春寒賜浴華淸池(춘한사욕화청지) : 봄 날씨 쌀쌀하여 화청지에서 목욕하는데
溫泉水滑洗凝脂(온천수골세응지) : 온천물이 미끄러워 살에 낀 기름을 씻는다.
侍兒扶起嬌無力(시아부기교무력) : 예쁘고 가련코 무력하여 시녀들이 부축하여
始是新承恩澤時(시시신승은택시) : 이때에 바로 새로 임금님 은혜를 받게 된다네.
雲鬢花顔金步搖(운빈화안금보요) : 구름머리, 꽃 얼굴, 걸으면 흔들리는 금장식 식물
芙蓉帳暖度春宵(부용장난도춘소) : 연꽃 장식 휘장 속에서 따뜻한 봄밤을 보낸다.
春宵苦短日高起(춘소고단일고기) : 봄밤은 너무 짧아 해가 이미 높이 솟으니
從此君王不早朝(종차군왕부조조) : 이때부터 임금님은 아침 조회에 가지 않았다.
承歡侍宴無閑暇(승환시연무한가) : 기뻐 잔치를 벌임에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
春從春游夜專夜(춘종춘유야전야) : 봄에는 봄 따라 놀고 밤에는 새도록 놀았다.
後宮佳麗三千人(후궁가려삼천인) : 후궁에 미녀가 삼천 명이나 되지만
三千寵愛在一身(삼천총애재일신) : 삼천 미녀의 총애가 오직 한 몸에 머물렀다.
金屋粧成嬌侍夜(금옥장성교시야) : 금빛궁궐에서 화장하고 교태로 황제 모시는 밤 
玉樓宴罷醉和春(옥누연파취화춘) : 옥루의 연회가 마치자 취하여 봄날처럼 따뜻 했다.
姊妹弟兄皆列土(자매제형개렬토) : 형제자매가 모두 봉토를 나누어 받았으니
可憐光彩生門戶(가련광채생문호) : 부러워라, 광채가 가문에 생생하였다.
遂令天下父母心(수령천하부모심) : 마침내 세상의 부모 된 사람들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부중생남중생녀) : 아들 낳는 일보다 딸 낳은 일을 귀하게 여겼다.
驪宮高處入靑雲(려궁고처입청운) : 여궁의 높은 곳으로 푸른 구름 모여들고
仙樂風飄處處聞(선낙풍표처처문) : 신선의 음악이 바람에 날려 곳곳에서 들려 온다.
緩歌慢舞凝絲竹(완가만무응사죽) : 느린 노래, 느린 춤이 악기에 어울려 행해지니
盡日君王看不足(진일군왕간부족) : 종일토록 보아도 황제는 다시 보고 싶어 했다.
漁陽鼙鼓動地來(어양비고동지내) : 어양 땅에서는 전쟁의 북소리가 땅을울리니
驚破霓裳羽衣曲(경파예상우의곡) : 그 놀라움에 예상우의곡도 소리가 끊기었다.
九重城闕煙塵生(구중성궐연진생) : 구궁궁궐에서 전쟁의 연기와 먼지 일어나
千乘萬騎西南行(천승만기서남항) : 수천수만 수레와 말들이 서남으로 피해갔다.
翠華搖搖行復止(취화요요항복지) : 화려한 깃발 흔들거리며 가다가 다시 서며
西出都門百餘里(서출도문백여리) : 서쪽으로 대궐문을 나와 백여 리를 나갔다.
六軍不發無奈何(육군부발무나하) : 모든 군대가 움직이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하나
宛轉蛾眉馬前死(완전아미마전사) : 아름다운 양귀비가 임금 말 앞에 죽는데
花鈿委地無人收(화전위지무인수) : 꽃비녀가 땅에 떨어져도 줍는 사람 없었다.
翠翹金雀玉搔頭(취교금작옥소두) : 취교와 금작과 옥소두 같은 장신구도 버려 졌도다.
君王掩面救不得(군왕엄면구부득) : 임금은 얼굴을 가리려 했으나 어쩔 수가 없어
回看血淚相和流(회간혈누상화류) : 돌아보니, 피눈물이 서로 엉기어 흘러 내렸다.
黃埃散漫風蕭索(황애산만풍소삭) : 누런 흙먼지 흩어져 자욱하고 바람은 스산한데
雲棧縈紆登劍閣(운잔영우등검각) : 구불구불한 잔도를 지나가서 등검각에 올랐 다.
峨嵋山下少人行(아미산하소인항) : 아미산 아래에는 다니는 사람 드물고
旌旗無光日色薄(정기무광일색박) : 깃발들은 빛을 잃고 햇빛도 엷어졌다.
蜀江水碧蜀山靑(촉강수벽촉산청) : 촉 땅의 물빛은 보석 같고 산은 푸른데
聖主朝朝暮暮情(성주조조모모정) : 임금에게는 아침마다 저무는 마음이었다.
行宮見月傷心色(항궁견월상심색) : 행궁에서 보는 달도 상처받은 양귀비 얼굴빛
夜雨聞鈴腸斷聲(야우문령장단성) : 밤비에 들리는 방울소리도 애간장 끊는 소리였다.
天旋地轉廻龍馭(천선지전회용어) : 난리가 평정되어 임금님 수레 돌아오는데
到此躊躇不能去(도차주저부능거) : 여기에 이르러서는 머뭇머뭇 차마 떠나지 못한다.
馬嵬坡下泥土中(마외파하니토중) : 마외역 언덕 아래 진흙 땅 속에서도
不見玉顔空死處(부견옥안공사처) : 옥 같은 얼굴은 보이지 않고, 죽은 곳만 쓸쓸하다
君臣相顧盡沾衣(군신상고진첨의) : 임금과 신하 서로 돌아보니 눈물이 옷을 적시고
東望都門信馬歸(동망도문신마귀) : 동쪽으로 여러 대궐문 바라보며 말 가는 대로 돌아간다.
歸來池苑皆依舊(귀내지원개의구) : 돌아오니 연못과 동산은 옛날과 같고
太液芙蓉未央柳(태액부용미앙류) : 태액의 부용, 미앙궁의 버드나무도 그대로였다.
芙蓉如面柳如眉(부용여면류여미) : 연꽃을 봐도 양귀비 얼굴, 버들을 봐도 양귀비 눈썹
對此如何不淚垂(대차여하부누수) : 이런 정경보고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으 리오.
春風桃李花開日(춘풍도리화개일) : 봄바람에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날이요
秋雨梧桐葉落時(추우오동섭낙시) : 가을비에 오동나무 잎 떨어지는 때이로다.
西宮南內多秋草(서궁남내다추초) : 서궁 남쪽 안에는 가을 풀이 무성하고
落葉滿階紅不掃(낙섭만계홍부소) : 낙엽이 계단에 붉게 가득 쌓여도 쓸지 않는 다.
梨園子弟白發新(이원자제백발신) : 이원의 자제들 이미 늙어 백발이 새롭고
椒房阿監靑娥老(초방아감청아노) : 초방의 태감도 젊은 궁녀도 모두가 늙었구나.
夕殿螢飛思悄然(석전형비사초연) : 저녁 궁궐에 반딧불 나니 양귀비 생각 처량 하고
孤燈挑盡未成眠(고등도진미성면) : 외로운 등불 돋운 심지가 타버려도 잠이 오지 않는다.
遲遲鐘鼓初長夜(지지종고초장야) : 느리고 느린 종소리를 처음으로 길게 느낀 밤
耿耿星河欲曙天(경경성하욕서천) : 밝고 밝은 별과 은하수, 하늘이 밝아오는구나.
鴛鴦瓦冷霜華重(원앙와냉상화중) : 원앙새 장식 기와가 차가워 서리꽃은 더욱 짙고
翡翠衾寒誰與共(비취금한수여공) : 비취빛 찬 이불을 누구와 함께 하나
悠悠生死別經年(유유생사별경년) : 아득한 생사의 이별은 해가 지나가도
魂魄不曾來入夢(혼백부증내입몽) : 그 혼백은 아직 돌아와서 꿈에도 들지 않는다.
臨邛道士鴻都客(임공도사홍도객) : 임공의 도사로서 도성에 머무는 길손 있어
能以精誠致魂魄(능이정성치혼백) : 정성으로 혼백을 불러들일 수 있다고 하는구나.
爲感君王展轉思(위감군왕전전사) : 황제의 잠 못 드는 처지가 가련하여
遂敎方士慇懃覓(수교방사은근멱) : 마침내 방사를 시켜서 은근히 찾아보게 하였다.
排空馭氣奔如電(배공어기분여전) : 구름에 올라 공기를 타니 빠르기가 번개 같아
升天入地求之遍(승천입지구지편) : 하늘에 오르고 땅을 들며 두루 찾아보았다.
上窮碧落下黃泉(상궁벽낙하황천) : 위로는 하늘 끝까지 아래로는 황천까지 찾았으나
兩處茫茫皆不見(양처망망개부견) : 두 곳이 너무 넓어 어디서도 찾아보지 못했다.
忽聞海上有仙山(홀문해상유선산) : 바다 위에 신선이 사는 산이 있다는 말 들었으나
山在虛無縹緲間(산재허무표묘간) : 아득한 사이에 산은 텅 비어 있었다.
樓閣玲瓏五雲起(누각령롱오운기) : 영롱한 누각에 오색구름 피어나고
其中綽約多仙子(기중작약다선자) : 그 안은 아름다운데 선녀들이 많이 있었다.
中有一人字太眞(중유일인자태진) : 그 중에 한 사람 있었으니 이름은 태진인데
雪膚花貌參差是(설부화모삼차시) : 눈 같이 흰 피부, 꽃 같이 고운 얼굴이 양귀비 같았다.
金闕西廂叩玉扃(금궐서상고옥경) : 황금 대궐 서쪽 행랑에서 옥대문을 두드려
轉敎小玉報雙成(전교소옥보쌍성) : 여종인 소옥에게 전하여 쌍성에게 알려 주었다.
聞道漢家天子使(문도한가천자사) : 한나라 황제의 사신이 왔다는 말 전해 듣고
九華帳裏夢魂驚(구화장리몽혼경) : 아홉 겹의 깊은 휘장 속에서 잠자던 혼이 놀랐다.
攬衣推枕起徘徊(남의추침기배회) : 옷을 잡고 베개 밀어 제치고 일어나 배회하다가
珠箔銀屛迤邐開(주박은병이리개) : 주렴과 은병풍이 스르르 열리더니
雲鬢半偏新睡覺(운빈반편신수교) : 구름 같은 머리 반쯤 기운채로 막 잠이 깨어
花冠不整下堂來(화관부정하당내) : 화관도 정제하지 못한 채로 방에서 내려온다.
風吹仙袂飄飄擧(풍취선몌표표거) : 바람이 부니 신녀의 소맷자락이 날리어
猶似霓裳羽衣舞(유사예상우의무) : 예상우의곡으로 춤추는 듯 하였다.
玉容寂寞淚闌干(옥용적막누란간) : 옥 같은 얼굴에 고독이 깃들고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梨花一枝春帶雨(이화일지춘대우) : 배꽃 한 가지가 봄비에 젖은 듯이
含情凝睇謝君王(함정응제사군왕) : 정을 품고 눈물을 머금고 황제께 감사하였다.
一別音容兩渺茫(일별음용량묘망) : 한번 이별 뒤에 아련해진 황제의 음성과 얼굴
昭陽殿裏恩愛絶(소양전리은애절) : 소양전각 안에서의 임금의 은혜 끊어진 뒤로
蓬萊宮中日月長(봉래궁중일월장) : 봉래궁전 안에서의 세월은 길기만 하였습니다.
回頭下望人寰處(회두하망인환처) : 고개 돌려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不見長安見塵霧(부견장안견진무) : 장안은 보이지 않고 티끌과 안개만 자욱합니다.
唯將舊物表深情(유장구물표심정) : 오직 지난날 쓰던 물건 가져다 나의 깊은 정 보이려
鈿合金釵寄將去(전합금채기장거) : 자개함과 금비녀를 부쳐 보내려합니다.
釵留一股合一扇(채류일고합일선) : 비녀 한 개와 함 한 쪽을 증거로 남기려
釵擘黃金合分鈿(채벽황금합분전) : 비녀는 황금을 쪼개고 상자는 자개를 나누었다.
但敎心似金鈿堅(단교심사금전견) : 우리의 마음을 금비녀와 금상자처럼 굳게 가져서
天上人間會相見(천상인간회상견) : 천상과 인간세상에서 서로 만나보려 합니다.
臨別殷勤重寄詞(림별은근중기사) : 떠나려 함에 은근히 거듭 부탁의 말을 하니
詞中有誓兩心知(사중유서량심지) : 말 가운에 서약함이 있으니 마음으로 알리라.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 어느 칠월 칠석 날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야반무인사어시) : 사람 아무도 없는 깊은 밤에 사사로이 나눈 말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련리지) :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었기를 원하였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 높은 하늘도 장구한 땅도 다할 때가 있지만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 이들의 한은 이어져서 끊어질 때가 없으리라

4. Han Huang 한황 723-787 Five Oxen 오우도

 
주은래가 1950년대에 한 편지를 받는데 홍콩경매시장에 오우도가 나오니까 사라는 내용이었다. 8세기 중 후반에 그려졌고 소 5 마리가 움직이며 풀을 뜯는 그림으로 종이 위에 그린 가장 오래된 원본으로 알려져 있다.

Han Huang 한황, Meeting of Scholars in the Garden

 
학자들이 시상을 떠올리는 장면이며 노비는 옆에서 먹을 간다.  당말에 가서 미인도가  없어진다. 황제가 힘이 없어지니 시킬 일도 없고 궁중화가의 일이 줄어든다. 대신에 꽃, 대나무, 동물, 학자들이 새로운 그림의 주제로 나타난다. 원래 있는 장르였으나 이 시기에 확대가 된다.

5. 오대 십국시대 Five Dynasties and Ten Kingdoms Period (907-960) 는 53년을 지탱하다가 960년에 송으로 통일이 된다. Five Dynasties 는 후량, 후당, 후한, 후진, 후주를 뜻하며 Ten Kingdoms 은 오월, 민, 형남, 초, 오, 남당, 남한, 북한, 전촉, 후촉을 말하며 중심세력인 Five Dynasties 의 주변에서 우후죽순처럼 흥하고 망했던 나라들이다. 정신없는 권력다툼의 시기였다.

          Period of Later Liang 후양 907-923                                              Period of Later Chou 후주 951-960 

                           

오대십국시대는 미술사적으로 무척 중요하다. 후진은 거란 khitan 의 강대한 땅을 차지하고 있던 요나라의 위성국가에 지나지 않았으며 요나라가 송, 당 처럼 팽창될 수 없었던 이유는 한족이 거란족의 지배를 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기에 후주에서 송나라로 통일이 된다. 십국의 남당은 양쯔강의 비옥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 지역에서 예술가가 많이 배출되었다.

6. 고광중 Gu Hongzhong, 한희재 야연도 The Night Revels of Han Xizai

 







                    
한희재는 남당시대의 사람인데 난세를 살기 위해서는 줄을 잘 서야 했다. 지금은 남당이지만 곧 망할지도 모르는 일, 남당의 왕이 한희재를 재상으로 쓰겠다고 하나 한희재는 그럴 수 없다고 사양을 했다. 그래서 왕이 고광중을 한희재의 집에 스파이로 보내 자세히 살피게 하고 본 것을 그려오라고 하는데 고광중은 손님으로 가장하고 한희재의 집에 가서 보니 그는 허구헌날 놀기만 하다.

그림은 총 5 장면인데 한희재가 비파연주 듣고 북치고 놀고, 노는 것도 힘든지 침대에서 여종들과 쉬기도 하고 부채를 부치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장면과 끝에는 손님을 배웅하는 그림이다. 고광중이 본 대로 들은 대로 그려서 왕에게 냈더니 왕은 한희재는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이어 남당은 곧 망한다.

장대천은 중국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현대화가인데 1940년대에 북경 시내의 한 창고에 나붙은 공고를 본다. 마을 하나를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인 3000만냥을 가져오면 한희재 야연도 진본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대천은 자신의 재산을 처분해서 이 그림을 산다. 이 시기는 장대천이 중국의 공산주의를 혐오해 중국을 뜰려는 찰나였는데 그림을 중국정부에 기증을 하고 거의 외국에서 산다.

Wang Qingsong 왕칭송, The Night Revels of Lao Li 2000

 
 

현대 중국작가 왕칭송이  한희재 야연도를 parody 해서 사진을 찍어 연결시켜 작품을 내었다. 야연도가 유명한 이유는 기존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반항 defiance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국에서는 정부가 원하는 미슬양식과 비주류인 아방가르드 예술가가 있었는데  한 평론가가 시대의 새로운 미술 아방가르드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권력에 타협하지 않은 한희재와 비슷하다고 보여졌고  왕칭송이 이것을 작품으로 내 놓았다. 

7. Xu Xi 서희 Snowy Bamboo (화조화)

 
오대(907-959) 시대의 화가인 서희의 대나무 그림이다. 화조화는 당말에 나타나서 오대십국시대에 강화가 된다.

Xu Xi 서희 Butterfly and Chinese Wisteria Flowers (화조화)




8. 황전 Hwang Quan, Birds and Fowl among Snow Bamboo (화조화)

 


9. 형호 Jing Hao 910-940, Mount Lu, mid 10th C (하북산수)

 
형호는 난세인 남당시기에 관직을 접고 산에 들어가 살면서 산 그림만을 그렸다. 형호의 Mount Lu 는 하북산수의 시조격인 그림으로 험악한 산세를 표현했다. 그는 태행산에서 살면서 이전에 없던 양식의 새로운 이론서 필법기 Biga Ji 를 만들었다.  필법기에서 형호는 ‘자연경물을 그릴 때는 계절과 시간 및 환경 조건의 변화에 근거하여 묘사해야 하며 자연경물의 정신과 모습을 집중적으로 재현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산수화는 도를 닦는 도구로서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고 보고 난 후 나에게 남은 정신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형호는  산수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계절별, 시간별로 정확하게 보고,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야지 훌륭한 산수화라고 했다. 도가의 그림과 멀어진 듯 하지만 결코 도가와 손을 뗀 것은 아니다. 산에 들어가 살면서 계속해서 본 것을 그려냄으로서 정신을 담아낸다는 이야기이다. 도가의 사상이 여전히 묻어있다.  

루산 Mount Lu , 형호가 그린 Mount Lu 의 실제 사진이다.



태행산, 하북지방
                      

오대십국시대에 하북산수화와 강남산수화로 지역에 따라 그림이 2 파로 나뉜다. 형호는 하북산수의 대표화가이며 하북지방의 태행산에 들어가 살며서 산세가 험악한 산을 위주로 그린다.
         
형호 Jing Hao, Travelers in Snow-covered Mountain (하북산수)

 
눈속에서 사람이 말을 타고 산을 올라간다. 하북산수화를 거비파 산수화 Monumental Landscape Painting 라고 부르는데  웅장한 규모의 산을 scale 있게 위에서 아래로 족자로 나타낸다.  굉장한 scale 의 산을 한눈에 펼쳐진 파노라마 처럼 담아내고 안개, 구름, 하늘을 표현하기 위해 atmospheric effect 를 사용한다. 이것은 레오나도 다빈치가 모나리자에서 사용한 안개 효과와 같은 기법이다. 안개 구름 같은 대기 원근법을 색채가 아닌 수묵으로 담아낸다.

Hanging Scroll Format 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족자이다. 화북산수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족자의 양식을 하고 있으며 한폭에 그림을 다 담아낸다. 하북산수는 산과 바위의 암석이 깍아지른듯 하고 하북지역은 베이찡, 다퉁 지역으로 중국의 Grand Canyon 으로 산이 모여있다. 강남산수화가 주로 그려진 지역은 남쪽의 양쯔강 지역으로 산이 없거나 있어도 동그란 구릉 모양의 산으로 하북산수와 무척 다르다.

10. Guan Tong 관동 906-960, Drinking and Singing at the foot of a Precipitous Mountain (하북산수)

 
10세기의 채색화로서 하북산수 대표 화가인 형호의  제자인 관동이 그린 작품으로 보스톤 박물관이 흥분하면서 구매를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관동의 진작이 아니라 장대천의 위작임이 드러났다. 장대천의 일생에 가장 뛰어난 모작으로 알려져 있다.

11. Li Cheng 이성 919-967 Buddhist Temple in Mountain, 하북산수화


12. Dong Yuan 동원, Dongtian Mountain Hall 동천산당도, 강남산수화

 
 

Dong Yuan 동원, The Xiao and Xiang Rivers 서오강과 샨강, 강남산수화
 
하북산수와는 달리 강남산수가 주로 그려진 곳은 양쯔강, 시안 지역, 상해, 난징 아래쪽으로 산이 구릉처럼 완만하고 나무가 우거지고 물과 맞닿아 있는 산수이다.  

Dong Yuan 동원, Winter Forest Overlapping Sand Banks 강남산수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 족자의 양식이다.

13. 그림양식의 기본 묘법

    구륵법                      백묘법                    몰골법                         감필법

                                                               

구륵법은 먹으로 윤곽선을 그린 후 그 안에 채색을 하는 기법이다. 한희재의 야연도가 이 방식으로 그렸다. 백묘법은 채색없이 먹선의 변화만 그리는 기법으로 오도자의 신선도가 선으로 정교하게 그렸다. 몰골법은 대상의 윤곽선은 그리지 않고 색채나 수묵의 농담만으로 형태를 그리는 것으로 제일 힘든 기법이다. 감필법은 운필을 절제하여 일품으로 내면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선종에서 애용한다.


14. 산수화에 주로 사용되는 준법


                                                 

 

       피마준                             부벽준                              하엽준                              절대준

피마준 (himashun) 일정한 선이 같은 방향으로 반복되는 준법으로 부드러운 산의 표현에 용이한 방법이다. 마의 실오라기를 풀어헤친 모양이다. 형호의 Mount Lu 에서 올기가 풀어지는듯한 같은 선이 반복된다. 우점준은 강남산수인 동원의 초기 산수 Dongtian Mountain Hall 에서 서양화에서 쓰이는 점묘법 pointillism 과 같이 산세들 사이를 대기적인 느낌을 주도록 가는 붓으로 점을 찍었다. 피마법에 점묘법을 합친 양식이다.

부벽준은 도끼로 나무를 찍었을 때 생기는 자국처럼 나타내는 준법으로 화북산수에서 가파른 암벽을 표현할 때 쓴다. 이성의 Buddhist Temple in Mountain 과 관동의 Travel to Guan Shan 이 예가 된다. 하엽준은 연입 줄기와 같은 모양의 선을 사용하는 준법이다. 굵은 큰산과 밑의 작은 산을 표현한다. 절대준은 ㄱ, ㄴ 자를 옆으로 늘어 놓는 준법으로 명청시대에 남종, 북종 산수를 정리하는 사람에 의해 생긴 용어이다.

하북산수와 강남산수는 그리는 모양이 틑린다. 오대십국시대부터 도교의 개념에 전환이 오기 시작했다. 그림의 분위기가 그 시대에 인기있었던 선종 사상에 따라 틀려진다. 돈오의 순간이란 enlightenment 를 의미하는데 무심결에 찰나의 순간에 깨어난다는 의미이다. 강남에는 돈오식의 선종사상이 유행을 했고 하북에는 천천히 단계별로 깨달음이 온다는 점오사상이 인기가 있었다. 학파 school 의 이름이 도교와 불교의 사상과 연관이 되어 하북산수와 강남산수의 이름이 선종의 파벌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하북산수는 정부관리를 하던 형호가 산에 살면서 산을 타고 절에서 수련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강남산수는 한눈에 산세가 다 보인다. 동원의 The Xiao and Xiang Rivers 에서는 내가 보는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지므로 순간의 깨달음이 가능하다.  그러나 하북의 깊은 산중에서는 세상이 눈에 안보이고 전혀 가늠이 안되므로 깨달음은 step by step 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깨달음과 사고방식도 지역적인 특성과 맞물린다. 불교의 선종은 구태여 출가를 하지 않아도 내가 오늘 여기에 살면서 깨달음을 한다는 사상이므로 내가 사는 땅의 다오이즘과 전혀 마찰이 안되고 appeal 이 잘 되어 인기가 있었다. 서양의 종교가 서로를 엄청나게 배척하고 전쟁도 불사하는 것과 비교할 때 불교, 유교, 도교는 충돌없이 융화가 잘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대십국시기 말에 이르러 그동안 지탱해온 막강한 승려제도의 폐단이 나타났다. 승려는 세금면제를 받았기에 가짜 승려 행세를 하는 폐단을 뿌리뽑기 위해 폐불정책을 쓰기에 이르렀고 정책적으로 유교를 끌어들인다. 승려에게 세금을 매기고 절의 불상을 녹여서 주조를 해서 화폐로 쓴다. 후주의 마지막 왕조가 망하고 송나라 조씨 왕조가 들어선다. 

오대십국시대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로  하북화과 강남화의 산수화 구별이 생겨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게 되고  송, 명, 청에 이르러 학파가 생긴다. 산수화가 선종, 불교, 도가와 맞물리게 되는데, 그림 향유계층이 선종, 불교, 도가 사상의 background 가 없으면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산수화가들은 그림 실력을 전문지식으로 가진 자가 아니고 고위 관료들이 종교, 사상, 이념, 지식을 산수로 담아내는 것이었으므로 지식없이는 그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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