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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현종이 사랑한 그림 9/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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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7,563회 작성일 10-09-1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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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회화사  6th hour : Art and Letters at the Court of the Brilliant Emperor 당현종이 사랑한 그림




1. Tang  Dynasty 당나라 618-907

 


Emperor of Tang Dynasty
1. 당고조 이연 618-626
2. 당태종 이세민 626-649 Emperor of Taizong 정관의 치
3. 당고종 이치 649-683 Emperor of Gaezong, 측전무후 Empress Wu / Wu Zetian
4. 당중종 이현 684 Emperor of Zhongzong  왕후 위씨 Empress Wei
5. 당예종 이단 684-690 Emperor of Ruizong
6. 측전무후 690-705 Wu Zeitan
7. 당중종 이현 705-710
8. 당예종 이단 710-712
9. 당현종 이응기 712-756 Emperor of Xuanzong 개원의 치, 양귀비 Yang Guifei
10. 당숙종 이형
11. 당대종 이예
12. 당덕종 이괄

측전무후는 2대 당태종이 궁중의 춤추는 궁녀로 발탁을 했지만 애교가 없고 무뚝뚝하여 당태종과는 잠자리 한번 못하지만 태종의 아들인 3대 고종의 눈에 뜨여 왕후의 자리까지 오른다. 무씨는 똑똑한 첫째 아들을 죽이고 어리석은 3째 아들 이현을 중종으로 왕위에 올려놓고 당고종이 죽은 후 섭정을 한다. 4대 왕 중종은 무능했으나 그의 부인 왕후 위씨가 야망을 드러내자 시어머니 측전무후의 미움을 받아 1년 후 중종이 폐위되고 무씨의 4째 아들이 5대 당예종에 오른다. 측전무후는 정치를 잘 했으며 아들인 4대 5대 왕은 허수아비였다. 드디어 무씨는 6대의 여황제로 등극해 새로운 나라 무주나라를 세우고 15년 동안 정치를 하다가 80세에 죽을 때에 계속 무씨 왕조로 할 것인가. 이씨 왕조로 되돌아 갈 것인가 고민한다. 무씨는 귀양 보냈던 4대 중종을 다시 불러 7대 왕에 오르게 하고 자신은 측전무후의 이름으로 왕후로 남겠다고 한다. 7대 중종이 복위가 되자 21년 동안 변방에서 설욕의 시간을 보냈던 왕후 위씨가 자신도 시어머니 측전무후처럼 위씨가 당나라를 휘어잡는 세상을 갖고 싶어서 딸과 짜고 남편 중종을 독살하고  아들을 8대 예종으로 올린다. 그 틈새에서 발 빠르게 반응하는 이가 있었는데, 중종의 다른 첩의 아들인 9대 현종 이응기가 계모인 위씨부인을 죽이고 할머니 무씨집안를 몰살시키고 여자와 관련된 외척을 제거한다. 8대 예종은 이응기가 무서워 2년만에 왕위를 9대 현종에게 넘긴다.

할머니 측전무후가 정치의 기반을 잘 다져서 현종의 개원의 치가 오래 갈 줄 알았는데 양귀비가 나타나고 755년 안사의 난에 안녹산, 사사명이 쿠데타를 일으킨다.  당현종은 학식과 문예가 깊어 정치를 잘 하였지만 양귀비가 나타난 후 양국충을 등용하고 환관과 양씨 집안 외척들에게 정치를 넘기고 자신은 양귀비와 놀러 다닌다. 여기에 불만을 품고 봉기가 일어나고 당태종은 양국충, 양귀비와 함께 사천성으로 도망을 가지만 양귀비와 양국충을 죽이라는 구데타군의 요구에 양국충을 찢어 죽이고, 양귀비는 자결을 한다. 안사의 난은 8년간이나 계속되고 이때 당나라 인구의 70%를 죽였으니 나라가 쇄락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환관의 부패와 과다한 세금을 걷어 먹고 살기 힘들고 불만에 가득찬 농민은 안사의 난에 가담을 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안녹산과 사사명의 꿈도 집안 내 세력 싸움으로 인해 붕괴된다. 안녹산의 아들이 자신이 황제가 되고자 아버지를 죽이고, 이에 분개한 사사명이 안녹산의 아들을 죽인다. 사사명도 권력에 눈이 어두운 자신의 아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안사의 난은 8년만에 실패로 끝나고 그 이후 당나라는 비실비실 해진다.


2. Emperor of Huizong, Song Dynasty, Attributed Zhang Xuan 장훤 Court Ladies Preparing Newly Woven Silk

 


전성시대 당현종 시절의 궁녀들의 일상과 궁중의 모습이다. 당나라의 장훤이 그렸으나 원본은 없어지고 송나라 휘종이 궁중화가를 시켜 따라서 그리게 했다. 궁중 여인들이 새로 짠 비단을 가지고 놀고 있다. 당현종의 궁녀는 8000명 이었다고 하는데 현종은 그것도 모자라 아들의 처 양귀비를 탐했다.


Zhou Fang 주방 730-800 Ladies Playing Double Six

 
궁녀들이 장기게임을 하고 있다.


Zhou Fang, Beauties Wearing Flowers

 


머리에 꽃을 꼽은 궁녀들이 즐기면서 산책을 한다.


Zhou Fang, Palace Ladies Tuning the Lute

 
궁녀들이 오로지 하는 일은 몸을 꾸미고 즐기는 일이다. 가야금을 뜯고 있다

진나라의 고개지의 여사잠도 이후 오랫만에 여인들이 그림에 등장했다. 여사잠도는 궁의 여인들의 행실을 가르치는 유교적 교훈이 담겨있는 그림인데 반하여 당태종 때의 궁녀의 한가로운 일상의 그림들은 당시 당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준다. 유교적 관점에서 미인을 그려서 감상하면 안 됨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때 미인도라는 장르가 최초로 나온다. 당시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시대상은 당나라가 타락의 시기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준다.


Zhang Xuan 장훤 712-743  Spring Outing of Tang Court 곽국 부인 유춘도

 

 
양귀비는 미인의 첨병이며 언니 곽국부인 조차 예뻤다고 한다. 현종은 유뷰녀인 곽국부인을 궁으로 불러 첩으로 삼았다. 당태종은 안하는 취미 생활이 없었다. 애마가 궁궐에 막 있었고 양귀비와 곽국부인을 태운 그림을 궁중화가에게 그리게 했다. 그림의 색채가 무척 화려하다.


Han Gan 706-783 Night Shining White 750

 
당태종의 치세에는 궁중화가가 힘을 얻었다. 당태종은 애마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고 한간은 말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지 않았다고 당태종에게 혼이 나며 환간은 말의 남겨진 인상과 성정을 표현했다고 대답한다. Night Shining White 은 이후 당나라 시대의 그림에 중요 교두보가 된다.


4. Wu Daozi 오도자 Visit of the Bodhisativa Manjusri to Vimalakirt, A Dunhuang Iconic Mural

  
오도자는 당나라 상인 유마힐 상인이 문수보살을 찾아가는 그림을 둔황석굴의 벽에 그린다.


Wu Daozi 오도자, Eighty Seven Celestials People, 팔십칠신선도, Xu Beihong Museum, Beijing 서비홍기념관

 

도교의 수 많은 신들 중에서 선녀, 옹녀, 호위장군들로 구성된 87명의 신선이 23개의 하늘 위에 있는 세 명의 신을 만나러 가는 행렬이다.  750년 경 양귀비 집안과 안사의 난으로 인해 난세가 오자 자연을 벗하고 산으로 들어가지는 도교 사상이 다시 한번 appeal 하며 당나라 말기에 오도자가 도가에 나오는 신선들이 옥황상제 만나러 가는 그림을 그린다. 백묘법을 사용해 채색이 없이 먹으로만 그리고 먹의 농담도 없다.

위 그림의 세 명의 신은 삼청(Three Pure Ones) 으로서 원시천론(옥황상제 Yuanshi Tianzun), 영보천론, 도덕천론(Laoz 노자)를 가르킨다.

천리장성을 쌓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의 혼란기를 춘추 전국시대라 하며 춘추시대 Spring Autumn Period 와 전국시대Warring States Period 를 합친 말이다. 이 시대에 있었던 백개의 사상을 제자백가 Hundreds Schools of Thought 라 하며 그 중 주류를 이루었던 사상이 법가, 유교, 도교, 묵가이다.

법가 legalism 는 한비 Han Fei (BC 280-233) 가 만들었고 유교 Confucianism 는 공자 Confucius (BC 551-479) 가 시작했으며 도교 Taoism 는 노자 Laozi (BC 6세기)가 창시했고, 묵가 Mohism 는 묵가 Mozi ( BC 470-391)가  시작했다.  도가는 노장 철학 사상이지만 도교(Daoism, Taoism)는 종교로서 노자가 신이 되며 도덕경(Tao Te Ching) 이라는 경전이 있다.

진시황은 기원전 7,8세기의 제자백가 사상 중에 주류 사상인 법가를 선택한다. 법가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이므로 법으로서 다스린다는 사상이다. 진시황 221년에 법가의 책만 빼놓고 다른 사상의 책은 불태우고 사람을 죽이는 분서갱유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팔십칠신선도가 왜 서비홍 기념관에 있게 되었을까? 서비홍은 20세기 중국 화가인데 홍콩대학의 초대로 홍콩에서 전시회 준비를 하던 중 독일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을 때 중국의 그림이 들어있는 3개의 상자를 자신에게 주었는데 그 그림을 한번 봐 달라고 서비홍에게 부탁한다. 그 상자 안에서  팔십칠신선도를 발견한 서비홍은 전시회를 취소하고 전 재산을 털어 그 그림을 산다.  서비홍이 죽은 후에 기념관이 세워지고  팔십칠신선도가 그곳에 소장된다.

5. 한림윤 Han Lim Yuan 은 poetry, classics, alchemy, Buddhism, Taoism, divination, arts, calligraphy, chess 등 각종 분야의 학자와 기록을 모아서 연구 보존하는 곳으로 당현종이 세운 집현전이다. 이백과 두보는 한림원의 학자였는데 두 사람은 판이하게 틀린 인생을 산다.

            이백, Li Bai 701-762                                                          두보, Du Fu 712-770
                                    

이백은 아버지가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오가는 상인이었고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지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놀고 먹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친구들은 주로 몰락한 귀족의 아들이거나 돈은 많은데 머리가 안되는 아이들 이었다. 아쉬운 것 없이 크고 막대한 유산을 받았으나 술먹고 유람이나 다니고 쓰기만 하니까 그 돈이 다 없어진다. 당현종이 이백의 나이 45세 때 불러서 관직을 주지만 이백은 당현종에게도 오만방자하게 굴고 1년 만에 그만두고 두보를 만나서 세상을 돌아 다닌다. 항상 술에 취해 살고 술에 취해 시를 썼던 그는 장강에 비친 달을 꺼내려다 빠져 죽었다고 한다.

두보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가난하게 컸고 꼭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강직한 성격의 두보는 관시(인간 관계)에 능하지 못했고 이백처럼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50살 까지 과거 시험을 보지만 번번히 떨어진다. 어렵게 어찌하여 말단 관직에 나가는데 운도 지지리도 없는 두보는 안사의 난을 경험한다.  산넘고 물건너 그의 험난한 인생처럼 사천성으로 도망을 가지만 수도 장안과 달리 사천성의 농민의 생활은 엉망이었다. 두보의 애들은 먹을 게 없어서 산에서 도토리 줏어먹고  고향에 갔더니 한 아들은 굶어 죽어 있었다. 두보가 꿈꾸는 현실에 대한 열망과 야망은 강한데 눈에 보이는 현실은 시궁창 이었다. 이 때부터 두보는 현실 참여시인이 되어 권력과 욕망의 허무함과 힘든 현실의 고단함을 노래한다.--  ‘부자집에서는 술과 고기 썩는 냄새가 나고 길가에는 얼어 죽는 사람의 시체가 뒹군다.’


6. 
당현종 때 수도를 장안(시안)에서 사천성(쟝뒤)으로 피난을 가서 이전했고 두보초당이 청주, 쓰찬성(Chengdu, Sichuan) 에 있다. 두보초당은 당시에는 허름한 집이었는데 수많은 황제들과 마오까지도 두보를 칭송해 지금은 초당의 수준을 넘어서서 궁궐처럼 확대 팽창이 되었다. 

두보, 봄의 소망(春望)
조정은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요, (國破山河在)
성 안에 봄이 왔으나 초목만 무성하네. (城春草木深)
시대를 슬퍼하니 꽃을 봐도 눈물이요, (感時花淺淚)
이별이 한스러워 새가 울어도 놀라는구나. (恨別鳥驚心)
봉화는 석 달이나 계속 타오르고, (烽火連三月)
집에서 온 편지가 너무나 소중하구나. (家書抵萬金)
흰 머리를 긁으니 자꾸만 짧아져, (白頭搔更短)
이제는 아무리 애써도 비녀조차 못 꽂는구나. (渾欲不勝簪

혼돈 난세의 시기가 오니 오도자의 그림에도 도교사상이 나타나며 두보도 그토록 열망했던 권력의 허무함과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싶어하는 시를 짓는다.

7. 이백, 정야사 靜夜思
床前明月光 머리맡에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 땅에 내린 서리인가.
擧頭望明月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다
低頭思故鄕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두보는 성실, 정직의 깐깐한 노력파이지만 이백은 여유만만한 자세로 온 세상을 돌아 다녔다. 두보는 시 하나 쓰기가 뼈를 깍는 노력이었는데 이백은 술 마시면 시가 그냥  나왔다. 

8. 왕유 王維 Wang Wei (699-759), 죽리관(竹里館)
獨坐幽篁裏,(독좌유황리), 나 홀로 그윽한 대숲에 앉아
彈琴復長嘯.(탄금복장소). 거문고를 타다가 다시 길게 휘파람을 불어본다
深林人不知,(심림인부지), 숲이 깊어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明月來相照.(명월내상조). 밝은 달이 찾아와 서로를 비춘다

안사의 난이 터져 인구의 70%가 죽어 나갈 때 대나무 숲과 숲에 비친 달을 노래한다. 자연이 주는 여유와 한없는 위로에 눈을 돌리는 왕유의 자연시는 자신의 과거 20년의 관직의 삶에 대한 관조이며 자기 성찰의 표현이다. 그는 시를 짓는 것은 형태없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말없는 시를 짓는 것이라 했다. 시를 알아야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며 왕유는 화가와 시인을 따로 구별하지 않았다. 

왕유는 화학비결이라는 그림 이론의 책을 쓰는데 여기에서 수묵화의 이론을 정립한다.  화도지중 수묵 최위상은 ‘그림 중에는 수묵이 최고이다. 먹의 농담을 따라 그리는 것이 화도이며 그림의 이치이다’. 당시대의 청록산수, 금벽산수가 오도자를 만나면서 화려한 색이 빠지고  안사의 난으로 인한 당말기에 왕유로 인해 수묵화의 개념이 정립된다.


9. Zhang Xu 장욱 first half of 8th C, Mad Cursive 광초




황제가 사랑한 서예가 장욱은 미친 초서체 광초를 고안했다.  술을 마시고 광기에 의존해 글씨를 쓴다. 술에 취해서1000편의 시를 쓴 이백에게는 제 정신으로 살 수 있는 새대가 아니었고 두보에게는 내 인생이 우선 힘들었고 조금 먹고 사니까 이젠 세상이 힘이 든다. 


10. Lady Gongsun 공손대랑 Flying Sword

 
장욱은 자기가 광초(狂草)를 창안하게 된 경위를 말할 때 "처음 공주와 짐꾼이 길을 다투는 데서 필법의 뜻을 얻게 되였고 후에 공손씨의 검기를 보면서초서의 진수를 얻게 되였다."고 했다. 공손씨란 두보의 명시 '공손대랑제자의 검무를 보고'에서 말하는 '공손대랑(公孫大娘)'을 말한다. 공손대랑은 당나라 초기 유명한 무용가이며 검무를 집대성한 민간예술인데 8천궁녀 중 춤이 으뜸이였다고 한다.


11. 두보, 관공손대랑제자무검기행병서 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幷序
               
昔有佳人公孫氏, 옛날 아름다운 사람 있었는데  그 이름 '공손'씨이니
一舞劍器動四方。 한 번 춤에 칼과 그릇은 사방에서 요동을 치며
觀者如山色沮喪,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마치 산에 가로막혀 죽은 듯  하고
天地爲之久低昻。 하늘과 땅을 오래도록  오르내리더라.

霍如(舁+囟)射九日落   빠르기는  떠오르는 태양도 십 중 아홉은 쏘아 뜨리는 듯
矯如群帝驂龍翔。        바로잡기를  떼지은 하늘에 용마가 나는 듯 하며
來如雷霆收震怒,        불러내기를  천둥 번개를 잡아 성내며 벼락 치는 듯 하고
罷如江海凝淸光。        마칠 때는  강과 바다가 굳어 맑게 빛나는 형상과 같아라.
絳唇珠袖兩寂寞,        땅이 놀라니  붉은 두 소매 끝은 고요히 적막하고
晩有弟子傳芬芳。        해 저물자 제자의 분주함만 전하며 남아 있다. 

臨潁美人在白帝,        '임영' 아름다운 사람  깨끗한 황제의 나라에 있어
妙舞此曲神揚揚。        신비한 춤과 이르는 곡조는 신들린 듯 날린다
與余問答旣有以,        주며 베풀기를 묻고 답하니 이미 함께 있고
感時撫事增惋傷。        마음에 느껴질 때 어루만져 위로하니 아픔만 더한다.
先帝侍女八千人,        선대 임금을 모셨던  시녀 팔 천 사람 중에
公孫劍器初第一。        '공손'의 '검기' 춤은 바탕이 최고였었는데
五十年間似反掌,        오십 년 가까이 같은 일을 맡아 되풀이하였으니
風塵澒洞昏王室。        먼지 바람(세월) 모여드는 황혼의 왕실이었다
梨園子弟散如烟,        배나무밭 동산에 자제들은  연기처럼 흩어지고
女樂餘姿映寒日。        가무 시녀들만 남겨져  차가운 햇살에 모양을 비춘다.

金粟堆前木已拱,        무성했던 볏짚 쌓인 앞  나무는 이미 한아름인데
瞿塘石城草蕭瑟。        글썽이며 바라보는 돌 집은  쑥 풀만 슬프다
玳筵急管曲復終,        대모의 자리에서  피리 곡조 들려오며 급하게 마치니
樂極哀來月東出。        풍류는 다하여 슬픔으로부터 동녘 달은 오른다
老夫不知其所往,        노인(현종玄宗)은 그의 갈 곳을 알지 못하고
足繭荒山轉愁疾。        티눈 밖힌 발걸음은 거친 산 길에 시름하며 괴로움만 더한다.

장욱은 리백과도 친분이 두터워 둘이 술을 마실 때 리백은 시를 읊고 장욱은 머리채에 먹을 찍어 벽에다 광초로 시를 적었다고 전한다. 장욱의 서예가 공손대랑의 현란한 손놀림과 비교되고 오도자의 그림이 공손대랑의 손사위와 같다는 점은 장르 구분이 없다는 말과 같다. 당나라 때는 시. 그림, 서예, 춤을 다 같은 예술이라고 보았다. 서양에서는 장르 파괴가 20세기에 이루어지는데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8세기에 이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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