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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연 아트노트


 

7세기 인물화 8/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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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5,332회 작성일 10-09-0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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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회화사 4th hour : Figure Painting in the Seventh Century 7세기 인물화


1. Xian 시안, 장안


4-5세기 남북조 시대에는 북쪽에 막고굴, 둔황석굴 등을 지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굴이 인도의 간다라 양식을 거치고 둔황, 다퉁 지역의 silk road 를 통해 중국에 들어와서 토착신앙과 융합이 된 불교가 되었다. 둔황과 원강과 함께 3대 석굴로 뽑히는 용문석굴은 수도가 중원 지역인 뤄양 (낙양)으로 옮기면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2. Longmen Grottoes 용문석굴 Luoyang 493-907, 2345 Caves, 97000 Statuettes




 
400년 동안10만개 불상으로 용문석굴을 지었는데 약탈, 아편전쟁, 문화혁명을 겪었음에도 9만 7천 개가 오늘날 남아있다. 문화혁명 때 머리가 잘려서 두상이 없는 불상이 많다. 당나라의 측천무후 시대에 용문석굴 사업을 주도했고 그로 인해 위의 불상이 측천무후의 얼굴을 닮아있다. 몇쳔 년의 불교 석굴의 진행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 자료이다.

납북조의 불교가 중요한 이유는 북위 때 경전이 한문으로 번역이 되기 시작해서 수당으로 이어져서 유명 경전의 번역작업이 계속되었고, 대승 불교의 확립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3. Sui  Dynasty 수나라 581-618


북위가 서위, 동위로 나뉘고 또 북제, 북주로 갈라지고 581년에 수나라로 통일된다. 수나라는 과도기에 30년을 끌었고 수나라의 기반 위에 당나라는 300년 동안 번성했다. 국가 위기는 무능한 왕으로 시작되고 군사세력은 호시탐탐 노린다. 수나라는 양씨가 세웠는데 결혼으로 양씨 집안 딸이 일단 왕후가 되고 외손자가 태어나니 외할아버지가 섭정을 해서 외척세력으로 세운 나라가 수나라이다. 양견이 수나라 황제가 되고 나서 유교의 기반을 닦고, 과거제도로 정치적으로 훌륭한 인물을 등용한다.

가씨 왕후의 외척으로 진나라가 망한 역사가 있었기에 양견의 부인 독고씨는 양견에게 후궁을 두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게 한다. 독고씨 첫째 아들은 게으르고 여자들과 노는 것을 좋아해서 둘째가 수나라 2대 왕이 된다. 이때 을지문덕 장군과의 살수대첩을 벌이고 고구려를 3차 침입하는 등 내부에 신경을 못 쓰는 가운데 베이찡, 시안, 뤄양까지 잇는 대운하 사업을 시작하니, 국민과 국력이 총 동원 되고, 황제가 뒤늦게 술에 빠지고 민심을 잃게 되는 틈을 타 이씨 당나라 세력이 들고 일어나고 30년 만에 수나라는 망한다.


4. Tang Dynasty 당나라  618-907

 
이세민 당태종은 정치를 잘 한다. 통일 신라, 일본, 토본족, 아프카니스탄 등 주변국이 문화를 배우고, 교역을 위해 당에 정기적으로 사신을 보내고 상인들이 모여서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이 된다.

5. 수당시대의 불교는 양상이 달라진다. 수도가 황화강와 양쯔강 사이의 중원으로 내려 왔으니 멀리 둔황까지 갈 필요가 없고 명산에 절이 지어진다.

Mount Wutai 우타이산 (오대산), 문수보살 Manjusri Bodhisativa
 

도교, 불교적으로 유명한 5개의 명산에 절을 짓는다. 수많은 보살 중의 하나인 문수보살은 지혜의 보살로 사람들이 만나러 우타이산에 간다. 보살의 개념은 대승불교에서만 나타나는데 누구나 다 보살이고 절에 가고 스스로만 다스려도 부다가 된다. 그러나 소승불교는 반드시 출가를 해야 하므로 일반 대중에게 어렵게 느껴진다.

중국의 오악 (5대 명산)
 


6.
다음의 모든 경전은 기원전의 고대 인도에서 쓰여진 수많은 경전 중에 하나인데 인도에서는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있다가 수당에서 꽃을 피웠으며 대승불교의 가지로 자리를 잡는다. 경전은 산스크리스트어로 Sutra 라고 하며 실타래라는 뜻인데 일본, 한국에 영향을 끼친 불교는 전부 수당 시대에 확립이 되었고 더 이상 석굴의 개념의 아니고 명산을 찾아서 절을 짓는다.

유마힐(Vimalakirt) 은 당시대의 돈 많은 상인이며 유마경(Vimalakirti Sutra) 은 유마힐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다.
 
선종 (Zen Buddhism) 의 Zen 은 산스크리스트어로 Dhyana (디하나) 라고 하며 meditation 이란 뜻이다. Zen Buddhism 은 520년 북위의 달마 (Bodhidharma 보리달마)에 의해 소개되고 수당 시기에 자리를 잡는다. 서양에서 인기가 있어 1950-60년대 미국의 예술인들이 심취했고 Fluxus 작가들이 참여했고 백남준의 Zen for Film (1964년) 이란 작품도 있다. 선종의 교파인 조계종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화엄종(Huayan School)의 경전은 화엄경이라 하며 당나라 때 600-700년경에 자리 잡는다. 시처럼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문서화된다. 천태종 (Tiantai) 의 경전은 묘법 연화경 법화경(Lotus Sutra) 이라 하며, 북위 때 부터 번역이 시작되어 수나라 때 자리를 잡는다. 묘법 연화경은 중국과 동아시아 전반에서 가장 인기가 있어 여러 부족 언어로 제일 먼저 번역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때 자리를 잡는다. 반야경의 경전 반야심경(Heart Sutra) 은 당나라의 중 삼광법사가 썼다.

Visit of the  Bodhisativa Manjusri to Vimalakirt, A Dunhuang Iconic Mural
 

둔황의 벽화도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그려진 그림이다. 당시에 인기가 많았던 상인 유마힐을 가르침을 받기 위해 문수보살이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이다. 선종의 사상은 모든 사람이 좌선을 통해 마음 속에 있는 부다를 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유마힐 상인은 출가를 하지 않아도 제가 하면서 수양을 쌓으면 부다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수당시대는 통일의 태평성대였다. 당태종이 왕권을 확고히 해서 풍요로운 시기였고 내가 일하면 먹고 살 만해서 속세를 등지고 구태여 출가를 할 필요가 없다. 내 할 일 하면서 마음을 다스려 부다가 된다는 유마힐 얘기는 당나라 사람들에게 쉽게 appeal 했다.

선종은 절대적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사물, 인간의 본질 essence을 벗어 버리는 ‘공’의 개념이다. 본질은 essence 에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 에 의해 형성된다.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악하기도 선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과 더불어 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부다는 별 것도 아니니까 나도 노력하면 되는 것, 그래서 부다 이미지를 만들 필요가 없었고 대신에 보살상이 수당시기에 많이 생기며 유마힐을 통해 life style 과 마음가짐을 배운다. 소승불교는 출가와 교리가 요구되므로 사람들에게 힘들게 여겨진다.

북조는 불교의 기반이 없었고 남조는 혼란의 시기였으므로 도가사상이 유행했다. 내가 사는 현실하고 안 맞으면 종교를 버리거나 맞게 바꾼다. 대승 불교가 자리잡는 것은 사회적 연관이 크게 작용했고 이에 따라 유명 절이 많이 생긴다.
 

7. Shaolin Monastry 소림사, Song Shan 
 

달마가 선종을 소개시킨 송산이다. 북위, 남북조 시대는 불교의 승려가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화룡접정의 용을 그린 장승요는 그 당시 전업화가가 아니었으므로 그림 그리기를 거절했지만  주지승은 관리직에 있었던 장승요 보다 세력이 컸으므로 일개 주지가 관리를 시켜 그림을 그리게 한다. 그러나 수당 시기에는 승려에게 의지 안해도 참선을 통해 부다가 될 수 있고, 번역된 경전을 집에서 읽을 수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승려 계급이 약화 되었다.

북위 선비족은 가씨 왕후의 외척에 의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병폐를 막기 위해 왕후 정실을 제외하고는 후첩이 아들을 낳으면 첩을 죽이고 아들은 살려 두었지만 배경이 없어진 아들은 힘이 없었다. 수나라 독고왕후도 왕에게 각서를 받는 등 조치를 취했지만 막강한 힘을 가진 당태종은 80명의 아들을 두었어도 그런 걱정은 없었다. 군주의 힘이 막강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나쁘기 마련이고 오늘이라도 죽을 수 있는 파리 목숨의 아들들은 비실비실 해지기 마련이다.

수당 시대에 불교가 번성을 했지만 국가의 기반은 유교에 두었다. 불교는 일반 민중이 마음을 가다듬는데 까지만 역활을 할 뿐 중앙집권적 사회 system 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 했다. 당태종은 문예에 능했으며 카리스마도 있었고 세기의 명필이었고 당나라를 있을 수 있게 만든 왕이었다. 왕권 중심으로 인력 등용의 과거제도를 채택했으며 왕과 신하 관계 및 가부장적 제도를 확고히 해서 강력한 중앙집권 system 을 만들었다. 정관의 치는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연호가 정관(貞觀)이며 그의 치세(治世:626∼649)를 말한다.


8.
당나라 때 향후 송, 명을 이끄는 사상, 이념, 정치, 미술이 전반적으로 닦이며 인물화, 산수화 등 미술의 장르가 구분이 되고 초상화가 발달이 된다. 당태종은 중원 중심의 왕권 강화와 왕권의 정통성을 보이기 위해 궁정화가인 염립본을 시켜 수, 진부터 당대까지의 황제 13명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Yan Liben 염립본 600-673, Thirteen Emperors Scroll, Museum of Fine Arts, Boston


13명의 황제 초상화 족자이다.

Emperor of Yan (양견), Sui Dynasty  
                
   

Portrait of Sun Quan (손권), Emperor of East Wu Dynasty
 

Emperor of Chen 진나라 황제
 

손권과 양무제는 위엄있고 당당하게 그렸는데 진나라 황제는 시종도 한사람 이고 비실비실하게 보인다. 왜 그럴까? 남북조 시대의 마지막 황제로 망할 때 우물에 숨어 있었던 무능한 왕으로서 황제가 다스렸던 왕조의 scale 에 맞게 묘사를 했다.


9. Yan Liben, Xiao Yi Searching for a Masterpiece 
 
당태종이 왕휘지의 난정서를 구하는 장면을 궁정화가인 양리벤이 그렸다. 난정서를 가진 왕희지의 후손이 의자에 앉아 있고 당태종의 명을 비밀리에 받은 관리의 학식과 언변에 설득당해 하인을 시켜 난정서를 내오라고 하고 뒤에서는 차를 끓이고 있는 장면이다. 말단관리가 황제를 만날 일이 없는데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뛰어나고 사람을 적재적소에 쓸 줄 아는 이세민의 성품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10. Yan Liben,  Portraits at Lingyan Pavillion 643년 

Emperor Taizong of Tang


He also painted the Portraits at Lingyan Pavilion, under  commissioned in 643 to commemorate twenty-four of the greatest contributors to Lingyan

정자에 당태종의 24명의 충신을 모아논 series 초상화로서 위징이 대표신하이다. 위징과 당태종은 애증관계에 있었다. 당태종이 매를 너무 좋아해 매를 보고 노는 일로 시간을 뺏기고 있었는데, 하루는 위징이 입실을 하길래 급해서 매를 옷 속에 숨겼다. 워징이 이를 알고서 일부러 시간을 끌어서 매가 질식해서 죽고 말았다. 당태종은 위징이 자신을 너무 간섭하고 잔소리가 심해서 ‘나는 너를 죽이겠다’ 했는데 24명의 충신이 당태종에게 큰 절을 하면서 ‘축하드립니다. 워징이 충언, 직언을 할 수 있음은 황제가 훌륭하다는 증거입니다’ 하였고 이리하여 워징은 살아났다.

워징이 죽었을 때 당태종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사람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아 의관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또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시대의 흐름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모범으로 하여 선악을 판단할 수가 있다. 나는 항상 이 세 개의 거울로 나의 잘못을 고쳐왔다. 이제 위징을 잃었으니 마침내 하나의 거울을 잃어버린 셈이다.


11. Yan Liben,  Emperor of Taizong giving audience to an ambassador of Tibet 641년

 
티벳의 사신, 역관이 당태종을 만나러 온다. 딸을 티벳에 시집보내서 전쟁을 무마시키는 정책을 썼다.


12. Yan Liben,  왕희도    양리벤의 그림에는 삼국시대의 사신의 모습도 있다.


맨 왼쪽이 백제, 가운데 고구려, 오른쪽 맨 끝 신라. 신라사람은 백제, 고구려사람보다 다리가 더 길고, 얼굴이 여성스럽고 어깨가 좁다. 반면 백제, 고구려사람은 팔이 유난히 길고, 다리가 무척 짧고 상체가 듬직한 몽골사람 처럼 보인다.


13. Yan Liben, The Tribute Bearers, detail from a hand scroll, Taipei, Taiwan

  
당시대에는 사신들 그림이 많다. 조공 온 사신들과 각국에서 몰려온  상인들이 코끼리 상아, 분재, 이상한 짐승 등 여러 재미있는 것을 들고 있다. 양리밴의 그림에서 당시대의 사회상 역사상을 읽을 수 있다. 당태종의 강력한 왕권 확립과 집권, 당태종의 사람 됨됨이와 인품이 나타나고, 당이 동남아시아 무역의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14. 당현종이 며느리 양귀비에 빠지면서 세상이 힘들어진다. 당말에 나타난 두보와 이태백 시인이 더러운 세상 등지고 산으로 간다는 시를 쓰며 도교가 주춤 고개를 든다. 그림도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그림과 시가 시대를 거슬러도  여전히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지 않는 그림은 안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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