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이미지 8/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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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360회 작성일 10-08-27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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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회화사 3rd hour : The Image of the Buddha 부처의 이미지
1. 암중모색 (暗中摸索)
어둠 속에서 손더듬으로 물건을 찾는다는 뜻으로서, 어림으로 일을 추측하는 것을 가리키며 '암색'이라고도 한다.
당(唐)나라 때 허경종(許敬宗)은 퍽 경솔한 사람으로서 누구를 만나 통성명한 다음에는 곧잘 그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곤 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비난하자 허경덕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에 득실거리는 저 사람들의 이름을 다 외우기란 좀체로 어려운 일이 아니요, 그것이 만일 조식 (曹植) 이라든가 사영운(謝靈運)같은 대문장가들과 만난다면 암중모색 (暗中摸索) 으로라도 알아낼 수 있지만 말이요."
1. 암중모색 (暗中摸索)
어둠 속에서 손더듬으로 물건을 찾는다는 뜻으로서, 어림으로 일을 추측하는 것을 가리키며 '암색'이라고도 한다.
당(唐)나라 때 허경종(許敬宗)은 퍽 경솔한 사람으로서 누구를 만나 통성명한 다음에는 곧잘 그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리곤 했다. 어떤 사람이 이것을 비난하자 허경덕은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에 득실거리는 저 사람들의 이름을 다 외우기란 좀체로 어려운 일이 아니요, 그것이 만일 조식 (曹植) 이라든가 사영운(謝靈運)같은 대문장가들과 만난다면 암중모색 (暗中摸索) 으로라도 알아낼 수 있지만 말이요."
2. 사영운 ( Xie Lingyun 385-433) 은 중국 동진, 송(宋)의 시인으로 사미를 말했는데 도가사상이 나타나 있다. 사미는 좋은 철에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 즐거워 하는 마음으로 유쾌하게 노는 네가지 일을 의미한다.
3. 화룡점정은 불교 용어인데 다음의 일화에서 생겨났다. 안락사(安樂寺)의 주지 증지가 장승요(張僧繇)를 찾아와서 안락사 벽에다 용 두마리를 그려 주십사 부탁했다. 증지가 그토록 부탁하는데도 장승요의 반응은 단호했다. “싫소이다! 그림이 제 전문이 아닌고로 결코 사찰의 벽면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소이다!” 장승요가 그토록 완강하게 사양하는데도 증지가 여전히 자신만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양무제 소연은 재위 만년에 이르러 불문에 귀의하고 부터는 사찰의 주지쯤 되면 그 누리는 권력이 황족이나 호족과 맞먹었다. 안락사 주지가 황제의 비호를 이유로 장승요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원인도 태수인 장승요보다 그 누리는 권세가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증지가 안락사의 벽에 용을 그리라는 황제폐하의 어명을 받아왔기에 장승요는 어쩔 수 없어 주지승을 따라 남경에 있는 안락사로 갔다. 장승요는 목욕재계한 뒤 금새라도 곧 하늘로 날라 오를 듯한 두마리의 용을 그렸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던 주지승이 장승요에게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용의 눈동자를 혹시 빠뜨리고 그리시지 않았나 해서요.”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소.” “용을 그리는데 눈동자를 그려넣게 (畵龍點睛) 되면 용이 당장 벽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가버릴 것이오.” “농담도 심하십니다” “그렇다면 눈동자를 그려 넣어서 용이 살아 날아간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시지요.” 어디까지나 농담인 줄 알고 주지승은 눈동자를 그려 달라고 부득부득 졸랐다.
장승요는 붓을 들어 용의 눈에 획하고 점을 찍었다. 그러자 벽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한 마리의 용이 튀어나와 비늘을 번득이며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주지승은 기절할 지경으로 놀랐다. “내가 뭐랬소. 결국 한 마리의 용을 날려보낸 건 당신 탓이오. 내 책임이 아니란 얘기요.” 장승요는 입을 딱 벌린 채 얼이 빠져 있는 주지승 증지를 뒤에 두고 바쁘게 자리를 떴다.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 한마리만 외롭게 벽에 붙어 있었다. 화룡점정은 무언가 일을 마무리를 짓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장승요 (양나라 사람), Traditionally Attributed to Zhang Sengyou
The Five Planets and the 28 Lunar Mansions, Northern Song 960-1126
4. Siddartha Gautama BC 6th century, Sakyamuni 석가모니, Sage of Shakyas
장승요는 붓을 들어 용의 눈에 획하고 점을 찍었다. 그러자 벽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한 마리의 용이 튀어나와 비늘을 번득이며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주지승은 기절할 지경으로 놀랐다. “내가 뭐랬소. 결국 한 마리의 용을 날려보낸 건 당신 탓이오. 내 책임이 아니란 얘기요.” 장승요는 입을 딱 벌린 채 얼이 빠져 있는 주지승 증지를 뒤에 두고 바쁘게 자리를 떴다.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 한마리만 외롭게 벽에 붙어 있었다. 화룡점정은 무언가 일을 마무리를 짓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장승요 (양나라 사람), Traditionally Attributed to Zhang Sengyou
The Five Planets and the 28 Lunar Mansions, Northern Song 960-1126

4. Siddartha Gautama BC 6th century, Sakyamuni 석가모니, Sage of Shakyas

인도미술의 영향을 받아 4-6세기의 중국 북조의 불교미술은 요즘 우리의 눈에 익은 부처의 모습이 아니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였으므로 인도의 간다라 양식을 본딴 모습을 하고 있다. 부처의 원래 이름은 싯다르타 고타마이며, BC 6세기 사람으로 고타마 왕족의 왕자로 왕궁에서만 살다가 밖의 사람들이 힘들게 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출가하여 10년 고행 끝에 열반하여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불교용어인 산스크리스트어로 부처를 Sakyamuni 사크야무니라고 하는데 중국어로 번역한 것을 한국말로 읽어서 석가모니라 한다. 사크야무니, 석가모니는 같은 뜻으로 불처, 미륵보살이란 의미이다. Sakyamuni 는 Sage of Shakyas 석가 왕족의 현인이란 뜻으로 석가모니를 가르킨다.
실제로 부처를 본 사람은 없다. 인도 불교에서는 부처가 되기 이전의 일생을 다루는 작품이 대부분이며 2-3세기의 인도 미술인 간다라 양식에 따라 도상이 정해져 있다. 간다라 양식의 영향을 받은 대승불교가 고스란히 중국으로 넘어와 토착화 과정에서 도가사상과 결합하고 미륵보살 사상이 되였다. 원래 대승불교의 핵심은 수양과 고행을 통해 인간이 부처가 되는 것인데 당시의 중국에서는 현세가 너무 힘들어 자기 수양이 도저히 안 되므로 부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미래부처의 미륵보살 사상으로 정착화 되었고 미륵보살은 대승불교의 또 다른 가지로 볼 수 있다.
5. The birth of Siddharta, Gandhora, 2-3 Century, Zen Youmitsa Temple, Tokyo

싯타르타가 어머니의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탄생하고 있다. 아이가 없어서 고민하던 중 하얀 코끼리 꿈을 꾸고 수태를 하게 된 왕비가 친정으로 출산을 하러 가다가 보리수 밑에서 싯타르타를 낳는다. 인도불교에서는 이 탄생설화를 motive 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며 하나의 신화로 여겨진다. 싯타르타가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이 ‘천상천하유아독존’ (모든 것이 나하기에 달려있다) 이라고 한다. 이슬람 문명과 힌두교가 나타나서 인도의 불교를 밀어냈고 현재 인도의 대부분은 이슬람교이며 소수의 최하층만이 아직도 불교를 믿으며 출가 전의 부처의 last name 이었던 고타마 성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살고 있다. 인도의 불교가 넘어와 중, 일, 한에서 대승불교가 되고 미얀마, 동남아에서는 소승불교가 되었다.
6. Pensive Bodhisattva, commonly believed to be of Mattreya, the future Buddha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6-7 세기, National Museum of Korea

Bodhisattva 는 보살이란 의미이며 관세음보살은 Avalokitesvara 이며, 미륵보살은 Maitreya 라고 하며 미래보살이란 뜻이다. Buddha는 Awakened one, The Enlightened one 이란 뜻으로 깨어난 자, 계몽된 자를 의미하며 Shakyamuri 석가모니 Buddha 는 다 같은 뜻이다. 싯타르타는 열반에 올라 제일 먼저 부다가 된 인간이며 보살이란 부처가 되기 전에 수행하는 사람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 사유상은 반가부좌를 하면서 생각하고 있는 미륵보살이며 한국에서 많이 보인다.
대승불교가 중, 일, 한으로 넘어와 토착사상과 합해져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가 되었으며, 미얀마, 태국 쪽은 소승불교라고 한다. 대승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윤회의 큰 수레바퀴라는 뜻이며 소승은 작은 수레바퀴이다. 원래 인도의 대승불교는 수양을 통해 집착, 욕망을 내려놓고 득도하여 내가 부다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인데 중, 한, 일에 토착화된 불교에서는 부처는 내가 소원을 비는 대상이며 빌어서 소원 성취를 하고자 했다. 대승불교의 부처는 원래 비는 대상이 아닌데 중, 한 일의 토착 사상인 샤마니즘, 애니미즘과 융합되어 오늘날의 불교가 되었다.
7. Southern and Northern Dynasty
Southern Dynasty 남조
1. Eastern Jin (동진, 317-420)
2. Liu Song Dynasty (송, 420-479)
3. Southern Qi Dynasty (제, 479-502)
4. Liang Dynasty (양, 502-557)
5. Chen Dynasty (진, 557-589)
Southern Dynasty 남조
1. Eastern Jin (동진, 317-420)
2. Liu Song Dynasty (송, 420-479)
3. Southern Qi Dynasty (제, 479-502)
4. Liang Dynasty (양, 502-557)
5. Chen Dynasty (진, 557-589)
Northern Dynasty 북조
1. 북위Northern Wei 386-534 동진이 망하면서 흉노족인 선비족 북쪽에 세운 나라, 탁발씨 가문
2. 동위Eastern Wei 534-550 삼국지 위나라에 조공하던 나라
3. 서위Western Wei 535-556 위나라를 계승한 나라
4. 북제Northern Qi 550-577
5. 북주Northern Zhou 556-581
1. 북위Northern Wei 386-534 동진이 망하면서 흉노족인 선비족 북쪽에 세운 나라, 탁발씨 가문
2. 동위Eastern Wei 534-550 삼국지 위나라에 조공하던 나라
3. 서위Western Wei 535-556 위나라를 계승한 나라
4. 북제Northern Qi 550-577
5. 북주Northern Zhou 556-581
Northern Wei map, 5-6세기 지도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Sui Dynasty 수나라가 통일한다 (581-618)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Sui Dynasty 수나라가 통일한다 (581-618)
남북조 육조 시대에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도교, 불교가 자리를 잡고 도연명, 고개지, 왕희지, 장승요 등의 시서화 문화가 꽃핀다. 그러나 북조의 북위를 세운 흉노족인 선비족은 한족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들은 몽골족으로 유목민족으로서 사막의 거친 기질을 가졌으므로 새로운 왕조를 끌고 갈 세계관으로 귀족적인 도가사상보다는 불교를 끌었다. 처음에는 불교를 수용했지만 승려의 세력이 커지자 패불정책을 쓰고 도교를 받아들이다가, 도교의 힘이 커지면 또 불교를 수용하는 등 왔다 갔다 하는 정책을 썼다.
8. 북위 미륵보살상 Northern Wei Maitreya, 443, Tokyo National Museum 당나라 불상


간다라 미술에서 막 넘어온 북위시대의 미륵보살은 갑옷 군인의 투박한 인상이지만 몇 백년 후의 당나라 불상은 가부좌를 튼 부드러운 인상이다.
9. Buddhas of Bamyan, 6th C, Bamyan, Afghanistan


인도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에 불상도상이 세워지고 중국의 북위에 들어왔다. 외부에 석굴과 불상을 파 놓았다.

아프가니스탄 바미얀불상은 2001년에 폭파되어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10. 병령협, 황하강, 란저우 장쑤성

란저우의 시골지역 병령협에 가면 16 Kilometer 의 협곡을 끼고 183개의 동굴 안에 694의 석불상과 82개의 clay sculpture 의 Bingling Temple 이 있다.
Lanzhou 란저우


란저우 지역은 돈황, 바퉁과 가까이 있는 북쪽으로 황하강이 가로 지른다. 란저우 밑이 중원인 낙양, 난정 지역이다.
Bingling Temple, 420 년, 183 caves, 694 stone statues

Great Maitreya Buddha 대미륵부처
미륵부처는 실제로 인도에서는 없는 이야기이지만 중국, 한국으로 넘어와서 중요한 이야기가 되었고, Bingling Temple 은 420년에 시작하여 1000년이 넘게 걸린 사업이다. 당나라의 측전무후 시대에 적극 후원하여 사업이 융성해졌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불은 그냥 서있는 불상인데 중국으로 넘어와서 앉아있는 모습의 미래부처의 미륵사상으로 변했다.

미륵부처는 실제로 인도에서는 없는 이야기이지만 중국, 한국으로 넘어와서 중요한 이야기가 되었고, Bingling Temple 은 420년에 시작하여 1000년이 넘게 걸린 사업이다. 당나라의 측전무후 시대에 적극 후원하여 사업이 융성해졌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석불은 그냥 서있는 불상인데 중국으로 넘어와서 앉아있는 모습의 미래부처의 미륵사상으로 변했다.
11. Donhuang Caves 둔황석굴, Mogao Caves 모가오 석굴 355-14th C


란저우의 북쪽 둔황의 모래산인 명사산에 550개의 동굴을 파고 그 안에 몇 백개의 석불을 세워 놓았다. 타클라마칸 사막 주변에 붙어있는 둔황은 18-19세기에도 란저우에서 기차를 타고 하루종일 가야되는 찾아 가기가 힘든 곳이다. 그런데 5-6세기에 그 척박한 지역에 무슨 이유로 몇 백개의 석불을 세웠을까? 둔황석굴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여기가 바로 Silk Road 비단길 이었고 19세기에 인적이 뜸해진 둔황의 문화유산을 영국과 일본이 약탈한다.
Silk Road

실크로드의 동쪽 끝, 중국에서 향하면 서쪽 끝에 위치한 간쑤성에 오아시스 도시인 둔황(敦煌)이 있다. 고대 수많은 상인과 승려가 서역을 오갔던 이 실크로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래서 오아시스 도시에 그들의 무사안녕의 기원을 담아 불상을 모신 석굴사원이 만들어졌다. 소규모로 한 개씩 지어지던 것이 모여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사원으로 발전했다. 그 중의 하나가 실크로드의 동쪽 끝에 있는 둔황 석굴사원이다

중국과 서역을 넘나드는 상인들은 무사하게 갔다 오도록 미륵불에 빌어야 했다. 산적들에게 소리 소문 없이 죽을 수도 있는 여정, 그래서 그토록 많은 불상을 만들어 세웠다. 서역 아프카니스탄 상인들은 작은 불상을 지니고 다녔다. 그들의 불교사상은 부처가 내 맘 안에 있으니까 따로 숭배할 idol 이 필요없었다. 그런데 북위 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불상을 보고 크게 만들어서 세운 것이 돈황석굴, 원강석굴이며 비단길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1000년이 넘게 걸린 이 명사산 지역은 1900년대에는 더 이상 Silk Road 로 이용되지 않았고 차츰 잊혀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관리가 혼자서 지키다가 점검의 차원으로 한 불상이 있는 벽을 두들기다가 공명을 들었고 벽이 무너지면서 불교경전, 신스크리스트어 고대 불교 경전,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 등 4만개의 고서가 발견되었다. 당시 19세기에 중국정부는 외세 열강에 휘둘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그 새를 틈타 영국이 약간의 돈을 지불하고 다 가져가서 현재 대부분의 고서는 영국 대영 박물관에 가 있다. 일본, 프랑스가 또한 재빨리 와서 자료조사의 명분을 내새워 남은 것을 갈라 가진다. 남의 나라를 갈취할 때는 역사적 문화적 배경의 정당화를 위한 문화사업을 많이 벌인다. 일본은 중국에서 발굴산업에 투자를 많이 했고 ‘중국과 일본이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다’ 라고 발표를 하고 조사 연구를 위해 그 많은 자료를 일본에 가져갔다. 모래재질로 된 명사산의 둔황석굴 역시 일본이 막 뜯어갔다. 현재 중국미술의 대가는 일본인이다. 중국미술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영국에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뒤늦게 이를 깨달은 중국정부, ‘이게 아닌데’ 하고 소수를 북경에 보존했는데 그나마 문화대혁명 때 유교, 불교 서적을 다 불사르고 전혀 남아있지 않다. 주은래가 은밀하게 보존한 둔황석굴의 벽화인 장건의 서역 여행이 남아 있다.
Travel of Zhang Quian to West Mogao Caves 618-712, 장건(-114년BC)의 서역 여행

기원전 139년에 장건을 서역으로 특파한 것을 계기로 처음 서양의 이야기가 중국 역사 기록에 오르게 됐다.
Flying apsaras are divine dancers and musicians who serve and protect the Buddha

인도미술에는 비천이라는 하늘을 나르는 여자의 도상이 있는데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여자의 날개가 옷으로 바뀌고 날라가면서 춤을 추는 도상으로 바뀐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의 불상을 보여준다.

인도미술에는 비천이라는 하늘을 나르는 여자의 도상이 있는데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여자의 날개가 옷으로 바뀌고 날라가면서 춤을 추는 도상으로 바뀐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의 불상을 보여준다.
시비왕본생도(尸毘王本生圖) 북위시대 석굴 254굴, 둔황 석굴사원

둔황 막고굴 237굴의 유마경변상도 벽화에서 발견된 ‘조우관을 쓴 신라인’

실크로드의 관문인 중국 둔황 막고굴에서 1000여년 전 삼국시대 사람으로 보이는 ‘조우관을 쓴 한국인’ 벽화가 새로 발견됐다. 조우관은 깃털을 모자에 두 개씩 꽂은 것으로,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고구려 백제 신라인만의 독특한 관모 형태이다. 일본이 이 벽화를 뜯어와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팔았고 허겁지겁 조선을 떠나면서 남기고 간 것으로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있다.
12. 다퉁 Datong, Shanxi 북위 386-534 선비족 Xianbei


원강석굴, Yangang Grottoes, 460- 494, 252 Grottoes more than 51000 Buddha Status and Statuettes

Ceiling Painting, Yangang Grottoes


인도간다라 불상
인도 간다라에서 온 불상으로 꼽슬머리와 콧수염이 있다. 부처가 이질감 느껴지는 인도 사람 이미지이다. 인도의 상류층 남자의 성인머리 스타일로서 싯타르타의 머리 스타일이다. 가사를 옆으로 걸치고 넘겼으며 예전의 갑옷복장의 투박한 불상에 비해서 부처의 옷이 유려정치(물결치듯 아름답고 정밀하고 치밀함) 하다


인도간다라 불상

인도 간다라에서 온 불상으로 꼽슬머리와 콧수염이 있다. 부처가 이질감 느껴지는 인도 사람 이미지이다. 인도의 상류층 남자의 성인머리 스타일로서 싯타르타의 머리 스타일이다. 가사를 옆으로 걸치고 넘겼으며 예전의 갑옷복장의 투박한 불상에 비해서 부처의 옷이 유려정치(물결치듯 아름답고 정밀하고 치밀함) 하다
운강석굴 20동 본존선정불좌상
인도 불상과 머리 스타일은 같지만 귀가 거대하고 당시 북위를 다스리던 선비족 탁발씨 왕들과 집안 선조들의 여러 얼굴을 모델로 삼아 그로토 동굴의 부처상을 만들었다. 북위는 운강 석굴을 만드는 국가적 사업을 위해 새로운 system 을 만들었다. 선비족의 지배를 받는 다른 종족에게 조공으로 쌀을 걷고 범죄자를 여기로 보내 석굴을 만들게 하고 조공으로 걷은 쌀을 그들에게 먹였다. 나중의 수 당나라의 불처 이미지가 북위시대에 형성되었다.

인도 불상과 머리 스타일은 같지만 귀가 거대하고 당시 북위를 다스리던 선비족 탁발씨 왕들과 집안 선조들의 여러 얼굴을 모델로 삼아 그로토 동굴의 부처상을 만들었다. 북위는 운강 석굴을 만드는 국가적 사업을 위해 새로운 system 을 만들었다. 선비족의 지배를 받는 다른 종족에게 조공으로 쌀을 걷고 범죄자를 여기로 보내 석굴을 만들게 하고 조공으로 걷은 쌀을 그들에게 먹였다. 나중의 수 당나라의 불처 이미지가 북위시대에 형성되었다.
19세기에 이르러 돈황석굴과 원강석굴은 일본, 영국, 프랑스에게 약탈을 많이 당했다. 중국인들에게는 불교와 도교는 신앙의 대상이지 공부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외국 열강들에게는 그들의 불교가 신기했고 궁금하니까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모든 공부의 용어와 frame 은 불교라는 종교를 연구한 외국인의 서구적 시각에서 설명이 된다. 외국인들에게는 불교와 도가가 하나의 샤마니즘처럼 보였다. 북조의 위나라에서 불교가 자리를 잡을 때 남조에서는 도가사상이 물밀듯이 물결을 치고 있었다. 유럽인들은 ‘왜 중국인들에게는 하느님이 없을까?’ 를 질문했고 그들의 문화유산을 자신의 나라에 가져가서 중국인의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3. The Great Wall of China

BC 208년 북조 시대 때 제나라에 의해 처음 착공된 후 고대 진(시황제)때에 완공되어 왕조별로 내려오면서 확장 및 보수를 계속한다.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북쪽 지역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는 지역이라 석불이 있었고 만리장성을 쌓았다. 후대에 와서 잊혀진 지역이 되자 Imperialism 에 눈을 빨리 뜬 외국이 와서 그냥 가져가는 수준의 약탈이 이루어졌고 중국미술에 관한 모든 knowledge 는 영국과 일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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