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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접근하는 방식(1), 형식주의, 페미니즘, 맑시즘 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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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4,718회 작성일 10-08-14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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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Invitation to Mordern/Comtemporary Art

1st hour:Approaches to Art in Art History(1)/
formalism, feminism, Marxism
       
모던 아트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나타났으며, 미술사는 2차 대전 전까지는 유럽 예술의 역사이며, 2차 대전 후에는 미국이 예술의 중심이 되며, 다른 지역의 사조도 함께 부각이 된다. 미술사는 철학의 가지인 미학의 일부로 존재 하다가 19세기에 비로소 학문으로 정립 되었다. 미술 작품을 보는 방식, 해석하는 방식을 methodology 라고 한다.


John Ruskin (1819-1900) 
 

J. M.W. Turner, Slave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 Typhoon Coming on, 1840
 
죤 러스킨은 영국의 평론가이자 시인 소설가인데 터너의 Slave Ship을 reading passage 로 자세히 묘사했다. 러스킨은 글과 그림이 결코 일치할 수 없으므로 자신의 글이 아무리 그림을 자세히 묘사했다 하더라도 text 만을 읽고는 터너의 노예선을 그려낼 수가 없다고 했다. 말과 글이 등과시 될 수가 없는데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그림이 글보다 미천하다는 취급을 받아 왔으며 말을 가지고 하는 정치 역시 위대하고 지적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림은 손재주 취급을 받았으며 사물을 똑같이 그려내기만 하면 되었다. 센느 강변을 아무리 잘 그려도 technician 에 지나지 않았다. 실체에 대한 모방 (미메시스mimesis) 과  기술(technique)이 합쳐진 것이 예술이라는 고정적인 정의가 오랜 세월을 내려왔고 아무리 잘 그려도 실제의 대상보다 떨어지는 미천한 취급을 받아왔다.

Raphael (Raffaello Sanzio) The School of Athens 1509, Fresco, Vatican City, Apostolic Palace




 
Plato 는 모든 것의 기본은 이데아(생각)이라 했으며 눈에 보이는 것은 환영 (illusion) 이라고 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물병도 실체가 아닌 illusion 이며 illusion 을 모방한 그림은 double mimesis 로서 더욱 비천하다고 했다. The School of Athens 에서 위로 향한 플라토의 손은 하늘 높은 곳에 있는 essence 를 의미한다. 한편 Aristotle 은 미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라고 했다. 아래를 가르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미와 선이 현세에 있으며 우리가 사는 공간이 중요함을 나타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술이 결코 double mimesis가 아니며 미술의 역활은 세상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살짝 끼어들어 대화를 나누는 것 이라고 했다.   

17,18세기 까지 미술은 모방 수단이자 매개체로 여겨졌으며 아무리 모방을 잘 해도 미술에 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모방을 잘 할까’ 하는 사고방식이 1000년을 이어져 왔다. 예술가가 평면 위에서 3차원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과학자 수학자가 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19세기 말부터 3차원 세계의 표현에 관심이 없어진다. 똑똑한 천재 화가가 나타나서 질문을 던진다. ‘미술이 왜 그래야 해?’  Cezanne 세잔이 기존 방식을 전복시키면서 modernism 의 포문을 연다. 20세기 미술관의 방에 가면 세잔의 그림부터 시작한다.


Rene Magritte, The Treachery of Images, 1928


말, 글, 이미지에 대해 말한다. Plato 는 미술이 뮈메시스, 환영, 이미지 라고 했다. 프랑스 작가인 레네 마그리트이미지의 반역이란 제목을 가지고 This is not a pipe 라고 말한다. 그렇다. 엄밀히 말하면 파이프의 이미지이지 파이프 자체는 아니다. 말과 이미지 간에 사람이 착각하는 것을 가지고 puzzle 장난을 치고 있다. 사람들은 몇 천년 동안 말과 이미지를 실제의 object 와 동일시 해 왔다. 그런데   20세기를 넘어서는 말과 이미지를 등과하는 것이 더 이상 재미있는 게임이 아니게 되었다. 이미지, 말, 실제를 등과시 했을 때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인생을 사는데 문제가 생김을 피카소가 지적했고 백남준이 지적을 했다. 왜 그럴까?  20세기 양차 대전을 겪고도 전쟁은 아직도 계속된다. 우리는 미디어의 말이나 글, 이미지를 통해 동시대적 경험을 한다. 신문, 사진  TV 를 통해 마치 내가 경험한 양 착각을 한다. 1910년에 피카소는 나에게 주어지는 이미지를 아무 비판없이 받아들여 사실과 혼동을 하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문제가 됨을 소름 끼치도록 경고를 하였다.

Constantin Brancusi, Bird in Space, 1941
 

Edward Steichen 1879-1973
 

Gertrude Vanderbilt Whitney 1875-1942
 
불가리아 태생의 콘스탄틴 브랑쿠지의 작품  Bird in Space 에드워드 스타이큰이 사진을 찍어서 뉴욕에서 291 갤러리를 소유하고 있는 Alfred Stieglitz 에게 보여주려고 가져 오는데 공항에서 세관원에게 걸린다. 부엌 utensil 로 보고 관세를 내라는 것이다. 예술 작품에는 관세가 없는데 새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들에게는 새로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새예요? 거짓말, 주방용품인데요’ 1941년 당시 미국에서는 아직 아무도 이것을 미술품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이 '미술은 모방' 이라는 플라톤적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유럽의 모던아트에서는 공간 속에서 새가 획 날아가는 정수를 잡아서 표현을 했다. 끝내 법정 소송으로 까지 번지고 위트니 뮤지엄 집안으로 시집 온의 밴더빌트가의 딸, 거투르드가 그 막대한 비용을  대고 결국 소송에서 새라고 판결이 난다. 불과 20세기 중반에 있었던 일이다.

Diego Velazquez, The Spinners or the Fable of Arachne 1644-1648
 
스페인의 궁정화가인 디에고 벨라퀴에즈는 17세기의 바로크 미술을 나타내며 제우스신이 소로 변신한 metamorphosis 를 보여준다. 직조 textile 을 뛰어나게 잘 하는 아라크네는 사람들의 칭찬에 자부심으로 꽉 차 있었다. 전쟁과 지혜, 직조의 여신 아테네는 신의 권위에 감히 도전을 하는 아라크네를 괘씸하게 여겨 대결을 신청한다. 아라크네는 신이 소로 변하여 인간 여자를 능욕하는 에피소드를 직조하는데 신이 욕망을 못 참고 인간의 영역을 넘본다는 내용이다. 아테네 여신은 신에게 불복종한 인간이 벌을 받고 죽는 내용을 뜨는데 사람들은 아라크네가 조금 더 잘 떴다고 말한다. 아테네 여신은 ‘네가 평생 직조를 잘하게 도와 주겠다’  하면서 아라크네를 거미로 변형시킨다.

벨라퀴에즈는 이 그림을 통해 미술에 관한 당시 사람들의 통념을 깨뜨리고 있다. 아라크네가 거미가 되어서 더 훌륭하게 뜰 수 있게 되었는데 거미의 작품은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다. 당시에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시기 질투의 대상이었던 벨라퀴에즈는 그림은 거미와 같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닌 인간의 창조성 creativity 에서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예술 작품을 이루는 요소는 아이디어, 독창성, 지식이지 기술은 부차적인 문제임을 드러낸다. 벨라퀴에즈는 구도, 명암 등의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그림의 내용을 결정하는 creativity 에는 아무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음을 이 그림에서 말하고 있다.

Christo, The Wrapped Reichstag, Berlin 1971-95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저게 뭐야? 나도 천만 있으면 저렇게 쌀 수 있어’ 라고 하며 플라톤적 사고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독일 국회의사당 Reichstag 라이스톡을 천으로 싸겠다는 크리스토의 아이디어에 얼른 동조를 하고 ‘그래 얼른 싸’ 하고 허가를 금방 내려주었을까?  아니다. 1971년에 허가 신청을 냈는데 설득을 하는데 무려    24년이 걸렸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도 6년 후인 1995년에 완공이 되었다. 그렇다면 크리스토가 라이스톡을 굳이 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술이 정치, 경제의 역사에 개입 intervention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술이 인생에 개입하는     scale 이 커지며, 코너로 몰고 갈 정도로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다.

Pablo Picasso, Bull’s Head 1943

피카소가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를 떼어다 붙여 소의 머리를 만들었다. 서양미술에서 소는 icon 이며 남성 정력을 상징한다.  "나는 소를 motive 로 썼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표현 안 하겠다" 는 의미이다.

피카소는 소의 머리를 통해 예술가는 이제 더 이상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토록 중요시해 왔던 기술이 쑥 빠지고 readymade 를 줒어 와 붙여 놓은 것 뿐이다. 인고의 세월을 거친 걸작, 기술을 다해 자식을 창조하는 듯한 신적 위치를 예술가에게서 끊어낸다. 피카소는 예술가는 손재주를 가진 장인일 필요가 없고, 크리스토 역시 천을 사 가지고 와서 쌀 뿐, 끝나면 천을 잘라 버린다.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는 기술적인 문제를 탈피한다. 예술가는 기술이 더 이상 필요 없고, 새 정의를 가지고 정치 경제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이다. 개입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손재주만 부려서는 안되고 예술의 방식이 새로와져야 한다. 중개인의 자리는 이제 사양하겠다.

Marcel Duchamp, In Advance of a Broken Arm, 1915
 
뒤샹이 readymade 란 단어를 내 놓는다. 1914년에 발생한 다다운동으로 예술지형에 지진이 일어난다. 팔 부러지기 전에를 통해 뒤샹은 예술가는 기술이 뛰어난 자가 아님을 나타낸다. 기존의 예술을 충족시키는 조건은 첫째 예술가가 이름을 붙이면 예술이 되고, 둘째로 미술관에 놓여지면 예술이 된다. 삽이 여기 있으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박물관에 놓이면 예술이 된다. 뒤샹은 예술가들이 더 이상  허무맹랑한 myth 에 끌려 다니지 말고  연결고리를 확 끊어내고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자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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