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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지와 진대 회화 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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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6,112회 작성일 10-08-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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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회화사 History of Chinese Painting 1st hour:Gu Kaizhi & Scroll Painting in the Jin Period 고개지와 진대 회화
 
진시대는 4-6세기이며,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에 해당한다. 기원전에 진시황의 진이 있었고, 그 다음에 한나라가 생긴다. 한나라 때에 우리가 중국에 대해 알고 있는 한자, 유교, 불교, 도교가 정립되며 하나의 국가로 정치의 개념이 생긴다. 제걀량이 등장했던 위, 촉, 오나라의 삼국시대가 이어지며, 촉과 오가 망하고 위나라를 진나라가 떠 안는다. 진시대에는 굵직한 정치적 episode 가 많이 일어나며 중국 회화가 시작되고 예술이 꽃핀다. 중국에서는 시, 서예가 경지에 올라 지적, 문예적 level 이 갖추어 져야지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다. 그래서 시서화라고 부르며 화가는 시인과 같이 간다.

도연명(陶淵明)  365-472 , Portrait of Tao Qian by Chen Hongshou (1599-1652)
 
불교가 인도를 통해 진나라에 들어 올 때 다오이즘(도교) 이라 불리는 토착 사상이 있었다. 중국의 시, 그림 해석를 위해서는 은밀사상 (도가사상) 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도연명 이전에는 교훈조의 어렵고 딱딱한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누구도 음주이십수 중 제5 수에 나타난 것과 같은 일상과 전원을 읖으며 자연 속에서 진리를 찾는 마음의 수양을 주제로 한 시를 쓰지 않았다. 쉬운 말로 쓰여진 도연명의 독특한 시세계는 당시의 주류 style 과 달라서 우습게 보였고 대접을 받지 못했다. 도연명이 355년에 귀거래사를 씀으로서 철학적인 도가 사상을 처음으로 시 세계에 가져왔다. 귀거래사는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농사지으며 친구들과 술 마시고 시를 읖는 생활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전에는 아무도 이런 시를 쓰지 않았다.

음주이십수 중 제 5 수 도연명, <飮酒> 詩는 모두 20수로 구성되어 있다. <飮酒> 제5수는 도연명의 시 전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이며,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는 시이다.
飮酒 (五)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번잡한 사람들 틈에
오두막 지어 살고 있어도
수레소리 말소리
질척한 세상 소리 아니 들리네
요란한 세상 속에 몸을 담고서
어찌 아무런 소리 들리지 아니한가
마음이 세상 밖에 노닐고 있으니
마음따라 이 몸도 세상 밖에 있다네
동쪽 담 밑에서
국화 향기에 젖어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남쪽 산을 호젓이 바라보니
보랏빛 저녁 해는
고요히 산허리에 슬리고
다정한 새들은
더불어 날아오네
이런 속에
참다운 진리가 있으니


귀거래사, 도연명
歸去來兮(귀거래혜) 돌아가야지
田園將蕪胡不歸(전원장무호불귀) 논밭이 묵는데 어찌 아니 돌아가리
旣自以心爲形役(기자이심위형역) 스스로 마음이 몸의 부림 받았거니
奚추창而獨悲(해추창이독비) 어찌 홀로 근심에 슬퍼하고 있으리
悟已往之不諫(오이왕지불간) 지난 날은 돌릴 수 없음을 알았으니
知來者之可追(지래자지가추) 이에 앞으로는 그르치는 일 없으리
實迷途其未遠(실미도기미원) 길이 어긋났으나 멀어진 건 아니니
覺今是而昨非(각금시이작비) 지난 날은 그렀고 이제부터 바르리
舟遙遙以輕야(주요요이경양) 고운 물결 흔들흔들 배를 드놓이고
風飄飄而吹衣(풍표표이취의) 바람 가벼이 불어 옷자락을 날리네
問征夫以前路(문정부이전로) 지나는 이에게 앞길 물어 가야하니
恨晨光之熹微(한신광지희미) 희미한 새벽 빛에 절로 한숨이 나네

乃瞻衡宇(내첨형우) 어느덧 이르러 집이 바라다 보이니
載欣載奔(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달리듯이 집으로 가네
童僕歡迎(동복환영) 사내아이 종 나와 반가이 맞이하고
稚子候門(치자후문) 어린 아들 문 앞에 기다려 서있네
三徑就荒(삼경취황) 세 갈래 오솔길에 잡초 우거졌어도
松菊猶存(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그대로 남아 있네
携幼入室(휴유입실) 어린 아들 손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有酒盈樽(유주영준) 술항아리 가득히 술이 나를 반기네
引壺觴以自酌(인호상이자작) 술병과 술잔 끌어당겨 혼자 마시며
眄庭柯以怡顔(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무를 지그시 보며 미소짓네
倚南창以寄傲(의남창이기오) 남쪽 창에 기대어 멋대로 있노라니
審容膝之易安(심용슬지이안) 작디작은 방이지만 편하기 더 없네
園日涉以成趣(원일섭이성취) 정원은 매일 거닐어도 풍치가 있고
門雖設而常關(문수설이상관) 문은 나 있으나 늘 닫아 두고 있네
策扶老以流憩(책부노이류게) 지팡이 짚고 가다가는 쉬기도 하고
時矯首而遐觀(시교수이하관) 때로는 머리 들어서 멀리 바라보네
雲無心以出岫(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골짝을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조권비이지환) 날다 지친 저 새 돌아올 줄을 아네
景예예以將入(경예예이장입) 저 해도 어스름에 넘어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무고송이반환) 서성이며 홀로 선 소나무 쓰다듬네

歸去來兮(귀거래혜) 돌아왔네
請息交以絶遊(청식교이절유) 사귐도 어울려 놀음도 이젠 그치리
世與我而相違(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復駕言兮焉求(복가언혜언구) 다시 수레에 올라서 무엇을 구하리
悅親戚之情話(열친척지정화) 친한 이웃과 기쁘게 이야기 나누고
樂琴書以消憂(낙금서이소우) 음악과 글을 즐기며 시름을 삭이리
農人告余以春及(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나에게 봄이 왔음을 알리니
將有事於西疇(장유사어서주) 서쪽 밭에 나가서 일을 하여야겠네
或命巾車(혹명건차) 때로는 천막을 두른 수레를 몰아서
或棹孤舟(혹도고주) 때로는 외로운 배의 삿대를 저어서
旣窈窕以尋壑(기요조이심학) 깊고 굽이져 있는 골짝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역기구이경구) 험한 산길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네
木欣欣以向榮(목흔흔이향영) 물오른 나무들은 꽃을 피우려 하고
泉涓涓而始流(천연연이시류) 샘물은 퐁퐁 솟아 졸졸 흘러내리네
善萬物之得時(선만물지득시) 모두가 철을 만나 신명이 났건마는
感吾生之行休(감오생지행휴) 나의 삶 점점 더 저물어 감 느끼네

已矣乎(이의호) 다 끝났네
寓形宇內復幾時(우형우내복기시) 세상에 몸이 다시 얼마나 머무르리
曷不委心任去留(갈불위심임거류) 가고 머뭄을 자연에 맡기지 않고서
胡爲乎遑遑欲何之(호위호황황욕하지)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 하는가
富貴非吾願(부귀비오원) 부귀는 내가 바라던 바도 아니었고
帝鄕不可期(제향불가기) 신선 사는 땅은 기약할 수 없는 일
懷良辰以孤往(회양진이고왕) 날씨 좋기 바라며 홀로 나아가서는
或植杖而耘자(혹식장이운자) 지팡이 세워 두고 김 매고 북돋우네
登東皐以舒嘯(등동고이서소) 언덕에 올라가서 길게 휘파람 불고
臨淸流而賦詩(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보네
聊乘化以歸盡(요승화이귀진) 자연을 따르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樂夫天命復奚疑(낙부천명복해의) 천명을 누렸거늘 더 무엇 의심하리

만가시1 도연명
有生必有死(유생필유사) :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 있나니
早終非命促(조종비명촉) : 일찍 죽는다고 명 짧은 것은 아니도다
昨暮同爲人(작모동위인) : 어제 저녁에는 다 같이 사람이다가
今旦在鬼錄(금단재귀록) : 오늘 아침에는 귀신 기록에 올라 있도다
魂氣散何之(혼기산하지) : 혼은 흩어져 어디로 가 버리고
枯形寄空木(고형기공목) : 말라빠진 신체는 빈 나무에 몸을 부치나
嬌兒索父啼(양아색부제) : 귀여운 아들은 아비 찾아 울고
良友撫我哭(양우무아곡) : 좋은 벗은 나를 잡고서 통곡한다
得失不復知(득실불복지) : 이해 득실을 다시는 알지 못하고
是非安能覺(시비안능각) : 시시비비인들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나
千秋萬歲後(천추만세후) : 천년 만년 지난 후에는
誰知榮與辱(수지영여욕) : 그 누가 영화와 치욕을 알리오
但恨在世時(단한재세시) : 다만 한스러운 건 세상에 있을 적에
飮酒不得足(음주불득족) : 술 마시는 게 흡족하지 못했던 것이도다

만가시는 현세에서 도를 닦는 시로 자연으로 돌아가 죽은 후의 모습을 상상하는 내용이다. 이런 소재, 단어는 훌륭한 시인이 쓰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도연명은 생시에는 조롱을 받았고 업수히 여겨졌다. 수나라, 당나라에서 도교가 중요한 정치이념이 되자, 도연명이 재평가를 받고 당태종이 도연명에게 푹 빠진다.

시와 서예는 교육적 level 을 측정하는 수단이었다. 화가 고개지, 시인 도연명, 서예가 왕희지는 다 동진 시대의 사람으로 고개지의 그림과 도연명의 시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왕희지 글씨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왜 그럴까?  당태종은  유명한 서예를 놓고 글씨 공부를 했는데 유독 왕희지의 글씨를 사랑하여, 백방으로 그의 글씨를 수배하여 다 모아서 글씨공부를 했고 죽을 때 같이 묻으라고 했다. 그래서 왕희지의 글씨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후대 사람들이 비슷하게 쓴 것만 전해져 내려온다. 고개지, 도연명, 왕희지는 향후 몇 백년 동안 중국을 이끌어 가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위, 촉, 오  삼국시대
 

사마염(236-290), Sima Yan, Emperor Wu of Jin, Yan Li-pan 13 Emperors Scroll 7th
 
 
촉나라 제갈량의 북방정책을 막고 위나라에 공을 세운 사마염의 초상화로 그는 나중에 진나라를 창시한다. 그의 아버지 사마위는 장수로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우고 아들인 사마염은 아버지를 보필해서 전쟁을 이기고  궘모술수를 쓰면서 처음에는 정치를 잘 하지만 결국 권력과 향략에 빠지고 진나라는 가세가 기운다. 황태자인 사마국은 나약하고 무지몽매하고 부실하다. 어머니인  양씨가 나서서 양씨 집안을 정치에 끌어들이고 양씨 문중 힘이 커진다. 황후인 자신을 제치고 시어머니인 양씨가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아니꼽게 여기는 사람은 며느리인 가씨, 가씨는 여우처럼 간사하게 머리를 쓰는 여자이다. 가씨왕후는 사마씨 집안 남자들을 끌여들여 서로 이간질 시키고 남편의 숙부를 시켜 양씨 집안을 다 죽인다. 시어머니 죽이고 가문을 몰살한 후 가씨의 권력을 팽창시키고 자신이 정치에 못 나가니까 조카를 이용해서 음모를 꾸며 작은 아버지를 독살하고, 조카의 힘이 커지면 조카를 죽이고 하는 식으로 사마씨 남자들을 정치에 이용하다가 급기야는 사마씨 남자 8명이 전쟁을 벌이는 팔왕의 난이 일어난다. 서로 싸우는 중에 외세 흉노족의 힘을 끌여서 서진이 멸망하고 남쪽으로 도망가서 동진을 세운다. 고개지, 도연명, 왕희지는 다 동진 시대에 태어나서 서진의 가씨 왕후이야기를 역사로 듣는다.

서진시대 265-316 Western Jin dynasty
동진시대 317-420  3대 예술가 고개지, 도연명, 왕휘지가 있었던 시대
 

Luoyang (낙양, 뤄양) 
 
중국의 여러 dynasty 는 중원 central plain 을 장악해야 중국을 잡을 수 있었기에, 천하호령을 위해 황화강과 양츠강 사이의 하북지역인 중원을 차지하려고 했다. 중원에 있었던 중심도시 낙양을 배경으로 하고 중국 역사는 계속 내려왔다.

칠실관화설 (방을 어둡게 하고서 사물을 보는 것에 대한 설) 정약용
집을 산과 호수 사이에 지으니 여울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이 좌우에 비춰 들 죽수화석(竹樹花石)은 떨기떨기 쌓였으며 누각(樓閣)의 담장과 울이 죽죽 뻗어 있다. 이에 청명하고 좋은 날을 가려 방에 들어가 외부의 밝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창과 출입구를 다 막아 방안을 칠흑같이 하되, 오직 한 구멍만 남겨 애체를 그 구멍에 안정시킨다. 그리고는 눈처럼 하얀 종이판을 애체와 두어 자 거리에 애체에 따라 거리를 조정한다. 받아서 비추게 하면, 여울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 또는 죽수화석(竹樹花石)이 떨기져 쌓인 것과 담장과 울이 죽죽 뻗어 있는 것이 모두 판지 위에 반사되어 짙고 옅은 청록색과 성긴 가지와 조밀한 잎의 형태와 색깔이 천연 그대로 선명하고 위치가 정연한 한 폭의 천연적인 그림이 되어, 섬세하기가 실오라기나 머리털 같아 고개지(顧凱之)ㆍ육탐미(陸探微)로도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니, 아마도 천하의 기관(奇觀)일 것이다. 애석한 것은 바람 받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을 묘사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사물의 형체가 거꾸로 되었으므로 황홀한 감상이 든다. 지금 어떤 사람이 조금도 틀리지 않은 초상화를 그리려 한다면 이밖에 다시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뜰에 단좌(端坐)하여 마치 이소인(泥塑人 흙으로 빚어서 만든 사람 모양)같이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묘사하기 어려움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다를 바 없으리라

위 글은 조선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에 기록된 우리나라 사진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다산이 카메라 옵스큐라를 칠실파려안(漆室玻瓈眼) 이라고 이름 짓고 이것을 사용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茯菴李基讓墓地銘), 「漆室觀畵說). 여기서 칠실(漆室)은 검은 옻칠을 한 것 같은 ‘어두운 방’(카메라 옵스큐라) 라는 뜻이고, 파려안(玻瓈眼)은 렌즈나 거울을 뜻하고, 파려(玻瓈) 는 파리(玻璃)와 같은 말인데 유리나 수정을 말한다. 칠실파려안은 오늘날의 카메라와 거의 유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실내를 암실로 만들고 구멍을 뚫어서 렌즈(애체靉靆)를 부착한 형태였다고 한다.

6조 4대가 Four Great Painters of the Six Dynasties
Gu Kaizhi 고개지
Lu Tanwei  육탐미
Zhang Sengyai 장승요
Wu Daozi 오로자
(Zhang Yanyuan 장언원) 

문자향 서권기는 추사 김정희가 한 말로 그림에는 만권의 독서량이 쌓여서 피어나는 문자향과 책의 기운이 흘러야 한다는 뜻이며, 조선시대 그림의 법이 되었다. 중국 회화를 하는 사람이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하는 말이다. 만권의 책을 읽고 수레바퀴로 세상의 반을 다니고 견문을 익혀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로 중국 회화는 처음부터 그림은 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림은 마음 속의 진을 담아내는 것이다.
 
Xie He사혁 450-550 고화품록 (550?)
그림의 6가지 법칙을 설명한 책으로 고개지의 그림을 보고 아이디어를 가져왔다. 그림은 색채를 과학적으로 하여 사실과 똑 같은 그림을 보여줌이 아니고, 참뜻(진)을 보여주는 목적으로 다음의 육법을 설명했다. 
1. 기운생동— spirit,  생명력, 감정 표현
2. 골법용필ㅡ bone method, 인물화의 골격 표현을 위해 서예를 통해 붓쓰는 법을 먼저 익혀야 한다.
3. 음울상형 (소모)ㅡ correspondence to the object
4. 수류부채 (색채농담)ㅡ suitability to type
5. 경영위치 (구도, 구성)ㅡ division and planning
6. 전이모사 (표현)ㅡ transmission by copying

고개지 점입가경/ 동진의 삼절 고개지
점입가경이라는 말은 진서의 고개지전에 전한다. 고개지는 사탕수수를 즐겨 먹었는데, 늘 가느다란 줄기부분 부터 먼저 씹어 먹는 버릇이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친구들이 묻자 고개지가 답하기를 “갈수록 점점 단맛이 나기때문 [漸入佳境] 이다” 하고는 태연하였다. 이때부터 ‘점입가경’이 어떤 일의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삼절(三絶: 畵絶(화절), 才絶(재절), 痴絶(치절))이라 하였는데, 그림을 잘 그리고, 재간을 부리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난징에 있는 와관사 라는 절의 창건 때이다. 난징에 있던 일단의 승려들이 와관사를 짓기 위해 헌금을 걷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궁핍하여 뜻대로 모이지 않았는데,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와서 “백만 전을 내겠소. 절이 완공되거든 알려 주시오”라 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절이 완공되자 그 젊은이가 불당벽에 유마힐(維摩詰)을 그렸는데, 얼마나 정교한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소문이 삽시간에 번져 이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의 보시가 백만 전을 넘었다고 한다. 그 젊은이가 바로 고개지였다.

고개지(顧愷之)의 사시(四時) 는 각 계절을 상징한 내용으로 풍류가 기반이 되어야지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春水滿四澤 (춘수만사택)
夏雲多奇峰 (하운다기봉)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
봄물은 사방 못에 가득하고
여름 구름은 기묘한 봉우리를 만드네.
가을 달은 맑은 빛을 더 맑게 하고
겨울고갯마루엔 외로운 소나무 빼어나도다.

고개지, 여사잠도  Admonitions of the Instructress to the Cout Ladies, 4th scene, British Museum, London

여사잠도는 1900년 영국이 침입한 위화단 사건으로 궁궐이 불탔을 때 3폭이 없어지고 9점은 영국이 가져가서 현재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족자 scroll painting 으로서 폭 25 centimeter 와 길이4meter 로 옆으로 길다. 서진의 장화(232~300)가 지은 여사잠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사잠은 황후 가씨의 방종을 걱정한 장화가 여사 (후궁에서 황후의 범절을 맡는 여자. 양가 집안의 부녀로서 글과 교양을 갖추었던 여인이 뽑혔다)의 직책을 훈계하고, 황후 일족을 풍자할 의도로 지었다고 한다. 고개지가 그린 <여사잠도>는 황실 규방 여인들의 품행 문제를 다룬 일종의 권계화이다.

가씨는 시어머니를 죽이고 미소년을 데리고 놀다가 죽이는 사악한 여자로 왕을 포함한 온 궁궐이 다 무서워했다. 가씨는 후손이 없어서 사마씨 중에서 하나를 점찍어 황태자로 삼으나 그는 살기 위해서 바보 노릇을 하지만 가씨에게 들켜서 죽임을 당한다. 가씨 왕후의 폭정으로 서진은 흉노족에게 망하고 남은 자손들이 남쪽으로 도망을 가서 동진을 세운다. 동진시대 고개지는 나라를 망하게 한 가씨왕후의 어마어마한 사건 이야기를 들었고 동진 사람 치고 이 얘기를 모르는 사람 없다. 고개지의 그림 옆에는 여사잠 소설을 모델로 하여서 그림책처럼 글이 있다. 가씨 왕후의 행실처럼 하면 안된다는 유교적 교훈이며 그림만 보면 이해가 안되고 글을 봐야 한다.

고개지가 유명해진 이유는 인물화를 그릴 때 얼굴이 표정이 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얼굴의 기운생동이 엄청나며 그림에서 고개지가 사용했던 선(線)의 기법을 춘잠토사식(春蠶吐絲式) 또는 유사묘법(遊絲描法)이라 한다. 이는 필선이 명주실처럼 가늘고 섬세하면서도 생동감이 있어 붙여진 명칭이다. 농담(濃淡)의 색채를 희미한 점철로 처리하는 등 특이한 도칠(塗漆)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고개지는 인물을 그리면서 몇 년이고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정신을 비추어 내는 곳이 바로 눈동자이다." 라고 했다. 그림은 사실 모방이 아니므로 영혼을 나타내는 눈이 중요하다. 점 하나에 따라 화, 질투, 행복을 표현한다.

4 번째 그림 Lady Feng: Lady Feng selflessly steps into the path of an escaped black bear that has targeted her husband, Han emperor Yuandi, but is saved by armed guards.

첩인 펭부인이 남편인 왕이 다칠까봐 곰을 막는다. 왕이 동물을 보고 있는데 갑자가 곰이 튀어나오자 작은 펭부인이 용감하게 나서는데 또 다른 후궁은 왕 뒤에 숨어 두 첩의 행동을 대비 시킨다. 한편 가씨는 남편을 죽일 생각만 했다.

5 번째 그림  Lady Ban: Lady Ban refuses to ride in the imperial palanquin for fear of making her husband, the Han emperor Chengdi, appear like a bad ruler.
 
왕이 가마 위의 창문에서 부인을 보고 있다. “부인 왜 가마 안 타?”  여사잠도 훈계의 내용은 훌륭한 왕은 행차시에 충신을 옆에 두고 그저 그런 왕은 후궁을 옆에 둔다. 나의 편안함보다 남편의 입신영명을 먼저 두어야 한다는 훈계이다. 가씨부인은 전용가마가 여러개 있었다.

6 번째 그림 The mountain and hunter: a mountain and a hunter with a crossbow about to shoot a tiger. An illustration of the couplet, 'To rise to glory is as hard as to build a mountain out of dust; To fall into calamity is as easy as the rebound of a tense spring.'
 
영광의 길은 험하고 멀어도 (먼지로 산을 쌓는 것처럼 어렵고), 망하는 길은 순식간이다.( 활사위를 당기는 것 같이 쉽다).

7 번째 그림 The toilette scene: two women are tending to their make-up and hair in illustration of the couplet, 'Men and women know how to adorn their faces, But there is none who knows how to adorn his character.'
 
여자가 겉모습은 꾸밀 줄 알아도 성격을 가다듬을 줄 모른다. 마음이 엉망인데 꾸미는 것 무슨 소용있나?

8 번째 그림  The bedroom scene: seated on a canopied bed, an emperor and his concubine eye one another with suspicion to illustrate how false words will cause even your bedfellow to distrust you.
 
부인이 침대에서 나가는 왕을 보고 있다. 한 침대 같이 써도 말이 품위없고 경망스러우면 멀어진다. 고개지는 신발 신고 나가는 찰나의 움직임을 잡아내어 그림 하나에 이야기가 실려간다.

9 번째 그림 The family scene: several generations of a family sit together to illustrate the couplet, 'Let your hearts be as locusts And your race shall multiple.'
 
왕과 3명의 첩들과 애들, 끝부분이다. 모든 훈계를 잘 이행하면 가정에 행복이 온다.

10 번째 그림 The rejection scene: an advancing beauty is rejected by the emperor: 'If  by a mincing air you seek to please, Wise men will abhor you.'
 
왕이 손으로 만류하면서 ‘물러서거라’ 하는데 여자가 쫓아간다. ‘왕이 측실을 들이면 애정을 갈구하지 말라. 조신하게 있어라’  여사잠의 훈계 중 질투에 관한 것 이다. 그렇지 못해서 나라 말아먹은 역사 속의 가씨의 사건과 맛 물려있다.

11 번째 그림 A lady reflects upon her conduct: 'Fulfill your duties calmly and respectfully;
Thus shall you win glory and honour.'
 
조용하고 순종하는 맘으로 너의 할 바를 수행하면 영광이 찾아온다. 너의 행동을 항상 뒤돌아 보라.

12 번째 그림 Conclusion: the court instructress. The court instructress writes out her admonitions for presentation to her peers, as two palace ladies approach her.
 
여사가 책을 들고 새로 들어온 측실에게 훈계를 하고 있다. 그림 속의 수 많은 낙관은 왕이 바뀔 때 마다 왕족이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하고 진품임을 보증하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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