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궈 챵, 예술 작품이 된 불꽃놀이 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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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4,218회 작성일 10-05-0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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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시아 예술 14th hour : Cai Guo-Qiang, Fireworks becoming works of art
Cai Guo-Qiang (1957- )
Five Golden Rings Fireworks Project for the Opening Ceremony of the 2008 Beijing Olympic Games
싸이 궈 챵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중국작가로 2008년 베이찡 올림픽에서 불꽃놀이를 디자인하고 감독을 맡았다.
Black Rainbow Proposal 2005 Black Rainbow: Explosion Project for Valencia (2005)
싸이 궈 챵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작품을 한다. Black Rainbow 는 스페인의 발렌시아에서 한 happening 이다. Happening 은 그 장소에 있어야지 볼 수 있으며, 그 이후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는다. 2009년 구겐하임 박물관에서 그의 작품을 전시할 때는 Black Rainbow 를 영상으로 전시했다. 불꽃놀이는 happening 선상인데, 기존의 다른 작가와 다른 점은 싸이 궈 챵이 작품 안에 없다는 점이다. 싸이 궈 챵은 불꽃놀이를 감독만 하며, 전문적인 technician 을 위시해서 다른 staff 를 많이 쓴다. 그의 studio 는 미국에 있으며, 그의 부인이 manager 로 일한다.
그런데 왜 하필 불꽃놀이인가? 화약은 8세기 경 중국의 발명품이다. 당시에 유행했던 연금술은 납이나 철로 금을 만들어 내는 기술인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의미에서 일종의 magic 으로 여겨졌다. 금을 만드려는 실험과 시도를 무수히 하다가 우연히 화약이 만들어졌다. 700년 당시에 사람들은 화약을 보면 상당히 놀랬다. 지금은 불꽃의 확 튀는 공포의 장면 뒤에는 사람의 조작이 있음을 알지만, 그 당시는 민심을 조작하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신이 화가 났다’로 해석되었다. 한 단계 더 발전을 하여 gun powder 의 무기로 쓰인다. 우연히 발명된 화약, 처음엔 사람들을 놀래키고 겁만 주려고 했는데, 지금은 사람을 죽이는데 이용된다.
8세기에 ‘재앙이 오나봐’ 로 생각했던 불꽃이었는데, 싸이 궈 챵은2005년 발렌시아 지방의 열차 사고와 연관해서 하늘을 검게 물들인 Black Rainbow 를 만들었다. 불꽃놀이를 2-3년 전에청탁을 받고 project 를 준비하던 중 발렌시아에 열차사고가 났다. 불꽃놀이라고 항상 예쁜 것은 아니고 무섭게도 보이는 이중성이 있다. 화약이 entertain 도 되는 동시에 무기도 되는데, 없애자고 아무도 안한다. 오히려 끊임없이 최첨단의 무기를 개발하고, 그 행위의 궁극 목적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아무도 핵을 포기하지 않으며, 더 많이 소유할가를 연구한다. 서로 파멸로 치닫는 점이 우연히 발견된 화약의 운명과 같다.
Drawing for Footprints of History, Guggenheim 2009
종이 위에 화약이 타고 난 후의 그슬린 이미지이다. 싸이 궈 챵은 중국의 2대 발명품인 종이와 화약을 가지고 작업했으며, ‘chance’ 를 이용했다. 화약 불이 어느만큼 탈 것 인가를 계산하기는 힘들다. 몸짓으로 흔적을 남김다는 점에서 잭슨 폴락의 맥락과도 닿아있다. 종이 위에 단지 화약을 사용했는데, 추상화로 보인다. 폴락이 물감을 캔버스 위에 뿌릴 때, 붓과 캔버스가 떨어져도 그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아무도 못했다. 그런데 싸이 궈 챵은 아예 붓을 없애 버렸다.
그는 ‘이것을 painting 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건 뭡니까?’ 하고 묻고 있다. 그의 작품은 회화를 정의 내리는 틀에 안 들어가고, 장르가 애매모호 ( blurring ) 해졌다. Drawing for Footprints of History 는 굉장한 양의 종이 위에 화약을 붙이고 불을 붙인 performance 의 일종이다. Happening 인데 회화 작품으로 남아서 순회전이 가능하다.
Inopportune, Stage One, Guggenheim 2008
Inopportune, Stage One, North Adams, Massachusetts 2004
차사고가 나서 점점 뒤집혀가는 파노라마 이미지이다. ‘explosion event’ 에 대한 installation 과 happening 이다. 사람들은 화약과 연금술사에서 호기심, 흥미, 공포감을 연상하는데, 오락과 leisure 의 선상에서 멈추지 않고, 인류 파멸로 가는 모습이 보여진다. 싸이 궈 챵이 happening 할 때 마다 마치 화약이 인류 역사에 똑같은 사고를 반복하듯이, 9/11과 열차사고 같은 accident 가 계속 일어난다.
Inopportune, Stage Two, Tigers, North Adams, Massachusetts 2004
Borrowing Your Enemy’s Arrows 1998
나무로 된 배에 화살이 꽂혀있고 가운데 중국을 상징하는 빨간 깃발이 있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과 조조와의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제갈공명이 무기가 다 떨어져서 속임수로 짚을 강에 흘려 보냈는데, 조조가 싸움의 시작으로 여기고, 어마어마한 양의 화살을 적의 배에 쏜다. 제갈공명은 그 화살을 뽑아서 적을 역공격한다.
Head on 2006 늑대 모형이 하늘로 날아가다가, 유리벽에 부딪쳐 쓰러져 죽는다.
싸이 궈 챵은 아버지가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것 저것을 다 참아야 한다는 뜻으로 최국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버지는 역사가, 전통 그림화가로서 국가 소유 서점의 주인으로 그 서점에는 금서도 많이 있었다. 아버지는 싸이 궈 챵에게 금서도 몰래 읽혔고, 그의 역사적 문학적 감수성이 이로 인해 많이 발전되었다. 그의 나이 7, 8세에 문화혁명이 시작되었고, 싸이 궈 챵이 견딜수 없는 것은 문화혁명이 터지니까, 아버지가 열렬한 마오 지지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홍위병이 무서워서 금서를 막 태우고, 문화혁명의 전폭 지지자가 되었다. 9, 10살 때 학교에서 듣는 얘기는 그전에 책이나 아버지에게 들었던 얘기와 너무 다르고 아버지도 전혀 딴 사람으로 변모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일본 유학을 가서 10년을 지낸다. 그런데 일본은 너무 달랐다. 중국인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에 관심이 많고, 외부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양 문물을 가져다가 계속 뭘 만든다. 싸이 궈 챵은 대도시 출신이 아니므로, 일본에 유학가서 보는 것들이 중국과 너무 차이가 났다. 고향에서는 학교에 가면 하루 종일 화약을 만든 애들의 손이 빨갰다. 집집마다 애들도 일을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Reflection 2004 (바다에서 건져온 나무배에 관음보살상의 산산히 부셔진 조각을 모아서 한 설치 작업이다)
그런 자신의 고향과 일본은 너무 차이가 났다. 고향에서 보던 통나무 배는 아예 없었고, motor 배, 철이나 고무로 만든 배만 있었다. 중국은 중국 중심이므로, 더디게 간다기 보다 아예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서양 문물을 적극 수용하는 일본에서는 나무배를 만드는 사람을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 싸이 궈 챵의 눈에는 일본의 역사와 축척된 과거가 다 없어지는 것 처럼 보였다.
Reflection 2004
그가 Reflection 의 나무배를 중국에서 가져다가 일본에서 설치 작업을 하니, 80세 노인들이나 그런 배를 기억을 하고 있었다. 중국에서 porcelain 으로 유명한 지방에 공장 견학을 갔더니, 한구석에 깨어진 관음보살상 조각이 방치되어 있었고, 그것을 사서 배에 가져다가 설치 작업을 했다. 싸이 궈 챵은 깨어진 채 쌓여있는 관음보살상 조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보살상을 대량 생산하고 나서 모양이 잘못되었다고 부순다. 중국에는 관음보살상이 집집마다 사원마다 곳곳에 있는데 아무도 그것을 보고 손가락이 잘못 만들어졌네, 색깔이 이상하네 하고 말하지 않는다. 관음보살상은 일종의 상징체계이지 미의 대상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박물관에 들어오면 상징의 의미는 사라지고 어깨선이나 미소의 아름다운 모습 등 관람의 대상이 되며, 미술작품으로 분석된다.
관음보살상이 절, 집 밖의 마당에 놓일 때와 박물관에 놓일 때 생기는 irony 는 화약이 가지고 있는 irony 와 비슷하다. Borrowing Your Enemy’s Arrows 에서 적의 화살을 빌려서 쓰는 irony 와도 맞닿아 있다. 이제 중국은 일본과 비슷한 전략을 채택하여 해외자본을 유치하려 한다. ‘일단 받아들여 그것을 이용해 우리 손으로 만들어 수출을 해서 부자가 되자’ 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것은 제갈공명이 적의 화살을 뽑아 역으로 쓴 것과 같은 의미이다. 여기에 Globalism 이 또한 역활을 한다. 중국의 전략이 베이찡 올림픽에서 보인다. 2008년에 화려한 Five Golden Rings 를 하늘에 수놓음으로서 이제는 우리가 후진국에서 벗어나 세계가 주목하는 올림픽을 유치하는 나라가 되었음을 과시하였고, 지금은 중국의 입김이 매우 세어졌다. 60, 70 년대의 중국과 2008년의 베이찡 올림픽을 보여준 중국과는 너무 다른 나라가 되었다. 한번도 중국은 중국 중심을 포기한 적이 없다.
Venice Rent Collection Courtyard, Venice Italy 1999
싸이 궈 챵의 외국 전시의 폭죽 공연은 실현이 안된 경우가 많다.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중국의 모든 미술을 망라하는 전시를 계획하고, 싸이 궈 챵을 초청했으나 뮤지엄측은 전시 자체에서 contemporary section 을 없애 버렸다. 이유는 중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 중국 정부에 불편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Venice Rent Collection Courtyard 는 문학혁명 당시 소작인들이 지주에게 핍박을 받는 조각인데 중국에서는 이 작품을 전시 못한다. 모택동 시절 잘 먹고 잘 살자는 조각 작품이 혁명정신을 고추시키려는 의도에서 전 나라에 깔렸었다. 싸이 궈 챵이 소작인들의 조각 얼굴을 따다가, 힘들고 배고픈 얼굴로 바뀌어서 조각을 했다. 작품을 만드는 전 staff 을 베니스로 데려와서 한 작업이며, 2008년 구겐하임 특별전에도 똑같은 전시를 했다. 중국문화혁명이 실패임을 속으로는 누구나 다 인정을 하지만 들어내 놓고 얘기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여전히 taboo 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싸이 궈 챵이 중국내에서 전시하는 것은 불편했다. 사실 베이찡 올림픽도 어마어마한 censorship 이 이루어졌다. Façade (퍼샤드) 는 앞면만 깨끗하고 뒤는 아무렇게나 처박아 지저분하다는 뜻으로 이렇게 눈속임을 하는 중국 정부를 가르킨다.
이런 양면성이 단순히 가족의 paradigm 을 벗어나서 국가의 파라다임으로 갈 때는 더 크게 이루어진다. 중국 국가가 지닌 양면의 날은 문화혁명을 토론하고 정리해야 다시는 그런 일 안 일어나는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중국의 입장은 해결책이 없다. 그러므로 대다수 중국 현대 작가들은 미국, 유럽에 나와서 문화혁명 얘기를 막 한다. 그 이면에는 중국 안에서는 정부가 핍박하니까 못하고, 외국에서 한번 하니까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면서 나의 작품이 팍 떴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 미국에서는 그런 일 안 일어나는데, 아이구 그랬어’ 하면서 막 들어준다.
중국작가들은 문화혁명 얘기를 미국으로 끌고 나와 spectacle (구경거리) 로 만들었다. 홍위병들이 불온 서적을 다 불태우고, 전통타파주의 아래 유교 불교 다 깨부셨다. 미국인이 생각할 때 자유가 없는 나라이다. 재밌게 남의 얘기 줄줄이 듣는다. 중국 contemporary artist 들의 의도는 처음에 쬐끔 이야기 했는데 반응이 좋으니까 계속한다. 예술은 일종의 communication 이니까 좋아하는 것을 하게 마련이다. 같은 것을 계속하는 신디셔먼, 니키리, 모리무라도 다 같은 선상에 있다. 중국 작가들은 native speaker 라는 title 을 딱 가지고 계속 중국 얘기만 한다. Native speaker informant 는 ‘내부 고발자’ 를 의미한다. ‘6.25 때 어땠어요? 할머니’ 할머니 얘기를 열심히 적어서 책으로 낸다. 거기 사는 사람들 얘기만 열심히 들으면 된다. 함정은 native speaker 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 있다. 그 사람은 거기서 살았고 격었으니까 그 사람의 6.25 story 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경험한 각각의 사건이 다 다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치 ‘6.25 겪은 사람의 대표’ 라는 완장을 찬 것 처럼 된다.
Cai Guo-QIang, Footprints of History, Fireworks Project for the Opening Ceremony of the 2008 Beijing Olympic Games.
싸이 궈 챵은 아버지가 친 문화혁명주의자였으므로 핍박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계속 문화혁명 이야기만 한다. 자신이 그것을 겪은 대표자도 아닌데, 외국에서는 그 나라 사람이 겪은 것이니까 저것이 진실이구나 라고 믿는다. 각각의 시대 역사 경험은 다 다른데, 외국으로 나와서 서커스단 공연이 되어 버렸다. 관광객들은 나는 줄타는 것 못하니까 박수를 치면서 본다. 이런 점들이 학계에서 중국의 contemporary artists 에 대해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하필 다른 나라를 다 제쳐놓고 중국작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가? 이유는 중국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중국의 힘이 커졌고 6자 회담에서 북한의 편을 들면서 미국에게 딴지를 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negative image 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를 보면 맘이 편해진다. 미국은 중국을 계속 폐쇄사회로 보며, 중국의 욕을 하는 contemporary artist 가 고맙다.
싸이 궈 챵과 장후안을 위시하여 대다수 중국 작가들은 미국에서 활동한다. 이 작가들이 느끼는 것은 실제로는 중국 안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고, 뉴욕에 앉아서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서 습득한 것 들이다. 직접 중국에 살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결이 멀리 떨어진 뉴욕에서의 작업에 표현되기는 힘들다. International student perspective (유학생 관점) 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잘 몰랐고 별 관심도 없었는데, 미국에 오니까 사람들이 막 묻는다. ‘너 광주사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 난 잘 모르는데 대충 아는 한도에서 얘기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나의 voice 에 힘이 별로 없었는데, 밖에 나오니까 나의 의견에 막 힘이 실린다. Native speaker 가 native 에 대해 이야기만 하면 저절로 힘이 실린다. 그런 현실이 중국작가들의 작업 태도이다. 싸이 궈 챵은 native speaker 라는 완장을 찬 읍내의 한량과 같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읍내 한량이 군수와 한번 술자리를 같이 하더니 노란 완장을 차고 동네를 활보하면서 감 나라 대추나라 한다.
누구든지 완장을 하나 차면 그것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사람들이 대접을 해주니까. 여기서 가면과 연결이 된다. 내가 어떤 가면을 쓰고 perform 을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고 대접해 준다. 그래서 그 가면을 못 벗는다. 싸이 궈 챵은 올림픽에서 Five Golden Rings 할 때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다. 평소에는 밖에서 중국정부에 대하여 욕하다가, 위선자처럼 태도를 싹 바꾸어 (그 가면을 벗고 다른 가면을 쓰고) 정부와 손잡고 일했다.
나 역시 딸이라는 가면이 successful 하니까 그것 못 내려논다. 우리 엄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만, 엄마는 절대로 가면을 벗지 않는다.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서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하다. 엄마는 처녀 시절의 남자친구 얘기 절대로 안하고, 중고시절, 직장 생활 이야기도 한 적이 없다. 엄마는 내게 이 세상에 유일한 mysterious 한 인물이다. 나는 엄마라는 가면 외에는 본 적이 없다. 내가 엄마를 모르는 것 처럼, critics(평론가) 와 gallery owner 들도 중국작가들의 진짜 얼굴을 잘 모른다.
From March 17 to September 6, 2009, the Guggenheim Museum Bilbao presents Cai Guo-Qiang: I Want To Believe, an exhibition that presents the full spectrum of the artist’s multimedia art in all its conceptual complex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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