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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미술 이태리 (1050-1150) 2/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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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7,470회 작성일 11-02-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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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르네상스 미술 6th hour: Romanesque Art and Architecture in Italy 이태리의 로마네스크 미술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건축 및 미술 1050-1150

이탈리아는 여전히 로마미술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으며 항구를 통해 비잔틴 제국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다. 나중에 교황 빅토르3세가 되는 몬테 카시노 수도원의 데지데리우스 Desiderius 원장은 11세기 말에 자신의 개인 예배당으로 비잔틴 양식의 산 안젤로 수도원을 포르미스에 건립한다. 12세기 초 교황 그레고리 7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헨리4세가 성직 임명권을 놓고 대립하는데 카놋사의 백작 마틸다의 중재로 황제 헨리가 굴욕적으로 빌고 교황이 승리한다. 친교황적인 해석의 마틸다의 복음서가 전한다.

12세기 초 교황 이노첸트 2세의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마리아 성당에 ‘성모의 대관 Coronation of Virgin Mary’ 이라는 새로운 도상이 나타나며 이 도상은 고딕시대에 대 유행한다. 투스카니 지방의 피사 성당, 피렌체 세례당, 피렌체 산 미니아토 알 몬테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미술이 혼합된 형태이다. 시실리의 노르만 왕국은12세기 중반-후반 노르만 해적들이 세운 왕국으로 노르만 귀족가문을 중심으로 영국-노르망디-시실리-비잔틴 제국-아랍제국 간의 복잡한 관계가 성립된다. 영국왕 헨리2세의 세째딸이 노르만 왕국 윌리암 2세의 부인이 되어 두나라 사이의 교류가 이루어져 1170년대 영국 필사본 삽화에 비잔틴 양식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팔레르모 (수도) 팔라티나 예배당, 몬레알레 성당이 있다.

이탈리아 로마네스크의 정치적 상황

Romanesque Europe 1130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뉘고 서로마는 476년에 멸망하지만 동로마의 비잔틴제국은 1453년 까지 1000년 동안 이어진다. 비잔틴 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중해에 살던 로마인들로 머리, 눈, 피부가 가무잡잡한 갈색을 가졌다. 비잔틴 제국의 지배층은 로마인이며 동유럽에서 온 slave 족, 북부 아프리카에서 온 베르베르족 Berber등 다양한 민족이 섞여서 살면서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쓰며 Orthodox 정교를 믿는다는 자부심으로 함께 묶여졌다. 이교도들도 그리스도 정교로 개종을 하며 문화적으로 Hellenistic people의 정체성을 가진다.




이태리의 로마네스크 미술은 비잔틴 제국과 직접 접촉을 했으며 로마제국의 건축에서 뜯어온 부분들을 많이 사용하여 로마미술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다. 이탈리아의 동쪽에 위치하는 베니스 항구를 통해 비잔틴 제국과 꾸준한 교역을 해 왔으며 비잔틴 제국의 artisan 을 데려다가 피사에 성당을 짓고 project 가 끝나면 돌려보낸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이탈리아 반도는 신성로마제국 Holy Roman Empire 의 소유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자신의 기사가 공훈을 세우거나 측근인 독일인을 이탈리아로 보내어 땅을 주고 다스리게 하는 영주령으로 지방분권이 심한 상태였다.






이탈리아 로마네스크 미술

Abbot Desiderius (r.1058-85, Pope Victor III)


 
몬테 카시노 수도원의 원장 데지데리우스는 Fromis 에 개인의 예배당 겸 수도원 산 안젤로 Basilica of San’t Angelo를 세운다. 열정을 가지고 일관성 있는 미술 작품을 보여준다.  


1.산 안젤로 Basilica of San’t Angelo in Formis, 1072

              
 
로만아치가 보이며 초기 기독교 양식과 비슷하다. 기둥은 이전의 고대 로마에서 쓰던 고전적인 단추기둥 entasis 스타일로서 로마건축이 폐허가 되면 자재를 줏어다 앞뒤로 깍아서 쓰는데 이것을 spolia 라고 한다. 
 

Dedication Portrait, Abbot of Desiderius of Monte Cassino, Basilica of San’t Angelo in Formis 



제일 왼쪽편에 (천사들 옆으로) 데지데리우스 수도원장이 교회를 바치는 헌정초상이 있다. 프레스코 fresco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의 남쪽에서 고대부터 쓰던 미술 기법으로  이 지역은 조각을 하지 않고 주로 그림을 그렸다. 데지데리우스 원장이 비잔틴 계통의 기술자를 불러오고, 이탈리아 지역의 장인에게 비잔틴 양식으로 유도해서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비잔틴 문화의 영향으로 천사의 옷이 제국의 의례용 의상과 비슷하다. 건조해지면 칠이 벗겨지는 이유로 인해 보관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Fresco, San’t Angelo, Formis 1080


        
옷의 주름이 전형적인 비잔틴 표현 방식이며 유럽을 방문한 수도승이 보고 스켓치를 해서 영국에 가서 필사본을 만든다. 이탈리아는 유럽과 비잔틴을 이어주는 가교 역활를 한다.


Cain killing Abel in the basilica of Sant'Angelo in Formia, Italy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장면의 비잔틴 스타일의 프레스코화이다.


Christ with the cross  in the basilica of Sant'Angelo in Formia, Italy


빌라도 Pilate 가 손을 씻고 예수님이 시몬 Simon of Cyrene의 도움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있다. Byzantine 스타일의 fresco 이다.


2. San Clemente, Rome 1100-25


 
로마네스크식의 초기 기독교 양식으로 이전의 로마의 양식을 이어받은 복고풍의 교회이다.


Apse Mosaic, Church of San Clemente, first quarter of 12C





12세기 초에 들어와서 초기 기독교 교회를 연상시키는 복고풍이 유행을 하는데 모자이크 mosaic 기법으로 lamb of God 의 양과 십자가 양 옆에 마리아와 요한이 서 있다.



Near East 1135 
 


1차, 2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해서 세운 나라들이 위의 지도에 + 로 표시되어 있다. 십자군은 성공을 하는듯 했으나 12세기 말에는 영토를 도로 다 잃어 버린다. 예루살렘 일부가 십자군에 의해 점령이 되고 위성국가 예루살렘 왕국이 들어서는데 왕이 첫째 딸인 멜리상드 Melisende 에게 나라를 물려준다.

당시의 풍습은 장자 상속제 primogeniture (프리모제니쳐) 로 장남이 왕가를 계승하고, 둘째 아들에게는 공작 Duke 이라는 명칭을 주어 지역의 땅을 떼어주어 다스리게 했다. 귀족 집안에서는 첫째가 집안을 상속하고 둘째 아들은 영주의 눈에 들어 기사가 되거나 전쟁에 나가 땅을 나누어 받아서 자신의 재물 fortune 은 스스로 벌어야 했다. 셋째 아들은 주로 신부가 되어 집안을 위하여 기도를 하거나 수도원장, 교황이 되어 가문을 빛내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그런데 11세기 말, 12-13세기 십자군 원정이 시작되자 이런 전통에 문제점이 생겼다. 패배하면 땅을 잃으니까 나이가 찬 아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에 나가는데 가문의 혈통을 이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왕족은 딸에게 집안을 물려주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멜리상드가 예루살렘 왕국을 잇고, 그녀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왕국은 70-80년 존속하다가 아랍에게 멸망한다.


3. Christ, Virgin Mary, St. John Evangelist, 멜리상드 시편 Melisende Psalter 1131-43



Melisende 여왕은 남편에게 결혼 선물로 멜리상드 시편을 받는다. Roman Catholic Europe 과 Eastern Orthodox Byzantine Empire의 합한 양식의 필사본이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Christ's entry into Jerusalem, the Melisende Psalter


     
멜리상드 시편은 비잔틴 제국에서 온 예루살렘 왕국의 화가 Basilius me fecit 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학자들은 추정을 하며 음영법과 3차원적 응용법, 주름이 비잔틴의 영향을 받았다.


4. 산타 마리아 Santa Maria in Trastevere, Rome 1130-43


 
교황 이노첸트 Pope Innocent II (r 1130-43) 가 로마 근처의 트라스테베레의 버려진 땅에 자신의 사재를 털어 작은 규모로 산타 마리아 성당을 짓는다.


Apse Mosaic, Santa Maria in Trastevere, 1140



이때까지의 도상은 예수님 중심이었는데 모자이크의 금장식에 성모님이 예수와 동격인 것처럼 자리하고 있다. 교황 이노첸트가 후원을 하는 새로운 개념인 마리아 대관 Coronation of Virgin Mary 도상이 13세기에 사르트르 성당, 노트르댐 성당 등 곳곳으로 퍼진다.


성모의 대관 Coronation of Virgin Mary


 
성모 마리아가 여왕 Coronation of Virgin Mary으로 우대받는 개념은 12세기에 산타마리아 교회가 처음으로 시작한 독창적인 도상이다. 이 개념의 신학적인 근거는 시편 Psalm 44:11-12 Come chosen on to my throne 에 있는데 원래의 뜻을 아니지만 마리아와 연관을 시켜 새로운 해석을 한다. 12세기는 성모님을 예수님과 동격인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성모 신심이 불붙는 시기였다. 클레르보 신학자 Saint Bernard of Clairvaux 도 성모의 위치를 논하는 글을 이시기에 쓴다. 십자군 원정이 일어나면서 12세기 전반에 걸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재산권도 갖게 되는 동시에  교회의 가르침이 딱딱한 신학으로만  흐르면 대중의 관심을 끌기가 어려워 여왕 이미지를 끌고 왔다는 해석도 있다. 시대에 따라 성인의 인기도 달라지는데 이 시기에 성모 축제일이 많아지며 성모 일생을 주제로 한 그림 역시 많이 나온다.


5. 모데나 성당 Modena Cathedral, Italy 1099




            
모데나 성당은 Canossa 의 Mathilda 가 후원을 하여 지은 성당으로 Wiligelmo 가 inscription을 남겨서 중세에 드물게 이름이 알려진 조각가이다. 카놋사는 토스카니의 북쪽 지방에 있는 공작영인데 딸인 마틸다가 물려받아서 통치를 한다. 입구에 로마식의 둥근 아치가 있다.

아담, 이브의 창조 Creation of Adam and Eve, Fall of Man, façade reliefs, Modena Cathedral


 
태초에 말씀 logos 이 있었고(왼쪽), 아담을 창조한 후 하느님은 그를 잠들게 하고 이브를 아담의 갈빗대에서 뽑아내신다(중간). 그리고 여자와 남자는 선악과를 따 먹는다(오른쪽).

아담과 이브의 낙원 추방, 노동 Expulsion of Adam and Eve, Labor, façade relief s, Modena Cathedral

 

비잔틴 제국의 평면적 양식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서유럽의 조각의 모습이다. 아담, 이브의 몸의 비율이 나타나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로마네스크 스타일의 자신들의 기술이다. 창세기에서 언급되는 노동이 자주 조각에 등장한다. 일반 신자들의 힘든 현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원죄를 설명하고, 원죄에서 구해주기 위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힘든 현실을 견디며 선한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임을 조각의 program을 통해 교육 시킨다. 아무리 일자무식 농부라도 이 조각을 보면 원죄와 최후 심판을 이해하며 근처 성인의 무덤을 순례하거나  이웃에 대한 자선 charity 을 베풀며 살고자  한다. 조각 program 을 통하여 종교의 ideology 를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6. 카놋사의 굴욕 Submission at Canossa 1077


 
마틸다가 카놋사를 다스리는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Henry IV 가 성직 임명권을 내어놓으려 하지 않아  교황 Gregory VII 와 대립이 생기고 교황은 헨리4세를 파문 excommunication 시킨다. 교황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12세기 십자군 시기에 마틸다가 헨리 4세와 교황을 카놋사에 초대하여 만날 기회를 만들어 중재를 한다. 헨리4세는 추운 겨울날 3일 동안 무릎을 꿇고 교황에게 비는데 이 사건을 카놋사의 굴욕 Submission at Canossa 이라 한다.


Henry IV, Pope Gregory VII, Mathilda



권력있는 여성 군주 마틸다가 정치적 위기를 해결했으며, 중세의 낙후 모습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도구를 이용해 권력을 잡았음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마틷다의 복음서 Gospel Book of Mathilda of Canossa, Countess of Tuscany 1077



카놋사의 마틸다와 관련된 필사본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인 미술 작품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기법은 좀 모자라지만 나타내려는message 는 잘 전달한다.


Gospel Book of Mathilda, Canon table, folio 15


각 복음을 대조해서 읽도록 대조표 canon 를 복음서에 포함시켰다.


 가나의 혼인 잔치 Marriage of Cana, folio 83, Gospel Book of Mathilda


예수님의 최초의 기적이 성모님의 부탁으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나타난다.


성전 정화 Cleansing of the Temple, Gospel Book of Mathilda of Canossa



Cleansing of the Temple은 신성한 제단에서 장사하지 말라는 복음서의 내용인데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마틸다의 복음서에 이 내용이 특이하게 들어있다. 교황의 입장을 전격적으로 대변하는 마틸다는 관련있는 수도원을 통해서 친교황쪽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 시편 Gospel Book of Matilda 를 만들게 한다. 로마네스크의 소박한 양식이지만 message 전달에는 효과가 있었다.


7. 산 미니아토 알몬테 San Miniato at Monte, Florence, mid 11-12C
 

오래된 초기 기독교 성인 미니아토 Miniato 의 유골이 있는 성당으로 산위에 있으므로 한눈에 피렌체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Interior,  San Miniato at Monte, Florence
       
로만 아치가 있으며 가운데 모자이크 장식이 있다.


Nave, San Miniato at Monte, Florence
 
초기 기독교 양식으로 비잔틴 제국의 장인을 데려와 색깔 다른 대리석 조각으로 장식을 했다.


Pulpit , San Miniato at Monte, Florence

 
비잔틴 제국의 코즈마티 cosmati 기법으로 꼬아서 무늬를 만든다. 


8. Baptistery of S. Giovannie, Florence, Italy 1060-1158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둥근 아치, 초록과 흰색의 대리석을 섞어서 기하학적 문양 장식을 했다.


Mosaic Decoration on Ceiling, Baptistery of S. Giovannie, Florence, Italy


비잔틴 제국의 초기 기독교의 중앙 집중식 교회의 모양이다. 지붕이 팔각형 Octagon 으로 코스마티 테크닉을 이용하여 색깔있는 대리석으로 기하학적 무늬를 넣었다.


9. 피사성당 Cathedral Complex, Pisa, Tuscany, Italy 1053-1272



이태리 대도시의 전형적인 성당 구역 complex 으로서 본당 교회cathedral, 묘지campo santo, 세례당 baptistery, 종탑 tower, 종루belfry로 구성되어 있다. 


피사의 사탑 Pisa Campanile (Leaning Tower)


  

세례당 Pisa Baptistery 


 

묘지 Campo Santo 콤포산토
 
성당에 딸린 공동묘지이다.


Apse, Pisa Cathedral


로마네스크형 건축이다.


Interior, Pisa Cathedral              

 
단독 기둥을 뜯어온 것으로 compound pillar 라고 하며 지붕은 barrel vault 가 아니라 오래된 스타일의 나무 지붕 coffered ceiling 이다.


Norman Sicily, Map of Norman Kingdom around 1500 


              

Sicily는 문화적으로 이태리와 떨어진 섬으로 시실리안이라고 불리며 지금도 이탈리아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노르만 시실리Norman Sicily는 노르만에 살던 기사 warrior 계급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윌리암공은 영국을 점령했고, 다른 일부는 해적 생활을 하다가 배를 타고 넘어와 12세기 초의 무법천지 no man’s land 인 시실리와 나폴리를 점령한다. Norman Sicily 는 노르만계 전사가 세운 나라이며 주변에는 아랍의 무슬림이 둘러싸고 있고 일부는 그리스의 비잔틴과 이웃 영토를 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노르만 시실리는 Roger II, William I, William III 때에 번성하고 백성들과 친화, 친교 정책을 썼으며, 서유럽의 강력한 왕국의 공주와 결혼을 하여 세력을 굳혔다.  





1. Martorana, Palermo 1143-48

 
팔레르모는 시실리의 수도이며  성당 내부는 바로크 양식이다.


Exterior of tower of Martorana, Palermo

 

Christ in Majest Mosaic in dome Martorana, Palermo

             
모자이크 장식이며 둥그런 테 안의 글자는 그리스어이다.  노르만 시실리는 지배계층이 프랑스어를 쓰는 Norman French 이며 국민들은 농부, 어부들로 아랍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랍인들은 지배계층의 종교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 지배계급은 프랑스어를 사용하지만 풍습과 언어는 아랍 계통으로 구조가 복잡한 이원적 국가 체제이다. Elite Norman French 는 소수의 지배계급으로 비잔틴 문화에 동화되어 갔고 구조물을 지을 때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Christ Crowning Roger II, Martorana, Palermo

로저황제가 예수에게 왕위를 받는 그림으로 황제의 옷이 비잔틴 황제의 의례옷과 비슷하다. 노르만 지배계급은 비잔틴식 도상을 건축물에 그대로 그렸다. 우리는 비록 노르만디라는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예수에게 인정을 받으며 비잔틴 제국을 이어받는다는 정통성을 주장하고 지배계급의 상징적 힘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Christ Crowning Constantine VII, Ivory, Martorana, Palermo, 945
 

예수가 콘스탄틴 7세를 대관하는 Ivory 아이보리이다. 노르만 왕국은 Elite Norman 이 쓰는 불어, 행정처리를 하는 그리스어, 밑바닥 국민이 소통하는 아랍어의 세가지 언어가 복합된 나라이다. 이런 작품을 보는 층은 비잔틴 제국에서 건너와 그리스어를 잘 알고 사회 행정을 담당하는 지식인들이다. 황제가 미술작품을 통해 인자하고 좋은 군주의 이미지를 만들어간다. 


Hagia Sophia, Emperor John II Komnenos, Virgin Mary and Empress Irene Mosaic, 1118

 
비잔틴 제국의  아기아 소피아 성당에 남아있는 mosaic으로 황제,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 왕비의 도상이 시실리의 모자이크에 나타난다.


2, Cefalu Cathedral, Sicily 1148

 

Nave, Apse, Cefalu Cathedral, Sicily 1148

 
시실리의 세팔루는 아주 경치가 좋은 곳으로 세팔루 성당이 있다. Arch 가 말발굽 horse shoe 모양을 하고 있는 이유는 스페인으로 건너간 이슬람쪽 엔지니어를 썼기 때문이다. 이슬람, 비잔틴, 로마네스크의 세가지 문화가 복합된 이국적인 문화이다.


Pantocrator mosaic, apse, Cefalu Cathedral, Sicily 1148

 팬토크레이터 Pantocrator는 전지전능 Almighty 을 의미하는 예수의 도상이다.


Pantocrator in Hagia Sophia, Istanbul  12세기 

비잔틴 제국의 아기아 소피아 성당의 예수의 모습과 세팔루 성당의 예수의 모습이 동일하다.


3. 몬레알레 성당 Monreale Cathedral, Monreale, Italy 1174

몬레알레 성당의 외관은 Arab-Norman style이다. 윌리엄 2세가 후원을 하여 지은 성당으로 이슬람의 ornament pattern 이 나타난다


Apse, Monreale Cathedral
 
세가지 스타일- Norman-French, Byzantine and Arab 의 흥미로운 combination 이다.


Cloister, Monreale Cathedral
 


Cosmati Work, Floor, Monreale Cathedral
 
대리석 조각을 모아서 꼬은 문양을 만드는 이슬람의 코즈마티 방식이 floor 에 보인다


Cloister Column , Monreale Cathedral
 
코즈마티 문양의 기둥이다.


Noah’s Ark, Monreale Cathedral, Italy 1174

 

Winchestor Psalter, England 1150
 

영국의 윈체스터 살토가 시실리의 양식과 비슷하다. 왜 그럴까? 1174년에 영국의 헨리 2세의 세째 딸이 시실리의 윌리엄 2세의 부인이 된다. 시실리 왕국으로서는 서유럽의 군주와 혼인 관계를 맺어 놓으면 전쟁시에 도움이 된다. 시실리의 사절단이 영국을 방문하고 영국의 수도승, 화가를 비롯한 외교 사절단이 공주가 결혼하러 시실리로 떠날 때에 함께 간다. 이때 대규모 문물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1170년대를 전후로 하여 비잔틴 양식이 영국의 영향을 받는다. 몬레알레 성당의 모자이크 장식에 영국 미술의 영향(윈체스터 시편)이 꽤 나타난다. 중세시대의 화가들도 이런 식으로 가끔 여행을 하였다.

영국에 또한 비잔틴 미술양식이 현저하게 드러나는데 그 이유는 로저2세 왕(1130년대-1150년대 재임)부터 시실리 왕국이 성립되면서 영국의 노르만 귀족과 시실리의 노르만 왕실 사이에 꾸준한 교류가 있었다. 1150년대부터 화가나 수도승들이 여행을 통해서 양식의 교류가 있었을 텐데 문서로 남아있는 증거는 없고 제일 유명한 사건은 영국왕 헨리2세의 딸이 노르만왕국 윌리엄2세의 아내가 된 1174년의 외교사절단 방문이 기록으로 잘 남아있으니 이에 비추어보아 공식/비공식적 경로로 꾸준한 교류는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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