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 (3-6세기) 1/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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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7,558회 작성일 11-01-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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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르네상스 미술 2nd hour: Early Christian Art and Byzantine Art 초기 기독교 미술(3-5C) 과 비잔틴 미술(6C- )
서유럽과 동유럽의 정치 종교적 배경
로마제국은 27-395년 까지 존속하다가 395년에 동로마, 서로마로 분리가 되고, 476년에 서로마는 망하고 신성로마제국이 계승을 한다. 터키, 그리스 지역의 동로마는 비잔틴 제국으로 1453년 까지 계속된다. 서유럽의 중세 교회의 모습은 정치 지도자와 교회 수장이 분리가 되며, 로마의 bishop 이 서유럽 교회의 장이 되는 Pope 제도가 나타난다. 비잔틴 제국은 로마제국의 정치 문화 체제를 그대로 계승하여 제국의 황제가 동시에 교회의 수장이 된다. 곤스탄티노플의 bishop 이 동유럽 교회의 수장이 되는 patriarch 제도가 생기고 동시에 제사장의 권한을 가진 황제의 힘은 막강했기에 대규모 성당을 짓는 큰 규모의 project 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정교일치가 아닌 서유럽은 황제의 힘이 제한이 있었다. 중세 초기는 400년 정도부터 1000년 정도까지 서구유럽의 미술에 대해서 적용된다. 서구유럽은 유목민 게르만족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400-700년 동안 서서히 기독교화가 진행되고, 동로마 제국의 지중해 문화권처럼 고대 로마/그리스 문화에 대해서 많은 접촉이 없다. 1000년이 넘어가면서 차차 미술작품에 로마 문화 및 비잔틴 문화권의 영향이 일어나며 15세기 르네상스에 가서 reverse antiquity 현상이 벌어져 비잔틴 예술을 토대로 하여 고대 미술을 적극적으로 모방한다. 중세를 지내는 동안 서유럽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저 멀리 동쪽에 있는 비잔틴 제국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감돌고 있었다.
헬레니즘 제국을 계승한 비잔틴제국은 고대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황제 중앙집권 아래서 행정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고,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유럽과는 의사소통이 안 되었다. 비잔틴 제국에서는 소수의 교회 수도승만이 라틴어를 알았기에 image 와 language 에 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초기 기독교인의 정치 종교적 배경
로마제국 313년에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밀라노 칙령 Edict of Milan의 공표와 더불어 종교의 자유가 혀용이 되고 기독교는 힘을 얻어, 3-5세기에 많은 로마시민이 개종을 한다. 기독교는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이 영혼의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간다는 점이 appeal 되었는데 점차 퍼져나감에 따라 로마의 지식인들도 개종을 한다. 로마의 안정적인 공무원인 군인 신분의 유태인 사도 바울 St. Paul 은 새로운 종교를 배움의 기회로 여겨 기독교인이 된다. 4-5세기에 upper class 기독교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소외 계층이 밤에 변두리에서 모여서 하던 집회를 벗어나 바티칸 강가에 기독교 공동체 congregation를 세울 정도로 힘이 확장된다.
Byzantine Empire, Justinian Emperor, first Byzantium Emperor 527-65
중동 Near East 은 기독교 Christianity를 포함한 다른 모든 종교의 발상지이다. 유대교 Judaism, 이슬람교 Islam, 미트라교Mithraism, 마니교 Manicheanism, 영지주의 Gnosticism 등이 중동에서 시작된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는데, 차이점은 유대교는 메시야의 재림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으며 구약만을 경전으로 인정한다. 기독교는 나자렛 예수가 메시야이며, 구약 Old Testament, 신약 New Testament 을 경전으로 사용한다. 6세기에 생겨난 이슬람은 알라신(하느님)을 믿지만 예수는 단지 예언자 중의 하나이며, 모하메드 Muhammad 를 메시야로 믿는다. 중앙 아시아 유목지대에서 말고기를 금하고 채식주의를 주장하는 마니교, 명상 위주의 철학적 학파인 영지주의 등이 초기 기독교 수행자에게 영향을 끼친다.
4대 복음사가 Four Evangelists 인 Mark, Matthew, Luke, John 이 활동한 시기는 1세기이며, 베드로 St. Peter 가 예수의 authority 를 받아서 로마의 초대 bishop 이 되며 사울 Saul 은 개종 proselytize 하여 바오로 사도 St. Paul 이 되며, Saint Augustine, Saint Ambrose 등의 교부들이 기독교의 뼈대를 만들며 수도원 제도 monasticism 가 확립이 되는 등 초기 기독교는 종교적 열정이 넘치는 시기였다.
초기 기독교 미술의 배경 Early Christian Art (3-5세기)
중세에 들어와 로마제국 사회가 혼잡해짐에 따라 문화수준이 퇴보하고 조각가, 화가는 노예계층이 되고, 장인은 자신의 직업을 유지 못 하게 되어 예술의 전통이 끊어진다. 중세에도 로마시대의 공사는 남아 있었지만 초기 기독교인은 로마 그리스 신화의 신상을 이단시했으므로 고대 미술을 모방하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듀라 유로포스의 시기 250년 전후 기원후 3세기 정도를 말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로마의 시민이지만 우상숭배를하는 로마인들과는 다르다는 기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므로 로마의 신상을 숭배하는 비기독교인들이 이단자임을 밝히면서 기독교인들과 구분하였다
1. Dura- Europos Synagogue, mural, Syria 245-256 AD
집회당 듀라 유로포스 시나고그의 벽화이다. 복음서 사가가 화가를 시켜 유대인의 전통인 구약성서에 설명된 이미지를 그리게 했다. 십계명에 따르면 유대인은 신의 형상을 만들 수가 없으며 마리아 신상도 금하고 있다. 하지만 BC 3세기 부터 문화적으로는 유대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로마에 속하는 유대인들은 로마의 조형예술의 발달 분위기에 휩싸여 로마제국의 장인, 미술가를 고용하여 자신들의 집회당을 장식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초기 기독교 미술은 남아있는 것은 없지만 3-4세기의 듀라 유로포스와 비슷할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Assembly Hall of Synagogue at Dura-Europos, Syria 245-256 AD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인 Dura-Europos Synagogue 는 초기 기독교 미술의 시작으로 보며, 아직 도상이 확립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구약의 이미지를 인용하며 양쪽의 벽에 성서일화를 그린다. 다윗왕의 중요 사건, 마리아, 예수의 탄생, 유대인 지도자와 군사의 싸움, 솔로몬 왕의 궁전 등이 벽의 tile 에 그려져 있다. Iconography 의 모델이 3-4세기에는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누구나 다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Nativity, Annunciation, Visitation 의 icon 은 8세기에 와서야 확립된다.
2. Catacomb of St. Peter and Marcellinus, Rome, 4C
초기 기독교인의 공동묘당인 카타콤 Catacomb 으로 40 남짓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로마인들에게 장례는 중요한 문화행사였다. 소박한 장식을 한 초기의 지하묘당으로, 예수를 상징하는 shepherd 가 중앙에 있고 노아의 방주, 요나와 고래, 포도나무 밑에 술취한 나체 노아가 반원에 그려져 있고, 팔을 벌린 예언자 (orant figure) 가 사이에 끼어있다. 1000년 이후에 가면 도상의 양식이 갖추어지지만, 중세 초기 (400-1000) 에는 구약에서 마음대로 골라서 그렸다.
3. Calf-Bearer, Greek Art, BC 5C Good Shepherd, Phrygia, 3C Early Christian, marble
고전적인 스타일의 양치기 복장을 한 예수와 송아지를 들고 아테네 여신의 의식에 참여하러 가는 그리스 남자의 masculine 한 모습이다. 형식은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 빌려 오지만 내용은 기독교식으로 해석한다. 이처럼 다른 전통에서 image 를 빌려와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합주의 syncretism 이라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바탕한 motive 를 가져다가 기독교적 의미를 담아 응용하는 창의성을 보인다.
4. God as Shepherd, Catacomb of St. Peter and Marcellinus, Rome, 4C
교회 지도자가 화가에게 그리라고 주문을 하고, 화가는 전통에서 이미지를 빌려온다. Early Christian 은 초기에는 최상급의 화가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스켓치 그림이 어설프지만 창의적인 면이 있다고 해석된다.
5. Sarcophagus of Junius Bassus, Saint Peter, Vatican, Rome, marble 359 AD
초기 기독교 개종자인 부유한 로마시민 유니우스 바수스의 대리석 관이다. 기독교인으로 죽었음을 나타내기 위해 기독교적 motive 로 관을 장식한다. 당시의 로마인의 관에는 그리스의 미소년이나 hunter 혹은 비너스로 장식을 했다. 초기 기독교 미술은 아직 정형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므로 skill 이 좋은 조각가를 시켜 자신의 관에 성경의 일화를 그리게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 로마군에 잡힌 베드로, 욥의 고난, 아담 이브,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사자굴의 다니엘, 사도 바울의 체포 등이 조각되어 있다. 고대 신상을 쫒아서 예수를 아폴로신처럼 곱슬머리의 미소년으로 조각했는데 고전문화를 빌려서 기독교를 표현한다. 초기 기독교 예술로는 detail 이 많고 정성이 들어간 최상위급에 속하는 작품이다.
초기 기독교 교회 건축 양식
초기 교회는 처음에는 신분이 낮은 자가 밤에 몰래 모이는 장소였지만 밀라노칙령 이후 기독교 신자들이 바실리카를 모델로 삼아 큰 교회를 짓는다. 교회는 무엇을 상징하는 곳인가? 교회는 House of God 으로 Heaven in Jerusalem 의 분위기가 나야 한다. 성경의 묵시록 Revelation 에서 나타난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최신의 기법 공법을 동원해서 찬란한 빛이 더 많이 더 높게 들어오게 디자인 했다. 바실리카형 교회basilica plan 와 원형 교회 central plan 의 형식이 나타난다.
1. Plan of Old St. Peter’s Basilica 326-333 AD
Old St. Peter's Basilica 구 베드로 성당은 Constantine 대제가 초대 교황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지은 shrine 으로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인 Latin Cross 모양이다. 큰 규모이지만 나무 지붕의 허름한 건물로서 어둡고 벽은 marble 이지만 화려하지 않다. 고딕시대에 가서는 스텐드글래스로 화려하게 하지만 그전에는 어두운 교회를 밝히는 촛불과 잘 어우러지는 금이 들어간 모자이크가 시각적 체험을 위한 효과적인 장식이었다.
초기 기독교 미술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motive 에 기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바실리카는 로마시대에 사람이 모이는 정치적인 function 을 하던 장소로서, 직사각형의 십자가 모양으로 지었는데 이 양식을 빌려서 교회를 짓는다. 현재 우리가 보는 베드로 성당은 르네상스 시기에 미켈란젤로의 건축 디자인으로 다시 지은 것이다.
2. Reconstruction Drawing of Old Saint Peter’s Basilica, 324-400
atrium 은 courtyard 이며, narthex 는 큰 문이며, nave 는 중앙복도, apse 는사제가 의례를 집전하는 곳이다. 6-7세기에 가면 순교자, 성인들이 50-60명이 되면서 몇명의 성인들을 같은 날에 제사 지내게 되는데, 제일 중요한 성인은 apse 에서 지내고 나머지 성인은 side alter 에서 지낸다. 직사각형 바실리카를 응용하여 양쪽의 wing 을 붙여서 사람이 모이는 공간 transept 을 만든다. 교회는 소수의 elite 만 들어가는 곳으로서 일반인들은 7 sacraments (세례성사, 견진성사, 고해성사, 성체성사, 혼인성사, 신품성사, 병자성사) 에만 참가한다.
3. basilica plan church
4. central plan church
초기 기독교 교회의 양식에는 basilica plan 과 central plan 의 두가지가 있다. 구베드로 성당은 basilica plan 의 십자가 모양이며 콘스탄자 성당은 central plan 의 원형 양식이다. 콘스탄틴 대제의 딸이 죽자 기독교인의 아름다운 장례를 위해서 개인의 chapel 같은 작은 규모의 원형 교회 Church of Santa Constanza를 짓는다. 황제같은 특별 신분의 가족이 묻히고 재단 endowment 를 설립해서 죽은 영혼을 위해 미사와 기도를 계속 바치게 한다. 서유럽은 직사각형 교회인 basilica plan 이 자리를 잡고 비잔틴 제국은 원형교회인 central plan이 기본 형태가 된다. 서유럽의 구 베드로 성당과 비잔틴 제국의 소피아 성당이 양대 건축양식을 대표한다.
5. Church of Santa Constanza, Rome, 350AD
원형 교회 central plan church로서 로마 황제의 무덤 mausoleum을 본딴 것이지만 기독교적 의미로 바꾸어진다. 초기 기독교 교회의 exterior 는 볼품이 없으며 대리석 장식이 있었지만 떼어가고 보수가 되지 않았다. 천장에 mosaic 장식이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살면서 좋은 일을 해서 사후에 성인으로 추대받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6. Saint Apollinare in Classe, Ravenna, Italy 533-549 AD
라베나의 초대 bishop 인 아폴리네르가 예수와 함께 변모 transfiguration 하는 장면을 금으로 도금된 돌덩어리 모자이크로 표현했다. 모자이크mosaic가 초기 기독교 미술에 주요 장식으로 등장한다. 로마시대의 모자이크는 넓은 장소를 장식하기 위해 큐브를 모아서 그림을 그리는 바닥 장식용의 싸구려 기법인데, 그 테크닉을 사용하여 시각적 체험 vision 의 효과를 노렸다.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한 로마시대의 그림의 전통은 끊기지만, 견고하고 손상이 없는 모자이크하는 사람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7. Dome of the Rock, Mosque, Jerusalem 691 AD
The Dome of the Rock 은 예루살렘의 Temple Mount 에 위치한 중요한 Islamic shrine 이다. 모슬림 Muslims은 모하메드가 승천한 Temple Mount 를 성역 Noble Sanctuary 으로 정하고 691 년에 모스크를 지었는데 가장 오래된 Islamic architecture 이다. 이 site는 구약에서 머릿돌 Foundation Stone 로 명시된 곳으로 아담의 창조가 이루어진 곳,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이곳은 솔로몬왕이 Solomon’s Temple 을 지었던 장소이기도 한데 70 년에 로마의 예루살렘 점령시에 솔로몬Temple 은 파괴되었고 637년에 모슬림이 시리아를 정복했을 때 다시 파괴된다. 689 - 691년 사이에 이슬람의 순례성지 Dome of the Rock 로 지어진다.
8. Mausoleum of Galla Placidia, Ravenna, Italy, 425-450 AD
Emperor Honoriu 의 sister 인 갈라 플라시디아 공주의 무덤으로 왕실의 묘당이다.
Good Shepherd mosaic wall, Mausoleum of Galla Placidia, Ravenna, Italy, 425-450 AD
4세기의 Catacomb of St. Peter and Marcellinus 에서 나타난 shepherd 의 도상과는 많이 달라졌다. 전경, 후경의 원근법이 나타나고, 양치기 복장도 달라지고, 미소년의 모습도 아니다. 모자이크이므로 detail 이 다소 떨어진다.
비잔틴 미술 Byzantine Art
비잔틴제국의 황제가 동시에 교회의 수장으로서 황제가 막강한 힘이 있어 대규모 건축사업을 일으킨다. 수학, 물리학, 천문학이 발달하여 펜텐티브 같은 공학적인 발명도 하여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소피아 성당을 짓고, 라베나에 산비탈레 교회를 짓는다. 소피아 교회는 지금은 박물관이지만 힌때는 이슬람교 신전으로 모스크로 쓰였고, 기독교 세력과 6-7세기에 나타난 이슬람교가 함께 교류를 한다.
6-15 세기까지 존속한 비잔틴제국의 미술은 1000년 동안 별로 바뀌는 점이 없다. 미술에서는 정면성, 좌우대칭 같은 경건하고 정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 중앙집권의 확고한 왕권을 가진 딱딱한 나라인 만큼 미술에 dynamic 한 점이 없이 상하 위계질서 hierarchy 가 강조된다. 인물들은 호리하고 길쭉하게 그려지는데, 제일 중요한 figure 인 예수, 마리아는 중앙에 크게 들어가고 덜 중요한 나머지 attendant figure 들은 작게 옆에 들어간다. 새로운 공학 기법과 테크닉의 시도는 있지만 미술적 재현으로는 전통convention 과 hierarchy 만을 중시했다.
1. Church of San Vitale, Ravenna 547 AD
Abraham's life, mosaics, Church of San Vitale, Ravenna 547 AD
6세기에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유스티아누스 황제 치세는 비잔틴 제국의 황금기에 속한다. 산비탈레 성당은 팔각형의 건축물이며 모자이크와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있다.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후원 아래 라베나의 야심만만한 주교 막스미아누스 Bishop Maximianus 가 돈을 끌어와 건축을 시작하고 전 과정을 수행했다.
Emperor Justinian and His Attendant, Church of San Vitale, 547 AD
중앙에 황제가 서 있고 오른쪽에 막스미아누스 주교가 서 있는데 황제의 권위를 끌고 오며 자신의 이름 막스미아누스를 크게 써 넣어 권력을 높이 보이게 한다. 황제와 막스미아누스는 정면을 보고 있고 나머지 figure 는 겹쳐있다. 옷이 직선으로 쭉쭉 내려오고 전혀 역동감이 없다.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 들어있는 보석상자와 금 십자가, 동그란 무늬가 있는 황제의 비단옷은 당시의 물질의 풍요를 나타낸다. 시종이 Christ 를 상징하는 카이로 chi rho (Greek letter XP) 가 있는 방패를 들고있다. 부릅뜬 눈과 심각한 표정은 영혼을 맑게 보이게 하며 발의 위치도 고정적이다.
Empress Theodora and Her Attendant, Church of San Vitale, 547 AD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왕비 테오도라와 시녀들이다. 시녀가 교회에 바치는 보석곽을 들고 있으며, 왕비의 다리 앞의 Adoration of Magi (현자가 아기 예수께 선물을 바침) 그림은 왕비가 교회에 선물을 바치는 장면임을 나타낸다.
Empress Theodora, Church of San Vitale, 547 AD
왕비는 비단옷을 입고 있는데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6세기에 중앙 아시아의 사람을 시켜 중국의 누에고치를 숨겨서 들어와 비단 만드는 기술을 성공시킨다. 왕과 왕비의 옷은 제국의 찬란한 문명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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