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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와 도큐멘타 1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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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5,544회 작성일 11-01-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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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19th Hour : Biennales and Documenta 비엔날레와 도큐멘타



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

68 혁명 이후 1970년대 말 서양미술의 흐름은 페미니즘으로 넘어가고, 그 계보를 이어 증폭시킨 현대 작가로 Patty Chang 을 들 수 있다. 70-80년대 미술계는 다양해지는 가운데 독일에서 일련의 painting 작가를 묶어서 신표현주의 Neo-Expressionism라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가 된다. 1945년에 2차 대전이 종전되고, 포츠담 회담에서 영, 소, 프, 미는 독일을 4등분하여 소련은 동독을, 영  미 프는 서독을 감시할 것을 결정한다.  이 당시에는 서독과 동독은 영토적으로만 구분했지 자유롭게 왕래했다. 많은 동독의 작가가 서독으로 망명을 하고 사람들이 서독으로 자꾸 이주하자 1961년에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지만 1989년에 이 장벽은 붕괴되고 1990년에 통일이 된다.

동독 망명작가들이 중심이 되어 독일에서 신표현주의 운동이 일어나는데 주요한 화두는 ‘역사’ 였고 그중에서도 Holocaust 에 대한 trauma 를 이야기한다. 독일 작가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생겨나는 것과 1963년에 나치 군인 아이히만 Eichmann의 전범 재판을 목격하는데 독일 작가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는 <악의 보편성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이라는 글을 쓴다.

역사적으로 2차 대전 이후에도 전쟁이 하루도 쉰 적은 없다. 1950-60년대 Cold War 의 상징 중의 하나가 Berlin Wall 이다. 2차 대전 후 탈식민지화 Post Colonial 가 되었지만 동남 아시아가 다시 신식민주의 Neo-Colonial 아래에 놓이게 된다. 자본주의의 이름을 빌려 미국이 그 중심에 서게 되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대립과 냉전을 교묘한 포장 수단으로 이용한다.

Anselm Kiefer, The Milky Way 1985-87
 

이런 상황에서 독일은 어디에도 어둡다. 독일 국민 전체는 Holocaust 라는 엄청난 사건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래도 저래도  공범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국가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기를 꺼리는데 안셀름 키퍼는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들고 나온다. 독일 국가의 symbol 이 무엇인가? 독일 국가에 대한 nostalgia 를 조목조목 들고 나온다. 바우하우스는 석공들의 조합 guild 에서 유래했으며, 몇백년전 고딕아트의 중심지가 독일이었다. 독일은 서양 철학의 핵심인 칸트, 니체, 하이데커 중심의 대륙철학을 탄생시킨 나라이다. 비로 질퍽이는 시골길, 비포장 도로를 걸어가는 독일인에 내재되어 있는 정서와 독일이라는 국가에 대한 nostalgia 가 철학, 문학 작품에 metaphor 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정서를 조금만 더 밀어부치면 독일이라는 이름 아래 다 함께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독일성이라는 감정을 attach 하는 매개체를 못 찾을 때 히틀러같은 사람이 나타나고, 대중은 쉽게 현혹이 된다. 그런 이야기를 키퍼는 하고 있다.

1970-80대 비데오 아트, 행위예술이 번지는 가운데 회화는 어떻게 되었나? Painting 은 죽었을까? Neo-Expressionist 는 캔버스 위에 지푸라기, 흙, 깨진 접시 등을 붙이고 덕지덕지 물감을 바르는 아샹블라쥬 비슷한 작품을 한다. 추상적 작품이지만 expressionism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므로 인물 figure, 누드, 고문 장면이 그림에 등장하고 경찰이 그림을 수거하며 작가는 체포가 된다.

Anselm Kiefer, Breaking of the Vessel, 1990

 

90년대에 키퍼는 설치작업을 하는데 책장을 알루미늄으로 만든다. 역사 자체는 교과서, 책으로 배우지만, 국가는 국가 이름 아래 국가 자료 및 문서보관소인 Archives 사업을 한다. 이곳에서는 대문자 H 의 History 에 나올 법한 굵직한 인물과 공식적 사건만 기록이 보관되고 있다. 장군과 고위급 정치인에 대한 기록만 있고 전쟁 중 실수로 죽은 아군에 대한 소문자 history는 어디에도 없다. 문서기록 보관소는 누구라도 열람을 할 수 있는데 어떤 문서들은 비밀 confidential 로 처리되어 있다. 60,70년대 역사학자들은 한국전쟁에 관한 문서는 CIA 와 관련이 있다 하여 볼 수가 없었다. 당시의 담당자를 찾아갈 수 없게 그 사건 관련자가 다 죽은 30-40년 후에야 공개를 한다. 문서의 공개, 비공개 문제는 국가의 힘과 관련이 되어 국가의 힘이 강하면 볼 수가 없고, 약하면 마음대로 볼 수 있다. 키퍼의 납으로 만든 책은 무거워 꺼낼 수 없고 볼 수도 없다. 설사 본다 해도 편집해 놓은 역사만 본다. 키퍼를 대표로 하는 신표현주의 작가들은 역사의 fact 와 truth 를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 Fact 는 truth 를 말하지 않으며 truth 는 숨겨질 수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는 홀로코스트의 주동자가 누구인가에 쏠린다. 가해자를 찾아내야지 직성이 풀린다. 타큐멘타리 영화 Shoah 는 1985년에 만들어진 9시간 짜리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록영화이다. 시골에 가서 땔감을 모으는 아저씨에게 ‘몇년도에 여기 살았어요?’ 하면서 과거 이야기로 끌고 간다. ‘땔감을 모으는 지역 바로 옆이 홀로코스트 가스실이었는데 그때 기억 안 나세요?’ ‘나는 먹고 살기에 바빴어. 어느 날부터 연기가 갑지기 나더라구’ 수 많은 사람을 찾아서 인터뷰를 한 것을 모은 film 이다. ‘당신은 공범자’ 라고 체포한다면 독일 국민 전체를 체포해야 한다. 수많은 유태인들이 자신이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증폭시키며  Jewish Museum 을 계속 건립한다. 2차 대전 이후에는 피해자 이야기가 자본 capital 과 연결이 되어 가해자, 피해자를 나눌 수 없고, 일상을 사는 것 때문에 가해자가 된다.


1933년 히틀러 정권이 들어서고 1937년에 Degenerated Art 라는 큰 전시회가 열린다. 타락한 예술, 쓰레기 작품을 모아서 보여주는데, 칸딘스키, 피카소, 다리파, 청기사파, 바우하우스 등의 모든 추상 작품이 여기에 속한다. 이후로 예술이 propaganda 가 되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Socialist Realism 그림만이 생산된다. 키퍼같은 예술가들은 trauma 를 가진 채 미국으로 망명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1955년에 Kassel 에서 국제 미술제 Documenta 가 열린다.

Biennales and Documenta

1. Kassel Documenta 1955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 project 이다. 지상전철 Tram 을 타고 곳곳에 내려서 작품을 본다. 카셀은 아무 것도 없는 시골로서 가기도 힘든 곳이다. 왜 하필 카셀에서 세계적인  미술전람회가 열리는가? 카셀은 비행기를 만드는 무기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2차 대전 때 가장 많은 폭격을 받은 곳으로 역사적 trauma 의 외상에 대한 상징성을 나타낸다. Documenta 에서는 전 세계의 작가가 선출이 되고 1명의 대표 curator 가 전체 전시를 구성한다.

Christo and Jeanne-Claude, 5600 Cubicmeter Package, Documenta 4, 1968
                            
멀리서도 보이는 풍선 설치 작업이다. 장소 특정적 site specific 예술이며, 야외에서 그 시간에 그 곳에 있어야 경험을 한다. 관광객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Nam Jun Paik with TV Buddha, Documenta-Performance, Documenta 6, 1977
 
백남준이 TV Buddha 를  도큐멘타에서 보이고 있다.

Satellite Telecast  Joseph Beuys, Douglas Davis, and Nam Jun Paik, Documenta 6, 1977
                                   

1977년 도큐멘타에서 백남준과 죠셉보이스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카셀 위성 방송으로 쏘아서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게 했다. 뉴욕의 Electric Art Intermix 의 Archives 에 2주 전에 신청하면 작품을 열람할 수 있다. (www.eai.org)


Joseph Beuys, 7000 Oaks- City Forestation instead of City Administration 1982-87 Documenta 7
 
도시 전체에 5년 동안 7000 그루 참나무를 심는 project 이다. 지금도 카셀에 가면 그 나무가 자라고 있다. 보이스의 performance 이고 동시에 parody 이다. 70-80년대를 지나면서 동, 서독으로 나누고 영, 프, 미는 독일의 산업화를 막으려는 의도에서 독일의 비산업화 de- industrialization 를 추진했다. 하지만 독일이 기반이 안 잡히니까 유럽 전체 경제 발전이 힘들어져 급기야는 독일에 국채를 주고 도시계획을 세워 최첨단 도시를 만들어 간다. 보이스는 이 작품을 통해 도시 행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한다. 도시 계획할 때 조차도 소수계층은 배재되고 밖으로 밀려나야 한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 이후에 도시가 생겼는데 단순히 인간의 편리 공간이 아니라 자본이 필요해서 도시를 만들고 사람이 거기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양상이었다. Urban Planning 때문에 Urban Studies 라는 학문이 생긴다. 보이스는 ‘도시 행정 대신 도시의 산림화’ 라는 project 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Ai  Weiwei, Fairytale-Template 2007
                                     
베이찡에도 2008년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urban planning 이 많이 진행되었다. 아이 웨이웨이는 버리는 명, 청 시대의 옛날 문짝을 줒어다가 카셀로 가져와 설치작업을 했는데 전시 첫날에 폭풍우에 쓰러졌다. 아이 웨이웨이는 ‘잘 됐다. 저게 저 작품의 운명이다’ 하고 복구 작업을 하지 않았다.

Ai  Weiwei, Fairytale-Luggage 2007
 
아이 웨이웨이의 핵심 아이디어는 1001명의 중국인을 카셀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몇년전부터 인터넷을 통하여 전 비용을 책임지는 동화같은 외국여행을 시켜준다는 광고를 내고 사람들을 모았다. 대다수는 자기 마을 밖을 나가본 적도 없었고, 여권, 비자 등에 대한 개념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임시 숙소, 요리사 및 가방도 단체로 준비하고 카셀 곳곳에 이들이 쉬도록 명청 시대의 의자도 가져다 놓았다. 2007년 도큐멘타에서는 별로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중국 사람들이 관심 없는 얼굴로 여기저기 가방을 끌고 다니는 지친 모습이 눈에 띠었다. Fairy Tale Project 는 예술품은 국경을 쉽게 넘는데, 사람이 가장 힘들게 통과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도큐멘타는 독일의 예술을 알리는 것이 아니고 전세계의 예술을 보자는 취지인데 Globalism 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 웨이웨이는 Globalism 의 다른 면을 건드린다. 국경을 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인가?  전 세계가 하나임을 표방하는 도큐멘타에  아이 웨이웨이는 중국 사람을 데려와서 세계적 행사의 이면을 보여준다. 스포츠나 예술박람회는 국가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도록 국가가 흔히 쓰는 전략이다. 올림픽에서 목소리를 모아 자국의 이름을 부르짖는 모습을 극단으로 밀고 가면 홀로코스트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누구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identity 를 확인받고 싶어한다. 괴롭고 어려운 답이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가장 쉽게 확인시켜주는 것이 국가이다. 사실 나는 ‘공 empty’ 인데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이 드는데 ‘나는 누구의 딸이며, 누구의 엄마이며, 한국 사람이다’ 를 통해 identity 가 확인되고 마음에 안정감이 생긴다. 그 동전의 뒷면에는 내 자식, 내 나라를 위해서 누구를 죽일 수도 있다는 마음이 있다. 내가 이토록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identity 를 건드리면 화가 나고, 극단으로 치닫으면서 사고의 유연성을 놓친다. 베니스 비엔날레, 도큐멘타 등은 전 세계라는 이름 아래 마치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처럼 표방하려 한다. 


2. The 4th Munster Sculpture Project 2007
                             
독일에서 10년 마다 열리는 예술제로 조각 작품이 뮨스터 도시 곳곳에 펴져 전시가 된다. 작품이 숨겨져 있어서 작품감상이 보물찾기를 하는 듯 하다.

Clae Oldenberg, Big Ball 1977
 
작품을 찾을 수 없어서 가만히 서 있었더니 노래 소리가 들리고 그것이 작업이다. 덩어리 자체가 1977년에는 있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리, 실로 변이가 되었다. 예술작품 때문에 도시의 모습이 바뀌어지고 일상의 공간 안에 예술작품이 들어와 개입을 한다.


3. Harald Szeemann 1933-2005
                                 
해롤드 지만은 스위스 태생의 스타급 curator 이며, 시인 겸 예술가이다. 1972년 도큐멘타와 1999년과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총감독을 했으며 1997년 광주 비엔날레에도 초청이 되었다. 독일의 gallery 에서 큐레이팅을 시작했으며 10-20년을 앞서 보는 안목을 가졌다. 작가들이 스타로 탄생되기 전에 그들을 알아본다. 크리스토의 건물 싸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킨 감독이다.


4. Okwui Enwezor
 
나이지리아 태생으로 2002년 도큐멘타의 총감독을 했는데 역대 도큐멘타 중 가장 좋은 감독이란 평을 받는다. 2008년 광주비엔날레를 감독했다.


5. Venice Biennale 2009, Eunji Joo and Haegue Yang, Condensation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에 국왕 부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생겼는데 나중에 예술제로 자리 잡고 각 국가관의 commissioner 가 정해지고 대표작가가 1명 선출된다. 2009년의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은 뉴욕의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s 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은지가 커미셔너로 참여했고 한국과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1971년생 작가 양혜규의 개인전 형식으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양혜규는 상파울로 비엔날레(São Paulo Biennale)와 광저우 트리엔날레(Guangzhou Triennial ) 등 국제 및 국내 전시에 참여하여 작업을 알려오고 있다.

‘응결(Condensation)’이라는 타이틀의 전시에는 작가가 거주했던 서울 아현동 주변과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기 전 한국관 주변의 쓸쓸한 풍경을 담은 비디오 영상작업 <쌍과 반쪽-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Doubles and Halves—Events with Nameless Neighbors, 2009), 베를린에 위치한 작가의 실제 아파트 부엌크기로 재현한 조각 작품 Salim, 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 Voice and Wind 등이 전시가 되었다.

1993년의 베니스 비엔날레의 독일관 대표작가는 백남준이며 황금 사자상을 받는다. 상금과 사재를 모아 백남준 한 개인의 노력으로 서울에 1993년의 Whitney Biennial 을 가져온다. 2011년에 한국국가가 나서서 2010년의 Whitney Biennial 을 국립현대 미술관에 가져올 예정이다.
 
Haegue Yang, Sadong 30 사동 30번지 인천 광역시 2006
 
인천에 있는 외할머니 집이 철거 대상이 되자  양해규가 페가가 된 집에 들어가 설치 작업을 한다. 이 site specific 작업을 보려면 관객이 약도를 들고 사동 30번지를 찾아가야 하며 자물쇠 비밀번호을 누르고 마치 음산한 흉가에 들어가듯 멈칫거리며 들어가야 한다. 양해규가 만든 종이 접기, 사진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작가의 외갓집이 도시 재개발로 인하여 아예 없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Haegue Yang, Series of Vulnerable Arrangements Voice and Wind 2006, São Paulo Biennale (1951-)
 
블라인드와 선풍기, 향분사기를 이용한 공감각적인 설치작업<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 목소리와 바람> 이다. 일상의 재료인 블라인드를 가져오고 nostalgia 를 느끼게 하는 것은 냄새와 빛임을 나타낸다. 빛을 가지고 simulate 하는 작업을 많이 한다. 

Haegue Yang, Salim 살림, Venice Biennale 2009
                       
작가의 독일 아파트의 부엌 살림살이를 그대로 옮겨와 살림 냄새의 악취로 인해 베니스 비엔날레 동안 issue 가 되었던 설치작업이다. ‘내 살림 냄새이다’ 하면서 gallery 안에 어울리지 않는 개념을 끌고 온다.

Haegue Yang, Voice and Wind 2010,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s
 
예술 장르 안에 빛과 냄새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들고 온다. 설치물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냄새는 본능적인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Venice Biennale, Korea Pavillion 2007



6. Whitney Biennial 2010 (1932-) 
 
2010년의 위트니 비엔니얼은 규모적으로 대폭 축소가 되어 안 좋은 경제 상황을 보여준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작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름대로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전시이다.

Theaster Gates, Cosmology of Yard 2010
                                       
Whitney Biennial 2010 의 전시 작품으로 껌공장에서 버리는 나무상자를 줒어다가 임시 stool 을 만들어 공연도 하고 구두닦기도 하는 관객 participatory 작업이다. 보관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는 철거물을 가져다가 memory 가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관객에게 물어본다.


7. Gwangju Biennale (1995-), 1000 Lives 만인보 2010

 
광주 항쟁 때 투옥된 고은 시인이 20년 동안 스쳤던 만 명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썼다.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동무, 꽃들, 산들에 대한 글이다. 

김옥랑 꼭두 콜렉션, 광주비엔날레 2010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 이야기이다--초상화, 사진, 증명사진, 인형 등등. 꼭두인형은 죽은 사람을 위해 만든다. 망자를 안내하는 꼭두, 망자를 보호하는 꼭두, 공연하는 악사 꼭두, 시중, 시녀꼭두 등 다양하다. 김옥랑의 콜렉션을 가져다가 광주 비엔날레에 전시를 했다. 조선 말기, 일제시대의 사람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었고 사용했던 콜렉션이다.

최병수, 영정차, 광주비엔날레 2010
 
광주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이한열 열사의 영정차를 설치 작업으로 했다. 사람의 이미지 중 톡특한 것이 영정 사진이다. 엄청 큰 사진이 영정차 위에 있는데 과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초상 그림을 쓰다가 점차 사진으로 대체를 한다. 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제사가 공적인 공간으로 나온다..

만인보 중 2편의 시, 고은 시인
 
봉태
나하고 초등학교 일이등 다투었지
부잣집 아들이라
옷이 좋았지
항상 단추 다섯 빛났지
도시락에 삶은 달걀 환하게 들어 있었지
흰쌀밥에 보리 뿌려졌지
그러나 누구한테 손톱발톱만치도 뽐낸 적 없지
너희 논 옆에 우리 논 하나 있다
너하고 나도
의좋게 지내자고 굳은 떡 주며 말했지
그런 봉태
수복 직후 아버지 죽은 뒤
동네사람에게 끌려가서
할미산 굴 속에서 죽었지
유엔군 흑인 총 맞아 죽었지
그 달밤에
그 캄캄한 굴 속에서 죽었지
봉태야
나는 너 하나 살려낼 수 없었다
네 열일곱 살은 내 열일곱 살이었는데


호박꽃
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규정해왔다
그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왔다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나는 잠들었다

아 내 지난날에 대한 공포여
나는 오늘부터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규정하다니
규정하다니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긴 장마 때문에
호박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장마 뒤
너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아 삶으로 가득찬 호박꽃이여 아름다움이여

봉태는 역사의 상처를 말하고 있으며 호박꽃은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술사 역시 역사의 굵직한 상처에 대한 죄책감을 떨어뜨리지 말고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끈질기게 전하고 있으며, 예술 작품에 대해 예쁘다, 안 예쁘다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폭력이다. 예술가들은 인간의 본질, 역사를 끈임없이 건드리며, 철학이 없는 예술은 구경거리 spectacle 에 지나지 않는다. 어려운 현대미술에 굴하지 않고 말하기 싫어하는 친구를 사귀듯 마음을 열고 그렇게 접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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