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신표현주의 12/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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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5,783회 작성일 10-12-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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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18th Hour : Feminism and Neo-Expressionism 페미니즘과 신표현주의
1960년대는 미술사적으로 다양한 운동들이 전개되었다. 유럽 사회에서는 Revolution 68 이 중요 매개체가 되어 퍼포먼스 장르가 증폭이 되고 그 중심에 Fluxus 운동이 있었다. Fluxus 운동에 여성작가들의 참가가 두드러지면서 Feminism 작품들이 쏟아진다.
Judy Chicago (1939-) The Dinner Party 1975-1979
브루클린 뮤지엄의 설치작업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여자 39명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였다. 각각 여성의 이미지에 맞게 접시와 린넨을 제작하고 table 을 차렸다. 고대 이집트의 여왕에서 부터 시작하여 버지니아 울프, 에밀리 디킨슨, 죠지아 오키프도 초대받았다. 이 작품이 공개되자 sensation 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접시의 모양이 여성 성기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1979년 전까지 여성 성기를 motive 로 한 예술작품은 전무후무 했다. 쥬디 시카고는 California Fashion of Art 에서 대학 강사를 지내면서 Feminism Art 수업을 최초로 한다. The Dinner Party는 도자기와 린넨을 만드는 수공업을 하는 많은 여성들이 함께 참여한 공동작업이다. 여자 feminine 의 essence 인 vagina 에 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며 이런 주제가 터부시 되어온 이유는 사회 문화적으로 형성된 가치에 의한 것이다. 여자의 정체성 identity 이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feminist 작품이 70, 80년대에 봇물 터지듯 나온다.
Judy Chicago, The Menstruation Bathroom 1972 Susan Frazier, Nurturant Kitchen 1972
1971-72년에 15-20명의 여성 작가들이 캘리포니아 외곽에 부서진 집을 빌려서 개조를 하여 Women House 라는 박물관 비슷한 것을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를 하였다. 권력 집단 노릇을 하는 박물관에 더 이상 전시를 하지 않으며, 미술사 학자들도 이에 동참을 한다. 부엌, 거실, 화장실을 개조하여 여성의 집을 만들었는데 화장실의 쓰레기통에 빨강색의 여성 생리대, 탐폰이 넘쳐나고, 부엌의 벽에는 고무로 만들어진 둥글둥글한 여자의 가슴이 부착되어 있다. Nurture + Restaurant = Nurturant 라는 단어는 여성에게 주어진 임무인 남편과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일을 의미하며, 남편은 여자에게서 독립하여 자신의 일을 하는데 여자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가도 계속 젖을 주어야 하는 영구 직업을 가졌다.
Linda Nochlin, Art Historian
New York University 의 교수 린다 노클린은 <왜 훌륭한 여성 예술가가 없는가?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라는 article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로 여자는 오랜 시기 동안 교육 system 에서 배제되었으며, 여자는 누드수업에 못 들어간다는 이유로 프랑스의 에꼬 데 보좌르 왕립예술학교도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둘째로 예술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가 틀려진다. 작가들은 identity를 드러내면서 작품을 내고 여자 작품이라고 하면 다르게 해석한다.
Constance Marie Charpentier, Charlotte de Val d’Ognes 1800
역사적인 motive 만 주로 그리는 신고전주의 프랑스화가 Jacques-Louis David 의 그림이라고 믿어지는 그림이 1917년에
Metropolitan Museum 에 기증되었다. 쟈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 세계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소녀의 초상화에 대한 비평가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1951년에 뮤지엄 디렉터에 의해 이 그림은 다비드의 학생인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여자화가 마리 사픈티에의 그림이라고 결론이 지어진다. 그 이후에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이 확 틀려진다. ‘역시 여성이 그려서 그렇구나’ 린다 노클린은 이런 이야기를 책에서 풀어내며 여성의 권리 운운 해도 여성에 대한 고정 관념이 하나도 무너지지 않았음을 밝혀낸다.
쥬디 시카고는 여성을 차별해 온 Institution 안에 들어가지 않고 woman house 라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박물관이 아닌 ‘집’ 에서 전시를 했다. House 는 예술을 담어내는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앞에 women 까지 붙여 ‘놀러오세요’ 하고 초대를 한다. ‘여자들이 뭐를 하겠어’ 기대감 없이 갔더니, 터부시해 오던 것들을 마구 드러낸다. The Dinner Party 는 한 명의 여자도 초대받지 못한 최후의 만찬과 dialogue 를 이루고 있다. 역사와 종교를 이끌어 온 주체는 항상 남성이었는데, 시카고는 디너파티를 열고 여자들만 초대해 식탁에 앉힌다.
Faith Wilding, Waiting, 15 min. Monolog at Woman House 1972
15분짜리 무대 공연이다. 훼이스 윌딩이 Waiting 이라는 시를 읽는데, 시의 내용은 여자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무엇을 끊임없이 기다린다는 이야기이다. 일평생의 기다림 안에서 여자의 identity 가 형성이 되며 부모 안에, 남편과 자식의 성취에 따라 나의 identity 가 형성된다. 여자의 identity 는 자신이 뭐가 되려고 하는 것에 있지 않다. 아이가 1등을 하면 엄마의 identity 가 확 산다. 자식, 남편의 승진이 내 사회적 위치를 결정한다.
WAITING, A poem by Faith Wilding
Waiting...waiting...waiting...
Waiting for someone to come in
Waiting for my breast to develop
Waiting to menstruate
Waiting for my first date
Waiting to be pretty Waiting...
Waiting for him to notice me, to call me
Waiting for him to ask me out
Waiting for him to fall in love with me
Waiting to get married
Waiting for my wedding day
Waiting for sex
Waiting for my baby to come
Waiting to feel my baby move
Waiting for the first contractions
Waiting to get my figure back, for the stretch marks to go away
Waiting to be beautiful again
Waiting for my child to go to school
Waiting for life to begin again Waiting...
Waiting for the first gray hair
Waiting for menopause
Waiting to grow wise
Waiting for my husband to die Waiting...
Waiting for a good bowel movement
Waiting for the pain to go away
Waiting for the struggle to end
Waiting for the end of the day
Waiting for sleep Waiting...
Betty Friedan, The Feminine Mystique 1963
1963년에 sensation 을 일으킨 책이다. 베티 프리단이 Smith College 동창회에 갔더니 학창 시절에 의지에 차 있고 야심 찼던 여성들이 다 주부가 되어 있음을 보고 충격을 받아 설문지를 돌리고 그 내용을 책으로 낸다. 프리단은 백인 중산층 여성의 삶의 모순을 파헤친다. Post World War 시기에 남자들은 전쟁에서 돌아오고 경제는 좋아져서 베이비붐 세대가 되었고 여자들은 다시 집 안에 갇힌다. 여자들은 집안에서 identity 문제에 봉착을 하는데 그 문제들은 이름이 없다. 나는 심리적인 갈등이 커서 죽겠는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고 신경을 안 쓰니까 나만의 문제로 남고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다.
Yoko Ono, Cut Piece, Carnegie Recital Hall, NYC 1965
요꼬오노가 토꼬에서 먼저 시작한 happening 이다. Fluxus Festival 에서 하듯이 무대 위에 작가가 앉아있고 관객이 올라와 가위로 요꼬의 옷을 자르면 happening 이 성립된다. 현실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계속 소비되고 있고 옷을 입고 있어도 사람들은 몸 생각을 계속한다. Identity 의 출발점이 몸이며 여자 하면 ‘몸’이 우선이다. 여성의 몸은 잡지, 광고, 공공 장소에서 계속 강조된다. 시카고나 오노가 예술 작품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한번 하자는데 사람들은 ‘어머 세상에’ 하고 놀란다. 사람들의 이중적 잣대가 드러나며, 여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자고 한다.
Shigeko Kubota, Vagina Painting, 1965
50년대 잭슨 폴락의 물감 뿌리는 action painting 과 함께 폴락 myth 가 퍼지는 분위기에서 쿠보타는 다리 사이에 붓을 끼고 그림을 그린다. ‘나의 essence 를 발휘하여 그린다. 폴락보다 더한 action 인데’ Abstract Expressionism 을 parody 한다. ‘vagina’ ‘cunt’ 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에 대한 터부를 건드리며 일단 shock 를 주는 공연이며, 그 다음 단계는 냉정히 생각 좀 해보자는 것이다.
Carolee Schneemann(1939-) Interior Scroll 1975
캐롤리 시니만은 동료 남자 예술가가 자신에게 했던 조언들을 적은 scroll 을 vagina 에서 꺼내서 읽는다. ‘여자 예술가는 성공하기가 힘이 드는데, 너는 일단 얼굴이 예쁘고 좋은 학교를 나왔으니까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남자 동료는 시니만의 직업을 비꼬면서 성공을 위해 가져야 하는 여자로서의 조건을 말해준다. 시니만의 의도는 여자의 적나라한 모습을 숨겨야 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나를 질문하며 일차적으로 충격을 주고자 한다.
Hannah Wilke, SOS Starification Object Series 1977
하나 윌키는 관객에게 껌을 나누어 주고, 씹어서 자신의 몸에 붙이라고 한다. 그 껌으로 vagina 모양을 만들어 밑에 붙이고 대중매체에 나오는 여자처럼 포즈를 취했다.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feminine 의 매력을 발산하는 도식화된 이미지이다. 그런데 몸에는 상처, 고문자국처럼 보이는 껌이 붙어 있는데 그 껌은 ‘관객’ 이 만들었다. 씹다 뱉은 껌은 사회가 지워주는 여자의 포즈, attitude 와 manner 를 상징한다. 첫째로 껌은 pop art 의 readymade 개념에서 차용했으며, 동시에 found object 이기도 하여 뒤샹의 아이디어와 비슷해서 Duchampian 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껌이 예술의 기능을 발휘한다고 생각을 못 했는데 미술사의 중요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twist 를 시켰다. 둘째로 관객이 껌을 씹음으로서 happening 이 성립되고 세째로 Feminism의 여자의 몸 이야기를 한다.
Mary Kelly, Post-Partum Document, 1974
메리 캘리가 ‘어머니’ 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시기인 출산 후 부터 아들의 4살까지를 기록한 작업이다. 여성은 산후 우울증으로 고통스러워 하며 신체적 심리적 변화는 roller coaster 처럼 심하지만 이런 문제는 당시의 social conscious level 에는 쑥 빠져있는 issue 로 이름이 없는 문제 중의 하나였다. 켈리는 Post-Partum Document 에서 4년 동안 아이의 첫 말, 걸음마. 첫 음식 등을 기록해 나가는데 전에 없었던 identity 가 4년 동안에 형성되어 감을 느낀다. 이 기록은 박물관에 전시가 되고 나중에 책으로 발간된다.
켈리는 여성이 스스로 엄마라는 정의를 내리는 것이 아니고 사회에서 만들어 준 엄마라는 틀 속에 여성이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사회는 여성의 essence 는 위대한 motherhood 라고 정의 내린다.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파도같이 저절로 밀려 오는가?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막 나오는가? 아이 때문에 아무 것도 못 하므로 급격히 우울해지는 경우도 많고 감정의 up and down 이 심해진다. 인간의 정의를 내릴 때 human being 은 이성이 있으므로 동물과 다르다고 하면서, 모성애를 말할 때는 동물적 본능 instinct 이라는 analogy 를 사용한다.
여성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남성이 들어와야 하고, ‘나’라는 인간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남’이 들어와야 한다. 타자의 정치학에는 2중성이 내포된다. 켈리는 Post-Partum Document 에서 모성애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파헤친다. 무조건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문화적인 교육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고, 나와 아이의 관계가 형성됨에 따라 오는 것 같기도 하고 이처럼 엄마의 정의, 모성의 정의는 복수이지 단수가 아니다. 여자의 identity 를 single 로 보지말고 ‘multiple ’로 생각해 보자는 이론을 펼친다. 이름이 없었던 문제가 이름을 갖게 된다.
Adrian Piper, Political Self-Portrait #2 (race) 1978
페미니즘의 한계점은 모든 여자가 보편적 universal 이라는 함정에 빠진다는 점이다. 같은 여자라도 인종, 계급에 따라 다르게 취급된다.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여자는 백인 middle class 의 여자를 의미하는 것이며, 18시간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와 흑인여자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드리안 파이퍼는 half black half white 인데 흑인 그룹에 가면 피부색이 너무 옅어서 주변으로 marginalize 밀리고, 백인 그룹에 가도 낄 수가 없으며 어디에도 소속이 되지 않는다. 파이퍼는 자신이 사회에서 in between 상태이며 애매모호한 자화상의 형성이 text 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배운 글, 신문기사의 글들, 사람들이 하는 말들에 의해 자신의 identity 가 형성되고 사람 속에 들어가 뭐를 할수록 그들의 팔꿈치에 의해 밀리는 자신을 보게 된다.
Barbara Kruger, Unfitted (Your Gaze Hit the Side of My Face) 1981, Photograph
Identity 형성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언어이다. 어떤 언어를 써야 하는가를 연구하는 수사학 Rhetoric 이 있다. 학교, 가정, 사회에서 써야 할 말과 쓰면 안되는 말을 교육 받는다. 입 밖에 말을 꺼내는 순간 그 사람의 교육, 사는 정도가 드러난다. 매스미디어에서 쓰는 언어는 중산층의 대학교육을 받은 자에 맞춰져 있다. ‘Standard language’ 자체가 사람들에게 컴플렉스를 준다. African American 의 언어는 특수 억양이 있으며 Harlem 언어는 구별이 된다. 흑인 바바라 크루거는 하버드대 출신이므로 구사하는 언어가 틀리며 흑인 그룹에 들어가지 못 한다.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은 ‘응시 gaze’ 를 중요 개념으로 다룬다. 마네의 올림피아가 정면으로 남자들을 응시하니까 ‘저 창녀가 감히 나를 쳐다보다니’ 남자들은 기분이 나빠진다. 여자는 응시의 대상이었지 응시의 주체는 아니었다. 메두사의 눈과 마주치면 돌로 굳는다는 그리스 신화가 있었고, gaze 의 주체는 괴물적인 악녀 팜므파탈 femme fatale 만이 가능했다. 인간 여자는 응시의 대상이어야 했다.
바바라 크루거의 사진작품 ‘당신의 시선이 내 얼굴의 옆면을 때립니다’ 는 ‘당신이 쳐다보는 바람에 나는 돌인간이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못 날아가도록 석고상으로 굳었습니다’ 라고 말한다. 나는 항상 타자의 응시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옷을 입을 때, 메니큐어를 칠 할 때. 립스틱 색깔을 선택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가 이미 나의 머리 속에 들어와 있다. 나의 모든 행동과 말은 응시를 당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주관적이 아니고 사회에서 형성된 잣대에 의한 것이다.
Cindy Sherman, Untitled Film Still 1979
영화, TV, 드라마에서 보는 여자의 모습은 다 비슷하다. 마피아 보스의 정부, 애 잘 키우는 엄마, Career woman 등으로 고정된다. 여자가 가진 몇 안되는 role 이 rotation 되어 나타난다. 중견 간부나 술집여자의 스타일이 10대의 어린 학생들에게 매체를 통하여 교육된다. 매체는 여자의 고정 이미지뿐만 아니라 욕망과 위기감 조차 조장을 한다. Soap Opera 에 나오는 40대 여자의 윤택한 생활과 나는 너무 다르다. 끊임없는 욕망을 심어 주면서 드라마가 끝나면 곧바로 광고가 이어진다. ‘드라마 주인공이 입은 옷을 입으면 여러분도 비슷해 보입니다. 와서 shopping 하세요’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안 alternative 을 제시한다. 신디셔면은 사람들이 대중매체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준다.
Jenny Holzer, Selection from Truisms 1982
홀저는 거리의 공공 장소로 나와서 코카콜라, LG 의 광고가 있던 전광판 자리에 딱딱한 text 를 대신 쏘기 시작한다. ‘Private property created crime.’ ‘나는 shopping 한다. 고로 존재한다’ 의미 심장한 문구의 여자 이야기, 사회적 계급이야기가 나온다. 민주주의,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말하는데 돈이 그 자리에 smooth 하게 대치되고, 돈에 따라 계급이 생기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코카콜라 상품의 이미지를 그냥 무심코 봐 왔는데 저런 text 가 뜨면 멈칫하고 '저게 뭐지?’ 하고 머리 속으로 생각한다. 이제까지는 소비 이미지가 일상을 파고 들었는데 예술이 생활에 개입한다. 예술가들은 전략을 바꾸어 mass media 를 공격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것을 똑같이 흉내내기로 하였다. 광고 자리에 text 를 넣어 사람의 시선을 끌어본다. 내가 인식 못 했던 나의 버릇을 누가 따라하면 ‘내가 그랬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흉내내기 mimicry 효과이다. 예술이 광고 매체를 흉내냄으로서 영역을 확장시킨다.
‘사유재산이 죄를 만든다’ 글 자체의 무게감이 있는 저 text 가 사람을 괴롭힌다. 예술이 A-Z 까지 다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고 생각하느냐 안하느냐는 여러분의 몫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의 메세지를 control 할 수가 없다.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하는 이야기를 관객이 그대로 알아듣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예술의 딜레마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대중이 다 똑같이 알아들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fascist 적 생각이다. 생각의 차이를 받아 들이고 토론하는 마음을 여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이다.
Lorna Simpson, Guarded Condition 1989
African American Woman 이 뒤돌아 서있고 sex attack, skin attack 의 두 단어가 반복된다. 통상적으로 사람을 인지할 때는 얼굴부터 보는데, 흑인은 얼굴을 볼 필요가 없다. 설사 얼굴을 봤다 해도 차이가 없다. 멀리서 보는 희미한 이미지만 봐도 흑인임을 알고 그 이상을 넘어서는 더 알 필요가 없다. ‘흑인이구나’ 그것만 본다.
미술사에서 여자에 관한 작품은 다 앞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나 같은 흑인여성은 앞모습이 중요하지 않아. 내가 주부이건, career woman 이건, 대학교육을 받았건 나 같은 경우는 인종과 성별만 중요해-- Sex Attack, Skin Attack 이다.
여자는 multiple identity 를 가지는데 사회가 single identity 로 만들려고 노력해 왔음을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드러낸다. Gay Lesbian 이 나타나면서 여성 남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도전을 받고 Feminism 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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