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말해서 최소가 최대이지, 미니멀리즘 11/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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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5,421회 작성일 10-12-0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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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16th Hour : Let’s Go Simple, Minimum is Maximum 간단하게 말해서 최소가 최대이지
1960년대의 사상적 문학적 배경
Jacques Lacan 1901-1981 Roland Barthes 1915-1980
현상학 Phenomenology 은 20세기 초 독일의 철학자 후설이 고안해낸 철학적 방법론으로서 60년대에 현상학이 대두되고, 라캉이 언어와 의식에 근거한 정신분석학을 내 놓는다. 세계사, 미술사, 지성사에 다양한 변화가 생긴다.
Hannah Arendt 1906-1975 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
나치 군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 대전 중에 ‘100명은 어디에서 죽이고 200명은 어디에서 죽이고’ 하는 학살을 담당했던 책임자였다. 이스라엘은 2차 대전 후에 그를 잡아서 전범 재판에 세우려고 혈안이 되었고 15년 동안의 집요한 추적 끝에 아르헨티나에 숨어서 사는 아이히만을 1960년에 찾아낸다. 체포 당시에 아르헨티나 시민인 아이히만을 두고 두 나라는 외교분쟁이 일어나지만 이스라엘은 기어이 그를 압송하여 재판에 세우는데, 그 장면은 전세계적으로 생중계가 되고 재판장은 미어 터진다. 아이히만은 암살의 위험이 있어서 유리관 안에서 자기 변호를 한다. 몇백명의 Holocaust 생존자들이 증언을 하고, 마침내 아이히만은 사형에 처해진다.
2차 대전 이야기가 1960년대에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1963년에 독일인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 라는 책이 발간된다. 아이히만은 ‘나는 내 직업에 맞는 일을 했을 뿐 악한 행위가 아니다’ 라고 증언을 했고 그 누구도 아이히만의 사형에 불쌍한 마음이 없는데 아렌트는 ‘아이히만은 evil 이 아니다’ 라고 해서 sensation 을 일으킨다. 아이히만은 앙심을 품고 죽여야지 하는 사악한 마음으로 한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니까’ 하는 관념으로 기계적인 살인을 하였다. 그의 행동은 무지 ignorance 에서 비롯된 것으로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아렌트는 한다.
한나 아렌트는 <전제주의의 기원> 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후기 자본주의가 아니라 전제주의 사회이다 라고 말한다. 2차 대전 후의 세상은 물질문명이 범람하는 totalitarian society 이며, 이런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세상과 사고의 틀을 못 벗어나는 아이히만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한다.
락강과 롤랑 바르트도 이런 점을 고민했다. 전쟁이 끝나고 물질도 풍요한데 왜 우리는 불행한가? 롤랑 바르트는 <Death of Author> 라는 단편에서 소설과 문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항상 저자 author가 많이 알고 독자는 수동적으로 듣는 지배체제 hierarchy 를 만들었으며, 저자가 이젠 죽어야 하고 독자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TV 는 친절하게도 소비자에게 한 숟가락씩 밥을 넣어준다. 소비자는 드라마에 쉽게 감정이입 empathy 이 되며 미처 전 드라마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새 드라마가 나온다. 롤랑 바르트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저자의 죽음’ 이다. 전통적인 소설 형식인 기승전결이 없는 anti-narrative 의 소설이 나온다. Post Modern 으로 넘어가는 바르트적 text 를 읽은 독자들은 ‘뭔 소리야, 난해해’ 라고 한다. 저자가 아무 설명도 안하고 죽어버리면 독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데 이 때부터 독자가 힘들어진다. ‘나는 typical 한 로맨스 소설에 익숙해져 있는데, 영화, 미술, TV 볼 때 한번도 내가 뭘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60년대의 사상가가 던진 도전장이다. ‘이젠 독자가 뭐 좀 하세요’
락강은 욕망 desire 에 대해서가 아니고 충동 drive 에 대해 말한다. 욕망은 포기할 수도 있고 욕구불만이 되어 다른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충동은 인간 생존의 중요 요소이며 욕망보다 높은 단계로서 excess 에 대한 drive 이다. 인간은 삶에 있어 excessive level 까지 만족을 느끼고 싶은 충동이 있다. 끝까지 행복하고 만족하고 싶은 욕망, break 가 없는 desire 를 death drive 라고 한다. Death 를 초월하고 싶은 immortality 에 대한 충동, 살아있는 동안 죽음에 대해 신경을 안 쓸 정도로 충족감을 가지고 싶다.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연애, 사랑, sex 등을 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인간은 계속 무엇인가 필요하고 의미를 찾는다. 이런 태도가 예술 작품을 볼 때에도 그늘을 드리운다. ‘저 작품이 내게 뭔가 의미있는 얘기를 해주면 좋겠다.’ Desire 를 넘어서서 drive 가 나를 막 몰고 간다.
Minimalism
사상계, 문학계가 이런 도전을 제기하는 가운데, 미니멀리즘이 그 영향을 받는다. 미술이 끊임없이 도전해왔던 단어는 ‘의미 meaning’ 이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그림을 끊임없이 그려왔고 관객들은 그림을 대하면 ‘무슨 뜻이야?’ 하고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미니멀리스트는 ‘뜻 없어요. 찾지 마세요’ 라고 답한다.
Donald Judd, Untitled 1965
져드는 예술에 대한 기존의 접근방식을 버리라는 의도에서 이 작품을 만든다. 미니멀리즘의 갤러리에 들어가면 ‘공 emptiness’ 이 존재한다. 관람자가 거기에 와서 생각을 좀 하라는 뜻이다. 예술은 몇백년 동안 끊임없이 meaning 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노력이 아직도 dilemma 상태로 남아있다. 아무리 작품을 만들어 봤자 대중에게 전달이 안 되고, 대중은 다르게 이해한다.
져드의 이 작품은 기존 조각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 첫째 져드가 만들지 않고 공장 주문 했으며 둘째 받침대 pedestal 위에 올라가 있지 않고 벽에 붙어있다. 져드는 특수 사물 specific object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기능이 없는 meaningless object 이며, 아무 것도 signify 하지 않는 텅 빈 기호이다. 그 기호 안에 관람자가 무엇을 넣기를 바란다. 예술가들은 역사적으로 art 와 life 의 단절을 고민해왔다. ‘Art 가 life 에 대해서 뭘 좀 말해야 하는데’ 하고 전전긍긍 해왔지만, 1960년대 미니멀리즘에 와서 art 는 art 이고 life 는 life 임을 선언한다.
Robert Morris, Untitled 1965/1971
Robert Morris, L-Beams 1965 with work by Sol LeWitt on the walls
미니멀리스트는 기존 조각의 중요 재료였던 대리석, 브론즈를 더 이상 쓰지 않고, 별 의미가 없었던 나무토막, 알루미늄, 철 등의 재료를 가지고 작품을 만든다. 미니멀리스트 전시회에 가면 관객들은 별로 볼 것이 없다. 그러나 이 공간 안에 ‘당신이 있다’ 가 중요하다. 시간과 공간의 인지에 대한 이론이 관련된다. 지금 내가 있는 시간과 공간이 중요하다. 원나라 카빌라이쿤의 전시에 가면 과거의 시간이 나를 dominate 하고, 우리 대부분은 소설이나 드라마 속의 시간에 쉽게 빠져 드는데, Minimalist 는 그 관계를 뒤집는다. Minimalist 의 전시에 가면 관객은 생전 처음 무대 위에 서는 사람처럼 당혹스럽고 무엇을 어찌할지를 모른다.
1960년대 당시에는 Minimalism 은 너무 난해하여 대중의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도날드 져드는 현상학이나 Post Modernism 에 대한 글을 통해 시대의 흐름이 Minimalism 적인 작품의 필요성을 요구함을 피력했으며, critique 들은 이 새로운 흐름을 환영했다.
Sol Lewitt, Floor Plan #4 1976
Sol Lewitt, Wall Drawing on Three Walls No 652
솔 루윗이 직접 한 작품이 아니라 assistant 에게 manual 을 보고 벽에 그리라고 하였다. 전시기간이 끝나면 벽을 다시 하얗게 칠한다. 관객이 몇날 몇시에 그 자리에 있었음이 중요해진다. 작품이 있는 시간과 공간의 중요성을 증폭시킨다.
Carl Andre, 37 Pieces of Work 1969
관람객이 밟고 지나가라는 의도로 만들었지만,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밟지를 못한다. 감상하듯이 보고만 있으면 작품의 point 를 놓치게 된다. 내가 주체가 되어 객체인 작품을 경험 experience 해야 한다.
Author 가 죽고 난 후 작품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독자에게 뒷 일을 부탁했는데 과연 독자가 그 일을 잘 해결했을까? 독자는 해 낼 수가 없다. 일단 작가가 왜 죽었는지 이해를 못 하고, 돈 capital 이라는 탐욕으로 인해 작품의 종착역은 크리스티, 소도비의 경매장이 된다. 저자가 죽으면서, 독자로 머물러 있으라고 했는데 ‘잘 됐다. 저거 사야겠다’ 로 최종 결론이 나는 미니멀리즘은 슬픈 운명을 타고 났다. Elite 이고 싶은 독자의 속물성 snobbish 이 드러난다. 락강, 아르헨트는 이런 현상을 애통해하면서 글로서 울부짖었지만 미니멀리즘, 저자의 죽음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지기에는 너무 이상적이었다.
1965년에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고 서양의 정치 문화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일어난다. 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동한 The 68 Revolution 에 드골대통령 당시 프랑스 국민의 2/3 가 가담한다. French Revolution 이후 최대의 혁명이다. 이 물결이 전세계로 확산되어 미국, 남미의 아르헨티나, 파라구아이, 로마, 베를린, 일본 등지로 퍼진다. The 68 Revolution 의 도화선은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으로 또 다른 미국식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프랑스에서는 관료, 교수들의 권위주의에 대한 불만과 명문대 출신 학벌주의에 대한 불만이 터진다. 이때 프랑스에서 신좌파 New Leftist 라는 용어가 생긴다. 구좌파는 소련의 실망적인 모습을 부담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노동자의 해방 까지는 좋았는데 누구나 평등 자유하는 세상은 아니었다. 여전히 관료, 부자가 있었고, 여성 및 성적 인종적 소수자 minority 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는 세상이었다. 프랑스의 The 68 Revolution 은 Feminism, Gay Lesbian, 알제리안 이민자 문제를 조명하고, 미국에서는 Revolution 68을 통해 워홀이 인종차별 문제를 들고 나오며 전국으로 봇물 터지듯 확산된다.
The 68 Revolution 은 언론과 함께 사회에 팽배해 있는 권위주의 타도를 부르짖는다. The 68 Revolution 의 신좌파 지성인들은capital 이 인간을 지배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배후에 숨어서 충복 노릇을 한다고 한다. The 68 Revolution 을 통해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가족 구조 family structure 에 대해 재점검이 일어난다. 노동으로 여기지 않았던 여성의 가사일도 시간과 돈으로 환산되어야 한다. 가사분담은 평등의 문제이지 feminist issue 가 아니다. 우리의 reality 를 지탱하는 상징체계를 우리가 간과했기에 후기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밖에 없다. 1960-70 년대에 Feminist Artist 들이 쏟아져 나오고 개념주의와 맞 물린다.
Agnes Martin 1912-2004
Agnes Martin, Rocks
연필로 모눈종이처럼 줄을 가로 세로로 그었다. 격자무늬 grid 가 겉으로 들어난다. 피카소가 큐비즘에서 grid 를 처음으로 들어냈고, 몬드리안도 grid 를 가지고 작업을 했다. 멀리서 보면 단색 페인팅 monochrome painting 이지만 가까이 보면 grid painting 이다. 어디서 보느냐는 독자의 마음이다. 관객이 서 있는 위치, 공간에 따라 경험이 틀려진다.
Conceptualism
Joseph Kosuth, One and Three Chairs 1965
개념주의 Conceptualism 은 Minimalist 가 이야기한 concept, idea, meaning 을 가지고 작품을 한다. 벽에 의자의 사진과 의자의 정의를 내린 글자 text 가 있고, 중간에 진짜 의자가 있다. 우리는 세 개 다 의자라고 한다. 후기 자본주의와 언론이 지배하는 세상을Post Modern 이라고 하는데, 기호, 언어 language 가 중요해 진다. 원래 원형이 있어서 거기에 언어를 붙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실체가 없는데 언어가 control 한다. 모든 의미를 상실한 문자의 조합인 text—죠셉 코슈스가 드러내는 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언어를 그대로 거기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영화, 책,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의 생각 속에 지배의 틀이 있어서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selective 하게 듣는다. 코슈스가 3개의 의자를 보여주면서 ‘이미지와 text 가 사람들을 엄청나게 control 해 왔는데 그것을 미처 몰랐지 롱’ 하고 말한다. 실제로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신문, TV 에서 이미지로 경험하고 다 아는 것처럼 느낀다. 나보다 많이 알고 많이 배운 사람이 쓴 글이니까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죠셉 코슈스의 One and Three Chairs 는 The 68 Revolution 의 신좌파가 공격하는 메세지와 닿아있다. 예전에는 지배계급이 뚜렷해 누가 나를 괴롭히는지 쉽게 알았다. 구좌파 시절에는 돈 많은 공장 사장이 나의 노동을 착취함이 눈에 쉽게 들어와 ‘너로구나’ 하고 끌어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나를 control 하는 게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나는 끊임없는 감시와 통제 surveillance 속에 있다. 백화점 감시 카메라, 크레딧 카드 정보 등 나의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코슈스는 60년대 사회 분위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의식, 욕망이 아니고 reality 를 우리가 못 본다는 점을 말한다. 우리의 의식 consciousness 에 문제가 더 시급해서 어린 시절의 잠재의식까지 갈 필요도 없다.
John Baldessari, Heel 1986 1931-
Conceptualism 계보에 속한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이미지—뉴스 클립핑, 잡지 신문 이미지, 영화 still cut—등을 조합해서 흐뜨린다.
On Kawara, The Today Series of Date Painting
단색 모노크롬 페인팅 위에 오늘의 날짜를 쓴다. 관람객의 오늘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해 그 날짜를 기억하는가? Memory 를 건드린다.
Joseph Beuys,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 1965
Joseph Beuys, The Pack 1969
The 68 Revolution 은 베를린에도 퍼진다. 죠셉보이스가 죽은 토끼를 안고 gallery 를 돌면서 그림을 설명하는 performance 이다. 60년대에 미니멀리즘이 문을 열어준 덕택으로 Performance Art 가 다시 나타난다. 1918년 1차 대전 중에 취리히의 볼테르 카바레에서 다다운동의 유고발이 가라와네 시를 암송하는 행위예술이 최초로 나타났는데 관람객은 낯설게 구경하기 alienation 를 당하는 수동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의 행위예술은 happening 이라 부르며 author 가 죽어버린 그 자리에 관객이 manual 에 따라 performance 를 한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구경을 하러 갔는데 나에게 이것 저것 하라고 시킨다. 은근히 화가 난다. 나를 놀리는 거야 나를 바보로 알아? 하지만 실제로는 무대에서 작가가 뭐를 해서 보여주는 것이 나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마치 TV 만 계속 보고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무대 위에 서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가져보지 못해서 그것에 대한 욕망이 아예 없는 상태를 가르켜 락강은 인간이 거세되었다고 말한다. 자유와 평등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가지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free equal human being 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거세되었고, image 와 text 에 의해 조정을 당하고 있다. 이제 Post Modern 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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