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로크 미술: 벨라스케스 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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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8,914회 작성일 11-09-25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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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미술 17세기 3rd hour: Baroque Art in Spain

Baroque Art in Italy

베르니니가 살았던 1598-1680년 사이는 바로코 미술의 황금기이다. 스페인의 Diego Velazquez 도 동시대 인물로서 서로의 소문을 전해들어서 알고 있었다. 벨라스케스는 바로코 미술의 중심지 로마에서 국제적인 안목을 키우기 위해 이태리로 2번 여행을 가서 일년 반씩 머물다 온다.
Gianlorenzo Bernini, Pluto and Persephone 1622-24, Galleria Borghese, Rome

풀루토가 페르세포네를 납치를 하는데 눈물이 흐르고 체념한 표정이다. 손톱 모양도 진짜 같다. 각도에 따라 조각이 크게 보이기도 위태롭게 보이기도 한다. 머리 셋 달린 애완견을 데리고 다닌다.



풀루토가 페르세포네를 납치를 하는데 눈물이 흐르고 체념한 표정이다. 손톱 모양도 진짜 같다. 각도에 따라 조각이 크게 보이기도 위태롭게 보이기도 한다. 머리 셋 달린 애완견을 데리고 다닌다.
Bernini, Apollo and Daphne 1622-24



아폴로가 다프네를 납치하려고 하자 다프네는 아버지께 살려 달라고 비는데 그녀의 몸이 나무로 변한다. 샌달의 끈은 정교한 가죽 같고 머리카락도 가벼워 보인다. 움직임을 조각에서 표현하기 어려운데 베르니니의 조각에는 바로코 미술의 특징인 역동성 dynamic 과 속도감이 보인다.

Michelangelo, David 1501-04 Bernini, David 1623-24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여러 작가가 이미 데비드상을 만들었기에 베르니니는 경쟁심을 느끼면서 데비드상을 만든다. 미켈란젤로의 소년 데비드상과 비교하면 베르니니의 조각은 나이가 조금 든 자신의 자화상과 닮았으며 몸이 나선형으로 휘어져 막 돌을 던지려고 입을 악다문 모습이다.
Bernini’s Colonnade, St Peter’s 1656-1667, Rome, Italy
베르니니가 다지인한 성베드로 성당의 칼럼이다.

베르니니가 다지인한 성베드로 성당의 칼럼이다.
Bernini’s Baldacchino, St Peter’s 1624-1633

청동을 주로 써서 만든 천개와 제단을 베르니니가 조각을 한다. 바로코 미술에서 자주 보는 타원형으로 holy spirit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날아서 떨어질 것 같은 sun ray 이다. 그 뒤에 천사가 있다.



기둥에 꽃잎이 붙어있다. Barberini교황의 이름이 이탈리아 말로 벌이란 뜻이므로 기둥에 벌문향이 보인다.

제단과 천개의 거리가 꽤 되는데 베르니니의 눈속임으로 가까워 보인다. 바로코 미술의 특징의 하나가 눈속임 디자인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Last Judgment 는 구불구불한 형태의 그림이지만 베르니니는 청동으로 구불구불 하게 만든다.
Bernini, The Ecstasy of St. Teresa, Cornaro Chapel, Santa Maria della Vittoria, Rome 1646-1662 / Michelangelo, Pieta



베르니니의 ‘성테레사의 법열’에서 Holy Spirit 이 sun ray 처럼 내려온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498-99)가 연상되는 자세이다.
Baroque Art in Spain 스페인 바로크 미술
Europe in 1648
스페인의 합스부르그 왕가의 왕자들이 유럽의 왕녀들과 결혼하여 유럽 전체에 스페인 땅이 퍼져있다. 콜럼부스가 항로를 개척하고 금, 은을 무한정 가져와서 스페인의 부과 막강한 권력의 뒤에는 식민지 지배가 있었다. 당시 스페인의 Philip 4세는 평생동안 30년 전쟁을 하는데 결과적으로 패배하고 신교를 인정한다. 스페인이 오랫동안 전쟁으로 국력을 쇄진해도 나라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멕시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져오는 식민지 자원이 있었다. Diego Velazquez 는 Philip 4세의 궁정 화가로 활동하고 화가의 명성 뒤에는 필립 4세의 뒷받침이 있었다. 당시에 그리스 출신 엘 그레고는 베니스에 정착하여 티션에게 그림을 배우고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궁정화가로 활약한다.

스페인의 합스부르그 왕가의 왕자들이 유럽의 왕녀들과 결혼하여 유럽 전체에 스페인 땅이 퍼져있다. 콜럼부스가 항로를 개척하고 금, 은을 무한정 가져와서 스페인의 부과 막강한 권력의 뒤에는 식민지 지배가 있었다. 당시 스페인의 Philip 4세는 평생동안 30년 전쟁을 하는데 결과적으로 패배하고 신교를 인정한다. 스페인이 오랫동안 전쟁으로 국력을 쇄진해도 나라를 유지하는 배경에는 멕시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져오는 식민지 자원이 있었다. Diego Velazquez 는 Philip 4세의 궁정 화가로 활동하고 화가의 명성 뒤에는 필립 4세의 뒷받침이 있었다. 당시에 그리스 출신 엘 그레고는 베니스에 정착하여 티션에게 그림을 배우고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궁정화가로 활약한다.
Juan Sanchez Cotan, Quince, Cabbage, Melon 1602

후안 산체스 코탄은 벨라스케스 이전에 사실화를 그리던 화가이다.

후안 산체스 코탄은 벨라스케스 이전에 사실화를 그리던 화가이다.
Jusepe Ribera, The Club Footed Boy 1642
발이 기형인 소년이다. 리베라는 벨라스케스와 동시대에 활약한 화가이다.

발이 기형인 소년이다. 리베라는 벨라스케스와 동시대에 활약한 화가이다.
Francisco de Zurbaran, St. Serapion 1628
스페인은 카톨릭 국가이므로 종교화를 많이 그린다. 수도승 세라피온이 고문당하다가 죽어가는 강력한 사실주의 그림이다. 1600년대 이후 카라바지오의 영향으로 음영법, 세부묘사에 민감하다. 코네티컷에 있는 J.P. Morgan 이 만든 박물관 Wadsworth Athenaeum 에 있으며 가볼만한 박물관이다. 수르바란, 리베라 등의 작가들이 벨라스케스 주변에서 활동했지만 궁정화가로 모든 것을 장악한 그를 감히 따라 잡지 못한다.

스페인은 카톨릭 국가이므로 종교화를 많이 그린다. 수도승 세라피온이 고문당하다가 죽어가는 강력한 사실주의 그림이다. 1600년대 이후 카라바지오의 영향으로 음영법, 세부묘사에 민감하다. 코네티컷에 있는 J.P. Morgan 이 만든 박물관 Wadsworth Athenaeum 에 있으며 가볼만한 박물관이다. 수르바란, 리베라 등의 작가들이 벨라스케스 주변에서 활동했지만 궁정화가로 모든 것을 장악한 그를 감히 따라 잡지 못한다.
Diego Velazquez 1599-1660 Self-portrait 1643, Florence, Uffizi Gallery

벨라스케스의 자화상으로 렘브란트의 Dutch Baroque 그림과 비슷하다. 화가 벨라스케스의 명성 뒤에는 그를 뒷받침해준 왕 필립 4세가 있었는데 이처럼 미술가와 후원자의 관계는 중요하다.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남부 Seville 출신으로 몰락 귀족 집안의 자식으로 나름대로 gentry 계급이라 소양교육 및 라틴어를 배운다. 집안에서는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그림에 재능을 보여 동네 화가 밑에 연습생으로 들어간다. 스승의 인정을 받고 19세의 벨라스케스는 1618년에 선생의 딸과 결혼을 하고 성공의 길로 접어든다. Guild 의 master 아래에서 훈련을 받다가 독립할 때가 되자 그는 1622년에 Madrid 로 간다. 때마침 궁정화가가 죽어서 공석이었는데 필립 4세에게 테스트를 받고 1623-1660년 까지 오랜기간 동안 궁정화가로 일한다. 당대에 잘 나가는 화가 Rubens 를 만나 그에게 티션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1629-30년에 왕이 견문을 넓히라는 의미로 이태리로 보내고 돌아와서 무르익은 열정으로 좋은 작품을 그린다. 1649-50년에 두번째로 이태리로 가서 교황의 초상화를 그려 유럽에서 유명해진다. 1650-60년 말년에 필립왕의 호위병사 명예직 marshal 을 수여받아 미천한 화가에서 궁정의 정식 staff 로 오른다. 벨라스케스는 미켈란젤로, 얀반아이트 처럼 스스로 교양과 덕을 쌓은 작가이다.
Diego Velazquez, The Water Carrier of Seville 1619

상수도 시설이 아직 미비하여 동네마다 물파는 사람이 다닌다. 늙은 물장수 뒤에서 소년과 집주인이 보고있다. 벨라스케스가 20세에 그린 그림으로 격찬을 받는다. 카라바지오적 영향이 나타나 배경은 시커멓고 빛이 은은하다. 두개의 항아리가 다른 재질이다. 유약을 발라 반딱거리고 흠집이 나서 들어간 싸구려 항아리이며 마개가 보이는 큰 항아리에는 물방울이 떨어진다. 젊고 야심만만했던 벨라스케스는 그리기 어려운 투명한 유리잔을 그린다. 반짝거리는 유리에 물이 찼음이 보이고 찬물을 부어서 frosty 한 느낌이 난다. 마치 사진기로 찍은 것 같다. 벨라스케스는 어렸을 때 긴 붓으로 그리는 법을 훈련 받았다. 허름한 나무판을 배경으로 구겨진 옷을 입은 소년이 마셔봐도 이 물인지 저 물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며 뒤 사람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귀족 왕족도 아닌 동네 허름한 물장수인데 하얀색 소매가 보이며 얼굴에 나이가 잘 나타난다. 남루한 사람인데도 솔직하게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그려 존엄성dignity이 보인다. 평범한 옷을 입은 인물과 어둡고 환한 배경은 카라바지오의 영향이다.

상수도 시설이 아직 미비하여 동네마다 물파는 사람이 다닌다. 늙은 물장수 뒤에서 소년과 집주인이 보고있다. 벨라스케스가 20세에 그린 그림으로 격찬을 받는다. 카라바지오적 영향이 나타나 배경은 시커멓고 빛이 은은하다. 두개의 항아리가 다른 재질이다. 유약을 발라 반딱거리고 흠집이 나서 들어간 싸구려 항아리이며 마개가 보이는 큰 항아리에는 물방울이 떨어진다. 젊고 야심만만했던 벨라스케스는 그리기 어려운 투명한 유리잔을 그린다. 반짝거리는 유리에 물이 찼음이 보이고 찬물을 부어서 frosty 한 느낌이 난다. 마치 사진기로 찍은 것 같다. 벨라스케스는 어렸을 때 긴 붓으로 그리는 법을 훈련 받았다. 허름한 나무판을 배경으로 구겨진 옷을 입은 소년이 마셔봐도 이 물인지 저 물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며 뒤 사람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귀족 왕족도 아닌 동네 허름한 물장수인데 하얀색 소매가 보이며 얼굴에 나이가 잘 나타난다. 남루한 사람인데도 솔직하게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그려 존엄성dignity이 보인다. 평범한 옷을 입은 인물과 어둡고 환한 배경은 카라바지오의 영향이다.
Royal Seat of San Lorenzo de El Escorial
1622년에 장인 Pacheco 가 벨라스케스를 데리고 마드리드에 간다. 에스코리알은 전원 생활을 즐기기 위한 왕의 궁전인데 벨라스케스는 여기서 40년을 보낸다.

Velazquez, Philip IV 1632
이태리에 막 갔다와서 그린 그림이다. 필립 4세는 결코 잘 생긴 사람이 아니었기에 벨라스케스의 솜씨가 더 돋보인다. 필립 4세의 얼굴은 길고 턱이 내려오고 눈이 지푸린 듯한 합스부르그 왕가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초상화를 보고 에스코리알 궁전을 출입하는 귀족들이 너도나도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청한다. 이 그림에서 감동을 주는 부분은 얼굴이 아니라 옷인데 은사의 은은함이 얼굴을 압도하지 않고 옷으로 인해 풍채가 좋아 보인다. 옷을 자세히 보면 당시 유럽의 최고의 부유한 군주임이 드러난다. 당시에는 아무리 재능이 많은 화가라도 초상화를 못 그리면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초상화는 근엄하고 powerful 한 사람임을 나타내는 목적으로 집무실에 걸어놓는다. 이 그림은 집무에 열중하는 훌륭한 군주임이 잘 드러나 초상화의 목적에 손상이 없었다. 필립4세(1605-1665)는 40년 재위 동안 스페인의 몰락을 초래한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사람으로는 정치가보다는 예술가의 patron 으로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태리에 막 갔다와서 그린 그림이다. 필립 4세는 결코 잘 생긴 사람이 아니었기에 벨라스케스의 솜씨가 더 돋보인다. 필립 4세의 얼굴은 길고 턱이 내려오고 눈이 지푸린 듯한 합스부르그 왕가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초상화를 보고 에스코리알 궁전을 출입하는 귀족들이 너도나도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청한다. 이 그림에서 감동을 주는 부분은 얼굴이 아니라 옷인데 은사의 은은함이 얼굴을 압도하지 않고 옷으로 인해 풍채가 좋아 보인다. 옷을 자세히 보면 당시 유럽의 최고의 부유한 군주임이 드러난다. 당시에는 아무리 재능이 많은 화가라도 초상화를 못 그리면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초상화는 근엄하고 powerful 한 사람임을 나타내는 목적으로 집무실에 걸어놓는다. 이 그림은 집무에 열중하는 훌륭한 군주임이 잘 드러나 초상화의 목적에 손상이 없었다. 필립4세(1605-1665)는 40년 재위 동안 스페인의 몰락을 초래한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사람으로는 정치가보다는 예술가의 patron 으로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Velazquez, Surrender at Breda 1634-35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 그림으로 궁전의 hall 의 벽면에 붙인다.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브레다에서 적군을 잠시 무찔렀을 때 필립4세의 장군 General Ambrogio가 도시의 열쇠를 건너 받으면서 항복을 받는 장면이다. 역사화 구도이며 10”12” 의 대작이다. 주요 인물이 가운데 있고 주황색 비단의 sash 로 공들여 만든 비단 옷에 혈통 좋은 말은 엉덩이를 앞으로 보이고 있다. 축도법을 이용한 자세이며 살집 좋은 튼튼한 말임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의 대기원근법을 사용하여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기와 맞닿은 하늘을 그렸다. 뒤에서 집이 불타고 아직도 전쟁 중인 어려운 전투에서 항복을 받아낸다. 1625년에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겪었던 historical event 이다.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 그림으로 궁전의 hall 의 벽면에 붙인다.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브레다에서 적군을 잠시 무찔렀을 때 필립4세의 장군 General Ambrogio가 도시의 열쇠를 건너 받으면서 항복을 받는 장면이다. 역사화 구도이며 10”12” 의 대작이다. 주요 인물이 가운데 있고 주황색 비단의 sash 로 공들여 만든 비단 옷에 혈통 좋은 말은 엉덩이를 앞으로 보이고 있다. 축도법을 이용한 자세이며 살집 좋은 튼튼한 말임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의 대기원근법을 사용하여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기와 맞닿은 하늘을 그렸다. 뒤에서 집이 불타고 아직도 전쟁 중인 어려운 전투에서 항복을 받아낸다. 1625년에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겪었던 historical event 이다.
Titian, Pesaro Madonna 1519-1526
레오나르도가 구도에 기여를 했다면 채색을 완성시킨 화가는 티션이라고 본다. 페사로 가족이 둘러앉아 성모님을 경배하고 마치 각각 인물이 금색, 파랑, 주황의 옷을 차려입은 초상화같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blend한 레오나르도에 비해 색이 주는 호화로움을 티션에게서 즐긴다.

레오나르도가 구도에 기여를 했다면 채색을 완성시킨 화가는 티션이라고 본다. 페사로 가족이 둘러앉아 성모님을 경배하고 마치 각각 인물이 금색, 파랑, 주황의 옷을 차려입은 초상화같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blend한 레오나르도에 비해 색이 주는 호화로움을 티션에게서 즐긴다.
Velazquez, King Philip IV of Spain 1644, Frick Collection, New York
10년 전의 초상화에 비해 늙고 골골거리는 얼굴의 필립왕 인데 옷이 약점을 보완해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필립 4세는 벨라스케스를 1648년에 두번 째로 로마로 보내기 전에 이 그림을 그리게 한다.

10년 전의 초상화에 비해 늙고 골골거리는 얼굴의 필립왕 인데 옷이 약점을 보완해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필립 4세는 벨라스케스를 1648년에 두번 째로 로마로 보내기 전에 이 그림을 그리게 한다.
Velazquez, Juan de Pareja 1650
벨라스케스는 1649-51년 사이에 로마로 가서 교황 Pope Innocent X 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교황은 벨라스케스에게 솜씨를 보이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그래서 벨라스케스는 로마로 동행한 조수 후안 드 파레하의 초상을 그려 교황이 참석하는 작은 전시회에 낸다. 조수는 얼굴 색깔이 까무잡잡한 Moor 인의 후손으로서 중세에 북부 아프리카에서 이동하여 남부 스페인에 정착한 이슬람 혼혈 계통이다. 이 그림을 본 교황은 ‘너무 진실하다’ 라고 평하고 벨라스케스를 바티칸으로 데려가 초상을 그릴 것을 허락한다. 이후로 그는 유럽에서 명성있는 화가가 된다.

벨라스케스는 1649-51년 사이에 로마로 가서 교황 Pope Innocent X 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교황은 벨라스케스에게 솜씨를 보이는 증거를 가져오라고 한다. 그래서 벨라스케스는 로마로 동행한 조수 후안 드 파레하의 초상을 그려 교황이 참석하는 작은 전시회에 낸다. 조수는 얼굴 색깔이 까무잡잡한 Moor 인의 후손으로서 중세에 북부 아프리카에서 이동하여 남부 스페인에 정착한 이슬람 혼혈 계통이다. 이 그림을 본 교황은 ‘너무 진실하다’ 라고 평하고 벨라스케스를 바티칸으로 데려가 초상을 그릴 것을 허락한다. 이후로 그는 유럽에서 명성있는 화가가 된다.
Leonardo da Vinci, Mona Lisa 1503-07
호화로운 궁정 출신이 아닌 남루한 평민의 신분 후안 드 파레하는 비단 커튼 대신에 회색, 초록색의 회벽 배경에 서 있다. 그런데 단추, 컬러까지 갖추어져 나름대로 품위가 있다. 3/4관으로 몸을 틀고 응시하는 당당한 눈, 관객을 따라오는 매력적인 시선, 손을 보여주는 삼각형 구도는 모나리자를 연상시키며 심각한 계산과 연구 끝에 나온 그림 이다. 응시를 하지만 결코 도전적이지 않고 남김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검은 얼굴이 highlight 을 받아 번쩍거린다. 주인공의 인격과 사회적 가치가 드러나는 통찰력있는 초상화이다.

호화로운 궁정 출신이 아닌 남루한 평민의 신분 후안 드 파레하는 비단 커튼 대신에 회색, 초록색의 회벽 배경에 서 있다. 그런데 단추, 컬러까지 갖추어져 나름대로 품위가 있다. 3/4관으로 몸을 틀고 응시하는 당당한 눈, 관객을 따라오는 매력적인 시선, 손을 보여주는 삼각형 구도는 모나리자를 연상시키며 심각한 계산과 연구 끝에 나온 그림 이다. 응시를 하지만 결코 도전적이지 않고 남김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검은 얼굴이 highlight 을 받아 번쩍거린다. 주인공의 인격과 사회적 가치가 드러나는 통찰력있는 초상화이다.
Velazquez, Pope Innocent X 1650, Palazzo Doria-Pamphili, Italy
교황 이노슨트 10세는 이탈리아 출신 도리아 팽필리 집안으로 집안의 궁전에 거는 초상화를 그리게 한다. 교황은 희멀건 얼굴을 가진 필립 왕보다는 잘 생긴 사람인데 벨라스케스는 붉은 기가 도는 교황의 얼굴을 어떻게 그려야지 교황을 감동시킬까 고민한다. 그림 속의 교황은 3/4관으로 앉아서 교황의 반지를 끼고 편지를 읽고 있다. 초상화도 유행이 있어서 더 이상 책이 아닌 편지를 들고 있다. 편지를 확대하면 벨라스케스의 서명이 있다. 병사의 손과는 판이하게 다른 섬세함이 희고 작은 손에서 느껴진다. 얇은 린넨으로 주름 잡은 치마와 shimmering 하는 빨강색 비단 망토를 입고 있다. 약간 위를 꼬나보는 눈이 만만치 않음을 나타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지략가의 얼굴이다. 교황은 전략을 꾸며 스페인이 30년 전쟁을 하게 만든다. 바티칸의 근엄함, 교황의 풍모와 위치social standing가 드러나는 이 그림에 이노슨트 10세는 만족해한다.

교황 이노슨트 10세는 이탈리아 출신 도리아 팽필리 집안으로 집안의 궁전에 거는 초상화를 그리게 한다. 교황은 희멀건 얼굴을 가진 필립 왕보다는 잘 생긴 사람인데 벨라스케스는 붉은 기가 도는 교황의 얼굴을 어떻게 그려야지 교황을 감동시킬까 고민한다. 그림 속의 교황은 3/4관으로 앉아서 교황의 반지를 끼고 편지를 읽고 있다. 초상화도 유행이 있어서 더 이상 책이 아닌 편지를 들고 있다. 편지를 확대하면 벨라스케스의 서명이 있다. 병사의 손과는 판이하게 다른 섬세함이 희고 작은 손에서 느껴진다. 얇은 린넨으로 주름 잡은 치마와 shimmering 하는 빨강색 비단 망토를 입고 있다. 약간 위를 꼬나보는 눈이 만만치 않음을 나타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지략가의 얼굴이다. 교황은 전략을 꾸며 스페인이 30년 전쟁을 하게 만든다. 바티칸의 근엄함, 교황의 풍모와 위치social standing가 드러나는 이 그림에 이노슨트 10세는 만족해한다.
Raphael, Pope Leo X 1518, Uffizi Gallery, Florence
라파엘이 그린 메디치 가문 교황 레오 10세의 옷을 따라서 벨라스케스도 이노슨트 10세를 그린다.

라파엘이 그린 메디치 가문 교황 레오 10세의 옷을 따라서 벨라스케스도 이노슨트 10세를 그린다.
Titian, Pope Paul III and His Grandson, 1546
티션은 초상화 주문자를 미화시켜 아부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든 폴 3세가 할아버지의 자애 넘치는 모습으로 손주들을 본다. El Greco 에게서 영향을 받은 벨라스케스는 인물을 미화하여 그리지 않는다.

티션은 초상화 주문자를 미화시켜 아부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든 폴 3세가 할아버지의 자애 넘치는 모습으로 손주들을 본다. El Greco 에게서 영향을 받은 벨라스케스는 인물을 미화하여 그리지 않는다.
El Greco, Cardinal de Guevara 1596-1601
카톨릭 개혁운동을 하면서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인 카디널 구에바라가 엘그레코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옷을 입고있다.

카톨릭 개혁운동을 하면서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인 카디널 구에바라가 엘그레코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옷을 입고있다.
Francis Bacon, Screaming Pope 1953 Philippe Walker, Not So Innocent

프렌시즈 베이컨은 벨라스케스의 초상화 교황 이노슨트 10세를 따라서 교황 시리즈를 많이 그린다.


프렌시즈 베이컨은 벨라스케스의 초상화 교황 이노슨트 10세를 따라서 교황 시리즈를 많이 그린다.
Velazquez, Rokeby Venus (Venus and Cupid) 1647-51
그림의 빨강, 파랑 커튼에서 색채를 중시하는 베니스 학파 티션의 느낌이 난다. 비너스의 등조차 아름답다. 아들인 날개가 달린 큐피드가 목욕을 막 끝낸 비너스를 거울 장치를 이용해 보여준다. 실제로 이 각도로 거울을 놓으면 얼굴이 다 비쳐질 수 없으며 단지 그림 속의 장치일 뿐이다. 색깔이 어두워 은밀한 subtle느낌이 들며 살과 린넨이 대조되는 촉감으로 sensual 하게 자극되는 그림이다. 살이 주는 독특한 느낌을 유화기법으로 처리해 마치 3차원으로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1914년대에 한 여권운동가가 면도칼로 이 그림을 그었는데 복원을 잘 하였다. 벨라스케스의 말년의 작품으로 왕, 귀족의 개인 서재에 걸어놓고 보통 때에는 커튼으로 가려놓는 작은 사이즈의 private 한 그림이다.

Peter Paul Rubens, Venus at the Mirror 1614-15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루벤스는 사람의 몸을 뚱뚱하게 그린다. 흑인 하녀를 옆에 두어 비너스의 미를 더욱 강조하는데 아프리카에 배를 보내 노예무역이 시작된 당시의 시대상이 드러난다. 루벤스는 조직적으로 공방을 운영하여 조수를 시켜 부분적으로 나누어 그리는 노동의 분업화 방식을 사용했다. 루벤스 자신은 마치 제프 쿤스Jeff Koons 처럼 얼굴 부분을 touch up 하면서 돌아다녔다. 벨라스케스는 존경해마지 않는 루벤스에게 그림 속에 뒷 모습을 넣는 것을 배운다. 벨라스케스의 Rokeby Venus는 뒷 모습과 거울이 있는 루벤스의 비너스와 똑같은 구조이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루벤스는 사람의 몸을 뚱뚱하게 그린다. 흑인 하녀를 옆에 두어 비너스의 미를 더욱 강조하는데 아프리카에 배를 보내 노예무역이 시작된 당시의 시대상이 드러난다. 루벤스는 조직적으로 공방을 운영하여 조수를 시켜 부분적으로 나누어 그리는 노동의 분업화 방식을 사용했다. 루벤스 자신은 마치 제프 쿤스Jeff Koons 처럼 얼굴 부분을 touch up 하면서 돌아다녔다. 벨라스케스는 존경해마지 않는 루벤스에게 그림 속에 뒷 모습을 넣는 것을 배운다. 벨라스케스의 Rokeby Venus는 뒷 모습과 거울이 있는 루벤스의 비너스와 똑같은 구조이다.
Titian, Venus of Urbino 1538
티션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많은 화가들이 따라서 그린 모델이 되는 그림이다. 100여년 후에 그린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에 비하면 약간 촌스럽게 보인다.

티션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많은 화가들이 따라서 그린 모델이 되는 그림이다. 100여년 후에 그린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에 비하면 약간 촌스럽게 보인다.
Velazquez, The Maids of Honor (Las Meninas) 1656
벨라스케스가 죽기 4년 전에 그린 마지막 대작 ‘하녀들’이다. 10’9’ 사이즈의 큰 역사화 규모이다. 표면상의 제목은 하녀들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스튜디오 공간을 그린 것 으로서 1650년에 교황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조수 후안 드 페레로를 그린 것 처럼 화가에게는 의미있는 그림이다. 천정에 등이 붙어있고 선형원근법linear perspective 을 적용해 벽에 그림이 걸리고 앞에 커다란 캔버스가 놓인다.


궁전 안에 마련된 벨라스케스의 화실에 마가리타 공주, 국왕 부부, 궁정 staff, 자신을 그려넣었다. 공주 옆에 2명의 하녀The Maids of Honor가 있다. 열린 문 사이에 서 있는 남자 시종, 수녀복 차림의 가정교사 겸 보모, 궁전의 entertainment 를 제공하는 난장이 어릿광대, 개가 있다.

벽의 거울에 비친 필립 4세 부부이다. 벨라스케스의 화실 앞쪽에 초상을 그리게끔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 장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Jan van Eyck: The Arnolfini Marriage 1434

얀반아이크의 그림 ‘아놀피니의 결혼’ 에 볼록거울이 등장한다. 방 앞쪽에 결혼의 증인 2명이 있음이 거울에 비춰진다. 벨라스케스의Las Meninas 에서도 볼록거울 장치가 보인다.


얀반아이크의 그림 ‘아놀피니의 결혼’ 에 볼록거울이 등장한다. 방 앞쪽에 결혼의 증인 2명이 있음이 거울에 비춰진다. 벨라스케스의Las Meninas 에서도 볼록거울 장치가 보인다.

화가 벨라스케스의 인생을 말하는 종합편의 그림이다. 존경하는 선배 화가 루벤스 Peter Paul Rubens의 신화 그림 Ovid’s Metamorphosis 가 화실의 벽에 걸려있다. 하녀들 그림에 나오는 루벤스 그림은 현존하는 작품들 중에 어느 것이라고 확인된 바는 없다.
Peter Paul Rubens, Perseus Freeing Andromeda (1622) Pan and Syrinx (1619)


루벤스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으므로 스페인 국왕의 소장품 중 어느 것일 수는 있겠는데 아직 학자들이 어느 작품이라고 확인하지는 않았다. Ovid’s Metamorphosis는 위의 그림 종류들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조금 젊은 벨라스케스 자신의 모습을 royal family 와 동격으로 그려 넣었다. 그의 가슴에 걸린 십자가는 스페인에서 12세기에 설립된 클럽 Order of Saintiago 의 회원의 상징이며 동시에 왕의 기사단 marshal 의 표시이다. 미천한 화가에서 벗어나 명예를 쌓은 사회적 출세를 의미한다.

이 부분만 보면 마가레타 공주의 초상화이다. 벨라스케스가 죽은 후 1700년 경에 Antonio Palomino (1655-1726) 가 그에 대한 전기를 쓰는데 이 책 속에 Las Meninas 에 대한 설명이 잘 나와있다. 필립 왕이 ‘하녀들’ 을 너무 사랑하여 침실에 걸어두고 날마다 보면서 그림의 종합편 theology of painting 이라고 극찬하였다. 왕이 친히 소유했던 Las Meninas 는 royal family 초상화, 화가의 자화상, 화가의 스튜디오 등 여러 의미를 지닌다. 왕이 화가의 명예를 높여준 여러가지 일화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화가 Apelles (BC4세기)의 화실을 방문해 붓을 줏어준 이야기는 프랑스 국왕이 티션을 베니스로 친히 방문하여 늙은 화가가 떨어뜨린 붓을 줏어준 일화와 연결된다. 벨라스케스는 그 일화에 한층 더 의미를 가한다. 왕의 스튜디오 방문은 화가의 존엄성과 자신을 왕족과 동등한 자리에 놓는다는 의미를 던진다.
Picasso, Las Meninas after Velazquez 1957 Museo Picasso, Barcelona, Spain.

피카소가 ‘하녀들’을 희화화해서 재구성한 그림이다. 벨라스케스의 콧수염, 십자가, 붓을 든 손과 팔레트가 있고 거울, 하녀와 마가렛타 공주, 수녀 둘은 네모로 표시했다. 스페인 미술계의 계보는 벨라스케스에서 고야로 내려오고 피카소로 이어진다.
Bartolome Esteban Murillo, Virgin and Child 1670

요즘 보는 사실적인 성화는 무리오로부터 시작된다. 벨라스케스는 궁정에서 활동을 했지만 스페인의 지방에서는 성화가 유행을 한다. 아름답고 순수한 얼굴 풍의 라파엘, 검은 배경의 대조 contrast 를 강조하는 카라바지오, 아름다운 채색을 하는 티션을 섞은 듯한 성화이다.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로 식민지 진출을 함에 따라 수르바란, 무리오 풍의 성화가 건너간다. 스페인 바로코 미술이 라틴 아메리카로 유입되어 심미적인 예술 aesthetic art 세계에 visual standard 를 제공하여 무궁무진한 variation 이 일어난다.

요즘 보는 사실적인 성화는 무리오로부터 시작된다. 벨라스케스는 궁정에서 활동을 했지만 스페인의 지방에서는 성화가 유행을 한다. 아름답고 순수한 얼굴 풍의 라파엘, 검은 배경의 대조 contrast 를 강조하는 카라바지오, 아름다운 채색을 하는 티션을 섞은 듯한 성화이다.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로 식민지 진출을 함에 따라 수르바란, 무리오 풍의 성화가 건너간다. 스페인 바로코 미술이 라틴 아메리카로 유입되어 심미적인 예술 aesthetic art 세계에 visual standard 를 제공하여 무궁무진한 variation 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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