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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르네상스 미술, 영국과 네델란드 5/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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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슬리 댓글 0건 조회 8,135회 작성일 11-05-19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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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르네상스 미술 21st hour: Northern Renaissance in the Netherlands /England 북구 르네상스 미술, 영국과 네델란드
 


15세기 북유럽은  국제 고딕양식이 지속된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인문주의가 북유럽에 전파되었지만 세부장식에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는 북유럽 특유의 스타일이 계속된다. 이시기에 네덜란드 화가 얀반 아이크에 의한 유화기법이 등장하였고 필사본 삽화가 여전히 그려지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의 원근법에 대한 관심을 가진다. 16세기에 홀바인 같은 플랑드르 지방 화가들이 영국에서 활약하고 네델란드의 보슈, 브뤼겔 같은 뛰어난 화가들이 등장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소규모 도시국가들이 독립된 정치/ 경제 구조를 이루어 대규모의 후원/프로젝트 대신에 부르주아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소규모 종교화가 많이 주문/제작되었다.
 
Europe in the 15th Century
 

영국은 1500년대에 문예 분야에는 섹스피어가 있었지만19세기에 William Turner 가 나오기 전까지는 시각 미술 분야에 내놀만 할 화가가 없었다. 창의적 역량이 있는 화가가 배출되는 플랑드르 지방을 자기네 영토처럼 사용하는  영국은 필사본이나 왕실의 초상화가 필요하면 플랑드르에서 화가를 데려와 그림을 그리게 했다. 
 
Wilton Diptych 1400
 
영국왕 Richard II의 2폭 짜리 초상화 패널로서 고딕 스타일의 종교화이다.
 
Hans Holbein the Younger, Portrait of Erasmus 1523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 는 Dutch Humanist 로서 1500년대 유럽 최고의 bestseller 작가인데 독일 화가 홀바인이 초상화를 그린다. 
 
Nicholas Hilliard, Young Man among Roses, 1588
 
1500년대 섹스피어가 활동할 당시의 의상이다. 영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는 창의적인 미술 장식품을 이탈리아에서 들어오는 수입에 의존한다.
 
Marcus Gheeraerts the Younger(1561/62 – 1636), Portrait of Elizabeth 1592
 
Marcus Gheeraerts는 플랑드르 지방의 Bruges태생이지만 신교의 박해를 피해 화가인 아버지와 함께 어렸을 때 영국으로 도망간다. 영국의Tudor dynasty (1485-1603) 의 헨리 7세, 엘리지베스 1세 등 왕실의 초상화를 그린다.
 
Hans Holbein, Henry VIII
 
플란드르 화가 한스 홀바인은 영국 왕실의 초상화를 그린다. 헨리 8세의 칼과 노란색의 금실이 섞인 패턴의 옷, 세부 장식의 테크닉이 뛰어나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위엄과 품위가 있다. 이태리는 티치아노가 인기있는 화가였듯이 홀바인은 영국과 네덜라드에서 누구나 그림을 부탁하고 싶은 화가였다. 영국 사람은 이태리의 그림을 아주 좋아하여 조직적으로 Italian master 의 그림을 수집했으며 English collector 의 역사는 유래가 깊다고 할 수 있다.
 
Longleat, Wiltshire, Robert Smythson, England 1572-80
 
영국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방식의 영향을 받아서 지은 성이다.

Burgundy and Flanders
 

플랑드르 지방은 현재는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로 나누어져 있다. 버건디 지방의 공작Duke of Burgundy 은 정략 결혼으로 땅을 넓혀갔으므로 영토가 나누어져 있다. 플랑드르는 비옥한 농토이기는 해도 상업의 중심지는 아니어서 결혼을 통해 위치적으로 주요 도시들을 확보해 나간다. 정치적으로는 프랑스에 속하는 버건디 지방에는 부릐주, 켄트, 르뱅 등 도시국가가 있었고 시민이 선출한 대표가 도시를 통치했다. 남부 프랑스는 아퀴텡 집안이 다스리고 있었다. 1400년대 버건디공국Duchy of Burgundy 의 경제 규모는 프랑스 왕을 능가했으며 더 안정되고 풍요로왔다. Duke of Burgundy 는 미술 애호가로서 미술을 후원했으며 얀반 아이크를 위시한 북구 유럽의 모든 화가들은 버건디 공작의 보호 아래 있었다. 또한 무역 금융의 도시인 Bruges 에 메디치가와 이탈리아의 은행 간부들이 모여들어 경제적 수준이 높았고 네덜란드 화가들이 부릐주에서 공방을 차리고 부유한 고객을 상대했기에 사치품들도 많았다.

Duchy of Burgundy 1477
 
Philip the Good과 Charles the Bold 는 대표적인 버건디 공작으로서 Charles the Bold 의 상속녀 Mary of Burgundy 가 Holy Roman Empire 의 왕비가 됨에 따라 그 영토까지 어우르는 세력을 가지게 된다.
 
Master of Mary of Burgundy (1457 – 1482), Duchess of Burgundy
 

15세기 말에 버건디 공작 집안의 Charles the Bold 의 유일한 혈육인 Master of Mary of Burgundy 가 Holy Roman Empire 를 다스리는 합스버그Hasburg 왕가의 황제 맥스밀리언 Maximiliam 1세와 결혼을 한다. 맥스밀리언 황제는 아들 필립을 스페인의 여왕이 될 Joanna of Castil 과 1498년에 결혼을 시켜 스페인에 Hasburg Dynasty 를 세운다. 이런 혼인 관계로 연결된 스페인과 네덜란드 왕실 집안은 바로크 시대에 가면 직접적으로 잦은 교류를 한다. 네덜란드 화가 보쉬의 좋은 작품이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가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카톨릭을 정통으로 여기는 신성로마제국이 스페인에 들어가 왕조를 세움에 따라 스페인의 신교 세력과 종교적 마찰이 심해진다.   
 

Robert Campin, Annunciation  Diptych
 

로버트 캠핀이 플랑드르 부릐주 근처에서 공방을 열고 활동을 한다. 당시의 부자들은 집에 종교화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중요한 성화이므로 평일에는 양쪽 wing 을 닫아놓고 있다가 성인의 축제일에만 연다. Wing의 뚜껑에도 그림이 있는데 주로 가족의 문장을 그린다. 네덜란드 지방에는 17세기에 종교전쟁이 벌어지는데 사람들은 부패된 교회와 별도로 개인의 종교심을 채워 줄 작은 사이즈의 devotional image 를 원했다. 개인화된 종교 서비스가 목적이므로 그림이 클 필요가 없었다. 왼쪽 wing에 그림을 커미션한 patron 부부가 있는데 죽은 후에 이 그림을 교회에 기증한다.
 
Macaccio, The Holy Trinity 1428       Robert Campin, Merode Altarpiece 1425-28
                               
1420년대 비슷한 시기임에도 이탈리아의 마사치오는 과학에 의거하여 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북유럽은 자기 고장의 상징적인 물건에 의미를 두는 판이하게 다른 그림을 그린다.

Jan Van Eyck, Man in a Red Turban, self portrait 1433
 

얀반 아이크는 네덜란드 미술을 한 단계 올린 화가로서 15세기에 유화 기법을 발명하여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전해준다. 얀반 아이크는 독일의 뒤러같이 자기 개발을 끊임없이 하였으며 당시의 화가로는 드물게 자화상을 그린다. 33cm 의 작은 그림으로 frame 의 밑부문에 고대의 작품을 흉내내어 ‘얀반 아이크가 나를 만들었다’ 라는 inscription 을 날짜와 함께 새겨 넣었다. 뒤러의 자화상에는 손이 있지만 자의식이 강한 얀반 아이크는 자신의 초상에 손을 그려 넣지 않는다. Frame 의 윗부분에는 얀반 아이크의 motto 인 As I can 이 그리스어(ALS ICH KAN) 로 쓰여져 있다. 필사본 화가 출신으로 귀족도, 교육을 받은 자도 아닌 얀반 아이크는 혼자서 공부하여 학식을 이루었는데 자신의 능력을 보이기 위해 그리스어로 inscription 을 쓴다. 그가 쓰고 있는 터번은 당시에 유행했던 복장으로 검은색과 빨간 색의 경계가 보이며 oil painting 이다. 얀반 아이크는 광학 optical science 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시기에 비잔틴 제국이 망하면서 광학과 관련된 이슬람의 도구들이 서유럽에 전파된다.

Jan van Eyck, The Madonna in a Church 1425-1430
 

얀반 아이크가 그린 작은 사이즈의 그림으로 큰 그림의 뚜껑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을 한다. 1400년대 북유럽은 여전히 International Gothic 양식을 쓰고 있었기에 세부 장식에 많은 신경을 쓴다. 천장에 비해 마리아의 키가 너무 크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은 공간을 과학적으로 측정해 인물의 키와 비율을 맞추어서 그리는데 경험에 의거하는 북유럽 화가들은 성모를 천장의 높이에 비해 너무 크게 그렸다. 사실적인 묘사 보다는 상징적, 종교적 의미에 더 치중하는 것이 북유럽의 전통이다.

Jan Van Eyck, Ghent Altarpiece, Church of St. Bavo, Ghent, Belgium, completed 1432
 

얀반 아이크는 젊었을 때 필사본 화가라고 추측이 된다. 그의 그림은 필사본 삽화처럼 대부분 작고 세부 묘사가 뛰어나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얀반 아이크는 유화기법을 발전시켰고 화가로 대성한다. 소규모의 상인들이 주문하는 그림은 사이즈가 작을 수 밖에 없는데 교회의 공공 자금으로 주문한 켄트 제단화는 대규모의 그림이다. 평소에는 뚜껑을 닫아두고 축제일에 열어서 가운데 그림을 보여준다. 손씻는 대야, 창 밖의 도시 풍경, 책읽는 성모 등의 detail 이 로버트 캠핀이 그린 Merode Altarpiece 와 비슷하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와 마리아가 공간에 비해 너무 커서 비율이 과학적이지 않고 상징적임을 알 수 있다. 천사와 마리아의 위에는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이 있다.
가운데 세례 요한과 사도 요한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patron 인 Jodicus Vijd 부부가 들어가 있다. 남편의 대머리, 주름이 많은 부인의 얼굴, 부유함이 풍기는 옷 등에서 사실적인 묘사가 보인다. 두 요한의 옷에 희끄므레한 흑백의 그리자이유 Grisaille 테크닉이 보인다. 14-15세기에 유행한 Grisaille 는 2차원의 그림을 3차원의 조각으로 보이게 한다
 
Hubert and Jan Van Eyck, Ghent Altarpiece, 1432 (open)


문을 닫으면 사이즈가 안 맞는 것으로 봐서 누군가가 보수 작업을 해서 덪붙인 것 처럼 보인다. 얀반 아이크의 초기 작품으로 형Hubert 와 같이 작업을 했다. 화가 직종은 소규모 자영업의 family business 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필사본 화가 공방에서 시작한 두 형제가 같이 커미션을 받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한다 1970년대 미술사가 파노프스키 Panofsky는 정밀한 묘사가 있는 양쪽의 날개 부분을 얀반 아이크가 그렸다고 본다. 거장 얀반 아이크와 그의 형 Hubert 와 여럿의 조수들이 함께 그린 보기 힘든 대작 중의 하나이다.

 
 
중요 주제는 adoration of lamb 이며 뒤 배경에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고딕 스타일의 뾰족한 성당이 보인다. 얀반 아이크는 네델란드와 기후가 너무 다른 예루살렘을 그리기 위하여 온난한 기후의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오렌지 나무, palm tree 등을 스켓치한다. 오른쪽에 고위 성직자 무리, 군인 무리, 맨발에 무릎 꿇은 humble 한 무리 등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대신하는 어린 양을 볼 수 있다는 흥분에 다 따라온다.
 
 
 
            
빨간 코트를 입은 크리스토퍼 성인은 순례자 수호성인으로서 pilgrim 을 이끌고 있다. 비숍의 무리가 옷을 차려입고 책과 지팡이를 들고 보석관을 쓰고 있다. 풍요로운 물질을 나타내는 detail을 자세히 묘사한 Realism of Particular이다. 부활 시즌 4, 5월에 흰색꽃들이 만발하고 민들레 같은 잡초도 보이고 봄의 풍취가 느껴진다. 동백나무, 오렌지 나무, 레몬나무도 있는 이 그림을 놓고 마치 식물도감을 보듯이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단순한 종교화를 넘어서서 이국적인 exotic 정취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준다.
 

    
페널에 있는 아담의 상체는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며 아래는 어둡고 발가락은 5개를 다 보여주기 위해 전경의 모습을 줄여 그리는 foreshortening 이 나타난다. 이브의 배가 많이 나왔는데 당시에 여자의 모습을 그리던 풍습이다.



        

아담의 inscription 이 있고 위에 카인과 아벨이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장면이 있다. 카인은 자신의 제물에 받아 들여지지 않자 아벨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낀다. 인간이 몹쓸 짓을 하는 내용이 성경에 많이 들어있는데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인간의 원죄를 상키며 성경 전체의 밑거름을 지시한다.



Heavenly Jerusalem 의 모습을 상상해 그렸으며 앞에 있는 샘은 eternal life 를 상징한다. 페널의 다른 부분은 재림 second coming 을 의미한다.
 
Painting of Ghent Altarpiece in Chapel, Rijksmuseum, Amsterdam
 
15세기에 누군가가 얀반 아이크의 Ghent Altarpiece 를 모방하여 그렸고 교회 안에 걸려있는 모습이다.

Jan Van Eyck, Giovanni Arnolfini and His Bride 1434 oil painting
 

종교화가 아닌 인물화, 초상화로서 영국 런던의 National Gallery 가 가장 자랑하는 흥미로운 걸작품이다. 사진기가 없었던 시대에 지오바니 아르놀프니의 결혼 event 를 기념하는 작은 그림으로 친밀한 intimate 거리에서 자세히 들여다 보며 감상해야 한다. 장소는 침실이며 침대, canopy, 의자, 상드리에, 거울, rug, 강아지, 여자 슬립퍼, 창문, drawer, 과일 등 온갖 detail 이 다 들어있다.
켄트 제단화에서 이브의 배가 많이 나와 있듯이 지오바니의 신부 Giovanna Cenami 의 배도 많이 나왔는데 당시에 여자를 그리는 관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잡아올린 옷으로 인하여 배가 더 나와 보인다. Textile 이 주는 질감이 잘 표현되어 체나미가 입은 안의 파란색 옷과 밖의 연두색 옷의 두께가 달라 보인다. 아르놀프니가 입은 발목까지 오는 stylish 한 털 코트는 그가 나름대로 괜찮은 사회의 지도층임을 시사한다. 이태리 사람인 아르놀프니는 메디치가의 은행을 관리하는 지점장으로서 상업의 도시인 네덜란드의 부르쥐에 와서 사는데 최근에 결혼을 하는데 증인을 앞에 세워놓고 결혼 서약을 하는 그림이다. 지오바니 아르놀프니는 잘 생긴 남자는 아니지만 돈을 맡길만한 믿음을 주는prudent 얼굴이다. 여자는 17, 18세로 어려 보이고 예쁘게 생겼다. 당시에는 이런 종류의 부부 초상화가 많이 그려졌다. 어떤 금세공업자 부부는 작은 booth 에 앉아있는 자신들의 double portrait을 그리게 하기도 했다.
 


Detail 을 보면 고가품인 브래스 샹들리에 빛이 와서 딱 떨어진다. 물건이 주는 호화로움을 감상하는 것이 네덜란드 그림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벽에 걸린 거울 주위의 작은 메달리온 안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매고 가는 수난 passion cycle 이 그려져 있다. 거울에 매일 아침 얼굴을 비추어 볼때 허영 vanity 에 빠지지 말고 죽음을 명상하라는  의미이다. 침대의 headboard 에 비짜루whiskbroom 가 달려 있는데 집안을 깨끗하게 하라는 reminder로서 흔한 household item 이다. 비짜루 위에 halo 를 두르고 공룡을 탄 St. Margaret 상이 있는데 childbirth 의 수호성인으로 신혼 가구 set 에 흔하게 들어가는 장식품들이다.
 


색깔이 다른 유리로 만든 묵주가 거울 옆의 벽에 달려있는데 빛이 투과되어 그림자까지 비치도록 세밀하게 묘사했다.  거울 위의 벽에 글씨가 있는데 무슨 뜻 일까? Late Gothic 체로 된 이 글씨는  ‘얀반 아이크가 여기에 증인으로 있었다’ 라는 쓰여져 있다. 그림에는 없지만 볼록 거울에 방의 끝에서 서서 신혼부부를 쳐다보는 두 증인이 비추어져 있다. 또 한사람의 중인은 시청에서 나온 공증인 civic official 로 보인다.

 
이탈리아에서 딸이 결혼할 때 하나씩 해주는 drawer 위에 자손 번영fertility을 상징하는 오렌지가 놓여있다. 오렌지는 결혼과 관습적으로 연관이 되는 과일이다.
 
 

중세 르네상스 미술을 세밀하게 연구한 독일계 유대인 학자 Panofsky 에 의하면 집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household 물건 같지만 관습적 종교적 의미가 숨겨져 있고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샹드리에 위에 다른 촛불은 꺼져 있지만 딱 한 개의 촛불 만이 밝혀져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crucifixion 으로 인해 촛불이 꺼졌지만 다시 불이 켜진 한 개의 촛불solitary lit candle은 여러가지를 상징한다. 재림 second coming 하신 예수님을 의미하기도 하고 결혼 시에 촛불을 켜는 풍습을 따라 신이 결혼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다. 하나의 불 켜진 촛불은 구원의 기회는 단 한번임을 강조한다. 

 
 

티치아노의 Venus of Urbino 에서도 나타난 강아지는 주인을 다르는 충절 fidelity 의 의미가 있다.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결혼에 있어 여자가 신의를 지켜야한다는 뜻으로 강아지를 그렸다고 파노프스키는 풀이한다.

 


네덜란드 신발 clogs 이 왼쪽 끝에 있는데 성경적인 의미로는 holy ground 에서 신을 벗어야 함을 상징한다. 네덜란드에는 결혼시에 부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이 그림에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의 관습과 종교적 의미가 다 혼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를 넘어서서 네덜란드식 상징주의 Early Netherlandish Symbolism 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0년대 파놉스키가 죽고 나자 다른 젊은 학자는 이 그림은 legal document 라고 다른 의견을 내 놓는다. 결혼을 증명하는 문서이므로 얀반 아이크가 벽에 sign 을 남겼다고 한다. Banker인 지오바니 아르놀프니는 출장을 자주 다녀 집에 잘 없는데 남편의 출타시 체나미가 남편을 대신하여 business 를 좀 해야 하는 상황이다. 돈과 관련된 업무인 만큼 아르놀프니의 부인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필요했다. 더우기 이들 부부는 이탈리아에서 온 외지인이라 부릐주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증거를 제시했어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볼록거울 속에 두사람의 증인과 창문이 하나가 더 보인다. 양 증인은 방끝에 서서 부부를 바라본다. 거울에 비친 방을 보고 방의 사이즈를 연구하며 원근법이 얼마나 적용되었는지 알기 위해 perspective drawing 을 해 본 결과 그렇게 과학적인 원근법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부부의 intimate한 공간에 증인까지 불러 손을 잡고 있는 이gesture 는 고대 로마시대의 석관에서 따온 결혼을 의미하는 motif 이다.

Rogier Weyden, Descent from the Cross 1435

 

감정표현emotional expression 이 극렬하게 나타난다. 당시에 이탈리아 화가들은 강렬한 감정 표현을 하지 못했는데 로지에를 보고 따라한다. 그림이 마치 극장에서 연극을 보듯이 드라마틱 theatrical하고 압축된 공간이 폐소 공포증 claustrophobic 이라도 유발시킬 것 같은 특이한 분위기이다. 거의 쓰러지는 파란 옷의 마리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여자.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비통함 pathos 이 얼굴과 gesture 에서 나타난다. 제단화인데 양쪽 wing 은 잃어버리고 Archers Guild 가 돈을 냈기에 양쪽 윗부분의 frame장식에 활과 화살이 있다. 로지에 그림의 감정 이입이 이탈리아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다. 
 
Masaccio, The Tribute Money 1425
 
동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 마사치오가 그린 성전세의 인물들은 감정이 나타나지 않고 자세도 휘멀것게 서 있다.
 
Hugo Van der Goes, Portinari Altarpiece 1474-76
 

포르티나리 가족은 이탈리아 사람인데 메디치가 은행일을 보면서 네덜란드 부르쥐에서 산다. 이 가족이 주문한 그림으로 왼쪽 wing 에 아버지와 두 아들이 들어가고 오른쪽 wing 에 어머니와 딸이 있다. 가운데는 Nativity 이며 화가가 이태리로 그림을 가지고 가서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도 이 그림을 본다. 북유럽의 전통인 백합꽃, 화병 등이 있고 예수님이 태어난 성스러운 땅이므로 신발을 벗고 있다. 인물 사이즈가 이성적으로 맞을 필요 없이 중요한 인물은 크게, 덜 중요한 인물은 작게 그려 북유럽의 미술은 과학보다도 감정이 지배함을 알 수 있다.
 
Hours of Mary Burgundy, Crucifixion and Virgin and Child, Flanders 1475
   
버건디의 공작부인 메리의 기도서이다. 메리가 책을 읽는데 마리아 옆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비엔나에 있는 합스부르그 집안에 속하는 기도서이다. 귀족 여인들은 결혼의 fidelity 를 상징하는 lab dog 을 가지고 있었고 악세서리도 많이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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