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 르네상스 미술, 독일 5/3/11 > 김미연 아트노트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김미연 아트노트


 

북구 르네상스 미술, 독일 5/3/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7,041회 작성일 11-05-08 16:58

본문

중세 르네상스 미술 19th hour: Northern Renaissance in Germany 북구 르네상스 미술, 독일



북유럽 독일에서는 마틴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미술도상에서 카톨릭 교리 대신 성서 중심의 새로운 해석이 대두가 된다.  북구 르네상스의 특징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업적을 받아들이면서도 고전미술의 복원보다는 정신적, 감정적인 표현에 몰두하여 강렬한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는 점이다. 1450년에 구텐베르크 성서가 금속인쇄로 제작된 이후 성서 및 출판물이 점점 대중적으로 공급되어 종교개혁 및 인문주의의 전파를 촉진한다. 독일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알브레히트 뒤러가 있다. 특히 뒤러는 이탈리아를 직접 여행하였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견줄 만큼 학식과 독창성이 뛰어난 화가 겸 출판가로 진정한 르네상스맨의 모델을 보여준다. 

1. Raphael, Virgin and Child with Saints 1504-05

 

북유럽의 독일, 프랑스는 이태리의 미켈란젤로, 레오나도 다 빈치, 라파엘의 명성을 들었고 그림을 보기는 보았는데 그 실력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독일은 그림보다는 응용미술 쪽으로 발전하여 목판, 금속판으로 찍어내는 인쇄가 유행을 한다. 
 

2. Marcantonia Raimondi, After Raphael, The Judgment of Paris 1520
 

Marcantonia Raimondi는 이탤리의 goldsmith 겸 painter 이다. 미켈란젤로, 라파엘이 그린 주제를 따와서 동판에 철침으로 그린 engraving 테크닉이다. 로마에 온 여행객, 대사, 추기경들이 명성이 높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의 그림 앨범을 사가지고 본국에 돌아가고 북구 유럽의 화가들은 로마의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을 본다. 로마의 출판업자가 구독자 subscriber 를 모아서 미리 돈을 받고 인쇄를 하여 영국, 독일에 앨범을 가지고 가기도 한다.

파리스의 심판은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주제이다. King Peleus of Thessaly 와 바다의 여신 Thetis 의 결혼식이 열리는데 불화의 여신 Eris가 초대받지 못한 분풀이로 결혼식에 나타나 황금사과를 던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이에게 To the fairest." 라고 외친다.  세 여신 Minerva (Athena), Venus(Aphrodite), 제우스의 부인 Hera는 서로 사과를 차지하려고 싸움이 일어난다. 제우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핸섬한 남자인 목동 파리스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는데 파리스의 진짜 신분은 트로이의 왕자이다. 세 여신은 사과를 받기위해 파리스에게 뇌물을 약속하는데 파리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주겠다고 한 비너스에게 사과를 준다. 그러나 비너스가 약속한 여자 Helen 은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파리스는 헬렌을 납치를 하고 그녀의 희랍인 남편은 화가 나서 트로이로 쳐들어와 트로이전쟁Trojan War (BC 12~13경) 이 발발한다.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로마에서 유행이 되고 프랑스, 영국, 독일 조각가와 화가들은 로마의 그림의 구도를 베껴서 engraving 으로 만든다. 17세기 바로크 전까지는 북유럽의 화가들은 그림에서 이탈리아 화가의 실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로마의 좋은 그림을 보고 자기네 스타일로 도안을 만들어 응용하는 미술이 북구 유럽에서 유행을 한다. 프랑스 대혁명 (1789년) 보다 앞선 시기인 르네상스를 early modern period 라고 한다. 중세에는 화가가 여행을 가서 노트에 스켓치를 해서 본국에 가져감으로서 아이디어가 퍼져 나갔지만 16세기 쯤에는 도안책이 전파가 되므로 정보의 전달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르네상스 미술의 아이디어가 출판을 통해 저변으로 확대되어 로마의 유행이 6개월 안에 파리에 나타난다.

3. Martin Luther 1453-1576
 

1450년에 구텐베르크 성서가 제작된 이후 출판물이 대중적으로 퍼지고 종교개혁 및 인문주의의 전파를 촉진한다. 독일은 겉으로는 신성로마제국 Holy Roman Empire 이지만 통치력이 약해져서 지방 분권의 영주가 세력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독일의 분권이 심해지자 도시국가는 로마 교황과 상관이 없는 느낌이 들고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 등이 불만을 조장하여 도시 중심으로 종교개혁 움직임이 강화된다. 독일의 마틴 루터 (1453-1546)와 스위스의 존 캘빈 (1509-1564)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일으킨다. 카톨릭 수구세력인 프랑스,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는 프로테스탄트의 세력이 못 들어오게끔 갖은 노력을 하며  반종교개혁 (Counter-Reformation) 운동으로 트렌트 종교회의 Council of Trent (1545-1563)를 개최한다.

4. Gutenberg Bible 1450

 
1450년에 구텐버그 바이블이 180부가 인쇄된다. 현재 48부가 남아있고 그중 한 부가 New York Library 에 있다. 금속으로 찍어낸 성경의 목적은 최대한 중세 필사본처럼 보이게 하는 것으로 복음서 첫장에 그림도 넣고 첫째 글자를 크게 쓰기도 했다. 중세에는 양피지로 필사본illustrated manuscript 을 제작했는데 구텐버그 성경은 종이를 사용한다. 750년 경에 중국의 제지법이 아랍인에게 전파되고 종이제작이 계속되었지만 질이 좋지를 않았다. 비잔틴 제국이 1453년에 망하고 제지법이 서구 유럽에 전파되고 종이질이 좀 나아진다.

5. Masaccio, The Holy Trinity 1428     Robert Campin, Annunciation Triptych, Toumari, 1425

                                        
이탈리아의 르네상스에서 마사치오 등이 원근법, 소실점 등에 대한 연구를 하는 동안 과학적 기법은 아직 잘 모르는 북구 유럽의 네덜란드에서는 로버트 갬핀이 Annunciation Triptych 같은 그림을 그린다.

Robert Campin, Annunciation Triptych, Toumari, The Cloister 1425

 
1400경의 북유럽은 르네상스라고 하지 않고 Late Gothic 이라고 불리며 그림의 detail 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데 이런 화풍을Realism of Particulars 라고 한다. 소품들의 emotional 한 면을 강조하여 상징적인 가치를 끌어온다.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portable 종교화로 나중에 교회에 기부를 하기도 한다. 북유럽은 1500년 가까이 가서야 르네상스를 받아들인다.

Detail, Robert Campin, Annunciation Triptych, Toumari, The Cloister 1425

  
꽃병 안의 lily 와 물대야는 성모의 purity 를 상징하며 꺼져가면서 연기가 나는 초는 예수의 죽음을 상징한다. 온갖 detail 에 종교적 의미를 불어 넣는다. 재산을 모은 네덜란드 중산층의 부인이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 마리아를 의미하듯 천사가 옆에 있다. 

Detail, Robert Campin, Annunciation Triptych, Toumari, The Cloister 1425
             
왼쪽의 문을 열고 나가면 원죄 없으신 성모님Immaculate Virgin 을 상징하는 enclosed garden 이 있고 그 안에 그림을 부탁한 후견인 부부가 있으며 남자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다. 오른쪽에는 바깥 양반의 가게가 있다. 마치 요셉인 양 carpenter 일을 하고 있다. 네넬란드 사람의 일상처럼 보이지만 성화의 의미를 내포한다. 요셉 뒤로 광장의 풍경이 보이는데 거리의 사람들이 뭐하는지 조차 다 알 수가 있다. 중세에 필사본을 만든 기술과 전통을 살려 detail 에 굉장히 섬세하다. 과학을 몰라서 거리감이 일관적coherent 이지는 않지만 경험에 의거한 원근법이 보인다.

Detail, Robert Campin, Annunciation Triptych, Toumari, The Cloister 1425


Detail 이 고가 사치품으로 당시 부르조아 사회의 경제적 풍요로움이 보이며 풍속화와 종교화를 결합한 듯 하다. 청화 백자 꽃병은 중국에서 온 것 같고 장식된 필사본은 commission 해서 살 수 있을 정도의 부를 상징한다. 17세기에 정물화 still life가 유행하는데 이 시기를 풍요의 시대Age of Opulence라고 부른다. 네덜란드는 처음에는 양모 가공과 Tapestry 제작으로 돈을 벌다가 1500 년대 말에 동아프리카, 인도, 일본까지 손을 벋쳐 약탈과 수탈을 하여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사회의 현상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에 스페인은 라틴 아메리카로 진출을 하며 1492년 콜럼버스의 미국 대륙 발견이 가까워 온다. 1400년대에 들어가면 이미 세계가 하나로 이어져 있어  Early Modern Period 에 도달한다.

6. Europe in the 16th Century Holy Roman Empire 
 


Buxheim Saint Christopher German 1423 woodcut
 

크리스토퍼 성인은 여행자의 수호신이다. 종이에 찍은 목판이라서 다수 제작이 가능하고 길 떠날때 가지고 다니기 좋다. Etching, engraving 이 회화에 가까워진다.

Konrad Witz, Miraculous Draught of Fishes 1444
 

이야기의 핵심을 전달하는 그림으로 예수님의 명령으로 고기가 잡히고 베드로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성경 이야기를 끌어오고 배경으로 자기네 hometown 을 집어넣는다.

Michael Pacher, St. Wolfgang Altarpiece, Church of St. Wolfgang 1479-81, wood, Austria
 
St. Wolfgang Altarpiece 는 장식이 많은 후기 Gothic 스타일이다.

Martin Schongauer, Temptation of St. Anthony, 1480-81 engraving
 
안토니 성인이 악마의 유혹을 상상하는 장면이다. Martin Schongauer는 세밀한 engraving을 하는데 뒤러는 이것보다 100배쯤 더 세밀하다.

Woodcut of Scholar in study from Sebastian Brant, Ship of Fools 1494
 
대중을 protestant 로 교화시키기 위해 카톨릭의 주교와 사제들이 지내는 미사가 저희들끼리 하는 헛똑똑이 행동임을 풍자하는 목판 팜플렛이 독일에서 퍼져나간다.

7. Matthias Gunewald, Isenheim Altarpiece, Chapel of Hospital of Saint Anthony, Germany 1510-15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는 독일 Colmar 의 Isenheim 에 근처에 있는 병원업무를 주로 하는 Monastery of St. Anthony 의 altarpiece를 그린다. 가난한 사람이 가는 이 수도원의 병원은 Saint Anthony’s Fire 라고 불리는 피부병 환자들을 주로 치료를 하는데  피부가 짓무르고 팔다리가 짤리는 병이다. 원인을 모르고 밖으로 드러나는 무서운 병으로 네델란드에서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병이었다. 


First  view, Nikolaus Hogenauer, Center Shrine,1500, Saint Anthony Enthroned between Sanits Augustine and Jerome
 

왼쪽 wing은 Saint Anthony 와 Saint Paul 이 있고 가운데는 안토니 성인이  어거스틴 성인과 제롬 성인을 양쪽에 두고 왕좌에 앉은 모습이며 오른쪽 wing은 Temptation of St. Anthony 이다. 밑에는 예수님과 12 사도의 모습이 나타난다. Isenheim Altarpiece 는 제작 시간이 상당히 걸린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Second view, Matthias Gunewald, Isenheim Altarpiece, Saint Anthony, Crucifixion, St Sebastian 1510-15


첫번째 그림을 열면 뒤에 두번째 그림이 있다. Center shrine 에 커버를 씌우기 위해 뚜껑에 그린 그림이다. 왼쪽은 Anthony Abbot 이며 오른쪽은 화살을 맞고 죽은 세바스쳔 성인인데 피부에 이상이 없는 건장한 모습이다. 가운데는 Crucifixion 장면인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몸은 갈비뼈에 짓눌려 저렇게 쳐질 수 밖에 없고 못에 박혀 있으므로 몸이 찢어질 수 밖에 없다. 마사치오의 성삼위그림에 있는 십자가의 예수님은 마치 부활을 예견하듯 triumphant 한 모습인데 마티아스 그루발티는 전통적인 도상을 따라서 그리지 않고 인문주의와 사실주의를 추구하여 스스로 도상을 연구하여 그린다. 성모마리아의 절실한 기도 모습과 입을 열고 애통해하는 사도 요한이 바로 곁에 있고 세례 요한이 손으로 가르치며 설명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성인들을 한 장면에 모아놓는 표현 방식을 Sacra Conversazione 라고 한다.

Lamentation, Isenheim Altarpiece

밑 부분의 뚜껑을 열면  돌아가신 예수님을 관에 매장Entombment 하는 장면인데 예수님의 몸이 피부병에 걸린 듯 올리브색으로 덕지덕지하고 피골이 상접하다. St. Anthony 병원 채플의 제단에 놓인 예수님의 그림 앞에서 비는 피부병 환자들의 몸과 비슷하다. 예수님의 다리도 무릎 밑으로 잘린amputate 듯이 틈이 있다. 고통을 최대한으로 극대화한 모습이다. 감정의 격함을 강렬하게 묘사하는 독일인의 표현주의가 나타난다. 19세기에 독일에 German Expressionism 운동이 일어나면서 이 그림이 재발견되어 ‘우리 독일에 강렬한 감정을 그린 그림’이 역사에 있었다고 재조명을 받는다.


Third view, Matthias Gunewald, Annunciation, Angelic Concert, Madonna and Child and Resurrection 1510-15

 

두번째 장면을 열면 세번째 그림이 있다 . 왼쪽wing은 원근법을 알고 있다는 듯이 방들이 연결되어 있고 가운데는 수태고지와 성모님의 품에 안긴 예수님의 즐거운 모습이며 오른쪽wing은 예수님의 grotesque 한 몸은 없어지고 아름다워진 하얀 몸이 있다. 지금은 죽어도 재림 second coming 은 즐겁고 행복하다. 마치 holy spirit 이 내려오듯 하늘의 색깔이 조화를 이룬다.

Detail, Resurrection
 
예수님의 부활 resurrection 장면이다.




8. Albrecht Dürer, Self-Portrait 1508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가 나타나기 전까지 독일은 지방색이 강한 토착미술이 위주였는데 천재 화가 뒤러가 나타나서 그림에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 전통을 시작한다. 마치 자신이 예수님인 양 머리 스타일도 비슷하게 하고 나이도 예수님과 비슷한 36세에 그린 자화상이다. 멋을 잔뜩 부린 옷을 입고 모나리자처럼 손을 앞에 넣어 예술가의 손이 woodcut 을 많이 하는 창조의 주체임을 드러낸다. 뒤러는 레오나르도처럼 생각이 많아 완성시킨 유화가 거의 없다. 그는 Goldsmith 집안 아들이며 자신의 그림을 동판으로 찍어내며 출판으로 돈을 번다. 지방 분권적 사회인 독일은 미술의 patron 이래 봤자 마을에서 귀족 1-2명이 고작이었으며 대규모 유화 같은 것을 commission 줄 후원자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인쇄를 하면 가격이 affordable 하므로 브르조아 상공업자들을 patron 으로 잡을 수가 있었다.

Albrecht Dürer, A Young Hare, Vienna 1502
 

뒤러가 여행 중에 그린 수채화 앨범으로 토끼의 털과 수염 묘사가 뛰어나다. 뒤러는 자의식이 강해 그림에 자신의 사인과 년도를 꼭 집어넣는다. 토끼 밑에 작은 글자로 된 이름 이니셜A와 1502가 보인다. 뒤러는 동판engraving 을 세밀하게 잘 그리는 Martin Schongauer를 존경했으며 이탈리아를 여행하여 지오반니 벨리니, 티션등을 만나서 보고 배운다. 뒤러는 처음에는 그림을 그렸지만 나중에는 woodcut, engraving을 주로 하고 이재에도 밝아 작품을 잘 팔았다.

Albrecht Dürer, Four Horsemen and Apocalypse 1497-98, woodcut 
 

묵시록에 나오는 4명의 말탄 기사인데 백골의 기사가 여윈 말을 타고 있다. 초기 작품으로 목판 인쇄인데 동판으로 보일 정도로 솜씨가 치밀하여 음영법, 옷주름까지 나타난다. Woodcut 이라 작품이 여러 곳에 있다.

Albrecht Dürer, Knight, Death, Devil 1513 engraving
 

잘난 척 떠드는 기사도 death 와 temptation 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내용의 engraving 으로 붓으로 그린 것 같다. 음영법 부분이 세밀하고 파스텔화 같은 느낌도 준다.

Albrecht Dürer, Adam and Eve 1504 engraving
 

아담과 이브, 뱀, 앵무새, 그리고 성서에는 나오지 않는 개와 고양이도 등장한다. 뒤러는 레오나르도처럼 의미를 더 첨가해서 작품에 사용한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듯이 우리 인간은 mortal 하다. Goldsmith 집안의 아들다운 training 이 보이는 뒤러의 판화는 역사에서 높이 평가된다. 1600년대에 렘브란트는 판화로 뒤러 못지 않은 많은 재산을 모은다.

Engraving, Dürer, St. Jerome in His Study 1514                              Etching, Daniel Hopfer, The Soldier and his Wife
               

Engraving 테크닉은 금, 은, 철, 유리의 표면에 칼로 조각을 하는 디자인으로 종이에 여러장의 인쇄가 가능하다. Etching 테크닉은 금속 판에 산acid 따위로 부식을 하여 동판을 만들어 내는 기법이다. Engraving 은 drawing 처럼 간단하지 않고 칼로 파내는 힘이 드는painstaking 작업이며 에칭이 engraving 보다 조금 쉽다. 르네상스의 뒤러는 engraving 을 많이 하고 1600년대에 렘브란트는 에칭을 많이 한다.

Albrecht Durer, Demonstration of Perspective 1525 engraving
 

Protestant 종교세력이 득세하는 도시국가 Nuremberg 뉴렘버그에서 성공한 상공업자 중의 한 사람인 뒤러는 회화 기법에 대한 manual 을 써서 판다. 뒤러의 client 계층은 시민대표의 의견을 결정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장로들로서 인간관계가 수평적인 편이었다.

Albrecht Durer, Melencolia 1, 1514 engraving
 

뒤러는 결코 평범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는 성격면에서 레오나르도처럼 강박 관념이 있었고 amateur psychologist 로서 사람의 생김새와 성격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위에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은  우울 melancholy 을 의인화 personification 시킨 것으로 멜랑콜리라는 개념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날개가 달린 여자는 세상사가 다 불만스럽고 고민스럽다. 뒤러는 자신의 성격도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여자 옆에 고민하는 화가 자화상을 그려 넣었다. 위에 걸려있는 무지개는 괴로운 시간이 지나면 영광의 순간이 온다는 희망을 의미한다. 멜랑꼴리의 특성이 그렇듯이 주변 정리가 잘 안되어 화가의 tool인 캠퍼스, 자 등이 바닥에 널려있다.

Albrecht Durer, The  Four Apostles 1523-26
 

뒤러의 몇 개 없는 유화 작품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중심 지역인 뉴렘버그의 시청에서 위탁한 작품으로 뒤러의 나이가 무르익는 시기의 작품이다. 4복음 사가의 저자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전통적인 도상으로 쓰였으나 이 그림에는 요한, 베드로, 바오로, 마가가 등장한다. 밑에는 독일말로 번역된 성경 귀절이 적혀있다. 뒤러의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늘 보던 네명의 복음서 저자가 아닌, 요한과 마가 두 사람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카톨릭에서는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를 사하는 막중한 임무를 사제에게 부과하며 베드로에게 열쇠를 물려주어 초대 교황으로 양들을 잘 돌보라는 일을 맡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는 중요한 것은 제사의식 Eucharist 이 아니라 성경 그 자체이며 특히 신약에 비중을 둔다. 요한이 신약을 들고 있고 베드로는 뒤에서 들여다 보며 배우고 있다. 뒤러는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처럼 사람의 특성과 인성을 연구한다. 베드로는 지는 해이며 나이 어린 요한의 밝은 이마는 지혜를 나타내고 마가는 얼굴을 검게 표현했다. 공간감을 주기위해 발의 위치가 삼각형 구도이다. 마틴루터의 신교를 따르는 뮈렌버그 도시의 종교적 입장을 잘 나타내는 그림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