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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르네상스 미술, 레오나르도 다 빈치 16세기 4/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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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6,446회 작성일 11-04-2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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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르네상스 미술 17th hour: Renaissance Art: Rome in the 16th Century 로마의 르네상스 미술, 레오나르도 다 빈치

16세기에 들어와  초기 르네상스 미술의 업적이 종합되어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이 시기는 완벽, 조화, 절정 등의 단어로 묘사되는 시기이며 3대 르네상스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1564), 라파엘 산찌오 (1483-1520) 가 활동했던 시기이다.

바자리Giorgio Vasari는 <미술가의 생애Lives of the Artists > (1550-68) 라는 책을 저술하는데 피렌체 미술가 중심의 르네상스 미술의 발달 계보가 마련된다. 오늘날 알려진 대부분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정보가 바자리의 책을 통해 후세에 전해진다. 이탈리아 중심의 휴머니즘, 고전주의가 핵심이며 가끔 편견이 섞이기도 한다. <모나리자>, <시스틴 채플의 천정벽화: 창세기> 등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Leonardo da Vinci
 

고아인 Leonardo da Vinci 는 성이 없어 빈치 마을의 레오나르도라고 불린다. 어머니쪽 친척이 키우다가 재능을 발견하고 베로키오Verrochio의 공방에 집어넣어 수련을 받게한다. 베로키오의 추천을 받아 메디치가가 세운 신플라토닉 아카데미에서 라틴어 등 교양 교육을 받는다. Raphael 은 귀족 출신의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Michelangelo 역시 아버지가 회계 경리를 보는 accountant 였으며 어렸을 때 몸이 약해 유모의 고향인 카라라Carrara에 가서 크는데 대리석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돌로 장난하면서 기본을 익힌다. 재능이 있어 학교도 다니며 gentleman 의 기본을 배운다. 나이가 들어 조각가, 화가가 되고 시집도 내는 등 교양을 쌓고 신앙심이 깊은 르네상스맨이 된다.


1. Leonardo da Vinci, Adoration of the Magi 1481-1482
 

레오나르도는 많은 작품이 프로젝트로 남아있고 완성작이 거의 없다. 프로이드가 19세기에 레오나르도에 대해 쓴 논문에서 모나리자가 화가의 자화상으로 남자라는 언급이 있었고 레오나르도가 동성애자였다고 추측된다. 1480년 무렵 30살의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서 중요한 커미션을 받아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태형을 받고 Adoration of Magi 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피렌체를 떠나 밀란으로 간다. 말년에는 프랑스 왕 프랑소와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에 가서 죽는다. 그의 작품이 프랑소와 1세의 collection 으로 있다가 불란서 혁명 후에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한다.


Leonardo da Vinci, Monochrome on panel
 

밑그림을 우선 그려서 교회에 보여주고 찬성을 하면 작품으로 들어간다. Adoration of Magi의 스켓치이다. Virgin Mary 가 중간에 있고 3명의 현자가 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보티첼리의 Birth of Venus 보다 5-6년 후의 그림인데 세부의 작은 detail 에도 신경을 쓴다.  그림의 주변부에 있는 남자까지도 적절한 인물을 찾아 다니며 스케치를 해서 집어 넣는다. 레오나르도는 연구를 많이 하는 완벽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Pyramidal composition
   

삼각형의 피라미드 스타일은 레오나르도의 favorite 구조이며 그림 속의 figure 들이 서로 연결이 되어 대화를 나눈다. 그림이 마치 소리가 있는 영화같이 사람들의 행동이 긴밀히 연결되어 composition 이 복잡하다. 이전의 그림들은 figure 들이 밋밋하게 서 있기만 했는데 화가들은 레오나르도의 복잡한 구도를 따라한다.


2. Verrocchio, Baptism of Christ 1472-75                                      Leonardo da Vinci’s work   
             

레오나르도는 피렌체에서 베로키오를 선생으로 모시고 공방에서 그림을 배운다. 베로키오는 그의 작품 Baptism of Christ 에서 천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20 몇살의 레오나르도에게 그리게 한다.


Massachio, Holy Trinity with Virgin, St. John and Two Donors 1426-28
 
레오나르도가 피라밋 구조로 그리기 50-60년 전에 마사치오가 다소 어설프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삼각형 구도를 시도했다. 인물들이 그냥 서 있기만 하는 조용한 구도이다.


Antonio del Pollaiuolo, Hercules and Antaeus 1495
           

Antonio del Pollaiolo (1429/1433 – 1498) 는 르네상스의  painter, sculptor, engraver, goldsmith 이다.  헤라클레스와 안토우스가 싸우는 장면의 그림과 조각으로 레오나르도에게 영향을 끼친다.


Hugo Vander Goes, Portinari Triptych Altarpiece 1475, Florence
 

레오나르도에게 영향을 준 그림이다. 왼쪽은 Portinari의 부모이고 가운데는 수태고지Nativity이다.



3. Leonardo da Vinci, Virgin of the Rocks 1485

      

피렌체를 떠난 후 레오나르도는 밀란에 가서 군대의 banner, uniform  및 탱크 기계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다가 Virgin of the Rocks을 그리게 된다.

그림에 아기가 둘이 있는데 오른쪽에 손으로 blessing 을 주는 아기가 예수님이고 왼쪽의 세례 요한 아기가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고 있다. 성모와 엘리자베스가 아기들이 삼각구도를 이룬다. 레오나르도는 관습과 도상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Setting 을 서슴없이 동굴로 바꾸어 그린다. 그는 원근법을 나타내기 위해 건물을 그림 속에 그리는 것을 촌스럽게 여겨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동굴의 성모를 그린다. 동이 터오는 미미한 빛 속에 동굴, 풀 한 뿌리, 돌 한개도 놓치지 않고 과학적인 생태계와 일치하게 그린다. 성모님의 손에 축도법이 나타나며 복잡한 구도 complicated composition 를 썼으며 oil paint 의 초창기 사용자로 oil 이 색깔의 깊이를 더해 시커멓게 보인다. 레오나르도는 모든 것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야 했다. 그의 compulsive, sophisticated 한 성격은 그를 extraordinary 한 위치로 올려 놓았으며 경쟁에서 어느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원근법을 나타내는 건물이 없고 동굴인데도 깊이감이 느껴진다. 역시 삼각형 구도이다. 뒤의 것을 희미하게 칠하는 aerial perspective 를 사용한다. 레오나르도는 빛의 소스를 생각하여 검은 부분과 환한 부분을 대조를 시키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명암법을 고안한다. 붓 하나로 명암gradation 을 만들어 내는 테크닉인데 지금은 당연시되지만 당시 보티첼리의 비너스탄생 같은 희멀건 그림을 그렸던 시대에는 획기적인 테크닉이었다. 또한 레오나르도는smoky effect 인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고안해 contour 에 응용하여 그림이 베일에 가린 것 처럼 보이게한다. 그림을 보호하는데 쓰는 투명한 varnish 에 다른 물질을 섞어서 윤곽선이 뚜렷해보이지 않게 만드는 기법이다. 레오나르도 이후 모든 작가들이 스푸마토 기법을 따라한다. 스푸마토는varnish 이니까 세월이 지나면 초록색의 이끼가 끼듯 색이 변한다. 20세기 초에 벗겨내는 화학물질이 개발되고 티치아노와 렘브란트의 그림에 손을 대어 varnish 를 벗겨내는 restoration 작업을 많이 했는데 1940-50년대 들어와 그림에 손을 대어 벗겨낸 것이 진짜authentic 렘브란트 그림인가 하는 윤리성에 대한 논란이 많이 일었으며 요즘은 벗겨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Leonardo da Vinci, Virgin of the Rocks 1485                                                       Verrocchio, Baptism of Christ 1472-75
                            
베로키오의 그림 Baptism of Christ 에서 10년 전에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의 부분과 Virgin of the Rocks 에서 곱슬머리 부분이 비슷하다. 왜 하필 동굴을 그렸을까? 레오나르도는 성경 해석에 자신만의 logic 이 있었다. Holy Trinity 자체가 holy mystery 이다. 동굴은 출생의 mystery 가 시작되는 곳이며 죽음의 신비인 무덤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님으로 인해 시작과 끝이 있으며 crucifixion 의 죽음은 동굴의 이미지와 맛물린다.


4. Leonardo da Vinci, The Last Supper  Refectory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1498
 

밀란의 교회의 벽에 그린 그림으로 레오나르도가 밀란의 공작 밑에서 banner, 대포 등을 디자인하던 시절이다. 보수적인 종교 단체인 교회는 레오나르도에게 당시에 그려지는 방식convention을 따라 프레스코화를 그리라고 하였는데 그는 당시의 전통적인 도상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을 뿐더러 프레스코화가 밀란에 잘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oil 에 프레스코를 섞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방법 대로 그린다. 자기 멋대로 그린 그림이 뿌해지고 해마다 그림이 나빠진다. 최대의 악몽같은 그림이 나온 것이다. 나중에 복구를 한다.


Andrea del Castagno, The Last Supper 1445-50 fresco, Refectory Monastery of Sant’ Apollonia, Florence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50년 쯤 전에 Andrea del Castagno 가 그린 최후의 만찬으로 당시에 그려지던 도상이다. Linear perspective 가 나타나고 예수님이 가운데 있고 어린 사도 요한이 옆에 있다. 악당 유다는 예수님과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없다는 관습이 중세에 시작이 되어 건너편에 유다를 그린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회 저소득충인데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대리석 방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안드레아의 그림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다. 이런 분석을 할 능력이 있었던 레오나르도는 소박하면서 예수님의 정신을 살리는 단순한 방을 만든다.


Leonardo da Vinci, The Last Supper 1495-98 fresco oil and tempera on plaster Refectory Santa Maria delle Grazie, Milan
                                     

레오나르도의 마지막 만찬은 마치 수도원 식당처럼 꾸며 테이블보만 덮고 예수님의 머리 뒤에 소실점을 둔다. One point perspective 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세상의 중심으로 나타낸다. 아름다운 창문 3개는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주제와 형식의 일치가 일어난다. 빛의 근원이 예수님에게서 나오고 있다. 평범한 방에Linear perspective 를 사용하여 거리감을 더해준다. 레오나르도는 12제자의 character를 분석해서 알맞는 얼굴을 주고 싶어했다.



12명의 사도들이 일렬로 있으면 재미가 없다. 3명씩 묶어진 제자들이 연기하는 배우인양 서로 interaction 을 하고 있다. ‘너희 중에 나를 배신할 자가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제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도저히 믿을 수 없다’ ‘나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가’ ‘방금 뭐라고 하셨냐?’ 제자들의 각기 다른 반응을 생생하게 묘사할 만큼 레오나르도는 위대하다고 평가된다. 신학적인 해석으로는 예수님이 양 손을 벌리고 있는 gesture 는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가 성체성사Eucharist service 를 하는 모습이다. 또한 사람의 눈, 코 등의 생김새를 보고 성격과 심지어 병까지 추측하는 학문인 physiology 가 당시에 유행하는데 레오나르도는 여기에 상당히 관심이 있었다.

Detail of Peter, John, Judas
  

레오나르도는 전통을 무시하고 유다를 예수님과 같은 쪽에 앉히며 12사도의 성향을 연구하여 얼굴을 고안한다. 유다는 왼쪽에서 4번째로 은화주머니를 들고 있고 얼굴색이 검고 수염이 나서 음험해 보인다. Judas 의 얼굴을 찾기 위해 동네 시장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스켓치를 한다. 다른 제자들과는 반대로 유다는 몸의 방향을 앞으로 하고 있다. 제자들은 배신 운운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뒤로 제끼고 있는데 유다만은 몸을 굽히고 있다. 예수님이 사랑하던 요한의 생김새가 유다와 대조가 된다.



레오나르도는 풍경화에 의미를 불어넣은 화가로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 차려진 음식은 후대에 나타나는 정물화 still life 의 기원이 된다. 투명한 유리 접시, 사기 도자기 접시 등 당시에 먹던 소박한 음식을 열심히 연구해서 펼쳐 놓았다.


 


5. Leonardo da Vinci, Mona Lisa 1503-1505
 

Mona Lisa는 리자 게라르디니Lisa Gherardini 의 초상화이며 프랑스 부자 상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Francesco del Giocondo의 아내이다.  프로이드는 이 그림을 연구하고 나서 모나리자가 여자가 아니라 레오나르도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이 그림이 유명해진 것은 시기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1867년에 월터 페이터Walter Pater가 쓴 수상록Essay on Leonardo 에서 모나리자를 언급함으로서 아시아권에 그림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레오나르도는 피렌체를 떠난 후 잠시 돌아와 리자 게라르디니를 그린다. 지오콘도 부인은 잘 안 웃는 여자로 남편이 웃길려고  juggler 를 불러서 묘기를 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이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지오콘도에게 돌려주지 않고 일평생 가지고 다닌다. 모나리자는 프랑스 왕 프랑소와 2세가 죽은 후에 개인 콜렉션으로 루브르 궁전에 있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루브르 박물관 소장으로 넘어간다.

Domenico Ghirlandaio, An Old Man and a Young boy, 1480, Tempera and Oil
 

레오나르도  이전의 전통적인 초상화 스타일이다. 사람의 얼굴을 크게 그리고 창문 장치를 통해 밖을 보여주어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1500년대의 초상화의 패턴이다. 여기에 반해 모나리자 초상화는 스푸마토기법이 잘 표현되어 윤곽이 정확하지 않아 전체적인 구도가 안개낀 듯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 unique 하다고 평가된다.


Hans Memling, Portrait of a Man, Frick collection 1470               Flemish Painter, Portinari 1470
                            
보통의 초상화는 어깨까지만 나오는데 모나리자는 주인공의 개성과 인격을 보이기 위해 허리까지 보이며 색깔의 하모니를 이루어 그림을 환하게 보이기 위해 손을 넣은 점이 특이하다. 북부 유럽의 전통에 손을 포함시키는 그림이 있는데 레오나르도가 여기에서 배웠음을 알 수 있다. Hans Memling은 출신 지역과 소유한 estate를 그려 넣어 재산 정도를 나타내는 배경을 초상화의 뒷그림으로 들어가는 구도를 쓰는데 이점은 북유럽의 초상화의 풍습이었다. 모나리자 뒷 풍경 역시 Hans Memling의 구도에서 배운 것이다.


지오콘도 부인은 영지를 보일만큼 부자는 아니었는데 그렇다면 이 뒷 배경의 산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레오나르도는 풍경을 통해 심오한 의미를 담는다. 모나리자 바로 옆에 기둥의 밑부분이 짤려 보이는데 구도상 야외가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배경의 양쪽을 자세히 보면 왼쪽은 나무가 우거지고 물이 흐르는 풍성한 산이지만 오른쪽은 민둥산이며 다리의 기둥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말라있다. 계절을 대조시켜  여인의 일생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젊은 시절은 생명력 넘치고 자식을 키우고 희망이 가득한 반면 나이가 들면 수태 능력이 사라지고 싸늘한 가지와 물이 마른 계곡과 같아짐을 상징하였다. 레오나르도 이전의 화가들은 초상화에 보이는 풍경에 출신 지역이나 영지를 나타내려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여자의 일생에 비유를 하였다.




초상화 자체도 당시의 사람들에게 특이한 느낌을 주었다. Chiaroscuro 치아라스큐어 명암법을 이용한 미묘한 subtle 작업을 통해 이 여인의 표정과 모습을 잡아낸다. 어느집 딸임을 나타내는 장신구, 남편에게 받았음직한 최소한의 보석도 전혀 없다. 옷도 품위를 지켜주는 수준의 복장일 뿐 화려한 실크 옷도 아니다. 소박한 옷으로 인해 얼굴, 손이 두드러져 보이고 투명한 베일을 쓴 것처럼 이마에 선이 보인다. 눈썹이 또한 없어서 작품이 미완성이라는 설과 당시 여성의 패션이 눈썹을 뽑는 것이었다는 설이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모나리자의 눈동자이다. 정면이 아닌 three quarter view로서 눈이 옆으로 돌아가 있어서 관객이 어디에 있든지 모나리자의 눈이 나를 응시하는 것 같다. 희미한 사라질듯한 미소는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장치로서 어느 하나도 정확한 구석이 없다.

이그림은 언제 그려진 것일까? 1503년에 지오콘도 부부가 집을 장만함을 계기로 그렸다는 설도 있고 1502년 쯤 부부가 2번째 아들이 태어남을 기념하기 위해 그렸는데 부인이 즐겁게 웃지 않은 이유는 딸이 바로 그 전에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아들이 태어나도 썩 행복하지 않고 죽음과 삶이 교차되어 겨울과 봄이 대조가 된다. 풍경과 인물이 혼합되었고 atmospheric illusion 과 더불어 상인의 부인임에도 불구하고 흰색 얼굴과 손으로 인해 모나리자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삼각형 구도로서 그림의 균형이 갖추어져 있고 사라질 듯 말듯한 미소가 eternal smile 이 되어 사람들을 잡아끈다. 모나리자는18세기 말에 알려지기 전까지 그렇게 많이 보였던 그림은 아니다. 레오나르도는 동굴의 성모와 모나리자의 2개의 유화를 남겼으며 스켓치로는 Adoration of Magi 가 있고 프레스코 벽화로는 The Last Supper 가 있다.


6. Leonardo da Vinci, Embryo in the Womb 1510
 
 
Leonardo da Vinci, Vitruvian Man 1487
 
황금비율을 보여주는 스켓치이다.

Leonardo da Vinci, Project for a church 1490
 

레오나르도는 시각미술 뿐만 아니라 건축과 과학을 연구하고 발명의 정신을 가졌다. 중세의 교부 철학 시기에는 자연을 관찰함으로서 신의 섭리를 읽어냄이 목적이었고 과학적으로 관찰하다 보니까 르네상스에 와서 쿠베르니쿠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레오나르도는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와 동시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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