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산수화 1700-1850, 겸재 정선 3/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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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뽕킴 댓글 0건 조회 8,584회 작성일 11-04-0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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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 미술 4th hour: Late Joseon, Landscape Painting, Jeong Son 조선 후기 회화 산수화 1700-1850, 겸재 정선
조선 전기 중기의 학풍
1. 곽희파
곽희 (조춘도1072) 안견 (몽유도원도1447)
조선 중기까지의 미술의 화풍은 곽희파, 마하파, 미법산수, 절파로 크게 나뉜다. 조선 초기에는 북송의 웅장한 산수를 묘사한 곽희파가 주류를 이루는데 중국 강북 지방의 추운 곳의 나무 모양을 게의 뾰족한 손처럼 그리는 해묘법과 산과 바위를 구름처럼 그리는 뭉굴뭉굴한 운두준법을 사용했다.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곽희파를 따랐지만 바위 묘사가 평면적 추상적이며 부드럽다는 점에서 안견의 독창성이 가미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미법 산수
최숙창 (산수도15세기 후반) 이정근 (미법 산수도16세기)
북송의 미불 부자가 시작한 미법 산수는 점을 찍어 안개에 싸인듯한 산수를 표현하는 미점준법을 쓰며. 조선 중기의 최숙창, 서운보가 이를 따라서 그리는데 판에 박은 듯 독창성이 별로 없다.
3. 마하파
마원 (산경춘행 12세기 말), 양팽손 (산수도16세기)
남송의 물이 많고 산세가 완만한 강남을 중심으로 마원과 하규가 시작한 마하파는 한쪽으로 치우친 일각구도, 사색적인 분위기의 여백, 도끼로 꺽은 듯한 부벽준법을 사용한다. 조선 초기의 양팽손이 일각구도를 따라 그린다.
4. 절파
강희안 (고사관수도 15세기), 이경윤(고사탁족도16세기 말)
사대부 문인화 (남종화)를 따르면서 절파 학풍을 가미한 조선 초기의 강희안은 중기 절파 화가들의 시조격이다. 마하파의 학풍을 이어받고 명나라의 대진, 오위의 화풍을 따르는 절파는 인물 중심으로 사대부가 일필휘지의 글씨를 쓰듯 그린다. 조선 중기의 김시, 이정근은 강희안의 절파를 이어가며 중기의 특징은 화가들이 특정 학풍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화풍을 가미하여 섞어서 그렸다는 점이다.
조선후기 1700-1850, 정선 1676-1759
조선 후기에 들어와 겸재 정선이 나타나 조선의 독자적 화풍인 진경산수를 수립한다. 이전의 화가들은 중국의 산천과 화풍을 그대로 그렸으며 한국의 산천을 그리되 방법은 여전히 중국의 준법을 사용하는 실경산수를 그렸다. 당시의 사대부들은 중국적인 모습을 당연시 하였는데 겸재가 subject matter 를 조선의 산수로 바꾸며 창의적인 준법을 개발하고 화가의 이념을 담아내어 그리는데 이를 진경산수라 한다.
정선의 자는 원백(元伯), 호는 겸재(謙齋)이며, 가세가 몰락한 한미한 양반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었고, 그 재주 때문에 관료로 추천을 받았다. 당시 노론의 거두 김수항의 아들인 김창집 형제의 도움으로 벼슬길에 올라 양천 현감 등 화가로서는 파격적인 높은 벼슬을 지냈다. 그는 또한 예술을 사랑하는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과도 긴밀한 교유를 하였는데, 이들과의 사귐은 그의 회화 세계를 넓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의 산천을 소재로 하여 그리는 진경산수를 그는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필묵법으로 화면에 담아내었다. 강한 직선의 수직준법, 대담한 산형의 변형, 굵은 미점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자연미의 특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그는 어느 화가보다 많은 작품을 남겼고,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정선, 신묘년풍악도첩 중 장안사 1711
정선이 30대에 최초로 금강산에 가서 그린 13점의 그림을 신묘년풍악도첩이라 하며 점묘법과 수직준법이 나타난다.
정선, 신묘년풍악도첩 중 단발령 망금강 1711
단발령은 금강산 입구의 산으로 올라서서 보면 경치를 보면 머리를 깍고 속세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든다하여 단발령이라 부른다. 원경은 수직이며 금강산을 환상의 산으로 묘사했고 자신의 본 이미지의 효과를 증대하기 위해 산을 단순화시킨다.
정선, 해악전신첩 중 단발령 망금강 1747
1712년에 두번째로 금강산에 가서 그린 해악전신첩의 원본은 남아있지 않고 70이 넘어서 세번째로 금강산을 가서 해악전신첩을 다시 만든다. 단발령에서 본 금강산으로 미점준법을 많이 썼다. 묘사가 상세하고 숙련되어 보인다. 겸재의 금강산도가 나오면서 선녀와 나무꾼이 사는 금강산이 몽유도원도의 역활을 한다.
정선, 금강산전도
겸재 이전에는 조선의 화가들이 중국식의 준법을 따르면서 조선의 산수를 실제로 보면서 그렸는데 이를 실경산수라고 한다. 겸재는 독특한 방법을 개발해서 그림의 내용도 묘사도 한국적인 스타일로 그린다. 금강산도의 뒤쪽은 단순히 정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현실을 넘어선 세계로 surrealism 나타난다. 화가의 관념, 개념이 그림에 들어가며 겸재는 조선의 진경산수를 확립시킨다.
정선, 여산폭포
정선의 사실적인 묘사법인 수직준법이다. 삼을 늘어뜨린 듯한 피마준도 보이고 나무는 점을 찍어 묘사했다. 후기작으로 그림이 무르익어 보인다.
정선, 설경산수도 1719
겸재의 후기에는 당시 대부분의 화가들이 남종화를 쫒아서 그렸는데 겸재의 그림도 시적 운치가 짙은 남종화와 비슷해지고 겸재의 원래 스타일이 없어진다. 겸재 정선이 44살 때 그린 사계산수첩 가운데 겨울 설경인데 나트막한 산자락과 강가에 빈 누각이 보이며 성긴 가지의 나무 몇 그루가 있다. 오른쪽 산에 보이는 피마준법이 보인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정선의 후기 작품으로 백악산 (인왕산) 밑으로 이사를 가서 그린 그림이다. 1751년에 친구 이병련이 세상을 뜬 슬픔으로 바위가 어두워 보이며 남종화 스타일에 가까워지며 날카로움이 없어지고 부드럽다.
정선, 박연폭포 18세기
초기의 금강산도는 수직방향의 수직준법이 나타났지만 후기의 박연폭포는 정선 나름의 해석이 들어간 추상화같은 느낌을 준다.
정선, 비로봉도
겸재의 말년 작품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서고 화가의 관점이 확연히 나타나는 추상화의 느낌이 진하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수도원장 이형우 아빠스)은 한국 파견 100주년을 맞아 2009년에 왜관수도원 성당 지하전시실에서 열리는 100주년 기념전시회 중 '화종(畵宗)'으로 불린 겸재의 화첩을 공개했다. 당대에 '화종(畵宗)'으로 불린 겸재의 화첩은 원래 1925년에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연합회 초대 수석아빠스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가 국내에 4개월간 체류하던 중 입수, 독일로 가져갔던 걸작들로, 국외에 반출된 지 80년 만인 2005년에 한국에 돌아왔다.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수도원장 예레미야스 슈뢰더 아빠스)은 크리스티와 같은 미술품 경매업체의 집요한 경매 권유를 뿌리치고 2005년에 한국의 수도형제들(왜관수도원)에게 영구임대 방식으로 돌려주였다.
화첩 2개 면에 걸쳐 그려진 '금강내산전도(金剛內山全圖)'(55×33㎝)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23~25×28~30㎝ 정도의 소품들로 화첩의 오른쪽 면에만 그림이 실려 있다. 겸재 작품은 화첩에 묶여 있어 한 쪽씩 넘겨가며 선보이며, 21폭 전작은 영인본으로 공개된다. 겸재의 진경산수화 7점과 관념산수화 4점(송학도 1폭 포함), 고사인물화 10점 등 총 21점이 실려 있을 뿐 화첩 내력을 담은 발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모든 작품에 겸재 낙관(落款)이 찍혀 있고, 화첩 표지에는 수도원 소장 사실을 알려주는 도장이 찍혀 있을 뿐이다.
산수화의 준법
산이나 돌의 주름을 표현하는 붓자국, 필촉, 터치, 산이나 돌의 질감, 양감, 명암 등이 표현된다.
① 피마준 : 삼을 가지런히 펼쳐서 훑어 놓은 모양으로 표현하는 준이다.
(같은 방향으로 평행하게 부드럽게 긋는 선)
② 부벽준 : 도끼로 나무를 직은 자국과 같은 효과의 준이다.
③ 하엽준 : 연잎의 잎맥 모양으로 형세를 표현하는 준이다.
④ 절대준 : 바위를 쌓아 놓은 듯이 그리는 준이다.
⑤ 미점준 : 쌀알 모양의 작은 점이다.
⑥ 우점준 : 빗방울 모양의 작은 점. 작은 산이나 언덕을 그릴 때 쓰인다.
⑦ 우둔준 : 산보우리를 구름으로 휘감아 올리듯이 그리는 붓자국이다.
⑧ 해색준 : 끈을 풀어 놓은 것 같은 붓자국이다.
⑨ 마아준 : 말의 이빨처럼 뾰족한 붓자국이다.
① 피마준 ② 부벽준
③ 하엽준 ⑤ 미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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