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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인, 페루 건축 16세기 2/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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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티비아 댓글 0건 조회 5,271회 작성일 12-02-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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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미술 7th hour:  Architecture and Sculpture at the Missions in New Spain (1524-80) and Peru (1532-1610)
 
 
 
뉴 스페인의 시대적 역사적 상황 (1524-80)
 
16세기에 점령군들이 남미에 들어 오고 1512년에 Encomienda System엔코미엔다가 실시된다. 땅을 크게 갈라 나누어 내 땅에 사는 원주민은 나의 소유 이므로 이사도 못 가게 한다. 곧 이어 선교사들이 진출하여 교회를 짓는데 원주민이 당하는 현실을 보고  옹호 운동을 펼친다. 프리 콜럼비안 시대에 대규모 신전을 지었던 원주민의 토착 노동력을 이용하여 교회를 짓는데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지은  공동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며 선교가 쉬워진다. 선교사들은 이교도 인디언을 접함을 축복으로 여기고 이들을 열심히 개종시킨다. 학교를 지어 교육을 시켜 20-30년 후에는 원주민 출신 사제를 만들고 자신들은 다른 시골 지역으로 떠난다.

 

30년 후 쯤 Encomiendas가 실패로 돌아가자 원주민이 자생력 있게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새로운 정책을 1542년에 실시 하는데 이를 Repartimiento 레파르토미엔토 라고 부른다.  땅을 작은 사이즈로 나누어서 개인에게 20-30년 동안 경영하게 하고 기한이 차면 원주민의 착취 여부를 조사해서 다시 돌려주거나 다른 사람을 찾거나 한다. 또한 종교 교육은 소흘하고 일만 너무 시키지 않는지 등을 감시하여 본국에 보고하는  제도가 생긴다. 16세기 초에는 원주민을 소유물로 부려 먹었으나 16세기 후반에는 국민처럼 세금도 부과하고 처우를 개선하는데 그 중 하나가 종교 교육이었다.   
 
 
Cerro Rico, Potosi, Bolivia
 
스페인은 금은 보화를 제공하는 신천지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뉴 멕시코, 페루의 은광을 기반으로 16-18세기에 유럽에서 제일 부강한 나라가 된다. 현재 Bolivia 에 있는 Potosi 는 1600년대 은광업의 번성으로 인구가 몰려들어 2번째로 큰 도시가 된다. 아즈텍 시절 부터 있었던 mita system (migrant rotational work) 이라는  부역 제도를 사용하여 원주민을 이주시켜 돌아가면서 일을 시켰는데 광부들의 생활은 극도로 비참했다.
 
 
Huancavelica (Peru), mine of mercury to purify Potosi’s silver
 
은을 정화시키는 수은이 나는 곳, Potosi 옆 타운으로 식민지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산 쪽으로 자연 광물을 채취하는 산업이 있고 마을 중심에 교회가 있으며 유럽식의 plaza 가 형성된다.
 
 
Minas Gerais, Ouro Preto, Brazil, gold, diamond found in 1693
 
브라질에 있는 미나스 제라이스 지역의 오로 쁘레뜨 라는 동네인데 금광 다이아몬드 광으로 유명하다. 언덕 위의 제일 좋은 자리에 교회가 들어서고 생활의 중심이 되어 원주민과 식민주의자가 문화적으로 통합을 이룬다. Ascension Day 에 다 같이 모여 성모 승천 축제를 벌인다. 지금도 남미에서는 카톨릭 축제일이 제일 큰 행사이다.
 
 
Matto Grosso established in 1720
 
남미 내륙 아마존 열대 우림으로 들어가면 금광은 많은데 주거 환경이 열악하므로 인구가 드물고 원주민을 데려다 놓으면 도망간다. 그래서 아프리카 흑인을 실어와 일을 시키는데 생존 노동 조건이 열악하여 생존 기간이 4-6년에 지나지 않는다. 짧은 시기 동안 일을 시키고  배가 새로 들어오면 새 물건 쓰듯이 받는다. 포루투갈 상인의 배로 비싼 운임을 내고 데려오는 노예들이 도망을 못 가게 아킬레스 건을 자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교사들이 전교하는 예수는  믿고 기댈만한 구세주, 종교의 핵심으로 부각된다.
 
 
 
기독교 전도서 및 인디언 원주민 문화에 대한 선교사들의 저서 및 삽화
 
 
Pedro de Gante, Testerian Cathechism, 1525-28, ink and colors on paper, Biblioteca Nacional, Madrid
 
1523년에 네덜란드의 수도승 3명이 합스부르가 왕가의 후원을 받아 New Mexico 에 들어와 근거지를 마련한다. 그 중  페드로 드 간테는 원주민이 이해하기 쉽게 마야 문명의 상형 문자를 닮은 교리 문답서를 만든다. 당시 무어인을 몰아낸 스페인은 종교 재판으로  인해 새로운 종교적 열정이 넘쳐나고 있었으며 프란시스코, 오거스틴 수도회는  남미 선교를 하늘이 준 또 하나의 기회로 여겼다. 
 
 
Diego de Valadés, Rhetorica Catholica “Ideal Franciscan Mission in New Spain,” engraving  1579
 
1500년 경 서유럽은 르네상스 운동의 humanism 이 프린팅 기술을 통해 퍼지면서 사람들의 식견이 넓어지며 교회의 부조리를 외치는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Erasmus 등으로 인해 사회 개혁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New Spain 에 들어온 프란시스코 수도회는 이상적인 선교 교회의 경영에 대한 manual 을 만든다.  교회가 중간에 있고 수도승이 행진하며 담이 있는 정원 atrium 에서 교회 행사를 하며 병원, 학교 등의 부속 건물에서 자선 행위를 한다. 교리 문답, 학교 수업, 죽는 자에게 기도 등 사제의 일을 보여준다.

설교단의 신부가 교리 설명하는데 아즈텍 인디언의 elite, royal family 등이 앞 줄에서 듣고 있다. 기존 community 와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여 영향력 있는 사람을 먼저 세례를 주고 그 자식들을 교육 시켜 사제로 만드는 프란시스칸 선교의 효율적인 방식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인디언 문화를 배우고 토착문화를 많이 받아주었는데 트렌트 종교 회의The Council of Trent (1545-1563)는 인디언에게 너무 맞추지 말고 카톨릭의 본령을 취하라는 강력한 입장을 취한다.
 
 
Rich Imperial Potosi, Naeva Coronica, 1613-15, Copenhagen

17세기 삽화책으로 뉴 멕시코, 페루의 지방 모습이 실제와 비슷하게 나타난다. Potosi도시의 전성기 모습이다. 스페인 국왕을 원주민들이 받들고 있는 그림으로 스페인을 찬양하는 책이다.
 
 
뉴스페인의 건축물
 
Convent of San Francisco in Mexico City, San Jose de los Naturales
 
1523년 처음 뉴멕시코에 도착한 프란시스코회 선교사들은  Fr Jan Dekkers, Fr Jan van den Auwera, Pedro de Gante 이다. 프란시스코 수도회는 본부를 Mexico City 에 짓는데  교회, cloister, dormitory, 학교 등을 포함시킨 mission complex 를 짓는다. 페드로 간테는 원주민의 전통에 맞추어 open chapel을 처음 생각해 낸다.  대부분의 식민지 교회들이 프란시스코 수도회 본부를 본따서 모이는 공간 open chapel 을 앞 마당에 만든다.
 
 
Franciscan Mission Church of Tepeapulco Mexico, mid to late 16th C
 
프란시스코 수도회 교회의 원형 이다. 아치형의 문, 수도자 거주 공간 cloister, arcade, open chapel, 야외용 십자가가 있고 방어 기능을 하는 담이 있다.  카톨릭 의례를 펼치는 열린 공간 atrium 이 교회 옆에 붙어 있다. 신전을 무대로 밖에서 종교 의례를 펼쳤던 아즈텍의 종교 습관을 이해하여 교회 옆에 정원 같은 atrium을 만든다.
 
 
Royal Chapel, Cholula, Mexico   
프란시스코 수도회를 본따 지은  Royal Chapel 이다. 스페인에 있는 무어인들의 모스크와 비슷한 교회가 멕시코에 세워진다. 프란시스코 수도회가  mosque 와 비슷하다는 점을 놓고 왜 이런 선택을 하였을까 하고 의견이 분분하다.
 
 
Dome Great Mosque, Cordoba 965          
선교사들은 기독교화 되지 않은 원주민을 무어인과 비슷하게 생각해 모스크를 닮은 교회를 지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Jerusalem 에 있는 Al-Aqsa Mosque 와 비슷하다고 한다. 
 
 
Al Aqsa Mosque in Jerusalem 
  
Atrium(open chapel) 이 있는 식민지 선교 교회가 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모스크에서 원형을 따왔다는 의견이 있다. 이 곳은 모하메드가 vision 을 받았다는 중요한 성소 Dome of the Rock 이 있는 곳이다. 원래 이 장소는 콘스탄틴 대제 Constantine the Great 가 교회를 지은 곳인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 holy sepulcher 과 아주 가깝다.
 
 
 
 
그런데 이슬람 세력이  7세기에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교회를 허물고 Dome of the Rock 을 짓는다. 또한 이 곳은 유대인에게도 중요한 성소로  Solomon’s Temple 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세 종교가 한 자리를 두고 역사 속에서 싸워 왔는데 지금은 이슬람 성소로서 알 아크사 모스크가 있다.
 
 
Old St. Peter                                                                                                       Plan
                  
콘스탄틴 대제 때 지어진 구 베드로 성당은 atrium  공간인 courtyard 가 들어가 있다. 일부 학자는 식민지 교회가 초기 기독교 교회의 atrium 을 본따서 지었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 교회는 성소와 구분하여 준비하는 구역인 atrium 이 있었다.  다신 숭배를 하는 로마인도 인디언처럼 신전을 배경으로 plaza 에서 야외행사를 주로 했다. 초기 기독교인이 로마에서 선교했던 상황과 남미 식민지의 상황이 비슷하여 초기 기독교 교회의 스타일로 지었을 거라는 추측도 있다.
 
 
Mission Church of San Agustin, Acolman, outside of Mexico City 16C
 
16세기에 식민지에서 처음 지어지는 교회들은 유럽에서 1500-1530년 대에 유행하던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이용하여 로마 스타일의 둥근 arch, 고전적 형식의 기둥, 조각이 있다.  인디언에게 서양 르네상스의 도상을 가르쳐서 짓게 하는데 기법은 아즈텍 문명에서 보던 인디언들의 기법이 들어간다.
 
 
Aztec Place Glyph, Acolman
           
교회 정면에 팔과 태양 광선 모양의 인디언의 심볼 조각이 걸려있다. 팔은  3차원 르네상스 기법의 부조인데 태양광선은 납작한 선으로 음각을 깊게 파서 음양 대조를 보이는 인디언의 조각 방식이다. 최초의 인류 아콜맨의 팔이 이 곳으로 데려다 주어 정착을 했으며 팔에서 물이 흘러 자연을 풍요롭게 한다는 전설이 있다. 
 
 
Stone of Five Suns Façade of Santíago, Angahuan, Michoacán, Mexico, 16th century
  
멕시코 미초아칸에 있는 교회로 입구 부분만 16세기 원형이며 나머지는 새로 지은 것이다. 중요한 행사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 앞마당에서 한다. 식민지 시골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여전히 신앙의 중심지로 쓰이고 있다. 
 
           
              
문의 portal 에 로마 스타일 아취가 있고 산티아고 (야고보) 성인이 지팡이를 들고 있으며 식물 문향의 아즈텍의 문화가 나타난다. 토착 세력의 노동력으로 교회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Stone of Five Suns, carving related to Aztec technique 1503
 
아즈텍의 조각 기법이 교회를 짓는데 장식 문향으로 쓰인다. 
 
 
Juan Gerson, Church of Tecamachalco, Mexico
  
멕시코 시골에 있는 소박한 교회이다. 문 위의 조각만 옛날 것 이고 나머지는 새로 지었다. 수도에 있는 교회는 화려하게 지었지만 선교가 필요한 시골 중소 도시는 주변이 소박하다. 서양 르네상스 식의 입체 부조가 아닌 납작한 도장 motif 의 아즈텍 기법으로 벽돌처럼 하나씩 제작해서 끼운다.    
 
 
Foundation Date Stone, Tecamachalco, Mexico 1589-90
 
인디언 문화의 상징 독수리 심볼을 문 위에 붙인다.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의 노력으로 만든 교회가 자신의 생활의 토대라고 믿겠금 배려한다.
 
 
San Miguel, Battle of Aztec and Chichime
 
아즈텍 신전의 벽화에 있는 인디언 전쟁의 모습이 교회에 들어간다.
 
 
Juan Gerson, Noah’s Ark, 1562, Church of Tecamachalco, Mexico  pigments on Mexican bark paper
  
 
 

콰이어의 천장에 그려진 그림으로 소재가 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 파뻴 드 아마테 papel de amate 이다. 멕시코 전통 기법으로 만든 질기고 두툼한 종이에 노아의 홍수 도상이 들어간다. 종이도 그림도 원주민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The Miraculous Mass of St. Gregory, 1539, feather on wood 
 
초기 선교회는 토착 문화 수용에 적극적이었다. 나무 패널에 새의 깃털로 색깔을 넣은 인디언의 민예 기술을 성물에 응용한다. 서유럽 르네상스에 들어와 비로소 미술이 천한 수공이 아니라 인문 교양 과목의 수준으로 넘어온다. 프란시스코 수도회에서는  학교를 만들어 인디언에게 목공, 조각, 그림 교육을 시킨다.  교육 받은 원주민 미술가가 단체로 다른 도시로 가서 몇년씩 식민지 도시를 만들며 도시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Church of Santo Domingo, reconstructed after 1650, Cusco, Peru
 
선교사들이 식민지에서 교회 터를 잡을 때 종종 원래 아즈텍의 신전이 있었던 곳에 다시 짓거나 그 옆에 지었다. 인디안이 성스럽게 여기는 장소에 교회가 들어가도록 했다.  페루 쿠즈코의 태양의 신전이 있던 자리 위에 토대를 마련하고 교회를 지었다.
 
 
Built on Inca Temple of the Sun
 
원래 섬기던 전통의 신들을 믿으면서 새로 들어온 예수님도 믿는 것을 종교의 습합 이라 한다. 기독교의 본질은 유일신인데 프란치스코 선교회에서 토착문화를 받아주다 보니까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원주민들은 poly theists  인데 예수도 그 중의 하나로 이해하여 쉽게 받아들인다. 나중에 1570년 쯤 가서 보니 원주민들은 변화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늘 하던 풍습을 그대로 하면서  교회도 나온다. 프란시스코회는 교리 상의 문제로 인해 비난을 받고 본국과 오고 간 편지 속에 고민이  나타나 있다. 
 
 
Open Chapel Convent of San Nicholas de Actopan, Mexico mid 16C

 

                  
Open chapel 의 잔재를 보여주는 터널형 이다. 안에 들어가면 아담과 이브가 그려진 벽화가 있으며 성화를 그려서 대중을  교화한다. 교리 공부 및 적극적인 선교가 이루어지는 곳 이다.
 
 
Open Chapel of Convent of San Luis Obispo de Tlalmanalco, Mexico mid 16C

 
Open Chapel 에 인디언의 식물 문향이 장식으로 들어간다.
 
 
Franciscan Church of Tepeyae, Mexico late 16C
 
프란시스코 선교 교회의 십자가인데 예수님이 가시관 crown of thorn을 쓰고 고통받는 모습이다. 아즈텍 상형 문자와 비슷한 문향이 들어가고 의례용 칼 같은 것을 넣어서 칼에 찔려서 피가 난다는 의미 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보기에는 이질적인 요소가 많은데 선교사들의 용인 하에 이런 성물들이 16세기에 활발하게 만들어진다. 
 
 
Franciscan mission church of San Miguel, Huejotzingo, Mexico, 1524/6-70
 
 
 
멕시코 시골 후에칭코의 선교 교회이다.  마당에 십자가가 있고 입구가 성곽 같이 생겼다. 보존이 잘 되어 전체가 남아있는  중요한 교회이다.
 
Posa Chapel, Convent of San Miguel, Huejotzingo, Mexico 1547-71
 
담벼락의 한 쪽에 집처럼 생긴 야외 포사 채플이다. 르네상스식 아치가 있고 천사가 트럼펫을 부는 조각이 있다.
 
 
Augustinian Mission church of Copacabana Bolivia 1
오거스틴 수도회의 선교 교회의 plan 이다. Cloister area 가 크며 atrium 이 있으며 가운데 채플이 있고 구석에 소규모 예배를 드리는 4개의 posa chapel 이 있다.
 
 
Atrium Cross, San Agustín, Acolman, Mexico, 1555-57
   
야외 공간에 꼭 필요한  십자가이며 조각으로 만들었다. 서양의 crucifixion 은 예수님의 몸 전체가 달려 있지만 식민지 교회의 십자가는 특이하게도 몸의 부분이 달려 있다. 아즈텍 인디언 문명을 고려한 십자가이다. 인디언에게는 생명수 tree of life 라는 나무 숭배의 전통이 있었다.  평소에 지나면서 기도하는  Tree of life 에 예수님을 붙이니 인디언들은 쉽게 이해가 된다. 생명을 주는 데다가 부활 까지도 하는 예수님이  인디언에게는  경이스러운 신이었다. 유럽 선교사들의 의학 지식으로 인해 수도원은 인디언에게 삶의 위안이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바닥에 깔린 해골은 골고타 hill of skulls 를 상징하고 신학적으로는 아담의 뼈, 아담의 원죄를 넘어서서 부활한다는 의미인데  인디언들의 전통에  skull wall 등이 있었기에 공감을  쉽게 한다. 

 
 
예수님의 얼굴은 있는데 팔과 다리에 꽃, 잎 등 식물 문향 장식을 하여서 살아있는 나무 같은 느낌을 준다.
 
 
Church of San Pedro Apóstol, Andahuaylillas, Peru, after 1572


르네상스 양식과 섞여 있기는 하지만 이국적인 나무 장식 등으로 인해 남아 있는 다른 교회 양식과 잘 맞지 않는다. 페루의 교회이며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양식이 나타난다.
 
1530-1600 년 사이에 뉴멕시코에 400 여 개의 선교근거지가 만들어지며 비스타 (vistas)라고 부르는 부속교회들은 1000 여개쯤 시골 각지에 만들어진다. 1523년 처음으로 Pedro de Gante 등 세 명의 선교사가 뉴멕시코에 도착하고 1524년에 페드로의 뒤를 이어 12명의 프란시스코회 선교사들이 도착한다. 1526년에 도미니칸 수도회, 1533년에 오거스틴 수도회가 들어온다. 선교단체가  도착하면서 인디언 언어를 배우고 문화와 관습을 정리하였고 대학 및 학교를 세워서 인디언 귀족들의 자제들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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