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로서의 라틴 아메리카 1/19/12 > 김미연 아트노트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김미연 아트노트


 

신세계로서의 라틴 아메리카 1/19/12

페이지 정보

작성자 동백아가씨 댓글 0건 조회 9,132회 작성일 12-01-23 15:51

본문

라틴 아메리카 미술 1st hour: Latin America as New World
 

 
남아메리카는 큰 땅 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미약했다. 1492년에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식민지로서의 남미가 비로소 역사 속에 들어온다. 1492년 이전에도  Indigenous Indian 이라고 부르는 토착 원주민이 쭉 살고 있었다. 1492년을 남미의 문화를 논하는 큰 분수령으로 보는데 유럽 중심의 인위적인 구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포루투갈 점령자들이 남미에 들어온 후 마야, 잉카 등의 토착 문명이 훼손을 당하고 이들의 문화가 낮은 위치로 전락이 된다. 1492년 이전을 Pre Columbian period 라고 하며 후를 Post Columbian period 라고 하며 식민지 시대Colonial period 라고 부른다.
 
 

             
 
 
남미 미술은 19-20 세기에 와서 프리다 칼로Frida Kahlo(1907-1954), 디에고 리비에라Diego Rivera(1886-1957), 페르난도 보테르 Fernando Botero(1932-)등이 알려져 있지만 그전의 작가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다. 역사의 hierarchy 로 볼 때 라틴아메리카는 역사의 흐름에 소외되어 있었고 특히 식민지 시기(1521-1821) 는 missing link 처럼 빠져 있다. 
 

 
 
남미의 근 현대 미술, 문학과 음악은  관심을 끌어왔다. ‘백년 동안의 고독100 Years of Solitude(1967)’ 을 쓴 노벨상 작가 마르케스Gabriel Marquez (1927-), 시인 옥타비아 파스Octavio Paz(1914-1998)가 유명하며 아르헨티나 칠레 출신의 현대 작곡가 들이 뛰어나다. 남미 현대 미술가들의 화두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 찾기이다. 남미는 인종적으로 다양하고 스페인, 포루투갈, 영국, 미국, 네델란드, 프랑스 등의 외세에 400년 동안 시달리고 혼합이 되어서 커피색에서 우유색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피부 색깔이 있다. 19세기 초반 까지 피부색에 따라 지위가 정해졌으므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에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고민이 많이 나타난다.  점령지인 스페인, 프랑스 등지에 남미인이 가서 살기도  했으므로 19-20 세기의 라틴 미술은  서구의 time frame 과 같이 발전한다. 1930년 대에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1896-1966)이 멕시코에 가서 살면서 이곳이 초현실주의의 산실이라 감격을 하면서 남미 미술의 지위를 높여주는 일이 있었다.
 
남미는 처음에는  New Spain 이라고 불리다가 1860년 경 프랑스인들이 제국주의적 야심에서 라틴 아메리카라고 이름 짓는다.  프랑스는 멕시코를 무역 파트너로 만들어 다루기 쉽게 하려는 열망에서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루투갈어가  라틴어로 어원이 같다는 점을 들어 라틴 아메리카로 이 지역을 부르면서 비슷한 문화 공유권임을 알린다. Colonial Latin America는 제국주의적 단어이지만 남미의 문화를 대변하는 단어 이므로 현재까지 그냥 사용한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Latin Indian African America 라고 불러야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포함되는 적당한 이름이다.
 
유럽 정복자colonizer들이 들어가  카톨릭을 전교 시켜 아프리카와 남미가 카톨릭 인구가 제일 많다. 카톨릭은 억압받는 자를 구원 해방 시키는 종교처럼 보여  쉽게 받아들여진다.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과 토착 인디언들의 샤마니즘에 카톨릭이 혼합되어 특이한 성상이 나온다.
 
 
Edouard Manet, Execution of Emperor Maximilian of Mexico 1868
 
19세기 말에 프랑스가 멕시코를 만만한 무역 상대로 만들려고 멕시코의 내란을 이용하여 군대를 보내는 사건이 발생한다. 국수파 공화정와 왕정복고파의 내전이 벌어지는데 프랑스는 왕정 복고파와 결탁을 하여 오스트리아 출신의 왕족 맥시밀리안을 보내어 허수아비 황제로 앉힌다. 그러나 결국 공화정이 우세하여  프랑스 외압을 몰고 황제를 처형한다. 프랑스와 멕시코의 관계를 말해주는 이 사건은 당시 작가들에게 중요한 그림 소재가 되었다.
 
 
Geography of Latin America 
 
남미는 정치적 중립인 Central America, 카리브해 분도와  South America, 남극이 포함된다. Pre Columbian 시대에도 남미인은 남극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남극은 그들의 신화에서 세상의 끝, 돌아오지 못하는 땅으로 지칭이 되고 있다. 남미는 큰 땅 덩어리 이므로 남미의 작품은 기후 지리와 관련이 있다. 남반구로 가면 수목 종류도 달라져 스페인 본국에 없는 미술의 재료 조개 껍질 등을 즉흥적으로 쓴다. 큰 도시 멕시코 시티, 리마를 제외하고는 도시들이 고립되어 있어서 작품들이 대체로 소박하다. 작품이 유럽의 미술품 처럼 휘황찬란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버리고 독창적인 측면으로 감상해야 한다. 
 
 
Pre-Columbian Civilization
 
선사시대 부터 1400년 경 까지 유카탄 반도를 중심으로 기원 전 400년 부터 시작된 마야Maya, 아즈텍 Aztec문명과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한 잉카Inca 문명을  Pre-Columbian 미술이라고 한다. 남미에는 아시아계통 인구가 만사천 년 전 부터 들어와 살고 있었다. 땅들이 붙어 있었을 때  아시아인들이 알라스카를 타고 내려오고 북미 대륙 인디언들이 남미 까지 내려와 정착한다. 이들을 원주민Amerindians 이라고 한다. 1492년 이후에 스페인, 포루투갈의 Europeans이 들어오며 일손이 딸리자 17-18세기에 납치하여 잡아온 African노예들을 브라질 밀림에 풀어 놓는다. 이렇게 인종이 섞이면서 공존을 위해 결혼으로 인한 가족 관계가 만들어진다.
 
 
Central America
 
Central America 에는 코스타리카, 파나마, 자마이카, 쿠바 등이 있다. 이태리인 콜럼부스가 항해 후원자를 찾다가 스페인 국왕의 후원을 받아  3-4 차례 항해를 시도한다. 당시에 포르투갈인은 리스본, 아프리카를 따라 인도, 아시아로  가는 동쪽 항해 루트를 이미 개발했으나 1492년에 콜럼부스는  반대로 서쪽으로 항해하여 쿠바 자마이카 쪽의 카리브안 분도의 섬에 도착하여 둘러보고 간다.
 
 

 
 
 
Middle America
 
적도equator를 가운데 두고 미국 중부와 남미는 mirror image 로서 기후가 비슷하다. 남미에도 미국 콜로라도의 기후와 비슷한 추운 곳이 있다.
 
 
Voyage of Christopher Columbus
 
콜럼부스는 여러 번 왔다 갔지만 대륙은 발견하지 못 하고 캐리비안의 섬에 도착하였기에 남미의 무궁한 자원에 대해서는 몰랐고 항해 루트만 개발한 셈이 되었다. 항해술이 스페인보다 우세한 포루투갈은  콜롬버스의 항해 소식을 듣고 아프리카 반대편 서쪽으로 갔는데 브라질을 발견한다. 1500년에 포루투갈인 카브랄 Alvarez Cabral 이 브라질에 들어오고 1521년에 스페인 장군  코르테스Herman Cotes 가 멕시코에 온다.
 
 
South America
 
남미의 땅덩어리는 지구의 20%를 차지하지만 전체 인구의 10% 밖에 못 살며 자연 자원 금 은이 풍성하게 난다. 기후적으로 볼 때 아르헨티나, 파라구아이, 우루구아이는 농사 짓고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다. 칠레는 안데스 산맥을 따라 길쭉하게 위치해 고도에 따라 식물이 다르고  작황이 좋다. 스페인 colonizer 들이 멕시코, 파라구아이, 과타멜라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을 때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잉카 문명은  지리적인 이유로  금방 망하지 않는다. 1500-1600년 까지 페루, 칠레 북부, 볼리비아는 산악 지방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보존이 잘 되어 인구적으로 유럽계보다 인디안의 숫자가 높다. 
 
 
 
Antarctica
 
남극 안탁티카는  남미에서 400마일 정도이며 차로 4-5시간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각 나라의 기지가 있으며 Falkland Islands 의 영유권을 두고 대처 수상 시절 큰 전쟁이 일어난 지역이다.
 
 
Patagonia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 칠레의 남쪽 끝에 있으며 미국의 로키 산맥과 비슷한 산악 지대 이다. 산맥이 있고 해안 쪽은 살기좋은 농경 지대 이며 반대쪽은 사막이 위치하고 만년설 산들이 있다. 19세기 말에 다윈이 Galapagos Islands 에 배를 타고 가서 수목을 연구한 후 종의 기원Darwin’s Evolution Theories 을 세상에 내놓는다. 희귀종 연구 지역으로 과학자들이 몰리는 곳이다. 판구조론에 의하면 원래 지구는 한 땅덩어리 였는데 지각 변동으로 나누어졌고 갈라파고스 분도는 일찍 떨어져 나가 독단적으로 진화를 해온 곳으로  종을 나누기 애매한 희귀종이 많이 있다.
 
 
Territorial Division in South America by 1534

 
1521-1821년 까지를 식민통치 시대 Colonial period 라고 한다. 1521년에 스페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총독부Viceroyalty of New Spain and Peru를 2개 설치 하여 이곳을 중심으로 상업 허가 및 원주민을 진압한다.  Tordesillas Line을 중심으로 스페인영과 포루투갈영으로 영토를 나누어서 통치 권한을 총독들에게 나누어 준다.

 
 
 
스페인과 포루투갈은  1494년에 지구를 동서로 갈라 경도선 토르데시아스 라인Tordesillas Line을 그어서 전 지구상의 항해권을 두 나라가 나누어 가진다.
 
 
Colonial Latin America
 
포르투갈은  토르데시아스 라인을 중심으로 희망봉을 돌아서 아프리카 인도를 거처 아시아에서 가져온 향료 향신료를 중개 무역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한편  스페인은 영토를 착취하여 땅을 파기만 하면 금 은이 무궁무진하게  나온다. 토착 인디언이 반란을 일으키자 총독부의 규모를 더 늘리며 건물을 짓는다.  식민지 초기의 미술은 대도시 멕시코 시티, 리마, 코스코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시대를 내려가  18세기 초반 이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칠레 등지에 장식적인 로코코 건물이 생긴다.  
 
 
Latin America after the wars for independence about 1828
 
1820년 대 들어와서 남미에서 독립의 기운이 무르익어 나라들이 막 생긴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직전에 미국이 영국과 독립 전쟁을 하는데 혁명의 기운이 라틴 아메리카 까지 온다. 스페인의 합스부르그 왕가는  1750-60년 까지 라틴 아메리카에서 실어오는 금 은으로 프랑스 못지 않은 부를 누려 산업 개발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1820년 대에 들어 식민지가 독립 발언을 하고 떨어져 나가니까 소득이 줄고 기득권자, 지식인 등 중간 계층이 반발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지식인 스페인 화가 고야Goya(1746-1828)는 스페인 정부를 풍자, 조롱하는 그림을 그린다.
 
 
Latin America Inca Empire 15th C
 
마츄피츄는 문명의 불가사의 라고 불리는 잉카 문명의 중심지이다. 처음에 식민자들이 남미에 들어와서 몇백명 안되는 카리비안 섬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전멸 시켜 섬에 인구가 없어진다. 사람의 씨가 마르자  일할 사람이 없어서 본국에서 배로 실어 오자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1521년에 스페인 장군 헤르만 코테즈가 점령한 후에는 식민지 효율 통치 정책을 개발해서 원주민을 보존한다. 토착 원주민을 회유해서 부리고 살기 위해 피부색깔에 따른 인종의 등급 Casta System 을 만든다. 
 
 
Latin America Colonial 1790
 
점령군이 라틴 아메리카에 들어오고 유럽 각 나라가 식민지를 차지한 1790년 대 쯤의 지도이다. 히스파니올라는 스페인이 처음에 캐리비안에 정착한 땅 이름 이다. 1862년 이후에 미국이 남북 전쟁을 거치고 산업화가 이루어지자 자본을 바탕으로  20세기 초에 뒤늦게 식민지 개발에 뛰어들어 푸에르토 리코, 버진 아일랜드를 영향권 아래 둔다.
 
 
Casta System during Colonial Period    Las castas, Anonymous, 18th C, Mexico
 
라틴 아메리카의 세 종류의 ethnic group (European, Indian, African)사이에서 결혼 으로 인한 가족 관계가 만들어지는데 사회문제로 발전하자 제도를 만든다. 숫자가 얼마되지 않는 스페인 본토인들이 우위에 서기 위해서 사다리 계단 같은 신분 제도 Casta System 를 만들어 토착인들을 부린다.
 
1. Peninsulares (godos) (Spaniards born in Spain )
 
페닌슐라레스는 스페인에서 출생한 스페인 사람으로 비지니스로  New Spain 에 와서 정착한 사람이다.
 
2. Criollos (Spaniards with Peninsulares parents)
 
크리오요는 유럽인 부모를 가지고 멕시코 총독부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스페인의 기득층은  New Spain 에서 태어난  Spaniard 를 열등하게 분리하기 위해 크리오요 라는 이름을 붙인다.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던 계급으로서 스페인 본토 국민에게는 항상 the other 로 취급되었다.  교육도 많이 받은 크리오요들은  자신의  땅 남미가 번성을 해야 하는데 스페인에서 온 정책자들이 토지개혁, 세율 등 본국에 유리한 정책을 펴는데 대하여 불만을 가진다. 크리오요들은 19세기 초에 가서 남미에 공화정을 만들어 자신들이 식민지를 꾸리겠다는 움직임을 보인다.
 
3. 카스티조Castizos  (Europeans + Mestizos) 는 Europeans 과  Mestizos 의 혼합으로  3/4 European 과 1/4 Indian 사이에서 태어난 혈통을 의미한다.
 
4. Mestizos  (Spaniards + Amerindians)
 
메스티조는  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에서 생긴 혼혈을 의미한다.
 
 
5. Mulatos (Spaniards + Black ) 
 
뮬라토는 유럽인과 블랙 사이의 혼혈로 얼굴 색깔은 인디언 보다 검을 수 있는데 부모 중 한쪽이 유럽인이면 인디언 보다 높은 신분으로 친다.
 
 
6. 인디오Indios (Amerindians + Amerindians)는 원주민끼리의 결합에서 나온 신분이다.
 
7. 쟘보Zambos (Indians + Blacks)는  원주민과 블랙의 결합에서 나온 신분이다.
 
8. Blacks 은 노예로서 최하위 신분에 속했다.
식민지에서 인구 대장 census을 만들 때 이 Casta System 이 기준이 된다. 그러나 신분의 판단은 사람이 하는 것 이므로  뇌물로 사기가 들어가기도 한다. 인종 외에도 사회 경제적 위치에 따라 계급이 정해진다. 아프리카인 엄마와 총독부 관리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뮬라토는  피부색이 검어도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는 특권을 누리고 살 수 있었다. 스페인 본국은  homogenous 한 사회이므로 인종적인 label 이 조금이라도 붙으면 살기 힘들지만  식민지에서는  괜찮게 살 수가 있었다. 남미인은  극심한 인종 차별적인 제도 밑에서 이삼백년을 그렇게 살면서 한편으로는  제도에 무디어져 간다.
 
 
Casta Painting De Elpanol y Negra, Mulato
 
스페인 남자와 흑인 여자 Negra 사이에는 Mulato 가 태어난다는 신분제도 그림 casta painting 이다. 뉴 스페인은 여러 인종이 혼합된 사회이므로 배우고 재산이 있는 특권층  페닌슐라레스, 크리오요 계급은 사회적인 책임을 느끼고 카톨릭의 charity 정신에 맞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Portrait of Hernan Cortes, attributed Master Saldana 16C
 
식민지에서 제작된 스페인의 허르난 코르데스 장군 초상화이다. 16세기 초창기의  라틴 아메리카 미술에는 작자 미상의 그림이  많다. 초기에 스페인에서 이름 없는 화가가 기회를 찾아 New Spain 으로 건너와서 그렸다고 생각되며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18세기 정도 내려가면 작가의 이름이 있다.
 
 
Cuzco School, Genealogy of the Inca with the Spanish Monarchs
 
유럽에서 온 정복자들이 남미 대륙 통치의 정당화를 위해 계보를 조작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잉카 문명 부족장은 스페인 장군이었으며 인디언 복장을 한 스페인 장군을 계보에 그려서 보여준다.
 
 
 
라틴아메리카의 미술 사조 Artistic Period in Latin America
 
남미의 1500-1800 년대 사이의 미술품과 건축은 멕시코시티와 페루의 리마에 주로 편중되어 있다.  남미 미술은 여러가지 미술 사조가 있는데 르네상스부터 시작을 한다.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건물, 제단화가 16세기에 나타난다. 그 이유는 스페인 왕 Philip 2세가  건축가 후안 드 헤레라 Juan de Herrera (1520-97)를 New Spain 에 보내어 건축을 하게 하고 포루투칼은  필립보 터지Filippo Terzi (1520-97)를 이태리에서 데려온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이 이태리에서 스페인으로  라틴 아메리카 까지 들어온다. 또한 스페인에서 남미로 오는  짐꾸러미에  building manuals 과 engravings 이 함께 들어가서 바로크 스타일이 전달된다.  18세기 로코코는  Argentina, Chile, Paraguay, Uruguay 중심으로 퍼진다. 
 
Latin America 의 미술 스타일을  연대기적 무정부주의chronological anarchy 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mixed styles 로서 미술양식이 시대의 선후에 관계없이 뒤섞여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라틴아메리카 미술을 유럽미술의 아류나 복제로만 이해해서는 안되며 새로운 기후와 재료, 다양한 인종적 배경의 주민들에게 영향력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독창적인 시도가 많이 이루어졌음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17-18세기에는 흑인 혹은 인디언들이 카톨릭을 받아들여 직접 성상제작 및 건축에 참여하기도 했다.  1800년대는 로코코 시대이지만 멕시코의 고립된 시골 도시는 국제적 흐름과 상관 없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바로크 풍으로 건물을 짓는다.
 
 
Painted Ceiling of Church of Checacupe 1570, Checacupe de Carangas, Peru
 
1570년이면 유럽에서는 미켈란젤로 풍이 휩쓰는데 페루에서는 중세 고딕 스타일과 르네상스의 선형원급법linear perspective이 나타난다. 1400년대의 고졸한 스타일로 교회를 짓고 그림을 그린다. 
 
 
Royal Chapel, Cholula Mexico 1570
 
스페인은 1400년 까지 이슬람의 영향이 있었던 곳이므로 이슬람의 모스크 같은 분위기의 성당이 멕시코에 지어진다. 
 
 
Church of San Miguel de Huejotzingo, Huejotzingo Mexico 1547-71
  
정복자들이 들어와서 대규모 planning 을 하고 새로 지은 교회이다. 제대에 이름있는 성인은 다 들어있다.
 
 
Our Lady of Assumption, Lima, Peru 1628-45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양식이 합쳐진 성당이다. 첨탑의 타원형은 바로크 스타일이다.
 
 
Folding Screen with the Conquest of Mexico (front), Mexico, late 17th century,  Mexico, LACMA
 .
포루투갈 상인들이 무역을 통해 일본인의 금박 병풍을 들여온 것이 신대륙에 들어와서 특이한 양식으로 발전한다. 1690년에 일본은 더 이상 이렇게 만들지 않았지만  남미에서는 일본의 역사화를 흉내 낸 병풍이 제작되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