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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 쿠루베 1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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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4,449회 작성일 11-12-1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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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19 세기 18th hour: Realism
 

 
자연주의Naturalism, 사실주의Realism가 한국말적인 의미로는 비슷하지만 사실주의는 프랑스 1848년 혁명 이후에 생겨 나는데 정치적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왕정, 귀족 타도가 목적이었지만 1848년의 혁명은 부르조아 bourgeois 와 도시노동자 urban poor 간의 문제로 발전한다. 자본을 소유한 공장 기업가가 왕 이상으로 군림하니 혁명을 했어도 working class 들은 배고프기는 마찬가지 였다. 이런 사회적 현상에 맞추어 현실 도피적인 낭만주의 그림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역사적 사건을 미화된 하늘, 구름과 섞어  극적인 구도를 만들어 감정을 쥐어 짜내던 낭만주의 그림 보다는 현실 생활에서 힘겹게 일하는 사람들 people at work을 그리면서 자본가의 착취를 지적하는 그림이 더 상황과 맞아 떨어진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는  것을 장르 페인팅 genre painting 이라고 하는데 사실주의는 주로 노동자들을 그린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짙다.  산업혁명 (18세기 중-10세기)의 급격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피폐된 사람들의 모습을  주제로 하는 사실주의가 시대의 변화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면 다음에 오는 모더니즘 modernism 은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운동 이다. 사실주의는  ‘true to life’ 에 충실하고자 더 이상 꿈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는 창조하지 않는다.
 
 
The European Revolutions of 1848
산업화 된 대도시에서 부르조아와 노동자 계급 간의 충돌로 인한 혁명이 일어난다. 유럽 여러 도시에서1848 년에 혁명과 개혁이 일어난다.
 
 
1. Jean Gustave Courbet 1819-1877 by Nadar
 
사실주의Realism 운동을 창시한 프랑스 작가 쿠르베는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남쪽 지방 오르낭 출신이다. 대대로 내려오는 anti-monarchist 로서 군주제, 나폴레온 왕정을 반대하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의 집안으로 할아버지 때부터 혁명에 가담한다.  혁명에는 뒤집고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향수nostalgia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쿠르베는 파리로 와서 도미에 Honore Daumier, 밀레 Jean Francios Millet 와 함께 사실주의 운동을 한다. 쿠르베는1846-47년에 네덜란드에 다녀와서 사실적 그림에 감명을 받고 비슷한 그림풍을 추구하며 1848년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Jean Gustave Courbet, The Stone Breakers 1849
 
19세기 중반 Romanticism 이 무르익어 들라클루나의 메듀사의 뗏목 같은 그림이 나오는데 쿠루베는  일용직 노동자가 돌을 깨는 품팔이 그림을 그려 Realism 을 추구한다. 시골에서 길을 가다가 목격한 것으로 있는 그대로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이다. 당시에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옷이 찢어지고 남루한 신발에 ‘예쁘지 않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장면’ 이었다. 사회 현상의 치부를 들킨듯 한 그림—이런 것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을 깨는 사람’ 의 원본은 1945년 2차 대전 중 영국군이 독일의 미술관을 폭격 했을 때 파손 되어 남아 있지 않다.
 
 
Jean Gustave Courbet, Burial at Ornans 1849-50, Musée d'Orsay, Paris
 
쿠르베의 고향 오르낭에서 쿠르베의 친척 grand uncle 을 매장하는데 모였던 사람들을 그 당시 본대로 사실적으로 그렸다. 동네 사제 그룹과 오르낭 전통 복장의 친척 아줌마들 그룹으로 얼굴이 다 다르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룹 초상화와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준다. 혁명 동조자 였던 grand uncle 의 매장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가 깔려 있고 오르낭 지방의 민둥산 모습이 들어가 있다. 당시 주류 사조인 낭만주의에서는 위대한 나폴레온 같은 사람을 대작으로 그리는 역사화가 유행이었는데 크루베는 평범한 사람도 이처럼 큰 대작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영웅적일 것도 없고 역사적 교훈을 주는 것도 없는 사람의 어두침침한 매장이 그림의 주제가 된다는 점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어딘가 불편irritating 했다.  이 그림이 salon 에 전시 되자 비평가들은 deliberate pursue of ugliness 라고 했다.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은 어러번의 스켓치를 거쳐 인위적으로 극적인 구도를 만들어 사람의 감정을 끌어내려 했는데 쿠르베는 꾸며낸 감정을 싫어했다. 오르낭의 매장에 온 어떤 사람은 심지어 매장 장면을 보지도 않고 있으며 오르낭의 매장은 실제로는 낭만주의를 매장하는 그림 이라고 볼 수도 있다. ( The Burial at Ornans was in reality the burial of Romanticism.)
 
 
Jean Gustave Gourbet, The Artist Studio, A Real Allegory of a Seven Year Phase in my Artistic and Moral Life  1848-1855
 
쿠르베가 화가로서의 7년(1848-1855) 동안의 삶을 보여주는  상징allegory 적인 그림이다.  화가로서 경험한 것을 풍자하는 그림으로 쿠르베가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Diego Velázquez, Las Meninas 1599-1660                               Vermeer, Art of Painting 1666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하녀들Las Meninas은 화가의 자화상과 왕실 초상화를 합쳐 집대성한 작품으로 그림에 있어 신학Theology of Painting과 같다고 불린다. 베르미어도 화실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다.
 
 
Deatail, Jean Gustave Gourbet, The Artist Studio
 
서양미술의 전통을 알고 있는 쿠르베는 비너스 여신 muse 같은 누드모델을 세우고 innocence를 상징하는 어린 소년을 그려넣었다. 하지만 자신은 등을 돌려 아카데미에서 가르치는 전통과는 상관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은 쿠르베를 좋아하고 치켜 세우는 admirer 들로서 자기가 어울리던 보헤미안 type의 친구 그룹이다.  
 
 
자신의 친구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가 책을 보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왼쪽은 자신의 작품을 이해 못하는 대중의 모습이다. 악기 든 아저씨는 처음에는 없지만 나중에 그려 넣었는데 쿠르베가 싫어했던 나폴레온 3세가 아닌가 하고 추측한다. 왼쪽은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다른 세계 the other world of trivial life 에 사는 시시한 사람들로서 성직자, 군인, 가난한 사람, 거지 들을 그려 넣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의 모습도 왼쪽에 포함되어 있다. 사실 쿠르베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세상 변혁을 꿈꾸는 그림을 그렸지만 대중은 쿠르베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았다. 1855년에 파리에서 열린Universal Exposition 에 화가들이 그림을 전시하는데 쿠르베가 보낸 '오르낭의 매장'은 거절을 당한다. 쿠르베는 화가 나서 바로 옆에서  ‘The Pavilion of Realism’ 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전시를 올리면서 화가로서의 7년의 생할을 회고하는 The Artist Studio
를 그린다. 당시의 아방가르드 인 쿠르베의 그림을 보고 마네 등 인상주의 젊은 화가들은 고민을 한다. 1871년에 Paris Commune 이 설립되고 사회주의 정부가  2-3달 동안 집권하게 되는데 쿠르베도  이때 중요 위치를 차지한다. 나중에 스위스로 가서 그곳에서 죽는다.
 
 
  
 
 
프랑스 역사학파인  Annale School (Annual School) 의 이론에 의하면 역사의 연구를 사건이나 전기 위주로 할 것이 아니라  300-400년동안 장기 지속한 후에 봐야지 과연 역사가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프랑스 혁명이 사실은 인간의 생활과 의식을 바꿔놓지 못 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혁명을 겪은 평범한 사람들의 유언장을 분석했는데 죽을 때 유언장에 ‘아베 마리아 나를 도와 주세요’ 라는 문구를 안 쓴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이 카톨릭과 교회 반대를 표방했지만 사람들 의식 밑바닥에 있는 종교 의식을 바꾸어 놓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가부장적 사고 등의 고정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가야 조금씩 바꾸어짐을 말한다.  또한 역사를 기후와 관련하여 연구한다.
 
중세에 유럽인이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데 모슬림이 장악하고 있어서 못 가니까 십자군을 일으켜 원정을 나선다. 이 사건을 기후와 관련시켜 분석한 연구가 있다. 1000년 마다 기온이 4-5도 올라가는데 기후가 따뜻해지면 작황이 좋아진다. 800년대 보다 1200년대에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게 되니까 팽창 욕구가 생겨서 십자군 원정을 떠났다고 아날 학파는 분석한다.  아날 학파는 역사를 사건 중심으로 보지 않는다. 300-400년 씩 길게 잡고 보면 산업 혁명이나 프랑스 혁명 같은 급진적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실제로 사람들의 의식이 금새 바뀌어 지지 않는다고 한다.
 
Jean Gustave Gourbet, Sleep 1866                                      Jean Gustave Gourbet, The Origin of the World 1866

              
           
파리 매춘부들의 same sex love 이다. 사실주의 그림 이다.
 
 
2. Honore Daumier1808-1879, It’s Safe to Release This One 1834
Lithography 로서 자본가 계급과 경찰이 결탁하여 정치범에게 죄를 뒤집어 쓰워  수용소에 가두었는데 죽을 때가 다 되었으니 내보내도 된다는 내용 이다. 도미에는 Realism 운동을 한 printmaker 로서 ‘La Caricature’ 라는 대중 잡지를 만들어 사회권력층의 현실을 풍자satire하여 적나라 하게 드러낸다. 
 
Honore Daumier, The Third Class Carriage 1863-68
 
산업화에서 소외된 가지 각층이 3등 열차 속에 타고 있다. 애를 안고 있는 엄마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지고 중절모를 쓴 사람도 있다. 도미에는 시골에서 땅을 잃고 도시에 와서 최하층으로 전락된 계급을 주제로 다룬다. Caricature 이므로 표정을 잘 잡아낸다.
 
 
 
3. Rosa Bonheur, Plowing in the Nivernais, The Dressing of Vines 1849
 
바르비종파와 사실주의 사이에서 활동한 여자 작가 이다.
 
 
4. Jean-Francois Millet (1814-1875) Photo by Nadar
 
밀레는 바르비종파에 속하며 전원에 나가서 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다. 초창기에는 삶이 평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괜찮아진다. 반 고호에 영향 미친다.
 
 
Jean-Francois Millet, Sower 1850
 
 
 
Jean-Francois Millet, The Gleaners 1857 Musée d'Orsay, Paris
 
수확이 끝난 후 남아있는 볏집을 걷어가는 사회 최하층 그룹이다. 미화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Jean-Francois Millet, Woman Baking Bread 1854
 
 
 
Jean-Francois Millet, Angelus 18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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