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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낭만주의 풍경화: 죤 콘스터블 11/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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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5,894회 작성일 11-12-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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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19 세기 16th hour: Romanticism and Landscape       
 
 

 
도교 사상이 근간에 깔려있는 동양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자연이 예술의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며 황하강의 자연 풍경이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17-18세기에 회화 이론이 정립되어 나무를 그리는 법. 나무가 주는 교훈 등이 정해진다. 그러나 서양은 고대 그리스 부터 인간 중심 사상이 발달하여 인간이 주제가 되며 동물은 등장해도 수목은  쳐다보지 않았다. 서양의 풍경화는 19세기 낭만주의에 와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하며  풍경화가 정식 주제로 등장된 역사는 동양에 비하면 짧다고 할 수 있다.
 
 
Raphael, Ma del Cardellino 1506  Uffizi
르네상스 시기 16세기에 자연이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라파엘은 자연을 그림에 등장 시키며 17세기 바로크 화가들은 네덜란드식 풍경화를 발달 시키며 바다를 주제로 하는 seascape 가 나타난다.  Venetian Painters 의 풍경화의 영향을  받은 라파엘은  하늘 색깔 톤이 그림의 분위기를 좌우하게 그리며 나무, 푹신해 보이는 흙 등 배경이 나타난다. 고즈넉한 풍경으로  대기원근법aerial perspective 이 나타난다. 앞의 것은 진한 색, 뒤의 것은 희미한 색으로 1425년에 마사치오가 처음 대기 원근법을 그림에 적용한다. 19세기 낭만주의 풍경화 화가들은 라파엘을 영감의 원천으로 꼽는다.
 
 
John Constable(1776-1836), Self-Portrait 1806
 
John Constable 과 William Turner는 영국 풍경화 거장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영향을 받은 풍경화를 그린다. 죤 콘스타블은 터너와 동 시대 화가이지만 터너로 인해 살짝 숨겨진 천재로 오래 산 터너와는 달리 50몇세에 죽는다. 죤 콘스타블은 호가드, 토마스 게인즈보로, 죠수아 레이놀드  이후 영국이 자랑하는  화가이다. 콘스터블은 인생이 평탄하게 풀리지 않는다. 밀방아간을 하는 부르조아 집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잇는 상공업자가 되라는 집안의 압력을 받지만 1799년에 드디어 아버지가 허락하여 런던 Royal Academy 에 등록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그림을 고독하게 그리다가 죽기 몇년 전 1829년에 아카데미의 정식 멤버가 된다.
 
 
John Constable, Maria Bicknell, Wife of Constable 1816, Tate Gallery London
 
그는 일생 동안 꿈꾸던 여자 Maria Bicknell 과 결혼을 한다.  마리아는 어릴 적 동네 친구로서 콘스터블 보다 잘 사는 집안의 딸로서 처가의 결혼 반대에 부딪친다. 1816년에 콘스터블의 부모가 죽자 재산의 1/5을 상속받게 되고 달마다 들어오는 수입이 생기게 되자 결혼을 감행한다. 결혼한 지 12년 후에 부인이 죽는데 콘스터블은 애도의 의미로 계속 검은 옷만 입다가 3년 만에 자신도 죽는다. 
 
 
John Constable, The Hay Wain, (Landscape, Noon) 1821, National Gallery London
 
The Hay Wain은 콘스터블이 사는 마을 이름이다. 농부가 마차를 끌고 물가로 가고 개가 놀고 초원의 집 같은 고즈넉한 countryside분위기 이다. 밖에 나가 수목의 종류를 살피고 사생을 잘 한 후에 그린 그림이다. 그는 주로 자기 동네와 런던에서 평생 산다. 콘스터블은 중국의 사대부 화가들 처럼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literati painter 에 속한다. 안정된 소득이 있어서 그림으로 먹고 살지 않아도 되므로 많은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태리 프랑스를 다니며 그림공부를 하는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평생 영국을 떠나지 않으며 ‘I would rather be a poor man in England than a rich man abroad’ 라고 말했다.  천재 소년으로 12-13살 무렵에 Royal Academy 에 들어가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그림을  팔았던 터너와는  대조적으로 콘스터블은 영국에서 평생동안 팔린 그림이  20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Dealer 인 John Arrowsmith 는 콘스터블의 그림을 프랑스에 가져가서 몇년 사이에 영국에서 팔린 그림 수 보다 더 많은  그림을 판다.
 
 
John Constable, Weymouth Bay 1816, National Galley London
 
허니문 여행 중에 그린 그림 이다. 콘스터블의 그림에서는 구름이 중요하다. 구름에 파란색, 보라색, 회색의 세가지 색이 어우러져 있다. 아주 넓은 시야를 담은 시원한 풍경화 이다. 제리코, 들라쿠루아가 그린 극적인 역사화와 비교하면 약간 심심하게 느껴지지만 콘스터블은 고전주의 풍을 이어 이런 종류의 그림을 계속 그린다.
 
 
Annibale Carracci (1580-1609), Landscape with Flight to Egypt 1603
 
콘스터빌은 바로크 시대에 고전적인 스타일로 그린 이태리 작가 안니발레 카라치의 우아한 풍경화를 좋아한다.
 
 
Claude Lorrain (1600-1682), A Pastoral Landscape 1648
 
바로크 시대 프랑스 화가 클로드 로랭의 고전적인 풍의 그림으로 하늘이 crispy 하고 구름이 부각되어 있는 점에서 콘스터빌의 풍경화와 닮아 있다.  푸생의 제자 클로드 로랭은 베니스 풍경화의 영향을 받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네덜란드 풍경화에서 땅이 차지하는 부분은 1/3 인데 프랑스 풍경화는 땅이 1/2을 차지한다.
 
 
John Constable, Boat Building near Flatford Mill 1815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콘스터빌이 사는 근처의 풍경화 및 장르genre페인팅  이다.
 
 
John Constable, Opening of Waterloo Bridge Seen from Whitehall Stairs June 18, 1817, 1832 Tate Britain, London
 
날씨가 특이한 날이다.  콘스터빌은 구름에 관심이 많아서 기상학meteorology 을 연구한다.  그는 ‘Sky was the key note, the standard of scale, and the chief organ of sentiment in a landscape painting’ 라고 하며 풍경화에서 그림의 전체 분위기를 조성하는 하늘을 강조했다. 딜러 애로우스미스가 프랑스에서 그림을 전시하여 제리코, 들라쿠루아 등에게 영향을 주며 콘스터빌의 그림이 영국보다 오히려 프랑스에서 인정을 받는다.
 
 
John Constable, Seascape Study with Rain Cloud 1824,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콘스터빌의 풍경화는 밖에 나가서 자연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집에 앉아서 연구를 하는 예전의 역사화와 다르다. 당시는 밖에서는 그리기 힘든 물감 이었기에 나가서는 즉흥적으로 몇번 쓱쓱 그리는 스케치 정도만 하고 집에 가져와서 그린다. 머릿 속에 있는 관념적인 자연을 그리던 이전의 풍경화와는 다르게 콘스터빌은 과학적인 관찰에 의거하여 그린다는 점에서 후대 화가에게 영향을 준다. ‘아하 밖에 나가서 사생을 하고 나중에 그리는 것 이구나’
 
 
John Constable, Salisbury Cathedral from the Bishop’s Grounds 1825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샐리스버리 주교bishop가 부탁한 그림이다. 비숍의 교회를 배경으로 하여 샐리스버리 부부가 왼쪽에  있고 풀을 뜯는 소들, 청명한 하늘, 나무가 보이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20세기에 들어와 풍경화는 재조명 되어 nationalist value 를 가지게 되고 콘스터빌은 영국적 identity 를 강조하는 작가로 부상된다.
 
 
John Constable, Cornfield 1826, National Galley London
 
시골의 냇가에서 물을 벌떡벌떡 마시는 픙경이다. 프랑스 신고전주의를 확립한 푸생은 구도를 인위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하였지만 콘스터빌에게 중요한 것은 있는 자연을 본 그대로 그리는 것 이었다. 그는 ‘When I sit down to make a sketch from nature, the first thing I try to do is to forget that I have ever seen a picture(스켓치를 하기 위해 밖에 나갔을 때 머리 속에 남아 있는 풍경을 우선 다 지운다)’ 라고 했다. 그림이 사진으로 넘어가는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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