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낭만주의 미술: 고야 (2) 11/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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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6,027회 작성일 11-12-03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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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19 세기 15th hour: Romanticism in Spain

고야는 후기(1800-1829)에 가서 귀가 먹었음에도 왕성하게 활동을 벌려 많은 작품들을 내 놓는다. 스페인 왕실의 공식 궁전화가가 된 고야는 기념비적 초상화 ‘챨스 왕의 가족들 Family of Charles IV’(1800) 을 그리는데 그림 속의 이젤 뒤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 고야는 벨라스케스가 필립4세 가족의 초상화 ‘하녀들La Meninas’(1656) 을 그리면서 자화상을 포함시킨 것을 알고 있었다. 고야는 이상적이고 사실적인 여인상 ‘Dressed Maya(1803)’ 와 ‘Naked Maya(1800)’ 를 그리는데 영감의 원천은 벨라스케스가 그린 ‘Rockeby Venus’ 였다. 고야는 마야라는 여성의 이름을 붙여 누드를 더 이상 신화로 숨기려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19세기 Modernism 으로 가는 길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다.
고야는 친프랑스적 입장은 아니지만 나폴레온이 스페인을 집권하는 시기(1804-14)에 여전히 궁전의 공식 화가이므로 초상도 그리고 일을 한다. 1814년에 스페인 왕가의 Ferdinand VII 가 다시 돌아오고 고야는 왕의 공식적 행사 그림을 그리는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왕실과 고야의 관계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스페인 왕의 입장에서 보면 고야가 고와 보이지 않았기에 페르디난드 7세는 한번도 개인 초상을그리게 하지 않았다. 고야는 말년에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 보르도에 가서 산다.
Francisco Goya, The Second of May 1808 (The Charge of the Mamelukes), 1814, Museo del Prado, Madrid

스페인 왕실이 더 이상 역활을 하지 못 하고 진보 세력은 사회 개혁을 하자고 하지만 왕실은 거부를 한다. 1808년에 나폴레온이 스페인을 침략하고 1804-14년 사이에 나폴레온 형 Joseph 1 세가 통치한다. Mamelukes 는 이집트와 터키의 이슬람 계통의 호전적 기마병사를 의미하는데 프랑스은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을 스페인에 투입시켜 저항하는 시민을 살육한다.
Francisco Goya, The Third of May 1814, 1814 Museo del Prado, Madrid
나폴레온의 형이 와서 스페인을 집권하는 일이 벌어지니 합스브루그 왕가 입장으로는 치욕스런 일이다. 프랑스 군이 진격 해오고 마드리드에서 시민과 대치를 하는 장면의 그림으로 군사들이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죽이는 잔혹한 살육이 벌어진다.

나폴레온의 형이 와서 스페인을 집권하는 일이 벌어지니 합스브루그 왕가 입장으로는 치욕스런 일이다. 프랑스 군이 진격 해오고 마드리드에서 시민과 대치를 하는 장면의 그림으로 군사들이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죽이는 잔혹한 살육이 벌어진다.
Detail
산 뒤로 도심과 교회가 보이고 산등성에서 대치하고 있던 스페인 시민을 잡아서 프랑스 군이 근접 사격을 한다. 총을 쏘는 병사는 얼굴이 없고 칼이 달린 총이 반짝반짝 한다. 당하는 시민은 흰색과 노란색의 옷으로 인해 눈에 뛰며 마치 십자가 예수님 처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고야의 Romanticism 은 선혈이 낭자한 죽은 사람을 축도법foreshortening 으로 그려내고 수도승은 열심히 기도한다. Brushstroke 이 거칠고 즉흥적이며 어떤 부분은 drawing 수준이다. 몇개의 선으로 눈 표정이 나타내고 총칼이 무서워 눈을 가린 시민이 저항한다. 역사화 수준의 큰 캔버스로 깊은 감명을 남긴 그림으로 마네와 피카소도 이 구도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산 뒤로 도심과 교회가 보이고 산등성에서 대치하고 있던 스페인 시민을 잡아서 프랑스 군이 근접 사격을 한다. 총을 쏘는 병사는 얼굴이 없고 칼이 달린 총이 반짝반짝 한다. 당하는 시민은 흰색과 노란색의 옷으로 인해 눈에 뛰며 마치 십자가 예수님 처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고야의 Romanticism 은 선혈이 낭자한 죽은 사람을 축도법foreshortening 으로 그려내고 수도승은 열심히 기도한다. Brushstroke 이 거칠고 즉흥적이며 어떤 부분은 drawing 수준이다. 몇개의 선으로 눈 표정이 나타내고 총칼이 무서워 눈을 가린 시민이 저항한다. 역사화 수준의 큰 캔버스로 깊은 감명을 남긴 그림으로 마네와 피카소도 이 구도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Edouard Manet, Execution of Emperor Maximilian of Mexico 1868, Museum of Fine Arts, Boston
프랑스가 멕시코의 내정에 간섭해 맥시밀리언 황제를 처형하는데 프랑스의 외교 정책에 대한 의문점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당시에 같은 구도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는데 마네가 똑같이 그린다. 1839년에 발명된 사진이 1860년대에 보급이 되어 대중매체 신문과 함께 등장하고 언론의 개념이 형성된다. 19세기에 들어와 Nationalism 이 형성되는데 신문과 같은 저술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나폴레온이 해외원정 하면서 여기 저기 간 곳을 신문에 실으니 프랑스 소식이 계속 국민에게 전해진다. 그전에는 자신이 살던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 였는데 신문을 통해 ‘나는 프랑스인 이다’ 라는 나라 개념이 생기는데 나라는 일종의 imagined community 이다.

프랑스가 멕시코의 내정에 간섭해 맥시밀리언 황제를 처형하는데 프랑스의 외교 정책에 대한 의문점을 나타내는 그림이다. 당시에 같은 구도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는데 마네가 똑같이 그린다. 1839년에 발명된 사진이 1860년대에 보급이 되어 대중매체 신문과 함께 등장하고 언론의 개념이 형성된다. 19세기에 들어와 Nationalism 이 형성되는데 신문과 같은 저술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나폴레온이 해외원정 하면서 여기 저기 간 곳을 신문에 실으니 프랑스 소식이 계속 국민에게 전해진다. 그전에는 자신이 살던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 였는데 신문을 통해 ‘나는 프랑스인 이다’ 라는 나라 개념이 생기는데 나라는 일종의 imagined community 이다.
Picasso, Massacre in Korea 1951, Hwanghae Sincheon 황해도 신천, 1951 Musee National Picasso, Paris

피카소는 고야의 The Third of May 1814 의 구도를 써서 한국전쟁을 주제로 그린다. 당시 피카소는 프랑코 정권에 실망하고 정치적으로 공산주의 입장 이었다. 미군, 한국군이 공산당에 동조한 황해도 신천의 북한 주민을 쏘는 장면 이다.
Picasso, Guernica 1937
게르니카는 스페인의 작은 도시 이름이며 1937년 스페인 내란 중 독재자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다. 그 해 파리만국박람회에 에스파냐관 벽화제작을 의뢰 받았던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을 알리기 위해 한달 반만에 대벽화 게르니카를 완성한다. 오른쪽에 흰색옷을 입고 손을 든 남자는 고야의 The Third of May 1814에서 노란 옷을 입은 남자를 따라 그렸고 또한 왼쪽의 이미지는 피에타의 종교상에서 따왔다. 여러 나라 순회전을 가졌던 이 작품은 뉴욕 모마에 있다가 1981년에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게르니카는 스페인의 작은 도시 이름이며 1937년 스페인 내란 중 독재자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다. 그 해 파리만국박람회에 에스파냐관 벽화제작을 의뢰 받았던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을 알리기 위해 한달 반만에 대벽화 게르니카를 완성한다. 오른쪽에 흰색옷을 입고 손을 든 남자는 고야의 The Third of May 1814에서 노란 옷을 입은 남자를 따라 그렸고 또한 왼쪽의 이미지는 피에타의 종교상에서 따왔다. 여러 나라 순회전을 가졌던 이 작품은 뉴욕 모마에 있다가 1981년에 스페인으로 돌아간다.
Francisco Goya, The Disasters of the War
1808년 시민 봉기를 동조하는 입장을 그린 앨범 시리즈로 aquatint prints 이다. 처음의 47 개는 군인과 시민의 투쟁에 대한 그림이며 48-64 개는 1811-12년의 스페인의 극심한 기근을 주제로 하고 마지막의 17개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진보적인 지식인을 풍자하는 그림이다. 이 앨범 시리즈는 많이 팔려 나간다.

1808년 시민 봉기를 동조하는 입장을 그린 앨범 시리즈로 aquatint prints 이다. 처음의 47 개는 군인과 시민의 투쟁에 대한 그림이며 48-64 개는 1811-12년의 스페인의 극심한 기근을 주제로 하고 마지막의 17개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진보적인 지식인을 풍자하는 그림이다. 이 앨범 시리즈는 많이 팔려 나간다.


19세기의 처참한 현실 이다. 눈이 멀고 팔다리가 잘린 사람이 나무 위에 달려 있다. 사람을 줄에 매어 끌고 가서 묻고 동굴에 가서 쏘아서 죽인다.
Black Painting
정신병력의 history 가 있는 집안의 고야는 귀도 먹고 우울증에 걸리어 요양을 위해 강가에 있는 집 Deaf Man’s House로 1819년에 이사를 간다. 고야는 집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데 이 시기의 그림을 Black Painting 이라 부른다. 죽고 난 후 벽의 그림을 캔버스에 옮긴다.
Francisco Goya, Pilgrimage to San Isidro 1821-23 Museo del Prado, Madrid
샌 이시드로는 순례지로 유명한 곳 이다. 종교를 최고로 알고 맹목적으로 믿는 자들이 지푸라기 같은 희망 이라도 잡으려고 유령 처럼 걸어간다. Brush stroke 도 거칠어져 점점 modern painting 으로 간다.

샌 이시드로는 순례지로 유명한 곳 이다. 종교를 최고로 알고 맹목적으로 믿는 자들이 지푸라기 같은 희망 이라도 잡으려고 유령 처럼 걸어간다. Brush stroke 도 거칠어져 점점 modern painting 으로 간다.
Francisco Goya, Witches Sabbath or Aquelarre, Museo del Prado, Madrid
당나귀 모습의 지도자급 마녀들이 비밀 집회에서 주술을 행한다. 미친 사람 같이 눈이 퀭하다.

당나귀 모습의 지도자급 마녀들이 비밀 집회에서 주술을 행한다. 미친 사람 같이 눈이 퀭하다.
Francisco Goya, Saturn Devouring His Children 1821-23 Rubens, Giant Eating His Baby 1636



제우스의 부모는 giant 족으로서 툭하면 자식을 잡아먹고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데 제우스가 꾀를 써서 부모를 죽이고 헤라 등의 형제들과 힘을 합하여 신국을 만든다. 이전에 루벤스가 같은 주제로 그린 그림이 있다. 늙고 피폐한 노인이 토실토실한 아기를 잡아먹는 끔직한 주제의 바로크 풍경 이다.
고야의 말년의 Black Painting 은 미쳐 날뛰는 정신세계를 보이며 마지막 그림 Saturn Devouring His Children을 그리고 1년 후에 죽는다. 투쟁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고야는 낭만주의 시대를 풍자하며 많은 영향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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