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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로코코 미술: 와토, 부쉐, 프라고나드, 샤르댕 1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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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칵테일 댓글 0건 조회 9,374회 작성일 11-10-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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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미술 18 세기 7th hour: Rococo, The French Taste 
 
 

 
프랑스 로코코 미술   
 
Europe during the Rococo Period, mid 18 C
 
 
17세기 바로크에 이어 18세기는 로코코 미술이라고 불린다. Rococo 는 불어 rocailee 에서 나온 말로 pebble 이란 뜻이다. 올망졸망, 아기자기한 조약돌을 의미 한다. 하지만 당시의 작가들은 거장 미켈란젤로, 루벤스를 따라서 작품을 하였을 뿐 새로운 양식을 창조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1715년 루이 14세가 죽으면서 절정을 이루었던 바로코 시대는 끝나고 루이 15세는 국력을 바탕으로 16년 동안 베르사이유 궁전을 지으며 향락, 사치로 나라를 말아먹는다. 루이 15세의 애인인 퐁파드르 후작 부인 Madame de Pompadour은 베르사이유 궁에서 정치에 관여를 한다. 마침내 루이 16세에 이르러 1789년에 불란서 혁명이 일어난다.
 
17세기 Baroque 미술과 18세기 Rococo 미술을 비교 해보자. 바로크는 고상한 역사적인 주제로 스케일이 크고 남성적인데 비해 로코코는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작고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바로코 미술의 구도는 극적 dramatic 인데 비해 로코코는 흘러가는 바람처럼 복잡하고 아기자기 하다. 문학에 비긴다면 바로크는 serious tragedy 이며 로코코는 comedy 라고 할 수 있다.
 
 
1. Antoine Watteau 1684-1721
 
안토안 와토는 36세로 일찍 죽는데 죽은 후에 명성이 확립된다. 전형적인 working class 집안으로 아버지가 타일을 만드는 사람이다. 아들이 미술에 소질이 있다고 하니까 소개를 받아 파리로 와서 룩상부그 궁전의 그림 collection 을 관장하는 사람을 찾아 간다. 와토는 특히 루벤스 그림을 흠모해서 그림을 보고 배운다. 그 당시 파리에는 Prix de Rome prize 라는 미술상이 있었는데 이 상을 타면 로마로 유학을 보내준다는 조건이 있었다. 와투는 이 상을 타지는 못 하지만 Royal Academy의 정회원이 된다.
 
 
Antoine Watteau, A Pilgrimage to Cythera 1717, Louvre
 
 
와투의 왕립 미술학교 입학을 가능하게 한 그림이다. 아카데미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역사화를 그려야 하는데 와투는 세속적인secular 그림을 그린다. 야외에서 연회를 즐기는 패트 갈랑트fete galante painting (pleasant feast) 장르를 처음으로 만든다. 귀족 취향 aristocratic taste 의 그림이지만 와토의 고객은 귀족이 아닌 돈 많은 부르조아 계급이었다. 와투의 그림은 화려하지만 인생의 덧없음과 슬픔이 담겨있다. 비너스 여신이 산다는 시데라 섬에 stylish 하게 차려입은 귀족 남녀들이 완전한 사랑을 찾아서 온다. 오렌지색 구름이 낀 하늘, 4-5월의 따뜻한 공기, 아름다운 풀밭에 고전적 조각이 서 있다. 귀족 남녀가 쌍쌍이 escort 하면서 연애를 열망하는 사랑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다. 청춘 남녀의 마음을 겨낭하는 상상의 존재 큐피드가 하늘로 뭉게뭉게  날아오른다. 심각한 영웅심, 애국심이 주제가 아니고 한 때의 연애 감정에 도취되는 poetic mood 이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기대감과 흥분이 느껴지는 romantic get away 의 그림이다.
 
 
Nicolas Poussin, Abduction of the Sabine Women 1633-34
 
바로코 시대 푸생의 그림은 근엄한 주제의 역사화로서 와토의 세속적인 그림과 비교가 된다. 와토는 아카데미에서 고전적 training 을 받은 솜씨가 뛰어난 작가이다.
 
 
Antoine Watteau, A Pilgrimage to Cythera, Berlin (Embarkation for Cythera) 1721
와토는 3가지 version 의 ‘시데라 섬으로의 탈출’ 을 그렸는데 루브르, 베를린, 개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다. 1721년에 그린 것은 더욱 감각적으로  로코코 미술을 잘 표현한다. Upper class 의 향연을 주제로 하는 새로운 장르를 fete galante painting 라고 하는데 와투가 시작한다.  
 
 
Detail, A Pilgrimage to Cythera
                     
Brush stroke 이 가볍고 feathery 해서 쓱쓱 그은 듯 뭉게뭉게 소용돌이 무늬가 떠다니는 효과가 난다.
 
 
Antoine Watteau, Mezzetin 1718, Metropolitan Museum, New York
 
음악가가 정원에 고즈넉하게 앉아서 애인을 생각하는 듯 시적인 정취가 난다. 큰 사이즈의 바로크 그림에 비해 로코코는 여성적으로 작은 사이즈이다.
 
 
Antoine Watteau, Fete Venitiennes (Venetian Feast) 1718
 
춤, 향연을 즐기는 베네시안 feast 이다. 고전적 조각이 있는 밤 정원에서 쌍쌍이 연애를 한다. 배우처럼 다른 시대 의상을 차려 입은 사람, 음악이 흐르고 무대 중앙에 있는 여자는 춤추려고 한다.
 
 
Antoine Watteau, Judgment of Paris 1720 Louvre, Paris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파리스가 황금 사과를 주는데 큐피드도 있고 아프로디테의 또 다른 애인이 거울 뒤에서 질투에 찬 눈초리로 훔쳐본다. 사교계에서 쉽게 떠올리는 주제로 이런 그림은 자신의 연애사와 관련 있는 reference 가 된다. 1750년 즈음 부터 그림의 분위기가 향락적으로 변한다.
 
 
Antoine Watteau, Gersaint’s Signboard 1721
 
와토는 36세에 영국으로 그림 수집가를 만나러 갔다가 1721년에 결핵에 걸려 죽는다. ‘제르생의 사인보드’는 죽기 직전에 그린 마지막 그림으로 벨라스케스의 하녀들 La Meninas 와 같은 성격으로 화가의 일생을 되새기는 그림이다. 파리의 유명한 그림 딜러 제르낭의 갤러리에서 귀족남자가 돋보기로 그림을 보고 한 여자는 장식품을 보고 있다. 상자에는 루이 14세의 초상이 들어있다. 가게가 무대 set 처럼 벽이 없게 그렸다. 언뜻 보기에는 귀족 생활을 그린 것 같지만 벽에는 와토가 존경하는 작가의 mythology 그림이 걸려 있으며 화가의 art gallery 를 나타내는 그림이다.
 
 
2. Francois Boucher (1703-1770), Marquise de Pompadour 1759, London, Wallace Collection
프랑소와 부쉐는 화가로 영예를 다 누리고 67-70세 까지 성공적인 일생을 산다. 아버지는 레이스 디자이너 이며 부쉐는 20세에 로마로 가는 상Prix de Rome Prize 을 따고 Academy 멤버가 되고 1734년에 교수가 된다. 1755년에 국왕의 명을 받아서  Royal Gobelins Manufactory의 학장이 되어 자신의 도안을 밑 그림으로 사용하여  tapestry를 만든다. 연극 무대 장식 및 디자인도 하면서 장식미술에 관여한다.
 
Francois Boucher, Marquise de Pompadour 1756, Alte Pinakothek
 
부쉐는  루이 15세의 애인 퐁파드르 후작부인을 사랑스럽고 관능적인 모습으로 그리며 부인은 부쉐의 그림을 좋아하여 중요 후원자가 된다. 정치에 관여할 정도로 똑똑했던 퐁파드르 부인의 책을 읽는 모습을 실제보다 더 예쁘게 embellished그린다. 부쉐는 주로 실내의 은은한 조명 아래서 erotic 한 그림을 그리며 자연의 햇빛을 싫어하여 ‘Nature is too green and badly lit.’ 이라고 했다.
 
 
Francois Boucher, The Toilet of Venus 1751 Metropolitan Museum, New York
와토의 brushstroke 은 안개가 낀듯 하지만 부쉐의 붓질은 사실적이다. 비너스가 몸단장을 하는데 큐피드가 ‘엄마 이것도 해’ 하고 도와준다. 비둘기를 안고 있고 파랑색 커튼이 있다. 로코코 시대가 지향하는 미인의 기준이 전 시대와 틀려진다.
 
 
Jan van Eyck (1395-1441), The Arnolfini Portrait 1434, London National Gallery
 
15세기 르네상스에 얀반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에서는 여자가 배가 많이 나온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18세기에 와서는 소녀처럼 청순하고 부드러운 촉촉한 모습으로 창조된다.
 
 
Hotel de Varengeville 1735, Metropolitan Museum, New York
 
Nicolas Pineau (1684–1754)는 French carver 이며 ornamental designer이다. High Rococo 의 화려하고 비대칭적인asymmetrical 디자인을 창조했다. 호텔의 꽃무늬 장식이 매우 여성적이며 아기자기 하다.
 
 
Francois Boucher, Diana’s Return from the Hunt 1745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는 마구 뛰어다니는 소년 같은 이미지인데 부쉐가 그린 다이아나는 가슴이 크고 erotic 한 분위기를 풍긴다. 귀족 남자가 집 장식을 하기 위해 구입하는 그림으로 누드가 변해서 이렇게 그려진다. 18세기 중반에 들어 귀족문화가 점차 퇴폐적으로 변한다. 
 
French Dress 1765
 
전형적인 로코코 시대 패션이다. 머리 스타일이 올라가고 허리가 잘룩 들어간다.
 
 
3. 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Self-Portrait
 
프라고나드는 그림을 배우기 위해 부쉐를 찾아가는데 너무 바빠서 샤르뎅 Chardin 에게 보내진다. 샤르뎅에게 정물을 배우다가 부쉐에게 다시 돌아와 부쉐의 전통을 이어간다. 1752년에 Prix de Rome Prize 를 타고 로마로 간다. 부쉐는 프랑스 혁명 전에 영화를 누리고 죽었지만 프라고나드는 그림을 한창 그리던 전성기가 혁명 (1789년)과 맛물려 고객층 귀족이 다 사형을 당해 없어진다. 혁명 후에 건전한 취향으로 변하여 신고전주의 그림을 그린다.
 
 
Jean-Honore Fragonard, Coresus et Callirhoe 1765
 
프라고나드는 로마를 다녀 온 후 이 그림으로 history painter 로서 아카데미의 멤버가 된다. 부쉐보다 soft, casual 하고 밝은 brushstroke 을 사용한다. 이 그림은 왕이 구입을 하고 Gobelins Factory 에서 tapestry 로 카피를 만든다. 이후에 프라고나드는 곧바로 쾌락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돈을 많이 번다. 
 
 
Jean-Honore Fragonard, Bathers, Louvre 1765
 
구름 같이 뭉게 떠다니는 분위기가 부쉐의 그림 풍과 가깝다. 
 
 
Jean-Honore Fragonard, The Swing 1767 London, Wallace Collection
 
 
프라고나드의 제일 유명한 그림이다. 패트 갈랑트fete galante 장르화와 비슷한 erotic 한 풍으로 왕녀가 사랑에 빠지려고 작업을 거는 flirting 중이다. 하인인지 누군지 성직자 복장의 늙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열심히 그네를 밀어주는데 여자는 신발을 toss 하며 추파를 던진다. 그네 밑에는 젊은 남자가 모자를 벗어 들고 있는데 여자의 치마 밑이 보인다. 여자는 그네 미는 남자의 mistress 일 수도 있다. 정원에 서 있는 조각이 ‘쉬’ 하고 나무 사이에 큐피드가 있다. 그림을 보면서 당대인은 자기의 연애사와 A양, B모양의 3각 관계 gossip 을 떠 올린다. 분홍색 장미와 반짝거리는 분홍색 옷이 사랑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날라가고 살짝 벗겨진 슬립퍼, 스타킹 끈, 모자 밑의 음탕한 눈초리, 밀고 당기고 하는 연애의 Swing 이다. 사랑이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로 18세기 조선 화가 신윤복의 그림이 연상이 된다.
 
 
Jean-Honore Fragonard, Lover Crowned 1771-3 Frick Collection
 
이테네의 신화의 여신이 그리스 영웅에게 선물로 올리브 관을 올려주는 motif 를 인용하였다. 남자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막 연주했고 여자가 왕관을 쓰여주며 사랑이 성취 되었다.
 
 
Jean-Honore Fragonard, The Stolen Kiss 1766
사실적이며 brushstroke 이 무거운 장르 painting 과 비슷하다. 젊은 남녀가 헤어지면서 키스를 하는데 여자의 옷 차림이 관능적이다.
 
 
Jean-Honore Fragonard, On the Topic of Love, Series 1771
 
정원의 동상 밑에서 여자가 살피고 있고 기다리던 정부가 사다리를 타고 찾아온다.
 
 
Jean-Honore Fragonard, Girl Making a Dog Dance on Her Bed 1760
 
표면적으로는 여자애가 개를 데리고 노는 순수한  장면이지만 무척 sensual 한 그림 아다. 18세기 중반에 들어 귀족들의 퇴페적인 문화가 팽배했고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Vigee Le Brun, Madame de Barry 1781                                  1789-1805
                      
루이 15세의 마지막 애인 mistress 베리 부인으로 혁명 때 목이 잘린다. 재봉사인 엄마는 미인으로서  귀족 애인 집에서 사생아인 잔베퀴를 데리고 얹혀 산다. 잔베퀴는 15세 까지 수도원 학교를 다니고 20살 쯤에 Barry 라는 남자와 결혼 한다. 기둥서방 Barry 는 잔베퀴에게 창녀일을 시키면서 귀족을 상대하는 고급 창녀high class courtesan로 만든다. 잔베퀴는 베르사이유 까지 진출하여  왕의 애인이 된다. 후궁이 되려면 신분이 있어야 하므로 작위가 있는 귀족인 Barry의 형과 결혼하여 Madame de Barry 가 된다. 
 
 
4. Jean-Simeon Chardin, Self-Portrait 1699-1779
 
와토, 부쉐, 프라고나드로 이어져서 로코코 양식의 계보가 내려오고 부쉐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샤르댕은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는다. 샤르딩은 햄, 소세지 등을 그리는 정물화와 일반 사람을 소재로 하는 장르 페인팅을 그리는데 루이 15세가 풍속화 같은 샤르댕의 그림을 좋아하여 나중에는 왕의 전속 화가가 된다. 샤르댕은 프랑스 혁명의 주체가 되는 중산층 부르조아 계층을 주제로 삼고 도덕적인 면을 그림에 내포한다.
 
 
Jean-Simeon Chardin, The Ray 1728
프랑스 Royal Academy 의 멤버가 되기 위한 출품작이다. 음식을 늘어넣는 네덜란드 풍의 정물화로서 가오리가 주제이다. 반짝이는 생선의 배, 음식을 노리는 고양이 눈, 굴 등이 마치 시장에서 막 돌아와 주방에 던져 놓은 듯한 소박한 테이블이다. 루이 15세가 이 그림을 사면서 친밀한 자연적 묘사라고 찬사를 보낸다.
 
 
Jean-Simeon Chardin, Back from the Market 1739
                   
Genre painting(풍속화)이다. 하녀 쯤 되는 여자가 흰색 분이 날리는 딱딱한 빵을 내려놓고 시장 갔다 오면 빠질 수 없는 품목인 닭이 바구니에 있는데 다리가 삐져 나온다. 벨라스케스의 노란색 도는 물항아리가 연상되는 와인 병이 있고 다른 하녀가 뒤에 지나간다. 햇빛이 밝게 비치면서 하루가 시작되는데 노동이 즐거운 듯 하다. 네덜란드의 장르 페인팅이 거래를 통해 퍼져서 프랑스로 간다.
 
 
Chardin, Grace at Table 1740                                                       
                      
전형적인 브루조아 가정의 엄마와 두 딸이 음식을 먹기 전에 식사 전 기도Grace를 한다. 깨끗한 옷, 잘 다려진 앞치마, 정갈한 린넨 등은 도덕적인 삶을 암시한다. 18세기 당시에는 childhood 에 대한 개념이 아직 없어서 아이들의 노동 및 부모의 용인 하에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허다 했다. 프라고나드의 ‘개와 노는 소녀’에서 어린 소녀가 이런 식으로 취급되던 시대에 샤르댕의 ‘식사 전 기도’ 는 눈에 보기 좋게 미화된 그림이며 루이 15세는 샤르댕의 풍속화를 보면서 백성들이 이런 모습으로 도덕적으로 사는 줄 안다.
 
 
Francois Boucher, Venus 1751
 
비록 자신은 베르사이유에서 그림의 누드를 즐기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지만 루이 15세는 샤르댕의 풍속화를 보면서  나의 통치 하에 도덕적인 크리스챤 처럼 백성이 산다는 생각을 하며 만족해 한다. 그림을 통해 남의 생활을 엿보는 관음적 voyeurism 현상이다. 샤르댕의 쟝르 페인팅은 부쉐의 관능적인 그림과 같이 18세기에 공존하고 있었다.
 
 
독일, 오스트리아의 로코코 미술
18세기의 로코코 양식은 프랑스가 주류이며 독일, 오스트리아에도 일순간 조금 유행한다. 독일은 19세기 중반까지 독립국가로서의 세력이 없었고 18세기에는 도시 중심의 영주가 세력을 펼치고 있었다. 이탤리안 바로크 스타일이 프랑스식 로코코와 절충이 되어 독일에 유행하였다.
 
 
St. Charles Borromaeus, Vienna 1716-37
 
완전한 반원이 아니고 타원형 비슷하게 늘어진 곡선이 바로크적이며 18세기로 내려오면서 로코코 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식 바로크로 진행되면서 선이 가늘고 세련 되어진다.
 
 
Kaisersaal Residenz Wurzburg Germany 1719-44
 
비르즈부르그의 영주가 좋아한 성이다. 금도금, 마블, 방 전체가 타원형이다. 바로크 양식을 따르지만 시대로 보면 로코코이다. 티에폴로 Tiepolo 가 천정의 가운데 있는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Die Wies, Upper Bavaria, Germany 1757
 
이탈리아의 장식적인 바로크 말기의 로코코 디자인이 독일로 퍼진다.
 
 
Giovanni Battista Tiepolo, Ceiling Fresco, Kaisersaal Residenz, Wurzburg Germany 1751
 
이탤리안 로코코 페인터 티에폴로는 독일에 가서 작업을 한다. 축도법을 써서 밑에서 우러러 보는 시점으로 말의 배가 보인다.
 
 
Giovanni Battista Tiepolo, Marriage of Frederick Barbarossa 1752
 
(The Wedding of Frederick Barbarossa c.1123-1190 to Beatrice of Burgundy in 1156) 여왕이 주교 앞에서 결혼 맹서를 한다. 아름다운 에메랄드 색의 하늘색 옷이 티션의 그림 같기도 하다. 눈속임의 대가인 티에폴로는 대부분 천정 그림을 그린다.
 
 
Canaletto, The Bucintoro at the Molo 1732
 
베니스 운하 canal 를 많이 그리는 운화 전문 작가이므로 Canaletto 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우리가 오늘날 보는 관광 엽서의 구도를 잡아낸 사람이다. 18세기 유럽인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공부하고 이태리 화가 바자리Vasari의 전기 Lives of the Most Eminent Painters, Sculptors, Architects (1550) 를 읽고 고무되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다. 비즈니스 혹은 관광으로 오는 영국 귀족들은 멋진 베니스 풍경을 기념품으로 사므로 비슷한 구도로 카피를 많이 그린다. 산 마르코 교회의 종탑, 비둘기, 가장 오래된 카페가 보이고  광장에는 산마르코 성인의 동상이 있고 도제가 살던 집 앞에 parade 하는 곤돌라가 보인다. 베니스 귀족들의 사치가 가열되어 곤돌라를 너무 장식을 하니 도제가 법을 만들어 가문의 문장 정도만 허용하고 곤돌라를 까만색으로 칠하라고 명한다.
 
18세기에 로코코 미술 양식이 귀족과 부르조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사회, 경제적인 변화가 많이 일어난다. 귀족 문화가 퇴폐함에 따라 계몽주의 사회 개혁의 움직임이 일어나며 다가오는 19세기는 혁명으로 엄청난 갈등의 시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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