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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아우구스투수 황제 시대 11/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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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10,229회 작성일 12-12-0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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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미술 Ancient Art 12th hour: Emperor Augustus and Imperial Sculpture 아우구스투수 황제와 로마제국 조각  
 
 
 
 
 
로마는 팽창을 거듭하여 기원전 1-2 세기에 제국의 면모를 갖춘다. 카르타고와 포에니 전쟁 (일차264BC, 이차241BC)을 벌여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를 식민지로 만든다. 기원전 8 세기 경에 그리스 식민지 였던 시라큐스Syracuse를 점령하여 (212BC) 헤라 신전 등 그리스 유물을 발견한다. 이 때부터 로마인은 완벽한 조화, 대칭, 이상적 미를 가진 그리스 미술에 눈을 뜨고 열정적으로 작품을 만든다.   
 
 
 
 
Emperor Augustus 27 BC-14 AD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아우구스투스가 27 B.C에 초대황제가 되어 로마제국Roman Empire 이 시작된다. 기원전 3세기 경 로마 공화정 사람들은 농사 지으며 전쟁 및 영토 확장을 하느라고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로마제국에 들어와 공화정의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서 황제와 황제 가족을 영웅화 하는 색다른 미술 스타일이 나타난다. 그리스 미술의 영향으로 이상화된 아름다움 idealized beauty 과 완벽한 조화를 추구한다.
 
로마는 토목공학 및 건축이 발달되었다. 식민지 개척시 군사 및 물자 수송을 위해 길을 먼저 닦고 전쟁을 한다. 헝가리를 정복하러 Darcian War 를 벌리는데 엔지니어를 불러 수레가 건너갈 다리를 먼저 만들고 다뉴브 강을 건넜다. 한번 수레가 지나가면 길이 생긴다.
 
 
 
 
 
Pax Romana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여러 식민지에서 보낸 물자로 인해 제국은 자원이 풍부해진다. 기원 후 2 세기 경 mass produce 가 발달되어 그리스 조각을 몇백개씩 카피하여 로마 전역에 전시한다.  Roman forum, market place, public bath, theater, temple, basilica, public monument 에 그리스 조각 카피가 쫙 깔린다
 
 
 
 
 
 
Scenic Canal, Hadrian's Villa at Tivoli 130-138 CE (헤이드리안 빌라, 티볼리, 이태리)
 
 
시골에 짓는 집을 빌라villa 라고 한다. 로마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티볼리 마을에 헤이드리아스 황제의 시골 집이 있다. 온천이 있어서 황제들의 휴양지 이다. 연못가에 있는 빌라에 고린도식 주두가 있고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들을 카피하여 기둥 사이에 세웠다. 리시포스가 만든 헤라클레스,  피디아스가 만든 아프로디테, 포세이돈 등 누구나 알아 볼 수 있는 조각들 이다. 2세기 정도에 엄청난 양의 그리스 조각 카피가 도시 전역에 깔린다.
 
 
 
 
 
 
Copying Greek Sculpture The Triangulation Process 삼각법
 
 
로마인들은 삼각법을 사용하여 그리스 조각들을 똑같이 카피했다. 삼각법은 현대에 측량을 할 때에도 쓰인다. 세 꼭지점을 정하여 각각 위치를 정하고 관계를 잰다. 먼저 평면의 비율을 재고 그다음에 깊이, 볼륨감을 재어 입체 조각을 만든다. 이마에서 가슴 까지의 굴곡, 각도 관계를 콤파스를 이용하여 수백번 재면서 점을 찍으며 모양을 잡는다. 그리스 식민지에서 데려온 숙련공 노예를 시켜 만든다.
 
 
 
 
 
 
Villa Hadrian, Tivoli (헤이드리안 빌라, 티볼리, 이태리)
 
 
청동 그리스 조각을 석고로 본plaster 를 뜨고 본에 맞추어 hallow plaster cast 를 만든 다음 대리석으로 베낀다. 조직적인 제작 과정을 통해 하나가 만들어지면 수십개 카피를 만들어 로마 제국 곳곳에 보낸다. 동시에 시리아 이집트 등지에도 보낸다.

 
 
 
 
 
 
Villa Hadrian, Tivoli (헤이드리안 빌라, 티볼리, 이태리)
 
대리석으로 모조한 조각이라서 지지대struts(support)가 필요하다. 대리석은 무거워서 잘 넘어진다. 청동조각은 금속이라 견고resilience 하고 속이 비어서 지지대 없이 서 있을 수 있다.
 
 
 
 
 
 
Villa Hadrian, Tivoli (헤이드리안 빌라, 티볼리, 이태리)
 
나뭇가지, 바위, 큐피드 조각 등 context 에 어울리는 지지대를 넣는다.
 
 
 
 
 
 
Statue of a Wounded Amazon, Villa Hadrian, Tivoli, 1-2nd C AD, marble, Roman Copy of a Greek bronze Statue 450-425 BC (상처입은 아마존, 하드리아누스 황제 빌라, 티볼리, 이태리)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빌라 연못가에 상처입은 아마존Wounded Amazon 조각이 있다. 고전기 그리스 미술의 우아한 전형을 잘 보인다. 콘트라포스토 자세에 나뭇가지로 보이는 supporter 가 있다.
 
 
가슴 밑으로 피가 떨어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지만 처연한 모습으로 죽어간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완벽한 미를 추구하는 고전기 조각이다.
 
 
상처입은 아마존 조각은 뉴욕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그리스 로마관의 가운데 홀에 있다.  
 
 
 
 
 
 
Trojan Archer from the west pediment of the Temple of Aphaia on Aegina, color reconstruction (트로이 사수, 아파이아 템플, 아애기나)
 
 
그리스 로마 조각들은 원래 아주 화려한 민속미술처럼 채색이 되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색이 벗겨졌다. 그리스 조각들이 우아한 흰색 이라는 관념은 19세기 신고전주의가 만들어 낸 로맨틱한 아이디어이다. 아파이아 템플은 마치 일본 절의 단청처럼 알룩달룩해서 멀리서도 잘 보였다.
 
 
 
 
 
 
 
Head of Caligula, color reconstruction(칼리귤라 황제의 초상)
 
 
칼리귤라 황제의 초상조각도 처음에는 색이 화려하게 들어가 있었다. 중세 성당에도 알룩달룩한 인형 같은 성상들이 서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색이 벗겨져 오늘날과 같은 흰색에 가까워졌다.
 
 
 
 
 
 
 
Augustus of Primaporta, Roman copy of a statue of 20BC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기원전 1 세기에 제국의 체제를 확립한다.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황제(63BC-14AD)는 근동의 파르티아Parthia를 물리치고 돌아온다. 황제의 전승을 기념하는 조각이 20BC에 만들어진다. 황제 사후에 리비아Livia 왕비가 조각을 복제하여 빌라를 장식한다. 로마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마을 프리마포르타에 있는 황제 가족의 별장에  초상 조각이 놓인다.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우월한 자 라는 뜻이다. 당시에 로마 캘린더를 복원하고 있었는데 황제가 태어난 달 8월을 August 라고 이름한다.
 
 
 
 
 
Augustus of Primaporta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로마 공화정 초기 사실적인 초상과는 많이 달라진다. 공화정 시대에는 농부/군인의 짧은 military hair cut 이 유행했다. 제국 시기에는 얼굴이 돋보이는 사치스런 긴 머리로 변모한다. 도리푸로스 (창을 든 남자)와 같이 우람한 몸에 가슴 근육이 드러나는 코르셋 같은 갑옷cuirass를 입고 있다. 황제와 닮기는 했지만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영웅의 모습이다. 콘트라포스토 자세이며 높이는 실제 크기보다 더 큰 7 feet 정도이다.
 
 
 
 
 
Augustus of Primaporta Breast plate of the Emperor's Cuirass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갑옷)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업적을 새긴 조각이 갑옷에 있다. 치마를 입은 황제가 파르티아Parthian 적장에게서 항복의 상징 횃불을 건너 받는다. 마차를 탄 태양신 솔 인빅터스Sol Invictus, 밤의 여신 오로라Aurora, drapery 를 든 하늘의 왕 카일루스Caelus - 로마 신의 가호 아래 황제의 전승이 이루어졌다.
 
 
스페인을 의인화(personification of Spain)한 남자가 앉아있는데 스페인을 이겼음을 의미한다. 여러 인물들이 황제의 업적을 꾸미는 수사학적인 rhetorical 도구로 등장한다. 제국주의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개인의 영웅화 미술이다. 시각 문화가 풍부해진다.
 
 
 
 
 
Augustus of Primaporta, Cupid (프리마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큐피드)

 
돌고래를 타고 있는 큐피드 지지대는 바다에서 태어난 비너스와 관련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쥴리어스 시저의 양자이다. 줄리어스는 비너스에게 바치는 Temple of Venus Genetrix를 짓고 비너스의 후손이라고 자신을 특화시킨다. 대중적인 공화정 분위기에서 줄리어스는 미움을 받고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한다.
 
아우구스투스는 양 아버지의 비너스 계보를 쫒아서(divine lineage of the Julius Caesar family to Aeneas and Venus) 큐피드 조각을 넣는다. 돌고래는 황제권을 잡은 중요 전투 악티움 Actium 해전을 뜻하기도 한다. 사실적인 아기 얼굴의 큐피드는 20BC에 태어난 아우구스티스의 손자 가이우스 Gaius 라는 의견도 있다.
 
 
 
 
 
Doryphorus, Polykleitos (도리포러스, 폴리클레이토스)
 
 
그리스 조각 창던지는 남자는 heroic action 자체를 보여준다. 하지만 로마 조각은 황제의 개인적 업적을 보이며 다른 많은 요소들을 끌고 온다. 공화정시기의 진실된 초상 조각 전통에서 벗어난다. 그리스 이상적인 미와 결합하여 도리포로스의 우람한 몸을 가져온다. 다른 세부 요소들을 끌고와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로마식 전통을 확립한다.

 
 
 
 
 
 
Ara Pacis Augustus West Facade 13-9 BC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의 제단, 아라 파키스)
 
아우구스투스황제 때 지은 평화의 제단 아라 파키스는 야외 원형 광장Field of Mars에 세워졌는데 나중에 건물을 지어서 안에 모셔 놓는다.
 
 
 
 
 
Field of Mars reconstruction by Buchner 1976 (야외 원형 광장)
 
아라 파키스는 Field of Mars 광장에 있었는데 여기에서 로마에 평화를 가져다 주는 신 쥬피터, 주노에게 제전을 지낸다.
 
 
 
 
 
Ara Pacis (Altar of Peace) 13-9BC, marble (아라 파키스 장식 패널)
 
 
 
 
 
평화의 제단 아랫 부분은 식물형 문향이 있다. 로마는 원래 신전에 조각 장식을 붙이지 않는데 그리스에게 배워서 외벽에 많은 장식을 한다. 고대 그리스식 조형언어를 사용한다. 벽에 붙어있는 기둥에 고린디안식 주두 장식이 있다.
 
 
 
 
 
Allegorical and Ornamental Panels of the Ara Pacis (아라 파키스, 장식 패널)
 
풍만한 대지의 여신 Mother Earth 이 젖을 먹이고 있다. 곡식의 여신, 바람의 신이 도와서 만물이 잘 자라 아름다운 로마가 형성된다. 닮은 얼굴 조각만 신경을 썼던 방식에서 벗어나 수사학이 발달한다. 배경, 맥락, 분위기, 세부를 꾸미고자 하는 욕망이 어우러져 로마의 문화가 서서히 바뀐다.
 
 
 
 
 
Ara Pacis detail, Agrippa Gaius Julia Livia (아라파키스, 아그리파, 줄리아, 리비아)
 
 
로마의 평화가 황제 아우구스투스 덕분에 만들어졌다는 평화의 제단이다.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황제의 가족imperial family 행진하는 조각상이 프리즈에 들어있다. 베일을 우아하게 쓴 여자가 황제의 딸 줄리아나로 추측하며 옆에는 보좌관 및 사위 아그리파Agripa, 가운데는 손자 가이우스Gaius 라고 한다.
 
 
 
 
 
Imperial Procession, frieze Ara Pacis (황제 가족 행진, 아라 파키스 프리즈)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행렬 모습을 본딴다. 고전기 양식으로 고요하게 걸어가는 모습이다. 로마인의 옷 토가를 입혔고 몸은 3/4 관을 보인다. 초상을 만드는 전통이 있는 로마인은 익명의 얼굴로 두지 않고 알아볼 수 있게 조각을 하여 후대 학자들이 이름을 밝혀낸다. 로마식 변형이 들어가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파르테논 신전의 조용한 행렬을 따온다.
 
 
 
 
황제의 중요한 가족들은 깊이가 두꺼운 부조로 표현된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얇은 얼굴만 겹겹이 나온다.
 
 
 
 
 
베일을 쓴 여자가 황제의 딸 쥴리아나가 아니면 왕비 리비아 라고 생각된다. 두 조카딸 Antonia the Younger, Antonia the Elder 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행진 조각들은 파르테논 신전 조각처럼 우아하다.
 
 
 
 
 
손자 가이우스가 가운데 있다. 아라 파키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우아한 고전미를 보여주는 중요 작품으로 꼽힌다. 로마시대에는 기념물이 많이 들어서는데 정치적 적대적 상황에서 많이 부수기도 한다. 로마 제국은 3대가 계속해서 왕이 된 적이 없다. 왕의 아들이 무능하고 능력이 있는 자가 전승을 하면 유능한 장군에게로 왕위가 넘어간다.
 
 
 
 
 
Arch of Titus Rome 81CE (타이투스 황제 아치, 로마)
 
 
타이투스 황제의 전승 기념탑이다. 로마시대에는 개선문을 많이 만들었다. 공화정 시대는 개인이 튀는 것을 삼가는 분위기였으므로 요란한 개선문은 별로 없었다. 제국 시대는 황제가 모든 권한을 가져 거칠 것이 없었다.
 
 
 
 
 
Arch of Titus Rome 81CE (타이투스 황제 아치, 로마)
 
 
타이투스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 개선문 및  여러 신전이 로마로 들어오는 길 Sacred Way 에 있다. 전쟁에서 살아온 것을 감사를 드리면서 이 길을 따라 로마로 들어온다. 개선문을 만드는 전통이 로마시대에 확립된다. 초기에는 겸손해서 밖에는 조각이 없었다.
 
 
 
 
 
 
Arch of Titus Rome 81CE (타이투스 황제 아치, 로마)
 
기록을 중요시하는 로마인은 건물 외벽에 음각으로 새긴 글자inscription을 집어 넣는다. 로마 시민과 원로원이 타이투스 황제의 전승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명문 내용이다. 이 전통이 신고전주의 까지 이어져 맨하탄 월스트리트 시티홀 주변 건물 외벽에 글자가 새겨져있다. 밖에는 조각을 하지 않았지만 통로에 조각을 한다. 터널형 구조물의 엄중한 구조이다.
 
 
 
 
 
 
Larc de triomphe, Paris (개선문, 파리)
 
파리에 있는 개선문은 나폴레온의 프러시아 전승을 기념하는 신고전주의 기념물이다. 사이즈가 커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간다.

 
 
 
 
 
Spoils from the Temple in Jerusalem relief in passageway of the Arch of Titus, Rome 81AD marble (타이투스 황제 아치, 예루살렘 신전에서 가져온 전리품 부조, 로마)
 
 
타이투스 황제 아치 통로 안쪽에 새겨진 조각 중의 하나이다. 로마 사람들은 조각 자체보다도 이야기 전달에 더욱 신경을 썼다. 유태인의 대 성전을 무너뜨리고 촛대를 싣고 온다. 여러 명이 겹쳐서 활기차게 걸어오고 바람에 휘날리는 옷주름이 생동감이 있다. 원래는 채색이 되었다.
 
 
 
 
 
 
촛대 하나만 보아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것을 단번에 알아본다. 로마는 여러 전쟁에서 금부치를 엄청 싣고 와서 신전에 바친다. 신전은 전리품을 쌓아두는 창고 기능을 하여 견고하게 문을 잠그어 두었다.  
 
 
 
 
 
 
Relief in bay of Arch of Titus from the Temple in Jerusalem, Rome 81AD(타이투스 황제 아치, 예루살렘 신전 부조, 로마)
 
한 무리의 군인은 개선문을 막 통과해서 지나고 있고 그 뒤에 황제가 지휘를 하고 트럼벳을 부는 군인들이 따라간다. 개인의 영웅화가 나타나고 이야기 전달에 촛점을 두어 생동감이 있다.
 
 
 
 
 
 
Arch of Titus 81AD (타이투스 아치)
 
 
타이투스황제가 로마 제국에서 가장 호화로운 사두마차를 타고 간다. 중첩이 되어 깊이감이 있다. 말들을 대각선으로 배치해서 4마리가 다 보인다. 우람한 남성미 넘치는 호위병들이 대단한 황제를 보호한다. 조각을 꾸밈이 목적이 아니라 활동감 있는 이야기 전달이 로마 미술의 특징이다.
 
 
 
 
 
 
Column of Trajan, Rome 106-113C (트라쟌 칼럼, 로마)
 
 
조각이 있는 기념물이다.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물들은 잘 남아 있다. 원래 로마 황제들은 청동으로 거대한 초상 colossally (콜로서리) 을 만들었는데 다 녹여서 남아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꼭대기에 있는 상이 콘스탄틴 대제 라고 여겨서 이 조각이 그나마 살아남았다. 르네상스시기에 트라야누스 대제임이 밝혀지며 그때 피터 성인상을 만들어 탑 위에 올린다.
 
로마 제국 말기는 기독교 박해로 인하여 기독교 성상을 다 부시는 분위기 였다. 된다. 기독교가 용인되기 전에는 로마 황제들이 조직적으로 성상을 붕괴시켰다. 또한 기독교인 박해를 심하게 한 네로 황제의 기념물들은 다 부서진다. 칼리귤라, 호모로스 등 악덕한 황제의 개선문은 조직적으로 파괴가 된다.
 
 
 
 
 
 
Column of Trajan, Rome 106-113C (트라쟌 칼럼, 로마)
 
 
불가리아 헝가리에 가서 다시안 전쟁Dacian War을 승리하고 돌아온 트리야누스 황제를 축하하기 위한 칼럼이다. 나선형 띠에 마치 전쟁 기록화를 그리듯이 낱낱이 조각으로 그렸다. 7년이 걸린 125 feet 의 탑이다. 트리아누스 황제가 만든 광장 Roman Forum 의 한 가운데 놓여 있었다.

 
 
 
 
 
Column of Trajan 106-113C (트라쟌 칼럼, 로마)
 
 
잘 알려진 대규모 전쟁이라 사람들이 조각의 내용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밴드가 크고 채색이 있어서 잘 보였고 전망대가 옆에 있었을 것 이라고 추측한다. 칼럼 안에 들어가면 계단 및 통로가 있다. 엔지니어(Apollodorus of Damascus) 를 데리고 가서 다뉴브 강Danube River 을 건너는 다리를 지으면서 다시안 전쟁을 했다고 한다.
 
 
 
 
 
 
Lower Portion of the Column of Trajan, Rome 106-113CE (트라쟌 칼럼 밑부분, 로마)
 
 
다시안 전쟁을 시작한다. 바다의 신 넵튠Neptune 이 지키는 가운데 배웅을 받으며 군인들이 출정한다. 군사들이 줄을 서 있고 성벽 다리를 만들고 배도 건조하면서 지나간다. 적과 싸우는 것은 별로 없고 건축 현장같은 느낌을 준다.
 
 
 
 
 
 
Column of Trajan, lower portion (트라쟌 칼럼 밑부분, 로마)
 
지휘관이 서서 지시를 하고 성을 쌓고 배를 저어서 간다. 적들의 모습 보다는 로마 병사들이 일하는 장면이 주로 조각에 나타난다.
 
 
 
 
 
 
 
Column of Trajan, Inscription (트라쟌 칼럼, 명문, 로마)
 
기단 부분에 명문이 들어간다. 로마원로원과 시민들이 트라야누스 황제의 업적을 위한 칼럼을 만들라고 했다는 기록이 적혀있다.
 
 
 
 
 
 
 
Column Trajan, Antoninus Pius and Faustina (트라쟌 칼럼, 안토니우스 파이우스와 파우스티나)
 
 
작은 규모의 부조이긴 하지만 입체 조각 같은 분위기가 난다. 안토니너스 파이우스 황제와 황제비 Faustina 이다. 로마의 공식 종교는 천체를 관장하는 쥬피터, 주노 신과 그리스 로마 고대 신들이다. 2세기 경 황제 숭배 문화가 새롭게 생기고 로마 황제는 죽고 나면 신격화 되어 하늘로 승천(Apotheosis 아포씨오시스)한다고 여겼다. 아테나 여신이 보는 가운데 황제와 황제비가 날개있는 신의 가호를 받아 하늘로 승천하는 조각이다.
 
 
 
 
안토니우스 황제 시절에 많은 그리스 복제품이 만들어지며 로마제국의 고전기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만신전 판테온이 이 시기에 만들어진다. 2세기 중엽이 정점이고 이 시기가 넘어가면 창의성이 줄어든다. 3 세기에 가면 실력이 도태된다. 장인들이 예전처럼 부지런하게 일하지 않고 드릴 종류의 기계를 만들어 도구에 의존한다.  기술technicality 적인 면은 뛰어나지만 이전의 아우구스티스 황제 및 안토니우스 황제 시대 처럼 고전미와 절제미가 있는 작품들은 나오지 않는다.
 
 
 
 
 
 
 
Meleager Sarcophagus 180 CE 밀리에가의 석관

로마 황제 가족들의 숭앙 분위기가 극에 달하자 그 밑에 있는 잘 사는 로마 평민들은 자신을 영웅화 하는 석관을 만든다. 화장을 하던 장례 풍습이 200 년 내려 오면서 바뀌어 매장을 한다. 이집트 등지 의 매장 문화 및 기독교의 영향이라고도 한다. 예수님이 기원 후 1- 33년에 오시는데 기독교의 영향이 점차로 퍼진다. 재림시second coming 몸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에 몸을 보존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뀐다.
 
 
 
 
 
 
매장 방식이 화려해져서 조각이 있는 관에 사람을 묻고 가족의 공동묘지에 전시한다. 초상조각의 전통이 남아있어 죽은 자의 얼굴을 넣는다. 공방에 가서 원하는 주제를 말하면 샘플을 보여준다. 멧돼지를 죽인 젊은 영웅 밀리에가는 mortal 한 인간이기에 죽는데 사람들이 너무 슬퍼한다.
 
 
 
 
 
 
밀리에가 얼굴 대신에 죽은 자의 초상조각이 들어간다. 부모님의 초상 조각에 비너스와 아도니스 샘플을 주문하여 어머니와 아버지 얼굴이 대신 들어간다. 비너스는 미소년 아도니스를 사랑하여 신과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 사냥에 나간 아도니스는 죽고 비너스는 너무 슬퍼한다.
 
 
 
 
 
 유능한 사냥군 밀리에가는 신의 질투를 받아 사냥을 나가서 죽는데 친구들이 거두어준다. 친구들의 모습에 친척의 얼굴을 넣어준다. 황제 가족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자신들의 glorification 을 위해 이런 초상 조각을 만든다. 2 세기 말 정도에 나온 손작업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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