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루리아 미술 11/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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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7,594회 작성일 12-11-2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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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미술 Ancient Art 10th hour: Etruscan Art
Hellenistic Greek Painting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회화
The Abduction of Proserpine, detail of a wall painting in Macedonia, 340-330 B.C. (페르세포네의 납치, 마세도니아)
고대 그리스의 헬레니즘 시기 작품은 극적이며 격양된 감정을 표현한다. 변방 마케도니아 지방의 이름 모를 사람의 무덤에서 나온 벽화이지만 (discovered in 1976) 그림의 수준이 상당하다. 문화 중심부인 아테네, 델파이 등의 피나코테카(gallery)에 걸었던 그림은 이를 능가했을 거라고 짐작된다. 프레스코fresco 테크닉으로 벽에 석회가루를 발라 표면을 평평하게 하고 석탄 목탄 가루로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입힌다.
The Abduction of Proserpine, detail of a wall painting in Macedonia, 340-330 B.C. (페르세포네의 납치, 마세도니아)
주제는 무덤 이야기underworld 이다. 지하의 신 하데스Hades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의 딸 페르세포네Proserpine를 납치하는 장면이다. 음습한 지하에 사는 하데스는 우연히 페르세포네를 보고 지하 세계를 밝게 하고자 그녀를 납치한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전차에 태워가는 장면을 본 님프들은 데메테르여신에게 말해주고 테메테르가 울면서 제우스에게 따지자 제우스는 중재에 나선다. 대지의 여신이 슬픔에 잠겨 농업활동이 일어나지 않으니 일년에 반은 페르세포네를 지상에 돌려달라고 하데스에게 부탁한다. 이리하여 지하, 지상에서 반반씩 사는 페르세포네에 의해 계절이 시작된다. 딸이 지상에 있는 동안은 대지의 여신이 기분이 좋아 일을 하여 꽃도 피고 비도 오지만 딸이 없는 반년은 우울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겨울, 초봄이다.
The Abduction of Proserpine, detail of a wall painting in Macedonia, 340-330 B.C. (페르세포네의 납치, 마세도니아)
서구 미술의 근간이 되는 테크닉은 환영법illusionism 이다. 기원전 4 세기 중엽에 지방 화가의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축도법, 원근법, 명암법을 이용해 illusionism을 잘 표현했다. 하데스 얼굴과 페르세포네의 가운에 음영이 들어간다. 야성적인 하데스가 도망치려는 페르세포네의 휜 몸을 감싸안고 땅이 갈라지면서 지하 세계로 막 들어간다. 마차의 타원형의 바퀴에서 축도법 foreshortening 이 보인다.
Battle of Issos or Battle of Alexander the Persians, ca. 100 B.C. (Roman mosaic copy from Pompeii of a Hellenistic painting of 315 B.C. (이소스의 전투, 혹은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인의 전투)

고대 그리스 회화는 나무 패널에 그렸으므로 전쟁 중에 손실이 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소스의 전투는 유명한 그림이라 카피가 많이 만들어진다. 로마 시대에 와서 폼페이의 어느 집에 바닥 장식으로 큐빅 사이즈의 돌을 박아서 모자이크 패턴을 만들었다. 극적이고 격앙된 헬레니즘 시대의 구도가 드러난다.
Battle of Issos or Battle of Alexander the Persians, ca. 100 B.C. mosaic copy from Pompeii of a Hellenistic painting of 315 B. C.(이소스의 전투 혹은 알렉산더 대왕과 페르시아인의 전투)

집 장식으로 바닥에 크게 들어간 모자이크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왕과 이소스 섬에서 전투를 벌인다. 전차 안에서 명령을 내리는 페르시아 왕, 훈련이 잘된 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군사 등으로 보아 페르시아군이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승리를 거둔다. 헬레니즘 시대의 세련된 구도이다.
Storytelling의 극적인 효과와 심리묘사가 나타난다. 언뜻 보면 페르시아가 위세 당당히 보이지만 페르시아 emperor 의 전진 명령에도 불구하고 말이 뒷꽁무니를 빼고 있어 전운이 이미 기울었다. 싸우려는 의지가 없는 왕은 마차 안에서 절박하게desperate 호령만 하며 전령은 앞에 나가서 싸우다가 죽음을 당한다.
이소스 전투에는 symbolism 이 숨어있다. 페르시아왕과 축을 이루고 있는 나무는 잎이 없고 거의 다 죽어간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소스 전투에서는 승리하지만 전쟁 직후 터키로 이동 중에 죽는다. 나무는 곧 닥쳐올 알렉산더 대왕의 운명을 암시한다.
투구도 없이 용감하게 싸우는 알렉산더 대왕, 하지만 mortal 한 인간이기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볼거리가 많은 동시에 moral character 까지 나타난다.
반짝거리는 투구, 말 엉덩이에 명암법이 나타난다. 앞 뒤로 선 군사에서 원근법이 보이고 군사들이 겹쳐져 있어서 창이 많이 있다. 심리적 묘사 및 헬레니즘적인 극적인 묘사가 들어가있다.
반짝거리는 투구, 말 엉덩이에 명암법이 나타난다. 앞 뒤로 선 군사에서 원근법이 보이고 군사들이 겹쳐져 있어서 창이 많이 있다. 심리적 묘사 및 헬레니즘적인 극적인 묘사가 들어가있다.
Etruscan Art 에트루리아 미술
Etruria
그리스 미술이 진행되는 동안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기원전 700-200 년 동안 에투루리아 미술이 계속된다. 로마인들은 반도의 북부에 사는 사람들을 에투루리아인 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500-200 동안은 로마와 에투루리아가 따로 존속하면서 이웃 사촌같은 관계로 지낸다. 로마의 군사력이 강해지면서 기원전 270년 경에 속국으로 삼아 에투루리아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없어진다.
로마 주변의 베이Veii, 세르베떼리Cerveteri, 타르키니아Tarchna는 에투루리아 유물이 많이 나오는 고고학 발굴 지역이다. 조금 더 위쪽에 있는 페르지아Perugiar, 마알라, 플로렌스, 토스카니 지방은 에투루리아의 정치적 중심지 Etruscan League 였다.
그리스 미술의 고졸기에 속하는 750-500 년 정도에 에투루리아는 그리스인과 잦은 교류를 한다. 에투루리아인은 특히 그리스의 도자기 블랙피겨 베이스 페인팅black figure base painting을 선호 하였다. 한때는 남쪽 지방에 배를 타고 내려가서 식민지를 개척했지만 474 B.C.에 시실리 섬의 시랴쿠스Syracuse 인에게 영토권을 잃어버리고 북쪽에서살면서 그리스인과 매우 가깝게 지낸다. 결국은 로마인에게 통치권을 내주고 로마의 일부가 된다. 지금도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에투루리아 유물이 많이 나온다.
Fibula from Regional-Gaissi Tomb, Cerveteri, 570-550 BC (피블라, 세르베떼리)
Pendent the Head of Achelous decorated with granulation 6thBC (아켈로스신 펜던트)
아켈로스 신 모양의 섬세하고 작은 펜단트이다. 고졸기 신상의 얼굴 이다. 에트루리아인은 사람 및 동물 형상을 만드는 구상예술Figurative art 에 많은 재능을 보인다.
Chariot Etruscan from Monteleone, Italy (에투루리안 마차, 몬텔레온, 이태리)
사이즈가 큰 청동 마차이다. 에트루리아인이 물질문명을 누리고 살았음이 나타난다.
Chariot Etruscan from Monteleone, Italy (에투루리안 마차, 몬텔레온, 이태리)
고대 그리스 고졸기archaic period 미술처럼 사람의 측면profile만 보인다. 여신이 양쪽에 투구를 가지고 있다.
Vase in the shape of a cock, Terracotta, 2nd half of 7th BC (수탉벼슬 모양의 도기, 테라코타)
수탉의 닭벼슬을 가진 테라코타 도기이다. Glazed Coating 을 하여 높은 온도에서 구어내는 세라믹과는 달리 테라코타는 진흙으로 빗어 그리 높지 않은 온도에서 구워낸 단순한 방법이다. 테라코타는 청동과 더불어 에트루리아인 미술의 중요한 medium이다.
Human headed Cinerary Urn 675-650 (머리 모양 제례용 그릇)
죽은 사람의 재를 담는 테라코타 제례용 그릇으로 얼굴 부분이 뚜껑이다.
Sarcophagus, from Cerveteri, ca. 520 B.C. Terra-cotta, 6’7”(석관, 세르베테리, 테라코타)
에트루리아 미술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큰 사이즈의 석관 사르파거스 이다. 세르베테리에서 조각으로 나누어져 발굴된 것을 모양을 맞추어서 금이 많이 가 있다. 그리스 미술은 여자 남자 독립 입상standing figure이 많이 있는 반면에 에트루리아 미술은 남녀가 같이 있으며 최초의 reclining figure 이다. 남편과 부인이 큐션 위에 누워있으며 뚜껑 밑을 관처럼 쓴다. 테라코타는 부분적으로 따로 구워서 전체를 맞춘다. 로마시대에 가면 에트루리아의 석관을 많이 카피한다.
Sarcophagus, from Cerveteri, ca. 520 B.C. Terra-cotta, 6’7”(석관, 세르베테리, 테라코타)

두 손에 잔을 들고 비스듬히 누워 노예들이 차리는 음식을 serve 받는 연회banquet 에 참석하는 자세이다. 에트루리아에서 지위가 높은 집안은 가족 장례 묘지가 있었다. 석관을 넣는 방이 여러개 있고 후손들이 잔을 따르며 죽음에 대하여 밝은 이미지를 주는 장례 풍습이다. 원래는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Sarcophagus, from Cerveteri, ca. 520 B.C. Terra-cotta, 6’7”(석관, 세르베테리, 테라코타)
부인이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향연banquet을 하는 자세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 보인다. 고대 그리스 여자들은 투표권이 없었고 향연에도 남자들만 참석했지만 (the event for men <Greek symposium>) 에트루리아 여성들은 재산권이 있었다. 어떤 학자들은 와인 및 농사 신 박카스Bacchus가 와인 잔을 들고 있고,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여인의 전형 아리아드네 Ariadne라고도 한다. 또 다른 해석은 부인이 향기나는 funeral 오일을 남편에게 건네주는 장면 이라고도 한다.
Burial Chamber, Tomb of the Reliefs, Cerveteri, Italy, 3rd century B.C. (매장실, 부조 무덤, 세르베테리, 이태리)
에트루리아 장례 풍습은 생전의 집과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어 몸과 마음을 함께 쉬게한다 (Tomb is a place for the body and for the soul). 이 세상에서 쓰던 생활용품 조각을 벽에 걸고 살아있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게 장식을 한다.
Calf Bearer 570BC/ Peplos Kore 530BC / Sarcophagus from Cerveteri 520 B.C.
(송아지 매고가는 남자 페플로스 코레 사르파거스)

세작품의 시기가 그리스 미술 고졸기archaic period로서 비슷하다. 송아지를 매고 가는 남자와 페플로스 코레는 선에 의지하는 아케익 시기의 미술로서 아케익 스마일을 하고 있다. 기원전 520년 경의 에투루리아 석관의 조각도 부자연스런 아케익 스마일을 짓고 있다. 에투루리아인은 그리스와 교제를 하여 고졸기 미술의 영향을 받는다.
Aerial View of Banditaccia Cerveteri Italy (벤디타치아 전경, 세르베티, 이태리)
세르베티의 농경지에 매장지가 길을 따라 많이 분포하고 있다. 유적지가 많다.
Plan of Tomb of Shields and Chairs, 550-500BC Cerveteri Italy (방패와 방의 무덤, 세르베티, 이태리)
매장지의 방에 들어가면 여러 가족들의 석관들이 줄을 지어 있다.
Funerary Urns in Inghimari Tomb, Hellenistic Period, Volterra, Italy (장례용 유골함, 잉그마리 묘지, 볼테라, 이태리)
관의 사이즈 및 조각의 스타일이 다르다. 유골함에 전 가족의 모습이 있다. 가운데 석관에는 비스듬히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이 있다.
Cinerary Urn late 4th early 3rd Century BC Etruscan Alabaster (유골함, 에투루리안 알라배스터)
에투루리아인들은 고대 그리스와 꾸준히 교류가 있었고 그리스 신화를 즐겨했다. 그리스인과 아마존과의 싸움을 그린 아마조노마키Amazonomachy 조각이 유골함에 새겨진다. 에투루리아에서 많이 나는 돌 알라배스터Alabaster 에 조각을 했다. 색깔은 대리석과 비슷하지만 훨씬 물러서 조각하기가 쉽다.
Sarcophagus lid of Larith Tetnies and Thanchvil Tamai, 350-300 BC (석관 뚜껑)
관뚜껑에 죽은 자들의 아름다운 조각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고전기classical period 에 피디아스가 감기는 옷 주름wet drapery을 고안한다. 그리스 조각의 영향으로 밑으로 몸 윤곽이 드러나고 비율이 아름답다.
Youth and Demon of Death, Cinerary container, early 4th century, stone, 47” (청년과 죽음의 신, 유골함)

삐에트라 파티다pietra fetida 라는 화산석으로 만든 돌조각으로 사실적인 고전기 조각의 얼굴에 가깝다. Recline 자세의 젊은 남자youth와 벌을 줄 것 같은 여신the demon of death이 의자에 앉아있다. 에투루리아의 종교관은 그리스와는 조금 다르다. 고대 그리스 신들은 변덕스러운 인간적인 신으로서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는데 에투루리아 신은 권위적이고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종교적 신이었다. (view of the afterlife becomes more fearful).
Tomb of Hunting and Fishing, Tarquinia, Italy, ca. 520 B.C. (사냥과 고기잡이 묘지, 타큐니아, 이태리)
에투루리아 묘지의 벽화이다. 새를 잡고 돌고래가 놀고 생동감이 넘친다. 미노스 미술Minoan art의 영향으로 색감이 화려하다. 죽음의 신demon of death 을 새총을 쏘는 사냥꾼slingshot hunter으로 표현한다.
The Queen's Megaron, Spring Fresco, Palace of Minos, Knossos, Crete 1700-1300 BC (여왕의 접견실, 스프링 프레스코, 미노스 궁전, 크노소스, 크레테)
크레테 섬의 미노스 궁전에 있는 벽화로서 생동감liveliness 이 넘친다.
Tomb of Triclinium, Cerveteri, Italy 470-450 BC (트리클리니움 무덤, 세르베티, 이태리)

에투루리안의 무덤벽화에 춤추는 사람들, flute 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생동감이 넘친다. 미노스 미술의 영향이다.
Porta Marzia, Perugia Italy 2nd Century BC (포르타 마지아, 페루지아, 이태리)

에투루리아 사람들은 발달된 도시 문명을 이루며 살았다. 성문 위에 거대한 조각이 있다. 청동 거울도 많이 나온다.
Plan of Residential Complex, Murio (Poggio Civitate), Italy 6th C BC (주거지역, 무리오, 이태리)
로마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들 보다 오래된 에투루리아 문명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비슷한 주거 형태가 로마 시대 폼페이 등지에서 발견된다. 집터 가운데 courtyard가 있는 로마식 주거형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에트루리아인에게 배운 것 이다. 찬란한 로마제국 미술은 그리스 문명과 에투루리안 문명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한다.
Reconstruction of an Etruscan temple, as described by Vitruvius (에투루리안 템플 재구성도, 비트루비스가 재구성함)
에투루리아 신전은 나무로 만들었기에 전혀 남아있지 않다. 고대 그리스 신전은 밖에서 중요 행사가 열리지만 에투루리아 신전은 성소가 안에 있어서 들어가서 신상을 예배한다. 페디먼트에 장식이 없고 지붕에 테라코타로 만든 커다란 신상을 올리는 것이 에투루리아의 전통이다.
Etruscan temple, as described by Vitruvius
Nike Temple
그리스 고대 신전은 대리석으로 만들며 기단의 사방이 다 계단으로 어느 쪽에서도 들어갈 수 있지만 에투루리아 신전은 나무이며 입구가 한쪽에만 있다. 신전이 납작하며 조각 장식이 없고 신전 위에 장식 하나만 올린다. 로마인은 에투루리아 신전의 방식을 받아들여서 로마 신전은 밖을 장식하지 않는다.
Apollo from Veii 510 B.C., terra-cotta, 5’9”(베이의 아폴로, 테라코타) Anavysos Kouros 525BC (아나비소스 쿠로스)
베이 마을의 신전 터에서 발견된 테라코타 조각으로 아폴로신으로 추측된다. 기원전 6 세기 작품으로 생동감이 있으며 길다란 머리와 살짝 웃는 것 같은 모습이다. 남성미 virility를 보이는 아폴로는 동시대 고대 그리스 조각 아나비소스 쿠로스에서 영향을 받는다. 아폴로 조각은 테라코타로 만들어서 부러지기 쉽다.
She-Wolf, 500 B.C., bronze (암늑대, 브론즈)
기원전 500 년 정도 에트루리아 작품으로 브론즈로 만들었다. Hallow cast 로 안은 비어있다. 암늑대의 날카로운 이빨, 대칭형 귀, 목근육 표현 등 사실적이고 정교한 조각이다. 후대 르네상스인들은 로마를 창건한 레무스와 로물루스 형제Romulus and Remus from Troy전설을 생각하고 1471-1473 년에 쌍동이 형제 조각을 만들어서 끼어 넣었다. 로물루스 라는 이름에서 로마가 나온다.
Engraved back of a mirror 400BC (음각이 새겨진 거울 뒷면)
아름다운 청동 거울이다. 그리스의 적도화red figure based painting와 비슷한 주제 에로스 Eros 신이며 음각 표현이 들어간다. 고대 그리스와의 활발한 교류가 나타난다.
Aute Metell (L'Arringatore) Early 1st C BC
에트루리아는 청동기술이 발달하여 큰 기념물 상을 만든다. 에투루리아 미술 말기에 로마 공화정으로 흡수가 되어 에투루리아 미술 업적은 로마인에게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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