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미술 (2) 고졸기 고전기 10/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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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11,298회 작성일 12-10-23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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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미술 Ancient Art 6th hour: Greek Art (2) Archaic and Classical Period Sculpture (450-400BC)
고대 그리스 고졸기 조각 Archaic Sculpture (6BC)
Louvre Kore 650BC 241/2" (62.3cm )(루브르 코레, 루브르 소녀상)
잘 사는 집 딸의 초상 조각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남자 누드상은 아름다움의 대상 이었지만 여자상에는 옷을 입혔다. 앞으로 내민 한발, 아몬드형의 큰 눈, 입술 끝이 약간 올라간 아케익 스마일 archaic smile 장치를 써서 살아있는 인간처럼 보이게 했다. 기원전 650년 경에 오면 장례식 기념물로 큰 도자기 대신에 인물 조각상을 쓴다. 조각상을 성별에 따라 쿠로스Kouros(young man) 와 코레Kore(young maiden) 로 나눈다.
Louvre Kore 650BC 241/2" (62.3cm )(루브르 코레, 루브르 소녀상)
몸은 움직임이 없는데 얼굴은 스마일을 넣어 부자연스럽다. 새로운 장치 아케익 스마일이 나오자 그리스 사람들은 따라한다. 그리스 조각들은 처음에는 인형 statue 처럼 채색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피그먼트의 색이 다 없어진다. 조각은 현재 까지 전하지만 나무 패널에 그린 회화는 불이 나거나 전쟁 통에 거의 다 손실되었다.
Peplos Kore (Kore in Dorian Peplon), 530 B.C., marble, 48” Athens (페플로스를 입고 있는 코레/소녀)
기원전 530년 경에 만든 사람 크기의 상이며 양모로 만든 페플로스 peplos 옷을 입은 처녀Kore 이다. 부유한 집안의 소녀를 위한 장례식용 기념 조각이다. 머리, 눈, 코에 채색이 진하게 들어가 진짜 인형처럼 보인다. 옷을 입고 있어서 몸의 표현기법이 보이지 않는다.
Peplos Kore 530 B.C 48” (페플로스코레) Louvre Kore 630 B.C. 24 ½” (루브르 코레)
페플로스 코레는 루브르 코레 보다 100년 후에 만들었다. 아몬드 눈, 아케익 스마일이 두 조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페플로스 코레의 얼굴이 자연스럽고 입체적이며 사이즈가 훨씬 크다.
Kouros (New York Kouros) 600-590BC 1.88m(6"1')(뉴욕 쿠로스/뉴욕 소년상)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어서 뉴욕 쿠로스New York Kouros 라고 불린다. 루브르 코레보다는 50년 정도 후에 만들어졌다.
New York Kouros(뉴욕 쿠로스)
Menkaure and his wife, Queen Khamerernbty, Giza, 2515 B.C., 54 ½” (멘카우레 왕과 왕비 카메렌비티)
그리스 미술은 새로운 스타일을 꾸준히 추구한다. 이집트 조각에 비해서 뉴욕 쿠로스가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 이집트 조각은 다리가 돌에 묻혀 있었지만 고졸기에 만들어진 뉴욕 쿠로스는 다리 사이에 돌을 거의 파내서 독립적으로 세웠다. 지지대가 필요했던 이집트 조각에서 발전하여 그리스인은 기원전 600 경에 독립된 입상을 만든다.
New York Kouros(뉴욕 쿠로스)

기원전 2500 년에 만든 이집트 조각의 얼굴은 뉴욕 쿠로스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뉴욕 쿠로스는 얼굴이 아케익 스마일과 더불어 각이 진 선으로 연결해 부자연스럽다. 몸도 기하학적 표현으로 경직되고 부자연스런 좌우대칭이다. 머리가 크고 팔이 길어 몸의 비율이 잘 맞지 않는다. 입상으로 혼자 서기는 했지만 손과 허벅지 사이의 돌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Kouros from Anavysos, 540-525 B.C., marble, 6’4” Athens (아나비소스의 소년)
'지금은 비록 죽었지만 한때는 전쟁의 신 아레스 보다 더 용감무쌍 했던 용사 크로이소스 Kroisos 무덤에 와서 같이 슬퍼하자' 라는 명문이 무덤조각상에 새겨져 있다. 아나비소스 쿠로스는 뉴욕 쿠로스 보다 발전을 보인다. 딱딱한 사각형 허벅지가 아닌 부드러운 굴곡이 있다. 아케익 스마일, 튀어나온 아몬드 눈 등 기본은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허벅지 및 손과 팔목 사이에 돌을 많이 깍았다. 이전에 보던 삼각형 및 역 삼각형의 geometric 한 형태가 아니라 부드러운 몸이 표현된다.
Kouros from Anavysos (아나비소스 쿠로스)
New York Kouros (뉴욕 쿠로스)
아나비소스 쿠로스는 뉴욕 쿠로스 보다 60년 후인데 얼굴 형태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키도 조금 더 크다. 옆에서 보면 토루소가 약간 평평하고 엉덩이가 많이 튀어 나왔다. 이전의 뉴욕 쿠로스보다 선은 다듬어졌지만 비율은 새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고전기로 넘어가면 비율이 더욱 잡혀간다.
송아지를 지고 가는 론보스 Rhonbos는 수염이 난 fully grown man 이다. Puberty 에 다다른 소년을 쿠로스 Kouros라고 부른다. 눈동자는 다른 색깔로 넣었고 안은 나체지만 겉옷thin cloak을 걸치고 있다. 아테네Athena 여신 축제에 송아지를 바치는 론보스를 기념하기 위하여 가족들이 사후에 상을 만든다.

Kore from Chios 520BC (치오스의 소녀)
키돈 chiton을 입고 있는 소녀이다. 머리 스타일이 달라지고 헤어밴드가 있고 눈이 작아지면서 자연스러운 얼굴 모습이다. 키톤 위에 무늬가 있고 채색이 되어 있었다.
고대 그리스 고졸기 건축 Greek Architecture Archaic Period
그리스 미술은 하나의 스타일이 나타나면 다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고졸기 조각의 발전이 건축 조각에서도 나타난다. 신전 및 건축 스타일이 백년 사이에 확확 변한다.
Treasury of the Siphnians, Sanctuary of Apollo at Delphi (시프니안 보물창고, 아폴로 성소, 델파이)

고졸기 시대Archaic Period의 조각으로 시프니안 사람들의 성소에 있는 장식이다. 겹쳐있는 남자들은 아니비소스 쿠로스 정도 되는 발전상을 잘 보여준다. 종아리 허벅지 등에 근육의 발전이 보이지만 나중에 오는 고전기 조각classical period에 비하면 어색하다. 얼굴에 아케익 스마일이 있다.

자연주의적 표현에 능한 그리스인은 병사 여러명이 싸우는 것을 보이기 위해 겹쳐 그렸고 바닥에 누워있는 적군까지 그렸다. 실제로 돌은 얇은데 Illusionistic 표현법을 써서 네명의 사람이 들어갈 만큼 깊어 보인다. 앞에 있는 인물은 짙은 색, 뒤 인물은 흐린 색으로 칠해서 환영의 효과가 뛰어나다.
Battle of the Gods and Giants, from the north frieze of the Treasury of the Siphnians, Delphi, 530 B.C., marble, 26” (신과 거인의 전쟁, 시프니안 성소의 북쪽 프리즈, 텔파이)

직사각형 밴드 부분 frieze의 가운데 제일 중요한 여신, 장군들이 싸우는 장면이 들어가고 죽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양쪽에 넣는다.

Battle of the Gods and Giants, from the north frieze of the Treasury of the Siphnians, Delphi, 530 B.C., marble, 26” (신과 거인의 전쟁, 시프니안 성소의 복쪽 프리즈, 텔파이)
사람은 기하학적으로 다소 딱딱하게 그려져도 동물 표현은 사람에 비해 자유롭게 들어간다.
Reconstruction Drawing of East Pediment Temple Aphaia

아파야 템플의 동쪽 페디먼트 재구성 드로잉이다
Dying Warrior from West Pediment of Temple of Aphaia, 500-490BC (죽어가는 병사, 아파야 템플의 서쪽 페디먼트)
고졸기archaic period 의 마지막에 속하는 쿠로스 조각으로 기원전 480년 정도 부터 고전기classical period가 시작된다. 죽어가는 reclining 자세를 고안한 엄청난 업적 이다. 아몬드 눈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연스러워진다. 비장하게 맞고 쓰러지면 거기에 맞는 표정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아케익 스마일이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은 비대칭asymmetry 이 되는데 그 미묘함을 잡아 내지 못한다. 고전기에 가서 가능해진다.
Dying Warrior East Pediment of Temple of Aphaia, 480BC (죽어가는 병사, 아파이아 템플의 동쪽 페디먼트
고대 그리스 고전기 조각 Classical Sculpture 450-400BC <Standing statues of the Fifth Century B.C. >
Kritios Boy, 480 B.C., marble, 46” (116cm) Athens (크리티오스 보이)
고전기 450-400BC 로 넘어가기 직전에 분수령이 되는 조각으로 발굴장소가 크리티오스 였다. Kouros from Anavysos (아나비소스의 소년 540-525 B.C.)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두 다리가 앞 뒤로 놓이면 어깨가 미묘하게 틀어지고 엉덩이, 허리 부분도 한쪽은 올라가고 다른 쪽은 내려간다.. 그리스 조각가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무시하고 부자연스러운 좌우대칭으로 몸을 만들었다. 480년 경에 그것을 감지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어 비대칭의 몸 표현이 나온다. 앞 다리의 무릎은 내려가고 뒷다리의 무릎은 올라가는 비대칭asymmetry 이 자연스러운 포즈임을 알아낸다.
운동선수들의 헤어스타일도 변화가 일어난다. 다산 fertility을 상징하던 긴 머리를 버리고 짧은 머리를 선택한다. 고전기에 그리스인은 완벽함perfection 을 추구하여 중성적인neutral 무표정을 얼굴에 표현했다.
엄정양식 <Severe Style in 480-450 B.C.>
Charioteer, Sanctuary of Apollo at Delphi 470BC bronze 71" (마차끄는 사람, 아폴로 성역, 델파이)
470년 경에 마차끄는 사람의 모습을 청동으로 만들었다. 고전기 최고 걸작 조각은 모두 청동으로 만들어진다. Lost wax technique 으로 안은 비어있고 비율이 1:8 정도 이다. 두발을 모으고 마차의 손잡이를 들었지만 몸의 움직임이 없다. 근엄한 군인 같은 양식을 엄정양식Severe Style 이라 하며 아주 잠깐 10년 정도 유행한다.
Zeus, ca. 460-450 B.C., bronze, 6’10” (제우스, 브론즈)
한발을 앞으로 하고 뒷발을 살짝 드는 이런 자세가 나온다. 앞발이 지지대가 되어 혼자 잘 서 있다. 제우스가 벼락thunder bolt 을 들고 쏘는 모습이다. 근육 표현이 거의 나무랄 데 없다. 구부린 팔과 쭉 핀 팔의 근육 모양이 다르다. 눈, 구불구불한 머리, 큰 가슴 등 성인 남자를 잘 표현했다. 브론즈는 대리석보다 resilient 하고 무게 중심을 잘 맞추는 금속이다. 20-30년 동안 많은 실패작을 만들면서 여기에 이른다.
Zeus or Poseidon 460-450 B.C. (제우스 or 포세이돈)

눈, 털 부분은 따로 색을 칠해서 살아있는 인간처럼 보이게 만든 realistic 한 조각이다. 제우스 아니면 포세이돈 이라고도 추측한다.
The Indirect Lost Wax Process (실락법)
Lost Wax Process 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팔 다리 몸통을 따로 떼어서 casting 을 한 다음에 용접을 해서 몸을 붙인다. 왁스를 사이에 넣고 뜨거운 브론즈를 부으면 틀이 남는다.
Doryphorus (Spear Bearer), Roman copy after a Greek original of 450-440 B.C. by Polykleitos, marble, 6’6” Naples (창을 든 남자, 폴리클라이토스, 로마시대 카피)
고대 그리스 고전기 미술을 대표하는 창을 든 남자 Spear Bearer 이다. 폴리클라이토스Polykleitos는 책 Canon 에서 완벽한 균형미 perfect balance 개념을 소개하고 Spear Bearer 를 만들어 증명한다. 지금은 폴리클라이토스가 만든 것은 유실되고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카피가 전해진다. 청동으로 만든 오리지날은 지지대 없이 그냥 서 있을 수가 있었지만 대리석으로 만든 카피는 상을 받치기 위해 손목과 다리에 지지대가 있다
Doryphorus (Spear Bearer), Roman copy after a Greek original of 450-440 B.C. by Polykleitos (창을 든 남자, 폴리클라이토스, 로마시대 카피)
로마 시대에는 노예들을 시켜 목욕탕이나 공공 플라자를 장식할 조형물을 많이 만든다. 폴리클라이토스의 오리지날을 청동으로 카피한 것 이다.
Doryphorus (Spear Bearer), Roman copy after a Greek original of 450-440 B.C. by Polykleitos, marble, 6’6” Naples (창을 든 남자, 폴리클라이토스, 로마시대 카피)
올림픽 제전에 나가는 운동선수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균형미를 보이는 몸이다. Proportions은 1 to 7 로 얼굴에 비해 몸이 7배가 된다. 전문 종목은 창 던지기 이다. 스포츠맨 슆을 연상시키는 짧은 머리 이다. 완벽함을 지향하는 고전기 조각은 특정 감정 상태에 있지 않은 영원성을 띤 얼굴을 표현한다.
다리에 긴장감과 휴식감이 공존하면서 조화harmony 를 만들어낸다. 한 다리는 힘을 주어 긴장하고 다른 다리는 느슨하게 굽어지는데 이 자세가 법칙canon 이 되어 이후에 만드는 모든 조각은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를 따른다. 긴장감과 균형감이 어우러진 (Juxtaposition of tense and free parts) 자세를 콘트라포스토 contrapposto (counterbalance) 라고 한다.
다리의 위치로 인해 엉덩이 한쪽은 내려오고 다른쪽은 올라간다. 허리 근육, 어깨의 위치도 양쪽이 틀려진다. 다리의 긴장감과 휴식감의 배치가 팔에 올라가면 다리와는 반대로 바뀐다는 것을 폴리클라이토스가 창안한다.
Archaic Sculpture Classical Sculpture

Riace Warrior A and B, 450 B.C., bronze, found in the sea off Riace (Naples) (리아체의 병사, 리아체, 이태리)

Riace Warrior A, 450 B.C., bronze, found in the sea off Riace, Italy 6'8" (2.03m) (리아체의 병사 A, 리아체, 이태리)
Riace Warrior는 콘트라포스토를 응용한 자세이다. 한손에 칼, 다른 손에 창을 들고 오른쪽 다리가 거의 지지대 역활을 한다. 뒤에서 보면 어깨뼈, 엉덩이가 자연스런 비대칭으로 많이 틀어져있다. 7 feet 의 크고 근엄한 육체인데 청동으로 만들어서 지지대 없이도 서 있다.
Riace Warrior A, 450 B.C., bronze, found in the sea off Riace, Italy 6'8" (2.03m) (리아체의 병사 A, 리아체, 이태리)
두개의 조각이 발굴이 되어 A 와 B 로 불린다. Ivory and glass-paste eyes, bronze eyelashes, 이빨, 빨강색 입술 등 사실적인 묘사이며 갈수록 비율이 길어져 2m 정도이다.
Diskobolos (Discus Thrower), Roman marble copy of a Greek bronze original of ca. 450 B.C. by Myron (원반 던지는 남자, 로만 카피, 마이런)
고전기 조각 중에 폴리클라이토스가 만든 원반을 든 남자 라는 청동 조각이 있는데 로마시대의 대리석 카피로 전한다. 오리지날은 브론즈로 만들어 지지대 없이 서 있었지만 로만 카피는 지지대를 넣었다. 다리는 앞에 놓고 몸을 구부려 돌려서 감는 동작이다. 동작이 커 보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얇은 돌을 사용하였다.
고대 로마 조각가 마이런Myron은 폴리클라이토스의 원반을 든 남자 대리석 카피를 만든다. 콘트라포스토에서 한걸음 더 나가 한 어깨를 relax 하고 토르소를 twist 한 모습이다.
로마시대 비평가 플리니 엘더Pliny the Elder(23-79AD)는 마이런이 만든 폴리클라이토스의 Discus Thrower 카피를 보고 '마이런은 신체에 신경을 쓴 나머지 마음의 동요 sensation of the mind를 표현하지 못 했다' 라고 비평을 했다. 얼굴에 긴장감이 있어야 하는데 마이런의 조각은 들판을 보는 듯한 고요한 표정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는 개인의 성취 및 아이디어를 축복하고 인정해주는 분위기로서 개인주의 영웅주의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다. 작가 및 정치가, 도자기공도 이름을 남기고 개인의 영광을 중시하는 individualism, creativity 가 발달했다. 그러나 중세로 가면 이런 분위기가 확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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