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미술(1) 고졸기 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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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10,890회 작성일 12-10-1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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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미술 Ancient Art 5th hour: Greek Art (1) Archaic Period (6BC)
Ancient Greece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 문화부터 민주적인 방식이 내려오며 미술 스타일이 계속 달라진다. 고대 그리스 미술은 시기적으로 잘 나누어지며 스타일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 왕조 중심의 상달식 문화를 가진 보수적인 이집트 미술은 30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지만 그리스인이 생각하는 인생관 미술관은 아주 달랐다.

Greek Art Period 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동방화 스타일Orientalizing (7BC) 이 제일 처음이며 그 다음에 고졸기Archaic Period (6BC) 가 온다. 고전기Classical Period (mid 5BC)가 이어지며 이 때 Parthenon (447-432BC)이 세워진다. 후기 고전기Late Classical Period (4BC) 에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이 331BC 에 제국을 만든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제국이 와해가 되면서 그 이후의 시기를 Hellenistic Period (3BC)라고 부른다.
Ancient Greece
그리스 도시들은 전문성이 있었다. 스파르타는 왕권, 군사력이 강한 도시 국가이며, 올림피아는 도시국가들이 4 년에 한번식 올림픽 제전을 하는 타운이며, 델파이는 도시 국가들이 신탁을 받으러 가는 곳이다.
그리스에는 아테네, 테베, 코린트, 사이키온, 아르고스, 스파르타, 만티넬라 등의 도시 국가들이 흩어져 있었다. 문화사에서 중요한 도시 아테네는 초창기에는 왕정이 있었지만 기원전 6세기 중엽에 이르러 왕을 몰아내고 정치 개혁을 한다. 시민 개개인이 비슷한 힘을 가진 민주적인 제도를 택한다. 권력 견제 수단으로 보편 추방법을 채택하여 권력을 남용할 우려가 있는 정치인은 투표를 해서 아테네 밖으로 쫒아내어 살다가 돌아온다.
Athens 5 BC, Ru Dien-Jen
고대 그리스 도시 아테네는 중심 지역인 아고라Agora (시장)에서 상업 활동을 하고, 높은 곳에 아크로폴리스(언덕)가 있었다. 도시국가를 가로 지르는 길, 판아테나익 웨이Panathenaic Way 에서 여신을 위한 큰 축제 행렬 festival procession 이 일년에 한번 열린다.
스토아( stoa 거닌다라는 뜻) 지역에서는 남자들이 거닐면서 정치적인 논의를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 스토아학파는 세상의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하는 학파였다. 일상생활의 문제를 논의하는 장소를 스토아 라고 한다.
템플 헵파이토스Temple of Hephaestus 대장관의 신전이 있고 여신에게 바친 제일 중요한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꼭대기에 있고 옆에 피나코테가(미술관)이 있다. 피나코테카에 영웅의 초상화, 전쟁화 등을 전시하여 도시의 명예를 자랑했다.
아고라에서 도자기 등 물건들을 사고 팔며 모든 생활이 이루어진다. 아테네는 구전으로 소식이 빨리 전해졌다. 도시국가들은 올림프스 산의 신들에게서 내려오는 헬레니스틱 브라더라는 동포 의식이 있어 서로 개방된 사회를 이루었다.
파르테논 Parthenon 신전을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거대한 아테네 여신상과 신전이 있었는데 페르시아 전쟁 중에 불에 타자 아테네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기원전 430년 무렵에 파르테논 신전을 새로 짓는다. 고전기에 접어들어 재능있는 조각가 미술가를 모아서 지은 신전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Athens 5 BC, Ru Dien-Jen

아테네에서 정치적 대표자를 투표하는 권리는 인구의 1/10 정도인 남자시민에게만 주어졌다. 19세기 신고전주의 시절에 영국, 프랑스 등은 아테네의 예를 들면서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내려오는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시스템으로 인하여 우리가 열등한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제국주의를 정당화 시킨다. 하지만 20세기 초 중반에 제국주의 이론을 재해석하는 학자 revisionist 들은 그리스 민주주의가 인구의 1/10 정도만 투표권이 있었던 편협된 민주주의 였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스는 헬레니스틱 세계로 넘어가고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조금 있다가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어서 고대 그리스 유물은 많이 파손된다. 팬 아테니악 웨이 Panathenaic Way 가 다 없어지고, 아고라 자리에 비잔틴 스타일의 교회가 들어가 있다. 케라마이코스Kerameikos 는 공동 묘지인데 여기서 고졸기 미술의 작품이 발견된다.
Reconstruction of Ancient Greek City Athens
아테네의 전성기는 기원전 5세기 중엽에서 후반까지 이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인 아테네가 테베, 스파르타 등이 함께 모아논 군사비 공금의 일부를 파르테논을 짓는데 쓰자 동맹이 깨어진다. 또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하면서 아테네는 힘을 잃는다.
마케도니아 출신 젊은 청년 알렉산드리아가 아버지 필립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어 헬레니스틱 세계의 패권을 잡는다. 지중해 문명권을 통합하고 인도 까지 진출한다. 헬레니즘이 실크 로드를 타고 건너가 아폴로신처럼 생긴 불교 간다라 조각이 등장한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5세기 중엽에 시실리Sicily 같은 곳에 배를 타고 가서 소규모 식민지를 만든다. Vulci, Naples, Paestum, Riace 등의 항구 도시 일부를 근거지 및 요새로 쓴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 살던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조금씩 그리스 문화에 노출된다.
고대 그리스 미술
고대 그리스 미술은 스타일이 분명하게 나누어지고 작가들의 고유한 아이디어가 잘 받아 들여졌다. 이에 비해 이집트 및 동아시아 미술은 변하지 않는 것 처럼 보이는 편견이 생기기도 한다.
Raphael, School of Athene 1510-11 Stanza della Segnatura, Vatican Palace

라파엘이 교황의 개인 도서관에 거는 용도로 그린 '아테네 학당' 이다. 15-16세기 르네상스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현명하고 재능이 있는 고대 그리스 학자들을 모아서 기원전 4 세기 무렵의 아테네를 그린다.
고대 그리스에는 8명의 유명한 Greek Philosophers 가 있었다. 피타고라스 Pythagoras(520BC), 아브데라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of Abdera (480-410BC), 소크라테스Socrates (480-399BC), 플라토Plato (427-437BC), 아리스토클레스Aristotle (384-322BC), 유클리드Euclid (300BC) 등을 꼽는다. 고대 그리스 문화가 가진 철학적 전통으로 인해 문명의 규범으로서 등장한다.

피타고라스 Pythagoras는 6번,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는 7번, 유클리드 Euclid는11번, 소크라테스Socrates는 12번,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13번, 플라톤Plato는 14번,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은 15번, 톨레미Ptolemy 는 20번,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21번에 나타난다. 이 철학자들은 동시대인은 아니지만 다 함께 그려졌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자, 음악가이기도 했다. 숫자를 응용한 건축학 기하학이 발달하여 파르테논 신전이 지어진다. 유클리드는 기원전 300 년으로 나중에 활동한 철학자 이다.
소피스트Sophist 에 속하는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Me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 라고 했다. 철학적 맥락에서는 소피스트는 궤변론자를 의미한다. 지식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데 궤변을 이용해 자신의 지식을 펼치면 다 맞아 떨어진다. 만물의 척도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인본주의적 개념이며 지식은 상대적 이라는 개념이다.
Michelangelo Plato and Aristotle

하늘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 앞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리스 철학은 학문 및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중시한다. 형이상학metaphysical 을 중시하는 플라톤은 이데아(미의 절대적 이상적인 개념) idea 를 연구해서 미학을 발전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초대를 받아 그의 가정교사가 되어 세상 정치에 도움이 되는 현세적인 이론을 펼친다.
Jacques -Louis David, Death of Socrates 1787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시려는 찰나, 제자들이 슬퍼한다. 나이가 많은 제자가 플라톤이며 아리스토텔레스는 15 살 정도 였다. 소크라테스는 궤변론자와는 다르게 네 자신을 알라고 하면서 질의 응답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는 태도를 가지게 했다. 당시 아테네는 소피스트의 세력이 득세했고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적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젊은이들의 정신을 흐리게한다고 고소를 당하고 사형선고를 받는다. 소크라테스 제자들은 간수를 매수했으니 도망 가라고 하지만 그는 악법도 법이다 라고 원칙을 따른다.
Geometric Style
Common Greek Vessel forms 750BC 5'1 (1.55m)
고대 그리스 사회는 영웅이 죽은 후에 commemorate 하는 전통이 있어서 monument 를 세운다. 기원전 8세기 경에 사회적 경제적 우위에 있는 자가 죽으면 가족은 추모하기 위해 공동묘지에 큰 항아리를 세운다. 사람 사이즈의 상을 만들 기술은 없었지만 큰 규모의 항아리를 만들 수는 있었다.
Dipylon Vase, Funeral Scene, Geometric Style
도자기 대부분은 기하학적 무늬로 뒤덮히고 가운데 부분 밴드에 기하학적인 인간의 형상이 들어간다. 토르소는 역 삼각형이고, 다리는 실루엣으로 단순화된 형태 이다.
Dipylon Vase from the Dipylon cemetery, Athens, 8th century B.C. 40 ½”
이 기하학적 geometric 도기는 근동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들던 도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동방화된 스타일 이라고 부른다. 아들 손자가 발 끝에 있고 말, 오리, 주변 사람들, 부리던 말 등이 있다.
죽은 사람이 가로로 누워있고,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애도 mourn 하는 제스쳐이다. 큰 도자기로 기념물을 만들다가 기원전 650년 정도로 내려가면 대리석 인간상으로 대체된다.
Common Greek Ornamental Motifs
지오메트릭 시대에 많이 쓰였던 팔메트, 로제트, 미엔다 등의 패턴이다. 이 패턴들의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이므로 오리엔탈라이징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Man and Centaur, perhaps from Olympia 750BC
기원전 8세기 중엽 즈음에 도자기는 크게 만들 능력이 있었지만 인간상은 크게 만들 실력이 아직 없었다. 사람과 켄타오루스(센투어)반인반수형이다. 인물 표현이 도기화와 비슷하게 나체이며 남자의 성기가 튀어나와 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므로 옷을 안 입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고귀한 상태라고 보았다.
인류의 조상은 아테네인이며 켄타오루스는 아테네 근처에 사는 문명화되지 않은 이웃을 상징하는 고대 그리스 신화가 있다. 아주 옛날에 라피트 라고 부르는 아테네 조상이 켄타오스 라는 이웃 주민과 어울려 살았다. 반인반수 켄타오스는 평소에는 괞찬은데 술만 마시면 짐승처럼 야만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라피트는 술을 먹은 켄타오스하고 죽을 듯이 싸워야 했다. 우리 아테네 문명은 교화되고 명민하지만 다른 문명은 우리보다 못하다는 배타적이고 이원적인 생각이 헬레니즘의 신화 속에 담겨 있다.
Orientalizing Style
The Ajax Painter Aryballos Greek, Protocorinthian 590-575BC, 7.3cm
기원전 7세기 경 동방화 스타일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기원전 8세기 보다 기하학적 패턴이 많이 사라지고 그림 사이에 꽃 모양 다이아몬드 문향이 조금씩 들어갔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이작스와 아킬레스라고 추정하여 에이작스 페인터 라는 이름을 붙인다. 작은 사이즈 7.3 cm 의 휴대용 향수병 아리발로스Aryballos 이다. 올림픽에 가는 나체의 운동 선수들이 콜크 마개로 막은 작은 병을 손목에 걸고 간다.
인물 표현은 옆모습이며 토르소는 틀고 허리 밑으로는 다리의 옆모습을 보여주는 단순화된 형태이다. 비율은 잘 맞지 않지만 행동의 표현이 자유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동방화 시기의 특징이다.
Geometric Bronze Tripod Cauldron from Olympia, 8BC, 65cm
동방화 시기에 브론즈로 casting 하는 기법이 있었다. 속이 비어있는 lost wax technique 으로 왁스를 안에 넣고 뜨거운 브론즈를 부으면 왁스는 녹고 틀만 남아서 브론즈 조각이 된다.
그리스인은 브론즈 캐스팅 기법이 아주 뛰어나서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최고로 치는 작품은 브론즈로 만든 것 이다. 지금은 남아있지 않고 로마인이 만든 대리석 카피로 내려온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커다란 아테네 여신상도 브론즈로 만든 것 이었다. 그리스인은 미술에 투자를 많이 했다.
Griffin Head Protome from Bronze Tripod Cauldron, Kameiros, Rhodes, 650BC
브론즈 솥에 붙이는 장식품 이다. 새의 머리인데 캐스팅 테크닉으로 안이 비어있다.
Greek Common Vessel Forms

고대 그리스 도기는 이름이 붙는다. 암포라Amphora는 손잡이가 달리고 배가 뚱뚱한 병이다. 이것보다 조금 더 짧은 것이 펠리케Pelike, 손잡이가 없으면 크레이터Krater 이며, 손잡이가 있고 입이 넓은 것은 볼루테 크레이터volute krater, 하이드리아Hydria는 손잡이가 달린 물병, 리키토스Lekythos는 작은 사이즈의 암포라, 아리발로스Aryballos 는 휴대용 오일병이다. 그림 그리기 좋은 항아리는 크레이터 이다. 리키토스, 암포라에는 세로로 긴 인물 도상이 들어간다. 킬릭스Kylix는 컵인데 안이 동그랗고 평평한 원반이라서 그림 그리기에 좋다. 이런 것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활용품이었다.
Archaic Vase Painting
고졸기 도기화 중에 처음 나타나는 것은 흑도화Black-Figured Painting 이다. 적갈색 도자기에 slip을 발라 흑색 그림이 들어간다. Slip 은 liquid form of clay 로서 진흙에 물을 섞어 검은 색이 난다.
Exekias, Dionysos in a Boat, interior of an Attic, black-figured kylix, ca. 540 B.C.
아테네 진흙의 색깔은 붉은 갈색인데, 검은 색으로 나오게 할 부분을 유약 slip 슬립으로 다 칠한다. 뾰족한 것으로 각을 떠서 실루엣을 정하고 붓으로 콘트라스트 부분은 선을 긋고 또 어떤 부분을 긁어내고 흰색 진흙을 채워 넣는 등 디자인을 한 후에 굽는다. 도안을 다 한 다음에 약을 뭍혀서 구워낸 후에 다시 뾰족한 도구를 가지고 detail 표현을 한다. 사자의 갈기, 사람 머리, 의복 라인, 포도알 등을 다시 긁어내어 몇번의 단계를 거쳐서 만든다. 도기는 그리스 아테네 사회에서 흔하게 만들어 쓰는 것으로 이름이 알려진 화공이 하나 만들면 workshop 에서 노예들에게 시켜 비슷하게 만들어 물건이 쫙 깔린다.
엑세키우스가 킬릭스 안에 그린 도기화로서 디오니우스 신이 보우트를 타고 가는 장면이다. 도자기 색깔은 적갈색인데 테두리, 손잡이, 그림에 검은 색으로 칠하고 구어낸다. 구운 다음에 돌고래 뛰는 모습의 라인을 더 표현하고 디오니시우스 옷에 점점의 무늬가 있도록 파 냈다. 굽기 전에 흰색 진흙을 붙여서 돗대 모양이 나도록하고 선을 그었다. lively 한 동작이 느껴지는 정교한 디자인이다. 현재 그리스 회화는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도기화를 보고 당시의 회화를 가늠한다. 조각과 도기의 인물 표현이 동일하게 진행되므로 회화의 표현도 같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Euphronios, Herakles Wrestling Antaios, on a Attic red-figured krater, ca. 510 B.C., 19”
유프로니우스는 엑저키아스 다음의 실력가 였다. 기공의 능력은 신화의 이야기를 가지고 story telling 을 얼마나 잘 하는 가에 달려있다. 도자기에 맞게 인물 배치를 하고 narrative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도를 디자인 한다. 헤라클레스가 받은 과업 중에 하나가 사자를 물리치는 것 인데 지휘봉을 든 아테네 여신이 도와준다. 시종, 사자의 벌린 입, 꽃, 등 narrative 가 될만한 요소가 들어가 있다. 사자의 날렵한 허리, 뾰족한 이빨 등의 detail 표현이 정교하다.
Red-Figured Style
Exekias, Achilles and Ajax Playing Dice, Attic black-figured amphora, ca. 540-30 B.C. 51cm
엑저키에스가 만든 masterpiece 중의 하나이다. 도기화 작가들은 넓은 면을 가진 암포라에 작품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검은 색 슬립slip을 도자기 부분과 발 부분에 바르고 형태를 슬립으로 칠했다. 망또 안에 꽃무늬 패턴을 선으로 긁어서 넣고 턱수염, 머리에 선을 그어서 정교하게 만들었다. 다리에 소용돌이 문향을 넣어서 warrior 가 입고 있는 갑옷과 창의 앞 부분 detail 을 표현했다.
절친한 친구 아킬레스와 에이작스는 트로이 전쟁에 함께 참가한다. 둘은 '네가 죽으면 따라 죽겠다' 라고 말할 정도의 사이였다. 9년이 지나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아킬레스가 발뒷꿉치에 화살을 맞고 먼저 죽는다. 아킬레스의 시신과 갑옷을 가지고 오는 아이작스는 술김에 적인줄 알고 막 싸웠는데 그게 양떼임을 알고 수치심에 사로 잡히고 신들의 조작으로 자살한다.

아켈레스가 죽기 전에 에이작스와 막사에서 오락에 몰두하고 있는 장면이다. 자기들의 비극적 운명을 모른 채 오락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그리스인들의 마음에 와 닿는다.
엑저키에스는 아이작스와 아킬레스 narrative 중에서 특이하게도 게임을 하고 있는 장면을 선택했는데 거의 invent 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이 유명해져서 너도 나도 이 장면을 그린다.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받아 들여 유행이 급속히 펴져 나간다. 화공 엑저키에스가 이 도기화를 그린 후에 영웅들이 모여서 게임을 하는 장면들이 막 나온다.
블랙 피겨 페인팅은 기법이 너무 제약적이라 영웅의 프로파일 밖에 그려 놓을 수가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통해 보다 나은 대답을 찾아 가듯이 작가들도 그냥 머무르지 않는다. 한계를 느끼고 방법을 뒤집어 업어 Red-Figured Style 을 고안한다.
Euthymides, Dancing Revelers, red-figured amphora, ca. 510-500 B.C.
기원전 500 년 경에 블랙 피겨 페인팅에서 레드 피겨 페인팅으로 바뀐다. 블랙 피겨 페인팅에서는 실루엣의 안쪽을 검은 색으로 칠했는데 이제는 바깥 쪽을 검은 색으로 칠하여 Red-Figured based painting 을 한다. 실루엣 안에 뾰족한 칼로 긁지 않고 붓으로 디테일을 그려서 표현이 자유롭다. 등이 twist 되고 어깨의 자세가 다 바뀐다.
유프로니우스의 라이벌이 만들어서 'As never Euphronios' '유프로니우스는 절대 이렇게 만들 수 없다 ' 라는 사인이 붙어 있다. 술 취한 세명의 남자가 술잔을 들고 걸어가고 있다. 허리 라인, 뒤틀여진 인체 등 조각에 나타나는 표현과 거의 같다. 좌우 대칭이 아닌 인간의 몸, 어깨 뼈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런 표현이 가능해진다. 굽어진 어깨, 머리를 튼 모습, 드레이퍼리도 자연스럽고 축도법foreshortening 이 나온다.
Eos and Memnon Interior of Attic Red Figure Kylix 490-480 BC
킬릭스 컵 안에 그린 그림으로 에오스가 죽은 멤논을 안고 있다. Red figure painting 이다. 붓으로 선을 그어 주름이 많은 얇은 천을 보여주고 깃털도 훨씬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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