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종교건축 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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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티비아 댓글 0건 조회 7,484회 작성일 12-04-1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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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미술 15th hour: Colonial Architecture 1700-1800

18세기에 들어오자 라틴 아메리카에 정치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스페인의 합스부르그 왕가의 대가 끊겨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새로운 왕가가 들어오자 식민지의 경제적 자원을 더욱 착취하게 되는데 이를 부르봉 개혁이라 한다.
미술 양식은 17세기의 메스티조 바로크가 유지되면서 18세기에 튜리게라 양식이 새롭게 나타난다. 오벨리스크를 거꾸로 세운 것 같은 기둥 형태의 화려한 튜리게라 양식 Churrigueresque Architecture이 나타나서 더욱 복잡해지며 더 많은 양의 조각이 들어간다.
미술 양식은 17세기의 메스티조 바로크가 유지되면서 18세기에 튜리게라 양식이 새롭게 나타난다. 오벨리스크를 거꾸로 세운 것 같은 기둥 형태의 화려한 튜리게라 양식 Churrigueresque Architecture이 나타나서 더욱 복잡해지며 더 많은 양의 조각이 들어간다.
스페인 Hapsburg 왕가의 Charles II (1665-1700)가 후계자 없이 죽자 어머니 쪽으로 왕위가 넘어가 프랑스 부르봉 왕가Bourbon Dynasty가 왕위 계승을 하게 된다. 프랑스 왕 루이 Louis 14세의 손자인 Philip V (r. 1700-46)가 스페인 왕으로 앉고 그 다음에 Ferdinand VI (r. 1746-59), Charles III (r.1759-88) 로 이어져 멕시코는 현재까지 부르봉 왕가가 계속된다. 새로 들어온 부르봉 왕가는 재산을 챙기려고 식민지 지배를 재정비 하여 기존에 2개 있었던 총독부를 4개로 늘린다.
Spanish Empire 1770

17세기 까지는 Viceroyalty of Peru, Viceroyalty of New Spain 2개만 있었는데 부르봉 왕가가 식민지 정책을 강화 하여 총독부를 더 만든다. 남쪽 파라구아이 쪽에 Viceroyalty of New Granada 와 아르헨티나 쪽에 Viceroyalty of La Plata 를 더 개설한다.
프랑스 왕가가 스페인에 들어오자 프랑스 풍 문물이 유행하게 된다. 프랑스의 로코코 미술에 나타나는 로카이유 rocaille (pebble) 비대칭적 조약돌 모양, sea shell 조가비 모양, lambrequin램브레켄 모양이 유행한다. 프랑스 로코코 의 장식 문향이 스페인 특유의 화려한 조각적 양식과 혼합이 된 것을 츄리게레스크Churrigueresque 라고 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한쪽에는 츄리게레스크(메스티조 바로크, 에스피테 바로크, 울트라 바로크) 의 복잡, 화려한 스타일이 나타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19세기가 가까워지나 까 독일 쪽의 로코코의 영향으로 Classicizing Style 이 나타나서 정돈이 되는 스타일과 병행이 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8세기로 내려가면 크리오요들의 이익을 보호해주는 건축가의 조합guild이 발전한다. Guild에 신분의 차이를 두어 메스티조mestizo, 카스티조 castizo 까지는 받아주지만 mulatto, lobo 는 제외 시킨다. 또한 남미에서 나고 자란 크리오요 신분 계층Criollo Identity 이 부각되며 스페인에서 넘어온 페닌슐라레스 Peninsulares건축가도 약간 차별을 받게 된다.
Imperial Hall of Residenz, Wurzburg, Germany 1751

Basilica at Ottobeuren, Germany
로코코 양식은 프랑스에서 시작하지만 주로 인테리어 다지인에 주력을 하고 로코코 식 건축은 독일에서 유행한다. 조개 껍데기 처럼 각이 진 우아한 곡선을 쓰는데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나타난다. 교회는 로코코식 미감으로 고전 양식 칼럼을 쓰며 바로크와 다른 점은 더 장식적이며 레이스 문향이 보이고 위에 stucco 장식을 더 붙인다는 점이다.

로코코 양식은 프랑스에서 시작하지만 주로 인테리어 다지인에 주력을 하고 로코코 식 건축은 독일에서 유행한다. 조개 껍데기 처럼 각이 진 우아한 곡선을 쓰는데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나타난다. 교회는 로코코식 미감으로 고전 양식 칼럼을 쓰며 바로크와 다른 점은 더 장식적이며 레이스 문향이 보이고 위에 stucco 장식을 더 붙인다는 점이다.
Music Room of Frederick II, Sanssouci, Potsdam, Germany 18C

Rocaille (로카이유) Lambrequin (렘브레퀸)

로카이유는 조약돌의 비대칭적인 모양을 말한다. 렘브레켄은 창문 등에 장식으로 들어가는 문향으로 나무, 돌, iron casting 등으로 만든다.


로카이유는 조약돌의 비대칭적인 모양을 말한다. 렘브레켄은 창문 등에 장식으로 들어가는 문향으로 나무, 돌, iron casting 등으로 만든다.
Mexico City Cathedral, Mexico City (멕시코 대성당, 멕시코 시티)

Jeronimo de Balbas, Altarscreen of Kings, Mexico City Cathedral, Mexico City (킹알타스크린, 멕시코대성당, 멕시코 시티)

중요한 조각가 발바스의 작품이 멕시코 시티 대성당 안에 있다. 성당의 제일 큰 성소 quire 에 있는 altarscreen 이다. 둥근 반형 모양의 콰이어 안을 altarscreen 으로 가득 채운다. 조각상 얼굴이 색깔로 칠해져 있는데 멀리서 보면 금색으로 다 뒤엎은 것 처럼 보인다. 가운데 그림이 두개 들어가고 천사 조각, 큰 조각상 등이 들어가 있다. 이전의 알타피스는 회화가 더 중요한 역활을 했는데 후기 18세기에 와서 조각 중심의 알타 스크린으로 바뀐다.
Adoration of the Maji, Assumption of the Virgin, Juan Rodrigues Juarez, Altarscreen of Kings, Mexico City Cathedral, Mexico City (동방박사의 경배, 성모승천, 후안 로드리게즈 후아레즈, 킹알타스크린, 멕시코대성당, 멕시코 시티)

유명 화가 가문의 후안 로드리게즈 후아레즈가 알타 스크린에 성모 승천과 동방박사의 경배를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Adoration of the Maji, Juan Rodrigues Juarez (동방박사의 경배, 후안 로드리게즈 후아레즈)

제일 중요한 성소 Altar of Kings 에 왕과 관련이 있는 royal iconography 가 들어간다. 예수 탄생을 경배하는 동방에서 온 세 명의 왕, 천상의 여왕으로 승천하는 성모 그림이 들어간다.
Jeronimo de Balbas, Altarscreen of Kings, 1718-37 Mexico City Cathedral, Mexico City (킹 알타 스크린, 멕시코 대성당, 멕시코 시티)

발바스가 제단 스크린을 20년 동안 만드는데 새로운 기술을 뉴 스페인에 선 보인다. 오벨리스크를 거꾸로 세운 듯한 에스티피테 칼럼estípite style, 고린도 식, 이오니아 식의 기둥들을 혼합한 창의적 기둥composite capital, 기둥 사이에 감niche을 파서 조각을 집어넣은 niche pilaster 를 만든다.
헤로니모 드 발바스(1650-1748)는 스페인에서 온 페닌슐라레Peninsulares건축가인데 뉴스페인의 크리오요 criollo 들은 자신들의 솜씨도 뛰어난데 뉴스페인의 상징 같은 멕시코 시티 대성당을 발바스에게 시킨 점에 대하여 불만을 나타냈다. 발바스는 스페인에서 츄리게라Jose Benco Churriguera (1666-1725) 의 공방에 들어가서 정통으로 츄리게레스 Churrigueresque스타일을 공부한 실력있는 건축가로 처음에는 질시를 받지만 나중에는 실력을 인정을 받는다. 파급 효과가 큰 중요한 작품 Altar screen of Kings 가 제작되는 동안 다른 조각가도 츄리게레스크 양식을 교회에 이용한다.
Church of San Miguel de Huejotzingo, Huejotzingo Mexico 1547-71 (산 미구엘 교회, 후에칭코, 멕시코)
발바스의 알타스크린이 새로운 이유는 이전의 것은 구획으로 나누듯이 grid 가 있었고 그 안에 성상을 세워 놓았다. 하지만 발바스의 스크린은 자체가 하나의 single monument 로서 그림이 2개 들어가고 조각들이 스스로 자리를 찾아 유기적으로 결합하게 만들었다.

발바스의 알타스크린이 새로운 이유는 이전의 것은 구획으로 나누듯이 grid 가 있었고 그 안에 성상을 세워 놓았다. 하지만 발바스의 스크린은 자체가 하나의 single monument 로서 그림이 2개 들어가고 조각들이 스스로 자리를 찾아 유기적으로 결합하게 만들었다.
기둥 안에 공간을 만들어 조각상을 넣어서 마치 대화를 나누듯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을 인테레스티피테 벽감 (interestípite niche벽감형태의 공간에 조각상을 넣음) 이라고 부른다. 특이한 발바스의 양식에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며 이후로 에스티피테 스타일이 뉴스페인 전역에 유행하게 된다.
Altarscreen of Virgin Pardon, Balbas 1735-37 (용서의 성모 알타스크린, 발바스)

발바스가 만든 용서의 성모님 알타 스크린이다. 가운데 성모님이 있고 로카이유 스타일, 튀어나온 에스티피테 칼럼이 있다.
Sagrario Metropolitano, Mexico City 1749-68, Lorenzo Rodríguez (사그라리오 메트로폴리타노, 멕시코 시티)
스페인 사람 로렌쪼 로드리게즈 (1704-74) 는 1731년 발바스의 제단 건축의 목수로 멕시코에 온다. 1736년 건축가 마스터의 시험을 통과하고 싶었으나 페닌슐라레에 대한 크리오요들의 견제로 인해 탈락되고 1740년이 되어서야 획득하게 된다. 멕시코 시티의 대성당 옆에 붙은 교구 교회 사그라리오 메트로폴리타노를 디자인 하는데 이 자리에 원래 아즈텍 템플이 있었다. 지역 사람들의 미감을 존중하여 아즈텍의 전통처럼 교회의 탑이 뾰족하게 올라갔다. 로드리게즈가 라틴 아메리카의 토착적 건물의 전통을 알고 있었으며 과달루페 성소교회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스페인 사람 로렌쪼 로드리게즈 (1704-74) 는 1731년 발바스의 제단 건축의 목수로 멕시코에 온다. 1736년 건축가 마스터의 시험을 통과하고 싶었으나 페닌슐라레에 대한 크리오요들의 견제로 인해 탈락되고 1740년이 되어서야 획득하게 된다. 멕시코 시티의 대성당 옆에 붙은 교구 교회 사그라리오 메트로폴리타노를 디자인 하는데 이 자리에 원래 아즈텍 템플이 있었다. 지역 사람들의 미감을 존중하여 아즈텍의 전통처럼 교회의 탑이 뾰족하게 올라갔다. 로드리게즈가 라틴 아메리카의 토착적 건물의 전통을 알고 있었으며 과달루페 성소교회에서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Basilica de Gaudalupe 1695-1709
카톨릭 교회 지도부는 로렌쪼 로드리게즈를 지지했지만 뉴멕시코 토착 크리오요 (criollo) 건축가들은 그를 견제하여 저항이 많았다. José Durán(과달루페 교회의 건축가)의 아들인 Miguel Custodio Durán은 나중에 로드리게즈의 실력을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1709년에 지은 과달루페 교회는 고전적으로 지었는데 30년 사이에 에스티피테, 츄리게라 양식이 생겨서 사그라리오 메트로폴리타노 교회 파사드는 폭발할 듯 하게 조각이 들어간다.

카톨릭 교회 지도부는 로렌쪼 로드리게즈를 지지했지만 뉴멕시코 토착 크리오요 (criollo) 건축가들은 그를 견제하여 저항이 많았다. José Durán(과달루페 교회의 건축가)의 아들인 Miguel Custodio Durán은 나중에 로드리게즈의 실력을 결국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1709년에 지은 과달루페 교회는 고전적으로 지었는데 30년 사이에 에스티피테, 츄리게라 양식이 생겨서 사그라리오 메트로폴리타노 교회 파사드는 폭발할 듯 하게 조각이 들어간다.
Sagrario Metropolitano, Mexico City (사그라리오 메트로폴리타노, 멕시코 시티)

조각을 하나씩 해서 끼워 맞추었다. 옆에서 실루엣을 보면 그림자로 인해 음영이 강하여 복잡함이 대단했다.
Composite Order

고린디안 기둥 위에 도리아 식기둥을 얹은 창의적이고 복잡한 주두를 Composite Order라고 한다. 대도시에서는 교회 성직자들이 프로그램을 주도 했으므로 유럽의 세련된 모습을 갖추기를 원했다. 파사드에 vegetation motif, sea shell, rocaille가 들어간다. 아즈텍 인디언이 주축이 되는 지방 교회와는 다르게 토착적 symbol 은 볼 수가 없다. 회색돌 Chilucar Stone 으로 파사드를 만들고 옆에는 붉은 색의 돌로 대조를 시켰다. Ultra Baroque, Estípite Baroque 라고 하며 뉴 스페인의 새로운 상징이 된다.. Urban renewal 이 수도 멕시코 시티에서 계속 되며 국제적 스타일에 맞춰 건물을 재건할 능력이 있음을 나타낸다.
예수회 소속 교회 Society of Jesus (Jesuits)
예수회 교회는 다른 수도회 보다 늦게 1572년에 뉴스페인에 도착했지만 학교를 많이 설립하여 엘리트 계층의 후원을 받는다. 18세기에 거대한 에스테피테 교회를 지으며 신도 lay brothers 를 이용해서 건축 및 조형예술을 짓는다.
Church of San Francisco Xavier, Tepotzotlán, Mexico 1760-62 (산프란시스코 하비에 교회, 테포초틀란, 멕시코)


멕시코 시티 근교의 테포트조틀란에 있는 예수회 수도원은 성공한 크리오요 가문 메디나 피카조 Medina Picazo의 후원을 받는다. 1670-80년대 건축가 호세 두란에게 수도회 건립을 맡겼으며 1682년 완성 이후 두란은 과달루페 교회도 건설한다. 1760년 교회의 파사드를 재건하면서 호세 두란의 손자인 일데퐁소 두란Ildefonso de Durán을 건축가로 선정한다.

에스티피테 바로크 스타일의 대표적인 건물이며 사그라리오 메트로폴리타나 교회보다 훨씬 우아하고 섬세한 기둥과 장식이 있다.
Main Altar, Church of San Francisco Xavier, 1760-62, Tepotzotlán, Mexico (로레토의 성모, 산프란시스코 하비에 교회, 테포초틀란, 멕시코)



니체에 네 개의 조각상에 Ignatius of Loyola, Francis Borgía, Louis of Gonzaga, and Stanislaus of Kostka 가 들어가고 가운데 프란시스코 하비에가 있다.

프란시스코 하비에는 일본에 선교하러 갔다가 순교를 당한 예수회 선교사 이다.

화가 미겔 카브레라 Miguel Cabrera (1695-1768)와 조합건축가 이지니오 차베즈ensamblador Higinio Chávez 가 제단화를 만든다. (1753) 프란시스코 하비에에게 바쳐진 제단화이며 세례자 요한, 요셉, 아기 예수, 요아힘, 안나 등이 성모마리아와 함께 그려진다.
Virgin of Loreto, Church of San Francisco Xavier, Tepotzotlán, Mexico 1733 (로레토의 성모, 산프란시스코 하비에 교회, 테포초틀란, 멕시코)

대부분 예수회 소속 교회는 로레토의 성모를 위한 예배당이 따로 있다. 미겔 카브레라가 로레토 성모를 위한 예배당 카마린(성모 조각상에 옷을 입히기 위한 방) 을 만든다. 1733년 건립된 이 방은 금도금한 스터코로 세부 장식이 마련되고 천사, 별, 달, 해 등이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나자렛에 있던 성모마리아의 집을 상징하는Camarin (small dressing room for sculpture of the Virgin) 은 8각형의 작은 채플이다. 전설에 따르면 13세기 말 천사의 날개를 타고 팔레스타인에 있던 이 집이 이탈리아 로레토로 옮겨왔다고 한다.

에스티피페 바로크, 울트라 바로크 양식이다. 천사 아키엔젤 마이클을 화려하게 채색했다.

Octagon 의 천정에 눈속임 기법을 써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천사의 얼굴이 있다. 유럽의 회화 양식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식의 도식적인 해석 이다. 천사를 화려하게 채색을 했다.
Church of La Companía, Quito, Ecuador교회 제단화 (라콤파니아 교회, 키토, 에쿠아도르)

예수회 선교사들은 과도한 재산을 모아 엄청한 영향력을 가지는데 스페인 국왕은 세금을 걷을 수 없었고 또한 예수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1767년 뉴스페인을 떠나라고 명령한다. 이에 대하여 크리오요가 스페인 정부에 반감을 가지게 되고 독립 운동으로 이어진다.

라 콤파니아 교회는 1606년 시작했고 제단화는 1745년에 완성된다. 1780년대 쫒겨나기 전에 거의 마지막으로 지은 교회 중의 하나 이다. 예수회 소속 교회는 흔히 콤파니아 라고 불린다. 조직 체계가 잘 갖추어진 예수회는 16세기에 생겼으며 자체의 인력을 활용하여 건축을 한다. 독일식 로코코 풍이 가미된 약간 가볍고 우아한 풍으로 제단화는 독일계 예수회 수도승인 게오르그 빈터러Georg Winterer의 디자인 이다. 도금은 키토의 조각가 Bernardo de Legarda (d. 1773)가 담당한다.

에스피테 바로크식을 사용하지 않고 17세기에 유행했던 솔로모닉 칼럼이 들어간다. 화려한 멕시코 대성당과 비교하면 신고전주의 양식을 보는 듯 정리가 되어 있다.

교회의 천장에 스페인과 이슬람 미술이 혼합된 Moorish and Mudéjar pattern 이 들어간다. 무데하 스타일이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미감에 잘 맞았다.

Dome 에는 예수회 출신 성직자들의 얼굴이 박혀 있고 주위에는 아메리인디언을 닮은 천사들이 서 있다.
Il Gesú, Rome 1573-84 ( 예수회 본교회, 일 제주 성당, 로마 )

로마의 예수회 본교회 일 제주 Il Gesú 성당의 디자인을 본따서 키토의 라콤파니아 교회를 만든다. 전성기 르네상스 식으로 로마네스크 파사드 이다.
Façade, Church of La Compania, Quito, Ecuador 1722 (라콤파니아 교회, 키토, 에쿠아도르)

Retablo façade 이며 독일계 예수회 건축가 Leonardo Deubler와 Simon Schönherr 가 완성한다. 울트라 바로크식의 파사드이며 조각이 복잡하다. 성모 마리아가 가운데 예수회 출신 선교사가 감에 들어간다.

Retablo façade 이며 독일계 예수회 건축가 Leonardo Deubler와 Simon Schönherr 가 완성한다. 울트라 바로크식의 파사드이며 조각이 복잡하다. 성모 마리아가 가운데 예수회 출신 선교사가 감에 들어간다.
16-17세기에는 도미니칸,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부유했는데 18세기에는 예수회가 donation 을 많이 받아 부유한 수도회가 된다. 1767년에 뉴 스페인에서 예수회가 모두 쫒겨나자 크리오요들은 스페인 정부에 반감을 갖게 된다. 스페인의 정책적 오류가 쌓이자 1840년대에 뉴 스페인에서 독립 운동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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