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인상주의 미술 (After 1886) : 세잔과 고호 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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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6,287회 작성일 13-05-24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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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17th hour: Post-Impressionism: Paul Cézanne and Vincent van Gogh
후기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는 20세기 현대 미술이 추상으로 가는 과정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세잔, 고호, 고갱 등은 인상파로 활동하는 동시에 개성적인 방향을 모색한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다. 또한 후기인상파에 로트레크, 드가, 르누아르 등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고갱Gauguin의 원시주의Primitivism, 오딜론 리동Odilon Redon의 상징주의 Symbolism 까지를 후기 인상주의로 분류한다.
1910년에 영국 비평가 Roger Fry(1866-1934)가 세잔Paul Cézanne, 고호Vincent van Gogh, 고갱Paul Gauguin, 조류주 쇠라Georges Seurat 의 전시회를 런던에서 개최하면서 Monet and Post-Impressionists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부터 인상주의 말기의 화가들을 후기 인상파로 불렀다. 하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조형적인 공통점은 없었으며, 단순히 인상주의 다음에 온 화가들이라는 뜻이다.
폴 세잔 Paul Cézanne1839-1906
Paul Cézanne, Self-Portrait with Palette, 1890
세잔, 팔레트를 든 자화상
에코데 보좌르에서 전통적인 미술 훈련을 받은 세잔은 1886년 인상주의 마지막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젊고 진지한 작가 세잔은 카페, 바에서 레저를 즐기며 노는 인상파 그림에 큰 의의를 느낄 수 없었으므로 다른 방향으로 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그림의 과학적 지적 영역으로 들어가서, 구도의 영원성 및 형태의 본질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Paul Cézanne, Landscape, Bords d'une rivière (Riverbanks) 1904-05 Oil on canvas, 65 x 81 cm
세잔, 픙경화. 강둑에서
프랑스 남부 시골로 이사를 간 세잔은 산이 가진 본질적인 모습을 그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외적인 표현에 중점을 두는 화가들이 있는 반면에 세잔은 자기 성찰적이고, 은둔적이었다. 현대미술가 쟈스퍼 존스처럼 부단히 연구하고 문제 의식을 가지는 화가였다.
Paul Cézanne, A Modern Olympia, 1873-74, Oil on Canvas, 46 x 55 cm
세잔, 근대의 올림피아
마네가 그린 <올림피아>에 대한 세잔의 코멘트 <모던 올림피아> 이다. 흑인 하녀가 모던 올림피아에게 타월을 덮으려 하고, 탁자 앞에 젠틀맨이 앉아서 보고 있다. 고양이가 강아지 같은 자세로 바라보고 있다. 쾌락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마네의 그림에서는 올림피아가 관객을 대담하게 응시하고 있는 반면에, 세잔은 모던 올림피아를 응시gaze를 받는 대상으로 그렸다. 사회 참여적이며, 현실을 직시하는 세잔의 태도가 그림에 반영이 되었다.
Paul Cézanne, House of Hanged Man, 1872-73, Oil on Canvas, 55x66cm
세잔, 목을 매단 남자의 집 세잔은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기도 하여, 시골에서 풍경화를 많이 그린다. 붓질을 콘드롤하여 정교한 직물을 짜듯이 물감을 겹겹히 칠했다. 산의 본질을 표현하려는 시도 이다.
Paul Cezanne, Apples, 1877-78
세잔, 사과들
세잔은 사과의 본질적인 모습을 탐구하기 위해 정물화를 그렸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들이 확립한 정물화still life에는 교훈이 담겨 있었다. 꽃, 과일, 유리그릇 등은 보는 순간에는 아름답지만 결국은 시들고 깨지는 허무한 물질이다. 이전의 정물화에는 내면적인 신앙심으로 영혼을 맑게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세잔의 정물화에는 의미와는 상관없이, 단지 사과의 원형과 색깔을 밝히려는 조형적인 의도만 담겨 있다.
Paul Cezanne, Plate of Apples, 1877, 46 x 55 cm
세잔, 사과가 담긴 접시
세잔은 사과가 가진 형태의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 엄중하게 구도를 만들었다. 또한 색채 자체의 본성을 나타내기 위해 빨강색, 노랑색, 오렌지색을 붙여서 칠했다. 그림의 주제는 버리고, 조형적 요소인 형태와 색을 쫒아가는 세잔을 가르켜 추상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 라고 부른다.
Paul Cezanne, Rideau, Cruchon et Compotier, (Curtain, an Earthenware Jug , Fruit Dish)1893-94
세잔, 커튼, 물병, 과일접시
세잔은 물질의 원형을 추구하기 위해 사과를 공들여 그렸지만, 쟈크 루이 다비드 식의 전통적인 음영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전의 고전주의 화가가 가진 환영법 illusionism 에 대해 비판적인 세잔은 3차원적인 묘사에 불복종하고 사물의 본질 이라는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Monet, Still Life with Apples and Grapes, 1880, Oil on Canvas, 66.2x82.3cm
모네, 사과와 포도가 있는 정물화 모네의 사과는 밑에 그림자가 있어서, 평면적인 세잔의 사과보다는 훨씬 전통에 가깝다. 모네는 빛으로 인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한 시점을 잡아서 사과의 형태를 묘사했다.
Albrecht Durer, Two Heads Divided in Facets and St. Peter, 1519, 11.5x19cm
알브레트 뒤러, 면으로 쪼갠 두상과 베드로 성인 세잔은 16세기 독일 작가 알브레트 뒤러의 해부학적 드로잉을 보고, 얼굴이 둥근 것이 아니라 각면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해했다. 각면에 부드러운 명암법을 입히면 대리석 조각같은 얼굴이 나온다.
Paul Cézanne, Bay of l'Estaque, 1879-83, Oil on Canvas, 60.3x74.3cm
세잔, 에스타크 만 세잔은 뒤러의 해부학적 도로잉에 맞추어 면을 각지게 그리기 시작했다. 각진 면의 각도가 딱딱 떨어지는 질서 정연한 붓질이다. 산의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뿐만 아니라, 숨어있는 본질까지 알아내고자 했다. 남부의 고향에 있는 에스타크 만의 풍경이다.
Paul Cézanne, Woman with Coffeepot, 1890-94, Oil on Canvas, 130 x 97 cm
세잔, 여자와 커피 팟
세잔은 초상화를 그릴 때도 조형의 기본적 형태로 환원을 시도했다. 여자의 얼굴은 아몬드 형, 목은 원통형, 팔은 실린더 원통형, 토루소는 정방형으로 기본형을 잡았다. 얼굴을 주인공과 닮게 그린다는 개념은 아예 없고, 단지 형태를 분석해서 원형을 찾기에 전념을 했다. 커피 팟도 원통, 여자도 원통으로 형태의 본질은 동일하다. 그림에 스토리를 배제하고 조형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세잔은 현대미술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놓는다.
빈센트 반 고호 Vincent van Gogh 1853-90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고호, 자화상
Vincent van Gogh, Potato-Eaters, 1885

네덜란드 화가 고호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은 네덜란드에 있을 때 그린 그림이다. 먹고 살기 힘든 농민의 당시 현실을 close up 시킨 자연주의 풍의 그림이다. 인상주의와는 다르게 brush stroke 이 정연하고 얼굴을 각면으로 나누었다. 고호는 세잔과 알고 지냈던 것은 아닌데, 세잔이 형태의 본질을 추구한 것처럼 고호의 그림에도 형태를 분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19세기 말 세잔, 고호 등의 아방가르드 화가들이 나타나서 원형에 관심을 가지고, 면을 분활하는 테크닉을 시도한다.
Jean Francois Millet, Gleaners, 1857

밀레, 이삭줍는 사람들
고호가 <감자먹는 사람들>을 그릴 당시, 프랑스에서는 사실주의Realism를 넘어서서 자연주의Naturalism 가 유행이었다. 사회의 문제점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이 그리는 자연주의는 사실주의 그림보다 소외 계층을 더욱 부각시켰다. 농촌 그림을 그리는 바르비종파도 자연주의에 속한다.
고호가 <감자먹는 사람들>을 그릴 당시, 프랑스에서는 사실주의Realism를 넘어서서 자연주의Naturalism 가 유행이었다. 사회의 문제점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이 그리는 자연주의는 사실주의 그림보다 소외 계층을 더욱 부각시켰다. 농촌 그림을 그리는 바르비종파도 자연주의에 속한다.
Gourbet, Stonebreakers, 1849

쿠루베, 돌 깨는 사람들
1850년 경 쿠루베가 <돌을 깨는 사람들Stonebreakers>을 그려서 사실주의 미술을 시작했다. 그래도 쿠루베의 그림에는 전통적인 구도가 있었는데, 자연주의에서는 문제점에만 집중하여 정신병자, 범죄자 등 사회 치부를 치밀하게 드러낸다.
1850년 경 쿠루베가 <돌을 깨는 사람들Stonebreakers>을 그려서 사실주의 미술을 시작했다. 그래도 쿠루베의 그림에는 전통적인 구도가 있었는데, 자연주의에서는 문제점에만 집중하여 정신병자, 범죄자 등 사회 치부를 치밀하게 드러낸다.
Vincent van Gogh, Italian Woman (Agostina Segatori), 1887, Oil on Canvas, 81x60cm
빈센트 반 고호, 이탈리아 여자, 아고스티나 세가토리
고호는 <Potato-Eaters> 를 그린지 2 년 후에 프랑스 풍의 미술에 젖어 색이 화려해졌다. 1885년에 아방가르드 미술을 찾아 파리에 온 고호는 가난한 외국인 신분으로 에코 데 보좌르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림을 팔러 다니며 온갖 고생을 하던 중, 고호는 고갱을 만나 후기인상주의자 서클에 들어가고, 인상파의 영향을 받는다.
고호를 만날 당시 그리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고갱은 1880년대 급격하게 진행되는 파리의 도시화에 염증을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1882년에 stock market이 붕괴되자, 스톡 브로커를 그만두고 고호와 함께 생활비가 저렴한 남쪽 아를르에 전업화가의 길을 간다.
Utamaro Kitagawa, The Courtesan, 1790-99, Woodblock Print, 25x38cm
우타마로 기타가와, 기생 고호는 인상주의자와 어울리면서 일본의 평면적인 목판화(우끼오에)를 접하고 그림의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Vincent van Gogh, Arles; View from the Wheat Fields, 1888, 28x21cm
고호, 아를르의 밀밭 풍경 시골 아를르의 밀밭의 풍경으로 색깔이 감성적이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듯 산업 사회를 의미하는 공장의 연기가 보이고, 구도가 별 의미 없이 사진처럼 잘려져 있다.
Vincent Van Gogh,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Arles, at Night, 1888
고호,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아를르
고호와 고갱은 색깔에 상징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인상파와 구별이 된다. 인상주의자들의 지난 10년 동안 그린 그림에서 색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태양 광선으로 인해서 사물의 색이 달라져서, 어떤 때는 나무가 보라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젊은 인상주의 작가들은 색깔이 공허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17세기 루벤스 시절에는 색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줄 뿐 아니라, 의미가 또한 중요했다. 황금색, 빨강색 등은 권력과 음모를 상징했다. 근대 작가 고호와 고갱은 다시 색의 의미 및 감정을 불러온다.
Vincent van Gogh, Le Café de Nuit, Oil on Canvas, 1887, 72.4 x 92.1 cm

고호, 밤의 카페
빨강색 벽이 둘러싸고, 흥을 돋구는 초록 천정에 노란 전등이 빛을 발하고 있는 밤의 카페 이다. 작가의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인 듯 보색이 강렬하다. 하지만 카페의 인테리어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떠난 빈 테이블과 제각기 앉아있는 농부들의 모습은 어딘지 외롭고 소외되어 보인다. 1880년대 후기 인상파들은 10년 전 인상파들과는 달리 작품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았다. 세잔은 형태의 본질을, 고호와 고갱은 색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상징을 추구했다.
Vincent van Gogh,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고호, 론 강변의 별 밤
고호는 프랑스로 와서 37세에 죽기 전 까지 그 짧은 4-5년 사이에 많은 일을 겪었다. 외국인으로 힘든 시간을 겪고, 고갱과 아를르에서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다. 원래 감정의 기복이 심한 고호는 <밤의 카페>에서 보여준 강렬한 감정의 대립을 결국 넘기지 못하고, 아를르의 셍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 치료의 효과를 위해 soothing 하는 그림을 간간히 그렸다.
Vincent van Gogh, The Starry Night, 1889, Oil on Canvas, 73.7 x 92.1 cm

고호, 별밤
고호의 마지막 작품 <별 밤>으로 모마에 있다. 고호는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면서 영적인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 folkloric 적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의 별이 되며, 사이프러스 Cypress 나무는 하늘로 향하는 초월적인supernatural 힘을 발휘한다’ 라고 그림을 설명했다. 한 방향으로 물결치는 돌아가는 붓질에 사물들이 따라서 움직인다. 코발트 블루, 노랑의 강렬한 색을 사용했다.
Vincent van Gogh, <The Letters>
반 고호, 편지
화가가 남긴 글이 있으면, 사후에 연구 대상이 된다. 고호의 성공 뒤에는 그림 딜러인 동생 테오의 marketing 전략이 있었다. 테오는 형이 보낸 편지들을 출판하여 먼저 화가 고호의 신화를 창조했다. 이로 인해 고호의 그림이 알려지고 대중에게 appeal 하기 시작했다. 고호가 남긴 estate를 가진 테오는 형의 화가로서의 의미를 찾아주는 동시에, 자신의 경제적인 성공도 이루었다.
Giorgio Vasari, Lives of the Most Eminent Painters, Sculptors, and Architects, 1550

지오르지오네 바자리, <가장 유명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일생>
르네상스 화가 바자리는 1550년에 당대 유명한 르네상스 작가들의 일생에 대한 책을 썼다. 우리가 현재 르네상스 작가들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은 바자리의 책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1990년대에 와서 한 학자가 바자리의 책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문에 따르면, 바자리는 자신이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당시 르네상스 작가들을 뽑아서 책에 언급했는데, 그도 편견이 있어서 어떤 작가에 대해서는 전혀 연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자리의 책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 훌륭한 이탈리아 작가들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바자리가 책에서 언급을 한 작가는 17-18 세기를 내려오는 동안 후대의 작가들이 글을 계속 써서 자료가 많이 있는데, 언급을 하지 않은 작가들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전혀 기록이 없다고 한다.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1951-82
테레사 학경 차는 1960년대에 하와이로 이민을 간다. 오빠가 독재 시절에 운동권으로 잡혀서, 집안이 풍지박산 나고, 한국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상황이라 온 가족이 정치 이민을 떠난다.
차 학경은 1970년대 초에 샌프란시스코로 와서 아방가르드 지식인의 센터인 버클리대학을 들어가서 비교 문학을 전공했다. 당시 월남전 반전데모가 한참 진행 중이었고, 학경은 performing art 로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 후에 파리 소르본느 대학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하고, 주로 performance art 를 많이 했다. 필름 작품으로 정치적 이념이 다른 국가로 망명한 이방인의 삶을 주제로 다룬 Exilee (Exile) 이 있다.
1981년에 서른이 갓 넘어서 차학경은 뉴욕 센트랄 파크에서 사고를 당하여 죽는다.
차학경은 죽기 전에 소설 Dictee(Dictation, 구술)를 썼다. 작가가 존경하는 7명의 여성이 소설에 등장한다. 작가의 어머니, 유관순, 아테나, 잔 다르크 등 페미니즘 및 아시아적 요소가 들어간 소설로서 대학에서 영문학 전공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들어간다. 작가는 일찍 죽었지만 소설을 남겨서 그녀의 미술 작품이 영원히 남는다.
Vincent van Gogh, Letters

고호. 편지
고호 역시 글을 남겼기에 동생이 화가의 이미지를 만들수 있었다. 1880년대 당시 프랑스 공식미술은 자연주의 였으며, 후기인상파는 전혀 주류mainstream 가 아니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온 고호는 살롱전에서는 한번도 언급이 된 적이 없는 화가였다. 후기 인상주의자들은 자기들 끼리 모여 독립화가 전시회를 열고 서로에게 그림을 보여주곤 했다. 점을 찍으며 그림을 과도하게 그린 쇠라는 요절했고, 고호 역시 정신 병원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죽어갔다. 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의 삶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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