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3 공화국의 공식 미술과 인상주의의 시작 4/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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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814회 작성일 13-05-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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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15th hour: Visual Culture in France during The Third Republic and Emergence of Impressionism
프랑스 제 3 공화국의 공식 미술
The Commune 파리 코뮨
1870년 즈음에 프랑스는 제 2제정 시기 였으며, 나폴레온 3세 치하에서 국민은 부를 누리면서 잘 살고 있었다. 그 즈음에 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 제독은 프랑스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통일을 이루고, 1870년에 프랑스를 공격했다. 유럽 최강국 이라고 믿었던 프랑스는 보불전쟁에서 어처구니 없게 패배하자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이로 인해 프랑스 국민들은 나폴레온 3세에게 등을 돌리고, 제 2제정은 막을 내렸다. 이어서 제 3 공화정 The Third Republic (1870-1940)이 시작되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나라를 통치하게 된다.
독일은 자국의 통일을 방해한 프랑스가 미운 나머지, 보불전쟁(1870-71년)에서 승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파리로 들어가서 수탈을 감행한다. 독일인은 파리시민을 궁지에 몰기 위해서 물의 공급도 끊는다. 잘사는 파리시민은 뇌물을 써서 다 도망가고, hard core Parisian 들인 가난한 사람만 남아서 프롤레타리아 중심의 공산당 정부 파리 코뮨을 꾸린다. 한편 나폴레온 3세가 영국으로 망명하자, 1870년에 프랑스 제 3 공화정이 베르사이유에서 정부를 차렸다.
Anonymous, The Fallen Vendome Column, Photograph, 1871
반동 탑을 무너뜨림 공산당 정부 파리 코뮨 치하에서 시민들은 플라스 반동에 있던 나폴레온 기념탑을 무너뜨렸다.
Gustave Courbet, Young Communards in Prison (Les Federes a la Conciergerie), 1871, Black chalk(rubbed) on wove paper
쿠루베, 감옥에 갖힌 어린 공산주의자 파리 코뮨에 저항하던 젊은이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Bruno Braquehais, Hotel de Ville, Photograph, 1871
브루노 브라크하이스, 파리 시청
마침내 파리 코뮨과 프랑스 정부군 사이에 내전이 일어난다. 파리코뮨은 독일에게 저항을 하면서 1년 가까이 버티는데, 제 3 공화정 정부군Government of National Defense in Versailles 이 파리코뮨을 무너뜨린다. 파리 코뮨의 시민군은 파리 시청을 마지막 요새를 삼아 저항을 하는데, 프랑스 정부군이 폭격을 한다. 1870년대에 카메라 기술이 발전하여, 부서진 파리 시청의 사진 기록이 남아있다.
Honore Daumier(1808-1879), Council of War, 1872, Lithograph
오노레 도미에, 전쟁 카운슬
프랑스 제 3공화국 정부군이 파리에 들어와서 시민 2만 5천명을 죽인다. 또한 사회의 혼란을 없애기 위해 사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잡아서 감옥에 갇힌다. 유령같은 사람들이 시민들을 무참하게 죽인 정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제 3 공화국의 기념물 The Third Republic Monuments
폭퐁같은 내전이 끝나고, 제 3공화정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civic monument 를 세운다. 독일에게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러시아군에게 저항했던 파리 시민Parisians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탑을 세우는데, 이 공모전에 100명이 넘는 조각가가 작품을 냈다. 또한 공화국의 승전 기념탑을 세우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Auguste Rodin, The Defense, 1879-80
어거스트 로댕, 방어
파리 시민 추모탑 공모전에 응시한 작가 중에 젊은 로댕도 포함되어 있었다. 로댕은 Liberty, France, Victory 의 알레고리 allegory 가 담긴 격정적, 표현주의적 조각 작품을 제출했지만, 뽑히지 못 하였다. 로댕의 작품은 이전의 카르포 같은 낭만주의 전통을 잇는 마지막 작품으로 사실적인 조각은 아니었다.
Ernest Barrias, La Defense de Paris, 1879-80
어네스트 바리야, 파리를 방어함 제 3 공화정 공무원들이 생각하기에 제일 좋은 작품이라고 뽑은 사실주의적 조각 이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여자가 서 있고, 군인이 총을 들고 앉아있다.
Jules Dalou, The Triumph of the Republic, 1879-89, Bronze
공화국 승전탑 공화정의 승리를 찬양하는 기념탑 이다.
Frederic Auguste Bartholdi (1834-1904), Statue of Liberty, Copper sheet, 1875-1884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가 미국과의 우정 100 주년 기념으로 자유의 여신상을 만들어 미국에 선물했다. 프랑스 센느강에 작은 사이즈의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다.
제 3 공화국의 벽화 Mural Painting during the Third Republic
내전을 치루고 형성된 정부인 제 3 공화정은 국민들의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남겼다. 이를 수습하고자, 제 3 공화정은 정부 주도 하에 많은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화가에게 커미션을 주어 각종 공공 건물에 수천개의 벽화를 그려넣는다.
Pierre Puvis De Chavannes, Legendary Saints of France and the Pastoral Life of St. Genevieve, 1877

프랑스 성인들과 성녀 주느비에브의 목가적인 일생
제 2 제정 시기에 중세 교회 센트 쥬느비에브를 다시 지었는데, 제 3 공화정 시기에 벽화를 넣는 작업을 한다. 로마시대 초기의 성녀 쥬느비에브의 일생을 그린 벽화 이다. 카톨릭 성인들을 내 세워서, 애국심 및 건전한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는 보수적인 주제를 택한다. 1870년대에 사회는 근대적으로 변해 가는데, 미술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스타일로 거꾸로 가고 있었으며, 나라에서 커미션을 많이 받는 공식 미술 이었다.
Jean Paul Laurens, St. Genevieve on her Deathbed, Installed 1882
죽음을 맞이하는 쥬느비에브 성녀
사람들이 모여 생트 쥬느비에브의 임종을 슬퍼하는 그림이다. 제 3 공화국의 관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는 공식미술로서 지루하고 구태의연한 작품으로 일색을 이룬다. 하지만 변모하는 모던 라이프를 사는 젊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만들어 전시회를 따로 한다.
Piero della Francesca, Meeting Between Solomon and the Queen of Sheba, 1452-66, Fresco
제 3 공화국 치하의 살롱전 Salon of 1873-1890
프랑스 공식 살롱전은 17세기에 시작되었으며, 1820-30년대에는 미술계에서 제일 중요한 이벤트가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1850년이 넘어가면서 젊은 작가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미술전으로 전락한다. 에꼬 데 보좌르의 종신 교수들이 신고전주의 류의 그림들만 공식 미술로 여기며, 매년 같은 jury 가 매년 심사하는 등, 시스템이 점점 피로해가고 있었다.
살롱전에 흥미를 잃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1873년에 Private Company of Artists Painters Sculptures Engravers 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모네, 르느와르, 드가, 피사로, 시슬리 등이 참여했다. 한편 나라에서는 1884년에 민간기구 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 를 만들어서 살롱전을 주재하라고 넘겼다. 이 클럽에서 신인상주의 화가들이 대거 나오지만, 1889 년에 끝이 났다.
1870- 1880년 20년 동안 인상주의 화가들이 유명세를 떨친다. 화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젊은 화가들에게는 관주도 하의 살롱전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지만, 대중들에게는 여전히 중요했다. 르느와르는 자신의 딜러에게 '파리에서는 아직도 살롱 출품작에만 관심을 가지는 콜렉터들과 살롱에 나오지 않으면 엽서 조차 사려 하지 않는 한심한 대중들 투성이다' 라고 했다.
William Adolphe Bouguereau, A Young Girl Defending Herself Against Eros, 1880, Oil on Canvas
부게로, 에로스를 제어하는 소녀
어린 소녀가 자신의 innocence 를 잃지 않기 위해, 에로스가 쏘는 사랑의 화살을 저지하고 있다. 나무랄 데 없는 테크닉이다, 1870- 1880년대 살롱의 공식적인 분위기를 나타내는 밀레 풍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그림이다. 1848년 경에 남들이 안 그리는 평범한 사람을 주제로 하여 사실주의를 시작한 쿠루베의 그림이 30년 쯤 지나자, 이런 풍의 그림으로 변모했다.
Detail, 부게로, 에로스를 제어하는 소녀

1880년대에 미국 콜렉터들에게 부르게로는 너무 유명했고, 그의 그림은 비싸게 팔렸다. 그랑드 투어하러 유럽에 온 미국 백만장자들은 조금 보수적인 취향으로 어떤 그림을 사야할지 몰랐다. 그들은 살롱 당선자의 작품들을 선했고,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작가들은 같은 그림을 2-3개씩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콜렉터들은 당시의 아방가르드 인상주의 그림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네, 르느와르, 세냑 등은 듣도 보도 못 한 화가들이었다. 기득권의 눈에는 모네의 그림은 붓으로 발라 놓은 것 같은 기본을 무시한 형편없는 그림으로 보였다.
Jules Adolphe Alme Louis Breton, Song of the Lark, 1884, Oil on Canvas
루이스 브루통, 라크의 노래
밀레의 흐름을 잇는 자연주의 화가 이다. 노을이 지는 해 질녁에 하루 일을 마친 맨발의 여신 같은 이미지 이다. 미국 콜렉터들은 이런 그림을 애호하여 경매에 부쳐 값을 올렸다. 당시는 copyright 문제가 없었으므로 어떤 그림은 5장도 똑같이 그려졌다고 한다.
Jules Bastien- Lepage, The Hay Harvest, 1877, Oil on Canvas
르빠쥐, 벼이삭 추수 풍경을 배경으로 볏집단이 누워있으며 진솔함이 묻어난다. 한편에서는 인상주의 그림들이 나오고 있는데, 르빠쥐는 여전히 자연주의풍으로 그림을 그렸다.
Jules Bastien- Lepage, Joan of Arc, 1879, Oil on Canvas, 100x110 in
르빠쥐, 잔 다르크
순수한 시골 처녀 잔다르크가 자신의 틀을 박차고 애국소녀로 변신하는 역사화historical painting 이다. 프랑스 시골에서 농사 짓던 잔다르크가 영국과의 100년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는 신의 비젼을 받아 눈이 퀭하게 허공을 주시하고 있다. 아키엔젤 마이클과 기사가 나타나 영감을 준다.
자연주의 Naturalism 에서 상징주의Symbolism로 나아가는 과정의 그림으로 살롱으로 나아가는 공식 화가들의 흐름을 보여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19세기 그림을 모아논 갤러리 홀에 있다.
Durand-Ruel Gallery
뒤랑 뤼엘 갤러리, 파리
황금알을 낳던 제 2 제정 나폴레온 3 세 시절에 뒤랑 뤼엘은 물감을 파는 화상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disposable income 이 생긴 중산층은 집을 장식하려는 그림을 사려 하고, 이런 분위기를 파악한 뒤랑 피엘은 화상을 그만두고 중산층을 대상으로 작은 규모의 갤러리를 연다.
Exhibition of Renoir Paintings in the Durand-Ruel Gallery
르느와르 그림 전시, 뒤랑 뤼엘
뒤랑 뤼엘 갤러리는 밀레의 분위기의 작은 사이즈의 수채화들을 중산층에게 많이 팔았다. 나중에 이런 부르조아 고객층이 초기 인상주의 르느와르 같은 화가의 그림도 많이 구매했다. 비록 인상주의자들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 했지만, 1870-1880년대 20년 동안 적극적으로 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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