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권의 19세기 미술 (1815-1871): 아돌프 멘첼Adolph von Menzel 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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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5,687회 작성일 13-05-0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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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13th hour: Art in German Speaking World (1815-1871) Adolph Menzel (1815-1905)
아돌프 본 멘첼 Adolph Menzel (1815-1905)
프러시아 출신 아돌프 멘첼은 독일의 화가, 판화가이다. 90세까지 오랫동안 살았다. 석판공의 아들로 1830년에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 이주 2년 후, 부친을 사별하고 17세로 공방을 인수한다. 역사가 쿠글러(Kugler)의 <프리드리히 대왕전>을 위한 목판삽화 400여 점(1840~1842)으로 초기에 명성을 획득하고, 1835년경부터 유화를 시작한다. 쿠르베의 영향을 받아 예리한 현실감각을 보이고, 인상주의풍으로 그림을 그렸다.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II der Groβe, 재위 1740~1786) 시대의 풍속을 그린 유화 시리즈 및 <철공장>(1875, 베를린, 국립미술관)으로 유명하다.
Casper David Friedrich, The Evening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 저녁
아돌프 멘첼은 카스퍼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er David Friedrich 와 더불어 독일 미술사에 가장 추앙받는 작가이다. 스타일이 다양하고 기능이 뛰어난 멘첼의 작품은 나오기가 무섭게 모두 독일인이 사들여 외국에는 작품이 한점도 없고 다 베를린에 소장되어 있다. 프러시아의 비스마르크 재상과 아돌프 히틀러가 멘첼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한다.
Adolph Menzel, Dinner at the Ball, 1878

멘첼, 댄스 파티의 저녁 식사
댄스 파티 중에 음식이 나오고 있다. 멘첼은 photo journalist 가 이벤트에 가서 사진을 찍듯이, 연회 장면을 솜씨있게 그려낸다. 19세기 독일의 상류 사회의 화려함이 잘 나타나 있다.
Adolph Menzel, History of Frederick the Great
멘첼, 프리드리히 대왕의 일생
동네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프리드리히 대제가 지나간다. 멘첼은 1839-1842년 사이에 프러시아의 지도자의 일생을 장르 페인팅으로 그린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절세에 나기 힘든 정치적 지도자 였다. 12 개국 언어를 구사하고, 지식 및 교양을 갖추고, 악기도 연주하는 등, 19세기가 생각하는 르네상스맨의 이미지에 부합되는 인물 이었다. 대제는 시대를 지나고도 국민의 추앙을 받는다.
Adolph Menzel, History of Frederick the Great
멘첼, 프리드리히 대왕의 일생
프리드리히 대제가 임명식을 하는데, 사람들이 늘어서 있다. 구도 및 각도면에서 포토 저널리스트의 사진과 거의 흡사하다. 영웅을 중앙에 넣는 자크 루이 다비드 풍의 신고전주의 그림은 피라미드식의 인위적인 구도이지만, 멘첼의 구도는 자연스럽다.
Adolph Menzel,Theater du Gymnase, 1856, 46x62cm (during his trip to Paris)

아돌프 멘첼, 짐나즈 극장
파리 여행 중에 극장에 다녀와서 즐거운 기억을 그렸다. 턱턱 찍고, 얼버무리는 식의 인상주의 작품 같은 붓터치 이다. 인상주의가 운동으로 성립되기 전인데도 브러쉬 터치가 비슷하다. 중산층의 생활을 주제로 하여, 모던 아트 인상주의의 흐름과 비슷하게 간다. 노트 북에 스케치 하듯 그린 작은 그림이다.
Adolph Menzel, The Rolling Mill, 1872-75, 158x254cm

아돌프 멘첼, 제철소
용광로에 철을 넣는 독일인 노동자를 사실적으로 그린 Realism 그림이다. 얼굴이 딱히 드러나는 영웅은 없이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즉흥적이며 일시적인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여 기계가 돌아가는 쿵쾅쿵쾅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국가가 커미션을 준 큰 사이즈의 그림이다. 독일은 프랑스, 영국에 비해 좀 늦게 1848년 이후에 산업 혁명에 뛰어들어, 맹렬한 속도로 다른 나라를 따라 잡고, 제철소를 만든다. 이 그림으로 멘첼은 많은 사람의 칭찬을 받는다.
Gustave Courbet, Funeral at Ornans, 1849-50, Oil on Canvas, 10 x 22 ft

쿠루베, 오르낭의 매장
멘첼의 <제철소> 는 쿠루베의 <오르낭의 매장>과 비슷한 주제이다. 역시적인 영웅이 아닌 당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역사화 사이즈로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현실 참여적 그림으로 평가된다.
Jean Francois Millet, The Sower, 1850, Oil on Canvas, 101.6x82.6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밀레, 씨 뿌리는 사람 멘첼의 <제철소>는 사회의 저변에 깔린 농부를 주제로 택한 밀레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Jean Louis Ernest Meissonier, The Barricade in Rue Mortelliere, Paris, June 1848, 1850-51, Oil on Canvas, 0.29 x 0.22 m
메소니에, 모르테르 거리의 바리케이드
프랑스 극사실주의 작가 메소니에가 프랑스 2 월 혁명을 그린다. 멘첼과 photo journalistic 성격은 비슷하지만, 멘첼은 사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점에서, 맥락을 달리 한다.
Frederick the Great 1712-86 Otto von Bismarck 1815-98, chancellor

프리드리히 대왕 오토 비스마르크 재상
프러시아는 러시아 옆의 조그만 나라 였는데, 19세기 말에 독일어권을 평정한다. 신성 로마 제국 점령에 이어 합스부르그 왕가를 멸망시키고, 프랑스와 보불 전쟁을 일으켜 알자스 로렌 지역을 획득한다. 18세기 지도자로 프리드리히 대제가 등장하고, 19세기에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나타난다.
Growth of Brandenburg-Prussia 1600-1785
프러시아는 보불 전쟁Franco-Prussian War (1870-71)을 일으켜 독일의 통일을 이룬다. 이로 인해 프랑스는 나폴레온 3세의 퇴각 및 제 2 제정이 끝나고, 공산당 지배 하의 파리 코뮨Paris Commune 정부가 선다. 1871년에 프러시아와 프랑스 두 나라는 영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성급히 베르사이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을 맺는다. 발칸 반도 지배권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어 터진 것이 제 1차 대전이다. 1848 년 이후 50년 동안 산업 혁명으로 힘을 키운 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를 따라 잡고, 세계 대전의 주범으로 등장하는 막강한 나라가 된다.
Leo Tolstoy (1828-1910)
레오 톨스토이
아돌프 멘첼과 동 시대를 살았던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War and Peace,1869> , <안나 카레리나Anna Karenina, 1877> 등을 집필한다. 러시아 작가 토스토엡스키Dostoyevsk(1822-1881)도 동시대인 이다. 문호는 러시아에서 나오고, 음악가는 독일에서 나온다.
Adolph Menzel, Frederick the Great in Lissa
멘첼, 리사를 방문하는 프리드리히 대제 멘첼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정치적 행적을 그린다. 대왕은 폴란드 리사에서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예고 없이 밤에 찾아온다.
Adolph Menzel, Round Table of Frderick 11 at Sanssouci, watercolor

아돌프 멘첼, 상스시 궁전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원탁 프리드리히 대왕이 상스시 궁전에서 연회를 즐긴다. 멘첼은 수채화로 스케치를 해 두었다가 스튜디오에 가서 유화로 완성 시킨다.
Adolph Mennzel, Flute with Frederick the Great in Sanssouci

아돌프 멘첼, 상스시 궁전에서 플류트를 연주하는 프리드리히 대왕
촛불을 켜 놓고, 오케스트라가 왕실 가족 앞에서 연주하는데, 대왕이 플룻 합주를 한다. 바하의 아들이 피아노(합시코드)를 치고 있다. 거울에 비친 샹드리에가 반짝 거린다. 사람들의 표정이나 자세가 자연스럽다.

프리드리히 대왕 시리즈 중에서 제일 유명한 그림으로 19세기의 독일 중산층인 비더마이어의 모델이 되는 생활이다. 저녁 식사 후에 친구들과 모여서 악기 연주하고, 문학 작품을 같이 읽고, 외국어 1-2개는 구사해야, 중산층의 life style 이라고 할 수 있다.
Adolph von Menzel, At the Beer Garden, 1883
아돌프 멘첼, 맥주 가든에서
멘첼은 인상주의 운동에 동참하지는 않지만, 근대적인 라이프를 주제로 그린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는 중산 시민들의 도시 생활을 그린다. 카메라로 사람의 얼굴의 크게 잘못 찍어놓은 것 같은 급진적인 구도이다. 자신의 스터디를 위해 그린 작은 사이즈 이다.
Robert Warthmuller, Frederick the Great of Prussia Examines the Potato Harvest 1886

로버트 바르트뮬러, 감자 수확을 살피는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제 나이가 들어 등이 굽은 프리드리히 대왕이 농촌에 가서 감자 수확을 살펴보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의 정치 행적으로 순수하게 볼 수도 있지만, 프로파간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Wilhelm Leibl, Village Politicians, 1876-77, 29 3/4 x 38 1/8
Wilhelm Leibl, Wilhelm Leibl and Sperl on the Hunt, 1890-95
빌렘 라이블, 사냥을 하는 빌렘 라이블과 스펄
Hans Holbein the Younger, Eramus of Rotterdom, 1523, Oil on Panel, 42x31.4cm
한스 홀바인, 로터담의 에라스무스 빌렘 라이블은 르네상스 작가 한스 홀바인이 보여줬던 묘사력, 관찰력이 뛰어난 회화 전통을 이어나가는 작가이다.
Hans von Marees, Three Stages of Life, Orange House; Detail of Three Stages of Life, 1884, Stazione zoological di Napoli
한스 폰 마레스, 오렌지 집, 삶의 세 단계 오렌지 농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로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신이 준 이상적인 가든을 상징한다. 심볼리즘Symbolism으로 나가는 그림이다. 나폴리에 있는 박물관의 벽화이다.
Hans von Marees, Three Stages of Life, 1884

한스 폰 마레스, 삶의 세 단계
인생의 세 단계가 있다. 손만 벋치면 오렌지를 딸 수 있는 풍요스러운 시절이 있는 반면, 힘든 시절도 있다. 독일 미술계에 사실주의Realism를 추구하는 동시에, 상징주의Symbolism로 가는 두 가지 움직임이 나타난다. 독일인은 대부분 루터파 기독교인들로서 spiritual 한 성격이 강하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같은 작가들은 자연에 있는 숭고미를 찾아내는 것이 작가의 미션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의 19세기 후반의 화단에는 아돌프 멘첼 류의 사실주의로 나가는 흐름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상징적인 의미symbol movement를 담는 Idealism 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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