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2제정(1852-1870) 치하의 고급 미술: 사롱전 3/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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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833회 작성일 13-04-0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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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12th hour: French Visual Culture during the Second Empire
회화 작품의 고급 미술계 사롱전 Salon under Napoleon III
19세기 내내 살롱전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자크루이 다비드의 제자들이 에코 데 보좌르Ecole de Beaux-Arts의 선생을 하면서 30-40년 동안 살롱의 심사위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폴레온 3세는 에코 데 봐좌르와 살롱전을 개혁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이에 따라 정년제를 도입하고 보좌르 교수들도 바뀌지만, 살롱전은 여전히 제도권 작품들로 일색을 이루고 있었다.
1863년에 살롱에 입선하지 못 한 화가들이 모여서 낙선한 자의 살롱Salon des Rufuses을 만드는데, 쿠루베, 마네Edouard Manet 같은 화가가 여기에 끼어, Salon des Rufuses가 중요해진다.
사롱전의 인기와 함께 그림을 사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진다. 이전까지는 역사화, 행사화, 초상화가 인기 있었지만, 나폴레온 3세 시대에 돈을 많이 번 사업가들이 풍경화와 농부 그림을 선호한다. 이들은 이해하기 쉽고 nostalgic value 가 있는 그림에 끌린다. 이 시류를 타고 바르비종 학파Barbizon School 의 밀레, 루소의 그림이 많이 팔린다. 또한 뒤랑 뤼엘 갤러리 Durand-Ruel Gallery 는 물감 파는 화상이었는데, 나폴레온 시대에는 바르비종학파의 그림을 팔며, 다음에는 인상주의 그림을 팔아 크게 성공한다.
Jean Louis Ernest Meissonier, Napoleon III at the Battle of Solferino, 1862, Oil on Panel
메소니에, 솔페리노 전투의 나폴레온 3세
나폴레온 3세가 전투를 지휘하는 장면을 메소니에가 국가의 커미션을 받아 그린다. 여전히 제일 인기 있는 그림은 historical genre painting 이다. 이제 대중들은 로마 그리스 시대 같은 진지한 역사에 싫증을 낸다. 메소니에는 공식 국전에서는 사랑을 받았지만, 미술사에서는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전에서 제외된 마네는 역사에서 이름이 언급된다.
Horace Vernet, The Revolution of 1830: Departure of KIng Louis-Phillipe for the Paris Townhall, 1832, Oil on Canvas 2.28x2.58m
호레이스 베르네, 1830년 혁명: 루이 필립왕이 파리 시청을 향해 츨발함 메소니에는 루이 필립왕 시대에 역사화를 많이 그린 호레이스 베르네의 전통을 이어간다. 신고전주의에 풍경이 섞인 정교한 역사화 이다.
Jean Louis Ernest Meissonier, The Painting Connoisseur, 1860
메소니에, 그림 수집가
그림 애호가 귀족이 화가의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둘러본다. 18세기 초 루이 14세 시대의 의상으로 보인다. 무대가 옛날인 장르 페인팅으로 심오한 교훈이 담겨 있지는 않다. 미술 비평가 및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 는 네덜란드 전통을 이은 풍속화에 대한 취향을 낮게 평가한다(taste for lettleness).
Jean Leon Gerome, The Cock Fight, 1847
제롬, 수탉의 싸움
나폴레온 3세의 공식 화가 제롬은 조각처럼 깍은 듯한 신고전주의 그림을 그린다. 그리스 젊은 남녀가 맹렬히 싸우는 수탉을 보면서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특별한 스토리는 없지만 역사적인 풍속화historical genre painting로서 사롱전Salon of 1847 에서 최고의 상을 받는다. 제롬은 고전미를 다시 살리는 네오 그렉 스타일Neo Grec style 로 그린다.
Jean Leon Gerome, Pygmalion and Galatea, 1890, Oil on Canvas
제롬, 피그말리온과 갈라티아
피그말리온은 대리석 조각 갈라티아를 만들고, 사랑에 빠지는데, 에로스의 도움으로 조각이 사람으로 변한다. 차디찬 대리석 몸에 따뜻한 살의 기운이 돌아 색이 변하고 있다. 역사화 이긴 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가벼운 주제를 택하여, 옛 시대를 그리는 Neo Grec style 작품들이 인기를 끈다.
Jean-Leon Gerome, Prayer in the Mosque, 1871, Oil on Canvas
제롬, 모스크의 기도
나폴레온 1세의 공식화가 다비드, 그로 처럼 제롬도 터키, 아프리카를 다니며, 사진을 찍어와서 자세히 그린다. 해외 식민지 경영에 박차를 가하는 나폴레온 3세 시대에 오리엔탈리즘 그림들이 사롱에 많이 나온다.
Eugene Delacroix, The Women of Algiers in the Apartment, 1834, Oil on Canvas 180x229cm

들라쿠루와, 아파트에 있는 알제리 여인들
1830 년대 Delacroix 는 막연하고 환상적인 이미지의 동양을 그림에 그렸다. 타자의 폭력적이고 이질적인 모습을 그림에 부각시켰다. 그러나 1850년대가 넘어가면 사진적인 사실감 photo- realism 에 중점을 두어 그대로의 모습을 담는다. 제롬은 박스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한다.
Eugene Fromentin, Arab Falconer 1863, Oil on Canvas
유진 푸로멘틴, 매를 부리는 아랍인 귀족들의 취미인 사냥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와서 그린다.
Maxime Du Camp, View of Cairo, salt print, 15.5x20.5cm
맥시메 디 캄푸, 카이로 전경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사진 작품 및 이국적인 그림 엽서 등이 유행한다. 있는 그대로 모습이다.
Charles Henri Joseph Cordier, Algerian, Jasper and Bronze
앙리 죠셉, 알제리 사람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알제리 사람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든다.
Nude in the Second Empire
Jean Auguste Dominique Ingre, The Grand Odalisque, 1814, Oil on Canvas 91x182cm

앵그르, 오달리스크
앵그르는 터키제국의 왕sultan 을 시중드는 오달리스크를 누워있는reclining 누드로 표현한다. 사롱전에서 역사적 장르화와 오리엔탈리즘 그림이 인기를 끌지만, 누드화도 인기가 많았다.
Giorgione, Dresden Venus, 1510

J.A.D. Ingres, Venus Anadyomene, 1808, 1848, Oil on Canvas
Daumier, Venuses and More Venuses, 1863 Salon
도미에, 어머 웬 비너스가 이렇게 많아
나폴레온 3세 시절, 사롱전에 비너스가 너무 많아서 구경온 여자들이 얼굴을 붉힌다. 이상적 고전미의 여신의 누드, 영원히 처녀일 것 같은 청순한 모습의 누드화가 사롱전에 낼 수 있는 공식적 누드화 였다. 그러나 1865년에 마네가 누드의 암묵적인 기준을 깨버리는 <올림피아> 를 그려서 대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Alexandre Cabanel, Birth of Venus, 1865, Oil on Canvas, 130x225cm, Metropolitan Museum

카바넬, 비너스의 탄생 고전적인 미의 여신, 추상적인 의미의 누드 이다. 사롱전에서 받아들여지는 누드로 인기를 끈다.
Gustave Courbet (1819-77), Wave, 1870, Oil on Canvas
쿠루베, 파도 사실주의 화가 쿠루베도 말년에 있는 그대로의 바다 풍경화seascape를 그렸다.
Rosa Bonheur, The Horse Fair, 1853-55, Oil on Canvas, 244.5x506.7cm
로자 본헤르, 말 시장
여자 화가 본헤르는 1830년 사롱에 <말시장>을 출품하여 명성을 얻는다. 이 시대만 해도 여자 화가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에, 본헤르는 파리의 말 시장에 나갈 때 남자로 변장을 하고 스켓치를 떴다고 한다.
Rosa Bonheur, Plowing in the Nivernais, 1849, Oil on Canvas

로자 본헤르, 니베르네 지방의 소몰이
본헤르는 사롱에서 계속 상을 타서 중요한 화가가 된다. 야외에서 스켓치를 한 정교하고 사실적인 그림이다. 당시에는 시골을 그리워하는 분위기 였으므로 풍경화, 동물화 등이 인기를 끌었다. 그림에 대한 취향이 별로 없는 비즈니스맨들이 이런 그림을 주로 구매했다.
Jean François Millet, The Gleaners, 1857, Oil on Canvas, 83.7 x 111 cm
밀레, 이삭 줍는 사람들
1857년 사롱에서 격찬을 받은 작품이다. 쿠루베의 그림에 나타나는 노동에 찌든 프롤레타리안적 관점은 보이지 않는다. 옷이 남루하지만 그런대로 풍요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성경에 나오는 씨줍는 여인들의 이미지로서 운명에 순종하여 열심히 사는 모습을 그렸다.
Jean François Millet, Grafting a Tree, 1855, Oil on Canvas

밀레, 나무 쪼개기 농촌 풍경 그림의 수요가 늘어, 바르비종파의 그림이 잘 팔렸다. 나무를 쪼개서 아이에게 장난감을 만들어 준다.
Jean François Millet, The Angelus, 1857-59, Oil on Canvas
밀레, 안젤루스 (만종)
해질 녁에 읊는 기도가 '안젤루스'로 시작한다. 누드화가 만연하는 당시의 파리 분위기에서 농촌 풍경은 신선하게 보였다. 19세기의급변하는 세상에서 참된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인 교훈를 주는 그림이다.
펜실바니아에서 온 보수적인 미국인이 큰 돈을 주고 이 그림을 구매한다. 미가 사람을 교화한다는 칸트적 철학이 미국에서 번지고 있었다. 남북 전쟁 후 1880년대 철로가 막 생기는 가운데, 이 그림은 미국 순회를 하여, cultural icon 이 된다. 동양적인 정서와도 잘 맞는 그림이라 일본,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다.
Constantin Guys, Two Women Wearing Blue Feathers, 19th C, Watercolor, 21.4x17.1cm
콘스탄틴 기이, 파란 털을 두른 두 여자
최신 유행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파리의 블레바드를 거니는데 신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비즈니스맨들은 mistress 에게 아파트를 사주고 용돈을 주면서, 자신에게 묶어둔다. 모던 사회가 유동적fluid 이라서, 결혼을 잘 하면 누구의 부인이 될 수도 있는 floating 한 세상이 된다.
보들레르 Baudelaire 는 콘스탄틴 기이를 19세기의 'Painter of Modern Life' 라고 부른다. 사회계층이 복잡해지면서 기존 그룹에 딱 들어가지 않는 계층이 나타난다. 시골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낮에는 하녀 일을 하지만 밤에는 창녀로 나가는 여자들이 생긴다. 잘사는 비즈니스맨들은 남아도는 돈으로 mistress 한 두명은 으례 있었다.
Unknown, Le Moniteur de la Mode, 1853
유행의 모니터 라는 유명한 잡지를 여자들이 다 구독한다. 원래는 면방직 공장에서 옷을 팔려고 만든 광고 잡지인데, 여자들이 패션을 따라가느라고 이 잡지를 본다. 1850년을 기점으로 세상이 확확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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