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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2월 왕정(1848-52) 사실주의 미술: 도미에, 쿠루베 3/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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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6,514회 작성일 13-03-2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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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11th hour: Emergence of Realism in France :  Daumier and Courbet (1848-1852)  
 
 
 
 
 
 
19세기에 들어와 근대 사회의 면모가 나타난다. 과학의 발전으로 대중 매체 및 대중문화가 발달하며,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대중들이 스스로를 교화하고, 시민 혁명 또한 일어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부터 시작되는 19세기 화단을 주도하는 양식은 신고전주의 이지만,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미술이 100년 동안 다양하게 나타난다.
 
1800년 즈음, 혁명 정부와  나폴레온 정권의 지지 아래,  자크 루이 다비드 풍의 신고전주의 역사화가 정치 선전용으로 활발히 그려진다. 하지만 다비드의 딱딱하고 견고한 그림에 식상한 다비드의 제자 몇 명은 부드러운 낭만주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폴레온 정권이 무너지고 1815년 경에 부르봉 왕가가 돌아오면서 혁명 미술인 신고전주의를 멀리하고, 낭만주의 미술을 공식 미술로서 선호한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쿠루와가 <제리코의 뗏목> 등을 그리며 부상한다. 1830년 경 7월 혁명이 일어나, 부르봉 왕가가 몰락하고, 이전의 나폴레온 시대를 그리워하면서, 신고전주의는 다시 부활된다. 노동자 계급이 제외된 부르조아 중심의 7월 왕정은 권력층의 탐욕으로 인해 나라가 부패해 간다.
 
1848년 노동자가 중심이 된 2월 혁명이 일어나, 나폴레온 3세가 왕으로 선출된다. 이 시기에 쿠루베Gustave Courbet 가 등장하여, 민중들의 삶을 그리는 사실주의를 시작하며, 기득권 미술을 거부한다. 19세기에는 낭만주의, 사실주의 등 아방가르드 미술이 계속 나타나지만, 15년 정도의 부르봉 왕정 복고 시절을 제외하고는, 프랑스 주류 미술은 여전히 다비드 류의 신고전주의 미술 이었다. 
 
 
 
 
 
 
Honoré Daumier, Gargantua, 1831
도미에, 가르강튀아
 
개미 같은 백성들이 빵을 날라오면  시종들은 루이 필립 왕King Louis Philippe에게 빵을 올린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안 차는 루이왕은 inaccessible appetite 를 가진 거인 가르강튀아와 닮았다. 왕이 먹고 나면, 부자와 국회의원들을 살찌우는 법령문서들이 뒤로 나온다. 모자를 들고 주위에 서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받으려는 무리도 있다.
 
사실주의 화가로는 도미에, 쿠르베, 밀레를  들 수 있는데, 제일 나이가 많은 도미에는 7월 왕정의 루이 필립 왕 치하에서 활동한다. 7월 왕정은 초기에는 liberal 한 정책을 실시하여, 대중 신문, 잡지 등에 정치 풍자화가 거리낌 없이 실린다. 하지만 도미에Daumier의 삽화 <가르강튀아Gargantua>가 1831년 <라 커리커쳐> 잡지에 실리자, 그는 루이 필립왕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힌다. 7월 왕정은 1835년 이후에는 censorship 을 만들어 정치 풍자를 금지시킨다.
 
 
 
 
 
Honoré Daumier, Le Passe-Le Present-L'Avenur(Past, Present, Future), Jan.9, 1984 for La Caricature, Lithograph (1808 – 1879)
오노레 도미에, (루이 필립 왕의) 과거 현재 미래 (얼굴)
배 모양의 삼각형 얼굴을 한 루이왕 이다. 처음에는 유순한 듯 보였지만, 지금은 찌푸리고 있고, 미래로 가면 더 이상하게 변한다.
 
 
 
 
 
Honoré Daumier, The Legislative Belly 1834, Lithograph
오노레 도미에, 입법부의 배
국회 의사당에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빈둥거리며 자신들의 배만 불린다. 당시 시민들은 삽화에 나타난 얼굴을 다 알아 보았다고 한다.
 
 
 
 
 
Jean-François Millet, Retreat from the Storm, 1846, Metropolitan Museum of Art (1814 – 1875)
쟝 프랑소와 밀레, 폭풍을 피해서
 
밀레의 초기 작품이다. 헐벗은 엄마가 아이 손을 잡은 채,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줏어다 팔며, 음식과도 바꾼다. 7월 왕정 시기 1847년에 불어닥친 경제공황으로 도시에는 homeless 노동자가 넘쳐난다. 착취, 수탈을 하던 루이 필립왕은 다음해 2월 혁명으로 인해 쫒겨난다.
 
 
 
 
 
 
 
The French Revolution of 1848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King Louis Philippe, Franz Xavier Winterhalter, 1841
루이 필립 왕
 
7월 왕정의 부패와 무능함을 견디다 못한 노동자들이 1848년 2월에 혁명을 일으킨다. 루이 필립왕은 쫒겨나서 영국으로 망명한다. 급진적인 개혁을 원하는 많은 노동자가 혁명에 참가하지만, 경제력이 받쳐주지 못하여, 정부군과 대치하다가 6월에 끝이 난다. 1848년에서 1852년 까지를 2월 왕정 February Monarch 이라고 하며, 나폴레온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온 3세를 입헌군주로 선출한다. 얼마 후에 나폴레온 3세는 나폴레온 1세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스스로를 왕으로 만들어 제 2제정(the Second Empire, 1852-1870)을 시작한다.
 
 
 
 
 
Honoré Daumier, Le Gamin de paris aux Tuileries, 1848, Lithograph, 33.9x24.7cm
 
 
1848년 2월 혁명의 주체는 노동자 계급 이었다. 튀일러리 궁전에 있는 의자에 샹길로트라고 불리는 노동자 계급이 앉아있다. 도미에는 정치적 사건의 핵심을 잘 파악하는 통찰력이 있었고, 많은 작품을 남긴다(painting 500, lithograph 4000, wood engraving 1000, drawing 1000 개).
 
1848년 혁명은 부르조아와 프로레타리아 간의 class struggle 로 볼 수 있다. 산업 혁명의 급격한 진햏으로 인하여, 6-7세 아이들의 노동이 강요되고 있었다. 교육을 못 받은 아이는 평생을 비숙련 노동자로 술이나 마시면서 나머지 인생을 보낸다. 이 시기의 자본주의를 이윤의 극대화만 생각하는 고전적 자본주의 classic capitalism 라고 한다. 한편, 칼 막스Karl Marx 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주장하면서, 공산주의 선언communist manifesto 를 쓴다.
 
 
 
 
 
Jean Louis Ernest Meissonier, The Barricade in rue Mortellierie, Paris, June 1848, 1850-51, Oil on Canvas, 0.29x0.22m
메소니에,  모르테리에 거리의 바리케이드
 
노동 운동가 칼 막스의 영향이 퍼지는 가운데, 1848년에 노동자들이 2월 혁명을 일으킨다. 노동자들이 거리에 돌맹이를 쌓아놓고, 정부군과 대치한다. 6월에 혁명이 극에 달하자, 프랑스 정부는 군대를 풀어 많은 사람을 죽인다.
 
 
 
 
 
Louis Napoleon Bonarparte 1808-73
나폴레온 3세
 
나폴레온 3세는 국회를 해산시키고, 자신을 황제로 만든다. 나폴레온 3세 치하의 제 2 제정The Second Empire (1852-1870)은 프랑스 역사 중 제일 살기 좋았던 시절로 평가된다. 이 시기에 일사분란 하게 도시계획을 하여, 도로를 만들고, 신고전주의 건물을 지어서, 현재 파리의 모습을 갖춘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가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었다. 1870년에 막스주의자 노동자들이 주죽이 된 파리 코뮨commune 이 들어서, 프랑스는 잠시동안 공산당 치하가 된다. 이어서 제 3 공화국으로 넘어간다.
 
프랑스 내에서는 2월 혁명이 빨리 무마되지만, 밖으로는 유럽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프랑스 2월 혁명 소식을 들은 독일은 힘을 뭉칠 필요를 느껴, 하나의 통일국가로 발전한다. 영주 중심의 국가였던 독일은 프러시아 라는 나라를 만들어서 강대국으로 성장하여, 1900년대  2차 세계 대전 까지 유럽을 정치적으로 뒤 흔든다. 독일의 영지 였던 이탈리아 역시 2월 혁명에 영향을 받고 나라를 통일한다.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 (Realism in French Art)
 
Gustave Courbet (1819-1877)
 
Gustave Courbet, Self-Portrait with Black Dog, 1842-44, exhibition at the 1844 Paris Salon
쿠루베, 검둥개와 같이 있는 자화상,
 
거울을 보고 그린 듯 쿠루베의 얼굴의 각도가 나타나는 그림 이다. 도미에보다 40살 정도 어린 쿠루베는 프랑스 국경 지방 오르낭 출신 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서 1939년에 파리로 가서 에코 데 보좌르에서 잠시 공부한다. 학교와 맞지 않아서 그만 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루브르에서 보낸다. 푸생, 루이 르냉, 루벤스,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그림을 베끼며 독학을 한다.
 
 
 
 
 
Gustave Courbet, Lovers in the Countryside, 1844, Musee des Beaux-Arts, Lyon
쿠루베, 시골의 연인들
 
20대 시절의 여자 친구 중의 한 명이다. 신고전주의 그림처럼 뚜렷한 구도는 없지만, 테크닉이 뛰어난 그림이다.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고, 자신이 잘 났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Gustave Courbet, The Desperate Man, 1844-45
쿠루베, 절박한 남자
 
독특한 개성을 지닌 쿠루베는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고, 거울을 보고 스켓치를 한다. 시대 특징적인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조명이 뒤에서 비추어 얼굴레 그림자가 진다. 렘브란트 처럼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Gustave Courbet, The Wounded Man, 1844-54, Oil on Canvas, 81.5x97.5cm, Musee d'Orsay, Paris
쿠루베, 상처입은 남자
 
쿠루베는 야외 풍경에 인물이 들어가는 구도를 많이 그린다. 처음에는 남녀가 머리를 기대고 잠든 모습으로 스케치를 했지만, 10년 후 쯤에 쓰러져 다친 모습으로 바꾸어 그린다. 44년에 진행 중이던  연애가 잘 되지 않았고, 여자가 사귀던 남자와 격투까지 하지 않았나 하고 추측한다.
 
 
 
 
 
Gustave Courbet, The Cellist, Self-Portrait, 1847, shown at the 1848 Salon, Nationalmuseum, Stockholm
쿠루베, 첼로이스트

첼로를 키는 쿠루베 이다. 쿠르베는 17세기 거장 렘브란트를 존경했는데, 중성적이면서 어두운 색감이 비슷하다. 자의식이 강한 근대적인 화가 쿠루베는 '화가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원하는 것을 그려야 한다' 고 했다.

 
 
 
 
 
Gustave Courbet, After Dinner at Ornans at the Salon of 1849
쿠루베, 오르낭에서의 저녁 시간
 
서른 즈음에 사롱전에 입선한 그림이다. 고향에서 이웃 사람들과 악기를 연주하며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다. 쿠루베는 네덜란드, 벨기에로 여행을 가서, 장르화에 영향을 받는다. 과거의 사건을 그리는 역사화 보다는 현재의 풍속을 그리는 장르 페인팅을 좋아했다.
 
사롱전에 한번 입선을 하면 심사를 받지 않고, 매해 사롱전에 출품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그런데 1857년에 '매번 심사를 통과하라'는 규칙이 새로 생긴다. 1857년에 쿠루베가 작품을 내자  jury 들은 쿠루베의 작품을 받아주지 않았다. 화가 난 쿠루베는 낙선한 자의 사롱전Salon of the Refused을 만든다. 클로드 모네 같은 젊은 인상주의자들의 눈에는 금메달도 받은 실력있는 화가가 제도권에 머무르지 않고 도전을 하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Louis Le Nain, Peasant Family, 1642
루이 르 냉, 농부 가족  쿠루베는 17-18세기 프랑스 작가인 루이 르 냉과 샤르댕의 풍속화에 영향을 받는다.
 
 
 
 
 
Jean-Baptiste-Simeon Chardin, The Diligent Mother, 1740, Oil on Canvas, 49x39cm, Paris 
샤르댕, 근면한 어머니  샤르댕의 그림에는 서민 생활 묘사를 넘어서 기독교적 교훈이 담겨있다.
 
 
 
 
 
Gustave Courbet, Portrait by Nadar
쿠스타프 쿠루베 초상 사진, 나다르 파리의 사진 작가 나다르가 찍은 쿠루베의 사진이다. 쿠루베는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다리 역활을 한다. 
 
 
 
 
 
Gustave Courbet, Funeral at Ornans, 1849-50, Oil on Canvas, 10 x 22 ft
쿠르베, 오르낭의 매장
 
구스타프 쿠르베는 1848년에 2월 혁명을 겪고, 다음 해에 <오르낭의 매장>을 그린다. 1850년 경에 파리 사롱에 출품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역사화도 아니고, group portrait 도 아닌, 평범한 동네 사람의 장례식을 엄청나게 크게 그렸기 때문이다.
 
 
 
 
 
 
Unknown German Artist, Totentanz (Dance of Death), 1484
 
카톨릭 교화용 그림 <죽음의 댄스>에서 <오르낭의 매장>의 구도를 따 왔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유명한 성직자들이 죽은 자와 같이 서서 그들을 위해 기도문을 외운다.
 
 
 
 
 
Detail, 오르낭의 매장
 
 
제 2제정의 나폴레온 3세 치하에서 사회가 안정되고 산업이 급격히 발전하지만, 쿠루베는 이면에 있는 농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 문제를 고민한다. '회화는 concrete art 이며 실제로 있는 일을 재현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쿠루베는 낭만주의 미술은 현실과 상관이 없는 허구이며, 신고전주의 미술은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한다. 쿠루베는 1848년 경부터 사실주의Realism 미술을 새롭게 시작한다.
 
 
 
 
 
십자가가 한쪽에 어중간히 있고, 오르낭 지방의 평평한 바위산이 있다. 그림에 이렇다 할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
 
 
 
 
 
Detail, 오르낭의 매장

신부가 추모 기도문을 외우는데 사람들이 집중하지도 않는다. 집안의 큰아버지 뻘  되는 사람의 장례로서, 쿠루베가 생각하는 회화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ordinary life 이다.
 
 
 
 
 
 
오르낭의 매장
 
 
장례식에 온다고 다 검은 옷을 입었는데, 앞에 있는 두 남자는 복장이 다르다. 1793년 혁명을 주도한 급진주의 자코벵파의 옷Jacoben attire 을 입고 있다. 혁명의 실패를 상징하는 해골이 두 남자의 발치에 놓여있다. 왼쪽 끝에 있는 사람은 쿠루베의 돌아가신 할아버지로 추측되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열심히 후원했다고 한다. 성공하지 못한 혁명에 대한 쿠루베의 탄식과 안타까움이 숨어있는 그림이다.  
 
 
 
 
Gustave Courbet, The Cliffs of Etretat After the Storm,1870
쿠루베, 폭풍 후의 에트레타 절벽  오르낭의 산은 하얀 색이 드러나는 특이한 암벽이다.
 
 
 
 
 
 
Detail, 오르낭의 매장
                          
 
<오르낭의 매장>은 낭만주의의 매장burial of Romanticism으로도 해석한다. 이국적인 풍물과 허구를 그리는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사실주의Realism의 그림이다. 여자들은 전혀 예쁜 구석이 없는 농부의 아내이고, 할머니 들이다. 쿠루베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다(contemporary subject). 어떤 비평가는 쿠르베가 보는 사람의 기분을 망치려고 일부러 더 ugly 하게 그렸다고 평한다. 그림은 '보기에 즐거워야 한다' 는 당시의 미학관에 반대하는 쿠루베의 도전 의식anti-authoritative 이 드러난다.

 
 
 
 
Detail. 오르낭의 매장
             
쿠르베는 네덜란드의 group portrait 에 영감을 받는다. 네덜란드 화가 프란츠 홀Franz Hals은 도시의 군인 그룹 및 여성 자선 단체의 그룹초상화를 그렸다.  
 
 
 
 
 
Gustave Courbet, Stonebreakers, 1850-51, destroyed during WWII in Germany
쿠루베, 돌깨는 노동자
 
파리에서 오르낭까지 자주 여행을 하는 쿠루베는 길에서 막 노동꾼을 본다. 나이 든 경험자가 젊은 사람에게 일을 가르치고 있다. 고전주의처럼 꼼꼼하게 계산한 구도가 아니라, 길 가다 언뜻 본 장면을 그린다.
 
 
 
 
 
Detail, 돌깨는 노동자
 
 
돌을 나르는 소년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더러운 옷을 덕지덕지 기워 입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운동 선수들이 영웅처럼 그려졌듯이, 쿠루베는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그린다. 산업 혁명이 인간의 삶을 나아지게 한다지만, 도시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공장에서 일자리도 못 구한 아이들은 도로변에서 힘든 노동을 한다.
 
 
 

쿠루베는 구도를 무시하는 듯이, 아주 간단한 구도simple style를 택하여 스케치처럼 그린다. 비평가들을 자극irritate 하기 위해 일부로 간단히 그렸다는 평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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