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왕정복고 시기 낭만주의 미술(1814-1830) 제리코 / 들라쿠루와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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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10,348회 작성일 13-03-13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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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9th hour: French Romanticism, Gericault and Delacroix
Théodore Géricault (1791-1824)
프랑스는 나폴레옹이 물러나고 부르봉Bourbon 왕가가 복귀restoration하여 16년 동안(1814-1830) 통치한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제자들이 활동하고 여전히 신고전주의가 대세인데 제리코와 들라쿠루와는 형식적이고 딱딱한 주류 미술에 반항하여 부드럽고 느슨한 낭만주의 미술을 추구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를 배경으로 하여 이성과 진보를 주장한 신고전주의 미술이 혁명 정부의 각광을 받았지만 왕정이 복구되자 다시 구체제 (앙시앙레짐ancien regime)으로 돌아간다. 낭만주의는 중세 역사 및 자연에 관심을 가지며 인간의 부정적인 면에 촞점을 맞춘다. 인간의 실수, 미친 사람들, 소외된 자 등 이성의 반대쪽으로 간다.
신고전주의 지중해권이 문명의 중심이라고 여겼지만 식민지를 개척하는 제국주의imperialism로 인해 sub human 문화가 이국적으로 보여 오리엔탈리즘이 대두된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및 오토만 터키 정복 후에 동양적인 문물이 프랑스에 유행한다. 프랑스 낭만주의는 1830년 대 까지 흘러간다.
왕정 복고 시대 왕실 미술 (1814-1830)
Francois Gerard, Portrait of Louis 18 of France in Coronation Robes, 19 C (제라드, 루이 18세의 대관식 초상)
1811년부터 나폴레옹의 군대가 열세에 몰리고 1815년 Battle of Waterloo 에서 참패하고 유배된다. 정권에 공백이 생기자 부르봉 왕가 루이 16세의 조카 루이 18세(1755-1824)가 그 동안 유럽을 떠돌다가 왕으로 등극한다(1814년).
Louis-Philippe Crepin, Allegorie du retour des Bourbons le 24 avril 1814 (루이 필립페 크레핀, 부르봉 왕가의 귀환)
루이 18세가 부르봉 왕가의 귀환을 축하하는 역사화를 그리라고 명한다. 늙고 땅딸한 루이 18세가 가슴을 드러낸 여자, 조국 프랑스를 안아 일으킨다. 힘이 없고 풍요로운 프랑스를 루이 18세가 구한다. 옷에 왕가 문장 백합 심볼이 있고 배경에 부강한 프랑스의 모습이 들어간다.
왕정 복구파의 부패corruption 가 심해지고 민심이 불안해지자 관심을 외부로 향한다. 그리스가 1827년 독립전쟁Independence War of Greece 을 하는데 프랑스 젊은이들을 파견한다. 1830년 북아프리카 알제리를 점령(Occupation of Algiers) 하여 국내의 군사를 알제리로 보낸다. 1789년 혁명보다 더 급진적인 1830년 7월 혁명으로 부르봉 왕정은 막을 내린다.
Old Bumblehead the 18th trying on the Napoleon Boots Louis XVIII Getting Ready for the Spanish Expedition (caricature) 루이 18세가 스페인 원정을 준비함
18세기 말 경 스페인 합스부르그 왕가의 대가 끊기자 프랑스 부르봉 왕가가 들어간다. 스페인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루이 18세는 사촌의 나라를 도와주려 한다. 군대를 보내려 하지만 루이가 뚱뚱하여 나폴레온 군화가 들어가지 않는 정치 풍자화이다. '성인 루이 9세여. 신발이 들어가게 해주소서'
Francois Gerard, Coronation of Charles X of France 1827 프랑소와 제라르, 샤를 10세의 댜관식

루이 18세가 죽고 1824년에 동생 샤를 10세(재위 1824-30)가 대관식을 한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죠세핀 대관식과 비슷하다. 어머니가 가운데 앉아있다.
François-Frédéric Lemot(1772—1827), Henry IV, 1818, Bronze, Paris; Pont Neuf 레모, 헨리 4세, 파리, 폰레프 다리
프랑스 전성기 16세기의 국왕 앙리 4세의 동상을 만든다. 왕비는 이탈리아 출신 마리 드 메디치 였다. 1810년 경 방동 광장에 세웠던 루이 14세 동상을 허물고 나폴레온은 자신의 동상을 세웠다. 그런데 이제는 나폴레온 동상을 녹여서 앙리 4세의 동상을 만든다. 왕정 복고 시대미술은 안정적이고 근엄한 취향으로 나폴레옹 이름이 언급되면 안 되었다.
Donatello, Gottamelata Plaza del Sante, Padua 1453 도나텔로, 가타멜라타 장군, 파두아
이전에 나폴레옹을 태웠던 기운 찬 말이 아니다. 15세기 도나텔로가 만든 얌전한 이미지로 기마상을 만든다. 레모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나폴레옹 동상을 만들었지만 왕정이 복고되니 시절에 부합되는 주제에 맞춰 작품을 한다.
Pierre-François Léonard Fontaine and Charles Percier, Chapelle Expiatoire, 1815-1826 페르시에, 퐁탠느, 샤페 엑스피아토와(회개를 위한 예배당)
왕정 복고시대에 진행했던 건축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넷, 아버지와 어머니를 파리시민이 죽였음을 평생 참회하라는 의미로 마들렌느 교회 매장지에 작은 예배당을 짓는다. 부르봉 왕가 루이 18세는 혁명 이전의 카톨릭 교회 시스템을 부활시킨다. 혁명 중에 파손된 교회를 보수하며 평민을 위한 정책을 허물고 upper middle class 의 부르조아 세력을 규합한다.

페르시에와 퐁탠느는 나폴레온의 촉망을 받던 건축가인데 시대가 바뀌자 명성을 세탁 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받는다. 판테온 느낌이 나는 신고전주의식 건물이며 밖은 관이 쭉 놓여있는 공동묘지이다.
아름다운 조각이 들어간 실내의 모습이다. 교회 앞 명문inscription에 루이 18세가 이 장소를 신성하게 만들어 루이 16세와 앙투아넷의 영혼이 편안한 안식을 취한다고 쓰여 있다.
Francois Joseph Bosie, Louis 16 Called to Immortality 1826 불멸로 가는 루이 16세
예배당 안에 두개의 추모 조각이 있다. 루이16세가 무릎 꿇고 기도하고 천사가 불멸Immortality 로 인도한다.
Jean Pierre Cortot, Marie Antoinette Supported by Religion 1826 / Jacques Louis David, Marie Antoinette on the Way to the Guillotine, drawing, 1793
아름다운 성처녀 같은 마리 앙투아넷이 종교의 부축을 받아 불멸로 가는 영웅적인 내용이다. 이전에 다비드가 그린 단두대로 가기 직전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Salon de Paris 사롱전 1748-1890
The Raft of the Medusa, Salon Carre of the Louvre 1831 메둣사의 뗏목, 사롱전 카르, 루부르
1725년 루이 14세가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왕립 미술학교 Academie des Beaux Arts 에서 처음으로 전시회를 연다. 중요한 대중 event 로서 전시회 전날은 국왕 및 프레스 기자들이 와서 볼 수가 있었다. 보좌르 아카데미 혹은 공공 건물에서 전시가 열린다. 1800년 즈음에는 작가들이 늘어나서 작품을 다 받아줄 수가 없었다. 1850년대에는 reject 된 그림들이 더 많은 상황이 된다. 거절된 자의 사롱 Salon de Refugee 전도 생긴다. 그림을 거절하는 제도권establishment 으로 되어 1860년대 쯤 되면 사롱전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
Anne-Louis Girodet de Roucey-Trioson, The Sleep of Endymion, 1793 Oil on Canvas 49x63cm, Musee du Louvre (지로데, 앤디미온의 잠)
달의 여신 셀레네가 잠을 자는 미소년 앤디미온을 보고 사랑에 빠지지만 밤에만 만나서 동터올 무렵에 잠시 사랑을 속삭인다. 에로스가 와서 장난을 치려고 한다. 애국심을 주제로 하는 주류 미술 신고전주의에 비교하면 decadent 하다. 사롱전에서 비판을 받고 구석에 걸린다.
도덕적 교훈을 주는 신고전주의 주제를 택하다 보니 그림이 딱딱해진다. 사랑을 노래하는 가벼운 주제minor mythological subject를 그리는 흐름도 나타난다. 다비드의 masculine nude 에서 벗어나 여성적feminine이고 동성애androgynous적인 여자 같은 남자들의 누드 그림이 나온다. 낭만주의 미학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Jacques Louis David, The Death of Socrates, 1787, Oil on Canvas 129.5x196.2cm,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고 다비드가 주장하는 남성적이고 upright 한 신고전주의 그림들이 환영을 받았는데 왕정이 들어서면서 느슨한 낭만주의 그림이 대두된다.
Anne-Louis Girodet de Roucey-Trioson, Portrait of Mlle. Lange as Danae Oil on Canvas 1799 지로데, 마드모아젤 랑그를 다나에로 그린 초상
살롱에서 내 세우는 공식 미술외에 비공식 미술 alternative이 있었다. 느슨하고 부드럽고 육감적인 누드를 그리는 몇명의 다비드의 제자들 그룹을 Primitifs(Primitives) 혹은 Barbus(Bearded Ones) 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 들라쿠루아에게 영향을 준다.
Detail, 지로데, 마드모아젤 랑그를 다나에로 그린 초상
범접할 수 없는 여신의 신성한 누드가 아니라 육감적, 세속적인 누드 이다. 제우스가 다나에와 사랑에 빠지는데 다나에 아버지는 딸을 높은 탑에 가둔다. 제우스는 황금비로 몸을 바꾸어서 다나에를 만나러 간다. 다나에가 황금비를 받고 있다.
Unknown Greek, Borghese Genious (Cupid), marble, Villa Borghese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큐피드 같이 나른하고 여성적인 조각이 있었다. 신고전주의에 반항하는 Primitifs 그룹들은 이런 조각에 심취해 있었다.
Jean Broc, Death of Hyacinth 1801, Poitiers, France, Oil on Canvas 178x126cm 쟝 브록, 하이야신스의 죽음
하이야신스는 아폴로신Apollo의 사랑을 받는 소년이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모델allegorical love 이 되는 신화 이다. 바람의 신이 질투하여 원반 던지기 하는 하이야신스를 절벽에서 떨어져 죽게 한다. 아폴로가 죽은 소년을 안고 슬퍼한다. 이런 그림을 살롱전에 내면 환영을 받지 못 하였다. 시점이 동터오는 무렵이고 자연이 강조observation of the nature 가 되며 새로운 미학이 대두된다.
Anne-Louis Girodet de Roucey-Trioson, Atala Carried to the Grave, 1808 Oil on Canvas 210x267cm 지로데, 무덤으로 가는 아탈라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이 쓴 당대 유행한 세속 소설 아탈라Atala를 주제로 한다. 아탈라와 애인은 북아메리카 인디언이지만 그림에는 인디언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탈라는 부족의 전통에 따라 순결을 약속하는데 쟈르칵과 사랑에 빠지자 자결을 한다. 고전에서 주제를 가져오지 않고 일상의 풍속을 주제로 하는 장르 페인팅minor genre painting 이 나오면서 낭만주의와 연결된다.
Louis-Leopold Rolly, The Reading of the Bulletin of the Grand Army 1807 Oil on Canvas 47x60cm 루이 레오폴드 롤리, 그랜드 아미의 소식지를 읽음

나폴레온 군대 소식지를 읽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전쟁에 나가야 한다. 사롱에 호평을 받지 못 한다. 자비로 그리므로 사이즈가 작다. 장르 페인팅minor genre painting 이다.
Horace Vernet (1789-1863), Battle of Montmirail, 1822, Oil on Canvas, 1.78 x 2.9 m 베르네, 몽미라일 전투

베르네가 사롱에 큰 그림을 선 보인다.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프랑스 군인의 정신을 그리려는 의도 이지만 나폴레온이 주도한 전쟁이었기에 루이 18세 측에서 거절을 한다. 베르네는 connection 이 좋은 화가 였기에 그림에 나폴레온이 절대 안 나오는 조건으로 그림을 그린다. 베르네는 로맨티시즘에 기여하며 orientalism 에 속하는 아랍 사람들을 많이 그린다.
Honore Daumier , This Year, Venuses Again... Always Venuses! (1864) the Salon from Le Charivati, 1864 French 오노레 도미에, 어머 비너스가 또 나왔어!
프랑스 국가가 주도한 살롱전이 1830-60년대 까지 유럽에서 제일 중요한 전시회였다. 들라쿠루와, 제리코가 그리는 낭만주의Romanticism는 1810년대에는 화단의 아방가르드 였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신고전주의가 공식 미술 이었다. 젊은 화가들이 프랑스의 아카데미에 들어가 교수가 되지만 시스템이 오래되다 보니 한번 자리를 차지하면 종신 교수가 된다. 1830년대 경에는 60-70 세 된 자크루이 다비드 제자들이 아카데미에 꽉 차 있었다. 살롱의 취향이 보수화되어 젊은 작가들이 싫어하는 분위기가 된다.
사롱전은 인기가 날로 더해간다.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 는 사롱전에 대한 풍자화caricature를 그린다. 문필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는 비평문을 쓰고 art critic 시스템이 생긴다. 멀리 사는 사람들을 위해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는 자세하게 그림을 묘사 한다.
Théodore Géricault (1791-1824), Officer of the Imperial Guard on Horseback, Salon of 1812, Oil on Canvas, 3.46 x 2.66m (제리코, 말을 탄 황실 근위병)
1812년 경 19살의 제리코가 엄청난 크기의 역사화를 사롱전에 낸다. 그림이 애매모호하고 이야기narrative 가 담겨있지 않지만 실력이 있다고 평을 받는다.
Jacques-Louis David, Napoleon Crossing the St. Bernard Pass (Alps) 1803, OIl Paint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온이 세인트 버나드 패스를 건넘
제리코의 <말 탄 황실 근위병>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온의 알프스 원정을 연상시키지만 outline 은 아주 다르다. 다비드는 라인이 보이지 않는 매끈한 그림을 그렸는데 제리코는 붓의 사용이 거칠고 색깔도 대조가 심하다. 다비드 류의 제도권 기법을 벗어나려는 경향이 보인다.
Pieter Claesz Soutman, Hippopotamus and Crocodile Hunt (after Peter Paul Rubens) 1615-16, engraving and etching (소우트만, 하마와 악어 사냥, 루벤스를 쫒아서)
피터 루벤스의 그림, 말 타고 뛰어 오르는 이국적인 군인의 모습이 프린트로 만들어졌는데 제리코가 이것을 보고 비슷한 구도를 썼을 거라고 한다.
Théodore Géricault, The Raft of the Medusa, 1819, Oil on Canvas, 491 x 716 cm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제리코는 <말 탄 황실 근위병>을 그리고 7년 후에 <메두사의 뗏목>을 사롱전에 낸다. 엄청난 sensation을 일으킨다. 프랑스 정부가 West Africa 로 보내는 상선 메두사를 타고 가던 상인, 군인, 노예 들이 세네갈 근처에서 풍랑을 만난다. 배에서 떨어진 나무 조각을 가지고 뗏목을 만들어 20일 동안 표류한다. 저 뒤에 구조선을 발견하고 죽을 힘을 다해 옷을 흔든다. 루부르에 걸려있는 큰 그림이다.
Detail,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인종을 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 이 나타난다. 1817년 쯤에 일어난 사건으로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몇 명 되지 않는 생존자를 인터뷰해서 놀라운 사실들을 알아낸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정치적 connection 으로 선장이 되어 사고 수습을 하지를 못 했다. 노예들을 다 죽이고 우리만 뗏목을 타자는 선장의 말을 엿들은 노예와 crew 들은 선장과 장교들을 죽이고 끝까지 살아 남는다. 이성과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반대쪽 양상이 드러난다.
Théodore Géricault, Mutiny on the Raft, 1818, drawing 161/3x231/4in 제리코, 뗏목의 반란

스켓치 중의 하나로 뗏목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도끼 칼을 들고 서로 죽인다. 죽은 자들, 팔 다리가 짤린 사람들이 있다. 낭만주의로 가면 주제가 처참하고 있는 그대로의 raw 한 인생을 드러낸다.
Théodore Géricault, The Raft of the Medusa, small scale model
제리코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피라미드 구도 2개를 겹친다. 모델을 만들어 assemble 을 미리 해 본다. 생존자를 직접 인터뷰 하고 시체 안치소morgue를 다니면서 스케치 연습을 한다. 인종 마다 physiognomy 가 많이 다르므로 노예들을 그리기 위해 파리에 있는 흑인들을 스케치 한다.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 인기를 얻자 프린트로 제작이 되고 영국에 가서 6-7개월 전시를 한다.
Ho Tzu Nyen (Singapore), Earth, single channel projection, 42 min, 2009/10, videographic remix 17th and 18th century Italian and French paintings (호쭈 니엔, 지구)
싱가포르 현대작가가 뗏목을 늘어놓고 사람들을 모아 Earth 라는 비데오 작품을 만든다. 호쭈 니엔은 17-18세기 유명한 명화를 staging 해서 사진을 찍는다.
Adad Hannah, The Raft of the Medusa(100 Mile House) 2009 아다드 해나, 메두사의 뗏목
현대 사진작가가 메두사의 뗏목을 staging 을 하여 사진으로 만든다.
Theodore Gericault, Pity the Sorrows of a Poor Old Man, 1821, Print, 31.5 x 37.5 cm 제리코, 불쌍한 노인의 슬픔에 대한 연민
제리코는 <메두사의 뗏목> 런던 전시를 하는 동안 런던 구석을 돌아다닌다. 빈부격차가 현저하다. 최하층 노동자 및 홈레스, 주정뱅이등을 그려서 프린트 시리즈로 만든다.
Theodore Gericault, Portrait of an Insane Man 1822-23 Oil on Canvas 82.5x66cm 제리코, 미친 남자의 초상
제리코는 32살에 죽는다. 미친 사람들을 그리는 초상화 시리즈가 마지막 프로젝트 였다. 인간의 이성 반대편에 있는 광기를 그린다. 정신과 의사 친구의 조언을 듣고 정신병원에 가서 외모에서 드러나는 병의 징후를 관찰한다. 눈이 이상한 정신 병자 이다. 사진이 없던 시절에 자료를 모으듯이 그림을 그린다.
Theodore Gericault, Portrait of an Insane Woman 1822 제리코, 미친 여자의 초상
12개 세트로 그린다. 1812년 경만 해도 나폴레온의 애국적인 초상화가 나오는데 불과 10여년 사이에 그림에 정신병자가 등장한다. 진보적, 긍정적 주제와 더불어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어두운 면이 주제로 나온다.
Eugéne Delacroix by Nadar 1798-1863 유진 들라쿠루와, 사진 작가 나다르
제리코를 흠모하던 낭만주의 화가 들라쿠루와는 제리코와는 달리 오래 살았다. 사진기가 1850년 경에 나와서 이 시기부터 화가들은 초상 사진을 가진다. 친구인 보들레르Baudelaire는 '열정passion과 사랑love을 가진 동시에 표현은 정교, 냉철하게 하는 화가' 라고 평했다. 외무부 고위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명문고등학교Louis-le-Grand을 졸업한다. 아버지를 여위고 뒤를 봐주는 아버지 친구의 소개로 로얄 아카데미에 들어간다. 신고전주의 작가 게린Guerin 에게서 배운다.
아카데미에서 만난 친구 제리코와 뜻이 맞는다. 다비드의 그림은 boring 하며 네덜란드 출신의 루벤스의 그림의 선이 dynamic 하고 색이 좋다고 의견을 모은다(admirer of Rubens). 들라쿠루와는 스페인과 북 아프리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Orientalism 그림을 주로 그린다. 1830년에 알제리Algiers가 프랑스 식민지 French colony가 되자 식민지의 민간 풍습에 대한 그림을 그리라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오리엔탈리즘 그림을 많이 그린다. 들라쿠루와는 말년에 쿠루베 등 인상주의 젊은 작가들이 제일 존경하는 화가가 된다.
Eugéne Delacroix, Dante and Virgil, 1822, Oil on Canvas, 189 x 246 cm 들라쿠루와, 단테와 버질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에 감명을 받은 들라쿠루와는 <단테와 버질>을 살롱전에 낸다. 초기 르네상스 이탈리아 시인 단테가 지옥inferno을 방문한다. 로마 시인 버질의 손에 이끌려 불타는 지옥을 피해 천국으로 오려고 하는데 저주받은 자들이 배에 타려고 아우성을 친다. 제리코의 뗏목에서 몸부림치는 표류인들과 비슷한 이미지이다. 신고전주의 기하학적인 구도와는 거리가 멀다. 육감적이고 뚱뚱한 여자들의 몸, 강렬한 색에서 루벤스 영향이 드러난다.
Eugéne Delacroix, The Massacre of Chios, 1824, Oil on Canvas, 419 x 354 cm (들라쿠루와, 키오스 섬의 대학살)
1824년에 제리코가 죽자 들라쿠루와가 유일한 떠오르는 낭만주의 화가가 된다. 그리스는 오토만터키제국의 일부 였는데 독립 전쟁을 벌이고 프랑스는 그리스를 도와준다. 오토만 제국은 유럽 전체 공공의 적이었다. 오토만 터키인이 키오스 섬의 그리스 민간인을 학살한다. 오후 3-4 쯤 된 어두운 하늘과 풍경이 펼쳐진 당대의 역사화 및 장르 페인팅이다. 낭만주의 중요 주제인 비극적 사건으로 오리엔탈리즘 그림이다. 우리가 아닌 남들, 식민지의 others 에 대한 관심이 일어난다.
Detail 들라쿠루와, 키오스 섬의 대학살
프랑스 혁명의 영향이 유럽 변방에도 퍼져 독립을 하려는 그리스인이 오토만제국을 침략해서 마을 사람 수천명을 불 태워 죽인 사건이 있었다. 키오스섬의 대학살은 터키인의 보복전인 셈이다. 들라쿠루와의 그림에 이런 정치적 관계는 나타나지 않고 프랑스인으로 그리스인의 독립을 바라는 의미가 담겨져있다.
Detail 들라쿠루와, 키오스 섬의 대학살
들라쿠루와는 그림은 물감의 조합이라고 하면서 색만으로 그림을 그리려 했다. 드로잉 위에 옷을 입히듯 색을 칠해야 하는데 드로잉은 무시하며 붓 자국이 거칠다. 다비드의 제자 안토인 그로Antoine-Jean Gros 는 미술의 학살a massacre of art 이라고 악평한다. 그림자는 점진gradation적으로 어두워져야 하는데 들라쿠루와는 기본적 방식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색을 썼다. 소매에 벽돌색 믈감을 확 칠하여 그림자를 표현한다.
Delacroix, The Massacre of Chios, watercolor 1820s 들라쿠루와, 키오스 섬의 대학살, 수채화
그림을 처음 완성했을 때는 수채화 비슷하게 색이 알록달록 했는데 시감이 지남에 따라 색이 변했다. 공장에서 만든 물감이 품질이 안 좋아 처음에는 색이 선명했지만 불순물이 섞여 그림이 어두워졌 다. <The Massacre of Chios>이 나왔을 당시 transitional 한 색이 아니라 빨강, 파랑 등의 강렬한 색이 비평가의 눈에 많은 불편함을 주었다.
Yue Minjun, Massacre at Chios 위에 민준, 키오스 섬의 대학살
1968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현대 작가로 그림 값이 치솟고 있다. 키오스의 대학살을 재해석했다. 동양적인 학이 날고 말탄 아랍인이 있다. 위에 민준의 그림에는 다 냉소적으로 웃는 가면 같은 얼굴이 등장한다.
Eugene Delacroix, Death of Sardanapalus, Oil on Canvas, 1827-28, 392 x 496 cm 들라쿠루와, 사르다나팔로스왕의 죽음
살롱 출품작이다. 앗시리아 고대 역사 이야기로서 오리엔탈리즘 그림이다. 적군에게 항복을 할 즈음에 왕은 말, 첩들을 다 죽이고 금은 보화는 태우라고 명한다. 제일 아끼던 애첩은 잡히느니 독을 마시고 차라리 자결을 한다. 이 시대에 쓰여진 영국 시인 바이런의 희곡 Lord Byron's play Sardanapalus(1821)에서 장면을 상상하여 그림으로 표현한다. 빨강색이 피바다를 예고한다. 빛에 살짝 하이라이트가 된 여자들의 육감적인 몸이 루벤스를 닮았다.
Peter Paul Rubens, Arrival of Marie de Medici at Marseilles 상륙1622-25 루벤스, 마리 드 메디치의 마르세이유 도착
17세기에 메디치가의 딸이 프랑스왕 앙리 4세의 왕비가 되기 위하여 마르세이유에 상륙하는 장면을 루벤스가 여러점 그린다. 들라쿠루와가 구도 및 색에 영향을 받았을 것 이라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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