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고야와 스페인 미술 2/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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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860회 작성일 13-02-2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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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6th hour: Francisco de Goya and Spanish Art
19세기 미술사를 결정짓는 사건은 주로 프랑스에서 일어난다. 스페인 합스부르그 왕가의 대가 끊겨 프랑스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에들어서고 18세기 말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스페인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시기에 민족주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가 왕성하게 활동한다.
Spain, 19th Century

스페인은 17-19 세기에 걸쳐 남미를 식민지로 가지고 부와 명예를 누린다. 18세기 말을 넘어가면서 스페인을 지배하던 합스부르그Habsburg 왕가가 대가 끊긴다. 챨스 4세가 결혼을 여러번 했지만 후계가 없자 왕위계승 전쟁으로 이어진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 프랑스 루이 14세가 왕위 계승 전쟁에서 이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부르봉Bourbon 왕가는 합스부르그 왕가와의 결혼을 통하여 스페인 왕위 계승 서열에 이미 올라 있었다. 루이 14세는 조카 뻘을 스페인의 국왕으로 앉히고 스페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프랑스 부르봉 왕가에서 스페인에 보낸 챨스 2, 3세는 사회개혁 정책을 펴지만 성공하지 못 한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루이 16세가 스페인 국왕 챨스 4세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별로 도와주지 않는다. 챨스 4세는 고야가 섬기던 군주이다. 1793년에 프랑스 혁명 정부군들이 루이 16세 사촌의 나라 스페인이 불안하여 쳐들어 온다.
Giovanni Battista Tieplolo, The Apotheosis of the Spanish Monarchy, Fresco, 1764-1766, Royal Palace, Saleta de la Reina, Madrid, Spain (티에폴로, 스페인 군주의 승천, 프레스코, 마드리드 궁전)
이탈리아 로코코 스타일 화가 티에폴로는 비엔나, 스페인 등에 커미션을 받아 일을 하러 다닌다. 국력이 막강한 스페인은 선두를 달리는 작가를 부른다. 마드리드의 궁전에 여왕이 거주하는 방의 천정화 이다. 스페인 국왕에게 천사가 경의를 표한다.
Anton Raphael Mengs, The Apotheosis of Hercules, Ceiling Fresco, 1762-1769, 1775, 9.5 x 10.3 m, Royal Palace, Antecamara de Gasparini, Madrid, Spain (멩스, 허큘러스의 승천, 프레스코, 마드리드 궁전)
독일인 맹스는 로마에 거주하면서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각국의 화가에게 기르친다. 스페인 국왕의 초대로 로얄 팰러스에 와서 그림을 그린다. 미켈란젤로를 연상시키는 고전주의 르네상스 풍의 견고한 구도이다.
Anton Raphael Mengs, Charles II, Museo del Prado (멩스, 챨스 2세)
스페인은 남쪽에 있어서 화가들의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다. 스페인 화가들은 자국을 방문한 외국 화가들에게 유럽의 새로운 사조을 배운다. 멩스가 스페인에 있을 시기에 국왕은 챨스 2세 였다. 18세기 말 계몽주의 사조가 퍼지고 스페인의 지식인도 근대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챨스 2세 역시 개혁의 의지가 있었지만 유능한 왕은 아니었고 프랑스에서 온 대리 왕조였기에 국민들의 반감이 있었다. 멩스는 신고전주의의 조화된 색을 쓴다. 붉은 빛이 도는 얼굴의 챨스 2세를 그대로 표현하면서도 제왕의 장엄함을 곁들인다. 멩스는 고야에게 영향을 준다.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
프란시스코 고야 초기 작품
Goya, Self-Portrait 1795-97
고야의 아버지는 미술계에 종사하는 금도공guilder 였다. 남쪽 아라곤 출신으로 마드리드로 옮겨가서 로얄 아카데미에 신청을 하지만 여러번 떨어진다. 로마를 다녀온 후에 당시 각광을 받던 화가 슈비아스Francisco Bayeu y Subias 공방에서 일을 하다가 슈비아스 형제의 누이동생과 결혼한다. 1770년대에 로얄 아카데미에 들어가 1789년에 챨스 4세의 court painter 가 된다. 말년1824-28에 스페인의 정치 상황에 낙심을 해서 스페인을 버리고 프랑스 보르도Bordeaux로 이사를 가서 죽는다. 현실이 자신의 이상을 받쳐 주지 않는 괴로운 삶을 살았다.
Goya, Self-Portrait 1780-95 Royal Academy of San Fernando, Madrid (고야, 자화상) / Rembrandt, The Artist in His Studio 1629 (렘브란트, 스튜디오에 있는 화가)

1790년대 궁정화가 시절의 고야의 자화상 이다. 네덜란드 바로크 거장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스페인에서 고야 이전에 이름이 있던 화가는 벨라스퀘즈Velazquez 이다. 고야는 벨라스퀘즈를 공부하며 계몽주의 철학 사조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과 교제를 하면서 교양을 쌓는다. 피카소, 후안 미로, 달리 및 영화 제작자 브뉴엘 등이 19세기 말에 스페인에서 나온다.
Self-Portrait,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프란시스코 고야, 자화상)
고야는 프랑스 혁명 직후에 시골로 스켓치 여행을 떠났다가 병을 얻는다. 안달루시아 산골에서 적절한 치료를 못 받아서 귀가 점점 멀게된다. 마네, 피카소, 프란시스 베이컨 등 근대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modern painter 이다. 스페인에 오래 머문 마네Edouard Manet 는 고야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붓 터치로 인상주의를 시작한다. 그림의 풍이 다양한 고야는 프랑스 작가에게 재발견 된다.
Francisco de Goya, The Blind Guitarist 18 C etching (고야, 장님 기타리스트 )
고야는 초창기에 테피스트리 디자인을 한다. 테피스트리 카툰을 파는 일은 그래도 이윤이 남았다. 시골 사람들의 생활 모습 장르 페인팅 이다. 디자인이 복잡해서 짤 수 없다고 하여 사람들을 줄이고 음영법을 빼서 단순하게 만든다.
Francisco de Goya, Parasol, Cartoon for a Tapestry, 1777-1778 (고야, 파라솔, 테피스트리 카툰)
채색을 한 테피스트리 도안이다. 고객이 주문하기 전에 보이기 위한 디자인을 카툰cartoon 이라고 한다. 햇볕이 내리쬐는 초여름 날 잘 생긴 남자가 우산을 받쳐주고 여자의 무릎 위에 고양이가 있다. 무르익는 사랑의 로코코 분위기 이다. 간단하게 그려야 효과적인 테피스트리가 나온다.
Goya, The Passage to Andalusia 1777 (고야, 안달루시아로 가는 길 )
테피스트리를 만들기 위하여 색깔이 화려하다. 마하Maja는 여자, 마후Majo는 남자 이름으로 평민층의 흔한 이름이다. 스페인 사람들이 안달루시아로 여행을 가는 중에 지팡이를 내려놓고 쉬고 있다. 당시 엘리트들은 계몽주의 영향으로 프랑스 풍 로코코 옷을 입었지만 서민들은 스페인 토착 의상을 입었다. 마후가 아프란세사도스(afrancesados, Frenchifed프랑스 풍으로 차려입은 사람)에게 싸움을 건다. 문화 간에 identity struggle 을 보여준다.
Goya, Las Meninas after Velazquez 1778 etching, drypoint, burin, aquafint (고야, 벨라스퀘즈를 따라 그린 라스 메니나스(하녀들)

고야는 스페인 왕실 콜렉션을 판화 앨범으로 만든다. 유명한 벨라스퀘즈의 <라스 메니나스 (하녀들)> 을 판화로 만든다. 에칭, 아쿠아틴트,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함께 쓴 테크닉이다. 흰색과 검은 색의 뚜렷한 대조extreme contrast 가 고야 판화의 특징이다. 거친 필성 느낌도 강하면서 정교하다.
Francisco de Goya, The Injured Mason, 1786-1787 (고야, 다친 벽돌공)
장르 페인팅이다. 집 짓다가 떨어져 다친 기술공을 데리고 간다.
Goya, Jose Monino y Redondo, Count of Floridablanca 1783 (고야, 모니오 레돈도, 플로리다블랑카 지역의 공작)
1777년에 로마를 다녀온 후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귀족들 초상화도 그린다. 부와 명예를 보여주는 사실적인 얼굴이다. 손에 안경을 들고 흐뜨러진 지도 사이에서 정무를 본다. 멩스가 그린 챨스 2세 초상화와 닮았다.
Goya, Condesa de Altamira and Her Daughter, Maria Agustina 1787-88 (고야, 백작 부인 콘데사 드 알타미라와 딸, 마리아 아우구스티나)
고야와 친하게 지내던 귀족 알타미라 가문의 초상화를 그린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있다. 연분홍 옷에 brush stroke 이 거칠다. 옷이 luxurious 하면서도 주인공을 압도하지 않는다. 라틴 아메리카와 스페인의 초상화에는 밑에 이름, 날짜가 들어간다. 바로크 17세기 부터 많이 나오는 고졸한 전통 이다.
Goya, Manuel osorio Manrique de Zuniga(1784-92) 1790s (고야, 마누엘 오소리오 만리퀘 드 쥬니아)
알타미라 공작 아들이 죽은 후에 그린 초상화 이다. 일찍 죽었음을 암시하는 고양이, 갖혀있는 새, 까치 pet magpie 가 있다. 고야의 이름이 적힌 카드가 있다. 밑에 희미하지만 이름과 날짜가 있다. 빨강 예복을 입은 귀족 소년과 정물이 자연스럽게 잘 배치가 되어있다.
Goya, Don Sabastian Martinez y Perez (1747-1800) 1792 (고야, 돈 세바스티안 마티네즈 페레즈)
고야의 친한 친구로서 카디즈Cadiz 지방의 재정 담당 관료이자 미술품 수집가 이다. 프랑스물을 먹은frenchifed 세련된 옷차림 이다. 프랑스에 동조하는 개화된 지식인이다.
Detail (고야, 돈 세바스티안 마티네즈 페레즈)
고야는 안달루시아의 카디즈지방으로 여행을 가서 병이 나는데 친구 세바스티안이 병구완을 해준다. 손에 들고 있는 편지에 '나의 친구 세바스티안을 위하여' 라는 구절과 '너의 친구 고야 1792년' 이 들어있다.
48 세 이후 귀병을 얻은 후 고야 작품 (1794-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는 굉장히 혼란했다. 스페인의 지식인들은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의 권력이 무너지는 것을 마음을 졸이면서 지켜본다. 내심 스페인에 혁명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만 스페인 국왕 챨스 4세는 폭풍의 여파가 스페인까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사촌인 루이 16세를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 이었다. 챨스 4세는 개혁을 하여 민심을 부드럽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개혁의 결과는 만족스럽지도 않고 스페인은 농업 현물 중심 경제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Goya, Yard with Lunatics 1794, Fantasy and Invention (정신병자의 뜰)
1793년에 고야는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하고 온 후 시력에 문제가 생긴다. 마드리드로 돌아와 병에서 회복하는 동안 (1793-94) <Fantasy and Invention> 이라는 11개의 작은 그림집을 발간한다. 정신병자, 소외된 자 등 사회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을 그린다. 병마와 싸우는 모습 등 자조적 감정, 사회에 대한 원망 등이 그림에 나타난다. 수도원 벽 안에 갇힌 미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막 싸운다. 이성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추악한 면을 그린다.
근대 사회로 감에 따라 자아개념 subejcthood 이 생긴다. 고아는 사회의 일원에서 그치치 않고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근대화가들은 이런 면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근대 사회로 감에 따라 자아개념 subejcthood 이 생긴다. 고아는 사회의 일원에서 그치치 않고 자아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근대화가들은 이런 면을 다 가지고 있었다.
Goya, Portrait of the Duchess of Alba, 1797, Hispanic Society of America (고야, 공작부인 알바의 초상)

알바 공작 부인의 초상화를 그린다. 마하Maja스러운 스페인 전통 복장이다. 소문에 의하면 고야와 연인 사이라고 한다. 금실이 들어간 옷, 신발 등 Grand Manner Portrait 처럼 야외에 서 있는 귀족 부인의 전신상 이다. 베일은 물감을 발라놓은 듯 거칠고 대담하다.

뉴욕의 Hispanic Society of America에 그림이 있다.
Detail, Goya, Portrait of the Duchess of Alba 1797 (고야, 공작부인 알바의 초상)
고야가 그린 초상에는 글이 나온다. 바닥에 모래로 쓴 '프란시스코 드 고야' 가 공작부인 쪽으로 향해있다. 치밀한 고야의 playful trick 이다. 알바가 새겨진 반지를 낀 손으로 고야 이름을 가르치고 있다.
Francisco de Goya, Los Caprichos, Self-Portrait 1799, Etching, aquatint and drypoint (고야, 자화상, 로스 카프리쵸스)
1799년에 고야는 first court painter 로 승진을 하고 동시에 <Los Caprichos로스 카프리쵸스, 우스광스러움, 변덕스러움> 판화집을 개인적으로 낸다. 귀머거리가 된 중년의 고야 초상이 첫페이지에 들어간다. 80개의 etching 이 들어가며 테크닉은 에칭, 아쿠아틴트 이다. 아쿠아틴트는 흰색을 강조하는 기법이다.
스페인의 국교는 카톨릭 이지만 15세기 말까지 무슬림들이 남쪽에서 살았기에 문화가 혼합이 되어 미신이 굉장히 많다. 민속적인 미신과 커톨릭적 미신이 합해져서 결혼할 때는 사제에게 하지만 한편 산골에 가서 witch 에게 주술을 빌기도 한다. ghost, nightmarish vision, 사회의 부조리 등이 판화에 나타난다. 고객층은 부르조아들로서 우스꽝스런 표현으로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고발적이다.

카프리쵸스를 선전하는 홍보물에 계몽주의 영향을 받은 광고문구가 있는데 artist statement 에 해당된다. 고야는 문학 작품만이 human error 를 지적하는 것은 아니며 화가도 그런 역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는 것에 그치치 않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inventor 로서의 역활을 강조하는 근대적인 생각을 피력한다.
Goya, Los Caprichos, They say yes and give their hands to the first that comes, page 2 (로스 카프리쵸스, 여자들은 먼저 청하는 사람에게 예스 한다 )
늙은 노파가 얼굴을 가린 처녀에게 누구든 먼저 청혼하는 자와 결혼하라고 충고를 한다. 남자들이 주도하는 대로 끌려 다니는 여자들의 사회 풍습에 대한 비판이다.
Goya, Los Caprichos, Neither More Nor Less (로스 카프리쵸스, 덜도 더도 아니고 주는 것 만큼 )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서 당나귀는 원숭이가 주는 대로 받아 먹는다.
Goya, Los Caprichos, The Sleepof Reason Produces Monsters, frontispiece (로스 카프리쵸스, 이성의 잠은 괴물을 창조한다. )
이성이 자고 있으면 괴물이 들끓는다. 시회 개혁이 실패를 거듭하니까 구습이 없어지지 않는다. 작가가 힘이 들어 잠을 자니까 박쥐가 공간을 떠돈다.
Goya, Los Caprichos, One Hunting for Teeth, plate 12 (로스 카프리쵸스, 이빨 사냥)
죽은 자의 이빨은 힘이 있다고 하여 몰래 빼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악습적인 미신superstitious beliefs 을 풍자한다.
Goya, Los Caprichos, If he Broke the Pitcher, plate 25 (로스 카프리쵸스, 병을 깨면 알지? )
아이들의 노동이 당연시 되었다. 일하다가 물항아리를 깨면 얻어 맞는다. 계몽주의 사상가 장쟈크 루소는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Goya, Los Caprichos, For Heaven's Sake; it was her mother (로스 카프리쵸스, 어머나 세상에 그녀의 엄마 잖아 )
예쁜 여자가 지나가길래 희롱했더니 그녀의 엄마 잖아. 남쪽 지중해성 문화는 자유 분방하여 연애도 많이 한다. 결혼에 대힌 도덕적인 관념을 풍자한다.
Goya, Los Caprichos, Perhaps a Student Might Know Better (로스 카프리쵸스, 아마 내가 더 많이 알 걸 )
똑똑해 보이는 당나귀가 딸랑이 든 애기 선생에게 배운다. 새끼 당나귀가 아는 것이 더 많다. 성직자가 가르치는 학교 재단이 시대에 낙후되어 있다.
Goya, Los Caprichos, What a Tailor Can Do? (로스 카프리쵸스, 옷쟁이가 대단한 일을 하네 )
무지 몽매한 마을 여자들이 수도승 옷을 입힌 나무에 기도를 한다. 매달리며 구원을 청하지만 성직자가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
Goya, Los Caprichos, She Prays for Her( A Nun is praying for a prostitute) (로스 카프리쵸스, 창녀를 위한 수녀의 기도 )
창녀가 준비하고 나가는데 묵주를 든 수녀가 성공적인 비지니스를 위해 기도를 해 준다.
Goya, Los Caprichos, Do Not Scream, Stupid (로스 카프리쵸스, 소리지르지 마, 이 멍청아 )
탁발승friars 이 젊은 여자에게 혹해서 공격한다.
Francisco de Goya, King Charles IV of Spain and his Family, 1800 (고야, 스페인 국왕 챨스 4세와 가족)

1799년에 왕실의 1급 화가로 승진을 해서 royal commission 을 받는다. 왕자가 빨강 예복을 입고 있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옆에 서 있다. 왕실 콜렉션 그림이 벽에 걸려있다. 한쪽 캔버스 옆에 이젤을 든 고야가 서 있다.
Diego Velazquez, Las Meninas 1656 (벨라스퀘즈, 라 메니나스)
고야의 <챨스 4세 가족 초상>은 벨라스퀘즈의 <하녀들>을 염두에 둔 그림이다. 마가레타 공주의 하녀 및 시종이 있고 국왕과 왕비가 거울에 reflection 으로 나타난다. 벨라스퀘즈는 이젤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에 그린다. 벨라스퀘즈가 존경하던 거장 루벤스의 그림이 벽에 걸려있다.
Detail, King Charles IV of Spain and his Family
고야는 벨라스퀘즈처럼 늠름한 모습이 아니라 병에 찌들어서 구석에 서 있다.
Ingres, Portrait of Napoleon 1806 (엥그르, 나폴레온 초상) Detail, King Charles IV of Spain and his Family
앵그르는 젊고 유능한 나폴레온을 신고전주의 식으로 그리지만 고야는 무능해 보이는 챨스 4세를 이전의 로코코 양식의 rough 한 brush stroke 으로 그린다. 고야는 인물들을 아름답게 보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Detail, The Family of Charles IV
19세기 프랑스 미술 비평가 테오필 코티에 Theophil Gautier 는 챨스 4세가 벼락부자가 된 빵집 주인(The figures the corner baker and his wife after they won the lottery) 같다고 평한다. 위엄과 존엄이 전혀 없고 뚱뚱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 챨스 4세 가족은 이 그림을 받고 좋아했다고 한다.
Goya, King Charles IV of Spain and his Family, 1800
뒤에 걸려있는 그림은 성경에 나오는 룻과 그의 딸들 Lot and his daughters 로서 부패하고 희망이 없는 (corruption and decay) 당시 스페인의 분위기를 암시한다. 챨스 4세가 무능해서 실제 권력은 왕비 루이자가 누렸다고 한다. 왕비가 중심에 있는 구도이다.
고야 58세 이후 프랑스 침략 시기 1808-14
프랑스가 스페인을 침략한다(French Invasion of Spain 1809-1814). 프랑스 왕 루이 16세가 벌써 처형 되었지만 사촌인 Bourbon왕가가 다스리는 스페인이 불안해서 나폴레옹이 대대적인 군사 캠페인을 벌인다. 나폴레온은 챨스 4세와 가족들을 몰아내고 형 죠셉 보나파르트Joseph Bonaparte를 왕으로 앉힌다. 나폴레온의 어용정부가 된 스페인의 굴욕humiliation 은 극에 달한다.
작가들의 처지는 또 곤란해진다. 고야는 나폴레옹 정부에게 충성 맹세 allegiance 를 하고 1811년 공로 훈장Royal Oder of Spain 을 받지만 형식적으로 한 맹서 라고 보아진다.
Goya, Jose Costa y Bonells (d. 1870), Pepito 1810 (고야, 코스타 보넬스 or 페피토)
의사 친구의 아들 초상화를 그려준다. 나폴레온 치하를 벗어나려는 스페인 독립 운동(Spanish War of Independence 1808-14)에 동조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군복 유니폼 및 모자, 말, 전시에 쓰는 드럼, 나팔도 있다. 영국 왕이 말에서 내리는(dismounted) 기마 초상에서 구도를 따 온 것 같다.
Francisco de Goya, The Second of May, 1808 (The Charge of the Mamelukes), 1814 (고야, 1808년 5월 2일)

나폴레온이 1814년에 엘바섬으로 유배되자 부르봉Bourbon 계열 스페인 왕이 복구된다. 고야는 나폴레옹 점령 시기에는 왕실 프로젝트는 피하다가 페르디난드 7세가 돌아오자 나폴레옹 군대가 시민들을 죽이는 장면의 큰 역사화를 2개 그린다.
고야는 <1808년 5월 2일> 을 그린다. 나폴레온이 북아프리카 원정 시에 데려온 이집트 출신 사라센 (맘룩Mamelukes)을 마드리드에 투입시킨다. French imperial guard 로 특별 훈련이 된 elite 용병 맘룩은 시내 광장에서 무자비하게 마드리드 시민들을 죽인다. 15세기에 모슬림을 겨우 몰아낸 역사가 있는 스페인이 그들에게 다시 당하는 치욕을 겪는다.
Francisco de Goya, The Third of May, 1808, 266x345 oil on canvas, 1814 (고야, 1808년 5월 3일)

고야는 같은 주제로 <1808년 5월 3일>을 그린다. 어두운 밤에 시내를 굽어보는 언덕에서 줄을 세워 죽인다. 프랑스군의 얼굴을 일부러 보이지 않는 이 그림이 학살자의 구도로서 유명해진다. 학살자의 identity 는 나타나지 않아 더 무섭다.
Detail, Goya, The Third of May, 1808
십자가에 팔을 벌린 예수님처럼 흰옷을 입은 남자는 겁에 질려있지만 의연하게 죽는다. 고야는 벨라스퀘즈와 렘브란트 영향을 받았으며, contrast 가 강하고 fluid brush stroke 을 사용한 표현적인 그림을 그린다.
Edouard Manet, Execution of Emperor Maximilian of Mexico 1867-69 (마네, 맥시밀리언 황제의 처형)

19세기 말에 마네는 비슷한 구도로 멕시코 국왕이 처형당하는 그림을 그린다. 총쏘는 사람은 얼굴이 없다.
Picasso, Guernica 1937 (피카소, 게르니카)

독일의 폭격으로 스페인의 게르니카 마을 전체가 망가진다. <The Third of May> 에 나타난 팔벌리고 있는 사람과 비슷하다.
Picasso, Massacre in Korea 1951(피카소, 코리아의 대 학살)
피카소는 한국 전쟁에 대한 언급을 한다. 고야의 <The Third of May>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Hwanghae, Sinchon Massacre of North Korean Communist Sympathizers by American & South Korean Soldiers)
(Hwanghae, Sinchon Massacre of North Korean Communist Sympathizers by American & South Korean Soldiers)
Goya, Los Desastres (The Disasters of War), Great Heroism! Against Dead Men! plate 39, 1810-1815, Etching & Aquatint (고야, 사람을 죽이는 영웅심, 전쟁의 참혹함)
고야는 85개 판화 시리즈 <Los Desastres> 앨범을 만드는데 생전에 발표되지 못 했다. 로스 카프리쵸스처럼 에칭과 아쿠아틴트를 사용했다.
프랑스 정복 French occuption 시기 동안 스페인 사람들의 복수가 이어지고 전쟁은 참혹하다. 프랑스 군인이 가한 행위 이다. 총부리와 죽은 사람만 보이는 근대적 구조이다. 파노라마처럼 전체를 보이는 구도가 아니라 부분만 close up 시켰다.
수도승, 귀족, 평민 등을 줄줄히 목을 매어 끌고 간다.
Goya, Naked Maya, Dressed Maya 1797-1800 Goya Dressed Maya (고야, 옷 벗은 마야, 옷 입은 마야)
혼자 보려고 그린 그림으로 고야 생전에 공개되지 않았다.
Goya, Dressed Maya (고야, 옷 입은 마야)
전통 옷을 입은 평범한 여자, 마야는 스페인의 흔한 이름이다.
Goya, Naked Maya 1797-1800 (고야, 옷 벗은 마야)
누드를 그려도 지켜야 할 관습이 있는데 고야는 관습을 깨뜨리고 적나라하게 그린다. 고도이Godoy의 콜렉션에 들어있어 19세기 초 까지도 외설스럽다고obscene 공개되지 않은 그림이다. 1850년 경에 쿠루베의 <The Origin of Human > 이 나온다.
Velazquez, The Rockery Venus 1647-51 (벨라스퀘즈, 비너스)
<옷벗은 마야> 의 소스는 벨라스퀘즈의 <The Rockery Venus> 이다. 비너스가 뒷모습을 보인다. 거울에 얼굴 reflection 이 비친다.
Nicola Bailey, Art History Intervention Series, The Rockery Venus1647-51 by Velazquez, La Maja Desnudo 1800-05 by Goya, postcard series (니콜라 베일리, 아트 히스토리 중재 시리즈, 벨리스퀘즈의 락커리 비너스와 고야의 옷벗은 마야)

현대 작가가 두 거장의 그림을 합친다. 벨라스퀘즈의 비너스인데 거울의 reflection 은 고야의 그림에서 떼온다. 작품들을 합치거나 살짝 변형시켜 우편엽서 사이즈로 reproduction image 를 만들어 세계 유명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 gift shop 에 살짝 끼워둔다. 행위 자체가 포함되어 작품이다.
68세 이후 말년의 고야 작품 1814-1828
Quita del Sordo Goya 1900, 1909 demolished (퀴타 델 소르도, deaf man's house)

귀가 전혀 안들리는 고야는 말년에 마드리드 근교로 이사를 한다(1819-24). 전 집주인도 귀가 먹어서 귀머거리의 집이라고 불린다. 고야는 1814년 이후로는 외부와 접촉을 끊고 집에 칩거하면서 혼자 보기 위한 그림을 그린다. 이것을 Black Painting Series 라고 한다. 고야가 죽은 후 1830년대에 발견이 되어 지금은 마드리드 박물관에 있다.
Goya, Black Painting Series, Computer-Generated Reconstruction (고야. 블랙 페인팅시리즈)

고야의 말년의 집을 재구성 했다. 14개의 다 어두운 그림으로 Black Painting Series 이라고 한다.
방의 구조에 맞추어 블랙 페인팅 그림들이 배열되어 있다. 일관적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Francisco de Goya, Saturn Devouring One of His Sons, The Series of Black Paintings, 1820-1823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새턴, 블랙페인팅 시리즈)
제우스의 아버지 새턴이 자기 아들을 먹는다. 거인족 새턴은 자식들을 낳아서 잡아먹는데 제우스는 시스터 헤라와 함께 꾀를 써서 거인을 죽이고 그리스 신화가 시작된다. 아버지를 죽인 patricide 의 기원이 된다. 말년의 고야는 마음이 피폐해 있었다. 집의 벽에 그린 mural painting을 캔버스로 옮긴다.
Peter Paul Rubens, Saturn Devouring His Son 1636
고야는 루벤스의 그림을 염두에 두고 <자식을 잡아먹는 새턴> 을 그린다.
Goya, A Pilgrimage to San Isidro, the Series of Black Paintings, 1820-1823 (고야, 산 이지도르로 가는 순례, 블랙 페인팅 시리즈)

수도원에 가는 순레객이 맹목적인 환각 상태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이다.
Goya, Witches Sabbath, the Series of Black Paintings, 1820-1823 (고야, 마녀의 향연, 블랙 페인팅 시리즈)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염소 얼굴의 witch 가 하는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다. 이성이 잠자고 있는 시절의 사람들이다.
Goya, Judith Killing Holofernes, the Series of Black Paintings, 1820-1823 (고야, 쥬디스가 홀로페르네스를 죽임, 블랙 페인팅 시리즈)
유대 여인 쥬디스가 나리를 구하기 위해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죽인다. 창작 의지에 따라서 그리고 싶은대로 그린 근대적인 그림이다. 고야가 살아 생전에는 블렉 시리즈가 있는 줄도 몰랐다.
Goya, Two Old Man Eating Soup, the Series of Black Paintings, 1820-1823 (고야, 숲을 먹는 두 노인, 블랙 페인팅 시리즈)
반고호가 연상되는 근대적인 그림이다. 말년에 고야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Goya, Two Old Man, the Series of Black Paintings, 1820-1823 (고야, 두 노인, 블랙 페인팅 시리즈)
Goya, Leocadia, maid & lover, seductress? Milkmaid of Bordeaux 1825-27 Leocadia Weiss? Rosario? (고야, 레오카디아, 메이드 겸 애인/ 보르도의 밀크 메이드)
고야는 마지막에 스페인이 싫다고 하여 국경을 바로 건너 프랑스 보르도에 가서 몇년을 살다가 죽는다. 하녀 겸 companion 으로 같이 살던 부인 같은 여자가 아닐까 한다. 보르도에서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고야는 19세기 화가들에게는 거인 이었다. 스페인 내전, 프랑스 침략 등을 겪으며 힘들게 살았다. 국왕의 페인터로서 공식적인 그림도 그리지만 자신을 위한 그림도 그리면서 자아의식이 들어간다. First modern painter 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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