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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시대의 미술 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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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7,730회 작성일 13-02-16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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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5th hour: Art under Napoleon
 
 
 
Napoleon Bonaparte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769-1821)
 
1800년 경에 가장 유명했던 인물은 나폴레온이다. 나폴레온은 시각 미술을 이용하여 정치적 propaganda 를 더욱 떨친다.
 
 
 
 
 
 
 
 
나폴레온은 시골 코르시카 Corsica 섬에서 태어난다. 이탈리아 영토 코르시카는 17세기 무렵 왕족의 결혼으로 프랑스 영으로 넘어온다. 나폴레온의 부모 보나파르트 Bonaparte는 이탈리아 귀족 출신이다. 8 형제 중 2째 나폴레온은 말썽을 피우는 어려운 아이 였다고 한다. 코르시칸으로는 최초로 군사전문학교 에콜 데 밀리테흐 Ecole Militaire(1785)를 졸업한다. 1789년 혁명이 일어났을 때 젊은 무관 나폴레온은 급진파 자코벵파Jacobins에 가담한다(1789-1794).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1758-94)가 처형을 당하자 나폴레온도 루이 쟈크 다비드처럼 잠시 감옥에 들어간다.
 
 
 
 
 
Bonaparte at the Pont d'Arcole, Antoine Jean Gros 1796 (이탈리아 원정 중 인 보나파르)
 
 
혁명파가 루이 16세를 처형하자 민심이 기울어 힘을 얻은 왕정복고파 Royalist Army가 난동을 일으킨다. 나폴레온이 왕정복고파를 진압(1795)하자 이 때 부터 인기가 올라간다. 교황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Hapsburg 왕가가 결탁해서 혁명 세력을 누르자 나폴레온은 이탈리아로 캠페인Italian Campaign(1796-97)을 나가 성공을 한다. 19세기 중엽까지 이탈리아는 합스부르그 왕가의 공작령에 지나지 않았다.
 
다음에는 북아프리카 이집트Egyptian Campaign(1798-1801) 원정을 간다. 오스만 투르크Othman Turks 세력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돌아온다. 이탈리아 원정과 이집트 원정이 아주 성공적이라 국민들이 나폴레옹을 황제(1804-15)로 만든다. 에일라우 전투Battle of Eylau (1807)에서 러시아에게 패하자 권좌에서 내려오는 계기가 된다. 워털루 전쟁Battle of Waterloo (1815)에서 영국의 넬슨 제독에게 참패를 당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가서 죽는다. 10여 년 동안 재위한다.
 
 
 
 
 
Empress Josephine1763-1814 (황비 죠세핀)
 
 
나폴레온은 4-5 세 연상의 이혼녀 죠세핀과 결혼한다. 왕정복고파 죠세핀의 가족들은 혁명 초기에 죽음을 당하고 죠세핀 역시 공포에 쫒겨 다녔다. 이런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왕비가 된 후에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죠세핀은 나폴레온을 혁명 중에 만나며 1804-09년 동안 황비의 자리에 있었다. 죠세핀도 애인이 있었고 나폴레온도 이집트 원정 중에 부하의 부인을 애인으로 두며 곳곳에 illegitimate children 이 있었다고 한다.
 
 
 
 
 
Napoleon's Marriage to Marie-Louise 1810 (나폴레온과 마리 루이즈의 결혼)
 
 
나폴레온은 죠세핀을 좋아했지만 1809년에 이혼을 하고 오스트리아 공작녀 Archduchess of Austria 마리 루이즈Marie-Louise와 결혼한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뚜아넷의 grand niece 벌 쯤 된다. 나폴레온은 오스트리아와 원수 지간 이지만 2세를 얻기 위한 diplomatic marriage 를 한다.('He had married a womb'). 왕자 나폴레온 프란시즈 죠셉이 태어나자 마자 'King of Rome' 이란 호칭을 주지만 20살 경에 죽는다. 나폴레온은 자신은 emperor 이고 아들은 king 이다.
 
 
 
 
 
Jacques-Louis David, Self-Portrait 1794 (쟈크 루이 다비드 자화상)
             
 
자크 루이 다비드는 혁명 기간 중에 아트 디렉터로서 많은 활약을 하다가 온건파에 의해 로베스삐에르가 처형되자 1795년에 감옥에 갇힌다. 이혼한 부인이 감옥에 찾아오자 다비드는  로마의 역사 사빈느 여자 이야기를 해준다. 왕정 복고 세력이 꿈틀하는 이 시기에 프랑스의 화합을 생각하며 <사빈느 여자의 중재>를 그린다.
 
 
 
 
 
Nicolas Poussin, Abduction of Sabine Women 1633-34 (니콜라 푸생, 사빈느 여자들의 납치)
 
 
다비드가 사빈느 여자들을 그리기 100여년 전에 바로크 작가 니콜라 푸생이  <사빈느 여자들의 납치>를 그렸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는 여자들이 모자라서 사빈느 지방에 가서 납치하여 데려온다. 친구로 가장한 로마인들은 사빈느 남자들을 술을 먹이고 젊은 여자들을 납치하는데 사빈느 남자들은 결사적으로 저항한다. 세월이 흘러 사빈느 여자들은 로마에서 아이 낳고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데 사빈느 남자들은 복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Jacques-Louis David,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1799 (자크 루이 다비드, 사빈느 여자들의 중재)
 
 
18세기에 다비드는 푸생의<사빈느 여자의 납치>의 후편sequel에 해당되는<사빈느 여자의 중재>를 그린다. 내부 혁명으로 프랑스 위상이 바닥을 치자 화합의 필요를 느낀다. 귀족의 커미션을 받거나 혁명 정부의 행사를 그렸지만 이제는 자비를 들여  2-3년 동안 4-5미터 크기의 대작을 그린다. 주제가 시대적 상황과 맞아 떨어져 프랑스인의 인기를 얻는다. 거의 6년 동안 전시가 되고 입장료를 받았다.
 
 
 
 
 
Detail, Jacques-Louis David,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1799 (자크 루이 다비드, 사빈느 여자들의 중재)
 
 
사빈느 남자들은 납치당한 딸, 누이를 찾으러 로마로 쳐 들어온다. 아버지, 오빠들이 쳐들어와서 남편, 아들과 싸우는 상황이 벌어진다. 사빈느 여자들은 용감하게 나서서 싸움을 말린다.
 
 
 
 
 
Detail, Hersilia (헤르실리아, 타이투스의 딸)
 

Romulus (로마 창시자)

 
Taitus (사빈느 부족장, 헤르실리아의 아버지)
 
로마를 건국한 Romulus 와 사빈느 리더 Taitus 가 싸우는데 가운데 Hersilia (타이투스의 딸)가 들어가 말린다. 마침내 피를 나눈 동포임을 깨닫고 화해를 한다. 프랑스 혁명 말기에 화합과 평화의 메세지가 사람들의 마음에 먹힌다. 이 그림을 보고 감격한 나폴레온은 다비드를 공식 화가로 임명한다. 다비드의 새로운 career 가 시작된다. 
 
 
 
 
 
Napoleon Bonaparte Showing the Apollo Bevedere to his Deputies 1899 (나폴레온 보나파르가 부관들에게 아폴로 벨베데르를 보여줌)
 
 
이탈리아와 이집트 원정을 성공하고 돌아온 나폴레온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루벤스Rubens의 <십자가에서 내림Descent from the Cross> 및 아폴로 벨베데르  조각 등을 원정에서 가져온다. 루브르에 나폴레온 박물관을 만들어 보좌관에게 가져온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백과 사전 및 나폴레온 법전 편찬 등 학술 활동도 벌인다.  
 
 
 
 
 
Jacques Gondon, Colonne d'Austerlitz, Place Vendome, Paris 1810 (쟈크 곤동, 콜론 드 아우스데레츠, 플라스 반돔) Forum of Trajan,113CE, Rome (트라잔 칼럼, 로마)
 
 
루이 16세 기마상을 내리고 나폴레온 승전탑이 올라간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칼럼을 본따서 비슷하게 짓는다.
 
 
 
 
 
The Statue of Napoleon from the Topppled Vendome Column 1871 (반돔 칼럼의 나폴레온 상을 내림)
 
19세기 말에 공산주의 정부 파리 코뮨이 잠시 들어서자 나폴레온 승전탑은 내려지지만 1890 년대에 다시 복원된다.
 
 
 
 
 
Arc de Triomphe de I'Etoile, Place Charles de Gaulle 1806-36 (아크 드 트리옴프, 플레이스 샤를 드 골)
 
 
로마의 개선문을 모델로 하여 나폴레온의 파리 개선문이 들어선다. 아우스테레츠 Austerlitz 전투에서 죽은 군사들을 기념한다. 19세기 중엽에 urban planning 을 하여 7개 방향으로 길이 생긴다.
 
 
 
 
 
Pierre Vignon, La Madeleine, 1808- 1842 Paris France (삐에르 비뇽, 라 마드렌느 교회, 파리, 프랑스)
 
 
나폴레온은 로마의 문화를 좋아했다. 프랑스 영토가 이탈리아까지 확장이 되어 로마 제국 영토를 거의 확보해서 좋아했다고 한다. 죽은 프랑스 군사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 로마 신전을 닮은 기념관을 짓는다. 나폴레온 권력 말기에 짓기 시작하여 미완성으로 남는다. 1842년에 막달렌 교회로 다시 문을 연다. 높은 기단, 열주,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로마양식이며 페디먼트 조각은 그리스 신전 양식으로 두 양식이 종합된 hybrid 식 이다. 
 
 
 

General View of Pyramids and Sphinx at Sunset, Description de l'Egypte 1822 (해질무렵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데스크립션 드 레집트(이집트 기록)
 
 
 
 
나폴레온의 이집트 원정(1798-1801) 은 당시에 무척 sensational 했다. 기록화가, 민속학자를 대동하여 이국적인 문화를 시찰하는 그림을 그리고  판화집 24권을 만든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이 나폴레온 시대부터 시작된다.
 
 
 
 
 
General View of Pyramids and Sphinx at Sunset, Description de l'Egypte 1822
 
 
데스크립션 드 레집트에 들어있는 인쇄물이다. 사진기가 아직 없어서 그림으로 그린다. 3개의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지역의 푸쿠 왕 피라미드 이다. 멀리서 스켓치 하여 프린트로 찍어 삽화로 들어간다. 1798년 경만 해도 피라미드가 발굴이 채 되지 않고 모래에 많이 뭍혀 있었다.
 
 
 
 
 
Chateau de Malmaison 샤또 드 말메종

 
죠세핀은 파리 근교에 있는 말메종 궁전을 좋아했다.
 
 
 
 
 
Jacques-Louis David, Napoleon Crossing the Alps at the Saint-Bernard Pass, 1800-01(다비드, 나폴레온이 알프스를 건너감)
 
 
나폴레온이 아직 황제가 되기 전에 이탈리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Carlos 4세는 자신의 궁전 초상화 갤러리에 걸기 위해 다비드에게 나폴레온 초상화를 주문한다. 다비드는 역사화를 보고 포즈를 고안한다. 뛰어 오르는 말과 침착한 지도자의 이미지가 합쳐진다.
 
 
 
 
 
Detail (다비드, 나폴레온이 알프스를 건너감)
 
나폴레온은 제왕 이미지로 벌 bee 을 선택한다. 죠세핀의 심볼은 백조 이다. 왕족은 내려오는 집안의 문장이 있지만 나폴레온은 당대에 자신의 심볼을 만든다.
 
 
 
 
 
Titan,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V, 1548 (티션, 챨스 5세 기마상)
 
다비드는 신성 로마 제국Holy Roman Empire 챨스 5세의 초상화에서 나폴레온의 포즈를 따 온다. 빠르게 달려가려는 말 위에 철학자처럼 차분한 왕의 모습이다. 
 
 
 
 
 
Velazquez, Philip on Horseback 1634-35 (벨라스퀘즈, 말을 타고 있는 필립 4세)
 
 
나폴레온 초상은 스페인 합스부르그 왕가 필립 4세의 초상 포즈와도 비슷하다. 말이 galloping 하여 오르고 필립은 차분하게 말을 콘트롤 한다. 다비드는 벨라스퀘즈가 그린 초상화와 비슷한 분위기로 그려낸다. 나폴레온도 티션, 벨라스퀘즈 정도는 알고 있었으며 말 위에 앉은 자신의 spirited 한 모습에 만족했다고 한다.
 
 
 
 
 
Jacques-Louis David, Napoleon Crossing the Alps at the Saint-Bernard Pass, 1800-01(다비드, 나폴레온이 알프스를 건너감)
 
 
눈 덮인 알프스 산을 프랑스 병사들이 건너는데 나폴레온은 몰아치는 비바람에 아랑 곳 없이 병사들을 지휘한다. 나폴레온은 다비드가 그린 그림이 스페인 왕의 갤러리에 들어가다는 말을 듣고 기뻐한다. 그림의 구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흡족해한다. 주문을 여러개 해서 자신이 하나 가지고 이탈리아 등에 보내며 책에 프린트로 들어가서 많이 퍼진다
 
자신의 영웅화를 좋아하는 나폴레온은 바위에 이름을 새기게 한다. 역사적으로 알프스를 건넌 장군은 알렉산더 대왕에 맞섰던 카르타고의 한니발Hannibal과 중세 신성로마제국 샤를마뉴Charlemagne 이다. 샤를마뉴 대제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원조가 되는 왕이다. 알프스를 건너 무슬림을 퇴치한다. 바위에 두 사람 이름은 희미하게 새기고 나폴레온의 이름은 굵게 새겼다.  
 
 
 
 
 
Etienne-Maurice Falconet, Equestrian Statue of Phillip the Great 1766-1782, St. Petersburg (팔코네, 필립대제 기마상, 피터스버그)
 
 
프랑스 로코코 시대 조각가 팔코네는 러시아에 초청을 받아 필립 대제의 동상을 만든다. 다비드가 영향을 받아 나폴레온 초상의 말의 자세가 비슷하다.
 
 
 
 
 
Jacques-Louis David, The Coronation of Napoleon in the Cathedral of Notre-Dame, 1805-07 (쟈크 루이 다비드,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드디어 1804년에 황제가 된다. 쟈크 루이 다비드에게 대관식 기록화 커미션을 준다. 교황 피우스 7세, 파리 대주교, 나폴레온 가족 등 100명 정도의 사실적인 초상화real portrait 가 들어간다. 6-9 미터의 거대한 사이즈로 3년 동안 그린다.
 
 
 
Detail (쟈크 루이 다비드,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Detail (쟈크 루이 다비드,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나폴레온은 이미 황제가 되어 관을 쓰고 있고 죠세핀에게 관을 얹어준다.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므로 교회의 수장처럼 부인에게 관을 내린다.
 
 
 
 
 
Detail, real portraits Archbishop of Paris and Pope (교활과 파리 주교, 쟈크 루이 다비드,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교황 피우스Pius 7세는 뒤에 앉히고 큰 모자를 쓴 파리 대주교는 멀치감치 뒤에 세웠다. 다비드는 키가 작은 나폴레온이 괜찮아 보이도록 고심을 한다.
 
 
 
 
 
Jacques-Louis David, Study for The Coronation of Napoleon in the Cathedral of Notre-Dame, pencil and pen, 629x979cm, 1805-07 (스케치, 쟈크 루이 다비드,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Sketch of Emperor Napoleon Crowning Himself, David, Louvre (스케치, 나폴레온이 직접 관을 씀, 다비드,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
 
교황에게 관을 받는 것이 싫은 나폴레온이 받아서 직접 쓰는 구도가 스케치에 들어간다. 실제 그림에서는 구도를 바꾸어 죠세핀에게 관을 씌운다.
 
 
 
 
 
Detail (나폴레온의 어머니, 다비드,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중간에 나폴레온의 어머니가 앉아 있는데 실제로는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나폴레온이 남동생을 영지로 파견을 보내는데 그것이 맘에 들지 않아 화가 났다고 한다. 대관식에 어머니가 없으면 gossip 이 되므로 다비드는 그려 넣는다.
 
 
 
 
 
Detail, bees symbol of Napoleon court train (죠세핀 망토의 벌 상징,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죠세핀의 empire dress 로서 허리선이 올라간 스타일이다. 뒤에 늘어진 망토court train는 털을 대었고 나폴레온 문장 꿀벌 날개가 들어갔다. 나폴레온의 N 도 들어간다. 황비의 금박 수 두께는 4 인치 이상이며 직책이 내려 갈수록 얇아야 한다.
 
 
 
 
 
Detail, Napoleon's sisters (나폴레온의 시스터들, 노트르댐 성당의 나폴레온 대관식)
 
다비드는 나폴레옹의 여형제들을 닮게 그린다. 
 
 
 
 
Baron Francois Gerard, Napoleon the Great, print, reproduction(프랑소와 제라르, 나폴레온 대제)
           
 
나폴레온이 좋아했던 공식 초상 이다. 다비드의 학생인 프랑소와 제라르가 그린다. 커튼이 내려오고 월계관을 쓰고  왕의 지물이 보이고 루이 14세의 초상과 거의 다르지 않다. 프린트로 만들어 국가 전역에 보급한다.
 
 
 
 
 
Pierre-Paul Prud'hon, Empress Josephine in the Gardens of Malmaison 1805 244x179cm, Musee de Louvre (삐에르 폴 푸르동, 말메종 정원의 황비 죠세핀)
 
 
흰 대리석 피부의 죠세핀이 신고전주의 엠파이어 드레스를 입고 풍경화를 배경으로 비스듬히 앉아있다. 황실 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도상 이다. 죠세핀은 고아 사업 등에 참여를 하고 마음이 따뜻한 여자로 대중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Pierre-Paul Prud'hon, Empress Josephine in the Gardens of Malmaison, print (프린트, 삐에르 폴 푸르동, 말메종 정원의 황비 죠세핀)
 
 
프루동은 혁명 정부 이미지를 프린팅으로 만들어 보급했는데 이제 나폴레온이 고객이 되었다. 황비 죠세핀이 말메종 숲의 가든에서 로마 여신처럼 쉬고 있다.
 
 
 
 
 
Pierre-Paul Prud'hon, The King of Rome (1811-1832), 1811, Musee de Louvre (삐에르 폴 푸르동, 로마의 왕)
 
 
죠세핀이 아이를 낳지 못 하자 1809년에 이혼하고 루이 마리즈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는다. 태어나자 마자 The King of Rome 이라는 작위를 준다. 영웅이 될 사람은 버려져도 살아난다는 로마 건국 신화 로물루스와 레무스 분위기를 풍기는 그림이다. 자연의 보호를 받는 domestic scene 으로 공식 초상화와는 다르게 상서로운auspicious 기운이 돈다.
 
 
 
 
 
Jean-Auguste-Dominique Ingres, Portrait of Napoleon on his Imperial Throne, Salon of 1806 (앵그르, 왕좌에 앉은 나폴레온 초상)

다비드의 제자 앵그르가 나폴레온 공식 초상화를 그린다. 부드럽고 사치스런 옷, 카펫 장식에 치중하고 얼굴은 자그마하다. 나폴레온은 화가들 앞에서 2 시간 이상 포즈를 취한 적이 없으므로 지물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Jan van Eyck, Ghent Altarpiece, Lord of the Deesis 1432, oil on wood, detail (얌반나이트, 겐트 알타피스)
              
 
앵그르는 나폴레온이 벨기에 원정에서 가져온 네덜란드 페인팅 겐트 알타피스를 염두에 두고 초상을 그렸다. 얌반나이트 그림에 감동을 받아 제왕의 이미지를 빌려온다. 반원형 의자가 비슷하다.
 
 
 
 
 
Antonio Canova, Portrait of Paolina Borghese as Venus Victorious, 1804-08, marble, Galleria Borghese (안토니오 카노바, 폴린 보르게제 비너스 초상, 보르게제 갤러리아, 이태리)
 
 
나폴레온은 여동생 폴린을 보르게제 가문에 시집 보내서 명문 가문과 networking 을 가진다. 카노바는 사과를 든 아프로디테 여신으로 폴린을 묘사한다. 로마 문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나폴레온은 로마 왕실처럼 가족 역사를 다시 쓴다. 나폴레온의 시스터 라는 이유로 사치스러운 작품이 제작된다. 카노바는 영국 관광객이 초상화를 주문하는 인기 화가이다.
 
 
 

 
 
폴린은 두번 결혼하는데 첫째 남편은 나폴레온의 부관이었다. 카리비안 지역 임지에 가 있는 동안에 남편이 죽자 폴린은 파리로 돌아온다. 나폴레온은 폴린을 정치적으로 이로운 가문으로 시집보내고자 했지만 거절을 당한다. 교황Pope Pius Vll가 나서서 찾아준 가문이 이탈리아 귀족 보르게제 이다. 보르게제는 폴린의 재산을 보고 결혼을 한다.
 
 
 
             

나폴레온 가족은 코르시카 섬에서 어렵게 살았다. 한 때 지배 세력과 마찰로 인하여 집에서 쫒겨나서 남의 집 빨래도 하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살았다. 갑자기 오빠가 황제가 되니까 폴린은 공부를 하면서 귀족 수업을 받는다. 보르게제 가문으로 시집가기 위해서 매너를 배운다.
 
 
 
 
 
 
Antoine-Jean Gros, Bonaparte Visiting the Plaque House at Jaffa(11 March 1799, Salon of 1804 (안토인 쟝 그로, 나폴레온의 자파 역병 하우스 방문)
 
 
다비드의 제자 안토인 쟝 그로는 나폴레온을 따라 다니면서 스케치를 뜬다. 1799년 이집트 원정 중에 자파에 역병이 창궐하는데 나폴레온은 Plaque House 를 방문한다. 프랑스 국기가 휘날리고 전쟁의 폭염이 자욱한 위험한 전쟁터 병원에 찾아가서 병자의 상처를 손으로 어루만진다. 자신의 목숨도 서슴치 않는 동포애를 보인다. 프로파간다 이미지 중의 하나이다.
 
 
 
 
 
Detail, (안토인 쟝 그로, 나폴레온이 자파의 역병 하우스를 방문함)
 
 
Iconography 연원을 따지면 Doubting Thomas 에서 따왔다고 한다. 의심이 많은 토마스가 예수님의 상처를 만지는 구도이다. 이슬람 무어 양식 사원, 말 발굽형 아치, 모스크 첨탑, 이국적인ethnic 옷 등이 나타난다.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의 대표적 그림으로 이야기 무대가 이집트 이다.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으로 그로가 중요 작가로 부상된다. 색깔이 대조를 이루면서 강렬하다. 이국적인 배경을 넣어 파리인들이 이집트 문화에 관심이 높아진다. 1830-40년대에 exotic 한 풍물을 그리는 로맨티시즘Romanticism 이 불 붙는다.
 
 
 
 
 
 
Antoine-Jean Gros, The Battle of Eylau, Salon of 1808 (그로, 에일라우 전투)
 
 
그로는 러시아와 접경을 이루는 독일의 에일라우 전투에도 따라간다. 추운 날에 군사들은 죽어가는데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군사들에게 힘을 준다. 루브르 갤러리에 그림을 전시해서 업적을 보여준다. 당대 역사를 효과적인 구도로 그려내는 전통이 확립된다.
 
 
 
 
 
Napoleon and Empire style 1800-1815 (나폴레온과 엠파이어 스타일)
 
나폴레온은 프랑스 산업을 진흥시킨다. 산업 혁명을 이룬 영국에 비해 프랑스는 무능한 루이 16세 치하에서 혁명을 겪느라고 뒤쳐저 있었다. 나폴레온은 실크, 세라믹 산업, 국산품 애용, 수입 금지 조치 등 현명한 정책을 펼쳐 인기가 올라간다. 쥴리어스 시저가 기원전 1세기 경에 이집트 원정을 갔을 때 로마, 폼페이에도 이집트 벽화가 유행을 한다. 황제가 원정을 다녀온 나라의 이국적인 풍물이 좋아 보인다. 비슷한 현상이 나폴레온 시대에도 일어난다.    
 
 
Empress Josephine Fruit or Flower Basket, Sevres Manufactory (황비 죠세핀의 과일 바스켓, 쉐부르 도자기 회사)
 
나폴레온 엠파이어 스타일의 실내장식이 나온다. 꿀벌과 N, 백조가 motif 가 된다. 독수리, 이집트 문양이 같이 석여져 화려하다  죠세핀이 쓰던 디저트 바스켓에 백조가 있다.
 
 
 
 
 
Washstand Napoleon Basin 1804-14 (나폴레온 세수대야, 쉐부르 도자기)
 
이집트 풍 오리엔탈 세숫대야에 스핑크스가 양쪽에 받치고 있고 사자 발 같은 것이 밑에 있다. 죠세핀의 이미지 백조 문향을 넣은 대야를 나폴레온이 자기 방에 놓고 쓴다. 돌고래가 보이고 발은 무척 정교하다.
 
 
 
 
 
Coin Cabinet 1809-19
동전을 수집하여 종류 별로 넣는다. 손잡이가 나폴레온 심볼인 벌이다. 동전 크기에 따라 함이 커진다.
 
 
 
 
 
Armchair Karl Friedrich Schinkel 1828
 
독일에서 나폴레옹 엠파이어 양식 이집트 풍의 의자가 유행한다.
 
 
 
 
 
Tapestry Portrait of Napoleon 1 1808-11 after a painting by Gerard (나폴레온 테피스트리 초상화)
 
 
그로가 그린 초상화를 테피스트리로 만들라고 나폴레온이 시킨다. 공정이 제일 까다롭고 재료비가 많이 드는 미술 이다. 아주 큰 사이즈라서 8 weavers 가 3년 동안 짠다. 울, 실크, 실버 thread가 같이 들어가 glaring 효과를 낸다. 프랑스 국왕은 백합을 문장으로 썼지만 나폴레온은 벌을 사용한다. 
 
 
 
 
 
Breakfast Service To Napoleon by his stepson's wife on new year's day in 1814
 
나폴레옹의 step son의 부인이 나폴레옹에게 선물한 breakfast set 이다. 님프, 큐피드가 뛰어다니며 논다.
 
 
 
 
 
Pair of Candelabra, Pierre-Philippe Thornire 1810-15 (촛대꽂이)
 
나폴레온이 사용한 촛대꽂이로서 N 이 들어간다. 나이키 여신Hellenistic winged Nike은 나폴레옹 상징물 중의 하나 이다.
 
 
 
 
 
Empire Style Evening dress, French 1812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이다.
 
 
 
 
 
Armandine Marie Georgine de Serent at Napoleon's Marriage to Marie Louise in 1810
 
나폴레옹이 마리 루이즈와 결혼 할 때 참석한 손님이 입었을 것 이라고 한다.
 
 
 
 
 
French dress 1810 White Cotton Indian muslin
 
인도산 얇고 부드러운 면이다. 나폴레온이 인도 수입품을 금지하여 한동안 이런 옷을 못 해 입었다.
 
 
 
 
 
Snuffbox 1815 design by Jean Baptiste Isabey
              
 
향기나는 것을 넣는 작은 박스이다. 세밀화가 들어간다. 마리 루이즈Marie-Louis 그림 두껑을 열면 나폴레온 초상화가 나오고 하나를 더 열면 아들 King of Rome 이 나온다. 나폴레온 우호자들은 이런 기념품들을 소장했다. 1830년 경에 7월 혁명이 일어나서 나폴레온파들이 잡혀가자 소장자들은 이런 물건을 감추고 N 자를 없애기도 했다.
 
 
 
 
 
Jacques-Louis David, Leonidas at Thermopylae 1814 (다비드, 써머필라이 절벽의 리오니다스)

자크 루이 다비드는 말년으로 가면서 아주 큰 역사화를 그린다.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의 리오니다스 왕은 쳐들어오는 페르시아군을 막으려고 써머필라이 절벽에서 정예부대 300명만을 데리고 기다린다. 결국 페르시아군의 진입을 막고 다 죽는다. 다비드는 나폴레온이 쫒겨나기 일년 전에 이 그림을 그린다. 다비드는 확신이 없었고 사롱전에서도 좋은 평을 받지 못한다. 나폴레온도 혹평을 했다고 한다.
 
 
 
 

Detail, Jacques-Louis David, Leonidas at Thermopylae 1814 (다비드, 써머필라이 절벽의 리오니다스)
 
다비드는 신고전주의 견고한 주제만을 고집했는데 제자들은 미적 취향이 변해 로만티시즘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비드도 새로운 미술 흐름에 경도되어 그림에 은연 중에 나타난다. 그림이 이상하게 보인 이유는 누드 때문이다. 육체의 표현이 부드럽고 mallow 해진다. 신화를 주제로 하지만 무거운 주제보다는 가벼운 이야기를 그린다.
 
 
 
 
 
Detail, Jacques-Louis David, Leonidas at Thermopylae 1814 (다비드, 써머필라이 절벽의 리오니다스)
 
다비드는 미술세계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대 전쟁을 치루기 전에 화환을 놓고 자연에서 제사를 지낸다. 곤고하고 남성적인 육체이긴 해도 부드러워지고 예전의 rigidity 에서 벗어나 자연의 부드러운 풍경이 들어간다. 다비드의 경력이 끝나 가고 나폴레온도 그림의 주인공처럼 몰락의 길을 간다. 엘바 섬으로 유배된 나폴레온은 도망나와서 1815년에 100일 천하Hundred Days를 누리다가 워털루 전쟁에서 참패 한다. 세인트 헬레나섬에서 영국 감시하에 6년을 아프다가 1821년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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