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과 미술 1/31/13 > 김미연 아트노트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김미연 아트노트


 

프랑스 혁명과 미술 1/31/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8,123회 작성일 13-02-09 02:24

본문

19세기 유럽 북미 미술  4th hour: Art in Revolution and France
 
 
 
 

 
18세기 프랑스 정치 사회적 변화 Social and Political Change in the 18th C
 
 
 
 
 
18세기 가장 중요한 사건은 프랑스 대혁명 이다. 1789-94년 혁명 동안 프랑스인들의 삶이 극적으로 변한다. 하루 아침에 동네에 살던 사람이 없어지며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건도 많이 일어난다.
 
영국은 14세기 부터 의회 민주주의를 실시했다. 18세기 말에 면방직 공장이 돌아가고 기차가 다니면서 사회가 진보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전제 군주국 프랑스는 인두세 명목 하에 식구가 많은 농촌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를 걷었다. 또한 땅을 소유한 종교 집단들이 세를 부과하여 평민들의 불만이 넘친다.
 
 
 
 
 
 
Voltaire, Discourse on Political Econoty 1755 (볼테르)
 
 
18세기 프랑스는 볼테르Voltaire(1694-1778) 같은 철학자가 나타나서 과학과 학문에 대한 책을 쓰고 계몽주의Empiricism 를 주장한다. 미신 구습을 타파하고 논리적으로 살자는 이론을 편다.
 
 
 
 
 
 
Didero Encyclopedie 1759 (디드로, 백과사전)
                             
 
디드로 Denis Didero(1713-1784) 는 지식을 총 망라하는 취지를 가지고 백과사전을 만든다.
 
 
 

                       
 
백과사전 삽화에 기계 만드는 법, 못 만드는 과정 등이 자세히 실려 대중 교화가 이루어진다. 이전에는 tradition 을 세습하는 장인이 아니면  몰랐던 지식들이 누구에게나 알려진다. 
 
 
 
 
 
 
Jean-Jacques Rousseau(1712-1778), Discourse on the Origin and Basis of Inequality Among Men  (장쟈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자크 루소는 교육의 중요성 및 사회계몽을 주제로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쓴다. 교육을 받은 부르조아들은 왕의 명령에 회의를 가지면서 혁명의 기운이 피어오른다.
 
 
 
 
 
John Locke,  Leviathan (죤 로크, 레비아탄)
                   
 
죤 로크가 쓴 철학책이다.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군주의 몸이 민중의 의지를 무시하고  칼을 휘두르면 독재자가 된다.
 
 
 
 
 
John Locke Essay, 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90 (죤 로크, 에세이 통치론)
                       
로크의 초상화이다. 로크가 쓴 책은 지금도 정치학의 고전으로 읽힌다.
 
 
 
 
 
Beheading of Charles 1,  John Milton's Defense of the English Revolution 1692  (챨스 1세의 처형, 죤 밀튼의 영국 혁명 옹호)
                        
<실낙원>으로 유명한 죤 밀튼은 영국왕 챨스 1 세의 처형이 마땅하다는 글을 쓴다.
 
 
 
 
 
The Digger's Demand Access to the Commons,  A Declaration from the Poor Oppressed People of England (땅파는 자의 요구, 영국의 억압받는 자들의 선언)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젠트리gentry 계층은 소규모 자영농을 몰아내고 대규모 농장을 만든다. 억압받는 가난한 농민들은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Benjamin Franklin in Paris  Thomas Jefferson in Paris (파리를 방문한 벤자민 프랭클린과 토마스 제퍼슨)
                      
프랑스 혁명(1789)이 일어나기 직전에 미국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등이 파리를 방문한다. 1781년 경에 이미 미국의 독립을 이루고 프랑스에게 혁명의 힘을 준다.
 
 
 
 
 
Louis XVI (루이 16세)                                              Aristocrats  (귀족) 
                       
혁명 전 프랑스 시스템은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구체제) 라고 부른다. 왕, 귀족 밑에 대지주 성직자clergy 가 있고 잘 사는 부르조아 upper middle class 가 있다.
 
 
 
 
 
Clergy(성직자)                                                                                        Bourgois (브루조아)
                    
 
 

San Culottes (샹 킬로트 계층, 평민)
                         
 
귀족이 입는 달라붙는 킬로트culottes 바지가 아닌 헐렁한 바지를 입는 평민을  대중매체에서 샹 킬로트San Culottes (without Culottes) 라고 부른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에 부르조아가 시작하지만 샹 킬로트들은 잘 사는 브르조아를 위한 혁명임을 깨닫고 1791-92 년에 혁명을 한번 더 일으킨다.
 
 
 
 
 
프랑스 혁명 직전 로코코 미술
 
Elisabeth Vigée-Lebrun, Archduchess Marie Antoinette, Queen of France 1778 (비제 르브랭, 프랑스 여왕 마리앙뚜아넷초상화)
 
 
18세기 말 로코코 끝 무렵에 여자화가가 나온다. 비제 르브랭은 아버지가 화가이며 베르사이유 궁전건축에 참여했던 샤를 르 브랭의 조카와 결혼한다. 자리를 잡은 미술가 집안과 결혼하여 왕실에 소개를 받는다. 비제 르브랭은 마리앙뚜아넷의 총애를 받아 초상화를 30 점이 넘게 그린다. 전형적 로코코 드레스를 입은 부드러운 선이다. 루이 16세는 오스트리아와 동맹 차원에서 13-4 세의 어린 앙뚜아넷과 결혼한다.
 
 
 
 
 
Elisabeth Vigée-Lebrun, Marie Antoinette, 1787 (비제 르브랭, 마리앙뚜아넷 초상화 )
 
 
결혼한 지 9 년 후쯤 지나자 베르사이유 궁에 왕자 공주가 세명이나 된다. 모성애가 두드러지는 초상화이다. 프랑스 혁명 시기 문서에는  마리앙뚜아넷을 극악한 여왕으로 묘사하지만 최근 문서에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와의 동맹을 위한 인질로서 두 나라 사이에서 많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Elisabeth Vigée-Lebrun, Self-Portrait in Straw Hat 1782 (비제 르브랭,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비제 르브랭은 여자 화가로서 드물게 명성을 누린다. 혁명 중에는 다른 나라로 망명을 가지만 나폴레옹이 집권하자 복권이 되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신고전주의 풍의 깨끗한 그림이다.
 
 
 
 
 
Marie Louise Elisabeth Vigée-Lebrun, Self-Portrait with Daughter 1789 (비제 르브랭, 딸과 같이 있는 자화상)
 
 
자화상이다. 1789년 쯤이면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많이 그리므로 그리스 풍의 머리와 의상이 보인다. 600 여점이 넘는 그림을 그릴 정도로 수완 및 인기가 좋았다.
 
 
 
 
 
Jacques-Louis David, Antoine Laurent Lavoister and His Wife(Marie-Anne-Piewette Paulze) 1788 (자크 루이 다비드, 안토안 로랑 라부아지에와 그의 부인)
 
 
다비드는 혁명 전에는 부르조아의 초상을 많이 그린다.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직업은 tax collector 로서 혁명 중에 잡혀서 죽는다. 신고전주의적 단순한 배경에 나이 차이가 15살 나는 부인의 흰 드레스가 나폴거리며 실험기구들이 있다.
 
 
 
 
 
Jacques-Louis David, Paris and Helen 1788 (자크 루이 다비드, 파리스와 헬렌)
 
사이즈가 크지 않아서 사람들이 쉽게 살 수 있다. 고증을 철처히 하여 로마 신화를 그린다.
   
 
 
 
 
프랑스 혁명 French Revolution 1789
 
루이 16세는 패전을 거듭하며 식민지를 잃어버린다. 세금을 더 걷으려 하자 세금을 꼬박 내는 부르조아와 평민은 이에 반대한다. 세율 결정은 귀족이 하는데 세금 인상을 승인하면 비난을 받을 것이 뻔하자 귀족들은 삼부회의를 소집한다. 16세기 이후 한번도 열린 적이 없는 삼부회의는 귀족, 성직자, 평민이 같은 비율로 모이지만 성직자와 귀족은 같은 편이므로  결국 명목상의 회의인 셈 이다.   
 
 
 
 
 
Jacques-Louis David, The Tennis Court Oath, sketch 1791(자크 루이 다비드, 테니스 코트의 선언)
 
 
삼부 회의가 다른 곳에서 열리고 있는데 혁명주의자들은 테니스코트장 안으로 들어와서 선언문을 만든다. 이 사건(1789년 6월)을 기점으로 혁명이 시작된다.
 
 
 
 
 
Detail 
 
테니스 코트 선언문은 온건파의 수장이 읽는다. 혁명 위원회에서 다비드에게 테니스코트의 서약을 그리게 한다.
 
 
 
 

 
 
급진파와 온건파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다비드는 스케치만 하면서 일을 미루고 온건파가 부탁한 그림을 끝내 미완성으로 남긴다. 다비드는 소용돌이 치는 정치적 흐름 속에서 처신을 잘해서 살아 남는다.
 
 
 
 
 
Jacques-Louis David, Sketch for The Oath of the Tennis Court (drawing), 1791 (자크 루이 다비드, 테니스 코트의 선언, 스켓치)
 
테니스 코트의 선언을 그리기 위한 스케치이다. 고대 로마식으로 자세 연구를 많이 했다.

 
 
 
 
 
Storming of the Bastille, July 1789 (바스티유 감옥 습격)
 
테니스 코트의 서약을 계기로 단체 행동이 시작된다. 파리시민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죄수들을 다 꺼낸다. 혁명이 일어나 무정부anarch 상태로 접어드는데 국왕의 군대는 힘없이 무너진다.
 
 
 
 
 
                 
프랑스 절대 왕권이 무너지는 장면이 영국, 독일 등 신문에 계속 실린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를 존중하는 권리 장전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the Citizen 문서를 만든다.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이 들어간다.
 
 
 
 
 
Jacques-Louis David, Marie Antoinette on the Way to the Guillotine Drawing 1793 (다비드, 스켓치, 단두대의 처형을 기다리는 마리 앙뚜아넷) 
 
 
권력의 정점에 있던 마리 앙뚜아넷이 길로틴의 처형을 기다리는 모습을 자크 루이 다비드가 스케치 한다. 두 손이 묶인 채 하녀가 쓰는 모자를 쓰고 단순한 옷차림 이다. 혁명주의자들은 루이 16세와 왕비를 상징적 왕조로 살려 두고자 했지만 오스트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루이 16세의 편지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다.
 
 
 
 
 
Roberspierre 로베스피에르                                  Danton당통                                                Marat 마라
                       
 
1793년 혁명 마지막 즈음에 감옥에 갇혀있던 루이 16세가 처형이 된다. 백성들은 피의 숙청이 몇년간 계속되자 사회가 산산조각남을 느끼고 그만하기를 원한다. 혁명 강경파(자코벵파) 들은 사람을 많이 죽이는데 온건파(지롱드파)는 이에 반대한다. 강경파 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되자 1794년 쯤 혁명이 일단락 되고 부르조아들은 영국처럼 산업 혁명을 하자고 주장한다. 근본적인 해결 없이 끝난 혁명의 불씨는 19세기에 들어와 1830 년 4월 혁명, 1848년 7월 혁명으로 다시 불 붙는다.
 
 
 
 
 
Jacques-Louis David, Self-Portrait (자크 루이 다비드, 자화상)
 
 
쟈크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을 겪으며 다양한 career 를 가진다. 혁명 동조자Revolution Sympathizer 로서 강경파 자코뱅 클럽의 당원이다. 강경파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이다.
 
 
 
 
 
Jacques-Louis David, The Lictors Returning to Brutus the Bodies of his Sons for Burial, 1789 (자크 루이 다비드, 부르투스의 죽은 아들들의 몸이 돌아옴)
 
 
다비드는 아카데미를 다니며 신고전주의 그림을 그려 칭찬을 받는다. 로마 공화정의 단순한 건축 양식 배경에 드라마틱한 면이 있으면서도 색이 조화를 이룬다. 3미터 4미터의 압도적 사이즈 이다. 루이 16세를 위한 애국적인 그림을 그렸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당시 혁명주의자들은 로마 공화정처럼 도덕적인 정신이 투철한 나라를 만들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로마의 경찰관이 부루투스의 죽은 아들들의 몸을 돌려준다. 로마 공화정 참의원consul 부루투스는 왕정 복고 음모가 있다는 정보를 미리 받고 주범이 아들임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피하라고 미리 알려줄 수도 있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음모가 발각되어 아들들이 잡혀서 죽는다. 침울하지만 중립적인 아버지 뒤에는 의인화된 Roma 가 옥좌에 앉아있다. 혁명주의자의 눈에는 가족까지도 희생하는 혁명의 영웅으로 보인다.
 
 
 
 
 
Detail
 
엄마와 여동생들은 공화정 따위는 아랑 곳 하지 않는다.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만이 엄청나다. 여자들을 폄하하는 domestic scene 이다.
 
 
 
 
 
 
Republican Costume designed by David (자크 루이 다비드, 공화정 의상 디자인)
 
다비드는 혁명 정부의 art director 로서 혁명군의 의상 디자인을 한다.
 
 
 
 
 
Jacques-Louis David, The Death of Marat, 1793 (Brussels)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혁명과 연관된 최고 걸작품 마라의 죽음이다. 루이 16세가 처형이 되고 혁명파 간의 대립이 극에 달하자 온건파가 급진파 마라에게 암살자를 보내서 죽인다.
 
 
 
 
 
Detail
 
민심을 자극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피를 보인다. 커다란 캔버스에 그린다.
 
 
Detail 
 
나무 판에 나의 친구 마라에게 라고 쓰여있다.  
 
 
Detail
햇살이 얼굴에 떨어지고 예수님의  온화한 표정으로 그려낸다. 마라의 머리에만 focus 를 맞추고 암살자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림에 그리면 암살자에게 영원성이 부여된다. 사건의 복잡한 정황을 보여주는 신문 이미지와는 다르게 간단하게 그린다.
 
 
 
 
 
 
Detail, Jacques-Louis David, The Death of Marat, 1793 (Brussels)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왜 목욕탕에서 죽었을까? 마라는 피부병이 있어서 medicinal bath를 저녁 일과로 삼았다. 하녀가 방문객이 있다고 전하자 들어오라고 한다. 샤롯데 코르데이는 온건파 지롱드당이 보낸 암살자이다. 그녀는 소개 편지를 전하고 마라를 죽인다. 샤롯데의 가족들은 혁명 와중에 부당하게 죄를 쓰고 죽었으며 샤롯데는 '나는 십만명을 살리기 위해 한명을 죽였다' 라고 한다. 나중에 잡혀서 사형 당한다.
 
 
 
 
 
Detail
 
 
누구의 소개로 왔다는 샤롯데 코르데이의 서명이 있다. 편지 속에 살인자의 이름과 날짜가 있는 것이 다비드의 구성이다. 혁명 정부에서는 마라의 암살을 publicity event 로 삼기로 한다. 루이16세가 1793년 1월에 처형되어 대중의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마라는 같은 해 7월에 죽는다. 마라의 죽음을 계기로 민심을 돌리고자 시민 행렬 등 대대적인 장례식을 준비한다. 다비드의 제자들을 시켜 카피한 그림을 여러 곳에 퍼뜨려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쓴다.

 
 
 
 
 
Michelangelo, Pieta 1498-99 (미켈란젤로, 피에타)
             
사람들이 Pieta of the Revolution 이라고 한다. 마라는 시대가 슬퍼하는 대상이 되었다. 팔과 토루소가 예수님처럼 축 쳐저있다.
 
 
 
 
 
Caravaggio, Entombment 1602-03 (카라바지오, 무덤에 내리심)
             
다비드는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 팔이 쳐진 구도를 가져온다.
 
 
 
 
 
In Memory of Marat, Friend of the People, Assassinated 13 July 1793 (1793년 7월 13일에 암살된 민중의 친구, 마라를 기념하며)
 
 
작자 미상의 판화이다. 대중 혁명 시대는 팜플렛에 판화 이미지가 많이 들어간다. 당시의 대 사건 마라의 죽음을 그린 많은 이미지가 유행한다. 신고전주의적 단순한 배경에 마라가 욕조에 들어있다. 상상적 이미지 personification 를 주변에 끼어 넣었다. 칼로 찌르고 막 돌아선 암살자가 마치 잔 다르크처럼 서 있다. 복수의 화신이 암살자의 머리를 쥐고 못 가게 하는데 악마가 목을 끈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여신 마리안느가 죽음을 위로하고 있다.
 
 
 
 
 
Paul Baudry, Charlotte Marie-Anne Corday 1860(폴 바우디, 샤롯데 마리 앤 코르데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을 19세기에 다른 작가가 그린다. 코르데이에게 촛점을 두어 영웅적으로 그려낸다. 다비드의 마라는 천사같은 열굴이지만 여기서는 죽은 자에 불과하다.
 
다비드는 오랜 연혁동안 내내 성공한다. 로베스삐에르가 온건파에게 밀려서 죽음을 당했을 때 다비드도 잠시 감옥에 갖힌다. 나폴레온이 집권하자 또 잡히지만 나폴레온이 알프스산을 건너는 모습을 그려 작가로 또 다시 살아난다.

 
 
 
 
 
Edvard Munch, Death of Marat 1907 (뭉크, 마라의 죽음)
 
뭉크는 마라의 죽음에 성적인 무의식의 세계를 담아낸다. 고전적인 주제에서는 여자가 희생이 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역활을 바꾸어inverted 남자가 희생이 된다.

 
 
 
 
 
Cast of the First Official Seal of the First Republic France 1792 (공화정 프랑스 공식 문장)

혁명 정부의 official seal 이다. 문장, 상징, 화폐를 프린트로 제작한다. 프랑스 왕조는 문장이 백합이었지만 공화정 프랑스의 새 이미지로서 liberty 를 상징하는 여신을 만들어낸다. 신고전주의에 부응하는 새로운 여신 마리안느에게 해방된 로마 노예가 쓰던 모자cap (phrygian bonnet) 를 씌운다.

 
 
 
 
 
Pierre-Paul Prud’hon (1758-1823), Self-Portrait (삐에르 폴 푸르동, 자화상)
 
 
다비드 보다 어린 푸르동은 혁명 정부의 새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프랑스 왕실에서 공식 주문하던 역사화가 없어지고 초상화를 주문하던 귀족들은 단두대에서 죽거나 망명을 떠나자 젊은 작가들이 살기가 힘들어진다. 영국과 비슷한 시스템이 되었다.
 
 
 
 
 
Pierre-Paul Prud’hon, The French Constitution, Equality, Law, 1791, Black and white chalk on blue paper   (프루동, 프랑스 헌법, 평등과 법)
 
 
프루동의 드로잉이다. 키아로스큐어 chiaroscuro (명암법) 테크닉이 뛰어났다. 지혜를 주는 아테네 여신 같은 미네르바가 가운데 있다. 앞에 nature, equality, constitution 을 의인화한 혁명의 ideology가 서 있다. 고양이, 양도 혁명 이념을 상징한다. 르네상스 미술에서 allegorical symbol 로 동물을 사용했듯이 푸르동도 혁명의 이미지에 맞는 도상들을 창조해낸다.
 
 
 
 
 
Jacques-Louis Copia, The French Constitution, Equality, Law 1798 (호피아, 프랑스 헌법, 평등과 법)
 
 
호피아가 푸르동의 드로잉을 판화로 만든다. 문서마다 들어가는 icon 이 된다. 혁명 동조자들은 집에 상징물을 걸어 둔다.
 
 
 
 
 
Jacques-Germain Soufflot, Antoine Quatremère de Quincy, République Française, design for the Panthéon, 1793, Panthéon, 1757-90 (수플로, 판테온)
 
 
혁명 정부에서 심혈을 기울여 이성의 신전 판테온을 막 지었는데 거기에 마라를 묻는다. 로마의 신전처럼 도움, 고린디안 주두가 있다. 신고전주의 대표적 건물이다.
 
 
                
 

십자가 장방형 모양이다.
 
 
 
 
 
 
 도움이 한 가운데 있고 브론즈 도어가 있다. High Renaissance 식 성 베드로 성당과 비슷하다. 판테온 만신전에 볼테로, 마라, 디드로, 루소 등 당시에 사회를 계몽시킨 이성의 아버지들을 묻는다.
 
 
 
 
프랑스는 카톨릭 성일을 중심으로 한 그레고리안 달력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혁명정부는 이를 페지하고 혁명력을 만든다. 하지만 나폴레온은 많은 혜택을 약속하는 교황과 협약을 맺어 다시 카톨릭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혁명은 하루 밤에 일어날 수 있지만 오랜 세월동안 내려온 convention 을 떨치기는 어렵다.
 
 
 
 
 
13C Room in Musee des Monuments Francais, Illustration in Jean-Bapiste Reville and Jacques lavane, Vues

18세기 프랑스 혁명 중에 부랑자들이 돌아다니며 중세 및 르네상스 건축물 및 성상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 조각들을 내려서 smash 하고 시체 다루듯이 끌고 다니거나 목을 내리친다. 파리 시내에 클리니 수도원장의 저택 및 버건디 지방 클리니 수도원도 vandalism 을 당한다. 수도원 보물들을 빼내서 영국 등에 팔아 넘기기도 한다.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없어진다.
 
조직적인 파괴가 행해지는 동안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도 있었다. 알렉산더 르느와르는 망가뜨린 물건들을 수거해서 자신의 집 한 방에 모아서 Museum of French Monument 를 차린다. 19세기 나폴레온 시기에 이것들에 대한 자료 작업을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