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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미술 12/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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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7,017회 작성일 13-01-17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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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미술 Ancient Art 18th hour: Early Christian Periods
 
 
 
 
 
 
 
 
Early Christian and Byzantine Periods
 

3세기 세베루스 황제 때부터 기독교가 유행하고  4세기 초반에 콘스탄틴 대제가 화합을 꾀하기 위해 모든 종교를 허용한다. 밀라노 칙령(313)을 내리고 기독교가 영향을 떨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나왔다. 유대교는 유대인에게만 적용되는 율법이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지역적인 편협함을 부정하고 universal 한 종교 정신을 퍼뜨린다. 세베루스 황제 시기에 노예 및 여자들이 기독교에 우호적이다가 결국에 가정의 남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한다. 기독교의 화해와 관용의 정신을 좋게 여겨 5세기에는 점차로 aristocrats 에게로 퍼진다.
 
이탈리아 반도 전체에 게르만족이 침략을 하여 더 이상 로마제국을 유지할 수 없자 395년에 제국을 나눈다.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되고 동로마제국은 비잔틴 제국으로 되어 15세기 까지 존속한다.
 
로마제국의 정치적 문화적 토대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에 잘 보존이 되어 15세기 중엽까지 내려온다. 비잔틴 제국은 헬레니즘 시대의 지역이므로 지도층만 로마에서 간 로마인이고 대부분 주민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비잔틴 제국은 이슬람 제국에게 계속 영토를 침법당하고 그로 인해 중세에 십자군 운동이 일어난다. 게르만족은 기독교로 개종을 했으므로 라틴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한다.
 
 
 
 
 
 
The Consecration of the Tabernacle and Its Priests, Synagogue at Dura-Europos, 245-256AD Assembly Hall
 
 
로마제국은 시리아 듀라유로포스에 군대를 보내 영토를 넓히려고 초소를 설치한다. 변방의 작은 타운이라 주민들은 각기 자기가 믿고 싶었던 종교를  믿었다. 유태인이 모여 집회를 하던 시나고그에서 벽화가 발견되었다.
 
 
 
 
 
유대인은 신의 형상을 만드는 것을 금했으므로 구약 성서에 나오는 일화를 그림으로 그렸다. 로마 벽화 2 양식과 비슷하여 대리석 흉내를 내고 많은 그림이 들어간다. 시리아 지역의 화공을 시켰으므로 환영법에 있어 기술이 모자란다.
 
 
 
 
 
 
 
 유태인이 헬레니즘 제국 안에 살고 있었으므로  헬레니즘의 화가를 구해서 유태인 Tora 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illustrated bible 이 있었을 거라는 가설이 있다.  이에 대적하는 기독교 벽화는 발견되지 않지만 유태인이 이런 그림을 그렸다면 기독교인들도 소스를 구할 수 있었을거라고 추측한다. 
 
 
 
 
 
Painted Ceiling, 4C AD, Catacomb of SS Pietro e Marcellino, Rome
 
 
로마의 지하묘당 벽화이다. 초기 기독교인은 집에서 모이다가 로마 성곽 밖으로 나가서 비아 아피아Via Aphia의 한적한 시골 지하 묘당 카타콤에서 모인다. 재림이 교리의 핵심이라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몸이 있어야 하므로 기독교인만의 매장 문화를 구축해나간다. 지하묘당 천정에 팔각형 벽화가 들어간다.
 
 
 
 
Detail, Painted Ceiling, 4C AD, Catacomb of SS Pietro e Marcellino, Rome
 
변방에서 구할 수 있는 화공을 시켜 그린다. 고래 뱃속에서 살아나온 요나의 이야기를 통해 부활의 개념을 설명한다. 
 
 

 
 
 
Painted Ceiling, 4C AD, Catacomb of SS Pietro e Marcellino, Rome  
 
제일 가운데 목자로서의 예수님이 들어가고 네명의 순교자 및 복음사가들이 손을 벌리고 연설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인은 비밀리에 집회를 하므로 우수한 화공을 구할 수가 없었서 그림이 납작하고 환영법 이 들어가 있지 않다. 당시 폼페이 하우스에서 발견된 벽화에 비하면 실력이 모자란다. 
 
 
 
 
 
God as Shepherd                                                                                                 Calf-Bearer from Greek Art
                   
초기 기독교 인물을 처음 그려보는 화가는 모티프를 그리스 로마 문화의 인물 상에서 구해온. 송아지를 가지고 신전으로 가는 고대 그리스 그림을 보고 비슷하게 그린다.
 
 
 
 
 
 
 
Sarcophagus of Junius Bassus 359CE

 
 
4세기 중엽 로마의 관리 주니우스 바수스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죽었다. 석관에 기독교적 주제를 원해 최고의 공방에서 조각공을 동원한다. 초기 기독교시대에는 확립된 도상이 아직 없어서 순서가 제멋대로 이다. 부활 희망에 메세지가 맞추어져 있다.
 
 
 
 
 
Sarcophagus of Junius Bassus 359CE
 
조각의 quality 가 괞찬은 편이다. 제국 후기이므로 비율이 어긋나며 우아한 아름다움은 없지만 이야기 storytelling 핵심은 잘 전달이 되어 뱀, 선악과가 들어가 있다. 
 
 
 
 
 
 
Jesus Christ in Sarcophagus                                                                                                              Apollo Belvedere
                 
 
예수님의 얼굴은 젊으면서 우아함을 갖춘 아폴로, 철학자 등에서 따온다. 땅을 관장하는 아틀라스가 예수님 발 밑에 앉아있다. 로마제국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도상을 만들어간다. 
 
 
 
 
 
 
 
Plan of Old St. Peters 324-400
 
 
기독교를 후원한 콘스탄틴 대제는 교회를 짓는다. 대리석 돌벽과 나무지붕으로 성베드로 성당을 지었는데 보수가 계속 필요다. 창문이 지붕 밑에 갇혀 있어 실내는 굉장히 어두웠다.  촛불 조명을 하면 반사를 통해 환하게 보이도록 금도금 한 모자이크를 쓴다. 17 세기에 새로 짓는다.
 
 
 
 
 
 
Reconstruction of Old Saint Peters
 
 
베드로 사도가 1 세기에 순교한 자리에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계속 묻혀서 이미 성지가 되어 있었다. 콘스탄틴 대제가 무덤 위에 아름다운 교회를 짓고 싶어 성베드로 성당을 짓는다. 무덤 위에 발다키노(천개)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바실리카 형으로 교회를 짓는다. 
 
 
 
 
 
 
Plan of Old St.Peters after Frazer 324-400
 
직사각형 모양이다. 앞에 court yard 가 있다. 초기 기독교는 개종자가 많았으므로 세례당이 중요했다. 하루에 수백명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기도 했다. 바실리카 형 직사각형 교회를 만들다가 팔 부분에 wing (transept) 을 만들어 라틴 십자가형으로 모습이 바뀌어 기독교 상징이 된다. 중간에 nave, 제례를 지내는 apse, 복도 aisle 가 있다.
 
 
 
 
 
Baldacchino Bernini over the grave of St. Peter
 
 
베드로성인이 묻힌 무덤 위에 지금은 17세기에 베르니니가 만든 정자 같은 화려한 천개가 있다.  신이 사는 곳, 교회는  Heavenly Jerusalem 을 재현하여 아름다워야 한다. 초기 교회는 테크닉이 딸려서 모자이크를 벽 장식으로 쓴다. 원래 폼페이 집에서는 모자이크로 바닥을 장식했는데 초기 교회에서 창의적으로 사용한다. 기독교는 숭배의 대상인 신상이 필요없고 예수님의 언행을 풀어내는 그림이 필요했다. 당시에 모자이크 공을 구하기 쉬웠기에  벽, 천정에 narrative 를 꾸며낸다. 
 
 
 
 
 
Types of Early Christian Churches
 
직사각형 바실리카 형과 원형의 central plan church 두 가지 형태의 교회가 있다.
 
 
 
 
 
Santa Constanza, Rome 350CE
 
 
로마제국은 귀족적인 사회이다. 콘스탄틴 대제의 딸 콘스탄자가 죽으면서 가족을 위한 funerary chapel을 만든다. 로마의 전통과 기독교식 혼합이다. 집회를 위한 큰 공간은 필요 없으므로 조그마한 원형 공간을 만든다.  
 
 
 
 
 
 
 
천정 모자이크에 기독교 그림이 들어간다.
 
 

 
  
 
콘스탄자는 황제의 딸로서 많은 자선사업을 벌였기에 성인으로 추대된다. 로마 건축에서 뜯어와 재활용한 것 이므로 기둥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S Apollinae in Classe Ravenna 533-49AD
라베나 초기 교회에 모자이크 장식이 잘 남아있다.
 
 
 
 
S Apollinae in Classe Ravenna 533-49AD
금 같이 반짝거리는 재료를 사용한 모자이크에 촛불을 켜면 효과가 대단하다. 작은 돌 tesserae 을 끼워 맞추어 모자이크를 만들었다.
 
 
 
 
 
 
Mansoleum of Galla Placidia, Ravenna
오누리우스 Honorius 황제의 여동생 갈라 프라시디아는 가족묘당funerary을 위한 중앙 집중식 교회를 짓는다.
 
 
 
 
 
 
Good Shepherd, 425-450 Mansoleum of Galla Placidia Ravenna
 
 
선한 목자 예수님이다. 철학자 초상에서 본 듯한 포즈로 예수님을 묘사했다. 로마 황제가 들고 다니던 imperial device 십자가, 하드리안, 안토나인 황제가 sun king을 상징하는 hallo를 썼는데 이것을 빌려와서 예수님을 장식했다. 기독교의 중요 상징으로 등장한다.
 
 
 
 
 
Mansoleum of Galla Placidia Ravenna  
 
모자익 데코레이션이 화려하게 들어간다. 석관을 놓았다.
 
 
 
 
 
 
San Vitale, Ravenna 526-547AD
 
라베나는 이탈리아 북부 항구 도시로서 그리스로 가기 위한 중요 통로이다. 콘스탄티노플 영토 라베나에 지은 산 비탈레 교회는 비잔틴 황제가 후원을 했다고 한다.
 
 
 
 
San Vitale, Ravenna 547CE 
6세기 경에 맥시미아누스 주교 Bishop Maximianus 가 주도를 해서 지은 중앙 집중식 교회이다. 비탈리우스 성인이 묻혀 있어서 산 비탈레 교회 이다. 주두는 로마 시대 고리디안 식이 아니라 비잔틴 제국 시절에 새로 만든 것이다. 
 
 
 
 
 
 
 
Emperor Justinian and His Attendants, San Vitale, Ravenna 547CE
 
 
비잔틴 제국에서는 정치 종교의 권력이 황제 한 사람에게 있었다. 가운데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서고 그 옆에 막스미아누스 주교 및 황제의 시종들이 있다. 정교 일치를 보인다. 보석으로 장식한 제일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이다. 황제가 halo 를 쓴 것이 로마 제국 양식의 특징이다. 로마 제국의 사실적인 표현이 거의 다 사라져서 생김새는 차이가 없고 옷으로 신분의 차이를 보인다. 

 
 
 
Emperor Justinian and His Attendants, San Vitale, Ravenna 547CE 
 
 
카이로는 그리스 글자로서 Christ 의 첫 initial 이다. 콘스탄틴 황제기 밀비안 전투에서 카이로가 새겨진 방패를 가지고 나가서 승리를 했다. 그 이후로 황제는 카이로가 새겨진 방패를 지닌다.
 
 
 
 
 
 
Empress Theodora and Her Attendants, San Vitale 547CE
 
 황제의 부인 테오도라와 시종이다. 미사 드릴 때 와인을 마시는 성배chalice를 교회에 바친다. 로마 제국의 사실적이고 정교한 테크닉은 자취를 감추고 전성기 아우구스티스 황제 시대의 아름다운 미술 양식은 15세기 경에 가서 르네상스 작가에 의해서 재발견 된다. 17세기에 가서는 더 우수한 작가 베르니니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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