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th hour: 동아시아 선불교와 풍경화 14세기 3/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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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464회 작성일 14-03-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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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미술 10th hour: Zen Buddhism and Development of Landscape Painting 선불교와 풍경화 3/19/14
19-20 세기에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는 일본 문화에 심취되어 젠부디즘Zen Buddhism을 대대적으로 소개하였다. 이로 인해 서양에서는 선불교가 마치 불교의 대명사인 듯 그렇게 알려있다. 중국과 한국 역시 선불교의 전통이 강하지만 작품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이에 반해 일본은 선불교 작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심지어 남송 시대에 일본에 건너간 그림까지 가지고 있다. 젠부디즘은 12-13 세기 일본 가마꾸라 시대에 새로운 철학으로 소개되었고, 미술 작품은 14 세기에 많이 나타난다. 가마꾸라 및 무라카미 시대에 선불교가 유행했고 사무라이 계급 자제들이 선승이 되어 초월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
젠 가든, 요안지 View of the Garden of the Ryoanji, 1500
교오또에 있는 요안지 절은 선불교의 센터이며 수행의 장소로서 젠가든(Zen Buddhism, Karesansui, dry landscapes)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먼 산골짜기의 돌인 듯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한 인위적 요소가 가미된 정원이다. 일본 선미술이 가지고 있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젠가든, 요안지 Zen garden, Daisen-in, Subtemple of Daiitokuji
심플하고 장식이 없는 것을 대중문화에서는 젠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젠가든은 극도의 작위성과 노력이 들어간다. 이끼와 모래로 정원을 만들고 폭포도 있다. 자라지 못한 작은 나무에서 오백년 된 나무의 모습을 찾는 분재와도 같은 개념이다. 정원의 물이 망망대해인 듯 관조를 한다. 관조를 계속하면 어느 순간에 깨달음이 온다. 스승과의 선문답을 통해 확인 authentication을 받으면 수도원을 떠나서 혼자서 수행을 할 수 있다.
젠가든, 요안지 View of the Garden of the Ryoanji, 1500
교종불교는 지식과 수행의 정도를 중시하지만, 선불교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의 즉각적 깨우침을 중요시 한다. 유교를 숭상하는 중국은 스승과 제자 간의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였고 선불교에 영향을 준다. 중국 당시기에 유행한 교종은 텍스트 위주의 공부에 중점을 두며 후원을 받아 사원과 재물을 늘리다 보니 부작용이 생긴다. 당의 수도 장안이 불타면서 교종은 자취를 감춘다. 선종은 직관적인 깨달음 immediate intuition 을 추구한다. 전생에 불성을 많이 쌓은 사람은 점화만 시켜주면 순간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선불교 수행자는 선승을 잘 만나야 한다. 전생의 수행을 높이 평가하므로 현세의 사회적 위치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본의 교종 불교는 귀족 중심 이지만, 선불교는 귀족에 반기를 든 사무라이 계충에서 호응을 받는다.
젠가든, 용안사(요안지), 교토
초보 승려들은 처음에는 몸을 통한 수행을 한다. 정원의 모래를 파도처럼 보이게 계속 긁는다. 단계가 높아지면 명상을 통한 수행으로 올라간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함은 인위성 속에 작위성이 전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젠가든, 요안지Rock and Sand Zen Garden, 1489s, Muromachi period, Ryoanji, Kyoto

인간은 순간의 마음 상태에 따라 사물을 다르게 보며, 궁극적인 본질을 보지 못 한다. 수행의 목적은 사물의 본질을 보는 것이다. 돌맹이가 항상 동일하게 보여야 하며 마음의 연상 작용으로 다르게 보이면 안 된다. 선불교는 즉각적인 깨달음을 추구하지만 수행 과정에 무수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들어감은 상당히 역설적 이다.
용안사(요안지), 교토
교토 용안사는 제자를 키우는 센터가 된다. 가마꾸라 시대에 사무라이가 되거나 혹은 초월적인 삶을 추구하는 선불교 수행자가 넘쳐났다. 사무라이 층의 잘 사는 집 자제들이 수행을 하는 곳 이므로 시골로 나가지 않고 자연을 도시로 끌어와 절을 만든다.
세슈Sesshu, 보디달마와 제자 Bodhidharma and his disciple (1429-1506)
선불교 창시자는 인도 간다라 지방의 보디달마 선승 이다. 보디달마가 중국에 와서 수행의 기법을 가르쳐준다. 보디달마가 벽을 보고 앉아있고 제자들이 구름떼처럼 몰리는데 승려 해거도 찾아온다. 전생의 무수한 수행을 통해 배우고자 하는 염이 크고 강렬해야 한다. 해거는 날마다 보디달마를 찾아가는데 꿈쩍도 안 한다. 눈오는 어느날 해거는 자신의 팔을 잘라 보이면서 자신의 진지함을 증명하니, 보디달마는 ‘너는 깨달았다. 내려가라’ 라고 한다.
분사이, 슈우분과 세슈는 지적인 갈망으로 선승이 되어 명상의 방법으로 수묵화를 많이 그린다. 예술적 경지에 다다른 그들의 그림을 원하는 층이 많아져서 거의 직업 화가가 된다. 선불교 그림은 모노크롬 잉크로 그리는 간단한 수묵화로서 선불교가 추구하는 단순함과 맞아 떨어진다. 그림의 바위산에는 중국의 전통적 준법이 나타나는 반면에 달마승은 선불교 식으로 한번에 그은 즉각적인 붓질 이다. 세슈는 남송 시대에 일본으로 넘어온 중국 지식인 커뮤니티에서 수묵화 준법을 배운다.
분사이 Bunsei, 풍경화Landscape, Muromachi period, mid 15th C
그림을 집에 걸거나 다도를 하면서 명상을 한다. 선불교의 수행 방법 중의 하나 이다. 애도 시대 이후에는 선불교가 대중화되고 교육용 인물화를 많이 그린다.
세슈 Sesshu Toyo, Hatsuboku Landscape for Soen, Muromachi period, 1495
선불교의 전통적인 풍경화 이다. 먹을 아껴서 거의 색이 없다. 추상화에 가까운 파격적인 스케치 같은 그림이다. 가마꾸라 시대에는 귀족적인 화려한 취향의 그림도
있었지만, 무로마치 시대 사무라이들은 부패한 귀족과는 차별을 두려는 의미에서 소박하고 정신적인 세슈 스타일의 수묵화를 선호한다.
Paradise scene, front piece to the Amitabha Sutra
젠부디즘 직전에 유행한 화려한 교종 불교의 아미타불은 기복적인 신앙을 추구한다.
Byodoin Temple, Heian Period 1052
일본도 귀족적 사찰이 있었다.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앉은 듯한 기와 모습이다. 젠부디즘과 반대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Jocho in Phoenix Hall, Heian Period 1053
살기 힘든 해이안시대에 부패한 종교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이 그림에 나타난다. 승려를 원숭이로 그렸다. 굶어 죽어가는 대중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종교이다. 왕실이 약해서 귀족들이 부와 권력을 독점한다.
금각사 Golden Pavillion, Muromachi period, 1398
무로마치 시대 지식인들의 후원으로 선불교 절이 유행하는 반면 귀족들은 화려한 절 금각사를 좋아한다. 서방정토 아미타불을 숭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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