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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nd hour: 19 세기 영국 빅토리안 시대 건축: 신고전주의, 고딕리바이벌, 철강구조물 12/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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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7,963회 작성일 14-01-08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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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22nd hour: 19 세기 건축 영국 빅토리안 시대 12/19/13
 
 
 
 
 
19 세기 영국 빅토리안 시대
 
영국에서는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한 반동으로 과거 중세에 대한 향수 및 기도교적 태도를 고수하려는 분위기도 있었다.  19 세기 후반을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서양인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표면적으로는 정신적인 가치에 비중을 두는 고상한 분위기 였지만, 자고 일어나면 낯선 공장이 하나씩 생겨나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던 시기이다.
 
19 세기 프랑스의  주요 흐름은 신고전주의와 고딕 리바이벌 이었다. 로마가 아닌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자는 엄중한 흐름이 신고전주의 이다.  부르봉 왕가의 루이 14 세가 초석을 잘 닦아서 프랑스는18세기에  유럽의 열강 이었다.  그러나19세기 초부터는 작은 섬나라 영국이  산업 혁명을 일찍 끝내고, 식민지 인도를 소유하고 세계를 재패하는 분위기로 변한다. 국력을 바탕으로 국부가 쌓인 것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일환으로 대영박물관을 이 시기에 지었다. 
 
 
 
 
 
대영 박물관 British Museum, London, 1824-47 Robert Smirke 로버트 스머크
 

런던은 도시 개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어서  길이 굉장히 복잡하다. 19세기에 들어와 점잖고 소박한 고대 그리스 양식으로 커다란 박물관을 지었다. 페디먼트, 이오니아식 주두, 양쪽에 갤러리가 있다. 루브르 궁전은 프랑스 혁명으로 궁이 비게되자 박물관으로 전환되었지만, 대영박물관은 미술관의 목적에 맞게 잘 지었다.
 
 
 
 
 
국회 의사당 Charles Barry & Augustus Pugin, Houses of Parliament, 1836-60 Victorian Gothic Style
 

19 세기 초반에 의사당에 큰 불이 나서 새로 지었다. 터너가 화폭에 옮길 정도로 불타는 장면은 장관이었다고 한다. 권리 장전 마그나 카르타가 13 세기 부터 내려온 전통있는 영국 의회당을 새로운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짓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았다.
 
 
 
 
 
국회 의사당 Plan, Houses of Parliament, London
 
 
신고전주의로 짓는 대영박물관과는 달리 국회 의사당은 빅토리아식 고딕 양식으로 지었다. 18세기 산업 혁명이 진행되면서 끊어진 중세 가내 수공업의 맥락을 되살려서 창문살 및 스테인드 글래스를 넣었다. 하지만 건물 안은 신 고전주의식으로 근대적이고 합리적이다. 영국은  두개의 다른 양식, 고딕 양식과 신 고전주의가 공존하고 있었다.
 
 
 
 
 
국회 의사당 Houses of Parliament, 1836-60
 

첨탑과 시계탑 빅벤이 있다. 빅토리아 타워가 있고 웨스터민스터 애비와 연결되어 있다.
 
 
 
 
 
피어스 로비 Peers' Lobby, Houses of Parliament, 1848, Charles Barry the Elder
 
 
엄중한 국회 공간이므로 디테일이 아름답다. 캠브리지 대학이나 중세 교회스런 조각을 넣었다. 문 (포탈portal) 이 있고 스테인드글래스 장식이 있다. 사람들은 빅토리아 고딕 양식의 의사당에 만족해하였다. 19 세기 중엽에 영국에 고딕 붐이 일자, Anglican 양식을 좋아하는 미국은 남북 전쟁 직전에 르네상스 팔라쬬 스타일에 뽀족탑이 있는고딕 양식으로 집을 많이 지었다.
 
 
 
 
 
킹스 크로스 스테이션 King's Cross Station. London, 1851-2, Lewis Cubitt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을 이룬 영국은 철도 시스템을 제일 먼저 갖추었다. 한편에서는 마차가 다니는데 기차역이 들어섰다.  런던은 도시계획이 전혀 되지 않았으므로 기차가 도시 안을 관통하지 못 했다. 런던 외곽에 각 방향으로 나가는 역을 여러개 지었다. 19세기 말에 underground train 이 나온다.
 
 
 
 
 
킹스 크로스 스테이션 King's Cross Station. London, 1851-2, Lewis Cubitt
 

처음에 지은 역이다. 기차 선로마다 트랙이 있고 상부구조가 있다. 비가 올 때 플랫폼까지 걷기에 좋고 증기가 사람에게 가지 않으려면 지붕을 높게 덮어야 했다. 기차 시간을 봐야하므로 시계탑이 꼭 들어갔다. 벽돌로 견고한 구조물로 짓고 유리와 철근으로 도움을 만들었다.
 
 
 
 
 
Interior, King's Cross
 
 
기차역은 빛이 들어와야 하므로 스테인드글라스 대신에 유리가 들어갔다. 유리, 철근 구조물로 지은 최초의 역이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기차역은 매번 지을 때마다 모습이  달라져서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19세기 인상주의 작가들은 새롭게 등장한 역을 그림의 주제로 그리곤 했다. 증기 기차 12 개가 한꺼번에 들어오는 넓은 철근 트랙은 장관 이었다.
 
 
 
 
 
 
 
 
 
 
 
St. Pancras Station, London, 1863-76 판크라스 역, 런던

새로 짓기 이전의 옛날 드로잉이다. 철근 상부구조를 lace 처럼 만들어 무게가 줄고 동시에  견고했다. 빅토리안 시대 영국인은 겉으로는 산업화를 환영해도 속으로는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정서 neurosis 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초원에서 양을 키우면서 살던 사람들은 기차역 같은 현대적 공간에 오면 불안했다. 대지주landlord들은 foreclosure 운동을 벌여 산업혁명으로 잃은 소득을 만회하려고 소작인에게  저임금을 주면서 자신들의 땅을 넓혀갔다. 농촌 젊은 인력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들어와 슬럼가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그랜드 센츄럴 터미널, 뉴욕 Grand Central Terminal, New York, 1903-13 Reed and Stern, Warren and Westmore
 

영국보다 산업 발전이 한참 늦은 미국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19세기 말 -20세기 에10년 동안 지었다. 미국은 남북 전쟁 (1860년)이 끝난 직후 20년(1870-90 년)동안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 철강 및 면방직 공장 등을 갖추었다. 미국은 산업화에 대한 불안감은 별로 없이 변화하는 사회를 잘 받아들였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기차역을 지었다.
 
 
 
 
 

그랜드 센츄럴을 허물지 않고 고치기만 해서 옛날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디자인이 잘 되어서 트랙으로 가기가 좋다. 펜 스테이션도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지었는데, 유지가 힘들어지자, 허물고 새로 지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Eiffel Tower, Paris 1887-89 Gustave Eiffel
 
 
19세기 철근 구조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에펠탑이다. 프랑스는 혁명이 끝나고 1830년대 부터  산업 발전을 신속하게 이루었다. 1889 년 파리 만국 박람회 및  혁명 100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에펠 탑을 지었다. 철근으로 높이 올림이 놀라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전망대의 아이디어 또한 새로웠다. 가스와 전기가 들어와서 밤에 에펠탑에 불을 밝히고 실루엣이 생기도록 고안을 했다.  
 
 
 
 
 
젊은 엔지니어 구스타프 에펠은 직업 학교 출신의 비젼이 있는 엔지니어 였다, 철근의 두께와 높이를 공학적으로  계산하였고, 부분의 unit 을 철강 제조업체에서 만들어 와서 이년 만에 완공했다. 19세기 후반에 빅토리아 고딕과 신고전주의가 공존하는 가운데 technology를 이용한 근대적인 철강 구조물이 올라갔다.
 
 
 
 
 
Eiffel Tower 1887-89 Foundation of the Eiffel Tower
 

구조물이 높아서 파운데이션도 커다란 규모 이다. 루부르 지역의 반대편에 에펠탑을 지었는데 신흥 부자가 된 인상주의 화가들과 그림 소장가들은 탑을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지역으로 이사를 많이 갔다.
 
 
 
 
 
Eiffel Tower 파리 박람회Paris Exposition 1889
 
19 세기 말에 파리 박람회를 하기 위해 탑 주위에 새로 건물을 지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바로크식 건물이지만 철강과 유리를 이용하여 산업 면모를 과시했다. 체육관 같은 큰 전시장 안에는 각 나라의 물건이 전시가 되었다. 전시 후에는 건물을 허물고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에펠탑 Central Dome, Eiffel Tower,
 
 
파리 엑스포에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은 최첨단의 technology 상품을 전시하지만, 폴리네시아, 한국, 일본 등은  민속품, 민예품을 전시했다. 심지어 민속 의상을 입은 아프리카 사람들도 데려다 전시를 했다. 엑스포를 보러오는 유럽인들은 산업이 발달한 우리가 식민지의 발전을 도와준다고 암묵적으로 느꼈다. 엑스포를 통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시켰다.
 
 
 
 
 
Age of Confidence
 

18 세기 후반에는 유럽의 열강들은 산업 혁명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백년 쯤 지나니, 문제점 보다는 기술력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을 누리면서 식민지도 소유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서 19 세기 후반을 확신의 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산업 자원을 소비할 식민지를  구축한 서구 열강과는 달리 식민 지배를 경험한 나라들은 제국주의의 희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880년 경 한국 인천 앞바다에 프랑스 군함이 나타났으며, 중국은1860년에 아편 전쟁을 격고 극심한 곤란에 시달렸다. 유럽 열강들은 중국에 와서 도자기, 실크, 은 등 물건을 사기에 바빴지만 중국은 그들로부터 필요한 것이 없었다. 이런 무역 불균형이 계속되자 영국 상인들은 아편을 거래해서 중국인들을 타락의 길로 몰아 넣었다. 청나라 정부는 영국의 핍박에 전쟁으로 응했고, 중국은 처참하게 패배를 했다. 서구 열강들은 중국 및 아시아를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서구 열강들은 Age of Confidence 하고 부르지만, 서구의 모더니즘은 식민지의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인도, 라틴 아메리카, 동아시아, 필리핀 등 식민지에서 가져온 막대한 재원으로 산업 발전을 이루면서 엑스포까지 개최기에 이르렀 다.
 
 
 
 
 
Bridge
 
 
세번 리버 다리Abraham Darby, Severn River Bridge (the Iron Bridge), Coalbrookdale, Shropshire, England, 1779 영국
 
 
철강 산업이 발달되면서 도시 기반 시설인 다리도 지었다. 고즈넉한 다리들이  점차로 철강 다리로 변해갔다. 기단 부분은 벽돌로 하고 윗부분은 철강으로 만들어 붙였다. 공법을 이용해  철강을 이쑤시개처럼 역으면 스팬span이 넓어져서 큰 강의 다리도 가능해졌다.
 
 
 
 
세번 리버 다리 Severn River Bridge (the Iron Bridge)
 
 

 
 
 
세번 리버 다리 Severn River Bridge (the Iron Bridge)
 
디자인 개념도 적용되어 마치 쇠사슬로 역은 고리 같다.
 
 
 
 
 
템즈강 프로젝트Thames River Project, London, 1801 Thomas Telford
 

엔지니어 텔포드는 넓은 템즈강 강을 한꺼번에 연결할 수 있는 다리를 철강 구조물로 만들었다,
 
 
 
 
 
 
부르클린 브릿지, 로우불링 브라더스 John and Washington Roebling, Brooklyn Bridge, New York, 1867-83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는 조형적으로 아름답다. 두개의 철근이 육중한 구조물을 지지한다. 이스트 리버는 크고 긴 강임에도 불구하고 주조물은 아주 얇다. 기차, 사람, 자동차가 다 다닌다.
 
 
 
 
 
 
가라비트 비아덕트, Gustav Eiffel, Garabit Viaduct, France, 1880-85
 
 
구스타프 에펠이 가라비트 비아덕트를 디자인했다. 19 세기인의  눈에는 현대적인 개념의 다리가 무척 이상하게 보였다. 새롭기 때문에 무섭기도 했다. 테크놀로지로 인한 불안감이 소설의 주제로 등장했다. 당시 문학작품으로 낮에는 과학자이지만 밤에는 괴물로 변하는 프랑켄슈타인이 인기를 끌었다.
 
 
 
 
 
포스 브릿지, 스코트랜드Sir Benjamin Baker, Forth Bridge, Scotland, 1882-89

 
 
조형적  integrity 가 보이는 아름다운 다리를 짓기에 이르렀다. 이쑤시개 같은 격자를 가늘게 하느라고 공학적으로 고심을 하였다.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기차가  윌리엄 터너의  말년의 그림에 등장한다. 성모 마리아는 위안을 주는 종교적 존재였는데, 이제는 믿을 곳이 없다는 내용의 수필이 당시에 또한 등장했다. 이제는 증기기관차, 발전기를 믿어야 하나 하면서 불안해 하였다.
 
 
 
 
 
포스 브릿지, 스코트랜드 Sir Benjamin Baker, Forth Bridge, Scotland, 1882-89
 

순박한 사람들의 불안감을 해소기키는 방편으로 종교 또한 아류가 등장했다. 몰몬교 목사, 약장사와 신빙성이 없는 전도사들이 들끓었던 시대이기도 하다. 19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불안감과 고민에 몸이 잘 아펐으며 드디어1900 년에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우울한 라이프를 사는 사람들은 그의 꿈 해몽에 귀가 솔깃해졌다.
 
 
 
 
 
 
비블리오테크 셍트 쥬느비에브, Henri Labrouste앙리 라브루스트, Main reading room, Bibliothèque Sainte-Geneviève, Paris. Designed 1842, built 1842–51
 

판떼옹 근처에 공공 도서관을 창의적으로 디자인했다. 근대적 개념의 역, 도서관, 백화점 등이 생겼다.
 
 
 
 
 
마가젠 봉 마쉐 Magazine du Bon Marche, 1876 Gustave Eiffel and Louis-Charles Boileau
 
 
파리 남쪽에 Good Market (백화점)이 생겼다. 도시계획에서 파사트 선을 맞춘 것 처럼 건물의 차양으로 앞을 맞추었다. 비가 와도 걸을 수 있고, side cafe 가 되기도 했다. 이전에는 tailor 가 집에 와서 옷을 맞췄지만,  산업 혁명 후에는 백화점 department store 에 물건을 모아놓고 팔았다. 라부르스트는 제자들을 많이 키워서 미국, 스위스 등 다른 나라에 퍼져 나갔다.
 
 
 
 
 
마가젠 봉 마쉐 Interior Section, Magazine du Bon Marche, 1876
 
 
얇은 철근 구조물이  6층으로 올라간다. 라부르스트는 19 세기적 백화점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공공 생활을 즐기도록  백화점 벽을 뚫리게 지었다. 욕망의 사회학에는  남의 쇼핑을 보고 쇼핑을 따라 한다는 소비자 심리가 있다.  이런 개념이 호텔에도 적용되어 A trium 에서 다른 곳을 내려다 보게 디자인 하였다.
 
 
 
 
 
코울 익스체인지 Interior, Coal Exchange, London, 1846-49 JB Bu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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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가격이 들쑥날쑥한 석탄을 exchange 하는 건물을 지었다. 철근 구조물로 지어서 남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비블리오테크 네이셔널 Stacks of the Bibliothèque National, Paris, 1858-68  Henri Labrouste
 
 
라 부루스테가 파리에 서고를 새로운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19 세기에 프레스 머신이 생기자 서구 열강들은 축적된 부를 가지고 통계자료와 백과 사전 등을 만들었다. 막대한 자료를 저장하므로 층이 높을 필요가 없고 그 대신 여러층으로 나누었다. 한편 교도소도 같은 시스템을 적용했다. 프랑스 혁명 후 정치적 개념이 다른 사람들을 Cell 을 만들어 잡아 넣었다. 도서관, 백화점, 교도소, 학교는 인적 자원을 콘트롤 해야 하므로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중세에는 소수만이 학교를 갔지만 근대 사회가 되면서 많은 인적 자원 human resources 이 필요했고 동시에 산업화 수준을 따라가기 위하여  거의 다 학교를 다녔다.
 
 
 
 
크리스탈 팔래스Phillip Henry Delamotte, The Crystal Palace at Sydenham 1850
 
 
19 세기 말에 지은 가장 규모가 큰 유리 건물로서 혁신적인 공간 이었다. 런던world expo 개최 목적으로 지었으며 후에 철거하려고 일부러 벽돌을 쓰지 않았다. 얇은 철근 구조물을 유리로 덥었기에 크리스탈 팔래스 라고 불렀다.  빅토리안 스타일 드레스를 차려 입고 마차에서  내린 영국인들이 면방직 기계, 증기 기관 모델을 보는 것은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크리스탈 팰러스Crystal Palace, 1851(destroyed in 1936) Joseph Paxton 조세뵤 팩스톤
 
 
 
 
 
 
 
크리스탈 팰러스Crystal Palace, interior

남아있는 드로잉이다. Coal exchange 건물과 똑같은 구조이며 각 나라 전시관이 있다. 한국은 1892년에 시카고 엑스포에 처음 참석했다.
 
 
 
 
 
크리스탈 팰러스The Crystal Palace at Sydenham, probably by Phillip Henry Delamotte 시덴함
 

 
크리스탈 팰러스를 시덴함에 옮겨서 실제의 반 정도 사이즈로 지었는데 불에 타 버렸다. 레고 블럭을 짓듯이 쌓아서 올라가는 간단한 구조물이다. 신고전주의 양식에 철근 구조물과 유리를 사용했다. 마치 지금의 쇼핑몰 분위기 였다.
 
 
 
 
 
Fire at The Crystal Palace in 1936
 

1936년에 청소하는 사람의 실수로 큰 불이 났다. 당시 영국은 경제 공황을 지내고 있어서  구조물을 다시 복원할 여력은 없었다.
 
 
 
 
 
파리 엑스포 Interior the Palais de l'lndustrie at the Universal Exposition of Paris, 1855
 

크리스탈 팰러스가 모든 엑스포 의 기본이 되어 1855 파리 엑스포 건물도 비슷하게 지었다. 도움이 있고 전시장을 3-5 층까지 올렸다.
 
 
 
 
 
 
Exterior of the  Palais de l'lndustrie at the Universal Exposition of Paris, 1855
 
 
 
 
 
 
머신 홀, 파리 엑스포 Hall of Machines at the Universal Exposition of Paris, 1855
 
 
임시적인 전시 공간이 아니라 좀더 permanent 한 건물이다. 한쪽에서는 식민지의 민예픔이 놓여 있는데, 프랑스의 테크롤로지 상품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기계로 짠 셔츠, 기계로만 가능한 패턴, 새로 나온 기차 모델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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