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th hour: 르네상스 후기 1530-1600 건축 : 미켈란젤로 11/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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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6,055회 작성일 13-11-27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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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14th hour: 르네상스 후기 건축 Late Renaissance Architecture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1530-1600)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서양 문화는 전통적으로 건축을 가장 우수한 분야로 여겼다. 르네상스에 브라만테, 줄리오 로마노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건축가는 미켈란젤로 였다. 미켈란젤로는 엄청난 재능을 가진 손이 있었으며 스스로 조각가 이기를 원했다. 자신의 재능은 신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종교적 신념이 굳건한 르네상스 매스터 이자, 모든 분야에 능통했던 인문학자였다.
Michelangelo, Biblioteca Laurenziana, Florence, begun 1523 미켈란젤로, 비빌리오테카 라우렌지아나, 플로렌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의 도서관을 만들었다. 메디치 가문은 인문학을 연구하는 학술단체 Neo Platonic Academy 를 창시하여, 고서 및 도서를 수집하였다. 흰색 벽 사이의 회색돌이 패널처럼 보이고, 반원형 입구가 있다. 별 장식이 없이 반복되는 기하학적 unit 으로 인해 통일감이 있으며 차분하다.
Michelangelo, Biblioteca Laurenziana, Florence, begun 1523 비빌리오테카 라우렌지아나, 플로렌스
미켈란젤로는 프로파일이 많이 드러나도록 디테일을 깎았다. 조각처럼 튀어 나온 입체적인 기둥 이 주는 시각적인 효과는 대단하였다. 메디치 도서관을 지은 후, 모든 건축에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육중한 프로파일의 몰딩molding이 적용되었다. 몰딩이 튀어나와 조각적인 느낌이 강하였다.
Michelangelo, Vestibule of the Laurentian Library, Florence, begun 1523, stairway designed 1558-1559 Michelangelo미켈란젤로, 라우렌티안 도서관 로비, 플로렌스
도서관의 계단이다. 한쪽은 각이 지고 다른 쪽은 둥굴다. 삼각형 입구가 마치 신전 같고 스크롤이 있다. 회색과 흰색이 반복되고, 부자재의 각을 많이 팠다.
가운데 outline을 깊이 팠으며, 스크롤scroll은 알베르티의 디자인과 비슷하다. 부자재의 격조를 한 단계 높인 토탈 개념이다.
Florence, Palazzo Della Signoria, begun 1300, with a copy of Michelangelo's David in its original location 미켈란젤로, 팔라쬬 델라 시그노리아, 다비드 상

이미 유명해진 미켈란젤로는 connection 을 이용하여 조각을 만들어서 플로렌스 시청 팔라쬬 베키오 앞 피아짜에 세웠다.
Giuliano de'Medici's tomb, Church of San Lorenzo, Florence 쥴리아노 메디치 무덤, 산 로렌조 교회, 플로렌스
미켈란젤로는 산로렌조 교회 안에 줄리아니 메디치와 로렌조 메디치의 무덤인 New Scarcity 를 지으라는 커미션을 받았다. 위에는 도움이며, 돌을 많이 파서 조형성이 강하다. 흰색과 회색을 같이 쓰고 몰딩의 프로파일이 다른 몰딩보다 3 배쯤 더 복잡하다. 격조가 높고 우아한 건물이다.
New Sacristy (the Medici chapel) in the Church of San Lorenzo, 1519 미켈란젤로, 메디치 채플, 산 로렌조 교회, 플로렌스
New Sacristy (the Medici chapel) in the Church of San Lorenzo, 1519 미켈란젤로, 메디치 채플, 쥴리아노 메디치 무덤, 산 로렌조 교회, 플로렌스
전형적인 코린도식의 필래스터pilaster를 만들었으며, 정교한 니치niche, 꽃다발 조각 장식 등 이 들어갔다. 르네상스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예배당 이다.
Michelangelo, Giuliano de'Medici's tomb, Day and Night, New Sacristy, Church of San Lorenzo, Florence 1519-1534, Michelangelo 미켈란젤로, 쥴리아노 메디치 무덤, 산 로렌조 교회, 플로렌스
줄리아노 초상 이다. 로렌조의 동생 줄리아노는 파찌 패밀리가 보낸 자객에게 죽었다. 자신을 대신하여 남동생이 일찍 죽었기에 로렌조는 늘 마음 아파했다. 세부 디테일이 많이 들어갔다.
Michelangelo, Tomb of Lorenzo de'Medici, Dusk and Dawn, New Sacristy, Medici Chapel, Church of San Lorenzo, Florence 1519-34 미켈란젤로, 로렌조 메디치 무덤, 산 로렌조 교회, 플로렌스
로렌조 메디치 초상 밑에 새벽과 박명을 알려주는 신이 누워있다. 세심한meticulous 미켈란젤로는 기둥에fluting 을 넣어서 굴곡이 심하고 이로 인해 그림자가 깊게 진다.
Michelangelo's Model, Facade of San Lorenzo, Florence 1519 미켈란젤로, 산 로렌조 파사드 모델, 플로렌스

메디치 가는 미켈란젤로에게 산 로렌조 교회 파사드 디자인 커미션을 주었다. 하지만 플로렌스의 다른 집안의 질시가 염려되어 결국 짓지 못 했다. 삼각형의 각이 두번 들어가고, 필레스터가 많이 튀어나왔다. 라운딩 안에 조각을 넣었다.
Courtyard of the Palazzo Pitti. Florence, 1558-1570, Bartolommeo Ammanati 바르톨로메오 아만티, 피티 팔라쬬, 플로렌스

메디치가가 궁전을 짓자 플로렌스의 피티 페밀리도 집을 지었다. 조각과 건축에 있어 많은 선례를 남긴 거장 미켈란젤로를 따라잡기 위하여 미술가들은 정석에서 변형을 추구하여 디테일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 시기를 매너리즘 이라고 한다. 부루넬레스키는 간단한 정사각형의 반복이 주는 쾌감이 있었고, 미켈란젤로는 깊게 파기는 했어도 조각의 원칙은 간단했다. 매너리즘은 훌륭한 디테일과 많은 지식을 보여주지만 화려함이 지나쳐서 단순 명료한 원리를 잊어버려서 복잡하다.
Facade of Uffizi, Florence, begun 1560, Giorgio Vasari 지오르지오 바자리, 파사드, 우피지, 플로렌스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 우피지(오피스) 건물의 파사드는 매너리즘 건물로 유명하다. 13-14세기에 지은 요새같은 팔라죠 베키오(시청)와 붙어 있었다. 1500 년 이후에 다시 정권을 잡은 메디치 집안은 투박한 팔라쬬 베키오를 넓혀주겠다고 플로렌스 시에 제안했다. 르네상스의 화려한 건물이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오자 중세 건물의 협소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피지 건물과 팔라쬬 베키오는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바자리는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는 전속 화가였으며 우피지 건물을 디자인했다. 한편 르네상스 화가와 조각가의 전기를 써서 유명해졌다. 미켈란젤로가 기준을 높게 세워서 화가는 조각, 그림, 건축, 글 등 모든 것을 잘해야 했다.
파사드에 미켈란젤로의 영향인 듯 흰색 회색 석어서 쓰고, 기둥을 두개씩 넣고, 산로렌조 성당과 비슷하게 조각 감을 넣었다. 바자리는 미켈란젤로를 이해는 했지만 현실적인 요건과 절충해서 우피지 건물을 지어야 했다. 건축의 요소는 다 있는데 미켈란젤로를 능가하지는 못 했다. 바로크 시대에서 가서 미켈란젤로를 의식하지 않은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것이 차라리 매너리즘 보다 낫다고 평가된다.
Michelangelo, Capitoline Hill (Campidoglio), Rome, designed 1537 (engraving by Etienne Duperac, 1569), 미켈란젤로, 캐피톨라인 힐, 로마

미켈란젤로가 건축에도 소질이 있음을 알고 교황 폴 3세는 캐피톨라인 힐을 아름다운 피아짜로 다시 꾸미라고 했다. 로마는 1400-1500년 사이에 내란이 있어서 도시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가 1500 년 이후에 로마의 7 개 언덕에 있는 건물 중 몇 개를 재정비 하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는 광장을 새로 꾸미면서 이미 있는 두 건물의 파사드를 똑같이 다시 디자인했다. 로마의 도시 재개발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다.
미켈란젤로, 캐피톨라인 힐, 로마
미켈란젤로는 어딘지 어색해보이는 공간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려고 고심했다. 캐피톨라인 힐에 두 건물은 이미 있었는데, 두 건물의 각도가 80 도 였음을 알게 되었다. 과거에 땅 모양대로 건물을 지었기에 정확히 떨어지는 90도가 아니었다. 광장 공간이 어중간해 보였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미켈란젤로, 캐피톨라인 힐, 로마
미켈란젤로는 있는 땅에 다른 건물을 똑같이 80도 각도로 짓기로 했다. 광장이 타원형이지만 바닥에 그리드 패턴을 넣어 원형으로 보인다.
미켈란젤로, 캐피톨라인 힐, 로마
미켈란젤로는 광장 중간에 중심 focal point 를 잡아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초상을 올렸다. 비어있는 공간을 사다리꼴로 만들어서 그 안에 타원형의 피아짜를 디자인 했다. 르네상스의 기본은 원형과 정사각형 이지만, 바로크 시대에 미켈란젤로가 만든 타원형과 직사각형이 중심 패턴이 된다.
Palazzo del Conservatori, Campidoglio, Rome, designed 1545, Michelangelo 플라쟈 델 컨저바토리, 캠피도글리오, 로마
먼저 있던 두 건물을 허물지 않고 파사드만 Identical 하게 만들었다.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칼럼들만 새로 넣었다. 칼럼을 이층에서 일층으로 길게 내려 연결했고, 기단을 만들어 기둥이 높아 보인다. 조각적인 기둥 및 둥근 칼럼이 들어가 리듬감, 조형감, 안정감 있는 광장으로 변했다.
Michelangelo, St. Peter´s, Rome, seen from west, Italy, 1546-64 dome completed by Giacomo della Porta, 1590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 성당, 로마

미켈란젤로가 캐피톨라인 힐을 성공적으로 꾸미자,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아직 재건축을 못 하고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디자인 하라고 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죽고 나서 1600 년 전후로 베드로 성당을 짓게 되었다. 17세기에 지을 때 디자인이 많이 바뀌지만, 파사드 뒤쪽 3 층 건물에 미켈란젤로의 디자인이 반영되어 각이 진 기둥이 하나로 내려온다.
Plan, Bramante's St. Peter's, 1505 Michelangelo's St. Peter's, 1546-84 베드로 성당 플랜, 브라만테 / 미켈란젤로
베드로 성당 플랜, 브라만테 베드로 성당 플랜, 미켈란젤로
브라만테가 40여년 전에 디자인 했지만 그를 밀어준 교황이 죽어서 브라만테의 플랜이 실행되지 못 했다. 미켈란젤로는 원형과 사각형이 들어가는 브라만테의 공간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브라만테는 앞부분이 둥글지만, 미켈란젤로는 직사각형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성당 위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의논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미켈란젤로가 죽어서 그의 디자인이 채택되지 못 했다.
St. Peter´s, Vatican, Rome, Italy, 1546-64, dome completed by Giacomo della Porta, 1590
1600을 전후하여 성베드로 성당의 도움과 파사드를 새로 지었다.
Facade of Il Gesu, Rome, ca 1575-1584, Giacomo della Porta 일제주 교회, 로마

르네상스 후기에 매너리즘이 대두되었다. 매너리즘 건물인 제슈이트 Jesuit 예수회 본산이 로마에 있다. 미켈란젤로 풍으로 위층을 연결하는 각이 진 기둥 디자인 이다. 알베르티 풍의 스크롤이 있다. 필레스터에 홈을 파지 않고, 코린디안 캐피털이 들어갔다. 입구에 round 형 안에 삼각형이 들어가 있는데 이런 점으로 인하여 매너리즘Mannerrism 이라고 한다. 원칙을 변형하여 여러가지 디테일을 혼용하여 같이 사용했다. 후기 Renaissance의 거장인 미켈란젤로, 라파엘은 originality 와 신념이 있었던 반면에 다른 건축가들도 솜씨는 좋았지만 일관성이 있는 디자인 이론을 밀고 나갈 만큼 신념이 없었다. 그래서 아는 지식을 섞어서 절충적으로 사용했으므로 매너리즘 이라고 부른다.
Interior, Urban VIII Visiting II Gesu, 1639-1641, Andrea Sacchi and Jan Miel 일제주 교회
Interior, II Gesu, 1639-1641, 일제주 교회
현재 모습으로 바로크 시절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금이 훨씬 많이 들어갔다. 이에 비하면 르네상스 건축은 심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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