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th hour: 15 세기 르네상스 초기 건축 :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1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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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13,325회 작성일 13-11-1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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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12th hour: 르네상스 건축 Renaissance Architecture: 이태리 건축 브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르네상스는 이전의 고대 그리스 문화를 재현revival of classical antiquity하는 시기였다. 1300년 을 전후하여 유럽은 십자군 운동으로 인하여 다른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상업적인 눈을 뜨게 되었다. 1350 년 경 흑사병 위기를 넘기고 14 세기 말부터 경제 상황이 호전되었다. 부를 축척한 중산층이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모국어 vernacular language 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기사도 정신만 추구했던 귀족 자제들도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잘 사는 상인들 중에 다방면에 조예가 깊은 인문학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부루넬레스키, 알베르티 등의 건축가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이해하는 지성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또한 르네상스에 발 맞추어 공공 프로젝트가 많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Florence Cathedral (Santa Maria de Flore) 플로렌스 성당 (꽃의 성모 성당)
Filippo Brunelleschi, Renaissance Architect 필립보 부르넬리스키, 르네상스 건축가
Filippo Brunelleschi, Renaissance Architect 필립보 부르넬리스키, 르네상스 건축가

플로렌스 성당은 르네상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시에나 사람들이 아름다운 시에나 성당을 완성하자, 야심 만만한 플로렌스 사람들은 거대한 도움dome이 들어가는 플로렌스 성당을 계획하었다. 하지만 도움의 무게로 인해 자꾸 무너져 내려 성당은100 년 동안 미완성으로 있었다. 플로렌스 성당은 1417-19 년 사이에 공모전을 열었고, 르네상스 건축가 부르넬리스키가 무게를 줄이면서 도움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도움과 폭이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큰 편에 속하며, 판태온의 도움보다도 1/3 정도가 높았다.
Plan Santa Reparata

원래 있던 폴로렌스 성당은 규모가 작았다. 13 세기 중엽에 인구가 조밀해지자 플로렌스는 도시 계획을 실시하여 낡은 집들을 허물고 성당 터를 두배로 넓혔다.
Plan Florence Cathedral (Santa Maria de Flore) 플랜, 플로렌스 성당 (꽃의 성모 성당)

성당의 폭이 커서 지붕을 덥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브루넬리스키는 8각형 이중 도움을 고안하여, 도움 안은 비우고 겉을 바르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도움 위에 꼬깔 같이 생긴 랜턴을 붙여서 더 높아 보였다. 드럼 부분에는 창문을 붙여서 빛이 들어오게 했다. 창문 (눈,오쿨러스 oculus) 이 8 개 들어갔다.
Dome of Florence Cathedral (Santa Maria de Flore) 플로렌스 성당 (꽃의 성모 성당)
도움 안에 그물같은 스켈레턴 skeleton구조로 돌을 쌓고 밖은 테라코타(세라믹 타일) 로 발랐다. 중간을 많이 뚫었기에 도움의 무게를 3/4 정도 줄일 수 있었다. 또한 벽돌을 사선으로 꽈배기 꼬듯이 생선 뼈 모양으로 올라가서 해링본방식 (Herringbone brick work)이라고 부른다. 이 방식으로 벽돌의 양을 1/3 정도 줄였다.
플로렌스 성당 (꽃의 성모 성당)
도움의 이중 구조 사이에 계단을 만들어 보수유지 공간으로 사용했다. 도움 안에는 하늘로 승천하는 예수님의 벽화 장식이 있다. 구멍이 많이 뚫린 랜턴이 위에 있고, 8개의 창문으로 빛이 들어와서 밝고 쾌적했다.
Mausoleum of Oljeitu Knodabanda, Soltanyeh, Iran 1304-1313

브루넬레스키는 1400 년 초반에 성당의 portal을 장식하는 공모전 경쟁에서 길베르티에게 패배를 하고, 로마, 베니스 등을 10년 동안 방랑 하던 중 이슬람의 모스크를 보게 되었다. 이슬람의 지붕은 겉은 종모양이고, 안에 뼈대rib를 넣은 double shell system 이다. 탐구욕에 불타는 르네상스 작가는 이교도의 문화를 과학자의 시선으로 살폈고, 지붕의 특이한 구조를 알게 되었다. 마침내 플로렌스 성당의 도움에 응용하기에 이르렀다.
Leonardo Da Vinci, Brunelleschi's Elevators/ Horse -driven version of the Brunelleschi hoist
레오나르도 다빈치, 브루넬레스키의 엘리베이터 / 브루넬레스키, 말을 사용한 기중기
건축가 브루낼레스키는 말이 끄는 기중기 hoisting machine 를 고안하면서, 플로렌스 성당의 높은 도움을 쌓아갔다. 르네상스에 들어와서 지적인 열망을 가진 미술가들은 그리스 로마 전통을 연구하고, 발명가, 공학자, 과학자로서 능동적 창의자가 되어갔다. 다빈치도 기계 디자인을 많이 했다.
Brunelleschi's Device for perspective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도구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의 원리를 창안하여 거리를 재는 도구를 만들었다. 14 중엽에 도시계획을 하던 당시 사람들은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소실점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브루넬레스키는 플로렌스 성당에서 적정점에 세례당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상대적인 거리를 재어서 평면에 옮겼다. 이차원적인 거리를 측정하여, 삼차원으로 잘 볼 수 있는 거리를 계산했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구멍을 뚫어서 금속 판 위에 그림자가 나타나도록 도구를 만들었다. 마침내 브루넬레스키의 도구로 인하여 화가들이 원근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Masaccio, Holy Trinity 1427,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마사치오, 성 삼위,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브루넬레스키는 젊은 화가 친구인 마사치오와 도나텔로에게 원근법을 가르쳐주었다. 마사치오는 원근법이 적용된 회화 작품을 만들고, 도나텔로는 1425년 쯤에 조각을 하나 만들었다.
Public Buildings
Brunelleschi, 부르넬리스키 Ospedale degli Innocenti, Florence, begun 1521 고아들을 위한 자선 병원, 플로렌스, 이태리
Brunelleschi, 부르넬리스키 Ospedale degli Innocenti, Florence, begun 1521 고아들을 위한 자선 병원, 플로렌스, 이태리

13 세기 말 14 세기 초에 플로렌스는 도시계획을 하며 광장 (피아짜 piazza) 정리의 일환으로 고아원 부속 건물의 정면 (facade파사드)을 다시 짓는 공공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중세 및 전근대에는 귀족과 부자들은 의사가 왕진을 갔고, 극빈자와 고아들은 병원 시설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았다.
Ospedale degli Innocenti, Florence, begun 1521 고아들을 위한 자선 병원, 플로렌스, 이태리

르네상스에는 더 이상 뾰족한 첨탑의 고딕 양식을 쓰지 않았다. 브루넬리스키는 로마를 다녀온 후, 로마건축의 원형을 건축에 가져왔다. 로마식 아치와 그리스 신전같은 삼각형 창문을 각각 9개 넣어서 조형감을 주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가 주는 조화감이 있다. 흰색 벽에 기둥이 있고 사이에 도자기로 만든 아기 천사가 들어갔다. 건축의 각 요소들을 unit으로 반복하여, 음악을 듣듯이 쾌감을 주면서 구조가 흘러간다.
Ospedale degli Innocenti, Florence, begun 1521 오스파달리 호스피탈, 고아들을 위한 자선 병원, 플로렌스, 이태리
자선 병원에서는 대부분 고아들이 죽어 나갔다. 아기 천사가 하늘로 가는 조각을 넣었다. 치밀하게 계산된 5 개 계단은 하이힐을 신은 듯 멋을 건물에 더해준다. 공공 건물 프로젝트는 파사드만 하는 경우가 많아서 병원 안은 전혀 장식이 없었다.
Brunelleschi, 브루넬리스키 Nave of San Lorenza, ca 1421-1469 산로렌조 교회 플로렌스, 이태리

플로렌스 도시국가는 12 개의 중요한 집안이 동등한 권력을 행사하는 권력 구조였다. 1410년 경 메디치가가 권력이 너무 세어지자 정치적으로 견제를 당하여 베니스로 망명을 떠났다. 십년 후에 돌아온 메디치가는 여전히 재력은 있었지만 1421-29 년 사이에 정치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었다. 피아짜에 접해있는 교구 교회의 파사드를 다시 지으면 라이벌 가문의 눈총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메디치가는 브루낼리스키를 불러 조용히 실내만 재 건축을 시작했다.
Nave of San Lorenza, ca 1421-1469 산로렌조 교회, 플로렌스, 이태리

메디치 팔라쬬 (palazzo궁전) 옆에 있는 산로렌조 교회는 메디치가 사람들이 늘 가는 교구 교회 이다. 메디치가와 관련 업무가 있거나 비지니스를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일요일에 이 교회에 얼굴을 내밀었다. 세인트 로랜스는 메디치가 수호 성인이다.
브루넬리스키 건축의 language는 고린도식 주두, 로만 아치, 동그란 창문 등 이다. 고린디안 캐피탈을 우아하게 조금 늘였고, 오스파 달리 호스피탈(고아자선 병원)과 같은 조각을 넣었다. Sail vault 를 넣고 사이에 동그란 창문을 넣었다. 기단도 적당한 높이이며 같은 unit 이 반복된다. 브루넬리스키의 건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리듬감과 통일감이 세련된 조화감을 준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홈fluting 이 들어간 사각형 기둥을 벽에 붙여서 pilaster 를 만들었다. 바닥은 기하학적 그리드 unit 의 반복이 주는 느낌이 아름답다. Coffered ceiling(recessed ceiling) 은 높고 화려하다. 고전적인 흰색 및 회색빛이 나는 라임스톤을 썼다. 같은 unit 을 사용했지만 조금씩 다르게 세부를 구성하여 음악이 강약이 있는 듯 하다. 16 세기 건축가들은 브루넬리스키의 몰딩과 프로파일을 가지고 자신의 건축에 조금 변형을 시켜 사용했다.
Pisa Cathedral 피사 성당
같은 로만 스타일이지만 로마네스크식 피사 성당의 기둥은 로마시대 유적에서 돌을 주워 썼으며, 답답해보이는 반면에 부루넬리스키는 몰딩을 넣어서 음악적인 쾌감을 준다.
Plan of San Lorenza 산로렌조 교회, 플랜
구조도가 기하학적으로 아주 치밀하다. 다른 사이즈의 정사각형이 반복된다. 클래식한 느낌을 주고 조화롭다. 사제가 미사 준비하는 방 Scarcity을 양쪽에 만들었다. 모듈 시스템이 4 개가 들어간다. New Sacristy, 안에는 로렌조 메디치와 쥴리아노 메디치의 무덤이 있다.
산로렌조 교회, 플로렌스, 이태리
메디치가 교구 교회의 실내는 가문의 경제력과 위엄을 보이지만, 파사드는 실망할 정도로 허름하여 관광객이 못 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파사드 까지도 아름답게 만들었으면 사람들의 질시를 또 받았을지도 모른다.
Brunelleschi, 부르넬리스키 Santo Spirito, Florence, Italy 1436-1482 산토 스피리토, 플로렌스, 이태리

브루넬리스키는 성당 안을 먼저 꾸미다가 파사드를 끝내지 못 했다.
Interior, Santo Spirito, Florence, italy 1436-1482 산토 스피리토 교회
브루넬레스키가 좋아하는 기본적인 vocabulary 가 들어갔다. 기둥을 만들고 조금 높인 고린디안 주두와 조각을 넣었다. 정사각형 unit이 반복된다.
브루넬레스키가 좋아하는 기본적인 vocabulary 가 들어갔다. 기둥을 만들고 조금 높인 고린디안 주두와 조각을 넣었다. 정사각형 unit이 반복된다.
Plan of Santo Spirito 산토 스피리토 교회, 플랜
Unit 이 반복되는 브루넬레스키 형 교회 이다. 르네상스에 unit 이 반복되는 교회가 많이 지어지는데, 여기에 싫증이 나자 변형 스타일이 들어간 바로크 양식이 나온다.
Pazzi Chapel, Sta. Croce (1294-1480), Florence, Italy, 1429-1446
Pazzi Chapel, Santo Croce, Florence, begun 1442-1465 파찌 채플, 산타 크로체, 플로렌스, 이태리
Pazzi Chapel, Santo Croce, Florence, begun 1442-1465 파찌 채플, 산타 크로체, 플로렌스, 이태리

도미니칸 수도원의 산타 크로체 교회 뒤뜰에 파찌 가문이 개인 채플을 지었다. 보통은 교회 안에 도네이션을 하고 작은 채플을 만들지만, 파찌 가문은 메디치가에 버금갈 정도로 위신이 있는 집안 이었다.
전기 작가 마네티는 브루렐네스키의 전기를 쓰면서 파찌 채플을 그의 작품으로 열거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약간 이상하다는 반론이 제기가 되어 파찌 채플의 건축가에 대하여 controversy 가 생겼다. 브루넬레스키 양식과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건축가가 지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은 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조화와 하모니를 이루는데 파찌 채플의 랜턴은 눈에 거슬릴 정도로 높이 올라갔다. 파찌 채플은 브루넬레스키의 흉내를 열심히 내었던 젊은 작가 미켈레쪼의 건축이라고 설이 있다.
Interior of the Pazzi Chapel 파찌 채플

파찌 채플은 브루넬레스키가 늘 쓰는 필레스터pilaster (반 기둥), 고린디안 주두, 라운델이 있으며 흰색과 회색의 라임 스톤을 사용했다. 칼럼의 두께가 조금씩 달라서 하모니를 이룬 듯 하다. 라운델은 고아들의 자선 병원에 있던 것과 흡사하고, 언뜻 봐서는 브루넬레스키 스타일과 비슷해 보인다.
San Lorenza Old Scarcity 산로렌조, 미사준비실
메디치 가문의 산 로렌조 교회의 신부들이 미사 준비하는 작은 방으로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건물이다. 대칭형 창문, 라운델, 모울딩의 두께는 조화롭게 비율을 따져 반정도로 둘렀다. 파찌 채플도 이와 흡사해보이지만, 어딘지 어색한 점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Plan of Pazzi Chapel 파찌 채플, 플랜
파찌 채플은 직사각형이다. 가운데 정사각형이 들어가고 남는 공간에 겹치는 원을 넣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직사각형을 좋아하지 않았고 로렌조 교회의 Old Scarcity는 완벽한 정사각형 이다. 브루넬레스키가 설계를 했다면 정사각형만을 넣고 땅을 남기고라도 어중간한 반원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Pazzi Chapel, Ceiling 파찌 채플

천정의 공간을 12 개로 나누었다. 브루넬레스키 라면 8개 정도로 적당하게 나누었을 거라고 한다. 메디치가와 철천지 원수인 파찌가는 자객을 보내어 메디치가의 장남 로렌조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동생 줄리아니를 죽인다. 파찌 집안이 원수 집안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게 집안의 채플을 짓는 커미션을 주었을 리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Arch of Titus, Rome, ca. 81CE. 타이투스 개선문

르네상스에 많이 썼던 양식은 로만 아치에서 볼 수 있는 배럴 볼트, 둥근 터널 실링, 메달리온, 터널, 카퍼드 실링, 사람 figure 등 이었다(Revival of Classical Motifs). 코린디안 주두를 주로 쓰고, 필요에 따라 아이오닉 주두도 사용했다. 바로크 시대로 접어들자 브루넬레스키 같은 고전적 양식이 단조롭게 보여서 더 장식적인 주두를 만들어낸다. 웅장하고 화려한 양식이 바로크 시대에 나타난다.
Classical Order Columns 고전적인 기둥 양식

르네상스에는 이런 기본형의 주두를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식은 양식이 엄정하여 기둥의 베이스와 주두를 바꿀 수가 없었지만, 브루넬레스키는 높이에 따라 베이스와 주두를 바꾸어 사용했다,
Facade of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1458-1470 Leon Battistra Alberti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플로렌스, 알베르티

15 세기 르네상스에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Leon Battistra Alberti 였다. 브루넬레스키는 많은 발명을 하였고, 지적인 젊은 작가 알베르티는 매뉴얼manual을 남겨서 건축의 이론을 정립했다. 알베르티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를 지었다.
공공 프로젝트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한 건축가가 건물 전체를 끝내기가 힘들었다. 또한 공공 프로젝트는 명예는 높여주지만, 생계에는 도움이 되지 않아서 건축가들은 개인적인 커미션을 받아야 했다. 건물주는 부분을 고쳐서 사용하려고 했으므로 건축은 다른 미술에 비하여 현실과 절충의 폭이 넓었다.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플로렌스, 알베르티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는 도미니칸 수도회 소속으로 13세기 말- 14세기 초에 지었다. 15세기 중반에 르네상스 분위기에 맞추고, 수도회의 publicity 에 도움이 되도록 알베르티를 시켜 교회의 파사드를 다시 지었다. 이 교회는 플로렌스 기차 역에 가까이 있어서 관광객이 제일 처음 보게 된다.
Plan,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플로렌스, 알베르티

알베르티는 파사드 표면을 새로 꾸미는데, unit 을 반복한다. 같은 사이즈의 정사각형이 세 개 있고, 그 안을 정사각형 네 개로 나누었다. 입구는 정사각형을 잘랐을 때 나오는 사이즈로 넣었다. 기하학적면의 통일감을 느낄 수 있다. 감(niche니체)에 봉헌용 statue 가 들어갔다. 반복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scroll 을 넣었다.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플로렌스, 알베르티
도미니카 수도회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장소가 교회 밖에 있었다. 이 장소를 가리기 위해 기하학적 무늬의 벽을 쌓아 통일감을 주었다.
Sant'Andrea, Mantua, Italy, 1470-81 산 안드레아, 만투아, 알베르티
15 세기 말 경 알베르티가 지은 세인트 안드레아 교회 이다. 알베르티는 고대 그리스 신전 같은 교회를 짓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다. 땅값이 너무 비싼 플로렌스나 시에나에는 지을 수가 없었는데, 만투아의 공작이 알베르티에게 이상을 실현하는 교회를 지으라고 만투아에 땅을 허락하였다.
Sant'Andrea, Mantua, Italy, 1470-81 산 안드레아, 만투아, 알베르티
알베르티가 꿈 꿔왔던 신전 스타일의 교회가 드디어 지어졌다. 땅이 협소해서 옆에 있던 중세형의 뾰족아치를 치고 들어갔다. 교회에 신전의 입구를 넣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아방가르드 한 건축 이었다. 알베르티가 지은 신전 스타일이 16 세기에 가면 거의 모든 교회의 모델로 자리를 잡는다.
Interior, Sant'Andrea, Mantua, Italy, 1470-81 산 안드레아, 만투아, 알베르티

알베르티는 로마 마지막 황제인 콘스틴타인과 막센티우스가 만들었던 바실리카를 본떠서 산 안드레아 성당을 지었다. 개선문식triumphal arch채플이다. 카퍼드 실링, 판테온, 로마형 칼럼, 플루팅을 넣고, Unit이 반복된다. 로마의 신전을 재현하여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contemporary 건물 이었다.
Interior, Sant'Andrea, Mantua, Italy, 1470-81 산 안드레아, 만투아, 알베르티
알베르티는 만투와 공작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판테온같은 도움이 펼쳐지는 커다란 교회를 11 년 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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