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근대미술12 엑스포를 통해 제국주의를 드러내는 일본 3/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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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2,697회 작성일 15-04-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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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근대미술12 Colonial Expansion of Japan through Expositions and Museums
제국주의에 박차를 가하는 일본, 세계 엑스포를 통해 국력을 내비치다
1920년대, 동아시아는 사회주의 사상과 모던 걸 모던 보이의 등장 및 백화점의 범람 등으로 자유를 누리는 듯했으나 30년대가 되자 분위기가 달라진다. 일본은 쇼와천황이 등극하여 사회주의를 검열하고 전쟁 준비를 위한 군국주의로 치닫는다. 또한 1926년에 일본은 공황이 시작되며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사회가 피폐되기 시작한다. 유럽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어 1930 년대가 되자 분위기는 달라진다. 독일은 히틀러가 등장하고 스페인은 내전이 터진다. 러시아는1925년 스탈린의 등장하여 구성주의 예술 및 아방가르드 예술가를 탄압한다. 대신에 노동자 및 초상화를 그리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들어간다.
조선 초중기에는 현모양처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개념이었다. 모던걸의 모습 및 신여성의 사회주의 운동이 20년대 성행하다가 30년대에 갑자기 현모양처 개념이 부각된다. 현모양처는 근대국가가 끌고 들고온 개념으로 발견된 전통 invented tradition 이다. 일본은 30년대에 군국주의 전체주의 형성을 위하여 군사가 필요했다. 아들을 꼭 낳아야 하므로 가정에서 남녀역할을 구별하는 가부장제를 강조한다. ‘현명한 어머니 어진 아내’ 프로파간다를 만들어 주입한다. 40-50년대에 일본은 엄청나게 전쟁에 몰입한다. 야수꾸니의 어머니는 전쟁에서 죽은 남편의 명복을 빌고 아들을 키워 전쟁이 내 보낸다. 40-50년대에 모든 사람이 하나만 생각하는 무서운 시대가 된다. 한편 18세기 말 근대화를 이룬 유럽은 자국의 선진산업 및 식민지지배를 정당화하는 장인 엑스포를 개최한다. 엑스포(exposition)는 무지한 수익금을 남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일본은 엑스포에서 유럽 미국과 겨누면서 제국의 초석을 마련한다.
러시아 구축주의
production clothing, Russia
production clothing, Russia
1917년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는 1920-30년대 노동자를 위한 사회를 표방한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민중을 위한 예술 구축주의constructivism constructivism 를 펼친다.
Lyubov Popova's dress designs, 1923-24
러시아 구축주의에 참여하는 신여성 예술가들은 노동자계급 working class 여성을 위해 옷을 디자인한다. 이런 옷이 일본, 경성의 거리에도 눈에 뛴다. 유행의 첨단을 가는 요즘 옷과 흡사하다.
Virgina Woolf 1882-1941
30년대 유럽과 동아시아의 분위기는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했다. 전쟁이 임박한 긴장감이 돈다. 버지니아 울프의 <Three Guineas> 는 전쟁을 막을 방법에 대한 서간문식 소설이다. 페미니스트 버지니아 울프는 국가 시스템 및 가부장제도의 불합리와 불평등, 여성의 대학교육을 위한 정부 보조 및 사회적 위치를 주장한다. 1차대전이 터지자 자살한다.
<박람회>
Great Exhibition of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 Crystal Palace 1851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결탁된 근대적 개념의 최초의 박람회가 1844년에 파리에서 대성공을 거두자 곧이어 영국 크리스탈 팰러스에서 열린다. 새로운 건축 공법으로 건물을 유리로 만들어 조명이 필요없다. 엑스포는 산업 장려가 목적인 동시에 새로운 제품 판매 및 건축업 및 관광객 유치로 막대한 이익을 남긴다. 영국은 크리스탈 팰라스 엑스포에 들어온 수익금으로 Victoria and Albert Museum 을 위시하여 뮤지엄 3 개를 짓는다.
Exhibition of the Industry of All Nations, Bryant Park, New York 1853
뉴욕에 크리스탈 팰러스를 본뜬 건물을 지어서 엑스포가 열리고 이 때부터 일본이 참석하여 본격적으로 자국의 물건을 전시하기 시작한다.
Centennial International Exhibition, Philadelphia 1876
미국 독립 백주년 기념으로 열린다. 메이지 유신 7 년 후 일본은 필라델피아 엑스포 참가를 위하여 1875년에 The Imperial commission for the Exposition을 만들어 준비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삼만가지 물품을 준비한다.
필라델피아 박람회 본관 일본전시 1876
일본은 장인을 데려와 제일 큰 국가관을 지어 엄청난 수익을 남긴다. 일본관은 인기 1순위로 '탐욕이 가득한 아시아인'이라고 신문에 날 정도다. 과학관 안에도 일본은 들어간다.
Exposition Universelle in Paris 1889
프랑스 혁명 백주년을 기념하는 파리 엑스포가 열린다. 선진 기술을 보이는 에펠탑을 엑스포 개최에 맞춰 짓는다. 유럽 각국은 신문물이 소개되는 엑스포를 2-3년 단위로 개최한다. 19세기는 식민시대이자 제국주의 imperialism 시대였다. 인종 박물관 negro village 을 만들어 아프리카 원주민, 남미인, 식민지인 등 4백명을 전시했다. Human Zoo 는 인기를 끌어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돈을 끌어 모았다.
World's Columbian Expo, Chicago, 1893
미국은 콜럼버스 400주년 기념으로 엑스포를 개최한다. 각 도시들이 경합을 벌이는 가운데 시카고가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개최지로 발탁된다. 콜롬비안 엑스포에서 국가관 개념이 확립되어 독립된 건물로 지어진다. '시카고의 날' 행사의 하루 입장료만으로 들어간 비용 백오십만불을 한번에 다 갚는다. 엑스포 시음회에서 선보인 음식들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아직까지도 슈퍼마켙에서 팔린다. 또한 박람회 역사상 처음으로 위락시설이 따로 생긴다. Ferris Wheel이 이 때부터 시작되며, 일본은 찻집을 만들어 이익을 챙긴다.
Chicago Expo, Japan Pavilion 시카고 박람회 일본관 봉황전 1893
텐신과 페넬로사가 일본의 카탈로그를 영어로 쓴다. 1893년 청일전쟁 중인 일본은 제국이 되려는 야망에 부풀어 영국 프랑스 미국에 뒤지지 않는 선진국임을 보인다. 침략 전쟁에 대한 초석 및 식민지 소유에 대한 정당함을 보이고자 한다.
시카고박람회 조선관 1893
조선은 대한제국 이전에 엑스포에 참여한다. 제조와 교양관 안 일부에 작게 조선관을 마련한다. 짚신, 놋기, 소반, 대포 등을 전시한다. 엑스포는 최신 산업 물품을 보여주는 곳인데 조선은 엑스포의 개념이 아직 확실하게 잡히지 않았다. 엑스포에 처음 보는 조선이란 나라가 등장하니 외국인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조선은 중국의 일부니? 너희도 전기가 있니? 너희는 집에서 자니? 기후는 어떠니? 하는 질문이 매번 들어오니 영어로 답을 써서 붙여 놓는다.
에모리 대학에서 유학한 윤치호는 조선관을 관람하러 간다. 모든 나라의 국기가 휘날리는데 조선의 국기는 없었다. 내 나라의 처참한 모습에서 눈을 돌릴 수 없던 윤치호는 떠나지 못하고 5시간을 서 있는다. 나중에 고종은 시카고 엑스포에 다녀온 사람들과의 일문 일답을 통해 엑스포를 이해한다.
Louisiana Purchase Exposition, 1904
서태후 초상화가 전시되었던 루이지애나 엑스포이다. 엑스포에서 국가관으로 지었던 건물은 대학 도서관 및 뮤지엄 등으로 전환되어 infra structure를 마련해주는 계기가 된다. 한마디로 엑스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유길준 (1856-1914)
개화기 지식인 유길준은 1884년 조선 사절단 보빙사로 미국에 가서 유학한다. 그가 남긴 글 <서유견문>(1895)에 근대 박람회의 가치를 깨닫고 있음이 나타난다. 엑스포를 어리석은 자가 배울 수 있는 곳, 서로 배울 수 있는 장으로 기술한다.
파리박람회 대한 제국관 Le Petit Journal 1900
조선은 7년 후 모습을 갖추어 파리 박람회에 참가한다. 건물은 많이 발전했지만 전시물품은 여전히 수공예품 수준으로 민망해서 살 수가 없었다는 기록도 있다. 프랑스 잡지에 조선관 삽화와 함께 ‘극동에서 가장 베일에 가려있고 이웃이 가장 탐하는 나라’이며 ‘외부 세계의 노출을 꺼렸던 조선의 박람회 참가는 놀라운 일’ 이라고 보도돤다. 당시 유럽인의 눈에 동아시아 각 나라가 구별이 되지 않기에 조선관 삽화에 이미지가 섞여서 나타난다. Herbert Bos가 그린 고종의 어진이 파리 엑스포의 미국관의 인류학관에 전시가 되는 민망한 일이 벌어진다. 세계사 속에서 당시 1900년 대한제국의 위치가 가늠이 되는 사건이다.
세인트 루이스 박람회의 일본제국 정원과 파빌리온 1904 St. Louis Expo, Japan Pavilion
청일 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빈틈없이 준비하여 세인트 루이스 박람회에 참가한다. 일본관 정원에 찻집을 만들어 백명의 게이샤들이 오가며 차를 대접한다. 러일 전쟁 중인데도 이렇게 대규모 국가관을 짓고 전시를 하니 열강들이 놀란다. 일본관 안에 식민지 대만관을 만들어 보여준다.
일본은 유럽 미국 엑스포를 다니면서 배워서 유럽의 인종 박물관을 흉내내어 오사카 박람회 학술 인류관 (1903)에 각종 인종을 앉혀둔다. 인도네시아인, 홋카이도인, 오키나와인 두명의 조선인 여자도 포함된다. 이후에 만주 조선 대만도 식민지 하에서 박람회가 열린다. 일본의 식민 경험을 통해 굴절된 개념이 들어온다.
시정오년 기념조선물산공진회장 1915
세계 엑스포에 나간 경험이 많은 일본은 시정오년 기념조선물산공진회를 위한 건물을 짖는다. 공진회 건물들이 행사 후에 박물관으로 바뀐다. 낙후된 조선이 식민 후에 발달한 모습을 보이는 의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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