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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근대미술10 : 조선의 신여성 최승희 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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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380회 작성일 15-03-25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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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근대미술10 신여성 New Women,  Modern Girls
 
 
조선의 신여성 최승희
 
중국은 1911 년에 민중이 주도하는 신해 혁명이 일어나 근대국가를 세운다. 하지만 원세계가 이끄는 북경 쪽 군벌 세력와 순원이 주도하는 난징 정부로 갈라진다. 1917년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근접해 있는 동아시아에 영향을 끼쳐 중국의 인텔리들은 사회주의 영향을 받는다. 1914-18년 일차대전 후 유럽 각국들도 식민지를 소유했고, 1919 년 윌슨대통령도 민족자결주의를 내세워 일본의 동남아 식민지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다. 일본은 일차 대전 및 식민지로 인해 경제적으로 부흥하여 강대국 반열에 오른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조선 일본 중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20년대 초반 다이쇼 시절은 다이쇼 민주주의라 불릴 정도로 자유롭고 사상의 교환이 활발했다.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에 대한 흡수가 만연하고 KAFF(사회주의 문인 단체)도 생기며 모던 걸, 백화점이 같이 맛물린다. 하지만 1923년 관동 대지진에 이어 쇼와천황이 등극하자 천황체제 및 군부를 강화하고, 사회주의를 검열한다. 국제 연맹을 탈퇴한 일본은 만주를 독식한다. 조선 반도에서는KAFF가 해체가 된다.1926년에 공황이 시작되어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는 피폐해진다. 1929년에 전세계에 대공황이 퍼진다. 일본의 지식인은 군국주의 totalitarian 로 가는 일본의 광기를 바라보며 전쟁의 임박 위기를 느낀다. 1933 년 힛틀러가 나타나 파시즘이 시작된다.
 
일본은 조선을 병창 기지로 만들기 위해 일본과 똑같이 생각하도록 장려한다. 내지인과 외지인이 하나의 모습을 가지도록 에로 그로 넌센스, 신파 등 일본에서 유행하는 것을 조선에 퍼지게 한다. 1937년 중일 전쟁이 터지자 조선도 일본이니 전쟁에 나가라고 종용한다. 징용병을 장려하는 영화에서 신여성 제2 부인 역의 문예봉이 지고지순하게 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린다. 김활란 등 여성 운동가들이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한다. 일본이 전쟁에 뛰어들기 직전인 30년대 후반 40년대는 정신없고 어수선했다. 1939년에 이차 대전이 터진다.
 
 
별건곤, 창간호 192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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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의 모던 걸의 양상은 일본 및 중국과는 달랐다. 1920 년대 일본의 신여성은 주부이자 직업을 가진 여성이 경제적 독립을 하여 백화점 소비층이 된다. 하지만 경성에 나타난 모던걸 및 직업 여성은 대부분 일본 여성으로 한국의 신여성은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에는 두가지 종류의 모던 걸이 있었다. 동경 유학을 한 인테리 그룹과 기생, 카페여급, 래지, 여공도 모던 걸에 속했다. 페미니즘이 전세계적으로 퍼져 일본, 중국에서도 활발하지만 식민지 상황인 조선에서는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 러시아를 통해 사회주의 계열의 페미니즘이 조선 사회에 소개되고 페미니즘은 이분화되어 나타난다. 20년대 조선의 문인들은 KAFF 활동을 하면서 사회를 개혁하자는 열의가 가득했지만, 30년대에는 일본이 전체주의로 돌변하고 광기를 드러내니 불합리 시스템에서 못견디는 지식인들은 자포자기하여 술, 향흥 등 퇴폐문화에 빠져든다.
 
 
May Fourth Movement (五四運動, 5.4운동)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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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중국은 5.4 운동이 일어나고 조선은 3.1운동이 일어난다. 식민지 조선은 독립 쟁취가 목적이라면 자주국인 중국은 관습타파, 여성해방 등 봉건제 타파가 목적이다. 기존 세대가 세상을 바라보던 것과 다르게 보려고 했다. 5.4운동 후에는 여성들이 집 밖에서 갈 곳이 생긴다.
 
 
Henrik Ibsen, A Doll's House 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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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유럽을 휩쓴  테스, 안나 카레리라 등의 소설이 20세기 초에 동아시아에 들어온다. 1879년에 나온 <인형의 집>이 일본에서 연극으로 상연이 되자 동아시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人形の家, 1911, Matsui Sumako (1886-1919), 인형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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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인들은 주인공 노라에 대한 논평을 한다. 염상섭은 1920년대 초에는 노라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으나 1930년대로 가면서 모던 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염상섭의 소설 <3대> 는 여성의 정조관념, 자유 연애를 다루며 신여성의 비극적 삶을 그린다. 조선에서 1910년대 초반에 서구문물을 받아들이는 근대화 현상이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난다. 주인공 영채가 영어를 배우는 등 모더니즘에 대한 언급이 이광수의 <무정>(1917)에 나타난다.
 
 
플랟버 (Fla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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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의류도 나타난다. 몸전체를 감싸는 콜셑을 입던 여성들이 거들과 부라로 분리하여 여성의 몸이 해방된다. 조선 반도의 중상류층 여성은 집에만 주로 머물렀는데 이제 학교 카페 백화점 단스홀 등 갈 곳이 생긴다. 남성 전유물인 공적인 공간public space에 여성들이 나타난다. 이 여성들은  단발머리를 하고 플랩퍼스커트를 입고 다닌다. 조선의 모던 걸은 개량 한복인 깍독치마를 입고, 구두와 스타킹을 신고 립스틱을 발랐다.
 
 
모던 조선 신여성 (19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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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서구문물이 밀려 들어온다. 문인, 소설, 잡지 들이 쏟아져 나온다. 일본 조선 중국에서 잡지<신여성>이 나온다. 신여성들이 가지던 사고가 잡지에 실린다. 연애와 결혼은 별개이며 연애 상대를 고르는 법이 잡지에 실린다. 여성은 연애를 해본 적이 없으니 잡지에서 가이드라인을 준다.
 
 
모던걸 (모가) 모던보이(모본) 별건곤 192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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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동아시아 관념체계 속에 없었던 근대 단어들이 일본어 번역으로 등장한다. <별건곤> 잡지가 1927년 모던 걸 모던 보이 특집을 낸다. 서양의 romantic love를  '연애' 라고 번역하여 잡지에 modern dictionary section 을 실는다.
 
 
저런 하이카라 여성을 어떤 남자가 데리고 사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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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걸을 보는 시선이 1930년대에 들어오자 비판적이 된다. 방정환, 임인색 등은 별건곤 잡지(1927년, 1930년) 에서 겉만 화려하고 내실이 없는 신여성의 이중적 이미지를 비판한다. 마르크스 엥겔스를 공부하여 진실로 모더니즘을 구가하는 부류와 책만 들고 다니는 부류도 있었다. 가부장적 체제에서 모던 걸이 더 비판을 받는다.
 
30년대에 들어와서는 모더니즘을 비아냥거린다. 조선의 신여성을 보는 시선이  20년대와 확연히 틀려진다. 30년대 신여성은 제2부인이라는 유행어로 불리기도 했다. 좋은 집안 출신 모던 보이들은 조혼을 하여 전근대적 부인이 있었지만 대화가 잘 통하는 신여성을 동경하였다.  '제2부인이 되지 마세요' 라고 경고문 및 모던걸을 지칭하는 일본용어ero gro nonsense (erotic, grotesque, nonsense)가 잡지에 살린다. 천박하고 성적으로 퇴폐적인 모던 걸이라고 조롱한다.
 
 
박태원 (1909-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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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보이도 두 종류가 있었다. 유학파 지식인과 가난한 룸펜 프롤레타리아 그룹이 있었다. 김중배는 <장한몽> (1913)에서 모던보이의 행색을 '곱슬곱슬 지진 머리는 한 가운데를 좌우로 갈라서 기름으로 붙였고, 코엔 금테 안경이, 프록코트 속 조끼 한 가운데는 금시계줄이, 목엔 수달피 목도리가 감겨져 있었다' 라고 묘사한다. KAFF가 해체되고 이상 김유정 이호섭 등 소설가 저널리스트 9명이 구인회를 만든다. 신문에 모던 걸 모던 보이에 대해 글을 쓰는 오피니언 리더들이기도 했다. 구인회 멤버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1934)>에서 직업없이 경성을 돌아다니고 카페에 앉아 친구의 퇴근을 기다리며 그림, 정치, 글에 대하며 논하는  '룸펜 프로레타리아'를 묘사한다.
 
 
영화 임자없는 나룻배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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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영화에 여배우가 나타난다. 문예봉은 조선 출신 일본 배우로 여겨진다. 20년대는 가정을 버린 신여성이 잘 사는 이야기가 주로 나왔지만, 30년대에는 가정을 버린 여자의 말로가 비참하게 그려진다. 당시 영화의 주제는 대부분 권선징악이지만 <임자없는 나룻배>는 주인공이 계속 희생당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아버지 사공은 다리가 생기면서 직업을 잃는 근대화의 피해자이다. 딸 역시 강간을 당할 뻔하고 불에 타서 죽는다. 1930년대를 반영하는 우울과 퇴페 풍조가 나타난다
 
 
영화 미몽 1936, 문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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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봉이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유뷰녀가 남자를 잘못 만나 살다가 다시 무용수 남자와 사귄다. 새 남자를 만나러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가는데 택시에 자기 아이가 치인다. 가정으로 돌아오지만 죄책감에 자살을 한다. 20년대 신여성이 가정을 버리고 나가면 더 잘 살았지만, 30년대에 들어와 모던 걸의 말로가 비극적으로 바뀐다.
 
 
조택원 (1907-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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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몽>에서 여주인공의 애인으로 무용수 조택원이 나온다. 유복한 가정 충신으로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였다. 조택원은 경성에서 이시이 바쿠 무용단의 최승희 공연을 보고 댄스를 평생의 업으로 삼고자 무용단에 들어온다. 근대 무용단 선구자 이시이 바쿠는 독일에서 현대 무용을 배우고 일본에 전파한다.
 
 
최승희 (1911-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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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오빠의 소개로16 세 최승희는 이시히 바쿠 무용단에 가입한다. 부모 친지가 극구 말리지만 뿌리치고 일본으로 떠나자 신문에 대서특필 된다. 숙명고에서 공부를 잘했던 최승희는 교사가 되었어야지 무용가는 할 것이 못 되었다. 하지만 최승희는 1-2 년 후에 무용가로 경성에 화려하게 돌아온다. 조선에서는 제재가 많으니 전쟁이 나자 상해에 위문 공연차 가서 중국 무용을 공부한다. 한국 및 동아시아 무용을 서양 근대 무용과 접합하려는 야망을 펼친다. 와세다 대 출신 문인 남편이 자신의 길을 접고 뒷바라지를 한다. 해방 당시 상해에 살다가 북한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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