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근대미술7 : 백화점을 거니는 모던 걸 2/19/15
페이지 정보
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190회 작성일 15-02-26 08:08
본문
동아시아미술7 Birth of Department Stores
백화점을 거니는 모던 걸
합병(1910년)이 된 조선의 근대 및 도시 개념은 식민과 맛물려 시작된다. 이 시기에 유럽은 1차 대전(1914-1918년)을 겪으며,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1917년)에 성공한다. 1920년대 조선의 지식인들은 전세계적으로 퍼진 사회주의 사상(socialism)에 고무되는 한편 혁명보다 독립을 우선 이루자는 주장이 대두된다. 사회주의자들은 빈부의 차이를 극복치 못한 독립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당시에 '국가의 독립'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주장하는 조선의 사상가들 사이에는 괴리감이 꽤 있었다.
하지만 1920년대에 고종 및 순종이 서거하자 조선의 독립적 정체성을 받치던 이념들이 사라진다. 1920년대 후반에 공산주의자는 불순분자라는 낙인이 찍히며, 사회적 검열의 시대가 시작된다. 1930년대 백화점이 출현하자 경성은 소비주의 자본주의에 젖은 도시가 된다. 하지만 1939년에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잠시동안의 소비 향락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한국인의 지적 지도는 일본인이 소개한 신물문 및 번역한 어휘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1932년에 작가 이상(1910-1937)은 경성에 최초로 세워진 미쯔고시 백화점을 보고 <건축무한 육면각체 Au Magasin de Nouveautes (오마가젱 드 느보떼, 새로운 백화점)>라는 시를 쓴다. 백화점의 멋쟁이 여자들, 에스컬레이터, 유리 사각 안에 진열된 물건, 옥상 정원 등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당대 문인의 글에 모더니즘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종업원, 카페 여급, short girl, 레지 등 새로운 여성군이 사회로 진출한다.
이상, 날개 1936
1930년대 프롤레타리아 사상가들은 소비 문화, 빈부의 격차에 대한 글들을 쓰며, 데파트먼트 스토어를 활보하는 모던 걸을 폄하하는 시선으로 본다. 화장하고 차려입은 근대적 여성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공적인 공간으로 나온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백화점, 카페, 호텔의 주 소비자는 여성들 이었다.
종로거리 시구개수 전 1915년
1910년 강제 합병 후 1915년부터 도로 및 개수 사업 등 한성을 경성으로 만드는 도시사업이 일어난다. 1897년 대한 제국 시기에는 낮은 한옥만 있었는데 양옥 건물, 전봇대, 전차가 들어찬다.
일제 시대 명동 거리, 조선은행 우체국
19세기 식민(colonialism)의 개념은 자본주의의 팽창을 위한 사회적 구조에 주력한다. 일본은 무역의 거점을 마련코자 경성을 교토에 버금가는 도시로 만든다. 조선은 해방이 되자 일제 시대 건물을 다 부시는데, 대만은 아직도 미쓰코시 백화점이 있고 대통령 집무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만(1895-1945 식민시기)과 조선은 같은 식민을 경험했는데 이 차이는 무엇일까? 합병 당시 대만은 변방의 작은 섬으로 단지 청에 조공을 바치고 있을 뿐, 청이라는 국가관이 없었다. 하지만 조선은 국가 개념이 확고한 상태에서 강제 합병이 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한국은 대한제국으로 기쁘게 돌아갔다. 그러나 1912년에 중화민국이 생길 때 일본의 이등시민으로서 살고 있었던 대만은 해방이 되자 돌아갈 나라가 없어진 것이다. 중국 본토에서 모택동과 장개석 사이에 내전이 일고, 장개석파들이 대만으로 넘어와 정권을 잡는다. 하지만 대만에는 이미 일제강점기의 문명화된 토착세력이 살고 있었다. 이 상이한 두 그룹 간에 정치적 갈등이 생기자 타이뻬이인들은 오히려 일제 시대를 그리워한다. 한국은 상황이 대만과는 다를지라도 일제에 대한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다.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 백화점), 데파트먼트 스토어, 경성, 1930
1906년에 미쓰코시 경성점이 세워지고, 1930년에 백화점의 모습으로 바뀐다. 1930 년대 백화점은 랜드마크 였다. 조선인들은 "진고개 (명동 충무로 일대) 에 가서 맛있는 것 사먹고, 좋은 것 사모았으면 한이 없겠다" 라고 했다고 한다.
조지아 백화점1929
양식집, 포도주, 외제품 등 눈으로 보는 생활은 수준이 높아졌지만 서민들의 생활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었다.
화신 백화점 1931
평양 출신 사업가 박흥식이 화신 백화점을 연다. 백화점 물건의 대부분은 프랑스제, 영제, 일제 미제이다. 박흥식은 일본인 사업가들과 교분을 가지며 유통계의 혁명을 일으킨다. 해방 후 박흥식은 친일파 선두주자로 지목되고 반민족특별위원회에 제일 먼저 잡혀간다. 눈에 가시같은 친일파 이지만 조선인 백화점을 창시했다는 민족 정서를 건드리는 양날의 칼날 같은 존재이다.
중국 상하이의 4 대 백화점
Hall & Haltz Department store 1892, Shanghei
1892년에 상하이에 최초로 영국식 홀 앤 홀스 백화점이 생긴다. 1842년 아편 전쟁 후에 조계지가 되면서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백화점이 상해에 나타난다.
마 잉삐아오 Ma Yingbiao, Xianshi (Sincere Department Store Shanghei ) 1917 시엔시 백화점 상하이
화교 자본의 거물인 마 잉삐아오는 호주 이민을 가서 과일 장사를 하던 시절에 서양식 백화점을 경험한다. 그는 이것을 본따 1917년에 최초로 중국인 백화점을 상하이에 세운다. 1911년에 중화민국이 탄생하지만 베이징 지역의 원세계와 공화국을 꿈꾸는 순원이 권력 암투를 벌이며 북과 남으로 갈린다. 화교 자본가 마잉삐아오의 지지로 순원이 난징에 수도를 차리고, 순원의 도움으로 마잉삐아오가 상해에 백화점을 차린다.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몇백명의 여성 종업원을 고용하고 칩파오 패션쇼를 열기도 한다. 매출이 급격히 늘어난다.
Wing On department (용안백화점) 상하이 1918
1914-18년 일차대전이 나자 서양인들은 유럽으로 돌아가 전쟁에 참여한다. 외국 자본이 빠지자 화교 자본이 중국으로 들어와 중국 자본가들이 팽창한다. 호주의 화교 형제가 마 잉삐아오의 백화점 맞은편에 6 층 용안 백화점을 차리자, 마잉삐아오는 7층으로 신시어 백화점을 올린다. 그러자 용안백화점은 신시어 백화점보다 높아 보이도록 시계탑을 올린다. 이 두 백화점이 상해에서 최고 높은 건물이면서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신신 백화점, 중국 Sun Sun Department Store 1926 상하이
한편 뒤늦게 시작한 신신 백화점은 용안 백화점과 신시어백화점과 차별을 둔다. 5 층 꼭대기에 유리벽으로 라디오 방송국을 설치한다. 방송 중에 하는 경극 장면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리고 백화점은 고객이 넘쳐난다.
Da Sun Department Store Shanghei 대신백화점 1930 상하이
상하이 4대 백화점의 하나인 대신 백화점은 현대식으로 짓는다. 정찰제가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시작되고 소비혁명이 일어난다. 소비자가 점원과 흥정할 필요가 없으며 옷을 차려입고 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eye shopping을 한다. 산보가 근대 개념의 하나로 나타난다. 르느와르가 그린 인상주의 그림에서도 부르주아 계급이 카페, 공원 및 섬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근대화 개념이 나타난다. 소풍이란 레져 개념이 없었던 전근대사회로부터 익명의 존재들이 거리를 구경하며 다니는 spectacle 의 시대로 전환한다. 유럽은 1850년대, 상해 1910년대, 한국은 1930년대에 백화점이 생기면서 근대 개념이 부상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