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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미술 6: 사진을 이용한 일본의 스파이 활동 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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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3,573회 작성일 15-02-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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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미술 6  Photography Studios and Film Theaters II           
 
                                   
 
사진, 일본의 제국주의에 공헌하다 
 
일본은 1860-70년 메이지 유신을 시작하여 근대국가의 틀을 잡고 1890-1900년대는 외국 식민지를 확보한다. 14-16 세기에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자원 수탈을 주로 했지만, 19 세기에 열강들은 식민지에서 자본주의적 팽창에 주력한다. 공장제품을 소비할 외국 시장이 필요한 열강들은 식민지에 들어와 사회적 구조 (infra structure)를 만든다. 일본인만이 사업을 할 수 있으며 이등 시민인 조선인 대만인은 할 수 없다는 무역법 등을 만든다.
 
16세기부터 출입한 네덜란드인들의 영향으로 나가사끼 및 요쿄하마 항은 자유로운 사고 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규슈섬에서 메이지 유신을 이끄는 주역들이 나온다. 또한 이 지역은 서양인들을 대상으로 사진업이 발달하고, 일본인이 찍은 최초의 사진도 이 지역에서 나온다.
사진은 일본의 근대화에 한 몫을 차지한다. 영국인 펠리스 비토가 아편전쟁에 따라 오듯이 일본도 대만 정벌 및 청일 전쟁에 사진가를 대동한다. 일본은 육군성에 사진부를 만들고 스파이를 보내어 전쟁 지도를 먼저 만든다. 메이지 유신 때 홋가이도에 사진가를 먼저 투입시켜 아이노 원주민 및 풍물을 찍어 준비한 후에 일본의 영토로 만들었다. 전쟁 사진을 통해 저널리즘이 발전하고, 풍물 사진은 민속학 및 인종학 등 학술적인 연구에 기여한다.
 
 
켄지 에쿠완 Kenji Ekuan (1929-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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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를 견인차했던 주역들은 이차 대전 전 일본의 영광을 경험한 세대들이다.  산업 디자이너 켄지 에쿠완은 식탁용 양념의 개념이 없었던 시대에 무에서 우를 창조하는 노력으로 간장병을 디자인 한다. 이 간장병으로 인해 라이프 스타일이 바뀐다. 그는 신간센 기차도 디자인한다.
 
 
엘리파렡 브라운 Eliphalet Brown.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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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페리 제독은 1854년에 고래 잡이의 거점 확보를 위해 일본으로 들어가며, 사진사 엘리파렡 브라운을 대동한다. 1839년에 나온 다게로타잎은 동판에 은을 묻혀서 이미지를 고정시키므로 오리지날이 한개만 있다. 노출 시간이 또한 길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몸을 잡아주는 교정기가 있어야 했다.
 
 
Eliphalet Brown. Jr. Endo Matazaemon, a local official, Daguerreotype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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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로 타잎은 미로이미지이므로 좌우가 바꿔져 사진이 나온다. 그래서 칼과 옷 앞섶의 방향을 반대로 하고 찍었다.
 
 
펠리스 비토 Felice Beato (1832-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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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알려진 최초의 사진은 영국인 펠리스 비토가 찍었다. 비토의 제자들이 일본의 1대 사진가들 이다.
 
 
 
펠리스 비토, 넉나우 궁전, 인도  Felice Beato Sikander Bagh Palace Lucknow, India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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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는 19세기 초 중반 아시아의 사진을 거의 다 찍는다. 최초로 포토 저널리즘을 시작한 작가이기도 하다. 영국은 인도에 가서 동인도 회사를 차리며, 넉나우 궁전을  파괴한다. 당시 사진기는 너무 무거워서 이동성이 없었고 전쟁터에 늦게 도착하곤 했다.  비토는 매장된 시체를 다시 파서 연출을 하여 전쟁 직후의 장면을 찍는다. 전쟁터 장면으로는 재빨리 그리는 삽화가 더욱 인기가 있었다. 비토는 인도 중국 일본 한국 등지를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미안마에서 죽는다.
 
 
펠리스 비토 Felice Beato, Fort Taku, China 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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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전쟁에 따라간 비토는 천징의 다구 강가에 시체가 널브러진 장면을 보고 'beautiful' 이라고 한다. 비토의 코맨트는 타인종에 대한 유럽인의 사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죄책감은 전혀 없다.
 
 
펠리스 비토, 원명원 Yuanmingyuan, Felic Beato, Imperial Summer Palace 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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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전쟁을 취재하는 비토는 영국군이 원명원(황제의 여름 별장)을 불지르기 직전에 “잠깐 기다려” 하고, 재빨리 한 컷을 찍는다. 아름다운 사진이지만 그 이면의 모습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펠리스 비토, 공친왕 Felice Beato, Prince Gong (1833-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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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친왕은 아편전쟁의 해결을 위해 외교사절을 만나고, 비토는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다. 함풍제(서태후 남편)의 이복동생인 공친왕은 서태후와 맞먹는 세력을 가지고, 이홍장과 더불어 외교 및 개혁 개방을 추진하지만 서태후의 견제로 힘을 상실한다. 공친왕은 중국이 서양과 견주어 낙후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챨스 워그맨, 저팬 펀치 Charles Wirgman, Japan Punch 1862-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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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만화가 워그맨은 삽화 신문사 특파원으로 아편 전쟁 장면을 그려서  영국에 보낸다. 워그맨은 북경에서 비토를 만나고, 그의 권유로 일본으로 건너가, 만화 잡지 <펀치>를 만든다.  요코하마 개항지에 사는 서양인을 대상으로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커리커쳐로 재미있게 표현한다. 일본 여자와 결혼하여 일본에서 산다.
 
 
다카하시 유이치 Takahashi Yuichi, 연어 Salmon, oil painting 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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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그만을 통해 만화, 삽화, 서양화가 일본에 도입된다. 그의 제자 유이치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서양화가가 된다. 양화는 일본 그림의 진수를 보여주는 니홍가와 대립구도를 펼친다.
 
 
펠리스 비토 Felice Beato, View in the Native Town Nagasaki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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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는 일본에 와서 사진관을 차린다. 일본인 조수 겸 통역관들이 일본의 1대 사진가가 된다. 비토가 만든 사진첩 <Views of Japan>는 서양에서 날개돋친 듯 팔린다. 나가사키 풍경 사진이 서양인들에게 신기하게 보인다.
 
 
펠리스 비토 Felice Beato, Japanese Doctor and Patient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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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는 일본의 이국적인 풍습을 서양에 소개한다. 현지인을 모델로 해서 일본의 의사와 환자의 모습을 연출한다. 동네 사람들을 시켜 흑백 사진을 채색을 시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를 펼치는 서양은 식민지의 타자 및 풍물에 대한 관심으로 Orientalism이 팽배했다. 자신들보다 미개해 보이는 풍속들을 찾아 사진을 찍고 신기해한다.
 
 
펠리스 비토 Felice Beato, The Flag of the Commander in Chief of the Korean Forces 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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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는 신미양요 때 조선에 와서 사진을 찍는다. 미군은 조선 장군의 깃발을 전리품으로 빼앗아 자신들의 군함에 싣고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미국 역사학자가 해군 학교에서 조선의 깃발을 발견하고 2007년에 영구 대여 형식으로 조선에 돌아온다.  
 
 
시마주 번주의 다게로 타잎  A Daguerreotype of Shimazu Naniakira 1857 Ichiki Sh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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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규수를 통해 일본에 들어온다. 처음보는 신기한 물건은 번주 시마쥬에게 먼저 보여야 했다. 번주에게 허락을 얻은 후에 카메라를 해체 및 조립하면서 사용법을 익힌다. 일본인이 찍은 최초의 대가로 타잎으로 국보급이다. 신무기도 소지하고 있었던 시마쥬는 메이지 유신에 공헌한다. 시마쥬가 죽자 절에 그를 안치하고 다게로 타입을 모셔둔다.
 
 
우에노 히코마 Ueno Hikoma(1838-1904), Two Russian Naval Officers 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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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에 최초로 사진관을 차린 일본인 1대 사진가이다. 외국인들이 이 사진관에 와서 사진을 찍는다. 우에노 히코마는 상인인 아버지가 집에가져온 다게로타잎 카메라를 신기하게 여긴다. 큐슈 섬에 널리 알려진 신문물을 공부하면 엘리트가 된다는 아버지의 교육 방침에 따라 우에노는 화학을 공부하면서 사진과 만난다.
 
 
우에노 히코마 Ueno Hikoma, 그랜트 대통령 Ulysses S Grant (1822-1885), 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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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 메이지 유신 당시에 류큐 왕국 (오키나와)은 단독 국가로 청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일본은 류큐 왕국을 영입하고자 빌미를 만든다. 류큐 어부들이 대만에 표류하다가 대만(당시 청나라 소속) 원주민과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 사건을 꼬투리를 잡아 일본은 1874년에 대만 정벌에 나선다. 1874년 세계 일주 여행 중 청에 들른 그랜트 대통령이 청과 일본을 중재하면서 일본 편을 들고, 오키나와가 일본의 현으로 귀속된다. 우에노 히코마는 그의 사진을 찍는다.
 
 
바론 스틸프리드 Baron Raimund Von Stillfried (1839-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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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풍습은 외국인에게 인기가 있었다. 연출하여 사진 찍은 후 채색하여 판매한다.
 
 
우찌다 쿠이치 Uchida  Kuichi (1844-1875), 메이지 천황과 황후 Emperor Meiji 1873 & Empress 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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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는 우에노 히코마에게 사진을 배우고 오사카 및 토쿄에서 사진관을 차린다. 우찌다 쿠이치는 천황 사진을 찍어서 더욱 유명해진다.  오사카에 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치다 사진관이 아직도 있다.
 
 
Ryounkaku (183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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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12 층 건물 능운각에 일본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만 안전성의 이유로 중단된다. 후지산을 보려고 12 층까지 힘들게 걸어 올라가는 전망객들을 위하여 게이샤 100 명의 실물 크기 사진을 계단에 붙인다.
 
 
백명의 토교 미인대회 One Hundred Beauties of Tokyo 1891 오가와 카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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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들의 사진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최고의 미인을 뽑자는 미인 대회로까지 발전한다. 사진가 오가와 카지마는 미니 사진첩까지 낸다. 조선에도 이 유행이 넘어와 1920-30년대에 조선 기생 사진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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