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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미술 1 : 역사 속 근원을 찾아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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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2,668회 작성일 15-01-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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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화와 시각문화 Visual Culture and Modernity in East Asia
 
 
1st hour: 역사에서 근원을 찾아 1/8/15
 
최근에 아시아 작가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미술사를 동양 쪽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이 새롭게 일고있다. 미술사 하면 으례 서양 관점의 역사이며 그것이 당연시 되고있다. East, Far East, Middle East 라는 명칭 역시 유럽 중심적 사고를 반영한다. 동양의 근대화(modernization, modernity)는 외세 및 식민과 같이 진행되었기에 동양의 시각 문화는 서양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하지만 외세의 압박에서 치이고,식민을 당할 당시 동양인들의 의식이 어떠했는지를 알아야지만, 우리는 현대 동양 작가들의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화는 봉건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의식(파라다임paradigm)의 전환을 의미한다. 종교에 지배받던 중세적 세계관에서 휴머니즘 중심으로 사고하는 르네상스 맨에 이어, 계급적 사고관에서 탈피하는 근대적 인간이 등장한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세습적인 계급은 타파되었을지 모르지만, 부르조아라는 계급이 새로 출현하여 사회의 지배층으로 등장한다.
 
역사는 결코 뜬금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역사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근대, 현대를 넘어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사고 방식은 백년 전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의식은 과연 그렇게 진화했는가? 사람들의 마음은 완고하여 시대의 변화를 미처 쫒아가지 못한다.

 
 
 
나혜석                                                                    자화상 1934
          
여성 운동가 겸 시인 화가인 나혜석(1896-1948)은 파리에 가서 마티스와 피카소의 그림을 최초로 본 한국 여성이다. 나혜석은 남편과 이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는 동안에 만난 조선인 일본 외교관 최진과 정분이 나서 스캔들을 일으키고 이혼을 한다.
 
 
 
나혜석, 이혼 고백서, 삼천리 1934
 
나혜석은 그녀를 꾸짖는 사회의 시선에 대한 항변의 글 <이혼 고백서>를 써서 삼천리 잡지에 기고한다. 그녀의 글을 보면 현재 여성을 보는 시각이 백년 전과 큰 차이가 없음이 드러난다. 당시의 기존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신여성은 노골적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에도 여성을 압박하고 배제하는 사고는 여전히 교묘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숨어있다.
 
 
 
삼천리 여성잡지 표지, 1930년대
                   
여성 잡지의 표지에  추상적인 디자인이 들어간다. 서양에서 피카소, 마티스가 이름을 떨칠 때 일본 한국도 같이 나아가고 있었다. 식민지 한국은 일본을 모방한다.

 
 
사진 신부 picture bride
 
신여성 나혜석에 앞서 최초로 미국에 살러온 여자들이 있었다. 1890년대에 하와이에 시집온 사진 신부(picture bride) 들이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 조선의 남자들은 하와이에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대거 건너간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장가를 갈 수가 없는 농장 일꾼들은 사진을 보고 고국에서 여자들을 데려온다. 하와이에 도착한 어린 신부들은 사진과는 너무 다르게 늙고 초최한 신랑에 실망을 한다. 1910년대 당시 사진 결혼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신문을 장식한다. 
 
 
 
어린 시절 아베 총리와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노부시키 총리
 
 
역사를 추적해가면 그 배후에 있는 생각의 근원을 알 수 있다.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노부스키는 1930년대에 허허벌판 만주를 도쿄를 추월하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경제개발 5 개년 계획을 한다. 당시 만주에 중위로 있던 박정희와의 끈끈한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1945년에 이차대전이 끝나고 조선이 해방되자 두 사람은 각각 위기에 처한다. 남노당이었던 박정희는 체포가 되고 기시노부스키는  A 급 전범이 되지만, 둘 다 곧 풀려난다.
 
기시노부스키는  총리를 두 번이나 하며 최장 기간 총리를 한 집안으로 부각된다. 만주에 있던 고위급 엘리트들이 일본 한국으로 돌아오자 박정희 역시 미국의 후원을 받으면서 권력을 잡는다. 20 년 후 1960년대에 실세를 잡은 박정희와 기시노부스키는 다시  만난다. 박정희 대통령은 기시노부스키가 만주에서 했던 5개년 계획을 한반도에서 실행한다. 자민당을 시작한 기시노부스키는 한국의 근대화를 보면서 이것 역시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총리 시절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평화 헌법을 개정하려는 노력을 무진 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외손자 아베 총리 역시 평화 헌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을 하고자 한다. 역사는 이렇게 겹치면서 돌아간다.
 
한국 전쟁 후에 폐허가 된 한국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학교 병원 공무원 등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 (infrastructure)이 필요했다. 대한 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수립했으면 그에 맞는 민주적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천황이 지배하는 군주제국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다 쓴다. 대한민국을 다스리는 일시적 권한을 국민에게 위임받은 것이건만, 대통령이 천황처럼 위에 있다 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학교 제도를 확립하며 학교 안에서 국민을 길러낸다. 박정희는 메이지 유신을 쫓아서 유신을 감행한다. 내가 컨트롤하는 대로 나라가 돌아가게 하려고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하여 나라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준다.
 
 
 
Oda Nobunaga (1534-1582)                                Toyotomi Hideyoshi (1537-1598)                  Tokugawa Ieyasu (1534-1616)
               
일본은 전국 시대를 거쳐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시대의 인물로서 등장한다. 노부나가, 히데요시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일본의 중심은 안사이 지방의 오오사까였다. 이씨 가문이 조선왕조를 이어가듯 이에야스가 일본을 평정하고 역사를 이어간다. 이에야스가 영주로 있던 도쿄는 변방이었는데 이에야스는 수도를 도쿄로 옮긴다. 당시 도쿄를 애도라고 불렀다. 애도 시기, 막부 시기(1600-1868)내내 도쿠가와 집안이 지배한다. 중국은 명 청 시기이다.
 
 
 
나가사키 항구 개항 1571
애도 시대의 도쿠가와는 강력한 쇄국정책을 편다. 하지만 쿠슈 섬의 나가사키 항에 한정하여 서양 문물과 접하고 있었다. 천주교를 포교하지 않는 조건으로 네덜란드 상인들이 출입하고 있었으며, 포르투갈, 스페인 상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있다. 쿠슈 지방은 서양 문물과 쉽게 접했기에 이 지역에 개화파들이 많다. 여기에서 시작된 개혁의 물결이 일본 전체로 퍼지자, 도쿠가와 시대가 막을 내리고 메이지 천황 시대가 열린다.
 
 
 
메이지 천황 Emperor Maiji (1852-1912)
 
애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명치(메이지) 유신(1868-1912)이 일어난다. 메이지 유신은 장군이 영토를 지배하는 계급사회를 무너뜨리는 노력이다. 이 시기에 일본은 근대화가 이루어지며, 중국을 넘보며,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다. 일본인은 메이지 시대에 대한 자부심 및 향수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시기에 활동한 기시노부시키를 추억하고 오래 기억하므로 그의 손자 아베 역시 인기를 누린다.

 
일본 개항, 페리 제독이 타고 온 흑선 Black Ship & Commodore Matthew Perry, The Opening of Japan (1853-1854)
             
미국의 페리 제독이 증기선 흑선을 타고 요코하마항에 1853년에 나타난다. 일본은 미국에 의해 강제 개항을 당한다. 홋가이도 지방의 하코다테 Hakodate 과 시미다 Shimida 항구 두 도시를 개방한다. 일본인은 개항 당시의 생소한 광경을 세세하게 기록한다. 페리 제독은 요괴, 악마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처음보는 산물, 악기, 무기 등을 자세히 그린 후에 흉내내어 만들어본다.
 
 
 
하멜 멜빌의 모비딕 Moby Dick by Herman Melville 1851
             
미국은 왜 18 일이나 걸리는 그 먼 나라 일본에 가서 문호를 개방시키려 했을까? 1851년에 쓰여진 멜빌의 소설 백경 (모비딕)은 고래를 잡는 험난한 여정을 그리는데 일본이란 나라가 등장한다. 고래잡이가 당시에 유행하고 있었는데 일본 근교의 바다에 고래가 많이 있었다. 미국은 고래잡이 하러 일본 해역에 많이 갔으며 배도 정비해야 했기에 일본의 항구 도시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또한 미국은 동아시아 진출에 다른 열강보다 뒤쳐저 있었기에 위기감이 있었다. 영국은 이미 중국에 들어가 아편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러시아 프랑스 독일도 아시아로 진출하는 등 세계정세는  급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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