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th hour: 동아시아 조선 진경 산수화 18세기 (2) 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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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t 댓글 0건 조회 6,027회 작성일 14-05-2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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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미술 17th hour: 동아시아 진경 산수화 18세기 True-View Landscape and Western Perspectives 5/7/14
조선 후기의 사상가들은 세상을 관념적으로 해석할지 아니면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할 지에 대하여 논쟁을 벌인다. 실제로 있는 것을 추구하여 선을 얻자는 실학 사상의 일종인 실사구시에 철학적 무게가 실리고, 그로 인해 진경산수가 빛을 보게 된다. 또한 18 세기 후기에는 일상 생활을 추구하는 픙속도가 속되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다. 관념적인 중국의 학문을 따라가기 보다는 조선인이 체험한 경험에 의거한 학문을 추구하면서 진경 산수화에 이어 풍속화가 나타난다. 이태백이 시를 읊는 중국적 그림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김홍도와 신윤복은 조선 풍경화 속에 조선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중상공업으로 부를 축척하여 벼락 부자 Nouveaux Riches 가 된 중인계층이 풍속화 Genre Painting and Daily Life를 향유하면서 화가들의 생활이 유지가 된다.
윤두서 Yun Du-seo (1668-1715) Self-portrait
조선 후기에 유명한 문인 화가가 세 명 있었다.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공재 윤두서를 삼재라고 부른다. 18 세기 조선의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윤두서는 해남 파평 윤씨 양반 집안으로 관료가 되기를 원했지만, 소론인 할아버지가 당쟁에 밀려서 출세의 길로 나갈 수 없었다.
윤두서, 나물캐기
윤두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해안을 가진 실학자로서 실사구시 사상을 실천한다. 지도 및 생활도를 그리며, 신윤복과 김홍도가 풍속화를 그리기 전부터 시골 사람들의 풍습을 화폭에 담는다. 나물캐는 여인이 허리를 쭉 펴고 쉬고있다.
윤두서 <윤씨 가보> 중 짚신삼기 목기까기
공부를 많이 했지만 벼슬에 나갈 길이 없는 윤두서는 실험적인 정신으로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중국 명화본을 베끼는 그림이 당시의 주류 였으므로 그림에 독창성이 중요하다고 보지 않았다. 윤두서는 중국 화보를 베끼지만 조선의 사람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려서 새로움을 부여한다.
정선, 장안사도, 풍악도첩 중, 1711
충청도 평민 출신 겸재는 서울로 이사하고 정치적 줄을 잘 타서 성공을 한다. 이웃에 사는 안동 김씨의 눈에 들고, 좋은 그림 실력으로 노론의 후원을 받아서 출세의 가도를 달린다. 정선은 문인화가의 자격을 다 갖추었지만 시와 서예에는 능하지 못 했다. 17-18세기에 유행하는 진경산수화에 정선은 주도적 역활을 한다. 36 세 때 금강산을 다녀와서 실제 풍경을 관찰하여 그린 그림이다.
정선, 장안사 비홍교도, 해악전신첩 중, 1747
정선은 말년에 높은 관직에 오른다. 72 세에 금강산을 마지막으로 다녀와서 그린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정선 말년의 유명한 작품으로 안개에 묻힌 인왕산이다.
정선, 금강산도, 1734
정선은 금강산을 세 번 다녀온다. 두번 째 다녀와서 그린 그림이다.
김응환, 금강산도, 1772

문인화가 김응환은 배움을 추구하는 김홍도에게 정선의 금강산도를 흉내내어 그리면서 진경산수를 가르친다. 김홍도는 미천한 출신으로 학식은 별로 없지만 그림을 잘 그려서 궁정화가가 된다. 궁정화가와 문인화는 학식 및 신분에 있어 천양지차이다. 문인화가는 존경을 받았지만, 궁정화가는 전혀 인지도가 없었다.
정황, 양주송추도
정선의 아들 및 손자도 문인화가로서 삼대가 다 그림을 그린다. 정황은 정선의 손자이다.
심사정, 강상야박도, 1747
현재 심사정은 좋은 집안에서 그림을 많이 보고 자라지만, 노론파 아버지가 과거시험 부정에 연류되고, 영조 시해사건에 가담하여 집안이 몰락하자, 그림을 팔아서 먹고 산다. 정선은 관료가 되어 복록을 받아 살며 그림은 extra income 에 지나지 않지만, 심사정은 당시에 인기가 많던 중국 화보를 그려서 먹고 산다. 또한 초충도, 화조도는 여자들이 소일거리로 그리는 주제라 하여 문인화가들은 피하지만 심사정은 그려 팔기도 하여 조롱을 받기도 한다. 현재는 삼재 중에서 제일 불운했다.
표암 강세황, 자화상 self portrait (1713-1791)
학식과 덕망을 갖춘 표암은 모든 분야에 능했다. 김홍도의 스승이다.
강세황, 영통동구, 1757, 송도기행첩

개성으로 가는 영통 동구를 그린 진경산수이다. 집채만한 바위에다 개미만한 사람을 그려 비율을 나타낸다. 서양의 원근법 및 명암법이 그림에 나타나며 강세황은 원근법 운동을 펼친다.
강세황, 태종대, 송도기행첩
강세황은 진경산수를 그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 개성 가는 길에 태종대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잠시 쉬는 자신을 그린 듯 하다. 조선 후기의 특징으로 수묵 담채화가 나타난다. 기본적 형태 및 명암은 수묵으로 표현하고 옅은 담채로 색을 입힌다.
강세황, 사군자
강세황의 매난국죽 시리즈이다. 인문 교양을 닦지 않은 궁정화가 김홍도는 중국 고화에 쓰여진 시를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강세황은 재능이 뛰어난 김홍도를 제자로 키우면서 인문 지식을 가르치며, 어렵게 사는 심사정 역시 김홍도에게 가르침을 준다. 김홍도는 교우 관계를 통해 교양을 쌓는다.
신윤복 Sin Yun-bok, Women by a Crystal Stream
18 세기 후기에 넘어서 일상 생활을 추구하는 픙속도가 속되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림을 살펴보면 신분을 알 수 있다. 양반이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자들을 안보는 척 하면서 보는데 여염집이 아닌 직업 여성들이다. 집 한채 값이나 하는 가짜 머리 가채로 한껏 사치를 부리고 옷을 풀어헤친 여성들이 호객 행위를 하러 개울가에 나왔다. 신윤복은 기생courtesans, 관아의 포졸 등 이탈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그린다.
신윤복 Sin Yun-bok, Portrait of a beautiful lady, 18C, Choson (b. 1758)
조선시대 후기 한복의 특징이 나타난다. 10 대 후반의 여성미를 한껏 풍기는 모델이다.
신윤복 Sin Yun-bok, Women on Dano Day, Album leaf, Kanson Art Museum
풍속화로 앨범을 꾸며 책처럼 펼쳐보므로 인장이 많지 않다. 화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는 학식이 높지 않은 중인 출신이지만 스스로 깨쳐서 학문을 닦는다. 1758년 영조시대에 무르익은 봄의 단오날에 기생들이 소풍을 나가서 청포물로 머리를 감는데, 근처 절의 동자승이 옅보고 있다. 심리 묘사에 능한 신윤복은 여자들의 묘한 시선의 교차를 그림에서 보여준다.
신윤복 Sin Yun-bok, Lady in a Hooded Cloak, Choson
Lovers under the moon
신윤복의 그림으로 삼각 관계의 디테일을 보인다. 나이가 든 여자가 볼살이 있는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포졸을 지켜보고 있다.
Sin Yun-bok, Admiring Spring in the Country
풍경이 좋은 곳에서 상춘절을 즐기며 행사를 벌인다. 음악가와 기생도 따라간다. 정황이 적나라해서 연회도를 넘어서서 풍속도가 된다. 연한 꽃들이 분위기를 북돋는데 이런 디테일이 없으면 춘화집으로 보기가 쉽다.
Sin Yun-bok, Enjoying Lotuses While Listening to Music
김홍도 Kim Hong-do, Women pounding laundry, 18C
김홍도의 풍속화 시리즈 이다. 동네 아낙이 빨래하는 장면을 길가던 가객이 보고 있다. 김홍도는 신윤복에 비해 필체가 남성적이며 작품의 스케일이 크고 그림의 종류도 다양하다. 김홍도는 중국의 사신도, 산수화, 진경 산수 등 모든 장르의 그림을 잘 그렸다. 겸재, 공재, 현재는 문인화가 이지만, 단원, 혜원, 오원 (장승업)은 직업 화원이라고 불린다.
김홍도 Kim Hong-do, Roof Tiling. album leaf 18C
지붕 고치는 사람, 톱질 하는 사람을 그렸다. 신윤복처럼 아름답게 색을 넣지도 않아 김홍도는 훨씬 서민적이라고 평가된다.
김홍도, 무동
춤추는 어린 아이이다. 김홍도는 붓터치가 생동감이 있어, 섬세한 선과 색깔을 넣는 신윤복 그림과 차이가 있다.
후대 화가들이 김홍도의 그림을 패러디하여 작품을 변형시킨다.
Kim Duk-sin, Chasing a Cat, Choson Dynasty
김득신은 김홍도와 비슷한 화법으로 그린다. 고양이가 생선을 물고 달아나는 동시에 베짜는 기계가 넘어진다. 중인들은 일반 백성을 주제로 한 이런 풍속화를 즐긴다.
조선 시대 후기는 상업이 발전하며, 몰락한 양반들이 있어서 신분의 교란이 일어난다. 심사정처럼 당쟁으로 몰락한 양반들이 있어서 마지막 수단으로 족보를 판다. 18 세기에 서구 유럽은 산업 혁명을 하고 있었고, 조선은 시장의 규모가 팽창하고 있었다. 역사가들은 서구 열강이 무력으로 동아시아를 침입하지 않았더라면 자주적으로 근대화를 이루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18 세기 조선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 1960년대 사학자들은 조선을 자주적으로 경제적 팽창을 이룬 시기라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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